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닛산 곤 회장의 체포 배경은

지난 19일 일본의 도쿄지검 특수부는 카를로스 곤 닛산자동차 회장(프랑스의 르노자동차 회장 겸무)을 금융상품거래법 위반(유가증권보고서의 허위기재) 혐의로 체포했다. 곤 회장은 2011년 3월기부터 2015년 3월기까지(5년분)의 임원 보수 약 100억 엔(약 1천억 원) 중에서 유가증권보고서에는 약 절반 정도(약 50억 엔)로 보수를 축소해 허위기재한 용의를 받고 있다. 한편, 유가증권보고서의 허위 기재에 대한 책임이 곤 회장 개인에게만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일본에서는 곤 회장의 체포와 관련해, 도쿄지검특수부와 닛산 집행임원들 간에 수사에 협조하는 대신에 형사처분을 경감하는 합의(이른바 사법 거래)를 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다만 아직 닛산자동차가 법인으로서의 책임을 추궁당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번 곤 회장의 체포 직후인 11월 22일 닛산자동차는 임시이사회를 개최해, 체포된 곤 회장의 회장직을 해임하고, 대표권도 회수할 것을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이번 곤 회장의 체포와 그 이후의 움직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르노자동차와 닛산자동차의 관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거품경제의 붕괴 이후 경영위기에 직면했던 닛산은 르노와 자본 제휴 등을 통해 르노-닛산 동맹을 체결했다. 명목상 양자 관계는 동맹이다. 다만 르노는 닛산의 43.4%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으며, 닛산자동차는 르노자동차의 주식을 15% 보유하고 있다. 형식적으로 양자는 주식을 상호보유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르노가 더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닛산이 가진 르노 주식은 의결권이 없다. 즉 닛산은 실질적으로 르노 지배하에 있는 기업이다. 그러나 닛산은 자동차 판매 대수나 수익 면에서 르노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배당을 통해 르노의 이익에 크게 공헌하고 있다. 또한 프랑스 정부는 르노의 15%의 주식을 보유하는 것을 통해, 르노 자동차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닛산-르노 자동차의 연합은 국경을 넘는 자동차 회사 간의 성공적인 기업연합 모델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는데, 사실 그 이면에는 양자 간에 적지 않은 갈등 요인이 존재한다. 르노의 대주주인 프랑스 정부는 닛산에 대한 지배력 강화를 도모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곤 회장은 르노와 닛산의 합병을 추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에 관해서 닛산 내부에서는 닛산자동차의 독립성이 훼손되는 것에 대해 경계심이 커지고 있다. 이번 곤 회장의 체포로 인해, 기존 르노-닛산의 관계는 어떻게 변할까. 이번 곤 회장의 체포에 대해 프랑스와 일본의 양국 정부는 닛산과 르노 연합의 협력관계 유지를 양국 정부는 강력하게 지지한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또한 이미 르노와 닛산은 부품의 공통화를 상당 부분 추진했다. 이러한 점에 주목한다면, 적어도 단기적으로 르노-닛산 동맹이 완전히 해소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 그러나 닛산과 르노 간의 불평등한 관계에 대해 닛산 내부의 불만이 커지는 상황 아래에서 일본의 경제산업성(산업정책을 관할하는 중앙정부조직) 등 일본 정부 내에서 일본 자동차 회사를 지키자는 논리가 고조되면 일본 정부가 닛산의 독립성 강화를 도모할 가능성도 있다. 향후에 국경을 넘은 다양한 형태의 기업 간 제휴 등이 증가할수록 국가 간의 협력관계가 증진될 가능성이 커진다고 할 수 있지만, 자국우선주의로 인해 기업 간 갈등이 국가 간 갈등으로 연결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세계화 시대에 점차 기업에는 국적이 없다는 시각이 확산하고 있지만, 여전히 기업의 국적은 국가 간 마찰을 가져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박성빈 아주대 국제학부장일본정책연구센터장

[세계는 지금] 중국의 미래, 빅데이터

바야흐로 빅데이터의 시대다. 셀 수 없는 사람들이 인터넷의 공간으로 몰려들면서 엄청난 데이터가 쌓인다.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열광하게 되는지 점점 더 잘 알게 되어간다. 택시를 많이 부르는 지점을 따라 심야버스 노선을 짜고, 한 지역에서 많이 주문되는 상품을 미리 보내 배송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일상의 변화들이 다 빅데이터 분석에 기반한다. 우에다 모치오가 말한 대로 우리는 데이터를 통해 신의 시점에서 세계를 이해하게 되어 간다. 빅데이터로 일상만 바뀌는 것이 아니다. 중국과 같이 넓고 인구가 많은 나라에서는 완전히 다른 사회, 정치, 경제의 패러다임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중국의 거대기업 알리바바를 만든 마윈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빅데이터 기술이 중국 계획경제의 성공 가능성을 높인다고 주장했다. 2030년 세계는 시장경제와 계획경제를 놓고 대논쟁을 다시 벌이게 될 것이다. 꼬박 100년 전엔 미국이 주장한 시장경제가 이기고 러시아가 졌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2030년엔 계획경제가 더 우월한 시스템이 될 것이다. 사실 빅데이터 기술 자체가 중국 친연적이다. 엄청난 인구, 특히 7억 명이 넘는 세계 최대의 인터넷 사용자가 낳는 중국의 데이터는 그 자체가 빅데이터다. 넒은 영토로 인해 지역, 기후, 종족, 생산기반 등 표본의 다양성이 커 빅데이터의 질도 높다. 인터넷 보급률이 높아질수록 중국은 그야말로 신의 시점에서 중국 사회경제의 보이지 않는 손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중국 중앙 및 지방 정부에서도 빅데이터 활용을 위한 여러 정책을 만들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민간 사업자들과의 협력을 통해 다양한 빅데이터 응용 프로젝트를 전개하고 있다. 구이저우, 산동, 충칭, 푸젠, 광둥, 저장, 지린, 광시장족자치구 등 여러 지역에서 아예 빅데이터 관리국을 신설해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대체로 경제 부문을 성장시키는 데 집중하고 있지만, 경제발전뿐 아니라 여러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적극 활용되고 있다. 베이징에서 스모그 등 환경문제를 위해 빅데이터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좋은 예이다. 중국은 빅데이터 기술을 통해 더욱 부자가 되고, 생활이나 사회문제의 해결에도 큰 진전이 있을 것이다. 선진국의 보수 언론에서는 중국의 데이터 기술이 감시, 탄압의 도구로 활용되고 권력 강화에 악용될 것을 걱정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런 흐름을 디지털 레닌주의라 규정하기도 했다. 중국 인권에 대한 미국의 시각은 지나치지만, 기술의 위협에 대한 경고는 귀담아들을 만하다. 인간은 생각보다 환경에 의존적이어서, 환경의 변화를 통해 사람의 행동을 유도하는 것이 가능하다. 빅데이터 기술은 사람을 분석해서 그들을 쉽게 한 방향으로 유도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된다. 그러나 이런 문제가 비단 중국에만 일어날까. 미국의 경우 정부보다는 거대 플랫폼 기업의 빅데이터 전용 문제에 직면해 있다. 심리학까지 동원해서 대중들을 과소비로 이끄는 문제가, 정부가 특정 이념으로 유도하는 문제보다 덜 심각하다고 볼 수 없다. 결국 관건은 자본이건 권력이건 기술을 바른 목적을 위해 쓰느냐에 달렸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빅데이터 기술 발전의 최적지인 중국에서 빅데이터가 인간을 위해 훌륭히 복무하는 사례가 만들어지길 바란다. 중국의 미래는 빅데이터에 달렸고, 밝거나 어두울 그 미래는 인류 전체의 이정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민성 한신대 한중문화콘텐츠학과장

