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한국의 일본화 가능성과 중앙은행 역할

코로나19 위기가 확산되고 있으며, 미국, 일본, 유럽 등 대부분의 국가들이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코로나19 전염병의 확산은 소비 감소 등을 통해 경제 성장률 하락을 초래하고 있는다. 그러한 가운데, 코로나19 확산 직후 폭락한 주가는 다시 위기 이전의 수준으로 회복됐다. 이러한 주가의 움직임은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등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관찰된다. 또한, 한국에서는 코로나19 위기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양적완화와 같은 적극적인 통화정책이 만든 과잉유동성은 자산가격 상승을 초래하는 요인이 된다. 중앙은행의 역할은 국가 별로 상이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역할은 자산가격 안정보다는 물가안정의 달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불경기 시에 종종 정부는 적극적인 통화정책을 기대하고, 중앙은행을 압박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FRB(미국의 중앙은행)이 완화적 통화정책을 취할 것을 요구했고, 일본의 아베 수상 역시 일본은행이 완화적 통화정책을 취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즉, 정부는 완화적 통화정책을 기대하는 경향이 높지만, 중앙은행은 통상적으로 완화적 통화정책을 지속하는 것을 싫어한다. 정부는 경기부양을 중시하여, 완화적 통화정책을 선호하지만, 중앙은행은 물가안정(인플레이션 억제)을 중시하여, 조기에 완화적 통화정책을 끝내기를 바란다. 경제위기 시에 중앙은행의 역할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코로나19에 대응한 중앙은행의 대규모 양적완화와 같은 적극적인 통화정책은 물가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가. 이와 관련해서는 통화정책에 의해서 공급된 대규모 유동성이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있지만, 한편, 코로나19의 확산에 의한 소비 감소 등의 영향으로 디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하락)이 발생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은 1990년대 중후반경부터 디플레이션을 수반하는 장기불황에 빠졌고, 이러한 상황은 2012년경까지 유지됐다. 2012년 12월부터 시작된 아베노믹스(아베 내각의 경제활성화 정책)의 영향으로 일본 경제는 디플레이션을 어느 정도 벗어났지만, 2020년 초반부터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재차 디플레이션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물론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디플레이션보다는 인플레이션 가능성을 높게 보는 연구자도 있지만, 미국, 유럽, 한국 등도 일본화(Japanification)할 것이라는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일본화의 위험성을 높게 본다면, 중앙은행은 적극적인 통화정책을 채택해야 하지만, 과잉유동성에 의한 인플레이션 가능성을 높게 본다면, 적극적인 통화정책을 조기에 종료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본화의 위험성에 대응하여, 한국은행은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할까. 지금 현재 상황은 인플레이션보다는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시점이고, 경기부양의 필요성이 높으므로, 적극적인 통화정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단, 중앙은행은 결코 경기부양, 고용문제, 자산거품, 인플레이션(또는 디플레이션) 등을 혼자서 모두 해결할 수 있는 슈퍼맨이 될 수는 없다는 점을 명심하자. 박성빈 아주대 일본정책연구센터장

[세계는 지금] 장밋빛과 흙빛 사이

현재 97세인 젊은 노인 헨리 키신저. 그는 연부역강하면서 아직도 시시각각으로 변모하는 국제정치질서를 명징하게 논한다. 남과 북에 훈풍과 냉기가 오가는 현실을 보면서 그의 저서가 뇌리를 스친다. 키신저 박사가 회복된 세계를 만들고 싶었듯이, 한국인들은 연천 인근에 평화공원이 조성되고, 파주 출판도시에 북한의 청소년들이 와서 견학하고 독서하기를 염원한다. 한반도를 에워싼 국제정치 기류는 평온한 적이 없었다. 한국전쟁이 잠정 종료된 1953년 7월27일 이후 지금까지 67년 기간은 상대적인 평화의 시기였다. 냉전의 시기도 있었고, 신냉전이란 표현도 있지만 불완전한 평화의 시대였다. 북한의 적지 않은 도발과 이에 따른 남북미 간의 크고 작은 긴장은 있었지만 극적인 충돌은 없었다. 2006년 이후 6번이나 계속된 북한의 핵실험으로 국제사회의 제재와 함께 동북아에서의 불안정이 이어지면서도 현상유지의 기본 틀은 흔들리지 않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지형에 그늘도 있고 빛도 있다. 밝음의 조도는 주변국들의 이해와 지혜에 달렸다. 우리 모두가 품는 의지의 용량이 클수록 조명이 밝아질 것이다. 지축을 흔들고 지표를 뒤덮는 큰 전쟁은 국지전에서 촉발되는 경우를 20세기만 해도 몇 차례 경험했다. 야산의 조그만 불씨가 산맥 전체를 태우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우리의 책무이다. 북핵 문제는 남과 북만의 아젠다가 아니고, 비핵화는 한반도만의 이슈가 아니다. 북한의 자부인 금강산의 맑은 물 대신 핵 물질과 미사일 기술이 중동으로 수출됐다는 국제사회의 추정과 우려 속에 이미 유엔이 경계하는 비확산의 이슈로 자리 잡혀 있다. 한반도 비핵화의 문제는 세계평화와 직결된 논제이기 때문에 이해 관계국 모두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한반도의 평화 프로세스가 갖는 글로벌한 성격을 워싱턴은 진중하게 고민해야 한다. 소극적인 전략적 인내보다 적극적인 관여정책이 촉구된다. 진정성은 백악관의 오벌 오피스에서부터 필요하다. 미국을 계속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계몽된 국가이익의 현수막을 내다 걸어야 할 때이다. 메모 습관이 투철한 볼턴 전 안보보좌관이 적시했듯이, 도쿄의 정책결정자들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합창에 균열음을 내고 있다. 개화된 국익을 추구할 때 일본의 평화헌법 9조도 색이 바래지 않는다. 영속적인 평화국가로 남아야 한다는 일본헌법 9조의 대의(大義)를 지키기 위해 9조회(會)를 만든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빛나는 정신이 일본 내 소수의견으로만 남도록 방치할 수는 없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은 동아시아의 안정된 평화와 세계의 밝은 미래에 시금석이다. 한반도를 비추는 조명의 장밋빛과 흙빛 사이에서 스웨덴 듀엣 가수 아달(Adahl)이 만들고 부른 노래가사가 귓전을 울린다. 오랜 시간 분단된 이 나라 이제 회복이 필요합니다. 한국을 위해 기도합니다. 더 이상 전쟁이 없고 국경이 사라지기를. 갈라진 이 땅이 아름답게 변화될 수 있기를. 북유럽에서 들려오는 이 조용한 노래가 이제 한반도 주변국들이 함께 부르는 중창으로, 머지않아 전 세계인이 모두 함께 부르는 고귀한 합창으로 울려 퍼져야 한다.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가 도래하는 시기는 우리 모두가 함께 품는 빛나는 의지에 달렸다. DMZ에 평화공원이 조성되면 멋진 공연장도 만들어 미국 가수 앨버트 하몬드를 초빙해 노래 한 곡을 청해야겠다. 기타를 어깨에 메고 를 온몸으로 부르는 그의 모습이 그려진다. 최승현경기도 국제관계대사

[세계는 지금] 언택트 시대, 수출시장에 화상상담 도입해야

글로벌 수요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금년 세계교역량이 전년대비 11.9%가 줄 것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은 예측하고 있다. 이마저도 하반기 코로나19 상황이 호전될 것을 전제로 한 예측치이기에 최근 감염 확산세를 고려해 볼 때 세계교역량이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하반기만을 바라보며 상반기에 이미 기초체력을 다 써버린 수출중소기업에는 더 어려운 시기가 될 것 같다. 교역량이 국가 GDP의 80%에 이르는 높은 대외 의존성을 가진 우리로서는 글로벌 교역량 감소로 인한 영향을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다. 이미 그 충격으로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수요가 아무리 줄어도 수출을 해야만 한다. 모순 같지만 운명 같은 우리의 현실이다. 설상가상 수출판로 개척의 길마저 차포를 떼고 두는 장기판 같다. 글로벌 이동통제로 해외로 나갈 수도 바이어를 데려올 수도 없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비대면, 비접촉의 길이다. 코로나19가 비대면ㆍ비접촉으로 일컫는 언택트(untact)라는 신조어로 우리 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고 있다. 언택트가 보건위생을 넘어 교육, 의료, 산업 전반에 뉴노멀(new normal)이 되어 수출마케팅에서도 화상상담이라는 수단을 탄생시켰는데, 지금 우리 수출기업으로서는 화상상담을 잘 이해하고 활용해 막힌 수출판로 길을 여는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화상상담의 가장 큰 장점은 말할 것도 없이 시간과 비용의 절감, 공간의 자유로움이다. 통신환경만 허락된다면 언제 어디서든 화상으로 만날 수 있어서 대면 만남을 위한 이동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또한, 중소기업 특성상 해외마케팅은 사장 혹은 특정 인력에 집중되는데 화상상담은 인력운영의 효율성을 증대시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한편, 수출 다변화에도 화상상담은 큰 기여를 한다. 중소기업 수출의 절반 이상이 중국, 미국, 베트남, 일본 4개국이다. 중소기업은 마케팅 역량이 충분하지 않기에 중남미와 아프리카 등 원거리 지역은 우선순위에서 밀려 공략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데 화상상담은 앞서 설명한 장점 덕분에 이들 비(非)관심지역으로의 접근을 쉽게 한다는 점이다. 위와 같은 장점을 잘 활용하려면 선결돼야 할 것들이 있다. 우선은 해외에서 바이어를 찾아 연결해 주는 중개자가 필요하다. 화상상담은 서로 신뢰가 관건이다. 인지도가 낮은 중소기업제품에 해외바이어의 관심을 끌어 들이려면 믿을 수 있는 중개자 역할이 중요하다. 공공부문이 할 일이다. 경기도가 해외에 운영 중인 경기비즈니스센터(GBC)가 코로나19시대 이 역할로 주목을 받고 있다. 9개국 14개소 경기비즈니스센터에서 발굴한 해외바이어를 도가 최근 경과원에 개소한 화상상담 전용 디지털무역상담실로 초청해 도내 수출기업 화상상담으로 연결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수출기업들도 화상상담방식에 맞는 디지털 마인드가 요구된다. 상담방식은 디지털인데 내용이 아날로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첨단 4차산업 기술을 활용한 홍보콘텐츠의 제작부터 리얼타임 소통능력까지 비대면 바이어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지금은 강요든 자발이든 수출중소기업에겐 변화의 시간이며, 코로나19의 종식 여부와 관계없이 화상 수출 상담을 위한 수출기업인의 디지털 변환이 요구되는 때다. 이런 변화와 싸우는 수출중소기업인 모두께 파이팅을 전하고 싶은 7월의 첫날이다. 이계열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글로벌통상본부장

