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우리가 인도로 가야하는 까닭

사드(THAAD) 배치 이후 어려운 한중관계를 겪으면서 우리는 무역과 문화교류 등 모든 면에서 중국 시장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기업들은 위험분산을 위해 동남아, 인도 등지에 투자와 거래를 확대하느라 분주하다. 정부는 신남방정책을 표방하며 아세안과의 관계 강화와 더불어 대인도 외교를 4강 외교 수준으로 격상하기 위한 구상을 구체화하고 있다. 외교관계 강화를 위해서는 국민 상호 간 이해가 기반이 되며, 그 기본은 서로에 대한 관심이다. 그런데 2016년 한국인 해외여행객 2천200만여 명 가운데 인도 방문객이 고작 11만 명이라는 사실은 인도에 대한 한국인의 관심을 짐작케 한다. 우리에게 인도는 아직도 석가모니, 타지마할, 길거리의 소, 갠지스 강 인파 정도로 각인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 미국에 유학생을 가장 많이 보내는 나라, 미국 IT 회사를 주름잡는 사람들을 인도의 이미지로 떠올린다면 그나마 이해가 높은 편이겠다. 하지만 세계는 인도를 더 이상 ‘영원한 잠재력의 나라’로 내버려두지 않는다. 인도 인구는 2020년대 중반 중국을 추월해 세계 최대가 되며, 고령화 단계에 접어든 중국과 달리 젊은 인구의 팽창은 지속적 성장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인도의 경제규모는 아직 중국의 20% 수준으로 전 세계 GDP의 3%에도 채 이르지 못하고 있다.그러나 중국이 최근 수년간 성장률 6%대에서 숨 고르기 하는 사이, 인도는 7% 후반 성장률을 이어가고 있는데, 그것도 안정적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이루어내는 성과다. 향후 세계경제에서 OECD 회원국 등 선진국 비중은 50% 이하로 떨어진 후 더욱 줄어들고, 중국이 15% 수준에서 정체를 보이는데 비해 아세안과 인도의 비중은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부 한국 대기업들이 인도에 성공적으로 진출하고 있으나, 양국 간 무역 150억 달러는 1조 달러 무역국가인 한국의 위상에 비추어 초라하다. 인도와의 협력 확대를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우선 서로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턱없이 부족하다. 29개 지방이 각각의 국가처럼 다양한 아대륙(亞大陸subcontinent), 할리우드 영화나 한류의 진입이 쉽지 않은 문화적 자부심, 사회를 지배하는 종교적 생활방식과 계급제도 등은 인도를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할 요소의 일부일 뿐이다. 서남아 지역에 대한 외교과제도 녹록지 않다. 인도 외교부 고위인사는 양국 간 한-인도 ‘특별전략적동반자관계’를 ‘서로의 핵심적 민감 사안에 대해 이해를 공유하는 관계’로 정의하면서, 파키스탄 관할의 양국 분쟁지역인 캐시미르에서 한국의 공기업들까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음을 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신남방정책의 한 축인 인도와의 관계 증진을 위해서는 우선 인적 교류를 통해 상호 이해와 관심의 폭을 확대해야 한다. 2천 년 전 아요디아 왕국의 허황옥이 물길로 가락국까지 건너와 김수로왕의 비(妃)가 된 이래 양국 인적교류는 답보상태에 머물러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우리가 고대 인도 이미지에 갇혀 있는 동안 인도인들도 오래전 한국의 낡은 이미지를 버리기 어렵다. 보다 많은 한국인이 인도에 가서 오늘의 인도를 마주하고, 보다 많은 인도인을 초청하여 한국을 보여주는 것이 이해 증진의 첫걸음이다. 양국 국민의 상호 이해라는 토대가 있어야 외교관계의 격도 높아질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인도로 가야 하는 까닭이다. 이시형 국제교류재단 이사장·前 주OECD 대사

[세계는 지금] ‘한류와 첨단산업제품’ 세계 속 한국의 위상

작년 연말 국내 언론에 조명된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의 세계적인 활약상은 한류가 세계인들과 교감하고 있는 정도를 알게 해준다. 한류는 세계가 한국을 인지토록 하는데 있어 우리의 첨단 산업제품과 함께 탁월한 외교관 또는 대사의 역할을 대행하고 있다고 본다. 필자가 근무했던 그리스에서도 이를 경험할 수 있었는데 그리스는 한국을 첨단 IT기술이 발전한 경제강국으로 인식하면서 부러움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 그리스인들은 삼성 핸드폰과 LG에어컨을 최고의 제품으로 선호하며, 첨단산업을 발전시킨 한국에 대해 신기해하고 한국의 역사, 문화, 전통과 언어에 대해 알고 싶어하며 이웃나라인 중국, 일본과는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한다. 아테네 경찰청의 순찰차로 채택된 현대 i30들이 아테네 거리를 주행하면서 자연스럽게 현대와 한국을 홍보하는 모습은 우리의 자동차 산업에 대해 자긍심을 주고 있다. 그리스에 주재한 인도대사의 부인은 미국인이었는데 필자에게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삼성 갤럭시를 보여주며 친근감을 표시하였고 또한 자신의 승용차로 i20중고차를 쓰고 있다고 자랑하곤 했다. 또한 필자가 예방하였던 겸임국 알바니아의 외교부 장관도 접견 석상에서 삼성 갤럭시를 꺼내어 보이면서 한국에 대한 우호감을 표시했다. 우리나라의 TV드라마, 영화, K-pop 등 한류가 그리스인들에게 미치는 영향력 또한 국내에서 상상하는 이상으로 크다. 그리스 젊은이들은 한국의 TV드라마를 한국어로 듣고 이해하기 위해 토요 한글학교와 한인교회 일요일 예배에 참석한다. K-pop을 좋아하는 그리스 청소년들은 한국에서 매년 KBS주최로 개최되는 전 세계 외국인 대상 K-pop 대회에 참가하는 것이 꿈이다. 그러기 위해 우선 우리 대사관이 주최하는 아테네 예선에서 우승해야 하므로 보통 20여 개 그룹이 참가하여 치열한 경쟁을 치르는데, 수백 명이 공연장을 가득 채운 채 무대 위의 경연팀들이 노래하는 K-pop을 환호하며 합창하는 예선 행사 자체가 그들에겐 축제와 같다. 그리스 제2의 도시인 데살로니카에도 한류 팬들이 많다. 그들은 한글을 배우고 싶어하여 한국어학당을 설립해주기를 요청하는 청원서를 우리 대사관에 보내올 정도였다. 우리 대사관이 데살로니카에서 ‘한국문화의 날’ 행사의 일환으로 ‘건축학개론’을 상영했을 때, 200여 명의 관람객이 영화 상영도중 잦은 웃음으로 영화를 음미하였으며, 특히 젊은 한류 팬들은 ‘건축학개론’의 내용에 관해 자체 토론회를 가질 정도였다. 그리스 제4의 도시 ‘라리사’는 매년 국제 영화제를 개최하는데 2015년에는 한국영화 3편을 올해의 초청작으로 정하여 필자가 참석한 개막식 날 상영했으며, 주최 측 사무총장은 앞으로 10~20년 후에는 한국 영화가 할리우드 영화에 못지 않은 세계적 영향력을 가질 것임을 확신한다고 참가자들에게 소개했다. 우리 사회가 한류와 첨단 산업제품을 세계에 수출하듯이, 세계화로 인해 많은 국가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경제의 양극화를 해소하고 경제성장론자와 복지확대론자가 공히 만족할 수 있는 경제발전을 성취하는 경제운영방식을 모색해 세계에 모범사례로 제시할 수 있는 나라가 되기를 새해에 기원해본다. 신길수 前 주그리스대사

