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에서 6년간 살아본 경험으로 후덥지근한 여름의 더위를 잊을 수 없다. 베이징의 숨막히는 더위를 피해 중국의 황제들도 청더(承德)에서 한여름을 보냈다고 한다. 청더는 베이징에서 동북으로 250㎞ 떨어진 산림이 울창한 고원지방으로 옛 지명은 열하(熱河)이다.
사냥을 좋아하는 청조의 강희제(康熙帝)는 이곳에 하궁(夏宮, 여름별궁)을 짓고 ‘피서산장(避暑山莊)’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조선조 박지원은 그의 ‘열하일기’에서 여름을 보내고 있는 황제와 귀족들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19세기 말 수도 베이징이 서양에 개방되면서 서양의 외교관 선교사들이 베이징으로 몰려왔다. 보하이(渤海)만으로 배를 타고 들어온 서양인들은 베이징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아름다운 해변이 있음을 알게 됐다.
허베이성(河北省) 보하이만의 해안선에 ‘다이허(戴河)’라는 작은 강이 있다. 이 강을 경계로 북쪽을 베이다이허(北戴河) 남쪽을 남다이허(南戴河)로 부른다. 난다이허는 평야지역이지만 베이다이허는 렌펑산(聯峰山) 등 구릉과 송림이 어우러져 바다를 좋아하는 서양인의 별장지로 최적이었다. 베이징에서 동으로 280㎞ 떨어진 곳이다.
1898년 개발이 시작된 이래 1930년대 이미 700동 이상의 서양 건축양식의 크고 작은 별장이 밀집해 있었다고 한다. 1949년 신 중국 건국과 함께 이곳 별장들은 중국 정부의 소유가 되었다. 별장의 위치와 규모에 따라 정부 기관의 요양소로 개조되고 일부는 전용 백사장과 함께 당과 정부의 요인들에게 배정하였다.
수영을 좋아하는 마오쩌둥(毛澤東)은 여름이 되면 베이징의 더위를 피해 중국의 지도부와 함께 베이다이허의 별장을 찾았다. 여름의 베이다이허는 베이징의 중난하이(中南海, 중국 지도부의 베이징 거주지역)를 그대로 옮겨 놓은 현대판 하궁이라고 불렀다.
정부의 고관들은 피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중요한 안건에 대한 회의도 하고 업무를 처리하여 ‘베이다이허 회의’ 또는 ‘서기판공(署期辦公)’이라는 말이 나왔다. 2000년대부터는 캐주얼한 분위기에서 정치사상 이론 등에 대해서 전문가와 좌담회도 병행하여 ‘무허지회(務虛之會)’라는 이름도 얻었다.
8월 초부터 공산당 상무위원들의 동정이 관영매체에서 사라지고 베이다이허 주변의 경비가 삼엄해지고 있다는 보도를 보면 ‘베이다이허 회의’가 금년에도 개최된 것 같다. 금년의 ‘베이다이허 회의’에서는 올가을 19차 당 대회를 앞두고 중국의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원 25명의 인사 문제가 논의됐을 것으로 보인다.
그중에서 전임 지도부가 지명한 쑨정차이(孫政才) 충칭시 서기가 비리 혐의로 낙마함에 따른 후계구도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심복으로 ‘반부패 드라이브’를 주도한 왕치산(王岐山)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의 거취가 주목을 받고 있다.
은퇴 연령인 69세의 왕 서기가 이른바 7상8하(68세 이상은 퇴진) 관례를 깨뜨리고 차기 지도부에 유임된다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권력이 예상한 대로 강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베이다이허 회의를 통해 앞으로 5년을 이끌고 갈 중국 공산당 고위 지도부가 잠정 결정됐을 것으로 생각한다.
유주열 前 베이징 총영사·한중투자교역협회 자문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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