[세계는 지금] 김 위원장과 중동의 독재자들

6ㆍ25전쟁 70주년이 되는 올해 남북 간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표면상으로 대남전단 살포를 둘러싼 갈등이 시발점이었지만 북한군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비준이 이뤄지는 대로 각종 군사행동을 예고한 만큼, 남북간 갈등은 그야말로 폭풍전야의 상황이다. 대북 전문가들에 의하면 북한은 빠르면 수일 내에 개최될 중앙군사위원회 회의에서 대남 적대 후속 조치로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지구에 군대 재배치 등의 사안을 추인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일 남북간 통신선 차단에 이어 16일 연락사무소 폭파 등 북한의 군사행동 시계가 빨라지고 있는 만큼 군사행동 시기 결정권을 쥐고 있는 군 총책임자인 김정은 위원장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회의를 주재하고 주요 사안을 결정하는 등 전면에 나서 압박 수위를 높일 경우 남북이 단순히 말 폭탄을 주고받는 것을 넘어 군사 대치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남북간 긴장 국면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2011년 아랍의 봄은 중동의 기존 지형을 흔들어 놓을 만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전문가들도 예측하지 못했던 아랍의 봄을 통해 중동민중들은 그들의 목소리를 높였고 민주화와 사회변혁에 대한 그들의 오랜 염원의 외침을 전 세계에 알렸다. 이 과정에서 수십년 동안 장기 집권했던 중동 독재자들은 가히 드라마틱한 운명을 맞이했다. 2011년 재스민 혁명으로 축출된 벤 알리 튀니지 전 대통령은 1987년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장악한 뒤 23년 동안 튀니지를 철권통치 해온 독재자다. 집권 초기 취약 계층을 위한 여러 복지 제도를 통해 중산층 지지를 얻기도 했으나 장기집권을 택하면서 독재의 길을 걸었다. 2010년 12월 한 청년의 분신으로 격분한 튀니지 시민들의 민중봉기로 벤 알리 대통령은 2011년 1월 축출돼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했고 2019년 9월 타국에서 사망했다. 42년 철권통치로 악명 높았던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도 치열한 내전 끝에 비참한 최후를 마쳤다. 카다피는 1969년 27세의 젊은 나이에 동료 장교들과 무혈 쿠데타를 일으켜 당시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을 선포했다. 집권 초기 그는 외세로부터의 자주를 외치며 아랍민족주의를 내세워 제3세계의 민족 해방운동을 지원하고 국내 정치범 수용소를 철폐하는 등 혁명가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뒤 테러와 무자비한 인권 탄압 등으로 국제사회의 맹렬한 비난을 받았고 억눌려왔던 리비아 민중의 분노는 아랍의 봄을 계기로 폭발했고 결국 카다피는 고향에서 반군에게 생포된 뒤 사살되었다. 독재자들의 말로는 그야말로 비참했다. 30대 중반의 젊은 북한 지도자로 인해 미국과 한반도가 요동치고 있다. 냉전 이후 진영 없는 초국가적 대립이 다발적으로 발생했고 그 이후 IS와 같은 이슬람원리주의의 초국가 세력이 힘을 잃어갔다. 이제 미국과 중국이 주축이 된 국가들 진영으로 대립하는 신냉전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북관계는 기나긴 여정의 변곡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부디 이를 극복하는 슬기롭고 새로운 과정을 시작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김수완 한국외대 아랍어통번역학과 교수

[세계는 지금] 정부의 코로나 재정정책 어떻게 해야 할까

코로나19 위기의 영향으로 법인세, 부가가치세 등 세수(정부의 조세 수입)가 감소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활용하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발간하는 월간 재정동향 2020년 6월호에 따르면 올해 4월 누계( 1~4월) 기준 통합재정수지(일반회계특별회계공공기금을 모두 포함한 재정수지)는 43조3천억원 적자로, 2011년 이후 역대 최대폭의 적자다. 이러한 재정건전성의 악화에 대해서는 상반되는 인식이 존재한다. 우선 현재 한국의 재정건전성은 역대 최악의 상황이므로, 재정확대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또한 저출산ㆍ고령화의 진전을 고려한다면 한국의 재정건전성은 향후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고,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두 번째로 적극적인 재정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은 OECD 평균보다 낮고, 아직 한국은 추가적인 재정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OECD는 코로나19 확산의 여파로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1.2%로 하향 조정했지만, 이는 주요 국가(미국 7.3%, 중국 2.6%, 유로지역 9.1%, 일본 6%)와 비교해 상당히 양호한 수준이다. 즉 한국의 성공적인 방역으로 코로나19의 확산에 따른 한국 경제에 주는 부정적 영향은 상대적으로 양호한 수준이다. 적극적인 재정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견해 중에 현대통화이론(Modern Monetary Theory, MMT)에 대해서 주목이 모이고 있다. MMT 이론에서는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지출을 대폭적으로 늘려도 된다고 주장하고, 일본을 대표적인 MMT의 실천사례로 보고 있다. 다만 일본의 정부당국자는 일본이 MMT 이론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재정규율을 느슨하게 적용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럼에도 일본의 공적채무가 계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일본은행이 대량국채매입을 실시하고 있는 현실은 MMT 이론의 주장과 상당히 유사하다. 그렇다면 MMT 이론을 한국에 적용하는 것이 가능할까. 여기서는 몇 가지 문제가 존재한다. 일본의 GDP 대비 정부부채의 규모(IMF 기준, 2018년 기준)는 218%로, 미국(108%), 영국(86.3%), 독일(59.8%), 한국(38.9%)보다 압도적으로 크다. 일본의 막대한 정부부채에 불구하고 일본에서 그리스를 비롯한 남유럽 국가에서 발생한 재정위기는 발생하지 않고 있다. MMT 이론은 주류경제학으로부터 배척을 당하고 있고, 그 주장이 상당히 극단적이다. MMT 이론을 수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한국의 지금 상황은 재정지출 확대가 필요한 국면으로 생각된다. 다만, 한국의 상황은 일본과는 다르다. 우선 일본은 엔화라는 기축통화를 보유하고 있지만, 한국의 원화는 기축통화가 아니다. 둘째로 일본은 오랜 기간 경상수지 흑자의 누적으로 인해 2018년 말 기준으로 28년 연속으로 대외순자산이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셋째 일본의 정부 부채는 대부분 일본의 개인(가계)의 저축으로 충당하고 있다. 일본의 풍부한 가계저축이 정부부채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재정 건전성 문제에 대해서 특정 정치세력의 이해관계나 이데올로기에 매몰돼 양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현재 위기 상황에 대한 냉철한 인식을 바탕으로 해, 필요에 따라 재정을 동원하면서도, 장기적인 재정건전성 문제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박성빈 아주대 일본정책연구센터장