[세계는 지금] 로봇 확산에서 일본의 국가전략을 본다

일본에서는 일손이 없어 바쁠 때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로봇 손이야말로 빌려야 할 상황’이라고 한다. 심각한 인력부족에 직면한 일본기업들이 사람 대신 로봇이나 첨단기계에 일을 맡기려고 방향을 틀고 있다. 일본의 유명 소고기덮밥 체인, 요시노야(吉野家)는 점포 기계화를 서둘러, 그릇에 밥을 자동으로 퍼 담는 기계를 전국 모든 점포에 이미 도입했다. 작년에는 도쿄의 한 점포에 로봇을 시험적으로 도입했는데, 이 로봇은 식기세척기에서 씻긴 그릇을 종류별로 쌓아서 정리하는 일을 한다. 요시노야는 앞으로 작업의 절반 이상을 기계화하거나 로봇에 맡기고, 종업원은 조리나 서비스에 전념케 할 것이라고 한다. 호텔에도 로봇이 등장했다. 일본에서 큰 호텔 로비에 들어가 헤매고 있으면 어디선가 직원이 나타나 도울 일을 물어오곤 한다. 도쿄 하이얏트 호텔에 이런 일을 하는 인공지능(AI) 로봇이 도입돼 직원 한 사람 몫을 해낸다고 한다. 영어나 일어로 손님에게 말을 걸고 간단한 수다도 떨며 호텔 곳곳을 안내한다고 한다. 이처럼 사람을 대신하는 로봇이 일본의 서비스업, 제조업 등 분야에서 도입돼 빠른 속도로 확산될 추세다. 2015년 일본 노무라연구소 조사에서 슈퍼점원, 경비원, 은행창구, 전자부품 제조나 조립, 공장 사무원 등 235종의 직업(일본 내 근로자 49% 종사)이 향후 10년 내지 20년 사이에 기계나 AI에 의해 대체될 것이라고 예측됐는데, 현 추세라면 그 시기는 훨씬 더 앞당겨질 것이라 한다. 일본에서 로봇 도입을 촉진한 것은 저출산에 따른 인력부족이지만, 그 이면에는 국가전략이 뒷받침하고 있다. 2015년 1월 경제산업성은 ‘로봇 신전략’을 발표했는데, 향후 5년을 로봇 혁명의 집중 실행기간으로 정하고, 제조ㆍ서비스ㆍ간호ㆍ의료ㆍ인프라ㆍ재해대응ㆍ농식품업 등 주력분야에서, 정부와 민간이 로봇 관련 프로젝트에 1천억 엔을 투자해 로봇 시장규모를 현재 연간 6천500억 엔에서 2.4조 엔으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산업용 로봇의 연간 출하액이 3천400억 엔(2014년 세계시장 점유율 약 50%), 국내 가동 로봇 수가 약 30만대(세계 점유율 약 20%)로 세계 1위이며, 로봇의 활용 및 진화와 관련된 센서, 네트워크 인프라, 현실 데이터, 컴퓨터개발능력 등에서도 세계 최고수준이다. 이런 강점을 활용한 ‘로봇 신전략’은 최근 핫이슈가 되고 있는 제4차 산업혁명에 있어서 일본의 대응전략 근간이 되고 있다. 일본의 제4차 산업혁명 전략은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이 제조업 혁신 개념인 것과는 달리 과학기술을 통한 생산성 향상은 물론 국가사회의 제반 과제 해결을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일본은 저출산고령화, 에너지, 지역침체, 재난재해, 지구문제 등 다양한 경제사회 문제에 직면해 있는데, 이런 문제들을 오히려 성장 동력으로 삼으려 한다. 즉 경제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서비스를 창출하여 거대한 미래산업을 육성한다는 것이다. 구체 실행전략과 로드맵은 이미 ‘일본재흥전략 2016:제4차 산업혁명을 향해’, ‘신산업구조 비전:제4차 산업을 선도하는 일본의 전략’ 등 정책문건을 통해 제시돼 있다. 이러한 전략은 일본사회의 로봇화 진전을 통해 이미 현실로 구체화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일본과 흡사한 여러 과제를 안고 있는 한국, 이제 겨우 제4차 산업혁명 논의가 본격화되는 정도다. 새해는 우리사회의 실정에 맞는 제4차 산업혁명의 개념과 국가적 대응전략을 정립하는 중요한 해가 되기를 바라본다. 서형원 前 주크로아티아대사·순천청암대 총장

[세계는 지금] 북한, 서둘러 대화의 명분 찾기를

12월 12일 틸러슨 미 국무장관의 연설이 ‘조건 없는 대북대화 제의’로 국내외 언론의 주목을 끌었으나, 이튿날 백악관은 북한에 대한 입장 변화는 없다고 하고, 장관 자신도 사흘 뒤 유엔 안보리에서 최고 수준의 압박을 통한 북한 핵문제 해결을 강조함으로써 입장을 번복한 것으로 비쳐졌다. 또 12월 18일 발표된 미국의 2018년도 안보전략보고서는 힘에 의한 평화유지(preserve peace through strength)를 안보정책의 기조로 삼고 있다. 한편 북한은 12월 19일자 노동신문 논평을 통해 ‘내부 조정도 제대로 못하는 미국 정부의 일관성 없는 대화제의에는 흥미가 없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국내 언론에 보도됐다. 북한 핵 관련 미 정부 요인들의 메시지가 어디에 방점을 두는가에 따라 다소 혼란스러운 것은 사실이나, 현재까지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는 그런대로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12ㆍ12 틸러슨 장관의 연설과 질의응답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본다. 그는 북한 핵문제를 포함한 외교과제와 11개월간의 외교성과를 설명하는 가운데 ‘대통령도 같은 생각, 대통령의 정책’ 등 ‘대통령’이란 단어를 무려 30여 차례 사용하였다. 그가 연설에서 강조한 대북한 정책 기조를 되짚어보면 그 일관성이 더 명확해 보인다. 첫째,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한반도 비핵화가 미국의 정책임을 재천명하고, 북한을 경제 제재, 외교적 고립 등 국제공조를 통해 최대한 압박함으로써 핵과 미사일 정책의 방향을 선회하도록 한다는 것이 과거 정부와 다른 점이라고 하였다. 둘째, 언제라도 북한이 원하는 대화를 할 용의가 있으나, 북한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선택을 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대화에 나와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셋째, 외교적 노력을 경주하는 동안에도 미국의 군사적 대응태세는 강력하며, 외교노력이 실패할 경우 남는 것은 군사적 선택뿐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다만 북한과의 협상은 언제 시작할 것이며 전제조건은 있는지 묻는 질문에 대해 그는 언제든 북한이 원하는 시점에 대화할 용의가 있으며, 조건 없이 첫 만남(first meeting)을 할 준비도 됐다고 대답했다. 상대를 모르니 일단 만나봐야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고, 협상을 어떻게 진행시킬지 의논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굳이 조건이라고 한다면, 대화를 하는 중에 (핵, 미사일)도발을 해서는 곤란할 것이라는 점을 부연하였다. 일단 조건 없이 대화를 시작한 후, 도발을 멈추고 대화 분위기를 이어가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되어, 일정기간 도발을 멈추어야 대화가 가능하다는 국무부의 기존 입장보다는 전향적 제안으로 평가된 것이다. 틸러슨 장관은 북한이 일정기간 도발을 자제하면서 대화를 원한다는 신호를 보내오면 미국으로서는 응할 것이라는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첫 대화는 조건 없이 시작할 수 있다는 유연성을 보임으로써 결과적으로 북한에 보다 적극적인 대화 신호를 던진 셈이 되었다. 동시에 이래도 북한의 태도변화가 없으면 남는 것은 군사적 선택뿐이라는 통첩으로도 들린다. 북한은 틸러슨 장관의 연설을 ‘혼선’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대화의 장으로 나올 명분으로 삼고 기회로 붙잡아야 한다. 이제 시간이 정말 많이 남지 않았다. 틸러슨 장관 말대로, 자신의 영역인 외교가 실패하여 국방장관의 영역으로 넘어가 ‘첫 번째 폭탄(first bomb)’이 투하되는 시나리오는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도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반드시 우리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시형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前 주OECD대사

[세계는 지금] G2 시대 속 우리의 길과 국력

지난달 29일 북한이 75일 만에 또다시 ICBM급 미사일 발사를 실험하며 한반도에 긴장국면이 재개되고 앞으로의 사태에 관한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금번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처하는 한국과 미국정부의 대응책을 볼 때, 이전에 비해 양국의 입장이 보다 긴밀히 조율되어 발표되는 것으로 보여 향후 사태의 전개에 대해서도 한ㆍ미 양국이 공조하여 위기를 극복해 나갈 노력을 함께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이와 같은 양국 간 긴밀한 입장의 조율이 가능한 배경에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양국이 북한 핵 문제에 관한 상호 입장의 이해를 통해 공통부분을 확인하고 이를 양국 대응책의 핵심으로 공유하는 것에 합의가 이루어졌을 개연성이 크다고 생각된다. 양국 정부의 발표에 비추어 공유하는 대응책의 핵심은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의 강도를 최대한 높여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며 △이를 위해 중국의 적극적 협조를 요청한다는 것으로 보인다. 양국은 북한 핵 대응책의 핵심을 공유함으로써 동맹국으로서의 일체감을 증진시키는 한편 양국의 입장 차이에 관해서는 미국은 선제타격론을 대안적 선택지로 갖는 반면, 한국은 한반도 운전자론에 따른 남북대화의 기회의 창을 모색하는 것으로 각각 운신의 폭이 정리될 수 있으며, 양측은 대화 상대자로서 상호 편안함(level of comfort)이 제고될 수가 있다고 본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 중 한ㆍ미 동맹에 대한 미정부의 변함없는 신뢰를 표명하고 한국의 중요성에 비추어 코리아 패싱은 없음을 분명히 언급하는 호의적인 제스처를 보여준 근저에는 한ㆍ미 간 북한 핵 대응책에 대한 상호 입장의 이해와 핵심부분의 공유가 있었기에 가능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중국과의 사드 문제가 우리 정부의 3불(3不) 입장표명에 이어 이달 내주에 예정된 문 대통령의 방중을 계기로 해법이 찾아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유의할 점은 과거 중국과의 협상 경험에 비추어 중국은 상대방이 중국 측의 요구 사항을 마지막 조건이라고 판단해 합의하면 또다시 상대방에게 조건을 제시하여 추가적인 양보를 요구하는 양태를 갖고 있을 수 있다. 중국 측이 우리의 3불(3不) 입장 표명을 약속으로 언급하고 1한(1限)을 추가코자 시도하는 속이 보인다. 사드 문제는 중국과의 협력관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우리에게 값비싼 교훈을 남기고 있다. 중국이 앞으로도 일방적으로 사드와 같은 사태를 반복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며, 한·중 간 국가이념과 체제가 상이하여 양측의 협력 확대에는 숨은 장애가 많음을 염두에 두고 관계를 추진해 나가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중국도 우리와의 사드 분규로 민 낯을 대외적으로 노정한 것에는 앞으로 지불해야 할 비용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중국이 세계의 질서를 주도코자 각축하는 이 시대에서 우리는 길을 찾아 나가야 할 것이며 이러한 노력에는 우리의 국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미국의 한미 동맹에 대한 높은 평가와 신뢰, 중국의 사드 제재 해제 움직임은 결국 우리의 힘을 알려주는 방증이다.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국익을 지킬 수 있는 근본은 우리의 국력이므로 국력을 신장시키는 우리의 노력은 항상 중요하다. 신길수 前 주그리스대사

