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우 아동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 이상의 큰 행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버림받고 소외된 어린이들의 수호천사로 불리는 박정열 경기북부 아동일시보호소 소장(52). 박 소장이 그늘진 어린이들을 위해 본격 뛰어든 것은 사회복지법인 대한사회복지회에서 근무하기 시작한 지난 76년 말. 한참 부모님에게 재롱을 피워야 할 나이인 초등학교 시절 양친을 모두 여윈 그는 그 누구보다 부모없는 아이들의 서러움과 고민을 잘 알고 있었다. “어린시절 부모의 존재를 모르고 자라야만 하는 불쌍한 아이들에게 누군가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만큼 아름다운 일도 없을 것입니다” 박 소장은 전남영아보호소(현재 이화영아원), 전남 송정어린이집 원장 등을 거쳐 지난 97년 초부터 경기북부 아동일시보호소를 이끌어 가고있다. 그는 30여명의 자원봉사자와 13명의 상근직원과 함께 아이들의 목욕, 세탁, 놀이지도 등을 일일이 챙기는 등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면 몸을 아끼지 않고 있다. 박 소장은 특히 경기북부 지역의 버림받고 소외받는 영아들을 위해 다음달 초 호원동에 4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영아원도 열 계획이다. “사랑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아이들을 위해 조그만 힘이 되고 싶을 따름”이라는 박소장은 “아이들이 올바로 성장해 사회발전의 밑거름이 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의정부=배성윤기자 sybae@kgib.co.kr
“살아계실때 생기가 있는 사진을 찍어드리고 싶습니다” 안산시 중앙사진연구소 김진홍 원장(55)은 생활보호노인 400여명의 영정사진을 찍을때마다 숙연해진다. 안산시는 관내 생활보호노인들의 영정사진을 제작키로 하고 김원장에게 의뢰해 지난 16일부터 시청 대강당 한켠에 임시 스튜디오를 차려놓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노인들이 대강당 입구에서 망설이고 있으면 김원장은 한달음에 달려가 노인들을 사진기 앞에 앉힌다. “노인들 대부분이 부양가족이 없어 홀로 영정사진을 찍기를 꺼려 표정을 가누지 못하는 모습을 볼때마다 돌아가신 부모님이 생각난다”고 말하는 김원장. 경력 35년의 베테랑 사진작가이기도 한 김원장은 65년 충무로에서 익힌기술로 국내에 10여명 밖에 없는 국가기술 사진 1급 자격을 소지하고 있는 사진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하는 정통파 사진작가다. 그러나 이같은 김원장도 혼자사는 노인들의 영정사진을 찍기가 가장 어려운 것 같다고 토로한다. “옛날에는 영정사진이 주민등록증을 복사해 사용, 돌아가신 분들의 생기있는 얼굴을 볼수가 없어 유족들이 더욱 슬퍼했다”는 김원장은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평생 배운 기술로 돕고 싶다”고 말했다./안산=홍성수기자 sshong@kgib.co.kr
10여년간 독거노인들을 위해 매월 식사를 제공하는등 훈훈한 정을 나눠주고 있는 음식점 주인이 있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군포시 군포1동 군포역 주변에서 갈비집을 운영하고 있는 홍순일씨(40). 홍씨는 지난 13일 마을 독거노인 100여명을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초청, 음식을 대접하고 훈훈한 정을 나누었다. 특히 이날 행사에서는 횟집을 운영하는 한 독지가가 초밥을 직접 만들어 와 노인들에게 제공했으며, 인근 슈퍼마켓 주인은 담배를 하나하나 포장해 전달하기도 했다. 