[세계는 지금] 미국 여권, 대한민국 여권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수도 프레토리아에서 한 소년이 성장하고 있었다. 한 손엔 책을 들고, 한 손으론 컴퓨터를 만지던 일론 머스크는 10대가 되면서 자주 우주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인종차별의 상징인 조국을 떠나 기회와 도전의 나라에서 꿈을 펼치고 싶었다.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의 무자비한 폭력이 포효할 때 그는 캐나다를 경유해 미국 땅에 발을 디뎠다. 코로나 팬데믹의 광풍이 미 전역을 뒤덮고 있는 와중에 인종차별 항의 시위가 수도 워싱턴을 비롯한 주요 도시들로 확산되고 있다. LA 등 시위가 격렬해지는 일부 도시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재미 동포들이 약탈과 방화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트럼프 현 대통령은 물론 클린턴, 오바마 등 전직 대통령까지 나서서 인종차별 문제를 놓고 격돌하고 있다. 광활한 미국 땅에서는 갖가지 갈등요인들이 끊임없이 분출한다. 소수인종에 대한 횡포에서부터 이민 이슈, 빈부격차 문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난제들이 오늘도 해결을 기다리고 있다. 국내에서 불평이 적지 않은 미국 국민이지만 그들에게는 특별한 자긍심이 있다. 바로 해외로 나갈 때 지참하는 미국의 여권이다. 20세기 이후 가장 대단하게 여겨지는 신분증명서이다. 흑인이든 히스패닉이든 미국 여권을 손에 든 여행자는 어느 나라에서건 자부심이 충만한 얼굴이다. 민간 우주시대를 열기 위해 지난 5월 30일 플로리다에서 발사된 크루 드래곤 호에는 성조기 표식이 선명했다. 스페이스 X 기업을 만들어 인류의 새로운 꿈을 찾고 있는 일론 머스크(Elon Musk)는 미국 여권을 들고 있다. 지금 그는 청소년 시절의 꿈을 미국 땅에서 마음껏 펼치고 있다. 여전히 가장 붐비는 공항은 이주행렬이 줄지어 서있는 뉴욕과 캘리포니아의 공항들이다. 복잡다단함 속에서도 가볍게 폄훼할 수 없는 위대함이 존재하는 나라이다. 어느 국민이든 자기 나라에 대한 불만이 있다. 북유럽에 가도 예외는 아니다. 위대함의 벽돌을 쌓아가는 대한민국 안에서도 문제점은 산재해 보인다. 양극화가 금방 보이고, 청년실업과 부동산 문제도 심각하다. 다시 위대한 나라로 만들려는 미국의 지도자가 한국에 손짓한다. 가장 배타적인 서방선진국 모임에 초청장을 보내온 것이다. G7이 어떤 식으로 재편되든, 대한민국이 승자의 대열에 올라서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파란의 20세기를 거치며 최고의 역경지수를 가슴에 새긴 한국민들은 이제 자랑스런 여권을 들고 미국으로, 유럽으로 여행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국제질서에 역할을 할 준비가 된 한국은 주변국들의 여하한 텃세와 견제도 견딜 수 있을 만큼 강인하고 지혜롭다. 자부심으로 채색된 대한민국의 여권을 손에 든 국민은 어두운 과거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며, 지정학의 열세를 지경학의 우세로 전환하면서 새로운 외교적 지평을 열어갈 것이다. 15세기 스페인보다 더 해외개척적이며, 16세기 이탈리아보다 더 예술감각적이며, 17세기 선도국 네덜란드보다 더 상업적인 나라가 지금의 한국이다. 18세기 프랑스인보다 진취적이며, 19세기 영국인과 러시아인보다 더욱 의욕적인 국민이 현재의 한국인이다. 20세기 도전적인 미국인들처럼 창의와 혁신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들이 금세기에 매력적인 역사를 쓰고 있는 바로 우리들이다. 최승현 경기도 국제관계대사

[세계는 지금] 리쇼어링이 활성화되려면

리쇼어링(reshoringㆍ자국기업의 본국회귀) 정책이 요즘 화두다. 새로운 시장과 값싼 노동력을 찾아 기업들의 제조기지 해외이전으로 본국의 일자리가 줄고 경제가 더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로 대량실직과 글로벌공급망의 붕괴를 겪게 되자 나라마다 앞다투어 자국기업의 본국행을 서두르고 있다. 특히 제조기반이 중국에 집중된 미국, 일본, 유럽 국가들이 적극적이다. 2012년 오바마 행정부 때부터 리쇼어링을 추진해 온 미국은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현 트럼프 정부의 강력한 지원정책에 힘입어 연평균 369개사가 미국으로 돌아오는 성과를 내고 있다. 코로나19로 최대 피해를 보고 있는 상황이기에 앞으로 이런 움직임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의 리쇼어링 정책도 아베 정부에서 공을 들이고 있다. 양적완화 통화정책과 과감한 지원으로 기업의 국내복귀가 늘자 실업률이 큰 폭으로 개선되는 성과를 내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도 유턴을 방해하는 법 개정과 생산성을 높이는 혁신아이디어로 리쇼어링과 외국기업 유치를 병행하고 있다. 고용 유연성을 법으로 보장하고, 4차 산업 혁명 기반기술을 활용해 생산비를 낮추어 해외로 나간 자국기업들을 부르고 있다. 우리나라도 2013년 12월부터 유턴기업을 선정해 지원하고 있지만, 산업통상부 자료에 의하면 현재 70개 기업만이 국내로 돌아왔을 만큼 성과는 미미하다. 그나마도 복귀한 상당수 기업이 정상적인 조업이 안 되는 실정임을 볼 때, 지금까지의 유턴정책의 문제를 분석하여 지원방향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우선 유턴이 미흡한 것은 우리는 무역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내수시장만으로도 기업경영이 가능하거나, 기술력이 크다면 자국에 기업이 위치해도 기업경영과 판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겠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판로를 위해 위치가 중요하다. 둘째는 국내기업과 형평성 문제로 유턴기업만 차별해서 지원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유턴절차가 까다롭고 지원 사항도 미흡하게 되어 기업의 관심을 끌기가 어렵다. 미국은 전체적으로 법인세를 인하해 국내기업과 유턴기업 모두에 적용하다 보니 형평성 문제가 크게 제기되지 않는다. 유턴기업 입장에서도 낮아진 문턱 때문에 본국회귀가 쉽게 되었다. 셋째는 대기업 유턴지원 정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용유발 효과가 높은 제조 대기업의 유턴은 동반 진출한 중소, 중견 협력업체들의 유턴이 함께 일어나 국내 산업 활성화는 물론이고 실업률을 낮추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기에 이들의 국내복귀에 적극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지난 5월10일 한국 기업 유턴과 해외 첨단산업유치를 위한 과감한 전략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한 대통령의 담화를 계기로 유턴을 막는 각종 법과 규제가 완화, 철폐되길 기대한다. 유턴 입지 최적지로 선호되는 경기도가 수도권 규제 탓에 오히려 유치에 더 어려움을 겪는 현실이다. 기업은 국내에서 경영할 수 있다면 돌아올 것이다. 이들의 눈높이를 맞추려면 애국심에 호소가 아닌 기업이 원하는 것을 읽고 대응하는 정부의 과감한 결정과 추진력이 리쇼어링 성패의 관건이다. 이계열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글로벌통상본부장

[세계는 지금] 일본의 재난지원금과 마이넘버 제도

코로나19에 따른 소비위축에 대응하기 위해서 한국에서는 재난지원금 지급이 이루어지고 있다. 재난 지원금 지급 과정을 보면 국민이 신용카드 회사 등을 통해 간단한 확인과정을 거쳐 재난지원금을 신청할 수 있고, 신청 후 며칠 만에 그 지원금을 실제로 사용할 수 있다.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신속하게 재난지원금을 집행해 실제 개인 소비를 촉진하는 것이 중요한데, 한국의 행정과 금융시스템은 짧은 기간 안에 재난지원금의 지급결정과 지급을 가능하게 했다. 1968년 김신조 사건을 계기로 도입된 한국의 주민등록번호는 일부 불법 유출 등의 문제가 존재하지만, 현재는 한국의 행정ㆍ금융의 효율성 증진에 기여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코로나 19에 따른 소비위축에 대응해 1인당 10만엔의 특별정액급부금(한국의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금액은 한국보다 많지만 실제로 개인이 재난지원금을 받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있다. 한국에 비해서 일본의 행정시스템은 전산화되지 못한 부분이 많고, 재난지원금의 신청과 지급과정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개인이 재난지원금을 지급받으려면 우편신청을 하거나 온라인 신청을 해야 한다. 온라인 신청을 위해서는 반드시 마이넘버카드(한국의 주민등록카드)가 있어야 하지만, 일본의 마이넘버카드 보급률(2020년 1월15일 기준)은 14.9%에 불과하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마이넘버카드가 있으면 인터넷으로 신속하게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고 선전을 했고, 그 결과로 많은 사람이 마이넘버카드 신청을 하기 위해서 구청에 몰려들었다. 정부가 마이넘버카드 발급을 개인의 선택으로 남겨둔 것은 개인들의 마이넘버제도에 대한 우려가 아직 상당하기 때문이다. 일본인은 마이넘버제도의 도입에 대해 전쟁 수행 시에 이루어진 정부에 의한 개인에 대한 통제를 연상했고, 이것이 국가에 의한 국민에 대한 감시ㆍ관리로 연결될 수 있으며 개인정보 보호 등에 대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 전국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개인 신분확인제도가 도입된 것은 2003년 8월 주민기본대장 네트워크가 최초이다. 주민기본대장 네트워크에는 지자체 별로 성명, 생년월일, 성별, 주소 등이 기재돼 전국 네트워크화 되어 전국공통으로 활용할 수 있는 본인확인제도가 만들어졌다. 기존에는 여권이나 운전면허증이 없는 일본인은 본인 확인을 위한 수단으로 건강보험증을 활용할 정도였다. 단, 당시 일부 지자체는 주민기본대장네트워크에 참여하지 않는 등 그 활용도는 높지 않았다. 2007년 잃어버린 연금기록의 문제를 계기로 일본에서는 전국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주민번호제도의 필요성을 재인식했다. 당시 일본 정부가 관리하고 있는 연금기록에는 많은 기재누락, 오류 등이 존재한 것이다. 잃어버린 연금기록은 일본 행정의 비효율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2016년 1월부터 국가에 의해서 전 국민에게 개인별로 식별 번호를 부여한 마이넘버제도가 시행됐다. 2018년부터는 은행이 예금을 마이넘버로 연결지어서 관리할 수 있게 되었지만, 아직 이는 개인의 동의를 전제로 한다. 일본에서 마이넘버제도에 대한 국민적 불안을 불식시키고, 마이넘버제도가 사회보장, 조세, 금융 등의 효율화 증진을 위한 제도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성빈 아주대 일본정책연구센터장

