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지금] 베트남에 진 ‘마음의 빚’, 어떻게 갚을까

▲ 이시형
▲ 이시형
지난 11월21일 하노이에서 한국국제교류재단과 베트남사회과학원이 개최한 ‘한-베트남 미래포럼’에는 수교 주역과 양국 관계발전에 기여한 인사들이 참가, 지난 25년간 양국 관계 발전상을 회고하고 미래를 위한 비전을 제시했다. 1992년 베트남 외교부 1차관으로 수교교섭을 이끌었던 ‘부 콴’ 전 부수상은 당시 한국인들은 ‘베트남인들은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매우 궁금해했으며, 과거는 묻어두고 미래를 향해 함께 나가자는 것이 베트남 정부의 일관된 대답이었다고 회고한다. 베트남 측의 전향적 태도와 한국의 북방외교 열기에 힘입어 그 해 12월22일 양국은 수교 합의에 이르게 된다.

 

25년이 지난 올 연말까지 양국 무역규모는 작년보다 30% 늘어난 600억 불을 기록하며 한국은 베트남의 2대 교역국으로 올라설 전망이다. 베트남 또한 한국의 4위 무역상대국이며, 한국은 2014년부터 베트남에 대한 최대 투자국이다. 지난 11월11일 양국 정상이 2020년까지 무역 1천억 불을 달성키로 한 목표가 실현되면 한-베트남 무역규모는 한-아세안 무역 약 2천억 불의 절반을 차지하게 된다. 이러한 경제적 관계를 뒷받침하듯 양국에는 각각 약 15만 명의 상대국 국민이 거주하고 있다.

 

25년 전 한국인들은 베트남인들이 한국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왜 그렇게 궁금했을까? ‘마음의 빚’ 때문이었을 것이다. 총부리를 겨누며 전쟁을 치른 지 20년이 지나지 않아 외교관계를 맺고 친구가 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지 당연히 궁금하였을 것이다.

 

베트남 사람들이 과거를 헤집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하여 과거를 잊은 것은 물론 아니다. 간간이 한국에서 베트남전과 관련한 언급이 있을 때마다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외교문제로 비화하는 것이 이를 말해준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마음의 빚’ 영상 메시지를 계기로 베트남전 참전역사와 관련한 우리 정부의 사죄 여부에 대한 논쟁이 재연됐다. 과거사 들추기를 원치 않는 베트남 정부의 공식 입장에 비추어, 우리가 사과하겠다고 먼저 나서는 것은 외교적으로 적절치 않을 뿐 아니라 양국관계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직접적 사과 대신 문 대통령은 베트남 주석과의 회담 진행과정에서 최대한의 예우를 갖추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으나 마음의 빚을 안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통령 본인과 외교 당국의 고민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외교현장에서 마음의 빚을 표현하는 것으로 우리가 베트남에 대해 할 일을 다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베트남전 참전이 당시 국가이익에 부합하는 정책결정이었다고 하더라도, 전쟁 수행과정에서 벌어진 것으로 알려진 민간인에 대한 잔학행위 등 인도적으로 비난받을 행위에 대하여는 세월이 지났다는 이유로 잊어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정부의 공식적인 사죄 여부와는 별개로 다양한 차원에서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나 후손, 피해 지역에 대한 조용한 화해 방안을 강구하는 일은 당연하고도 시급한 일이다.

 

베트남은 인구 9천500만의 젊고 활기찬 국가이지만 경제적으로 아직도 아세안 국가 중에서도 후발 개도국이다. 이미 수년간 우리의 최대 공적개발원조 대상국이지만, 개발원조 외에도 베트남이 사회발전을 위해 우리에게서 원하는 협력방안은 차고 넘친다. 이러한 협력 과정에서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마음의 빚을 특히 많이 지고 있는 특정 베트남인들과 지역을 배려할 수 있을 것이다. 요란한 사죄는 오히려 자존심 강한 베트남인들의 부정적 반응을 불러올 수 있다. 물적 지원, 인적ㆍ지적 교류와 함께 문화교류를 확대하는 것도 마음의 빚을 갚는 데 유용한 방안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시형 국제교류재단 이사장·前 주시카고 OECD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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