[세계는지금] 여행하며 기분 좋은 나라

▲ 서형원 지난여름 석 달 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이 해외여행에서 쓴 돈이 7조 7천억 원이 넘는다고 한국은행이 발표했다. 여행경비만 늘어난 게 아니다. 외국으로 나간 사람들의 증가추세도 놀랄만하다. 지난해 2천200만 명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는 9월까지 벌써 2천만 명을 돌파했다. 한국인의 여행패턴이 한곳에 오래 머무는 휴양형이라기보다 많은 곳을 보기 위해 계속 이동하는 유동형이기에, 세계 주요 관광지에는 어디든 한국여행자들로 북적이고 있다. 필자가 근무하던 중유럽의 작은 나라 크로아티아에도 한국 여행객이 급증, 2013년 부임 당시엔 연간 7만 명 정도였는데 2016년 이임할 때는 40만 명이 넘어설 정도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 나라 여행에서 무슨 매력을 느끼고 돌아갈까 하고 궁금해서 우리 여행객들에게 묻곤 했다. 그룹투어를 마치고 귀국하려던 어느 여류작가의 이야기가 기억에 선하다. “두브로브니크나 플리트비체 같은 관광명승지도 좋았지만 이 나라 전체가 정말 아름다워요. 잘 보존된 산과 들도 아름답고 그와 어우러진 빨간색 지붕의 크고 작은 마을들이 너무도 예뻐요. 어디를 가나 잘 정돈되어 깨끗하고, 사람들은 인상이 선하고 친절해서 왠지 마음이 편했어요. 이 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 반 정도라는 데도, 우리보다 더 세련되고 여유로워 보여요. 다음엔 가족과 함께 다시 오고 싶어요” 이런 소감은 실제 한국여행자들이 대체로 공감하는 크로아티아 여행담의 일부가 아닐까 생각된다. 필자도 그 나라 근무 중 주말이면 산허리나 계곡이나 바닷가의 크고 작은 마을들을 보러 다니곤 했는데, 귀가할 때는 언제나 마음이 상쾌했다. 그림 같은 자연과 마을 풍경들로 눈과 마음이 넘치게 힐링 받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귀국하고 나서 틈나는 대로 국내 명소들을 찾았다. 리조트든 산책·등산 코스든 명승지든 여행 목적지에 도착하면 환경이 말끔하게 정리되고 편의시설들도 편리하게 구비돼 있어서, 대체로 만족스럽게 즐기고 편하게 머물 수 있어서 좋았다. 국제적으로도 손색없는 명소들이 많아진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도 관광지 개발이나 정비에 적지 않은 투자를 한 결과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오고 가는 길목이다. 산천은 분명 금수강산인데, 거기에 들어선 도시나 마을의 짜임이 경관을 훼손해 조화롭지 못한데다 어지러운 간판과 쓰레기?폐기물 더미가 눈에 거슬린다. 지난 여름폭우 후에 팔당댐을 지나면서 수면을 뒤덮은 엄청난 쓰레기 더미를 보고는 마음마저 심란해지기도 했다. 그 때문일까? 국내여행을 하고 나서는 크로아티아나 일본 체류 중 지방여행을 할 때 느꼈던 정서적 만족감을 느끼기 어렵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국내보다 해외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부분이 아닐까 싶다. 해외여행이 급증하자 여행수지 악화를 우려해 국내여행 활성화 대책이 여러 가지로 논의되고 있는 듯하다. 신기하고 특이한 관광지 개발, 교통체증과 주차난 해소, 바가지요금과 불친절 근절 등과 같은 단기 대책들도 중요하지만, 관광명소 단지뿐만이 아니라 국토 전체를 조화롭고 아름답게 다듬는 백년대계도 세워야 하지 않을까 한다. 또다시 가보고 싶다는 나라들도 사실은 정책과 계획을 통해 오랜 세월을 거쳐 다듬어지면서 관광대국이 됐기 때문이다. 서형원 前 주크로아티아대사 ·순천청암대학교 총장

[세계는지금] 베트남에 진 ‘마음의 빚’, 어떻게 갚을까

▲ 이시형 지난 11월21일 하노이에서 한국국제교류재단과 베트남사회과학원이 개최한 ‘한-베트남 미래포럼’에는 수교 주역과 양국 관계발전에 기여한 인사들이 참가, 지난 25년간 양국 관계 발전상을 회고하고 미래를 위한 비전을 제시했다. 1992년 베트남 외교부 1차관으로 수교교섭을 이끌었던 ‘부 콴’ 전 부수상은 당시 한국인들은 ‘베트남인들은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매우 궁금해했으며, 과거는 묻어두고 미래를 향해 함께 나가자는 것이 베트남 정부의 일관된 대답이었다고 회고한다. 베트남 측의 전향적 태도와 한국의 북방외교 열기에 힘입어 그 해 12월22일 양국은 수교 합의에 이르게 된다. 25년이 지난 올 연말까지 양국 무역규모는 작년보다 30% 늘어난 600억 불을 기록하며 한국은 베트남의 2대 교역국으로 올라설 전망이다. 베트남 또한 한국의 4위 무역상대국이며, 한국은 2014년부터 베트남에 대한 최대 투자국이다. 지난 11월11일 양국 정상이 2020년까지 무역 1천억 불을 달성키로 한 목표가 실현되면 한-베트남 무역규모는 한-아세안 무역 약 2천억 불의 절반을 차지하게 된다. 이러한 경제적 관계를 뒷받침하듯 양국에는 각각 약 15만 명의 상대국 국민이 거주하고 있다. 25년 전 한국인들은 베트남인들이 한국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왜 그렇게 궁금했을까? ‘마음의 빚’ 때문이었을 것이다. 총부리를 겨누며 전쟁을 치른 지 20년이 지나지 않아 외교관계를 맺고 친구가 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지 당연히 궁금하였을 것이다. 베트남 사람들이 과거를 헤집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하여 과거를 잊은 것은 물론 아니다. 간간이 한국에서 베트남전과 관련한 언급이 있을 때마다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외교문제로 비화하는 것이 이를 말해준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마음의 빚’ 영상 메시지를 계기로 베트남전 참전역사와 관련한 우리 정부의 사죄 여부에 대한 논쟁이 재연됐다. 과거사 들추기를 원치 않는 베트남 정부의 공식 입장에 비추어, 우리가 사과하겠다고 먼저 나서는 것은 외교적으로 적절치 않을 뿐 아니라 양국관계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직접적 사과 대신 문 대통령은 베트남 주석과의 회담 진행과정에서 최대한의 예우를 갖추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으나 마음의 빚을 안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통령 본인과 외교 당국의 고민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외교현장에서 마음의 빚을 표현하는 것으로 우리가 베트남에 대해 할 일을 다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베트남전 참전이 당시 국가이익에 부합하는 정책결정이었다고 하더라도, 전쟁 수행과정에서 벌어진 것으로 알려진 민간인에 대한 잔학행위 등 인도적으로 비난받을 행위에 대하여는 세월이 지났다는 이유로 잊어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정부의 공식적인 사죄 여부와는 별개로 다양한 차원에서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나 후손, 피해 지역에 대한 조용한 화해 방안을 강구하는 일은 당연하고도 시급한 일이다. 베트남은 인구 9천500만의 젊고 활기찬 국가이지만 경제적으로 아직도 아세안 국가 중에서도 후발 개도국이다. 이미 수년간 우리의 최대 공적개발원조 대상국이지만, 개발원조 외에도 베트남이 사회발전을 위해 우리에게서 원하는 협력방안은 차고 넘친다. 이러한 협력 과정에서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마음의 빚을 특히 많이 지고 있는 특정 베트남인들과 지역을 배려할 수 있을 것이다. 요란한 사죄는 오히려 자존심 강한 베트남인들의 부정적 반응을 불러올 수 있다. 물적 지원, 인적ㆍ지적 교류와 함께 문화교류를 확대하는 것도 마음의 빚을 갚는 데 유용한 방안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시형 국제교류재단 이사장·前 주시카고 OECD 대사