[세계는 지금] 밝아오는 여명

우리는 언제 미국이나 유럽처럼 근사한 나라가 될 수 있을까 오래전부터 꿈꾸어 왔다. 부유하고 여유 있어 보이는 앞선 나라가 우리의 목표였다. 한국민들은 꿈만 꾸지 않았다. 어느 나라보다 힘차게 전진하였고 어느 국민보다 열심히 뛰었다. 꿈꾸던 선진국이 이제 무지개 너머가 아니라 집 근처 공원 앞에 와 있다. 경제력은 이제 G7에 근접해 있다. 주변국으로 인해 표시가 잘 나지 않지만 군사력도 대단하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한국의 선진 이미지가 세계 도처로 확산하고 있다. 개혁과 혁신, 변화와 변혁을 한국보다 더 강렬하게 추구해 온 나라가 있을까. 선진사회라고 말할 때 몇 가지 기준이 있다. 첫째는 선도하는 사회다. 구미 주요국과 이웃나라를 따라잡기 위해 진력해온 한국은 이제 앞서가고 있다. 전면적인 국민의료보험과 5G 시스템으로 인한 효율적인 의료체계로 가장 안전하고 제일 살기 좋은 나라로 되어 있다. 한국만의 의료복지가 돋보이면서 급기야 미국과 유럽에서 한국을 선망하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가고 있다.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도 급격히 고양되고 있다. 두 번째는 민도이다. 지하철에서 두고 내린 물건은 분실물 센터에서 찾으면 될 정도로 시민들의 의식수준이 높아졌다. 지난 70여 년 우리는 앞서간 주요국들을 보고 배우는데 나태하지 않았다. 프랑스의 관용 정신도 보았고, 미국의 창의성과 도전정신도 익혔다. 독일인들의 차분함도 감지하였고, 독서율 1위 국가인 스웨덴의 공동체 우선주의 정신도 살폈다. 버스 정류장과 지하철에서의 질서정연함은 이제 한국인의 일상의 모습이 되었다. 위난의 시기에 자원봉사와 이타적인 모습은 우리의 자부심이 되었다. 고무적이게도,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한국의 청소년들은 학원이나 사교육에 얽매이지 않고 온라인과 개인의 능력에 맞게 맞춤교육으로 발전하고 있다. 2030년이 도래하기 전에 대한민국은 독서율 1위 국가도 될 수 있다. 책 읽는 대한민국은 민도를 높여주는 첩경이 될 것이다. 세 번째는 순화된 언어사용이다. 후진 사회일수록 언어가 거칠다. 말이 거칠면 생각과 행동도 거칠어진다. 언어는 생각과 인격을 드러내고, 시대상과 문화를 반영한다. 선진 사회에서 거친 언어를 사용할 때는 저절로 수치심이 드는 불문율이 조성된다. 사회를 자정시키는 언어가 1등 시민들의 사회로 나가는 핵심의 하나다. 일상에서 싸우고 다투는 언어보다 서로 격려하고 위무하는 언어가 선진 문턱을 넘는 필수품이다. 어휘선택도 중요하다. 외국어를 구사할 때도 그렇고, 한국어를 말할 때는 더욱 중요하다. 한글의 독창적인 아름다움을 외국인들이 좋아하고 드라마나 K-pop을 통해 한국어를 열심히 배운다. 추석이나 설날에 외국인 노래 경연대회를 보면 우리보다 언어를 더 멋지게 구사한다. 공원에서, 전철역에서 친절하게 안내하는 시민들도 많아졌다. 온기(溫氣)가 배인 언어와 함께 어느새 한국 사회에도 보라색 라벤더 향기처럼 화사한 마음의 여유가 채워졌다. 네 번째는 안전 민감성이다. 천재지변은 피할 수 없지만 인재(人災)는 피할 수 있고 줄일 수 있다. 한국은 과거의 전철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고민해 왔다. 어떤 나라이건 재난으로, 재해로 상처받아 왔다. 선진국은 상대적으로 인재가 적고, 평소 섬세하게 살피고 관리하는 습관이 있다. 한국도 선진 모델에 근접해 간다. 약간의 세심한 주의가 더 필요한 것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안전 행정을 위해서는 타성에서 벗어나면 좋다. 안전을 담당하는 공무원이나 그 분야의 전문가는 철저한 안전규칙과 점검사항을 직업의식을 가지고 투철하게 따라야 한다. 적당주의와 타협하지 않는 것이 안전 선진화의 요체다. 미국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초강대국이지만, 코로나 사태에서 보듯이 선진사회라고 하기에는 어폐(語弊)가 없지 않다. 일본은 경제 대국인 것은 맞지만 모범국가라고 하기에는 일말의 부족함이 있다. 중국은 군사대국으로 발돋움하고 있지만 투명성을 높이고 대외 이미지를 고양하기 위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한때 선진국임을 자랑하던 유럽의 많은 나라가 거울 속의 자신들을 보면서 스스로 시스템에 대해 다시 살피고 있다. 진정한 복지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면서 한 세기 전 풍미하였던 고서적을 다시 꺼내 드는 노인들도 있다. 슈펭글러는 서구의 몰락(Der Untergang des Abendlandes)을 쓰면서 문화와 문명의 주인공도 바뀌게 마련임을 역설하였다. 선진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한국은 오늘도 잡고 내일도 잡을 것이다. 대한민국에 마음을 뺏긴 팬덤(fandom)이 유럽에도, 미국에도, 아시아에도 넘치고 있다. 새로운 희망은 만들어 내는 사람들의 것이다. 최승현 경기도 국제관계대사

[세계는 지금] 전시회도 온라인으로 한다

코로나19로 해외전시회가 줄줄이 연기되거나 취소되어 각국 기업들의 판로개척 길이 막혔다. 막힌 길을 뚫기 위해 온라인상에서 전시회를 개최하려는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는데 중국이 앞서 가고 있다. 중국 상무부는 당초 지난달 개최 예정했던 중국 최대 종합국제무역박람회인 제127회 중국수출입박람회(China Import and Export Fair, 캔톤페어)를 코로나19로 인해 6월15부터 24일까지 온라인으로 전시회를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온라인상에서 이루어지는 전자상거래와 전시회는 차이가 있다. 전자상거래는 주로 B2C로 온라인에서 구매, 결제가 이루어지지만, 전시회는 제품홍보와 적격한 B2B 바이어 발굴이 목적이다. 그래서 온라인전시회는 상기 두 가지 목적 달성을 위한 과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우선은 전시제품을 직접 보거나 듣고 만질 수 없기에 품질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어려운 것을 해결해야 한다. 카탈로그와 같이 평면적 정보제공이 아닌 전시장을 직접 방문해서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도록 가상현실(가상의 세계에서 실제 같은 체험을 할 수 있는 기술, VR)과 증강현실(현실의 이미지나 배경에 3차원 이미지를 겹쳐 하나의 영상으로 처리하는 기술, AR)이라는 첨단기술의 적용이 필요한데 이용편리성과 경제성을 고려해 볼 때 실제 도입까지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둘째로는 온라인 공간에서 어떻게 전시기업이 적격한 바이어를 만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번 캔톤페어의 기술서비스 설계를 맡은 중국 최고 IT기업이자 온라인 기업인 텐센트는 전시기업과 바이어간 연결(메치메이킹)을 위해 인공지능(AI)기술을 도입해 이 문제를 해결한다고 한다. 비즈니스 파트너를 사람이 아닌 기계가 찾아 주겠다는 뜻이다. 63년간 126회라는 전시운영을 통해 수많은 전시기업과 바이어 정보를 가진 전시운영사와 소설네트워크서비스 분야의 강력한 기술기업이 결합해 전시회의 디지털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겉으로는 코로나19로 인한 팬더믹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현실적 대응 수단으로 보이지만, 이면엔 전시분야에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고 주도권을 가지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디지털 사회로의 전환에 맞추어 온라인전시회는 필연적으로 탄생할 수밖에 없는데 코로나19가 당초 예상보다 일찍 현실화시키고 있기에 경제주체들도 변화를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수출기업 입장에서는 온라인전시회가 효과가 있다면 굳이 임차비와 인적, 물적 이동비용 부담이 크고, 인력과 시간 소요가 많은 기존 전시회보다 온라인 전시회를 선호할 것이다. 다만, 온라인화에 따른 개방성과 쉬운 접근성 탓에 판매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기에 제품 차별화와 온라인에 적합한 홍보 콘텐츠 개발로 경쟁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또한, 첨단기술 분야 기업과 스타트업들도 온라인전시회를 시작으로 컨벤션 전반에서 늘어날 수요에 대비 다양한 기술기반의 운영플랫폼을 개발하여 향후 불거질 동산업의 주도권 경쟁에 대응해야 한다. 한편 전시운영을 담당하는 주최들이 온라인전시회 개최가 가능하도록 공공부문도 인프라와 전시운영플랫폼 구축을 지원해 주어야 한다. 전시회는 중소기업들이 해외 판로개척에 있어 가장 선호하는 수단이기에 온라인 전시운영시스템이 구축되면 지역과 상대를 가리지 않고 한국제품을 선호하는 바이어가 있는 한 어떤 상황에도 단절 없는 수출기업 지원이 가능할 것이다. 이계열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글로벌통상본부장

