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美中 충돌 속의 한반도

‘오랑캐’가 대륙을 유린했다. 이 족속에게 연전연패하던 나라의 황제가 파병을 요청해왔다. 신생 국가의 우두머리는 집요하게 선택을 강요했다. 약소국 군주는 어느 나라에 줄을 설까 고민하다 오랑캐에 맞설 군사를 파병했다.

▶군주는 장수에게 이렇게 일렀다. “짐짓 지는 척해라”. 파병을 요청한 나라에게도, 새로 일어서는 족속에게도 명분을 줬다. 한 나라는 일어서고 있었고, 어떤 국가는 무너지고 있었다. 약소국 군주가 택할 수 있었던 최선이었다. 200여년 전 역사다.

▶당시 대륙에선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질 않았다. 패권을 잡기 위해서였다. 죽어나는 계층은 백성들이었다. 비공식적 집계로 당시 20여년 동안 대륙에선 1천만명 이상이 희생된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한반도에선 전쟁 관련 영향은 받지 않았다.

▶한반도는 대륙과 불가분의 관계다. 정치학에선 ‘지정학(地政學)적 관점’이라 부른다. 당시 흥(興)하던 나라는 국호를 청(淸)으로 바꾼 후금(後金)이었다. 멸(滅)하던 국가는 명(明)이었다. 인조의 쿠데타로 역사의 소용돌이 뒤편으로 사라진 약소국의 군주는 광해군이었다.

▶인조는 즉위 후 망해가는 명나라를 살려야 한다며 후금과 맞섰다. 그러자 이 나라는 조선을 2차례나 짓밟았다. 병자호란과 정묘호란이었다. 인조는 오랑캐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항복하는 치욕을 겪는다. 이 과정에서 숱한 백성들이 스러졌다.

▶그로부터 200여년이 흐른 동북아 상황도 그때와 데칼코마니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과 미국의 SS라인이 충돌하고 있어서다. 일대일로는 중국과 중앙아시아, 유럽 등을 연결하려는 육상·해상 실크로드다. SS라인은 태평양을 ‘미국의 호수’로 만들려 했던 19세기 후반 윌리엄 수어드 국무장관과 조선 개항 목표를 실현한 로버트 슈펠트 함장의 성에서 딴 신조어다. 그 중간에 한반도가 있다. 이 두 전략이 한국에 또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변수는 늘 중국이다. ‘포스트 미국 시대’를 주도할 이념과 체제를 갖고 있느냐가 관건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중국 위상은 위축되고 있다. 미국과의 동맹은 우리의 생존과 번영에는 여전히 상수(常數)다. 과연 지금은 어느 나라가 흥하고 어느 국가가 망하고 있는 걸까.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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