[세계는 지금] 이탈리아의 중세문명

이용준 이탈리아를 방문하는 대부분 한국인들은 로마에서 이탈리아의 고대문명을 보고 피렌체와 베니스에서 근대 르네상스 문명을 본 후 북부 밀라노에 가서 이탈리아의 현대 문화를 음미한다. 고대 로마문명과 르네상스 문명 사이에는 이른바 중세라 불리는 약 천 년의 역사가 있으나, 이탈리아를 방문하는 대부분의 한국인은 중세 유적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역사가들은 보통 로마제국이 멸망한 476년부터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1492년 사이의 약 천 년을 중세 암흑시대라 부른다. 그러나 중세시대에 관해 실제로 알려진 것은 별로 없다. 우리가 중세에 대하여 알고 있는 지식은 대체로 학교에서 배운 ‘유럽의 암흑시대’라는 원론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 실제로 그 시기의 유럽 역사는 종교와 전쟁이 지배하던 역사였다. 따라서 문화, 예술, 인문 등 소프트웨어에 관한 한 그 시대는 암흑시대였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도시계획, 건축, 도로, 주택, 광장, 공공시설 등 인간의 실생활에 필요한 하드웨어에 관한 한 중세는 결코 암흑시대가 아니었고, 현대의 인간생활을 지탱하고 있는 토목과 건축 하드웨어의 대부분이 중세시대에 거의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중세시대의 도시와 건축물들은 이탈리아 반도의 어디서나 쉽게 만나볼 수 있지만, 특히 한국인 관광객들이 로마에서 고대문명을 보고 피렌체에서 르네상스 문명과 만나기 위해 건너뛰어 가는 방대한 토스카나 지역에 가면 산봉우리마다 찬란한 중세도시와 마을들이 옛 모습 거의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단지 보존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두 그곳에서 지금도 살고 있고, 가게와 식당도 열고 있다. 중세 때 마차가 다녔음 직한 마을 길과 중앙광장 등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넓어서, 지금도 사람들이 자동차를 몰고 통행하는 데 별 무리가 없다. 중세마을들이 모두 산꼭대기에 있는 이유는 그 천 년 동안 하도 외침도 많고 자기들끼리의 전쟁도 빈번해서 주민들이 목숨을 지키기 위해 다들 산꼭대기에 가파른 성벽을 쌓아 둘러치고 그 안에 도시와 마을을 건설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서 산꼭대기의 도시나 마을은 대부분 험난했던 중세시대의 것들이고 평야지대의 도시는 대부분 르네상스 시대의 산물이다. 물론 이 도시와 마을들은 모두 이탈리아 국법에 의해 건물의 변형이나 개축이 금지되어 있다. 그러한 중세도시들은 이탈리아 전역에 수없이 많고 특히 토스카나 지방 도처에 지천에 널려 있지만, 그중 가장 아름답고 마음이 가는 곳은 피렌체 남쪽 약 1시간 지점에 있는 산지미냐노(San Gimignano)라 불리는 작은 도시다. 사람마다 각자 취향이 다르겠지만, 필자로서는 로마보다도 피렌체나 베니스보다도 더욱 정이 가는 곳이 이곳이다. 기원전 3세기부터 사람이 살았던 이 마을은 훈족이 이탈리아를 침입했을 때 지미냐노 성인이 이 도시를 구했다고 하여 서기 450년부터 그의 이름을 따서 산지미냐노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고, 1199년 독립국가를 형성했었으나, 150년 만인 1348년 토스카나의 강대국이었던 피렌체에 흡수되었다. 다른 중세도시들과 마찬가지로 가파른 산꼭대기에 높은 성벽으로 둘러쳐진 이 도시는 독립국일 당시 귀족들이 가문의 명예를 걸고 서로 높은 탑을 짓는 경쟁을 벌인 까닭에, 중세 시대가 끝날 무렵에는 70m가 넘는 탑이 72개나 있었다고 한다. 있는 돈 다 털어서 탑 짓는 데 탕진한 덕분에 피렌체에게 먹힌 것이 아닌가 모르겠다. 이용준 前 주이탈리아 대사

[세계는 지금] 일본의 개헌과 민주주의

최근 사학스캔들로 정치적 위기에 처해있던 아베 총리는 지난 10월22일에서 압승하며 정치적 부활과 함께 내년 9월 총리직 3연임과 최장수 총리로 가는 길을 연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금번 총선에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으로 인해 안보불안에 빠져 있는 일본 국민에게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긴밀한 공조를 강조해 북한 핵위협에 가장 잘 대처할 수 있는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부각시켜 성공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총선에서 승리한 직후 개헌에 대한 의지를 천명했다. 보수우경 세력에게는 평화헌법의 개헌은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2차 세계대전 후 연합국에 의해 주도된 평화헌법은 일본에 씌워진 족쇄로 보며, 개헌은 이러한 족쇄를 풀고 일본이 정상적인 국가로 환원하는 것을 상징한다. 패전한 일본에 평화헌법은 천황제의 유지와 국가의 생존을 위한 보호막이 되어준 측면도 있었으나, 전후 수십년이 지나 일본이 경제대국으로 부흥한 후에는 그 효용성이 사라진 것이다. 일본의 우경세력은 제국주의 과거사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일본의 좌표를 모색하기보다는 명치유신과 제국주의 시대에 향수를 보이면서 동 연장선에서 일본의 미래를 찾고 있다. 이들의 역사관은 인종 우월적인 일본 국학의 신국사관(神國史觀)에 뿌리를 두고 과거사에 대한 사과는 진정성이 없는 대외적 장식용으로 할 뿐이다. 우경세력이 개헌에 성공할지 여부는 미지수다. 개헌에 대해 일본국민은 2차 세계대전과 원폭의 참화로 인해 또다시 전쟁의 폐해를 겪게 될 가능성을 우려해 유보적 의견이 더 많다고 한다. 아베 총리가 총선을 통해 개헌에 필요한 중의원 23 의석을 확보는 하였으나, 일반 국민의 뿌리 깊은 반전정서와 사학스캔들로 인한 아베 총리에 대한 낮은 신뢰도의 극복 여부가 관건으로 보인다. 우경세력의 개헌추진 시도에 대해 평화헌법 유지를 희망하는 일반 시민들의 저항 구도가 앞으로 일본 국내정국의 향방을 결정해 나가는 큰 흐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종전 후 수십년간 줄곧 자민당에 의한 일당정치가 가능하였던 세계 유례가 없는 특이한 민주주의 국가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자민당의 장기집권이 가능한 배경에는 일본의 시대적사회적 요인들이 있겠으나, 통치자(쇼군, 다이묘, 천황)와 피통치자(개인) 간의 관계가 가부장적인 관계의 틀 내에서 이루어져왔던 역사적 전통의 단면이 있다고 보인다. 일본의 이러한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를 다룬 ‘일본의 재구성’의 저자 패트릭 스미스는 일본국민이 국가와의 관계에서 사고와 의식의 자율성을 자유롭게 견지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답변을 주저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정부에 순응적인 일본 국민들이 개헌 문제를 계기로 정부 제시 방향과는 다른 길을 선택하는 자율적 시민의식을 발휘할 수 있는지가 주목되며 현대의 일본을 이해케 하는 의미 깊은 길잡이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는 일본의 개헌이 일본의 군사대국화의 길을 여는 것으로 우려가 많으나, 이에 머무르지 말고 안보, 국익 그리고 통일을 아우르는 대국관하에 대일 관계를 능동적으로 이끌어가는 역량의 발휘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신길수 前 주그리스대사

[세계는 지금] 해외 한국학 지원,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미국 남부 조지아주 시골의 한 소녀가 뉴욕의 컬럼비아대학에서 한국문학을 강의하는 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내 한국문학을 공부하고 싶다며 조언을 구해왔다. K-pop에 매료돼 한국을 접하게 된 그는 지금 컬럼비아대학에서 한국어와 한국문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요사이 정비석의 ‘자유부인’에 빠져 있다. 미시건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 중인 한 여학생은 K-pop을 즐기는 단계를 지나, 세계의 젊은이들이 왜 한국 대중음악에 심취하는지에 대해 연구하려고 대학 내 한국학센터를 찾아 일을 도우며 공부하고 있다. 대학원에서 한국의 대중문화를 이끄는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대해 연구하려고 한다. 최근 2018년도 북미지역 한국학사업 계획 심의를 위해 미국과 캐나다의 대학에서 역사, 문학, 인류학 등 분야에서 한국에 대한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는 교수들을 만났다. 앞의 예는 이분들이 들려준 비슷한 사례 중 한 가지와 필자가 직접 만난 학생 이야기다. 한국국제교류재단(KF, Korea Foundation)은 한국을 세계에 잘 알리는 것이 설립 목적이며, 창립 이래 25년간 중요하게 추진해온 사업이 바로 해외 대학의 한국학 지원이다. 나라마다 대학마다 가르치고 연구하는 체제가 다르기 때문에 한국학의 정의도 쉽지는 않으나, 한국어를 기본으로 문학역사철학을 비롯한 인문학과 정치경제사회학을 비롯한 사회과학 등 각 학문 분야에서 진행되는 한국에 대한 연구와 강좌를 통칭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과거 한국에 대한 연구는 처음부터 한국에 대해 학문적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시작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한국전 참전 군인이나 미국의 평화봉사단과 같이 전후 복구지원을 위해 한국에 왔던 분들 중 일부가 본국에 돌아가 한국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면서 시작한 경우가 많다. 이들 중 상당수는 한국학 1세대로서 연구와 후학 양성을 통해 2세대 한국학자를 배출하였으며, 최근 이들에게 배워 학위를 받고 3세대 한국학자로 대학에 자리 잡는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 최근 세계 젊은이들이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대부분 음악, 드라마, 영화 등 대중문화 매체를 통해서다. K-pop을 즐기면서 한국어를 공부하거나 한국을 직접 방문하여 경험하는 정도이지만, 일부는 깊은 수준의 한국 연구에 빠져든다.조선시대 한국문학을 연구하거나 한국의 유학 사상을 연구하고, 고대 한반도와 주변의 역사를 공부하기도 한다. 해외 한국학의 생태계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文史哲(문사철)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이 대중문화에 대한 일시적 관심만으로는 한국학을 발전시킬 수 없겠으나, 우리는 이미 대중문화를 클래식문화나 학문적 영역과 분리하여 생각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KF가 매년 재외공관의 협조를 받아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16년 한류동호회는 88개국에 1천652개로, 등록된 동호인 수는 약 6천만명에 이른다. 이는 2014년 79개국 1천652개 단체 2천180만명에 비해 회원 수만 보면 2년 만에 약 3배에 이르는 엄청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이 보다 깊이 있는 한국학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해외 대학에 한국어와 한국학 강좌를 확충하기 위한 체계적이고 대폭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KF는 지난 25년간 세계 84개 해외대학을 지원한 결과 한국학을 강의하는 교수직 123개가 유지되고 있으며, 또한 매년 80여 명의 객원교수를 56개국에 파견하고 있다. 한국에 대한 세계인들의 관심이 무한정 이어지리라고 가정한다면 어리석은 일이다. 물 들어왔을 때 노를 힘껏 저어야 한다. 이시형 국제교류재단 이사장·前 주OECD 대사