[세계는 지금] 성과 없는 성과주의

저런 멍청한 놈이 어떻게 검사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부하 평검사를 두고 푸념하던 어느 부장검사의 말이었다. 경영자문을 해주던 창원에 있는 어느 기업에서 경영진과 식사를 하면서 이 이야기를 꺼냈다가 짐짓 분위기가 심각해졌다. 어느 조직이나 저성과자 문제가 있다는 차원에서 별생각 없이 들려준 말이었는데, 인사담당 임원이 너무 염치가 없다며 열변을 토했다. 대한민국 검사 정도면 지적 능력이 최상위 수준일 텐데 육성은 못 해 줄망정 비난하는 건 누워서 침 뱉기라는 게다. 일반기업은 그보다 못한 친구들을 데려다 교육하고 인재로 양성하느라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관리자로서 본분을 망각한 배부른 소리라는 항변이었다. 저성장 경제국면에 고착되면서 우리 사회가 성과에 유독 민감해졌다. 비용이나 생산성을 보다 진중하게 다루면서 성과와 관련된 오류도 적잖이 불거지고 있다. 우선, 대부분 기업의 성과평가는 비과학적 분포를 가정한다. 예를 들어, 고성과자 S등급은 10%, A부터 C등급은 각각 20%, 40%, 20%, 저성과자 D등급은 10%로 각각 강제할당하는 식이다. 그러나 신뢰성공학에서 일찍이 밝혀낸 성과분포의 전형은 파레토 분포라고 불리는, 완만한 L자 모양을 띤다. 소수 직원이 특출한 고성과를 달성하는 반면, 대다수 직원의 성과는 도긴개긴이다. 많아야 1, 2%인 슈퍼스타 외에는 성과수준이 비슷해 등급으로 구분 짓는 일이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성과평가의 객관성ㆍ정확성에 대한 원론적인 의심을 차치하더라도, 대부분 스스로 등급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설상가상 직원이 실제 창출한 성과와 어긋나 버린 평가등급을 기준으로 급여인상, 성과급, 승진 등의 보상이 차등적용되는 경우다. 성과 있는 곳에 보상 있다고 역설하는 성과주의는 마땅하다. 그러나 현실의 성과보상제도는 첫 단추를 잘못 끼워, 성과 없는 곳에 보상이 이루어지고 있다. 게다가 건전한 경쟁의식을 조직 내에 조성하려던 성과주의는 위화감 조성, 사기 저하, 협력 저해, 불신을 가져왔다. 친구가 다른 회사에서 1천만 원 더 받는 것은 용납해도, 같은 회사에 다니는 동료가 1만 원 더 받는 것에는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이 인간이다. 하물며 상대평가등급에 따라 하위직원들을 기계적으로 퇴출하는 랭크앤양크(rank and yank)를 지향하는 기업이 아직도 늘고 있다니 개탄할 일이다. 해고의 두려움은 직원들이 달성하기 쉬운 일에만 치중하게 만들어 도전적인 시도, 창의성을 가로막는다. 무엇보다 일이란 자존감이어야 하는데, 처벌은 일을 생존에 얽매인 자존심으로 쭈그러뜨린다. 이를 주도했던 GE뿐만 아니라 어도비, 마이크로소프트, 골드만삭스, 갭, 액센츄어 등 강제할당식 상대평가를 폐지하는 기업은 이미 늘고 있다. 소통과 협력의 가치를 절대평가에서 모색하고, 평가로부터 보상을 분리하여 역량개발의 피드백으로만 활용한다. 돌이켜, 성과를 의미하는 영어는 퍼포먼스(performance)다. 공연, 연극, 연주라는 뜻도 있어 배운 것을 행동으로 보여준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래서 학습 및 성장의 관점에서 수행으로도 번역된다. 목적을 달성하려는 행위, 계획을 실천하는 과정이 강조된 개념이다. 이에 비해 성과는 수행의 결과, 업적을 강조하는 관리 및 통제의 관점이다. 평가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다. 평가의 목적은 퍼포먼스, 즉 수행개선과 성과제고이다. 성과통제에만 경도되어 수행을 등한시하면 안 된다. 행정편의에 빠져 평가와 보상을 어쭙잖게 얽고 있는지, 그로 인해 오히려 수행이 훼멸되지 않았는지 살펴봐야 한다. 우형록 경기대 융합교양대학 교수

[세계는 지금] 美中 무역마찰과 동북아 국제관계

미중 무역전쟁이 상대국 상품에 대한 관세부과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정치적으로 한반도 남북한 문제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보다 전 세계의 정치경제에 영향을 미친 것이 미중 무역전쟁이라 할 수 있다.이러한 미중 무역마찰과 그 정책의 대립은 한반도 남북한 문제에서도 나타나는데, 한때 한반도 문제에서 강경한 태도를 취했던 중국이 일단 뒤로 물러서는 모습으로 드러나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이라는 세계 강대국이 국가이익과 국가안보전략을 한반도 지역정치 이상으로 고려했다는 점에서 미중 무역전쟁의 결과가 한반도 비핵화 문제와 남북한에 미칠 영향은 적지 않을 것이다. 북중 관계를 보면 양국은 국가 건국 전인 항일전쟁이나 사회주의 국가건설시기에도 협력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북한이 소련의 신탁통치를 받아 중국과의 관계와는 단절된 시기가 있는 것처럼 보이나, 당시 소련 주도의 사회주의 국가 건설이라는 측면에서 중국과 북한은 모두 소련의 지원을 받았다는 점에서 서로 유대관계를 가진 것이다.한국은 해방 후부터 미국과의 관계가 더욱 공고해졌다. 2차 세계대전의 태평양전쟁에서 미국과 소련 그리고 중국의 협력이 일본을 패전으로 몰아넣었고 냉전시기 미일 관계는 동맹의 관계로 변화됐다.한국은 승전국 미국의 신탁통치를 받으며 미국과의 굳건한 안보협력관계를 이루어오다가 공산세력의 침공인 한국전쟁부터 국가의 안보와 재건을 위한 협력을 강화해 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관계에서 동북아는 현재 러시아, 중국, 북한 그리고 한국, 미국, 일본의 대립구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은 새 정부 들어 비핵화 및 한반도 평화를 위한 노력이 두드러지지만, 동북아 국제정세에서 강대국들의 안보, 경제 이익과 관련된 대립은 종식되지 않고 있다. 모든 전쟁의 원인 중 하나인 경제적 마찰과 대립은 결국 안보동맹이나 협력체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데, 미중이라는 강대국들의 경제적 마찰은 결국 동북아 국제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아직도 점입가경인 상태인데, 이는 어느 정도 절충을 위한 마지막 힘겨루기로 볼 수도 있다. 중국의 부상은 세계 패권강국 미국의 위협이 되는 측면에서 동아시아에서 나타나는 미중간의 갈등은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경제가 꾸준히 성장해 나간다는 것과 중국이 군사력을 꾸준히 강화하고 있다는 것은 동아시아에서 미중갈등의 주원인이 되는 것이다. 이 중에서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은 중국의 경제적 공세가 미국 경제와 영향력을 약화시킨다는 우려에 따른 결정이었다고 본다. 중국의 동아시아에서 영향력 강화는 기존 동아시아 체제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측면에서 미국은 자국경제를 강화시키며 중국 경제성장을 억지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미중을 포함한 강대국들의 대립에 동북아 국제관계도 요동치는 것이다. 여기에 북핵문제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대외전략은 항상 수면 위와 아래에서 꾸준하게 진행되며 대립과 협력의 갈등을 반복하고 있다. 미국이 중간선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북미회담 일정을 발표하며 미중 정상 간 통화를 하며 이달 말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기간 미중 양국 정상 회동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에 미중 경제 갈등이 어느 정도 봉합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는 하지만, 미중 간 경제마찰의 모순의 해결방향을 찾았다고 볼 수 있지만 미중간의 안보 및 국가이익을 중심으로 한 대립이 끝났다는 것은 아니다. 과거 동아시아의 역사에서처럼 동아시아 지역이 강대국들의 이익에 의해 좌우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반도의 남북한과 동아시아 국가들의 적절한 대응도 필요할 것이다. 김진호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세계는 지금] 남은 3년간 아베 수상이 하고 싶은 것은

올해 9월 아베 수상은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경쟁자인 이시바 전 자민당 간사장을 물리치고 자민당 총재로서 연속 3선에 성공했다. 자민당 규칙에서는 당 총재임기를 ‘연속 3기 9년’까지로 규정하고 있어 아베 수상의 최대 재임기간은 2021년 9월까지이다. 내년 11월20일에 아베 수상의 재임기간은 기존 가쓰라 다로 수상(2천886일)의 최장수 재임기록을 누르고 일본 헌정사상 최장 재임 수상이 된다. 일본 내에서는 점차 아베 수상의 레임덕 가능성이 지적되고 있다. 예를 들면 일본의 유명 저널리스트인 다와라 소이치는 AERA에서 “아베 수상의 레임덕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다만 아베 수상의 레임덕이 시작된다고 해도, 이는 한국에서 대통령 임기 후반 관찰되는 레임덕과는 조금 다른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일본에서는 통상 내각 지지율이 30%보다 낮아지면 내각 자체를 유지하는 것이 점차 어려워질 것으로 본다. 즉 아베 수상이 30% 이상의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다면 수상의 리더십이 극단적으로 약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또한 차기 수상 역시 여전히 자민당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3년간 아베 수상이 어떠한 정책을 추진할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시각이 존재하지만, 이를 짐작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되는 것은 이달 24일 국회에서 이루어진 아베 수상의 소신 표명 연설이다. 아베 수상은 동 연설 서두에서 “격동하는 세계를 한가운데에서 리드하는 일본을 만든다”고 설명하고 “다음 3년간 그 선두에 서겠다”는 결의를 표명했다. 아베 수상 자신도 본인의 남은 임기 3년을 강하게 의식하고, 소신 표명 연설을 통해 본인의 역점 정책과제를 명시적으로 제시한 것으로 판단된다. 아베 수상은 일본의 현행 헌법은 GHQ(연합군 최고사령부) 점령기에 GHQ의 강요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므로, 이제는 일본인 스스로 새로운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왔고, 이번 연설에도 기존처럼 자민당의 헌법개정안의 국회 제출에 대한 의욕을 표명했다. 헌법 개정에 대해서는 자민당과 연립정권을 구성하고 있는 공명당이 소극적이며,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은 강렬하게 반대하고 있으며, 또한 개헌에 대한 일본 여론의 지지도 확고하지 않다. 아베 수상이 남은 임기 3년 안에 헌법 개정을 실현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두 번째로 아베 수상은 외국인 인재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기 위해서 입국관리법을 개정해 취로(就, 취업)를 목적으로 하는 새로운 체류자격 신설을 강조한 것이다. 일본은 ‘아베노믹스’(아베 수상이 추진하는 일본경제 활성화 정책) 등의 영향으로 노동력 부족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지난 7월 기준의 유효 구인배율(구직자 1명당 일자리 수)은 1.63배를 기록하고 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외국인 노동자 수용에 소극적이었지만, 저출산ㆍ고령화가 진전되고, 호경기가 지속하는 가운데 기업 측의 외국인 노동자 수용 확대에 대한 요청을 일본 정부로서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향후 아베 수상의 국정 장악력이 어느 정도는 약해질 것으로 예상하지만, 한국이 직면한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여전히 아베 내각과는 협력관계는 중요하다. 특히 한국이 직면한 고용 현실을 고려한다면 한국 인재의 일본에서의 취업기회가 확대될 수 있도록 일본과의 협력이 중요할 것이다. 다만 외국 인재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한국도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박성빈 아주대 국제학부장·일본정책연구센터장

