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이탈리아의 지역주의는 고대 로마시대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작은 도시국가에 불과했던 로마가 이탈리아 중부에서 세력을 확장해 나갈 당시, 라틴족의 거주지는 로마 등 이탈리아 중부지방에 불과했고, 나폴리 이남의 남부 이탈리아와 시칠리아에는 이미 수백년 전부터 그리스인들이 건설한 선진 도시국가들이 산재해 있었다. 현재 밀라노, 토리노, 베니스 등 공업지대가 위치한 북부는 게르만 야만족들의 거주지였다.
도시국가 로마가 이들을 제압하고 이탈리아 반도 전역을 장악한 것은 한니발 전쟁이 끝난 기원전 200년경이었다. 그 후 서기 476년 로마가 멸망한 뒤 이탈리아는 1천년 이상 수십개의 군소 도시국가들로 분열돼 수많은 전쟁을 치르며 살아왔고 1870년에야 통일을 이루었다. 이탈리아 각 지방의 역사를 보면 대부분 이웃도시와의 전쟁의 역사이며 이로 인해 중세시대와 르네상스 시대의 요새와 성들이 전국에 없는 곳이 없다. 이러한 이웃지방과의 오랜 전쟁과 적대관계는 이탈리아의 지역색과 지역갈등의 핵심 요인이 됐다.
그러나 한 가지 아이러니는 과거에는 남부 그리스계 국가들이 가장 부유한 문명국가였고, 북부에는 한겨울 짐승가죽을 뒤집어쓰고 살던 게르만 야만족들이 살았으나, 현재는 정반대라는 점이다. 북부는 경제적으로 가장 부유하고 문명화된 지역인 반면 나폴리 이남 남부지역은 가장 가난하고 치안이 흉흉한 지역으로 변모했다. 이탈리아 마피아의 탄생지와 주요 거점도 바로 이곳이다.
현재 북부는 남부에 비해 소득도 평균 3배 이상이고, 세금도 3배 이상 걷는다. 결국 북부에서 거둔 세금으로 남부를 먹여 살리는 상황이 됐다. 이로 인해 이탈리아 지역 간 관계는 역사적 갈등관계에 경제적 갈등까지 추가됐다.
현재 북부는 대부분 분리 독립이나 자치권 강화를 요구하는 보수우파 정당들의 지배를 받고 있고 남부는 무상복지의 확대를 지지하는 좌파 사회주의 정당들이 집권하고 있다. 결국 최근 이탈리아 북부의 대표 산업지역인 롬바르디아주(밀라노 주변)와 베네토주(베니스 주변)에서 자치권 강화를 요구하는 주민투표가 실시됐다. 이 지역들은 이탈리아 전체 GDP의 무려 30%를 점유하는 지역이다.
불법 분리독립 주민투표로 내홍을 겪는 스페인과는 달리, 낙천적이고 현실주의적인 이탈리아인답게 주민투표로 합법적인 요구를 하기 위해 분리독립 대신 자치권 강화를 요구하는 투표를 실시한 것이다. 그 결과 베네토에서의 찬성률은 98%, 롬바르디아는 95%에 달했다.
이들이 요구하는 자치권 강화란, 그곳에서 거둔 세금을 게으르고 나태한 남부 주민들 먹여 살리는데 쓰지 말고 자신들을 위해 더 많이 쓰겠다는 것이다. 이는 중앙정부에 이를 거부할 경우 자칫 분리독립 운동으로 비화할 수 있기 때문에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이러한 유럽 국가들의 극심한 역사적정치적경제적 지역갈등을 보면, 한국의 지역갈등은 훨씬 양호한 상황이라고 생각된다. 국민과 정치인들의 노력을 통해 우리의 갈등은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이용준 前 주이탈리아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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