[세계는 지금] 日 경기후퇴의 시작, 궁지 몰린 아베

2012년 12월에 등장한 아베 수상은 높은 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그 이후 수차례 중의원, 참의원 등의 선거에서 승리를 이끌었다. 그러나 최근 아베 수상에 대한 국민의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아베 수상은 긴급사태선언 이후 공개한 동영상에서 아베 수상 자신이 소파에 앉아서, 애견을 안은 상태로 차를 마시면서, 독서를 하였다. 이러한 동영상에 대해 지금 상황에서 우아하게 쉬는 모습은 국민 감정에 맞지 않는다, 국민의 상황과 맞지 않는다 등의 비판이 급증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이 2020년 4월11~12일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아베 내각 지지율(42%)은 불지지율(47%)보다 낮아졌다. 아베 내각의 지지율 하락 등으로 올해 6월경에는 아베 수상이 사임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을 정도이다. 그렇다면, 왜 아베 수상은 궁지에 몰린 것일까. 최근 일본 경제의 악화가 결정타가 되고 있다. 코로나 팬더믹 이전까지만 해도, 아베노믹스에 의해 만들어진 호경기(이른바, 아베노믹스 경기)의 정점(peak)은 2020년 여름 도쿄올림픽일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실제 아베노믹스 경제의 정점은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다. 2019년 10~12월 GDP는, 일본경제는 5사분기 만에 GDP 마이너스 성장(실질, -0.4%)을 했다. 본래 일본 정부는 마이너스 성장을 2020년 1~3월기에는 벗어날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일본경제연구센터의 ESP forecast 調査 의하면, 코로나 19에 따른 소비 감소로 인해 2020년 1~3월기 일본의 GDP는 2기 연속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020년 3월 26일 정부가 발표한 월례경제보고에서 경기판단에 관해서 기존 완만하게 회복하고 있다에서 심각한 상황에 있다고 수정했다. 심각하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로 경기침체가 발생한 2012년 7월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소비감소 등에 따른 경기침체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유독 이번 코로나 19에 대한 아베 수상의 대응은 완전한 실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베 수상은 코로나19 대응과정에서 전문가의 판단보다 정치적 판단을 우선했다. 일본에서는 장기불황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는 관료주도에서 정치주도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 확대됐으며, 민주당 정권기에는 수상의 리더십 부재가 문제시 되었다. 아베 수상은 정치 주도로 리더십을 발휘해, 경제 재생을 달성했다고 여겨졌다. 한국에서는 예방의학 박사인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코로나19 대응에 전면에 나서 있다면, 일본의 경우 코로나19 문제를 지휘하는 사령탑은 정치가이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트위터를 통해 코로나19 대응에 있어서, 미국에서는 국립감염연구소장인 파우치 박사가 지휘하고 있지만, 왜 일본에서는 경제재상담당장관이 지휘하고 있는지라는 의문을 제시했다. 정치가와 관료제의 관계에 있어서, 선거에서 선출된 정치가가 관료제를 통제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다. 한편 통화정책 등과 같은 전문성이 강한 정책분야에 대해서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보장해, 정책결정과정에서 정치가의 무분별한 개입을 제안할 필요가 있다고 인식해왔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하에서 정치가의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전문성이 필요한 정책 영역에 있어서는 능력이 있는 유능한 전문가나 조직을 발굴하여, 중요한 결정이나 제도 운용을 위임하는 것이 중요한 정치적 리더십이 아닐까. 박성빈 아주대 일본정책연구센터장

[세계는 지금] 젊은 아스트리드

2년 전 북유럽 극장가에 개봉된 영화 한 편이 있었다. 영화 제목이 영 아스트리드(Young Astrid)였다. 우리말로 젊은 시절의 아스트리드라고 번역하면 되겠다. 스웨덴의 20크로나(Krona) 지폐에 새겨져 있는 인물이다. 평생 한 손에 펜을 들고 살았던 여성이다. 아스트리드는 조선의 마지막 국왕 순종이 즉위하던 1907년 스웨덴에서 태어났다. 스톡홀름 근교의 소박한 집에서 전원생활로 유년시절을 보낸 그녀는 청춘이 시작될 무렵 수도 스톡홀름에 직장을 구했다. 젊은 아스트리드는 처음으로 찾게 된 일터에서 난생 처음 보람을 찾았다. 젊은 그녀에게 보람 외에 찾아온 것이 있었다. 느닷없이 찾아온 불청객은 사랑이었다. 소리없이 다가온 사랑의 감정에 몸을 의지한 그녀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녀 곁에는 배우자가 있는 남자가 있었다. 직장 상사였고 연상의 남자였다. 감정의 포로가 된 한 청춘에게 부도덕이란 단어는 떠오르지도 않았고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그 짧은 사랑도 책임이 따라야만 했다. 금지된 장난은 대가를 요구했다. 아스트리드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어머니는 딸의 몸에 변화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모성(母性)은 딸을 조용히 안고 있었다. 세상에는 또 다른 순리가 있다고 속삭이는 듯했다. 야간 기차에 무거운 몸을 실은 젊은 아스트리드는 멀리 남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말없이 소리쳤다. 이것이 인생이야. 나의 인생.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나의 인생. 조산원에서 출산한 그녀는 다시 새 일터로 돌아와야 했다. 아이를 맡기고 떠나는 얼굴에 젊은 여인의 우울함이 스며 있었다. 나의 아기였고 보모가 키워야 하는 아이였다.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던 남자는 무책임으로 지난날을 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남자의 특권이었고 동시에 일상이었다. 20세기 초반의 유럽에는 윤리도 있었고, 불륜도 있었다. 몇 년 후 다시 보육원을 찾은 아스트리드는 아이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순간 당혹해한다. 그러나 핏줄은 핏줄이었다. 함께 시간을 보내며 모자(母子)는 맞잡은 손의 온기를 느끼기 시작한다. 세상이 그녀를 속여도 그녀는 노여워하지 않았다. 또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인생을 알게 된 아스트리드는 펜을 잡았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이후 창작활동의 길을 걸었다. 쓰지 못할 것이 없었고, 상상하지 못할 일이 없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작품을 남긴 그녀는 2002년 이 멋진 세상과 작별을 고했다. 말괄량이 삐삐는 그녀가 남긴 주옥같은 동화 중 하나이다. 독서율이 최고인 나라 스웨덴이 그냥 있었을 리 없다. 그녀가 떠난 해에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끼친 그녀의 영향력을 고려하여 만든 상이 바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Astrid Lindgren Award)이다. 노벨문학상과 마찬가지로 이 고매한 상 역시 정서적 풍요와 지적 상상력을 창조해 내는 작가에게 영예가 주어진다. 한겨울에 시상하는 노벨상과 달리, 아동들의 마음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봄에 린드그렌상이 수상자를 부른다. 월계관을 생각하며 뛰는 사람에게 월계관은 잘 다가오지 않는다. 트로피를 바라보고 글을 쓰는 사람에게 영예가 미소 짓지 않을 것이다. 순수한 열정으로, 쉬지 않고 글을 쓰는 사람에게 월계관이 다가온다. 한국의 어느 아동작가에게 영예가 주어졌다. 노력의 대가이고 인내의 귀결일 것이다. 최승현 경기도 국제관계대사

[세계는 지금] 수출 중소기업의 코로나 기상도

3월까지는 기존계약이 있어 괜찮았는데 4월 들어 갑자기 끊겼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바이어도 발이 묶여 집에만 있으니 어쩔 수가 없다, 중국으로 수출이 되고 있어 걱정 없다, 내수가 받쳐주어 괜찮다, 저금리 자금 지원을 받아 기존 고금리대출을 상환해 비용부담을 줄이고 싶다, 상반기까지는 견뎌 볼 수 있는데 하반기로 넘어가면 답이 없다 중소기업 사장님들의 말씀으로 보는 코로나19 피해기상도는 7개 기업 중 2개사는 맑음이고 5개사는 흐림인데 이런 상황이 하반기로 넘어가면 답이 없다는 말이 마음에 남는다. 중국에 이어 2월 우리나라에 집단감염이 발생했을때만 해도 서방 선진 국가에 코로나19는 동양의 아픔 정도였지만,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유럽에 이어 세계 제1의 경제 대국 미국으로 퍼진 지금은 지구촌 최대의 위험이다. 동시대 사람들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이 전염병이 전 세계의 방역노력에도 쉽사리 진정되지 않고 더 증폭되어 개인의 생업과 기업의 경제활동에 막대한 피해를 예고하고 있다. 나라마다 천문학적인 자금과 전례 없는 속도감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장기화 되리라는 주장들이 지배적이어서 닥칠 경제충격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코로나로 일찍부터 직격탄을 맞은 항공업계는 정부지원이 없으면 파산지경이라고 비명을 지르고 있지만, 어찌 이들뿐이겠는가. 시간이 지나면서 같은 상황에 직면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중소 수출기업들에도 자리하고 있다. 앞서 기술한 중소기업 사장은 그 시간의 기준이 금년 상반기라고 했다. 앞으로 3개월간은 견딜 준비와 각오를 되어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4월의 시작서부터 현실은 녹록지 않다. 거래가 절벽이다. 신규 수출계약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기존 계약 물량 선적을 앞두고 취소와 연기가 잇달아 이미 생산에 투입된 자금을 메울 수 없어 이중고를 겪고 있다. 또한, 수출 경쟁력마저 떨어져 고정거래처를 유지하기에도 힘겹다. 항공편 감소로 2배 넘게 오른 물류비용과 수요 감소에 따른 물량감소, 글로벌 금융기관들의 업무축소로 수출대금 회수마저 지연되어 수출기업의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한편 피해 기업의 순서에 있어서도 우선은 글로벌 셧다운으로 해외공장 문이 닫혀 납품길이 막힌 기업이고, 다음은 자동차와 같이 글로벌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수요가 줄어든 산업의 전후방 부품기업들이다. 완제품을 제조하여 직접 수출하는 중소기업은 상대적으로 나은데 같은 수출액이라도 수출국을 다변화한 기업들은 코로나 영향이 국가마다 달라 그나마 버틸 힘이 있다. 중소기업의 수출거래선 다변화가 왜 중요한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도 희망적인 것은 중국으로 수출이 다시 살아나고 있는 점이다. 코로나19가 안정화 단계로 접어든 중국이 90%가 넘는 공장을 가동하며 침체된 내수와 수출 회복을 위해 필요한 원자재 수입을 늘리고 있어 단기적으로는 중국마케팅을 집중할 때다. 대중 수출비중이 35%가 넘는 경기도로써는 다행스럽지 않을 수 없다. 글로벌 시장에서 금년 상반기까지는 방역과 치료, 무너진 질서 회복을 위한 불요불급한 품목 이외에는 해외수출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나라마다 앞으로 어떤 변수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수출기업이 인내할 수 있는 시간 내에 코로나와 공존이든 종식이든 해결 방법이 나와 수출중소기업의 기상도가 맑음으로 바뀌기를 기대해 본다. 이계열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글로벌통상본부장