[세계는 지금] 공맹의 꿈은 계속되는가

얼마 전 중국 산동여대 학생들과 식사를 같이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논어(論語)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나라에서 여전히 논어가 인기 있는 책이라고 하니 반가워했다. 학생들은 고교 시절 열심히 논어를 배우고 암송했다고 한다. 내친김에 같이 논어 첫 머리를 낭송해보았다. 내가 “배우고 때로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하니, 학생들은 “시에얼스시즈 부이위에후”라고 했다. 한순간 지리와 시대의 거리가 사라지는 즐거움을 나누었다. 이처럼 오늘의 중국에서 유교 교육은 익숙한 일상이 된 지 오래다. 교과 과정에 상당 부분 포함되었을 뿐 아니라, 유교경전을 익히는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산동의 성도(省都) 제남을 비롯해 공자의 흔적이 있는 곳에는 거대한 공자상들이 즐비하다. 불과 오십 년 전 곡부의 공자 사당을 부수며 질풍노도의 비공(非孔) 운동을 전개했던 나라가 맞나 싶다. 공묘(孔廟)를 부순 것도 중국공산당이지만, 유교를 다시 부활시키는 것도 그들이다. ‘중국몽(中國夢)’은 더 이상 다른 나라를 따라하거나 배울 필요 없이 스스로 최강의 나라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인데, 그러려면 자기 정체성의 정립이 필수적이다. 그들은 유교의 전통을 통해 스스로 국가 이념을 창출할 뿐 아니라 세계 질서를 선도할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일찍이 철학자 리쩌허우는 유교의 전통이 인류문명에 중요한 공헌을 할 것이고 그 시기는 빠르면 21세기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들은 유교의 공동체주의와 사회주의 가치관을 조화시켜 중국만의 정치 가치를 재구축하려고 한다. 그래서 시진핑 주석은 공산당 창당 이래 처음 공자묘를 참배하고 공자연구원에서 연설했다. 핵심공산당원을 교육하는 중앙당교에서는 유교의 원리와 통치를 연결하게 하는 강의가 이어지고 있다. 나아가 현재 중국 통치체계의 근원을 유교 시대 관료제에 연결하기도 한다. 유교 엘리트들이 과거를 통해 관계에 진출해 천하를 다스린 것처럼, 중국공산당도 잘 훈련된 엘리트들이 중심이 되어 안정적 통치체계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이미 중국은 엘리트 관료체제에 훨씬 가깝다. 중국공산당의 핵심인 상무위원과 정치국 위원 중 석사 이상이 72%를 차지하고 있다. 거기에 문치(文治)가 강화되는 경향이 뚜렷하다. 중앙위원은 문과계열이 80%를 차지하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중국은 고래의 중앙집중적 관료체제 국가가 되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통치 차원의 필요가 있고 국가 이념의 가치로 요청된다 해도, 유교 자체가 사람들의 마음을 끌지 못한다면 어떤 정치적 시도도 무위로 끝나고 말 것이다. 지금도 사람들은 공자의 어짊(仁)이나 맹자의 의로움(義)을 말할 때 여전히 감동한다. 공맹의 어록에는 먼 옛날 농경 사회의 따뜻한 전통이 간직되어 있고, 우리는 언제나 그것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오래된 삶의 아름다움이 공맹의 유가 사상 안에 있는 한, 사회 구성의 원리로 공맹이 소환되는 일은 앞으로도 지속할 것이다. 그것은 중국만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중국이든 우리든 부디 공맹의 진짜 가르침에 주목하길 바란다. 공맹의 꿈이 그저 국가 강성의 도구로 쓰이지 않고, 어짊과 의로움으로 구성되고 유지되는 대동(大同) 사회 그 자체에 대한 비전과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날 중국 학생들과 같이 읊조린 또 다른 논어의 구절, “사람이 어질지 않으면 예를 행한들 무엇하며, 곡을 연주한들 무엇하리”에서 말한 것처럼. 최민성 한신대 한중문화콘텐츠학과장

[세계는 지금] 전류전쟁과 주주자본주의

지난 6월 제너럴 일렉트릭(GE)이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의 구성 종목에서 퇴출당했다. 일명 다우지수로도 불리는데 S&P500지수, 나스닥 종합주가지수와 함께 미국 증권시장의 동향을 가늠하는 주요 잣대 중 하나다. 다우지수는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가장 우량한 30개 상장사의 주가로 산출된다.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나이키, 코카콜라, 맥도날드 등 미국을 대표하는 쟁쟁한 기업들이 포함됐다. 지금까지 다우지수에 들었던 기업들이 그 영예를 누렸던 평균 기간은 29년 11개월에 불과하다. 중간에 잠시 탈락했던 시기가 있었지만, GE는 다우지수가 출범했던 1896년부터 굳건히 자리매김했다. 더욱이 1907년 이후로는 줄곧 다우지수를 지켜온 명실 공히 최장수 초우량기업이다. GE는 사업 초기에 석권한 전구 및 가전제품 시장을 토대로, 세계대전을 거치며 항공, 무기 및 방위산업으로 사업부문을 무려 7배 확장하는 기회를 잡았다. 2000년 전후로 ‘세계 1위 아니면 2위’의 기치 아래 과감한 매각과 인수합병으로 몸집을 불려 복합기업으로 변신했다. 전 세계가 GE의 변화와 혁신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그 행보는 ‘경영의 교과서’로 불렸다. 흔히 GE는 토머스 에디슨이 설립한 기업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에디슨이 배제되면서 지금의 GE가 탄생한다. 당시는 전기산업의 표준을 두고 교류와 직류가 맞붙은 ‘전류전쟁’이 한창이었다. 직류 진영은 왕(!)들의 연합이었다. 금융왕 JP모건의 자본이 발명왕 에디슨을 지원했다. 경쟁자는 교류를 개발한 풍운의 천재 과학자, 니콜라 테슬라였다. 에디슨은 개, 말, 코끼리를 교류로 감전시켜 죽이는 공개실험을 펼쳤다. 급기야 사형집행용 전기의자를 개발하는 데도 교류를 적용했다. 교류의 위험성을 부각시키는 비열한 비방마케팅을 벌인 것이다. 모건은 더욱 악랄했다. 주식시장에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막강한 자금력으로 테슬라를 압박해 결국 교류 특허권을 포기하게 한다. 갖은 흉계에도 1893년 시카고 세계박람회의 전기시설에 교류가 채택되면서 전류전쟁은 일단락된다. 장거리 송전에도 전력 손실이 적은 교류의 경제성이 인정받은 결과였다. 그러나 특허권을 포기한 테슬라에게 돌아온 경제적 이득은 없었다. 패배한 에디슨은 과학기술자로서 자존심을 구겼고, 부실한 전기의자로 사람을 태워 죽였다는 오점까지 남겼다. 최후의 승자는 모건이다. 모건은 파산위기에 처한 ‘에디슨 제너럴 일렉트릭’을, 교류기술을 보유한 ‘톰슨-휴스턴 일렉트릭’을 합병해 회생시킨다. 이 과정에 에디슨을 회사에서 내쫓고, 회사 간판에서도 에디슨 이름을 지워 ‘제너럴 일렉트릭’만 남겼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출범한 GE는 창업기술자의 기업가정신보다 자본을 투자한 금융의 권력이 지배적일 수밖에 없었다. ‘안 하는 일이 없다’는 거대 복합기업의 위용 뒤에는, 주주의 입맛에 맞춘 ‘돈 되는 일은 다 한다’는 유전자가 도도히 작동하고 있었다. 사뭇, 주가부양과 배당을 목적 삼아 단기실적에 경도되었던 셈이다. “주주가치 극대화를 전략으로 잘못 생각했었다. 주주가치는 성심껏 일한 노력의 결과로 따라오는 것이다”라는 회한은 이를 반증한다. 1981년부터 20년간 GE를 이끌었던 잭 웰치의 말이다. 그는 ‘경영의 신’이자 GE 주가를 40배로 끌어올린 ‘주주가치운동의 아버지’였다. 작금은 주주뿐 아니라 고객, 조직구성원, 협력사를 아우르는 이해관계자의 가치를 높일 새로운 철학이 절실한 때다. GE는 이번 달에 순혈주의 전통을 깨고 외부인사인 로렌스 컬프를 회장으로 전격 교체했다. 그가 새로운 가치와 돌파구를 제시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우형록 경기대 융합교양대학 교수