[세계는 지금] 이탈리아의 지역 갈등

이탈리아는 지방색이 뚜렷하고 지역 간 갈등도 유난히 큰 나라다. 우리나라 지역 간 갈등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이탈리아와는 결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아일랜드ㆍ스코틀랜드 주민들이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영국, 카탈루냐 주민들의 독립 요구로 진통을 겪는 스페인 등과는 달리 이탈리아는 거의 모든 주와 도시들이 오랜 독립국가의 전통을 갖고 있어 다른 어느 나라보다 독립 욕구도 더 강하고 타지역에 대한 편견과 배타성도 강하다. 이러한 이탈리아의 지역주의는 고대 로마시대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작은 도시국가에 불과했던 로마가 이탈리아 중부에서 세력을 확장해 나갈 당시, 라틴족의 거주지는 로마 등 이탈리아 중부지방에 불과했고, 나폴리 이남의 남부 이탈리아와 시칠리아에는 이미 수백년 전부터 그리스인들이 건설한 선진 도시국가들이 산재해 있었다. 현재 밀라노, 토리노, 베니스 등 공업지대가 위치한 북부는 게르만 야만족들의 거주지였다. 도시국가 로마가 이들을 제압하고 이탈리아 반도 전역을 장악한 것은 한니발 전쟁이 끝난 기원전 200년경이었다. 그 후 서기 476년 로마가 멸망한 뒤 이탈리아는 1천년 이상 수십개의 군소 도시국가들로 분열돼 수많은 전쟁을 치르며 살아왔고 1870년에야 통일을 이루었다. 이탈리아 각 지방의 역사를 보면 대부분 이웃도시와의 전쟁의 역사이며 이로 인해 중세시대와 르네상스 시대의 요새와 성들이 전국에 없는 곳이 없다. 이러한 이웃지방과의 오랜 전쟁과 적대관계는 이탈리아의 지역색과 지역갈등의 핵심 요인이 됐다. 그러나 한 가지 아이러니는 과거에는 남부 그리스계 국가들이 가장 부유한 문명국가였고, 북부에는 한겨울 짐승가죽을 뒤집어쓰고 살던 게르만 야만족들이 살았으나, 현재는 정반대라는 점이다. 북부는 경제적으로 가장 부유하고 문명화된 지역인 반면 나폴리 이남 남부지역은 가장 가난하고 치안이 흉흉한 지역으로 변모했다. 이탈리아 마피아의 탄생지와 주요 거점도 바로 이곳이다. 현재 북부는 남부에 비해 소득도 평균 3배 이상이고, 세금도 3배 이상 걷는다. 결국 북부에서 거둔 세금으로 남부를 먹여 살리는 상황이 됐다. 이로 인해 이탈리아 지역 간 관계는 역사적 갈등관계에 경제적 갈등까지 추가됐다.현재 북부는 대부분 분리 독립이나 자치권 강화를 요구하는 보수우파 정당들의 지배를 받고 있고 남부는 무상복지의 확대를 지지하는 좌파 사회주의 정당들이 집권하고 있다. 결국 최근 이탈리아 북부의 대표 산업지역인 롬바르디아주(밀라노 주변)와 베네토주(베니스 주변)에서 자치권 강화를 요구하는 주민투표가 실시됐다. 이 지역들은 이탈리아 전체 GDP의 무려 30%를 점유하는 지역이다. 불법 분리독립 주민투표로 내홍을 겪는 스페인과는 달리, 낙천적이고 현실주의적인 이탈리아인답게 주민투표로 합법적인 요구를 하기 위해 분리독립 대신 자치권 강화를 요구하는 투표를 실시한 것이다. 그 결과 베네토에서의 찬성률은 98%, 롬바르디아는 95%에 달했다. 이들이 요구하는 자치권 강화란, 그곳에서 거둔 세금을 게으르고 나태한 남부 주민들 먹여 살리는데 쓰지 말고 자신들을 위해 더 많이 쓰겠다는 것이다. 이는 중앙정부에 이를 거부할 경우 자칫 분리독립 운동으로 비화할 수 있기 때문에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이러한 유럽 국가들의 극심한 역사적정치적경제적 지역갈등을 보면, 한국의 지역갈등은 훨씬 양호한 상황이라고 생각된다. 국민과 정치인들의 노력을 통해 우리의 갈등은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이용준 前 주이탈리아 대사

[세계는 지금] 저출산 위기, 일본인이 사라진다?

언제 결혼할 거니? 아이는 언제 낳을 거니? 명절 가족이나 친족 모임에서 결혼 적령기 자녀나 젊은 부부들에게 금기시되는 물음이다. 지난번 추석을 앞두고 거의 모든 특집방송도 그런 질문은 하지 않는 게 좋다고 했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결혼을 하는 것도 않는 것도, 아이를 낳는 것도 낳지 않는 것도 개인의 자유’라는 생각이 당연시돼 가족조차도 관여하기 어렵게 됐다. 이런 인식의 변화로 아이들이 점점 태어나지 않는 사회, 그 미래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우리보다 앞서 이 문제에 직면해온 일본에서 저출산 사회의 미래 모습을 연대별로 체계적으로 제시한 책, 미래연표(가와이 산케이신문 논설위원 저)가 지난 6월 출간돼 베스트셀러가 됐다. 인구감소는 외환위기 같은 사태와는 달리 그 변화가 눈에 띄지 않게 진행되기에 사람들이 무감각해지기 쉽다. 그래서 미래연표는 독자들에게 자신이 몇 살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현장감 있게 제시하고 인구감소 문제의 심각성을 실감케 한다. 그 줄거리는 이렇다. 일본의 인구는 2015년 1억 2천709만명으로, 5년 전 국세조사 때보다 96만여 명이 감소했다. 일본 인구가 실제로 줄어든 것이다. 일본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의 추계에 의하면, 현 감소추세가 지속될 경우 일본 총인구는 60년 후 8천808만, 100년 후에는 5천60만, 200년 후에는 1천380만, 서기 3000년에는 2천명으로 감소할 것이라고 한다. 일본인이 소멸되어 버린다는 이야기다. 국가가 멸망하는 데는 한발의 총탄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인구감소로 일본사회가 변화되어가는 모습을 시계열에 따라 그려보면 충격적이다. 우선 2025년에는 전후 베이비붐 세대가 75세 이상이 되는데, 노인환자가 증가해 사회보장급여비가 팽창하고, 의료기관이나 요양시설이 부족하게 된다. 그에 앞서 2021년경에는 고령부모 간병을 위한 이직이 증대해, 기업이 심한 인력부족을 겪게 되고, 부모간병과 자녀 육아를 동시에 해야 하는 더블케어 부담으로 생산가능인구는 더 감소하게 된다. 2030년경에는 지방대학, 은행, 백화점, 패스트푸드점이 사라지기 시작해 인프라, 서비스 부족이 현실로 나타나고, 2040년경에는 베이비붐 세대의 사망자가 급증하여 화장장도 부족하게 되고, 지방자치단체의 절반이 소멸하게 된다. 2042년에는 고령자수가 최고에 달해, 무연금 저소득 노인이 급증하고 생활보호급여가 격증함으로써 국가재정이 파탄날 수 있다. 또 젊은 인력 부족으로 경찰관자위대원소방대원 확보가 어려워 국방, 치안, 방재기능이 저하되고, 결국에는 국가사회의 파탄으로 직결될 수 있다. 2050년에는 국토의 약 2할은 무거주 지역이 되고, 텅 빈 일본열도의 일각에 외국인이 대량으로 이주해 살면 실질적으로 영토를 뺏기게 된다. 이렇듯 암울한 전망으로 충격을 던진 미래연표는 결국 인구 규모가 작아도 풍요로운 나라는 가능하다며 당장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하고, 인구가 줄어든 지자체 합병, 중ㆍ노년층의 지방이주 장려, 국제분업 체제 강화, 3번째 아이에 대해 천만엔(1억원) 지원 등 10가지 대책을 제안하고 있다. 이렇듯 스스로 소멸위기까지 거론하고 나선 일본. 그 일본의 출산율(1.44명)보다 더 낮은 우리나라(1.17명). 시급하기로 따지면 우리가 더하지 않을까? 서형원 前 주크로아티아대사