[세계는 지금] K-트로트의 주역 임영웅과 아랍의 전설적 디바 파이루즈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절망에 빠져있는 지금, 단비처럼 대중에게 위로를 주는 열풍의 주역이 있다. 바로 트로트다. 한 종편 방송의 오디션프로그램 내일은 미스터트롯이 돌풍을 일으키며 새로운 문화현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일본 전통가요 엔카(戀歌), 미국의 컨트리송(Country song)과 비교되는 국내 트로트의 역사는 한국의 근대사와 괘를 같이한다. 일제강점기, 미국 춤곡인 폭스트로트(Foxtrot)가 일본의 정서에 맞게 일본 민요와 합쳐져 탄생한 엔카가 국내에 유입되고 엔카의 영향을 받아 한국의 트로트가 탄생한다. 1930년대와 40년대를 거쳐 트로트는 높은 음악적 완성도와 세련되고 서구적인 느낌의 고급 음악이라는 인식으로 최고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지금까지 명곡으로 인정받는 목포의 눈물과 나그네 설움등이 당시 발표된 대표적 트로트곡이다. 1950년대 전쟁과 해방을 겪으며 분단과 전쟁의 아픔과 비애를 그린 단장의 미아리 고개, 굳세어라 금순아 등이 유행하며 트로트의 대중화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1960년대 군부정권이 집권하면서 트로트는 일본 대중가요의 강력한 영향아래에서 형성된 양식이라는 점에서 왜색, 일제 잔재로 청산의 대상이 되고 뽕짝이라는 비칭으로 불리게 된다. 1970년대 미국 포크 음악 장르가 유입되고 유행하면서 트로트는 비주류로 밀려나고 1980년대를 지나며 중장년층이나 낮은 계층의 취향으로 인식되게 되었다. 1990년대 이후 특유의 비극성에서 벗어나 흥을 돋우는 신나는 노래로 트로트는 변화했지만 여전히 B급 문화를 대표하는 용어로 사용되어 왔다. 그런 트로트가 새롭게 부활하고 있다. 중장년층의 전유물이 아닌 10대와 20대 그리고 온 가족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장르로 거듭나고 있다. 중ㆍ고등학생 위주였던 대중문화 소비계층이 40~60대로 이동하는 문화 주체의 변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상대적으로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있는 중장년층이 대중 문화의 핵심 소비계층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나며, TV시청과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이 늘어난 상황도 영향을 미치며 갇힌 일상 속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소해주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문화 주체로 K-트로트가 떠오르는 것이다. 내일은 미스터트롯의 최종 우승은 고급스런 목소리의 감성 장인이라 평가되는 임영웅 참가자가 차지했다. 트로트가 라시도미파의 단조 5음계 혹은 도레미솔라의 장조 5음계의 독특한 음계를 사용한다는 것과 트로트의 역사적 흐름에 대해서 필자가 관심을 갖게 된 것도 바로 임영웅의 경연 트로트 곡을 우연히 듣게 되면서부터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유료 문자메시지를 보내면서 새로운 문화 현상의 주류가 된 듯한 묘한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의 노래를 듣고있으니 생각나는 아랍의 전설적인 가수가 있다. 바로 레바논 출신의 파이루즈(Fairuz)다. 이집트 출신인 움무 쿨숨(Umm Kuthum)과 함께 아랍세계에서 가장 존경받고 영향력 있는 가수로 평가되고 있는 인물이다. 1934년생인 파이루즈는 아랍 지역뿐 아니라 미국, 유럽 지역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 왔다. 빌보드지는 60년 후에도 최고로 남을 레바논의 디바로, 뉴욕타임지는 대체 불가한 살아있는 아이콘으로, BBC는 레바논의 전설이자 가장 위대한 살아있는 아랍의 디바로 그녀를 극찬한 바 있다. 파이루즈의 음색과 노래의 곡조는 한과 설움이 녹아있는 우리네 트로트와 매우 흡사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트로트 특유의 꺽임을 파이루즈의 노래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개인적인 느낌은 아닐 것이다. 파이루즈는 80이 넘는 고령의 나이에도 2017년까지 새 앨범을 발매하며 아랍의 전설적 디바임을 입증했다. 파이루즈의 팬들 중 일부는 한국의 한 신예 트로트 가수와 그들의 위대한 전설인 파이루즈를 비교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문화적 상이성과 시대적 격차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분명한 사실이 있다. 대중은 그들을 통해 위로를 받고 상처를 치유 받으며 삶의 활력을 얻는다는 것이다. 대중 문화의 아이콘을 넘어 대중 문화계의 이노베이션으로 표현할 수 있는 두 가수의 음악, 이것이 대중 문화의 힘인 것이다. 김수완 한국외국어대학교 아랍어통번역학과 교수

[세계는 지금] 日, 슈퍼에서 휴지가 사라졌다… 그 이유는?

코로나19의 여파로 마스크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현재 국내 마스크 생산량은 1일에 1천만 장 정도로 알려졌다. 한국의 국민들(약 5천만 명)이 매일 1장의 마스크를 사용해야 한다고 가정을 한다면, 국내 마스크 공급량은 수요에 비해서 턱없이 부족하다. 마스크 5부제는 결국 수요부족 상황 하에서 정부가 만든 고육지책일 것이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마스크 부족 문제는 심각하다. 일본의 경제산업성에 의하면, 해외 수입 등을 포함하여, 일본 내 마스크 공급량은 1주일에 1억 장 정도라고 한다. 일본의 인구가 약 1억 2천만 명이므로, 수요에 비해서 공급량이 턱없이 부족하다. 즉, 일부 마스크 사재기나 마스크 매점 매석 등이 이러한 문제를 증폭시키지만, 마스크 부족은 기본적으로 수요 대비 공급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런데 일본에서 마스크나 소독제뿐만 아니라, 화장지나 티슈 등이 슈퍼에서 구입할 수 없는 상황에 지속되고 있다. 아마존 재팬 등 온라인 쇼핑몰을 봐도, 화장지 등은 일시재고 없음이라고 표기가 되어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은 동일본 대지진 직후에도 없었다고 한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직후 일본인의 질서 정연한 모습이 외신 등에 많이 보도가 되었다. 어쩌면 최근 일본인의 불안감이 동일본 대지진 때보다 큰 것일지로 모른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일본에서 화장지 등의 사재기가 발생한 것은 화장지 부족에 관한 루머가 SNS 등을 통해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SNS를 통해 확산된 루머의 내용은 ①마스크 재료에 종이가 사용된다. ②중국에서 원재료 수입을 할 수 없게 된다. ③마스크 공장에 제지회사 사람이 동원된다. 등이다. 그 내용을 들으면 그럴 듯하게 보이는 내용도 있지만, 사실 일본 제지회사 등 업계단체에 의하면, 재고는 충분하다고 한다. 지난 3일 경제산업성에 의하면, 공장재고는 약 3주일치, 유통재고는 약 1주일분 확보되어 있다고 한다. 공장 생산량도 재고도 충분하지만, 왜 드럭스토어 등의 소매점에서는 화장지 등의 재고가 없는 것을까. 이는 기본적으로 루머 등이 사람들의 불안심리를 자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화장지 등이 가지고 있는 물류시스템의 취약성이 관계하고 있다. 물류가 기능마비에 빠진 것은 도매에서 소매점으로의 이송경로이다. 휴지나 화장지는 부피에 비해서 가격이 저렴한(경제성이 낮은) 물품이므로, 센터 배송(물류거점)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 즉, 휴지 등을 전문으로 하는 전문배송업체가 소매점까지 배송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드럭스토어, 슈퍼 등에는 화장지나 티슈를 대량으로 보관할 장소가 없다. 즉, 휴지 등 전문배송업체는 매일 매장에 소량 다빈도로 배송해야 하지만, 많은 소매점에 동시에 배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도매에서 소매점으로 물류가 원활하지 못한 것은 트럭운전기사 부족 문제를 배경으로 한다. 일본에서 트럭운전기사 부족문제는 화장지 배송업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지만, 특히 화장지 등은 경제성이 낮고, 노동강도가 비교적 높은 품목이므로 특히 운전기사 모집이 어렵다. 일본의 소매점에서 화장지가 사라진 것은 코노나 19의 불안심리를 배경으로 부정확한 루머가 국민의 사재기를 유발한 것이지만, 구조적으로 보면 고령화의 진전에 따른 물류 인프라의 약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향후 일본에서는 트럭운전기사의 부족문제가 심해지면서 점차 물류비가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한국도 저출산고령화는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고, 트럭 운전기사 부족 문제는 우리의 미래일 가능성이 크다. 일본의 위기를 반면교사로 삼아, 위기 상황 속에서도 원활하게 기능할 수 있는 물류시스템 구축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박성빈 아주대 일본정책연구센터장