[세계는 지금] 북핵문제와 동북아 국제관계속 국가이익의 경영

동북아 국제관계의 변화가 북핵문제로부터 야기됐다는 것은 일반론이다. 즉, 북한의 핵개발과 도발이 한반도와 국제사회를 긴장의 도가니로 몰아넣었고, 이에 한미동맹을 기초로 한 한국의 대북 억제력이 강화되고, 국제사회도 북한에 대한 제재를 강화해 나갔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야기다. 이러한 한반도 문제를 동북아 국제관계의 질서에 편입해 본다면 북의 도발과 한미동맹의 강화는 동북아국제사회의 국제관계를 한미일과 북중러의 대립관계로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미중간의 대립이 이 동북아 국제관계의 주요변수로 보이는 것도 맞는 내용일 것이고, 여기에 국제사회에서 그 영향력을 발휘하는 유럽, 러시아, 일본을 포함한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는 국가들이 자국의 입장을 나타내고 있는 것도 상관 국가들의 이익이 복잡하게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과거 중소 냉전구도가 변형된 형태의 강대국과 국가 간 국가이익이라는 문제로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여기에 핵 문제를 포함한 안보이익이 주요 이슈로 등장했다. 국제사회는 국가들의 경제이익과 국내외적 안보가 동맹구조라는 틀에서 서로 힘겨루기를 하는 것이다. 핵심이익은 경제와 안보가 결합한 국가이익이라 할 수 있다. 국가의 존재와 발전에는 국가이익이라는 국가경영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중국이나 러시아, 아시아, 유럽 등지에서 대립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이다. 미국이 중국을 태평양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봉쇄하는 것이나 무역분쟁을 벌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 같은 측면에서 본다면 북한은 핵무기를 활용한 안보이익을 통해 국가경영에서 경제이익을 도모하려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고, 동북아 국제관계의 대립과 협력이라는 구조를 적절히 활용하며 자신의 국가이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에 한국도 국가이익이라는 문제를 지정학적 측면과 동맹과 협력국가와의 경제적 이익을 고려하며 움직여야 한다. 한국의 북핵문제와 한반도와 동북아국제관계에서의 역할론이 부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국제관계의 복잡함 속에서 현재 세계는 경제상황의 악화라는 문제에 봉착해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주장하는 트럼프의 미국을 제외하고 고용지수가 향상되고 경제적 발전을 이룬 지역은 많지 않다. 과거 기적과 같은 경제발전을 이뤄왔던 중국도 국내외 경제 환경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제 환경도 그리 녹녹한 상황은 아니다. 남북한 문제와 북핵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우리 정부가 그리 쉬운 상황에 처해있는 것은 아니다. 북핵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동북아 국제관계에서 한국의 입지를 굳히면서 평화와 발전을 이루어야 하는 현 정부의 부담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경제 문제를 해결하려면 경제지표와 이론적 해결방안보다는 더 실제적인 시장 밀착한 경제정책으로 국민경제를 향상시켜야 할지도 모르겠다. 최근 북미회담이 다시 순풍을 타고 있다. 북한은 핵개발과 도발에 대한 처분으로 경제적 제재를 받는 상태다. 이 제재가 시작될 때 북한이 경제적 문제로 얼마 버티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미 내성이 생긴 북한은 자체 장마당 경제를 활용해 과거보다는 그리 더 어렵지 않은 경제상황을 유지하고 있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사회는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고, 그 안에는 안보이익과 경제이익이라는 두 개의 목적이 있다. 우리 정부도 북핵 문제 해결과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지분을 찾는 데 있어 안보이익과 경제이익을 동시에 고려해야 할 시기일 것이다. 북한이 개혁개방을 하려는 이유도 경제이익이라는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라고 본다. 우리도 안보이익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지만, 국가경영의 기본이 되는 경제이익과 국민경제를 절대 소홀히 하면 안 될 것이다. 김진호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세계는 지금] 일본의 초식남 현상

‘초식남(草食男)’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셨나요. 본래 초식남이라는 용어는 일본에서 건너왔다. 초식남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여성 칼럼니스트 후카자와 마키다. 그녀는 2006년 여성에게 인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연애에 소극적인 남성을 초식남이라 명명했다.초식남이라는 용어가 일본 사회에서 폭넓게 사용된 것은 2008년부터다. 기존 일본의 여성잡지의 연애기사에서는 어떻게 하면 남성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여성이 될 수 있을까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즉 기존의 남성은 이성에 대해 관심이 있으므로, 복장 등을 귀엽게 꾸미면 사랑스러운 여성이 될 수 있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남성과의 연애기회가 생긴다고 본 것이다.그러나 여성지 ‘non-no’는 2008년 4월 5일호에서 더 이상 일본의 남성이 여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접근해오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고 설명하고, 향후 초식남과 사귀기 위한 다음 3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첫째 초식남은 남자로서의 능동성이 없어서 여성이 연애를 리드해야 한다. 둘째 과도한 밀당(밀고 당기기), 연애 기술은 금물이고 대신, 알기 쉬운 호의를 표현해줘야 한다. 셋째 초식남은 여성 내면의 매력을 중시하기 때문에 인간성을 높여야 한다. 초식남은 2009년 유행어 대상에서 탑 10에 뽑히는 등 일본 사회에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초식남의 출현과 함께, 일본에서는 여성 자신이 연애나 결혼상대를 적극적으로 ‘사냥’하러 가는 ‘육식계 여성(육식녀, 肉食女)’이라는 단어가 주목을 받고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일본에서는 여성이 결혼하고자 한다면 여성 자신이 보다 적극적으로 남성을 ‘꼬실’ 필요가 생긴 것이다. 최근 일본의 남성은 초식남을 넘어서 ‘절식남(絶食男)’으로 불린다. 절식남이란 여성에 대해서 전혀 흥미가 없는 남성을 의미한다고 한다. 일본 사회에서 초식남과 육식녀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결혼정보회사인 파트너 에이전시의 조사에 의하면, 13%의 남성이 ‘본인은 완전히 초식남’이라고 답했으며, 61%가 ‘본인도 굳이 말하자면 초식남에 해당한다’고 답했다. 즉 일본 남성 대다수가 자신을 초식남으로 인식하고 있다. 동 조사에 의하면 여성들은 초식남에 대해 ‘믿음직스럽지 못하다(39%)’, ‘냐약하다(11%)’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강하게 가지고 있다.한편 육식녀에 대해서 여성들은 ‘품격이 없다(20%)’, ‘거슬린다(26%)’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경우가 적지 않지만, 남성은 육식녀에 대해 ‘믿음직스럽다(13%)’, ‘사귀고 싶다(22%)’ 등 긍정적인 의견이 과반을 넘었다. 일본에서 초식남, 육식녀 현상은 과도하게 여성잡지 등에 의해서 그 이미지가 부풀려진 측면이 있지만, 많은 사람이 그 용어에 공감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즉 이러한 용어의 등장은 남성은 남자다워야 하며, 여성은 여자다워야 한다는 일본 사회의 상식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본에서는 한류 드라마나 영화의 영향으로 한국 남성은 열정적이고 남자다운 면을 가지고 있는 남자(이른바 육식남)로 인식되고 있다. 즉 일본 여성들은 일본 남성이 초식화해 나약해지고 있는 반면 한국 남성들은 지금도 연애와 일 등에 대한 적극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다만 최근 한국에서도 남성들이 점차 초식화되어 가고 있다는 이야기가 증가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 사회든 남성과 여성의 성역할, 양자의 관계라는 것도 항상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으며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을 강조하는 것에 대해서 주의 깊게 접근해야 한다. 초식남, 육식녀는 갑자기 나타난 돌연변이가 아니라 그 자체로 사회 변화의 결과다. 그들의 등장을 기성세대가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 새로운 사회를 이끌어나갈 젊은 세대의 변화에 대해 기성세대는 사고의 유연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박성빈 아주대 국제학부장·일본정책연구센터장

[세계는 지금] 대륙의 기상, 제대로 보기

중국은 큰 나라다. 영토는 우리나라의 96배 정도고, 인구는 25배를 넘는다. 다수를 차지하는 한족을 비롯해 55개의 다양한 민족이 함께 산다. 한 나라 안에 열대기후부터 냉대기후까지 모두 나타난다. 서남쪽 운남성의 경우 고도가 높은 북쪽에선 만년설을 만날 수 있고 남쪽 평지에선 열대 과일 바나나를 살 수 있다. 이 정도면 거의 하나의 나라라기보다는 옛말 그대로 천하(天下)에 가깝다. 넓고 사람 많고 다양한 환경의 공간에서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인구만 놓고 단순 계산을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일어날 일의 25배의 일들이 발생할 거로 예측할 수 있다. 나쁜 일이건 좋은 일이건 수십 배로 일어나고 있고, 그 일들의 다양성도 수십 배에 달할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아주 놀랍고 이상한 일도 중국의 규모라면 일어날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중국에 대한 관심이 이 기이한 일에 집중된다는 점이다. 중국 어딘가에서 가짜 계란을 만들고, 엽기적인 싸움이 일어나고, 부실 건물이 붕괴하고, 위험한 백신이 돌아다니고, 불량 분유가 팔리고, 온갖 엽기적인 일들이 벌어진다는 이야기들. 이런 이야기들이 재미 삼아 돌고 돌면서 중국은 그 어떤 나라에서도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는 괴이한 나라처럼 여겨진다. 네티즌들은 그런 일들을 ‘대륙의 기상’이라고 지칭하며 열심히 네트워크상에 퍼뜨린다. 이때 ‘대륙’이라는 말은 공간의 웅혼함을 뜻하지 않는다. 기괴한 일들이 벌어지는 가상의 공간이라는 뉘앙스이다. ‘기상(氣像)’이라는 말도 그렇다. 타고난 기개, 씩씩한 마음씨를 나타내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기이한 인상이요(奇相), 무모한 만용에 가까운 개념이다. 다시 말해 ‘대륙의 기상’은 판타지 공간의 무모한 일들을 지칭하는 말이 되고, 중국이 바로 그런 나라라는 비아냥이 담겨 있다. 그러니 그의 대응으로 ‘대륙의 실수’라는 말이 동시에 쓰인다. 중국의 좋은 제품, 중국의 좋은 제도를 일컫는 말이다. 제대로 된 일은 실수로 나온 것이라고 하니 당연히 실수가 아닌 일이 기이한 일, 잘못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중국이라는 판타지 공간은 기이함이 일상이라는 인식이 저변화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그들의 일상이 아니라 그들에게조차 낯설고 이상한 일들을 중심으로 중국이 소개될 때 우리는 더 이상 중국의 어떤 소식에도 놀라지 않게 된다. 알랭 드 보통은 뉴스의 시대에서 기괴한 것, 특별한 것, 익숙하지 않은 것에만 주목하는 해외뉴스에 대해 비판한다. 그런 태도 때문에 정작 그들이 겪는 놀라운 일, 아픈 일, 비정상적인 일에 대해 연대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안으로, 우리가 다른 나라의 일상, 그 인간적인 면에 더 주목하고 공감할 때 그들에게 놀라운 일이 우리에게도 놀라운 일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원칙에서 중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대로라면 진정 인간적 연대를 가져야 할 그곳의 재난이나 고통, 반대로 칭찬해 마땅할 그들의 업적에 대해서 우리는 희화화한 시선을 거두지 않을지 모른다. 나아가 그런 시선은 우리 국민에게 중국을 실제 이상으로 혐오하거나 꺼리거나 두려워하는 기제로 작동하기도 한다. 우리가 그 넓고 사람 많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낯선 일에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일상에 대해 공감할 때 중국은 우리에게 진정한 실체를 드러내 줄 것이다. 그럴 때 우리 자신도 한 이웃 나라를 동등한 세계로 바라보는 성숙한 시선의 세계인이 될 수 있다. 최민성 한신대학교 한중문화콘텐츠학과장