[세계는 지금] 프랑스의 경제구조개혁

지난 5월 취임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만성적인 침체에 빠져 활력을 잃고 있는 자국경제 재건에 정권의 명운을 걸고 있다. 프랑스는 경제구조가 심각하게 취약해 구조개혁이 실현되지 않으면 고질적인 경제부진을 벗어날 수 없는 것으로 평가됐지만 오랫동안 개혁조치는 유예됐었다. 앞의 정부들이 구조개혁의 추진 시 노동조합의 반발 등 예상되는 정치적 위험 앞에서 결단을 내리지 못한 채 현실에 안주해 왔던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국가적인 과제인 경제구조개혁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도전할 것임을 천명하면서 개혁의 핵심 방향으로 공공부문의 정리, 복지정책의 정비, 그리고 노동법 간소화를 제시하고 있다. 프랑스 노동법은 1789년 프랑스혁명 이래 수백년간에 걸쳐 축적된 법원 판결과 법령들로 구성된 총 3천324쪽의 방대한 법전으로서 노동자는 자본가들로부터 보호를 필요로 한다는 사회주의적 이념에 기초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노동법을 개혁한다는 것은 프랑스 사회 내에서 중요한 원리의 하나로 존중됐던 노동자의 권익중시라는 합의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므로 가히 혁명적인 도전으로 보인다. 마크롱 대통령이 추구하는 노동법의 간소화는 근로자의 신규고용 및 해고 용이와 노조의 노사간 협상 개입권한 축소 등을 통해 노동시장의 자율성과 유연성을 신장시키고자 하는 것에 있다. 궁극적 목표는 신규고용을 촉진시켜 실업률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마크롱 대통령은 집권 5년간 실업률을 현 9.5%에서 7%로 낮추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노동법 개혁에 반대하는 노조 측은 지난 9월 이래 수차례의 전국적인 대규모 가두시위를 전개했고 향후 수개월간 결사적인 반대를 예고하고 있어 노동법 개혁은 험난한 여정에 놓여 있는 바, 성공적 추진 여부는 마크롱 대통령이 염원하는 프랑스 경제의 개조에 관한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주목할 점은 프랑스 국민의 50% 이상이 마크롱 대통령의 노동법 개혁에 지지를 보내면서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사실이다. 이는 프랑스 사회가 수백년간 터부시해 온 노동자의 권익중시에서 궤도를 수정하여 노동시장의 유연화라는 새로운 가치를 시도하는 변화의 취지에 공감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가 선진국형 복지국가로 향하는 것은 시대적 소명이며 국민적 공감대가 있다고 본다. 복지국가로 가는 길에 고려되어야 할 2개의 명제는 우리 경제의 세계 경쟁력과 재원 문제다. 복지정책의 확충에 대한 요구가 커져가고 있는 가운데 국가 경제의 경쟁력 약화와 국가부채의 증가라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우리 사회 내에 또한 적지 않은 바, 복지정책을 확충해 나가면서도 우리 경제의 국가경쟁력이 손상되지 않도록 사회적 합의를 찾아 나가는 것이 요망된다고 본다. 복지국가로 향하는 최적의 길을 가기 위한 사회적 합의의 추구노력에 우리보다 앞서 길을 밟아나간 선진국들의 경험을 반추하면서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러한 의미에서 마크롱 프랑스정부의 경제구조 개혁정책의 추이, 이를 둘러싼 프랑스사회 내 갈등과 해소과정은 우리에게 유용한 시사점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신길수 前 주그리스대사

[세계는 지금] 우리 공공외교의 자산

한반도 안보상황이 엄중한 시기에 외교의 꽃이라 할 유엔총회 연설, 정상 간 공식회담과 같은 전통적 외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충분할 수 없다. 동시에 오늘날의 외교에서는 외국 국민을 직접 상대하여 그들의 마음을 사는 활동, 즉 공공외교(public diplomacy)의 중요성과 비중이 나날이 커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취임 후 두 번째로 지난 9월18일부터 4박5일간 미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의 일정을 들여다보면 유엔총회 연설, 유엔사무총장 면담, 한미 정상회담, 한미일 정상회담과 같은 전통적 외교·활동과 함께 다양한 공공외교 활동으로 짜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공공외교 활동으로는 미국의 대표적 연구소인 어틀랜틱 카운슬이 매년 세계지도자들에게 수여하는 세계시민상 수상, 언론인과 체육인을 대상으로 한 평창올림픽 홍보, 경제인과 금융인 대상 투자설명회 등이 포함되어 있다. 세계시민상 수상식에서 라가르드 IMF 총재는 대학생 시절 민주화 시위로 구속된 적도 있으며 그 후에는 인권변호사로 살아온 문 대통령이야말로 글로벌 시민의 전형이라고 소개하였다. 대통령은 수상 소감에서 4·19 이래 한국의 험난하였던 민주화 역정을 소개하고, 촛불시위로 상징되는 국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염원을 안고 태어난 정부의 대통령으로서 국민을 대신하여 수상하는 것임을 천명하였다. 평창올림픽 메달 공개를 곁들여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개최된 홍보행사에서 대통령은 올림픽 준비상황을 설명하고, IOC와 함께 북한의 참가를 유도하여 올림픽을 통한 평화의 메시지를 완성하기 위한 노력을 끝까지 전개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하였다. 공공외교 전문기관인 한국국제교류재단(KF, Korea Foundation)의 활동을 계획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필자는 우리나라가 공공외교에 활용하여야 할 남다른 자산을 가지고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첫 번째는 성공적인 경제정책과 이를 뒷받침한 국민적 역량으로 단기간에 달성한 경제성장의 역사다.우리의 개발경험은 이미 수많은 개도국에 다양한 형태로 전파되어 왔는데, 최근에는 KF가 지원하는 외국대학의 한국학 강좌에서 한국의 경제발전사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지금까지 해외 한국학이 문학, 역사, 철학, 문화 등 인문학에 치중해온 추세임에 비추어 의미 있는 변화다. 두 번째는 부패한 권력에 끊임없이 저항하며 민주화를 성취한 국민적 역량이다. 현대 세계사에서 한국과 같은 경제성장을 달성한 나라가 없지 않으나, 경제성장과 동시에 정치적사회적 민주화를 달성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 점은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남달리 존경받을 수 있는 중요한 요소로서 앞으로 좀 더 부각해야 할 소중한 공공외교 자산이다. 세 번째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문화민족의 자산이다. 갈수록 학습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한국어는 의사소통 도구뿐 아니라 문화유산으로서 한글의 가치를 전파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공공외교 자산으로서 문화유산은 대중문화의 위력으로도 나타나고 있어서, KF가 매년 조사하는 세계 한류동호회 현황은 한류에 대한 범세계적 수요의 지속적 증가세를 보여준다. 이번 뉴욕방문 활동에서 문 대통령은 최고위 외교관으로서 결과적으로 이 세 가지 자산을 활용하여 국가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공공외교 활동을 수행한 셈이다. 월가 큰손 대상 투자설명회, 본인과 전체 국민의 민주화 업적을 평가받은 세계시민상 수상, 문화민족으로서 올림픽을 통한 평화라는 메시지 전파가 바로 그것이다. 이시형 국제교류재단 이사장·前 주OECD 대사

[세계는 지금]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이용준 유럽에서 근무하거나 출장을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같은 도시를 몇십년 만에 다시 찾아가도 도로나 건물이나 사람들 모습이나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는 점이다. 해외근무 이삼년만 하고 돌아와도 모든 것이 하도 많이 변해 적응에 애를 먹는 서울의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지난 수십년간 파리 시내에 새로 지어진 건물이 루브르박물관 안마당의 유리 피라미드와 퐁피두센터 외에 과연 몇 채나 될까? 파리 대부분은 19세기 중반 나폴레옹 3세 시대에 거의 완성되었고, 파리 시내의 유명한 하수구와 대로변 물청소 시스템까지 그 시대에 완성되었다 하니, 그 후 150년간 파리는 에펠탑 신축 외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는 얘기다. 유럽의 최고 변방지역인 지중해의 외딴 섬나라 몰타도 예외는 아니다. 16세기 몰타기사단이 건설한 수도 발레타는 여의도를 연상시키는 완벽한 바둑판식 도로들 양편으로 3~4층 석조건물들이 빈틈없이 차 있고, 중무장 기사들이 말 타고 달리던 골목길에는 차량 행렬이 분주하다. 건물 지하에는 가히 1천명은 수용할 만한 거대한 콘서트홀도 있고, 이슬람의 침공을 막으려 건설했던 수십개의 거대한 방어 요새들 덕분에 2차대전 기간 중 영국군은 나치독일의 몰타 침공을 버텨낼 수 있었다. 이런 고도의 문명을 건설했던 중세시대를 왜 역사가들은 ‘암흑기’라 부르는 것일까? 눈길을 이탈리아로 옮기면 시간의 호흡이 훨씬 길어진다. 길게는 2천년, 짧게는 300~400년된 로마 시내 건물들이 아직도 정부청사, 대사관, 은행, 개인주택 등으로 사용되고 있고, 토스카나 지역에는 전체가 몽땅 중세시대 건물로 이루어진 도시와 마을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로마에는 2천년의 풍상을 견뎌낸 거대한 판테온 신전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성당으로 사용 중이고, 기원전 3세기에 그리스인들이 시칠리아의 타오르미나 절벽 위에 건설한 반원형 극장에서는 지금도 연극과 오페라가 공연된다. 그런 곳에서 이삼년 살다 한국에 돌아오면 너무도 빠른 변화에 정신이 혼미할 정도다. 수십년 눈에 익은 아파트와 고가도로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몇년전까지 다니던 상점과 식당들이 철거된 자리에 고층빌딩이 들어서고, 서울 시내 도처에 새로 생긴 버스 중앙차로, 자전거도로, 자전거 무인대여소 등을 보노라면 여기가 내가 살던 나라가 맞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조세제도, 은행 대출제도, 한글 맞춤법에 이르기까지 모두 바뀌어, 뭘 하나 하더라도 외국인 이민자처럼 여기저기 물어봐야 한다. 그런 속도감 있는 변화에 적응하기가 다소 불편하기는 하나, 그것은 그간의 많은 발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사회 각 분야의 혁명적 변화와 진보를 계속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대견스러운 모습이자 잠재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즐비하게 늘어선 서울 시내의 새 고층빌딩들을 바라보면서 한편으로는 과연 100년 후에 그 중 몇 채가 살아남아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100년 후에는 서울 시내에 고궁들과 남대문, 동대문, 그리고 석조로 지어진 한국은행 본점과 서울역 구청사 정도 외에는 현재 모습이 모두 사라질 것 같아 마음이 우울해지기도 한다. 건물들을 그리도 빨리 부수고 새로 짓는 이유는 기존 건물이 날림으로 지어져 수백년 보존될 가치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유럽처럼 건물 하나 짓는데 수십년 수백년을 투자한다면 절대 그리하지는 못할 것이다. 나라의 제도가 그리 빨리 바뀌는 이유도 마찬가지로 기존의 제도가 불완전하고 부족함이 많다고 우리 스스로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젠 우리도 발전을 할 만큼 했으니, 수백년간 보존될 기념비적 건축물들과 시대적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수백년간 길이 남을 훌륭한 제도들을 만드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이용준 前 주이탈리아 대사

