인간의 삶은 즐거운 것이지만 고뇌 속에 산다. 즐거움과 고뇌, 즉 고락(苦樂)은 상호 작용한다. 만약 인간의 삶이 즐겁기만 한다면 즐거움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반대로 인간의 삶이 고뇌로 일관한다면 존재의 의미가 없을 것이다. 즐거움이 고뇌에 이어 있고 고뇌가 즐거움에 이어 있으므로 인간다운 삶이 영위되는 것이다. 그렇긴 하나 고뇌는 극복하기가 힘겹다. 스스로 해결하기가 어려울 때도 많다. 인생문제, 가정문제, 부부갈등, 자녀문제, 청소년문제, 가정폭력, 노인문제, 이혼문제, 신앙문제 등 고뇌의 폭은 이밖에도 바다처럼 넓다. 이처럼 많고 어려운 인간사의 고뇌를 풀길은 여러 방법이 있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해법은 사랑으로 집약된다. 사랑은 남녀간 사랑도 있고 형제·자매간의 사랑도 있으며 친구간의 사랑, 사제간의 사랑, 동료간의 사랑 등 많다. 이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인성(人性)의 사랑이다. 여러 계층의 많은 고뇌를 상담해온 ‘경기도 사랑의 전화’를 16년동안 운영해온 경험에 비춰 인간사의 고뇌 해결에 사랑보다 더한 건 없다. 지난 90년 7월25일 평택시 이충동 952의7에 설립된 ‘경기도 사랑의 전화’는 각 상담 분야별로 자격증을 갖춘 전문가들이 고민하고 있는 이들로부터 전화받아 상담·처리해 주는 도우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인간사 고뇌를 푸는 근본 처방의 사랑에도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남에 대한 사랑이고 또 하나는 나에 대한 사랑이다. 예를 들어 보겠다, 40대 회사원의 고민은 중학생 딸이 이혼한 엄마를 만나보고 싶고 엄마 또한 딸을 만나고 싶어해 무척 속을 썩히는 점이다. 이런 경우 이혼은 부모끼리의 일이지 이로 인해 자녀에게 고민을 안겨 줄 권리가 있는 건 아니다. 모녀가 만나고 싶어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아빠가 딸을 사랑한다면 만날 권리를 인정해 주는 게 인성의 사랑인 것이다. 어떻게 만나고 자주 만나거나 하는 건 그들이 알아서 판단할 일이다. 이것이 딸, 즉 나 아닌 타인에 대한 사랑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이 있다. 음란사이트에 빠진 남자 고교생의 경우, 컴퓨터를 개방공간인 거실에 내놓고 운동이나 다른 취미활동으로 심신의 여유를 갖는 노력이 요구된다. 하지만 이같은 노력은 쉽지 않은 자신만의 싸움이다. 성장기에 성적 호기심은 자연 현상이지만 미숙한 인격체가 경험할 대상은 아니므로 성년까지 인내하는 노력은 본인의 장래를 위한 자신에 대한 사랑이다. 그러나 사랑은 쉬운 게 아니다. 남에 대한 사랑도 그렇고, 나에 대한 사랑도 그렇다. 나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한 타애(他愛)나 자신에 대한 자애(自愛) 등이 모두 쉽지 않으나 그래도 사랑만이 인간사의 고뇌를 덜 수 있는 건 인성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인성을 갖는 건 물질보다는 마음에 달렸다. 물질이 아무리 풍부해도 마음에 없으면 베풀지 못하는 게 사랑이다. 비록 물질은 빈곤해도 심성이 풍부하면 능히 베풀 수 있는 게 또한 사랑이다. 마음의 문을 닫으면 사랑의 문도 닫히고 마음의 문을 열면 사랑의 문도 열린다. 우리 모두 마음의 문을 열고, 사랑의 문을 열어 타애와 자애 등으로 인간사의 고뇌를 풀어가는 생활의 지혜를 갖는 게 밝은 사회로 가는 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김 형 석 경기도사랑의전화 이사장
오피니언
경기일보
2006-02-28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