[세계는 지금] 통계왜곡과 문해력

스탈린 집권기의 대외홍보용 통계는 왜곡된 사례로 잘 알려졌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사업에서 철강생산량 목표는 1천30만t이었고, 사업 시작연도인 1928년의 생산량은 420만t이었다. 즉 610만t의 생산량 증대가 이루어져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런데 사업이 끝난 후 실제 생산량은 590만t에 그쳤다. 초기 기준치 420만t에 비해 실제 증가량은 170만t에 그쳐, 목표달성률은 27.9%에 불과했다. 하지만 스탈린 정권은 목표달성률을 57.3%라고 선전했다. 기준을 1천30만t으로 설정하고 실적치인 590만t을 나눈 값이다. 이 황당한 계산법대로라면 사업 초기의 420만t은 이미 목표의 40.8%(420÷1030)를 달성해 버린 상태가 된다. 우리 가까이에도 국가통계 관련 꼼수는 허다하다. 통계청은 국민생활 양식의 변화를 반영하여 5년마다 물가조사의 품목과 가중치를 개편한다. 2011년 개편에서 캠코더, 전자사전, 공중전화통화료 등과 함께 금반지가 조사대상에서 제외됐다. 국제 금값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국내 가격도 전년 동월 대비 20~30%씩 폭등하던 시기였다. 금반지 한 돈(3.75g) 값이 25만 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금반지 같은 물가상승 품목을 배제한 물가지수는 당연히 이전보다 낮아지게 된다. 이전 방식으로 대략 4.4%이어야 할 물가상승률이 4.0%로 최종 공표됐다. 국민이 체감하는 경기는 나빠졌는데 물가상승률은 오히려 내려갔다는 불신은 말할 것도 없고, 물가지수 개편으로 야기된 하락폭으로는 역대 최고였다. 게다가 물가상승률 4%는 당시 정부의 목표치였다. 공교롭게도 통계청이 정부의 목표달성을 만들어 준 꼴이 되었다. 시대를 막론하고 통계는 얼마든지 인위적으로 왜곡될 수 있다. ‘가짜 뉴스’를 양산하는 데 통계만큼 좋은 재료도 없다. 사람들이 기피하는 숫자에 속내를 쉽게 숨길 수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통계를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폄훼한다. 그렇다고 통계를 일방적으로 무시할 수도 없다. 국가통계는 특히 그렇다. 통계로부터 얻은 정보는 모든 의사결정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개인이 출근하면서 버스가 좋을지 지하철이 좋을지 선택하는 일도, 결국 경험데이터에 의해 통계적 확률로써 내리는 의사결정이다. 9월8일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문해(文解)의 날’이었다. 문맹이란 글자를 읽고 쓰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 덕분에 우리나라 문맹률은 매우 낮다. 그러나 글을 읽고 그 의미를 이해하는 인구비율, 문해율은 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이다. 신문에 찍힌 글자는 읽어내려도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노인들을 주변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문자로 소통할 수 없는 실질적인 문맹자들이 많다는 의미다. 오늘날 다양한 매체로부터 쏟아지는 정보는 문자에 국한되지 않는다. 정보가 함축된 통계도 문자 못지않다. 통계를 이해하고 올곧은 정보를 읽어내는 능력, 일명 통계문해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맹자가 어려운 단어를 마주 대하듯, 통계나 숫자와 맞닥뜨릴 때 건성건성 넘어가는지 스스로 반추해 볼 일이다. 통계 생산자뿐만 아니라 정보중개자인 언론마저 통계정보를 날조하는 세태다. 통계 소비자인 국민의 문해력이 취약하기 때문에 얕잡아 보는 행태다. 보다 정밀한 통계기법, 정보윤리만으로는 악의적 통계왜곡을 막을 수 없다. 국민의 통계문해력이 제고되어야 견제할 수 있다. 일찍이 문맹은 기만과 착취, 차별의 토대였으며 문해는 자신의 기존 생각과 신념에 부합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아집과 직결된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폐해이자, 문해력 증진에 시급히 나서야 할 이유다. 우형록 경기대 융합교양대학 교수

[세계는 지금] 이번에는 일본의 소비세 인상될까

일본의 소비세(부가가치세)는 현재 8%이지만, 2019년 10월에는 10%로의 소비세 인상이 예정되어 있다. 참고로 일본의 소비세에 해당하는 한국의 부가가치세는 일본보다 높은 수준인 10%이다. 이번에 예정대로 소비세를 인상(또는 인상 시기를 연기)해야 할지를 둘러싸고 일본에서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2012년 성립된 소비세 인상 법안은 2014년 4월1일과 2015년 10월1일에 각각 기존 5%에서 8%, 8%에서 10%로의 소비세 인상을 규정하였다. 2014년 4월에는 예정대로 8%로 소비세 인상이 이루어졌지만, 10%로의 소비세 인상은 아베 내각 하에서 2번에 걸쳐 연기되었다. 그렇다면 이번에야 말로, 10%로의 소비세 인상이 이루어질까? 우선 일본의 재정상황을 고려한다면, 10%로의 소비세 인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일본의 GDP(국내총생산) 대비 누적채무잔고는 200%를 넘는 수준이다. 2018년 기준으로 보면, 미국, 영국, 독일의 GDP 대비 누적채무잔고는 각각 108%, 86%, 59%에 불과하지만, 한편, 일본의 GDP 대비 누적채무잔고는 236%이다. 2018년 기준으로 일본의 일반회계 세출은 97조 엔인데, 그 중에서 23조 엔인 국채비(국채 상환 비용)를 제외하면, 실제 활용 가능한 세출 규모는 73조에 불과하다. 또한 세입의 구성을 보면, 조세 등 수입은 59조 엔에 불과하고, 33조 엔은 국채 발행 등에 의해서 충당되고 있다. 일본의 재정상황은 그야말로 심각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일본정부가 지금까지 2번에 걸쳐 10%로의 소비세 인상을 연기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로서는 우선, 소비세 인상이 아베 내각 등장 이후에 회복되고 있는 일본경기를 다시 후퇴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기존에 아베 내각은 2번에 걸쳐 10%로의 소비세 인상을 연기하였지만, 이번에는 예정대로 10%로의 소비세 인상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일본의 부총리 겸 재무대신을 겸직하고 있는 아소 타로 재무대신은 2018년 8월27일에 “2019년에는 예정대로 10%로의 소비세 증세가 이루어질 수 있는 상황에 있다”는 인식을 표명하였다.단, 아소 재무대신은 소비세 증세에 따른 경기침체를 방지하기 위해서 2019년 예산안에 경제대책을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소비세는 간접세의 하나로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는 등 역진성을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 있다. 이와 관련해, 일본에서는 소비세를 10%로 인상함과 동시에 식료품 등에 대해서 경감세율제도를 적용할 것을 정하고 있다. 참고로 한국에서 비가공 식료품에 대한 부가가치세 면세제도를 두고 있는 것도, 부가가치세가 가지고 있는 역신성의 문제를 보완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된 것이다. 소비세 인상에 따른 리스크는 일본의 경기 침체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고, 한편, 소비세 인상 연기에 따른 리스크는 일본의 재정건전성이 점차 악화되어, 명시적인 재정위기가 발생하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발행한 국채의 90% 이상은 일본 국내에서 소화되고 있으며 외국인 투자자 소유 비율은 높지 않다. 즉 현재로서는 일본에서 국채상환 등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한편, 장기적으로 본다면, 저출산고령화는 의료, 연금 등 사회보장지출의 증가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으며, 일본의 재정상황은 점차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세계 3위의 경제규모(명목 GDP 기준)를 가지고 있는 일본 경제의 동향은 한국 등 세계경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므로, 그 동향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또한 한국의 재정건전성은 OECD 국가 중에서도 높은 수준에 속하지만, 급격한 저출산고령화의 진전을 고려한다면, 재정 건전성의 문제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박성빈 아주대 국제학부장·일본정책연구센터장