홍씨의 이같은 선행은 지난 90년 수원의 한 갈비집에서 주방장을 하던 시절부터 시작된다. 그는 자신이 근무하는 식당 주인의 허락을 맡아 갈비를 준비해 양로원과 고아원을 방문, 고기를 구워주는등 분기마다 어려운 이웃을 찾아 나섰다. “평소 외롭게 살아가는 독거노인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에 작은사랑을 나누게 된 것 같다”고 말하는 홍씨는 좀더 소신있고 적극적인 이웃사랑의 정을 나누기 위해 지난 5월 군포시로 이사온 후 군포역전에 갈비집을 차린뒤 본격적인 선행에 나섰다. 수원에선 분기마다 해오던 행사를 매월 정기적으로 독거노인과 양로원 노인들 100여명을 식당으로 초청, 식사를 제공할 계획이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인근 식당과 슈퍼마켓 등을 운영하고 있는 이웃 주민들의 참여가 잇따르고 있으며 군포1동 새마을부녀회(회장 김달현)는 매월 식당을 찾아 노인들의 시중과 허드렛일을 도맡아 오고있다. 새마을부녀회 김회장(52)은 “음지에서 묵묵히 어려운 이웃을 돕는 홍씨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며 “홍씨의 선행만큼 부녀회원들의 봉사도 지속적으로 유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군포=설문섭기자 mssul@kgib.co.kr
“불우 아동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 이상의 큰 행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버림받고 소외된 어린이들의 수호천사로 불리는 박정열 경기북부 아동일시보호소 소장(52). 박 소장이 그늘진 어린이들을 위해 본격 뛰어든 것은 사회복지법인 대한사회복지회에서 근무하기 시작한 지난 76년 말. 한참 부모님에게 재롱을 피워야 할 나이인 초등학교 시절 양친을 모두 여윈 그는 그 누구보다 부모없는 아이들의 서러움과 고민을 잘 알고 있었다. “어린시절 부모의 존재를 모르고 자라야만 하는 불쌍한 아이들에게 누군가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만큼 아름다운 일도 없을 것입니다” 박 소장은 전남영아보호소(현재 이화영아원), 전남 송정어린이집 원장 등을 거쳐 지난 97년 초부터 경기북부 아동일시보호소를 이끌어 가고있다. 그는 30여명의 자원봉사자와 13명의 상근직원과 함께 아이들의 목욕, 세탁, 놀이지도 등을 일일이 챙기는 등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면 몸을 아끼지 않고 있다. 박 소장은 특히 경기북부 지역의 버림받고 소외받는 영아들을 위해 다음달 초 호원동에 4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영아원도 열 계획이다. “사랑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아이들을 위해 조그만 힘이 되고 싶을 따름”이라는 박소장은“아이들이 올바로 성장해 사회발전의 밑거름이 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의정부=배성윤기자 sybae@kgib.co.kr
한인석 경기도 제2청 행정부지사가 18일자로 이사관(2급)에서 관리관(1급)으로 전격 승진했다. 경기도 제2청은 관리관을 수장으로 함에 따라 명실상부한 북부지역 행정의 산실로 낙후된 북부지역의 발전을 역동적으로 이끌어 내고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남북교류의 요충지로 발전시킬 수 있는 기틀을 갖추게 됐다. 한 부지사는 지난 71년 공직에 첫발을 내디딘뒤 파주군수, 남양주군수, 시흥시장, 의정부시 부시장, 북부출장소장, 경기도 기획관리실장, 수원시 부시장 등을 거쳐 지난 7월4일 제2청 행정부지사로 부임했다. 한 부지사는 탁월한 업무추진력과 조직화합을 유도하는 탁월한 능력을 갖춰 부하 직원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고있다./의정부=배성윤기자 sybae@kgib.co.kr