[세계는 지금] 황혼육아, 조부모는 피곤하다

허물없이 지내는 친구들 모임에 가면 손자 손녀들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오곤 한다. 스마트폰 속 사진을 보이며 손주와 함께 노는 행복을 과시하는 손주 바보가 있는가 하면, 어떤 부인은 손주 돌보는 일로 우울증에 걸릴 것 같다고 호소하기도 한다. 미국, 유럽, 일본 등 다른 나라에서는 조부모의 손주 돌보기 현상에 관한 많은 조사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우리와 비슷한 일본의 경우는 어떤가. 지난 2015년 일본 제일생명경제연구소가 55세~75세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결혼한 아들이나 딸의 부탁으로 손주를 돌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66.4%이고, 아들이나 딸과 동거 또는 30분 이내 거리에 사는 경우는 그 비율이 80% 이상 된다. 2차 대전 후에도 한동안은 일본에서 아들 부부는 밖에서 일하고 조부모가 육아나 가사를 돕는 라이프스타일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고도성장기에 접어들면서 미국식으로 부모가 직접 아이를 키우는 방식이 권장돼 사회적으로 정착됐다. 지금 손주들을 돌봐야 하는 조부모들은 미국식 육아를 실행했던 첫 세대다.이 세대는 일과 육아로 분투해온 끝에 자녀들을 독립시키고 은퇴해서 겨우 자유와 여유를 얻었는가 싶었는데, 이젠 손주 키우기에 그 여유를 빼앗기는 처지가 되었다. 건강하게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수명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손주 육아로 행동을 제한받는다는 욕구불만으로, 마음이 우울해지고 부정적으로 되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이래서 ‘손주 피로(孫疲れ)’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맞벌이 젊은 부부들 입장에서는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곳으로 역시 부모들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저출산 대책에 고민하는 일본의 공공부문도 조부모를 육아 관련 인적자산으로 중시하는 듯하다. 그래서 일본 정부나 각 지자체는 조부모와 동거하는 주택으로 개축하거나 신축하는 경우 자금지원 등의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조부모 세대와의 동거가 젊은 세대의 육아 부담을 경감시켜주는 저출산 대책의 하나로 권장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정책에 대해 부모의 마음에 편승해서 조부모에게 육아를 일임하려는 정부의 인식을 보이는 것이라며 비판하는 시각도 있다. 진지하게 저출산 대책을 추진하려면 영유아보육제도를 정비하여 아이 키우기를 더욱 사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우리나라에서도 2011년 서울 서초구에서 손주를 돌본 할머니에게 월 36만원을 지급하는 ‘손주 돌보미 사업’이 도입되고, 그 후 이를 여성가족부가 전국적으로 확대하려고 시도했으나, ‘조부모가 손주를 돌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인데 정부가 아예 영유아 보육책임을 조부모에게 강요하려 한다’는 비판이 들끓어 백지화된 바가 있다. 조부모의 손주 돌보기는 사적으로는 물론 공공 차원에서도 중요한 혜택을 제공한다. 그러나 손주 돌보기는 대체로 조부모들의 건강과 복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구미의 많은 연구결과가 지적한다. 앞서 언급한 일본의 연구소 조사에서도 조부모들의 70% 이상이 손주 돌보기는 자식들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지만 힘에 벅찬 일이라고 한다. 그래서 조부모의 손주 돌보기는 육아 대책 차원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조부모의 건강과 복지라는 관점에서도 손주 돌보기 피로나 부담을 줄이는 대책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일본 전문가는 제언한다. 서형원 前 주크로아티아대사

[세계는 지금] 그리스 경제위기가 주는 의미

2009년부터 발생한 경제위기로 인해 오랫동안 국민이 고통을 겪어왔던 그리스가 이제 경제위기를 탈출하는 전환점에 들어섰다는 평가를 국제 사회로부터 받고 있다. 내년에는 정부재정이 목표대로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그리스 정부가 지난 7월 발행한 30억 유로 규모의 국채도 모두 판매돼 국제 채권시장에 성공적으로 복귀했다. 그리스 국민은 9년여간 고통스럽게 허리띠를 졸라맨 후에 끝이 보이지 않았던 터널의 빛이 보이는 지점에 마침내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 국민은 정치인들을 혐오한다. 국가의 앞날을 생각하기보다는 집권에만 눈이 어두웠던 정치인들이 국가를 잘못 경영하여 지금과 같은 국난을 초래한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기성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은 2015년 1월 총선에서 정치 신인인 급진좌파 정당의 치프라스 수상이 선출된 배경이다. 그리스 경제위기 발생의 주원인은 정치인들이 대중영합적 정책을 구사하여 복지지출을 확대했고 동 지출에 필요한 재정 충당을 위해 도입한 외채가 지속적으로 증가한 것에 기인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인 바, 이러한 원인과 결과를 심층 분석해 우리 경제운영의 반면교사로 삼는 것이 필요한 것으로 보이며 여기에 그리스 경제위기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스 정부는 외환 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외국기업의 투자 유치를 적극 추진 중이며 중국이 최근 활발한 투자를 하고 있는데 그 동향이 주목할 만하다. 중국 최대국유 해운사 COSCO는 작년에 3.6억 유로를 투자하여 아테네에 인접한 피레우스 항구의 운영권(67% 지분)을 인수하여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에 필요한 유럽의 관문을 확보했다. 중국은 피레우스 항구에서 출발하여 중유럽을 거쳐 독일에 도달하는 철도 노선을 건설한다는 원대한 구상 하에 그리스의 철도, 항만 등에 투자를 추진 중이다. 중국은 그리스를 유럽의 물류 전진기지로 육성코자 하는 것이다. 그리스와 중국 간의 경제 밀착은 흥미로운 외교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최근 그리스는 EU의 대중국 인권결의안 채택 투표, 남중국해 문제, 중국의 대 EU 투자에 대한 규제수립 논의 등에서 중국에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였으며, 이로 인해 EU가 대외적으로 하나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여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필자가 그리스대사로 근무 시 2013년 1월 그리스 Papulias 대통령을 대사관저의 한식 만찬에 초청하여 양국 간 협력관계의 증진을 논의한 적이 있다. 당시 Papulias 대통령은 중국의 피레우스 항구 투자와 철도건설을 언급하면서 “중국인들은 30년 후를 내다보고 투자하는 기질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리스는 이러한 투자를 중국, 일본보다 더 친밀감을 느끼는 한국이 해주기를 요망한다”고 하였다. 이제 세계 10대 경제권인 우리 경제의 수준에 비추어 해외 투자를 많이 유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해외에 철도, 항만, 공항, 가스, 전력 등의 민영화되는 국영사업이나 고속도로나 다리 등의 민자사업을 발굴하여 투자의 진출을 도모하는 것이 요망되는 시점에 도달한 것으로 생각되어 그리스 대통령의 간곡한 언급이 새롭게 떠오른다. 신길수 前 주그리스대사