[세계는 지금]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서귀포 이전

▲ 이시형 외교부 산하기관인 한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 KF) 본부가 서귀포 이전을 완료했다. 10년 전 시작된 공공기관 지방이전 결정 과정에서 제주도가 국제평화의 섬, 국제교류의 메카를 꿈꾸며 유치한 기관 중 하나인 KF가 제주시대를 열게 된 것이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밀집돼 정부기관과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을 포함한 지방 균형발전 정책은 피할 수 없는 대안이나, 이전에 따른 비용과 비효율을 극복하고, 취지를 살리려면 이전기관과 지자체간 창의적인 협력이 지속해야만 한다. KF는 1991년 설립 이래 세계 100여 개 대학에 한국어, 한국 관련 학문을 강의할 수 있도록 교수직이나 교수 요원을 지원하고, 도서관에 자료를 제공하며, 영국박물관 등 28개 박물관에 한국실(Korea Gallery)을 설치했다. 인적교류를 통해 거의 모든 나라에 한국의 친구들을 만들고, 1.5트랙 대화 등 다양한 기회를 제공해 외국의 여론주도층 인사들에게 우리 외교정책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세계의 구석구석에서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한국 문화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 밤낮없이 뛰어왔다. 2016년 발효한 공공외교법에 따라 KF는 공공외교 수행기관으로 지정될 만큼 이 분야에서 독보적 전문성을 인정받게 되었다. 공공외교란 세계에 한국의 문화, 역사, 정책 등을 두루 알려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향상시키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영국의 Portland Communications와 미국 남가주대학(USC) 공공외교센터는 매년 주요국 소프트파워 역량을 평가하는데, 최근 발표한 2017년도 순위에서 한국은 20위를 차지했다. 우리의 소프트파워가 근래 상당히 향상되고는 있지만, GDP, 무역, 군사력 등 하드파워 역량이 세계 10위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공공외교의 첨병인 KF의 역할은 여전히 막중하다 하겠다. 막중한 국가적 과업을 수행하는 KF의 서귀포 혁신도시 이전 계획이 확정된 후 지금까지 서울을 떠날 수 없어 부득이 재단을 떠난 직원도 적지 않아 종합적인 역량의 누수도 만만치 않다. 이전기관 전례에 비추어 제주 근무 초반 재단을 떠나는 경우도 없지 않을 것이다. 서울과 제주의 차이는 대체로 상상할 수 있었으나, 제주시민이 느끼는 멀고 먼 서귀포는 새로운 발견이며, 심지어 서귀포 구시가지와 혁신도시가 있는 신시가지 간의 여러 가지 차이는 외지인으로서 알기 어려운 현실이다. 이전 기관의 일반적 어려움에 더해 KF의 일상사인 해외출장이 ‘서귀포-제주-김포-인천-해외’와 그 역순으로 전개되면서 여러모로 추가부담이 예상된다. 고위급 방한초청인사의 관리, 주한외교단과의 협업, 외교부와의 회의 등 서울에서 전개되는 업무를 위해 한 주에도 두세 차례 서울을 오가는 간부직원들과의 원활한 의사소통도 전처럼 쉽지만은 않게 되었다. 제주 이전에 따라 복합적 도전에 직면한 KF에게 부여된 임무는 분명하다. 첫째, 여느 이전 기관과 마찬가지로 재정적·시간적 추가비용을 감내하면서도 업무의 질은 개선하고 그 양은 확대해야 한다. 둘째, 지방에 정주하면서도 공공외교 전문기관으로서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국가사업의 주체라는 정체성을 유지해야 한다. 셋째, 정체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지역 내 다양한 기관들과 협업 가능성을 함께 모색하면서 지방이전의 취지에 부합하는 새로운 업무영역을 개척해야 한다.이시형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前 주OECD대사

[세계는 지금] 한일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20주년, 신 선언 나올까

한일 관계는 지금 ‘위기’에 놓여 있다. 2012년부터 한일 관계의 악화가 본격화되었는데 그 이전의 관계를 되돌아본다면, 김대중 전 대통령 때에 한일 관계는 전성기를 맞이했었다. 1997년 외환위기에 빠진 한국 입장에서 보면, 일본과의 협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그만큼 당시 대통령으로서는 일본과의 관계 개선은 필수적인 선택이었다. 단 김 전 대통령이 당시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김 전 대통령의 일본과의 오랜 인연이 작용했다. 김 전 대통령만큼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일본에 알려진 인물은 없다. 이는 일본에 망명 중이던 김 전 대통령이 1973년 8월 일본 도쿄의 호텔 그랜드팰리스에서 납치된 사건(김대중 납치사건) 때문이다. 그 이후 일본에서는 김 전 대통령에 대한 구명 운동이 확산했고, 김 전 대통령은 민주화의 상징으로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김 전 대통령은 일본어에 능통했으며, 오랜 일본생활 등으로 일본에 풍부한 인맥을 가지고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나서, 1998년 10월8일 일본의 오부치 수상과 한일공동선언(21세기의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발표했다.1998년 한일공동선언에서는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이래 구축되어 온 한일 간의 긴밀한 우호 협력관계를 보다 높은 차원으로 발전시켜,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구축한다는 공통의 결의를 선언했으며 구체적인 행동계획을 수립했다.2002년 한일공동월드컵은 한일관계를 더욱 발전시켰다. 공동선언 직후 김 전 대통령은 일본대중문화 전면개방을 발표했다. 이를 계기로 한국에 일본대중문화가 속속 들어왔으며, 한편 일본에서는 ‘한류’ 붐이 형성되었다. 특히 2002년 한국에서 히트를 친 ‘겨울연가’는 2003년부터 일본에서 방영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이는 일본 내 ‘한류’를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최근 올해 한일공동선언 20주년을 맞이해, 신 한일공동선언을 발표하고, 이를 한일 관계 개선의 계기로 활용하자는 구상이 확대되고 있다. 사실 이러한 구상에 대해서 한국이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취했다고 할 수 있으며, 일본은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최근 일본에서도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지난달 일본 외무성에는 한국을 전담하는 북동아시아1과가 신설되었다. 새롭게 설치된 북동아시아1과의 과장으로 임명된 나가오씨는 주한 일본대사관 근무경험이 있는 등 일본 외무성 내 한국통으로 알려졌다. 고노 다로 외무대신은 지난달 27일 올해 10월 1998년 한일공동선언이 20주년을 맞이하는 것을 고려해 문화ㆍ인적 교류확대에 관해서 논의하는 전문가 회의를 설치할 것을 발표했다. 실제로 올해 10월에 한일 정상 간에 ‘공동선언’이 발표될 수 있을까.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최근에 한일 양국 내에서 신 공동선언 준비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등 긍정적인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은 분명하다.20년 전과 비교해 한일 관계를 둘러싼 환경은 급격하게 변화했으며, 새로운 관계를 정립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1998년 한일 공동선언이 지금도 주목을 받는 것은 이를 계기로 실제 한일 관계가 급격하게 개선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행력이 있는 신 한일공동선언이 발표되기를 기대해 본다.신 한일공동선언이 발표되었다고 해서, 한일관계가 이것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도 한일 간에는 정치적 갈등이 반복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일 간의 정치적 갈등이 있는 경우에도 서로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를 유지하고, 경제문화 교류를 활성화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박성빈 아주대 국제학부장·일본정책연구센터장

[세계는 지금] 일본의 정체성

최근 일본 정계의 화두 중 하나는 대물림 국회의원의 수를 줄이기 위한 개혁안 추진이다. 일본 중의원 456명 중 120명(26%)이 대물림 의원이며, 여당인 자민당은 의원 218명 가운데 72명으로 3명 중 1명꼴인 34%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처럼 세습 국회의원의 비중이 높은 현상은 자민당이 1945년 종전 이후 거의 70년간을 일당 집권을 해온 것과 함께 일본식 민주주의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일본의 민주주의는 ‘자유’라는 이념을 향한 시민의식의 능동적인 발로로 인해 혁명이나 투쟁을 통해 성취된 것이 아니라 종전 후 미국에 의해 피동적으로 주어진 것이었다. 이후 일본의 정치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정치적 의사표시로 이루어지기 보다는 정치 지도층이 패전으로 파괴된 국가 경제의 부흥을 목표로 하는 국가 운영 방향을 제시하고 국민은 이를 수용하는 형태로 이루어지는 전통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일본 국민은 근대적 의미의 비판적인 시민의식이 함양될 기회가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은 근대문명은 이룩했으나 의식의 근대화는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다. 일본은 자신의 과거사를 미화하려고 할 뿐 민주적 가치관을 거울삼아 비판적으로 보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의 과거사를 비판하는 것은 일본이 스스로를 부정해야 하는데, 과거사 오류를 인정하면서도 일본이 자랑하는 일본 정신을 계승할 수 있는 성찰의 부재는 아쉬우며 이러한 부재는 일본 근대화의 기원에서도 잘 나타난다.일본이 19세기 말 동북아 문명체제의 변두리에 있지 않고 중심부에 있었다면 근대화에 적극적인 자세로 나아갈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당시 중국과 한국은 자신의 문명을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하는 문명 체계를 갖고 있었으나, 일본은 동북아 문명과는 거리를 두고 있었으며 서양 문명의 출현에 대해 보존해야 할 독자적인 문명관의 소유 의식이 없었기에 서양문명에 순응하는 의식의 전환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고 본다. 일본은 철학적 관점이 아니라 항상 실용적 관점에서 외국 문명을 평가하고 수용하는 전통을 갖고 있었기에 서양 문명과 과학의 우위를 즉각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일본이 근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동북아 문명을 철저하게 비하하는 것인데,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제시했던 ‘후쿠자와 유키치’는 1894년 청ㆍ일 전쟁을 ‘야만’(野蠻, 중국)’과 ‘문명’(文明, 일본)의 전쟁으로 규정하면서 일본의 전의를 독려했다. 이어 약 10년 뒤 러ㆍ일 전쟁에서 또다시 승리하면서 일본은 서양 제국으로부터 동양의 강국으로 인정받는다. 그 이후의 일본의 역사는 중국 침략, 동남아 식민지화, 제2차 세계대전 참전 등 성찰할 점이 많은 것으로 보이나, 현재의 일본은 현대적 가치관의 관점에서 이를 성찰해 미래의 일본의 방향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일본은 여전히 과거사 세계관에 빠져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 않느냐고 우려된다. 그러기에 일본은 아직 한국에 과거사에 대해 진정한 사과를 할 수 있을 만한 현대적 사유 체계를 수립치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일본이 중세 800여 년간 약육강식의 봉건영주 시대를 거치면서 문명을 보는 시각이 항상 물질 우위적이었으며 철학적 이념이 주도해 나가는 가치우위적인 성격이 아니었던 전통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우리는 이러한 일본의 진정한 모습을 잘 꿰뚫어보면서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수립해 대일본 정책을 추진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신길수 前 주그리스대사