‘국산 담배시장을 사수하라’ 한국담배인삼공사 신성교 본부장이 지난달 1일 수원지점을 시작으로 실시한 하반기 시장탈환결의대회를 지난18일 북인천지점을 마지막으로 마쳤다. 이번 결의 대회를 위해 신 본부장은 전지점을 순회하며 사원들과 가진 대화를 통해 최근 급증하고 있는 외산담배 시장잠식의 위기상황에 대한 현실을 바탕으로 시장을 잃으면 생존권마저 박탈 당한다는 각오로 최선을 다해줄 것을 당부했다. 한편 이번 시장탈환대회는 외산담배시장잠식에 대한 전사원의 위기의식 공감대형성은 물론 정신무장을 통한 시장탈환분위기쇄신 하기 위해 개최됐다./이관식기자 kslee@kgib.co.kr
꽁꽁 언 연못에 빠져 호흡이 정지된 어린이를 소생시키는가 하면, 전신이 마비된 팔순 노인을 응급처치로 살려내 인천시장과 시민들로부터 감사편지를 받은 소방대원들이 있어 화제다. 인천남동공단소방서 송도파출소 위지환 소방교(39)와 전병천 소방사(37). 지난 2월 인천시 연수구 옥련동 626 송도 능허대 어린이공원의 깊이 1.3m의 넓이 300여평의 연못에 오모군(5) 등 어린이 2명이 빠졌다. 사고 직후 위지환 소방교는 어린이들을 얼음 밑에서 꺼냈으나 이미 한 어린이는 호흡이, 또다른 어린이는 심장이 정지된 상태였다. 침착하게 연못가에 어린이를 누이고 심폐압박과 인공호흡을 한 끝에 두 어린이는 소생했고 지금도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또 최근 연수구 청학동 김광선 할아버지(81)가 집에서 뇌졸증으로 쓰러졌다는 119 신고가 들어왔다. 위·전 두 소방관이 도착했을 때 김 할아버지는 이미 전신이 마비된채 의식불명 상태인데다 구토로 기도가 막혀 호흡곤란을 겪고 있었다. 즉시 기도를 확보하고 산소를 투입하며 동인천 길병원으로 이송해 꺼져가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며칠후 인천시장 앞으로 한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김할아버지의 조카 경자씨(여·36)가 ‘119신고 후 5분도 안돼 현장에 도착했고, 신속한 응급처치로 할아버지의 생명을 구해준 소방대원들께 감사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온 것이다. 편지를 받은 최시장은 즉시 두 소방대원에게 격려 편지를 보냈다. ‘두 분의 친절과 도움으로 위기를 넘긴 김경자씨 가족의 감사하는 마음을 대신 전합니다. 여러분 같은 119 소방대가 있는 한 시민의 안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입니다’고 최 시장은 격려했다. /김신호기자 shkim@kgib.co.kr
“21세기 디지털시대에 발맞춰 내실 있는 교육행정이 구현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인천시 부교육감으로 부임한 우형식 부이사관(45)의 청사진. 지난 80년 행정고시 제24회로 공직에 입문한 뒤 교육부 인사계장과 충남대 교무과장, 교육부장관 비서관, 지방교육자치과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친 뒤 지난해부터 교육부 총무과장으로 재직해 이론과 실무를 겸비했다. 특히 초임 사무관 시절인 지난 81년부터 90년까지 5년간 인천시교육청(당시 인천시교위)에 근무, 누구보다 인천교육행정에 밝은 편. 충남 청양産으로 서울대 사범대와 서울대 행정대학원 등을 거쳐 미국 오레곤대를 졸업했다. 부인 노규진씨와 2녀, 취미는 바둑. /허행윤기자 heohy@kgib.co.kr
