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풀 메탈 자켓’

한 병사가 물었다. “(이 소총 탄환의) 파괴력은 어느 정도일까?”. 그러자 명사형의 짧은 대답이 되돌아왔다. “풀 메탈 자켓(Full Metal Jacket)”. 굳이 풀이하자면, 구리로 코팅한 탄두가 목표물을 정확하게 꿰뚫을 수 있다는 뜻이다. ▶고(故)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감독의 영화 ‘풀 메탈 자켓’의 한 장면이다. 배우들의 대사를 통해 제목이 툭 튀어 나온다. 관객들은 당혹스럽다. 후반부로 들어갈수록 그 황당함은 계속 된다. 적들은 몰려 오는데 방아쇠는 당겨지지 않고, 소대 병력은 전멸당한다. 세계 최정예인 미국 해병대가 말이다. 병사이기 전에 그저 나약한 사내들일 뿐이다. ▶끝 모를 패배감까지 엄습한다. 전쟁을 위해 준비된 병사들이 아니다. 그저 패배를 위해 예정된 군상(群像)일 뿐이다. 영웅심에 우쭐했던 소대장도 마찬가지다. 겁먹은 소대원들보다 먼저 비겁해진다. 관객들은 그래도 끝까지 뭔가 시원하고 의례적인 결말을 예상한다.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막연한 기대는 그러나 여지 없이 무너진다. 엔딩 자막이 나오면서는 심한 우울증에 빠진다. 무릎까지 시려온다. ▶영화 속으로 더 들어가 보자. 초반부 배경은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州 파리스 아일랜드 신병훈련소다. 고교를 갓 졸업한 젊은이들이 살인 기계가 되기 위해 8주일 동안 훈련을 받는다. 인정사정 없는 교관에게 온갖 욕지거리를 들으면서 찰 지게 단련된다. 이 와중에 한 훈련병이 교관을 사살하고, 자신도 극단적인 선택을 감행한다. 실로 어처구니 없는 반전이다. ▶그의 작품들은 늘 낯설고, 까칠하다. 그 중에서도 ‘풀 메탈 자켓’은 역대급이다. 해병대 정훈병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소설가 구스타프 하스포드의 원작을 더 뒤틀었다. 반전(反戰)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정작 전쟁의 광기와 부조리에 초점이 맞춰졌다. 순진했던 젊은이들이 잔인하게 변해가는 과정이 치밀하게 묘사된다. ▶국내 개봉 시기는 1990년대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진행 중인 현실은 영화 속의 비정함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논픽션이 픽션 보다 더 처참하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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