[세계는 지금] 크로아티아, 월드컵 선전 효과 기대

지난달 16일 막을 내린 2018 월드컵 대회에서 전 세계의 주목을 가장 많이 받고 화제가 된 팀은 크로아티아 팀이었다. 루카 모드리치를 주장으로 한 크로아티아 팀은 16강전에서 덴마크를, 8강전에서 러시아를 각각 연장전과 승부차기로 극적인 승리를 거두고, 4강전에서도 연장전 끝에 강호 영국 팀의 월드컵 꿈을 접게 했다.결승전에서 프랑스에 분패했지만, 월드컵 전 게임을 통해 크로아티아 선수들이 보여준 드라마틱한 역전, 공격적 스타일의 경기는 전 세계 축구팬들을 환호하게 했다. 아울러 발칸반도의 작은 나라, 크로아티아에 대한 관심과 호감도 크게 높아졌다. 필자가 근무했던 인연 덕분에, 크로아티아 친구들은 그들의 기쁨을 SNS로 자주 전해왔다. 국내 지인들도 크로아티아팀이 승리할 때마다 내게 축하메시지를 보내오기도 하고, 인구 400여만 밖에 안 되는 나라가 어떻게 그렇게 잘하느냐며 놀라워하곤 했다. 사실 인구는 적지만, 크로아티아인들의 기질이나 스포츠계의 저변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다. 우선 오랜 역사를 통해 강대국들의 지배와 전쟁을 겪으면서 민족기질이 된 열정과 용기와 강인한 인내력이 이번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유감없이 발휘된 것으로 보인다. 크로아티아 축구계는 저변이 넓어서 우수한 선수들을 많이 배출해왔다. 크로아티아의 축구리그 시즌은 매년 8월부터 다음해 6월 사이에 1부 리그와 2부 리그로 진행되는데, 1부는 10개 클럽(우리나라 구단에 해당), 2부는 14개 클럽으로 구성된다. 전국적인 1ㆍ2부 리그전 외 4개 권역별로 지역 리그전이 각각 진행되며, 각 지역 리그에는 10개 클럽이 소속된다. 이렇게 지역 및 전국 리그를 통해 기량이 돋보이는 선수들은 유럽의 유명 프로구단으로 진출하는데, 이번 월드컵에서 크로아티아 팀의 멤버 23명 중 대부분이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 독일 등의 유명 프로구단에서 활약하고 있고, 크로아티아 국내 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는 선수는 단지 3명뿐이다. 크로아티아 축구의 강점은 이미 우리나라 축구인들에게도 알려져, 크로아티아에서 축구 유학을 하는 선수지망생, 전국 리그에서 활동하는 선수도 있고, 한 때는 우리 축구인이 2부 리그에 참가하는 클럽을 인수해 운영하기도 하였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 크로아티아 축구팀의 선전(善戰) 외에도 전 세계의 시선을 크게 끈 것은 콜린다 키타로비치 대통령이었다. 유럽의 미인 정치인이라고 알려진 키타로비치 대통령이 경기 현장에서 우호적이고 열정적인 제스처로 크로아티아 팀의 승리를 축하하고 선수들을 격려하는 모습이 전 세계로 방영되면서 크로아티아에 대한 이미지도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숟가락 하나 놓는 셈으로 덧붙이자면, 키타로비치 대통령은 외교장관 시절 우리나라도 방문했고, 2년 전 태권도 명예 9단을 받은 정치인이다. 크로아티아는 아름다운 자연과 유서 깊은 문화유산으로 풍부한 관광자원이 있다. 이번 월드컵에서 전 세계 매스컴을 통해 크로아티아에 대한 좋은 이미지들이 강도 높게 널리 알려지면서, 크로아티아는 이러한 월드컵 효과가 오랫동안 침체되어온 경제 활성화로 이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국민적 자신감 회복과 단합을 통한 국가분위기 쇄신 그리고 관광객 방문증대가 그 기대의 중심일 것이다. 서형원 前 주크로아티아 대사·순천청암대 총장

[세계는 지금] 발트 3국과 NATO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1~12일 NATO 정상회의에서 GDP 2% 이상 방위비 지출 약속을 준수하라고 회원국을 압박하고, 유럽이 미국의 희생에 자신의 방위를 의존하려 한다면 NATO 동맹 따위는 ‘쓸모없다(obsolete)’는 후보 시절부터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회원국들은 2% 달성 목표연도 2024년을 재확인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4%를 주장했다. 소련으로부터 유럽을 방어하기 위해 설립된 NATO 회원국이 냉전 후 옛 소련과 그 위성국들로 확대되면서 러시아의 경계심이 높아진 가운데 미국 대통령이 비용문제로 그 존립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폴란드 등 일부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독일 등에게 방위비 증액을 압박하는 것을 ‘불감청 고소원’의 심정으로 반기는 분위기도 있으나, 러시아에 가까운 국가들이 위협을 더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금년은 NATO 회원국 중 러시아에 가장 인접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이 독립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독일, 스웨덴을 거쳐 1795년 이래 제정 러시아의 지배하에 있던 3국은 1918년 1차 대전 종전과 소련 성립의 혼란기 틈바구니에서 독립국이 되었으나, 20년 후 1939년 폴란드에 군대를 진주한 소련은 이들을 강압해 친소련 정부를 수립하고 결국 1940년 연방 내 공화국으로 편입시킨다. 반세기가 지난 1991년에서야 소련 해체와 함께 독립을 되찾은 이들 3국은 2004년 NATO, 2005년 EU에 가입하고 2010년 이후 차례로 OECD까지 가입함으로써 안보ㆍ경제ㆍ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확고히 서유럽의 일원이 되었다. 3국 인구 600만의 작은 국가들로 수 세기 동안 외세의 지배를 받은 이들로서는 위협적인 이웃으로 재등장한 러시아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데 NATO가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고 있다. 더구나 전체 인구의 4분의 1 이상이 러시아 민족인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는 러시아가 조지아, 크림, 동부 우크라이나 등을 침공할 때마다 현지의 러시아인 거주자 권리보호를 명분으로 삼아온 점이 여간 신경 쓰이지 않을 것이다.무력 침공이 아니더라도 러시아어 온라인 활동을 통한 국내 여론조작 등 사이버 심리전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2007년 에스토니아는 수도 탈린(Tallinn)의 소련군 추모비 교외 이전문제로 러시아와 갈등을 겪는 과정에서 전국 전산망이 일시 마비되어 큰 혼란을 겪었는데, 해커를 동원한 러시아의 복합전(hybrid war) 사례로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의 NATO관이 이들의 불안을 고조시키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그러나 최근 방문한 라트비아 수도 리가(Riga)의 분위기는 언론에 비친 것만큼 불안하지는 않아 보인다. 우선 NATO에 대한 신뢰가 아직은 확고하기 때문이다. 캐나다군 중심의 NATO군이 주둔해 있으며 트뤼도 캐나다 총리도 이번 정상회담 길에 이곳을 방문해 동맹을 확인했다. 둘째 러시아에게 라트비아는 에너지 수출 길목에 있는 조지아나 우크라이나와는 전략적 가치가 같지 않다는 인식이 작용한다.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화물 수송을 담당해온 리가항의 역할도 1991년 독립 이후 현저히 줄어들었다. 셋째 러시아에 대해 유화적인 제1당을 중심으로 한 연정이 구성되어 있다는 점도 당장 러시아와의 관계 악화를 우려하지 않게 하는 요인이다. 그렇다고 해도 전통외교를 거부하고 동맹관계조차도 거래의 관점에서 바라보려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NATO관이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한미동맹의 장래를 걱정하는 시선으로 발트 3국을 바라보게 되는 이유이다. 이시형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前 주OECD대사