[세계는 지금] 대한민국의 새로운 브랜드

느닷없이 한국이 전 세계의 조명을 받고 있다. 희생정신으로 무장하여 대구로 향하는 자원봉사 의료진들, 서로 격려하는 응원 메시지와 기부행렬, 자가격리하는 시민들, 대형마트에서 사재기하는 다른 나라와 달리 차분히 대처하는 국민들. 코로나 바이러스가 여러 대륙으로 퍼지면서 검사를 무료로, 빠르게 해주는 한국이 제일 안전한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 바이러스 위기 속에 의료시스템과 시민의식이 대한민국의 새로운 브랜드 파워가 되고 있다. 창의적이고 효율적인 검사방식인 드라이버 스루는 찬사를 받지 않을 수 없다. 경기도는 선제적이었고 모범적이었다. 긴박한 시점에 신속하였다. 세계 속의 경기도가 초유의 시기에 위기대응능력을 확연히 보여주었다. 미국과 유럽의 여러 나라가 자존심을 뒤로하고 배우려 한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나라가 진정한 강국이다. 선도하는 나라가 선진국이고, 차분히 대처하는 국민이 1등 시민이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선진 문턱을 넘어서고 있다. 선진 시민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에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메디케어 개혁안을 제시한다. 의료체계 개선이 어렵다는 반증이다. 보편적 의료보험 도입 이슈가 금년 미 대선 후보들의 이슈 중 하나다. 고가의 의료비 때문에 바이러스 검진 자체도 어렵다고 한다. 유럽의 대다수 국가도 마찬가지다. 코로나 19가 확산하지만 한국만큼 체계적인 검사와 격리, 치료가 이뤄지고 있는 나라는 없어 보인다. 우리나라의 효율적인 의료 체계가 돋보인다. K-팝, K-무비와 함께 K-메디케어가 일로 확산하고 있다. 소프트 파워의 중요성이 점고하고 국제협조주의가 강력히 요청되는 이 시대에 대한민국은 새로운 이미지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속에 경기도가 있다. 지금 당장은 시민들의 생업부터 국가 경제까지 힘들지만 위기의 시간을 잘 넘기면 또 다른 희망이 다가올 것이다. 과거 경제, 금융위기도 최선의 구조조정으로 극복하였고, 지난 몇 년의 어려운 국면에 개혁과 혁신을 거듭해 왔다. 고통과 노력 끝에 내구력이 강해졌고, 시스템은 정비되고 있고, 안정감은 고양되고 있다. 한국보다 쇄신의지가 강한 나라는 없다. 그래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전임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에 수차례 찬사를 던진 것은 단순한 인사치레가 아니었다. 제대로 느꼈기 때문이다. 한국의 매력과 한국민의 투지를 확실히 체득하였기 때문이다. 위기를 겪으면 진면목을 알 수 있다. 재난이 닥치면 시민들의 수준도, 국가의 격도 드러난다. 한반도 주변국들이 나름의 자부심으로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유엔 안보리의 상임이사국은 군사력의 경성권력으로, G-7의 다른 나라는 경제력의 하드 파워로 국가 브랜드 파워를 자랑해 왔다. 화려하지 않았던 한국은 절치부심하면서 소프트 파워를 키워 왔다. 수십 년간 함양해 온 연성권력이 이제야 제대로 비춰지고 있다. 선진국인줄 알았는데 큰 제전을 앞둔 눈앞의 이익에 기속되어 투명하지 않다고 비난받는다. 대국으로 생각했는데 은폐의 장막에 진실이 가려져 신뢰도가 떨어진다고 평가되고 있다. 중견국으로 알려진 대한민국은 오히려 선제적이고 모범적인 나라로 회자되고 있다. 절제와 온정, 그리고 일치단합 속에 투명하고 정직한 대한민국이 조용히 빛나고 있다. 먼저 위난을 겪어서 오히려 잘 헤쳐나가면 세계를 이끄는 나라가 된다. 한국민이 지금 그것을 해 내는 것이다. 아놀드 토인비를 원용해야 할 때다. 도전에 제대로 응전하는 나라가 전략국가가 되고 결국 강국이 된다. 국토 면적보다 훨씬 중요한 한 나라의 정신성(The spirit)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다. 최승현 경기도 국제관계대사

[세계는 지금] 수출 중기의 고립을 극복하려면

국내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하자 감염병 유입 차단을 위해 한국인의 입국을 금지하거나 격리, 검역을 강화하는 국가가 이미 100개국을 넘어섰다. 초기 중국지역에 제한되어 단기적으로 끝날 거라는 기대와 달리 아시아와 중동, 유럽, 북미, 오세아니아까지 급속도로 확산하면서 국면 장기화가 불가피해 졌다. 가뜩이나 국내외적으로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코로나19가 몰고 올 글로벌 충격이 염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수출중소기업이다. 중국산 부품의 불완전한 수급문제 해결과 감소폭이 확대되는 중국수출물량을 대체하려면 해외로 발길을 돌려야 하는데 대상 국가들의 입국 규제로 발이 묶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어버렸다. 코로나19로 전례가 없이 국제적으로 고립도가 커가는 상황에서 우리 수출중소기업이 수출을 유지, 확대할 대응방안들을 생각해 보자. 첫째로 지금과 같은 시기에는 기존거래처를 잘 지켜야 한다. 수출자의 입장에서 기존거래처만큼 거래의 규모와 안전성을 보장해 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거래선을 지키려면 절대로 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서는 안 된다. 필자도 한때 구매업무를 담당할 때 거래처가 어려워지면 계약이행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AS 대응에 문제가 없을지, 앞으로 지속 가능한 거래가 될지를 고민했었다. 바이어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그런 분위기가 느껴지면 돌아선다. 아무리 힘들어도 흔들림 없이 당당해야 기존거래처의 이탈을 막을 수 있다. 둘째로 기존 거래방식을 고집하지 말고 유연해 져야 한다. 내가 주장한 거래방식 탓에 성사되지 못했던 과거에 만났던 바이어들을 기억해 내어 보라. 어쩌면 그들이 가장 확률이 높은 잠재바이어다. 그들은 B2B가 아닌 B2C를 원했을 수 있고, 자사 브랜드가 아닌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을 희망했을 수 있다. 수출기업이 운영하는 현지매장도 한국인 파견이 어렵다면 폐쇄보다 위탁운영으로 전환해 볼 수 있다. 또한, 기존 딜러나 에이전트와 법적 문제가 없다면 다양한 방식으로의 변경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온라인을 활용한 수출마케팅에 집중해야 한다. 비단 코로나19라는 상황 때문에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우리 사회는 디지털로의 전환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물품거래만을 위한 오픈 플랫폼부터 소셜네트워크 플랫폼까지 다양한 온라인베이스의 도구가 마케팅에 활용되고 있다. 2003년 사스를 계기로 전자상거래가 급성장했듯이 이번 코로나19로 전자상거래가 다시 비약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많은 전문가가 보고 있다. 온라인 수출마케팅을 시급히 해야 하는 이유다. 한편 사회적 거리두기는 수출현장도 예외가 아니다. 온라인으로 연결하여 화상 수출 상담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스카이프, 카카오톡, 위챗만 설치하면 언제 어디서든 상대방의 얼굴을 보면서 상담을 할 수 있다. 온라인을 수출거래와 바이어 발굴에 적극 활용해야 한다. 앞서 기술한 대응방안들을 수출중소기업이 외부 도움 없이 자력으로만 하기에는 무리다. 유관기관의 도움이 필요하다. 경기도는 중소기업의 수출이 많은 9개 나라 12개 지역에 있는 경기비즈니스센터(GBC)를 통해 도내 수출중소기업을 돕고 있다. 비록 지금은 터널에 갇혀 나가지도 들어오지도 못하는 상황이지만, 경기도가 해외에 설치한 공적네트워크를 잘 활용하여 고립의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힘을 보탠다. 이계열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글로벌통상본부장

[세계는 지금] 인류 역사와 바이러스, 중동과 코로나19

바이러스와 박테리아 등으로 인한 전염병과의 싸움은 인류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염병으로 14세기 흑사병과 20세기 스페인 독감을 들 수 있다. 14세기 후반 중세 시대 유럽 인구3분의 1, 전 세계에서 7천50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가며, 중세의 사회적, 경제적 대변혁을 일으킨 흑사병의 원인은 쥐벼룩에 붙어사는 박테리아 질환인 페스트균이었다. 1347년 킵차크칸국의 몽골 기마병이 흑해 연안, 크림 반도 동부의 무역 기지 카파 항구를 공격할 때 흑사병으로 죽은 시신들을 투석기를 이용해 적진을 향해 던져 넣었는데 세균도 모르던 시절의 세균전이었다. 이렇게 원정과 교역에 나선 몽골군과 상인과 함께 해상교역로를 따라 서아시아, 이집트, 이탈리아 반도를 거쳐 유럽으로 퍼져 나간 페스트균은 중세 시대를 몰락시켰다. 흑사병은 감염자의 60~90% 숨질 정도로 치사율이 높았는데 흑사병이 지난 뒤 세계 인구가 이전 수준을 회복하는 데 200년이 걸렸다고 한다. 20세기 스페인독감은 약 5억 명이 감염돼 제1차 세계대전사망자보다 많은 5천만 명 이상의 희생자를 냈으니 전쟁보다 무서운 질병이었다. 1918년 3월 미국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와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일부 지역에서 처음 발생한 맹독성 독감은 폭발적으로 확산하기 시작하여 당시 전 세계 인구의 3~5%가 목숨을 잃었다. 한반도에서도 무오년인 1918년에 대대적으로 퍼져 무오년 역병으로 불리며 740만 명이 감염돼 14만 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산된다. 미술 작품 The Kiss로 유명한 오스트리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프랑스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 독일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 막스 베버도 바로 스페인 독감의 희생자였다. 바이러스, 박테리아가 21세기 들어서며 또다시 인류를 전염병의 공포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2002년 중국에서 발생해 아시아 32개국으로 확산한 사스, 2009년 전 세계로 확산한 신종플루, 2012년 중동에서 발생한 메르스, 그리고 이제는 코로나19가 전 세계인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코로나19의 공포는 중동 전역을 뒤덮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 레바논, 이란, 쿠웨이트, 바레인, 오만,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확진자가 발생했고 특히 이란은 중동 코로나의 진원지로 지목된다. 중국을 방문했던 이란인 확진자로 시작된 이란의 코로나 확산은 보건복지부 차관과 심지어 부통령까지 확진 판정을 받는 등 그 심각성이 더해지고 있다. 중동 지역 코로나 확진자 중 다수가 이란에 다녀온 방문자다. 중동 주변국들이 이란과의 국경을 폐쇄하고 항공편 운행을 중단하는 등 코로나19 확산 방지에 열을 올리고 있다. 중동이 전염병 대유행을 일으키기에 완벽한 장소가 될 수 있는 것은 중동지역의 종교ㆍ문화ㆍ역사적 특징에서 찾을 수 있다. 이슬람 예배당인 모스크에서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모여 가깝게 붙어 앉아 예배를 보기 때문에 바이러스 감염이 용이하다. 악수나 볼에 입을 맞추는 전통 인사법과 마스크를 쓰는 것이 익숙치 않은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시리아, 이라크, 예맨 등과 같이 내전이나 소요사태로 인해 의약품이나 의료시설이 부족한 상황 등이 중동 지역 코로나19의 확산을 부추기고 있다. 바이러스는 변신의 귀재다. 개발된 치료제에 재빠르게 새로운 형태로 스스로를 돌변시킨다. 바이러스 예방법은 향상됐지만, 치료에 있어서 아직 걸음마 단계라 한다. 인류가 바이러스를 통제할 수 있을까? 최소단위의 미생물인 바이러스 앞에서 인류는 다시 작아지고 있다. 김수완 한국외국어대학교 아랍어통번역학과 교수

