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러시아 엑소더스

올가 스미르노바(30)는 러시아 예술의 자존심인 볼쇼이발레단의 프리마 발레리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난 2월, 그녀는 볼쇼이를 떠났다. 자신의 텔레그램에 “조국 러시아가 부끄러워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는 메시지를 남겼고, 지난달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에 입단했다. 사실상 망명한 것이다.

볼쇼이의 예술감독 출신이자 세계적인 안무가인 알렉세이 라트만스키도 3월에 준비 중이던 모스크바 공연을 뒤로하고 뉴욕으로 떠났다. 우크라이나 키이우 지역에서 자란 라트만스키는 “푸틴이 대통령인 이상 러시아에 돌아가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다른 국적의 예술인들도 러시아를 떠나고 있다. 모스크바 네미로비치 단첸코 발레단의 예술감독이던 프랑스인 로랑 일레어는 러시아의 침공 후 사표를 냈다. 영국 출신 무용수 잰더 패리시와 이탈리아 출신 자코포 티시도 러시아에 등을 돌렸다.

다양한 분야의 인력이 러시아를 빠져 나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 비영리단체 ‘오케이 러시안즈’가 약 30만명의 인력이 러시아를 떠난 것으로 추정했다. 정보기술, 과학, 금융, 의료 종사자 등 이른바 ‘고급인력’들로 비자없이 갈 수 있는 인접국인 조지아, 아르메니아, 터키, UAE 등으로 향한 것으로 전해진다.

러시아의 젊고 똑똑한 IT 인재들이 빠져나가는 것은 심각한 두뇌유출(brain drain)이다. IT 인재들은 대부분 애플, 인텔 등 글로벌 기업 소속 개발자이거나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한 스타트업 창업자와 직원들이다. 우크라이나 침공 후 서방세계의 강력 제재로 루블화 가치가 폭락하고, 주요 글로벌 기업이 러시아에서 철수하면서 경제적 기반이 흔들리게 된 것이 엑소더스의 주된 이유다.

푸틴은 과거 구소련의 영광을 되찾고 싶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그는 지금까지 뭘 얻었을까. 국가든 기업이든 인재가 빠져나가면 망한다. 인재를 키우는데 수십년이 걸리지만, 잃는 것은 순간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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