[세계는 지금] 일본의 아베 내각은 언제까지 유지될까

일본은 한국을 둘러싼 동북아 4강 국가 중에 일각을 차지하는 중요한 국가다. 아베 수상(총리)이 언제까지 집권할 수 있을지는 한국 입장에서도 중요한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2012년 12월 이후 아베 신조 수상의 연속 재임 일수는 지난 5월29일 기준으로 1천981일이 되어, 아베 수상의 ‘정치적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수상을 제치고 전전을 포함해 역대 3위가 되었다. 일본의 과거 수상의 재임기간을 살펴보면 1년 미만의 단기 내각이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는데, 현재 아베 수상은 수상으로서의 재임기간이 이례적으로 길다고 할 수 있다. 수상은 국회의원 중에서 국회의 의결로 지명된다. 수상의 재선이 금지되어 있지 않으므로 국회에서 국회의원으로서 수상 지명을 계속 받을 수만 있다면, 수상의 임기는 무제한이라고 할 수 있다. 단 수상은 여당 총재(대표, 당수)의 지위를 전제로 해 여당의원들의 신임을 받아야 하므로, 여당의 내규로 당 총재의 임기제한이 있는 경우 여당 내 당 총재의 임기제한 규정이 수상의 최대임기를 결정하게 된다. 아베 수상이 언제까지 집권할 수 있을지는 결국 자민당의 당 규칙에 있어서 당 총재 임기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에 영향을 받는다. 본래 자민당의 당 규칙에서는 당 총재의 연속 3선을 금지하고 있었다. 2012년 12월에 자민당 총재가 된 아베 수상은 2015년 9월에 재선되었으며, 당 총재의 남은 임기는 2018년 9월 말에 만료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자민당은 지난해 3월5일 당 총재임기 제한에 대한 당 규칙을 기존 ‘연속 2기 6년’에서 ‘연속 3기 9년’으로 연장할 것을 결정했다. 아베 수상은 2012년 12월 집권 이후 높은 지지율을 유지해왔지만, 모리토모 학원 등에 관한 스캔들 등의 영향으로 지지율이 저하 경향에 있었다. 그러나 최근 다시 아베 수상의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다. 2018년 7월 NHK 여론조사에 의하면 4개월 만에 아베 수상을 지지하는 비율(44%)이 지지하지 않는 비율(39%)보다 높아졌다. 또한 아직 자민당 내에 아베 수상에 대항할 유력한 대항마가 없는 실정이다. 즉 아베 수상이 자민당 총재 3선에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아베 수상이 당 총재 3선에 성공한다면, 최대 2021년까지 아베 내각이 유지돼 아베 수상은 전전을 포함해 역대 최장기 재임기간을 기록할 가능성도 커진다. 한국 입장에서는 아베 내각의 교체 가능성에도 일정 부분 대비해야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아베 내각의 존속을 전제로 대일 외교정책 및 경제정책을 구상하는 것이 타당하다. 아베 내각이 계속 유지되는 한 아베 수상이 추진해온 경제정책(이른바 ‘아베노믹스’)의 큰 틀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아베 내각하에서 일본은행은 향후에도 ‘대규모 양적 완화’ 정책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며, 이는 기본적으로 엔저를 유도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아베 수상은 당 총재 3선에 성공하면 ‘헌법개정’을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한국에 대한 외교정책 기조도 큰 틀에서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아베 내각이 교체된다면 일본의 경제정책 및 외교정책 기조가 일정 수준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 단 아베 내각이 끝나도 2021년경까지는 자민당 정권이 유지될 가능성이 크므로, 향후에 일본의 정책기조가 획기적으로 변화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박성빈 아주대 국제학부장·일본정책연구센터장

[세계는 지금] 그리스 경제위기 극복과 변화

그리스가 오는 8월 약 10년간의 구제금융체제를 졸업하게 된다고 한다. 그리스는 2010년부터 3차례에 걸쳐 EU와 IMF로부터 3천260억 유로에 달하는 차관을 받아 왔다. 이제 8월부터는 구제금융에 의지하지 않고 독자적인 재정을 운영해 나갈 전망에 있다. 그리스가 회생한 비결은 EU 채권단이 요구하는 재정 긴축정책을 치프라스 총리가 이끄는 그리스 정부가 충실히 이행했기 때문이다. 2015년 그리스 총선시 치프라스 후보는 집권 중인 신민당 정부가 EU 채권단이 제시한 재정 긴축안을 받아들여 서민들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자신이 집권시 EU 채권단과 재협상해 재정 긴축정책을 대폭으로 완화하겠다고 선거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됐다. 치프라스 총리는 그리스의 경제위기를 가져오게 한 부패한 기성 정치집단과는 달리 서민층, 노동자층의 이해를 중요시하는 신진 정치인으로서 그리스를 새로운 나라로 개혁해 낼 수 있는 인물로 기대됐다. 그러나 치프라스도 총리가 되어 초기에는 선거 공약을 이행코자 강경한 반 EU 노선을 표명했으나 EU 채권단과 구제금융 조건을 협상하는 과정에서 2가지 이유로 EU 측에게 백기를 들고 이전의 신민당 정부와 마찬가지로 EU 측 제시안을 수용하고 만다. 첫째는 독일에서 제기된 ‘그리스의 EU 방출설’이었다. 독일 정부는 그리스가 재정 긴축정책을 수용치 않을 경우에는 사실상 EU가 그리스를 포기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표명한다. 둘째 그리스 국민의 EU에 대한 태도였다. 재정 긴축정책으로 고통받은 서민층, 노동자층은 EU에 대한 반감이 커서 EU 탈퇴까지도 요구했으나, 여론조사에서 EU 가입 유지를 희망하는 국민이 50%를 넘었다. 그리스 국민은 EU 탈퇴가 마치 2등 국민으로 전락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재정 긴축조치가 가혹하더라도 EU에 남아 있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치프라스 총리는 EU 채권단이 요구하는 엄격한 재정 긴축정책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에 불만을 품은 좌파 세력들에 의해 치프라스 총리의 재임은 1년 정도의 단기간으로 끝나고 반 EU 성향의 새로운 과격한 정부가 들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치프라스 총리는 현재까지도 집권 중이다. 그를 대체할 만한 국민적인 지지도를 갖춘 대안적 정치인이 구정치세력에서나 신진 좌파세력에서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 경제의 회복은 EU 채권단이 주도해나간 그리스 정부의 재정 긴축정책의 결과이며 동정책은 국민의 고통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재정 긴축정책을 국민이 저항하지 않고 순응하도록 그리스 정부가 지도력을 잘 발휘한 점도 평가받을 받을 만하다. 그리스의 국가 경제는 제조업이 거의 없는 관계로 관광업과 농업에 달렸다. 그리스가 세계적인 관광대국과 농업대국으로 성장해야 만 그리스는 지속 가능한 경제 발전을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한 경쟁의 세계화 시대에 걸맞은 사고와 의식의 개혁이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내부 지향적이고 변화에 소극적이며 비효율적인 전통을 고수하고 이를 그리스의 긍지로 생각하는 자세를 바꾸어야만 그리스의 새로운 변모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신길수 前 주그리스대사

[세계는 지금] 사우디와 이란, 중동지역서 냉전적 대립 악화

아시아 대륙의 동쪽 끝, 한반도에서 남북한 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의 연이은 개최로 세계적 냉전의 잔재가 완전히 해체되기를 바라는 기대감이 높아졌다. 이와는 달리 아시아 대륙의 서쪽 끝, 중동에서는 지역강대국 간 냉전적 대결이 확대되면서 긴장이 커지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지역패권 경쟁이 그것이다. 세계 패권을 다투었던 미소 냉전처럼, 사우디와 이란은 각각 중동지역을 동맹과 적대 진영으로 양분해 정치ㆍ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다. 사우디와 이란 사이의 갈등은 종교적 차이로 격화됐다. 이슬람의 양대 종파인 수니파와 시아파는 역사적으로 반목관계에 있는데, 사우디는 수니파의 맹주, 이란은 시아파의 보호자를 자처한다. 역사적으로 사우디는 이슬람 탄생지로서 이슬람 세계의 종주국이라고 자임했으나, 1979년 이란의 혁명으로 도전을 받게 되었다. 이란이 새로운 형태의 국가(시아파 신정국가)를 수립하고, 이 모델을 인근 국가들로 수출하려는 목표를 추구해왔기 때문이다. 사우디와 이란의 대립은 지난 10여 년간 일련의 사건들로 날카로워졌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이란의 혁명수출에 방패막이 역할을 해온 사담 후세인의 수니파 정권을 전복시켰다. 이 결과로 이라크에서 다수파인 시아파가 정부를 지배하게 되면서 시아파 보호자를 자처하는 이란의 역내 영향력이 증대하게 되었다. 또 2010년 튀니지 혁명을 계기로 폭발된 아랍권의 민주화 시위, ‘아랍의 봄’은 아랍 전역에 정치적 불안정을 가져왔고 이란과 사우디가 혼란한 틈을 이용해 시리아, 예멘 등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하면서 상호 불신이 더욱 깊어졌다. 두 지역강국 간의 전략 경쟁은 시리아 등에서 이란의 세력 확대 시도가 성공을 거두면서 격화된다. 이란의 지원을 받은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이 친사우디 반군들을 대패시키자 사우디는 이란의 세력 확대를 봉쇄하려고 필사적이게 됐다. 더욱이 2017년 사우디의 실질적 지배자가 된 젊고 야심적인 왕세자 모하메드 빈 살만이 군사적 모험주의에 흐르고 있어 역내 긴장이 더 높아지고 있다.살만 왕세자는 인접국 예멘에서 이란의 영향력을 봉쇄하겠다는 의도로 시아파 반군들과 전쟁을 하고 있으며 레바논에서는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헤즈볼라)가 강력한 세력을 가진 정부체제를 흔들기 위해 정치공작을 하고 있다. 이처럼 사우디가 이란 봉쇄행동에 대담해진 것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지원과 이스라엘의 후원이 있기 때문이다.이스라엘은 이란을 사활적 위협으로 간주해왔고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2015년 이란 핵 협정에서 이탈한데 이어 이란의 원유수출 봉쇄 조치를 취하는 등 대이란 적대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대결구도에서 친사우디 진영에는 UAE, 바레인, 쿠웨이트, 요르단, 이집트 등 수니파 국가들이 가담하고 있다. 친이란 진영에는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 레바논 헤즈볼라 등 시아파 정권이나 정치단체가 있으며, 이라크는 미국과도 가깝지만 이란의 밀접한 우방이다.중동국들 가운데 종파 간 대립으로 정정이 불안한 나라들, 예멘, 시리아, 레바논 등은 이란과 사우디의 세력 각축장이 되어왔다. 두 맹주국은 서로 직접적으로 전쟁을 하지 않으나 예멘과 시리아 내전은 사우디와 이란의 대리전쟁 양상을 띄웠고 앞으로 레바논에서 그런 대리전쟁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 서형원 前 주크로아티아 대사·순천청암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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