“우리들이 먼저 솔선수범해야 겠다는 생각에서 봉사활동을 펼치게 된 것 뿐입니다” 공무원 봉사단체인 ‘용인시 공직자 봉사단’이 매월 20살 이하 정신지체아 보호시설인 ‘생수사랑회(용인시 남사면 진목리)’를 찾아 사랑을 베풀고 있어 훈훈한 감동을 던져주고 있다. 이 봉사단의 아낌없는 사랑이 이들에게 전해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3월. 처음 사회진흥과 직원 몇몇이 모여 시작한 봉사단의 선행이 직원들 사이에 조금씩 알려지자 이제는 각 읍·면·동 사무소 직원들은 물론, 시의회, 일반인, 심지어 직원 가족 등 20여명이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매번 회원들이 조금씩 모은 작은 정성으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지난 5일에는 14번째 자원봉사를 다녀왔다. 내리쬐는 폭염속에 땀을 비오듯 흘리면서도 다 쓰러져가는 담장을 헐어내고 마당에 널부러진 나무를 정리하는등 생수사랑회를 찾을때 만큼은 힘을 아끼지 않는다. 처음에는 서로가 낯을 가리던 봉사회원과 아이들도 이제는 장난을 주고 받을 만큼 친해졌다. 사회진흥과 이동무계장은 “몸도 못 가누는 아이들을 목욕시키는 일을 모두들 제일 힘들어 하지만 아이들도 제일 좋아해 아이들과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김량장동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는 지영성사장이 매달 지원해 주는 고기와 익명의 후원자들은 보내오는 지원과 주위의 격려는 이들에게 든든한 힘이 되고 있다. 9월 첫째주 토요일에 갈 15번째 자원봉사땐 아이들과 함께 놀이동산을 갈 계획이다. “우리의 작은 힘이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뿐 입니다” /용인=신현상기자 hsshin@kgib.co.kr
최근 남북관계 개선으로 통일의 희망이 짙어지고 있는 가운데 6·25 전쟁때 북한해역의 서해에서 유실된 백금금괴 7t을 찾으려는 평생의 소원을 풀 날을 기대하는 전 인민군 총좌 출신이 있다. 평북 의주가 고향인 방진호씨(81·평택시 신장2동)가 주인공. 1950년 6·25발발 당시 인민군 총좌로 평양철도경비사령부 후방참모(조달·재정담당)로 있다가 정치보위부로 자리를 옮긴 방씨가 진남포 제련소에 보관중인 황금 1.5t, 백금 7t, 수은 70t 등을 땅속에 묻어 숨기라는 중앙의 지령을 받은 것은 유엔군의 진남포 상륙이 눈앞에 닥쳤던 그해 10월 초순이었다. 그러나 금괴가 결국은 중국대련으로 유출될 것을 확인한 그는 금괴를 가지고 귀순할것을 결심, 중공군의 개입으로 1·4후퇴가 시작될 무렵 국군에 귀순, 금괴와 함께 남하했다. 당시 진남포에 진주한 미군들도 제련소에 금괴를 찾고있는 바람에 금괴이동은 극비로 추진됐다. 하지만 금괴를 싣고 야반에 진남포항을 떠난 대동1호와 대동2호 두 발동선은 현재 북한해역인 백령도 근해에 이르러 하중을 견디지 못해 대동2호가 침몰, 백금 7t과 수은 70t이 바다속에 잠기고 말았다. 방씨는 결국 황금 1.5t을 갖고 인천항을 통해 귀순하는데 성공했으나 바다에서 유실된 시가 1조원대로 추정되는 백금금괴와 수은 등을 언젠가는 찾겠다는 일념으로 통일을 염원해왔다. 이 금괴 등을 찾으면 통일기금으로 나라에 바치겠다는 것이 방씨의 포부다. 또 침몰된 금괴는 구리로 포장돼있고 침몰지역은 자세한 해상도가 군당국에 아직도 보관돼 있어 수색이 어렵지 않다는 것이 방씨의 설명이다. 귀순 이후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격려를 받은 방씨는 거제도 포로수용소 심사원 등으로 일하다가 사회에 복귀, 1957부터 송탄을 제2고향삼아 살고 있다. 송탄에 정착 직후에는 손수 벽돌을 찍어 토담집을 만든 평애원을 설립, 전쟁고아들을 돌보기도 했다. 민족통일 협의회 송탄시 협의회장, 체육회 고문 등에 이어 지금은 이북 5도청 중앙상임고문으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으나 생계는 경기도에서 지급되는 월 30만원의 보조금으로 어렵게 꾸려가고 있다. /평택=이수영기자 sylee@kg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