[세계는 지금] 아베노믹스의 성장 엔진은 꺼졌는가?

2012년 12월 아베노믹스 시행 이후 일본 경제는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불리는 장기불황에서 벗어나서 아베노믹스 경기라고 불리는 장기호황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내각부가 발표(2020년 2월 17일 공표)한 2019년 10~12월 분기의 GDP(국내총생산) 속보치(통계)에 의하면 일본 경제는 5 사분기 만에 GDP 마이너스 성장(실질, 0.4%)을 했다. 이와 관련해, 일본 경제의 경기후퇴가 시작되었다, 아베노믹스의 성장엔진은 꺼졌다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이번 GDP의 감소의 원인은 무엇일까. 향후 일본 경제의 전망은 어떠한가. 우선 이번 GDP의 마이너스 성장은 2019년 10월의 소비세(일종의 부가가치세) 증세(8%에서 10%로의 소비세율 인상)의 영향이다. 일본 정부는 소비세 증세가 개인소비 감소를 통해 아베노믹스의 실속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인식했지만, 한편 일본의 재정건전성(GDP 대비 채무잔고가 200%를 넘고 있음)을 고려하면 소비세 증세가 불가피했다. 사실 기존에 일본 내에서는 2019년 10월 소비세 증세에 따른 소비 감소에 따른 경기위축 효과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일본 정부는 소비 감소 효과를 회피하기 위해 소비자가 현금이외의 결제수단(신용카드, 전자화폐 등)으로 결제할 경우, 소비자에게 포인트를 돌려주는 포인트환급제도를 도입했다. 그럼에도 이번 GDP의 성장률은 예상보다 나쁜 결과였다. 이처럼 2019년 10월의 소비세 증세가 그 이후 일본의 개인소비 감소를 통해 GDP 마이너스 성장을 초래한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아베노믹스 시행 이후에도 일본의 개인소비 증가가 정체되어 있는 상황이 계속되어 왔다는 것이다. 전후 최장기 호황인 아베노믹스 경기 하에서 일본 경제(2013년~2018년)의 경제성장률은 실질 1.2%에 불과하다. 이는 글로벌 경제위기 직후인 2008년~2012년 사이의 경제성장률(실질 0.2%)과 비교하면 개선된 수치이지만, 아베노믹스의 경제성장 목표치(실질 2%)와 비교하면 제한적인 성과이다. 즉, 아베노믹스 하에서의 낮은 경제성장률은 아베노믹스 하에서 개인소비가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아베노믹스 시행 이후 소비자들의 디플레이션 마인드(앞으로 물가하락을 예상해 소비 등을 소극적으로 하는 심리)가 해소되었다면 이번 소비세 증세에 따른 소비감소 폭이 크지 않았을 것이며, 증세 이후 소비감소가 발생해도 단기간에 소비심리가 회복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소비세 증세는 일본 소비자들의 디플레이션 마인드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2019년 10월의 소비세 증세뿐만 아니라, 최근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19는 일본의 해외 관광객 등의 감소를 초래하는 등 일본의 소비침체를 장기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종래 일본 경제는 적어도 도쿄올림픽(2020년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 호황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이번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도쿄올림픽의 연기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2020년 2월 32일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코로나19로 세계 경제 하방압력을 받고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일본 경제는 대외적으로는 코로나19, 미중 무역갈등이라는 위협에 직면해있고, 국내적으로 저출산고령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디플레이션 마인드가 좀처럼 해소되지 못하고 있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앞으로 일본 경제가 대내외적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 또는 이번 위기에 실속할지에 귀추가 주목된다. 일본 경제에게 코로나19도 문제지만, 여전히 저출산고령화의 진전과 함께, 일본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디플레이션 마인드의 해소가 중요하다. 박성빈 아주대 일본정책연구센터장

[세계는 지금] 미국 대통령 선거의 풍향계

아이오와 그리고 뉴햄프셔를 거치며 미 대선이 본격화되고 있다. 11ㆍ3 결전을 앞두고 공화당은 재선 전략에, 민주당은 백악관 탈환 전략에 부심하고 있다. 트럼프의 백악관은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이 소극적이었다고 비판하면서, 미 국익 최우선주의 공약에 충실하였다는 자평 속에 현직의 프리미엄과 확실한 지지기반, 무위로 끝난 탄핵의 영향을 감안해 낙관적인 전망을 하고 있다. 군사작전 실패나 경제 불황 등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대부분의 현직 대통령이 어렵지 않게 재선에 성공해 온 전례에 비추어 트럼프의 8년을 예상하는 전문가가 많다. 백악관에 도전할 민주당 후보는 트럼프를 밀어낼 본선 경쟁력이 중요하다. 젊지 않은 샌더스와 무명의 부티지지가 경선 초기에 선전하면서 직전 부통령과 여성 상원의원을 포함한 다수의 후보가 각축하는 가운데 예측 불허의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공화당 진영에서는 유력 경쟁자가 없어 독주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양호한 경제 실적과 견고한 지지층을 배경 삼아 재선 낙관론의 무게를 더해 주고 있다. 히스패닉의 진출 확대와 진보의 물결로 위기의식을 느끼는 전통 백인층, 트럼프의 비도덕적 언행에도 낙태 반대만으로도 맹목적 지지를 보내는 종교적 보수주의자, 국익 우선주의로 인해 혜택을 보는 농업ㆍ산업 종사자들은 대통령의 앞과 뒤에서 USA와 4년 더를 외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외적으로는 충동적이고 비우호적인 스타일로 인해 근사한 평판을 얻지 못하고 있으나, 지지 그룹에게는 국익에 충직한 매력적인 인물로 각인되어 있다. 트럼프는 역대 미국 대통령이 금기시해 왔던 이슬람에 대한 적대감 표출, 멕시코 국경 장벽 설치, 이란 핵 합의 파기, 파리 기후변화협정 탈퇴 등 정치외교적 강수를 두어 오면서 핵심 지지층으로부터는 확실한 추진력을 평가받고 있다. 야당 지도자나 비판적 언론을 상대하는 국내 정치 무대는 물론 외국 지도자와의 양자회담, 다자 외교 무대 등 어떤 자리에서도 보수 기조와 애국주의를 강조하는 일관성을 견지하고 있다. 보수 우파에게는 고집스럽지만 미 국익만 생각하면서 일하는 대통령의 모습으로 비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으로서는 3년 전 힐러리 클린턴과 같은 충분히 강력한 후보가 보이지 않는 것이 고민이다. 누구도 현직 대통령을 이기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 현재의 중론이다. 지난달 뉴욕 타임스는 2명의 여성 상원의원이 유력 주자라고 선정한 바 있으나, 엘리자베스 워런(매사추세츠)과 에이미 클로버샤(미네소타)가 경선에서 얼마나 역주할지는 미지수다. 버니 샌더스는 79세의 나이와 심장질환의 병력에도 분전하고 있으며 최근 지지도가 반등하는 호조를 보이고 있다. 아이오와에서의 부상으로 주목받는 사우스벤드 시장 피트 부티지지는 참신성을 갖춘 젊은 정치인이 대통령 선거전에 자주 등장하는 민주당의 전통을 보여주고 있다. 트럼프 진영이 원하지 않는 상대 조셉 바이든은 3ㆍ3 수퍼 화요일에서의 반전을 모색하고 있고, 초반 선거전은 생략하고 있으나 확실한 지명도와 최고의 선거자금력을 가진 마이클 블룸버그 역시 트럼프 측에 일말의 경계심을 던지고 있다. 민주당의 어느 후보가 본선에서 트럼프에 도전할 것인가. 디펜딩 챔피언인 45대 미국 대통령은 여유 있는 선거유세를 하면서 7월 이후를 기다리고 있다. 최승현 경기도 국제관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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