[세계는 지금] 쿠바 미사일 위기와 투키디데스의 교훈

뉴욕 타임지는 4월16일 David Sanger와 William Broad가 공동으로 작성한 ‘북한 핵 문제는 천천히 진행되는 쿠바 미사일 위기(A Cuban Missile Crisis in Slow motion in North Korea)’라는 기고문을 게재했다. 또한 최근 8월 미국과 북한 간의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과 관련해서 레온 파네타 전 CIA 국장은 CNN 방송에서 “현재가 쿠바 미사일 위기 이래 가장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과연 1962년 쿠바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나? 교훈은 무엇인지? 1962년 10월로 역사의 시계를 돌려보자. 1962년 10월16일 아침 맥조지 번디 국가안보보좌관은 케네디 대통령을 깨운다. 2일 전 미국 첩보 항공기인 U-2기가 촬영한 쿠바 산크리스발 지역 등의 사진을 통해 소련이 쿠바에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중거리와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등 핵전력을 반입하고,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미국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소련과 쿠바에 경고, 미사일 기지 폭격, 쿠바 침공 등을 검토했으나 최종적으로 10월22일 케네디 대통령은 쿠바 해역에 대한 해상 검역(양국이 전쟁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기 위해 해상 봉쇄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으나 실제로는 해상 봉쇄에 해당)과 쿠바 내에 이미 반입된 공격용 무기와 미사일 발사대 등의 제거를 요구한다. 양국 간에 첨예한 대립으로 전 세계를 핵전쟁의 벼랑까지 몰아갔던 위기는 10월28일 소련의 흐루시초프 공산당 서기장이 미국의 입장을 수용하면서 평화적으로 종결된다. 그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은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을 했던 영화 ‘Thirteen Days’를 통해서 볼 수 있다. 우리가 쿠바 미사일 위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첫 번째 교훈은 상대국의 진정한 의도를 빠른 시간 내에 파악하기 위한 수단이 부재했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과 소련은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양국 간에 직통 전화(Hot-Line)를 설치한다. 다른 교훈은 위기 시에는 강경파와 온건파가 대립하는데 이들의 의견을 균형있게 조율하는 리더 역할의 중요성이다. 그 당시 쿠바 미사일 기지에 대한 정밀 타격(surgical strike) 의견이 마지막 순간까지 심도있게 검토됐는데 리더의 균형적인 역할이 당시 상황의 평화적 해결에 기여했다. 또 다른 교훈은 쿠바 미사일 위기 진행과정 중 미국의 실무부서는 사전에 계획되어 있던 U-2기의 소련 상공 정찰, 미국 탄도미사일의 실험 발사 등과 같은 조치를 통상적으로 진행했는데 이들은 미국 지도부가 당시 생각하지 못했던 우발적인 사고로 소련의 오해가 있었다면 핵전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었다. 위기 시에는 통상적인 세부 사항에 대한 통제도 중요한 이유다. 마지막으로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미국과 소련의 지도자들이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 Trap)에 빠지지 않고 각자 이성적인 판단을 했다. 쿠바 내 미사일 배치로 인해 미국은 자신의 턱밑에 위협을 지니고 살아야 한다는 두려움이 미사일 기지에 대한 공습과 전면 공격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었는데 양국의 지도자들이 이성적으로 이를 자제한 것이 핵전쟁으로 확대를 막는 결과로 이어졌다. 지금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김상일 道 국제관계대사·前 주시카고 총영사

[세계는 지금] 베이다이허의 여름

입추도 지나서인지 폭염이 사라진 것 같다. 중국의 수도 베이징의 폭염도 한풀 꺾였을 것이다. 중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충칭(重慶)ㆍ난징(南京)ㆍ우한(武漢)ㆍ난창(南昌)을 4대 화로(火爐, 폭염도시)로 불리고 있으나 5대 화로라고 하면 베이징이 포함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베이징에서 6년간 살아본 경험으로 후덥지근한 여름의 더위를 잊을 수 없다. 베이징의 숨막히는 더위를 피해 중국의 황제들도 청더(承德)에서 한여름을 보냈다고 한다. 청더는 베이징에서 동북으로 250㎞ 떨어진 산림이 울창한 고원지방으로 옛 지명은 열하(熱河)이다. 사냥을 좋아하는 청조의 강희제(康熙帝)는 이곳에 하궁(夏宮, 여름별궁)을 짓고 ‘피서산장(避暑山莊)’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조선조 박지원은 그의 ‘열하일기’에서 여름을 보내고 있는 황제와 귀족들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19세기 말 수도 베이징이 서양에 개방되면서 서양의 외교관 선교사들이 베이징으로 몰려왔다. 보하이(渤海)만으로 배를 타고 들어온 서양인들은 베이징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아름다운 해변이 있음을 알게 됐다. 허베이성(河北省) 보하이만의 해안선에 ‘다이허(戴河)’라는 작은 강이 있다. 이 강을 경계로 북쪽을 베이다이허(北戴河) 남쪽을 남다이허(南戴河)로 부른다. 난다이허는 평야지역이지만 베이다이허는 렌펑산(聯峰山) 등 구릉과 송림이 어우러져 바다를 좋아하는 서양인의 별장지로 최적이었다. 베이징에서 동으로 280㎞ 떨어진 곳이다. 1898년 개발이 시작된 이래 1930년대 이미 700동 이상의 서양 건축양식의 크고 작은 별장이 밀집해 있었다고 한다. 1949년 신 중국 건국과 함께 이곳 별장들은 중국 정부의 소유가 되었다. 별장의 위치와 규모에 따라 정부 기관의 요양소로 개조되고 일부는 전용 백사장과 함께 당과 정부의 요인들에게 배정하였다. 수영을 좋아하는 마오쩌둥(毛澤東)은 여름이 되면 베이징의 더위를 피해 중국의 지도부와 함께 베이다이허의 별장을 찾았다. 여름의 베이다이허는 베이징의 중난하이(中南海, 중국 지도부의 베이징 거주지역)를 그대로 옮겨 놓은 현대판 하궁이라고 불렀다. 정부의 고관들은 피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중요한 안건에 대한 회의도 하고 업무를 처리하여 ‘베이다이허 회의’ 또는 ‘서기판공(署期辦公)’이라는 말이 나왔다. 2000년대부터는 캐주얼한 분위기에서 정치사상 이론 등에 대해서 전문가와 좌담회도 병행하여 ‘무허지회(務虛之會)’라는 이름도 얻었다. 8월 초부터 공산당 상무위원들의 동정이 관영매체에서 사라지고 베이다이허 주변의 경비가 삼엄해지고 있다는 보도를 보면 ‘베이다이허 회의’가 금년에도 개최된 것 같다. 금년의 ‘베이다이허 회의’에서는 올가을 19차 당 대회를 앞두고 중국의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원 25명의 인사 문제가 논의됐을 것으로 보인다. 그중에서 전임 지도부가 지명한 쑨정차이(孫政才) 충칭시 서기가 비리 혐의로 낙마함에 따른 후계구도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심복으로 ‘반부패 드라이브’를 주도한 왕치산(王岐山)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의 거취가 주목을 받고 있다. 은퇴 연령인 69세의 왕 서기가 이른바 7상8하(68세 이상은 퇴진) 관례를 깨뜨리고 차기 지도부에 유임된다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권력이 예상한 대로 강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베이다이허 회의를 통해 앞으로 5년을 이끌고 갈 중국 공산당 고위 지도부가 잠정 결정됐을 것으로 생각한다. 유주열 前 베이징 총영사·한중투자교역협회 자문대사

[세계는 지금] 코리아 패싱과 국익

지난 2015년 가을 그리스 근무를 마치고 본국 귀임을 앞둔 필자 부부가 초대된 한 만찬 석상에서 북한의 김정은 정권과 남북한의 통일전망이 화제에 오르게 됐다. 놀랍게도 필자 앞좌석의 아시아지역 영어권 우방국 대사가 자신은 한국의 통일은 불가능할 것으로 본다면서 첫째 중국은 미군이 주둔한 통일한국을 수용할 수 없으며 둘째 통일된 한국은 과도한 민족주의적 경향이 우려된다는 취지로 부정적인 견해를 표명했다. 당시 필자는 좌중에게 한국이 통일되면 낙후된 북한경제의 개발을 위한 새로운 투자기회가 창출돼 동북아지역 경제의 활성화 효과가 기대됨을 예로 들면서 한국의 통일을 호의적으로 보도록 설명하였던 기억이 있다. 필자는 이 경험을 계기로 지리적으로 멀리 있는 우방국도 한국의 통일을 부정적으로 볼 수 있음을 깨닫게 되면서, 통일에 이해관계가 큰 주변 국가들의 지지를 받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지가 새삼 크게 다가왔었다. 최근 미국에서 전직 고위관리가 북한 ICBM과 핵무기 위협이 현실적이 됨에 따라 미 정부에게 한국의 통일정책을 포기하고 북한 김정은 정권의 교체와 남북분단의 영구화를 중국과 빅딜하는 방안을 협의할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한국은 배제된 채 미ㆍ중에 의해 분단의 영구화가 결정되는 시나리오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과 러시아 간 한반도의 분단이 합의되는 역사의 판박이이며, 6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한반도의 운명이 여전히 강대국의 이해에 따라 결정될 수 있음을 우리에게 각인케 하는 가설이다. 분단의 영구화 빅딜이 미국 일각에서 제기되는 것은 미국도 국익 우선을 추구하며 국익을 위해서는 동맹국의 가장 중요한 국익과도 다른 방향의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는 국제사회의 현실을 실감하게 한다. 이러한 한국배제의 가설이 현실화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우리는 모든 국가들의 행동동기인 국익에 초점을 맞추어 해답을 모색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즉 미ㆍ중이 한반도에 관한 논의과정에 한국을 배제하지 않고 참여시키는 것이 자국 국익에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리도록 우리가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ㆍ중은 국익을 위해서는 우리를 배제하고 그들만의 비밀논의를 진행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며 우리의 참여가 법적(양자협정 또는 국제법) 또는 윤리적(동맹국의 도리) 측면에서 당위적으로 요구될 수 있는 그러한 사안이 아니다. 이러한 현실은 1904년 미ㆍ일간 일본의 한반도 지배에 관한 가쓰라ㆍ테프트 비밀합의가 이루어졌던 100여 년 전의 그 당시와 다를 바가 없다. 코리아 패싱에 대해 우리가 분노하거나 좌절하기보다는 강대국들이 지역과 세계질서를 주도해나가는 국제사회의 구조적 한 단면임을 냉정히 인정하고 접근해야 한다. 강대국들이 그들의 논의에 우리를 초대하느냐 여부는 우리의 참여가 그들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판단이 관건일 것이다. 강대국들이 당사자인 우리를 배제하고 한반도 문제를 협의하는 것이 자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하도록 우리가 강대국과의 정치, 경제적 등 이해관계를 형성해가는 것만이 ‘코리아 패싱’을 방지하는 우리의 덕목일 것으로 생각된다. 신길수 前 주그리스대사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