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한반도 평화체제와 러시아

북미정상회담 1주일 만에 워싱턴과 모스크바에서 잇따라 학술회의를 개최하고 현지 전문가들로부터 한반도 상황에 대한 평가를 들어볼 기회가 있었다. 미국에서는 비판적이거나 냉소적인 반응이 대부분이었던 반면, 러시아에서는 상황이 과거로 회귀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며 기대를 보이는 시각이 많았다. 스스로를 주류라고 일컫는 미국인들 가운데 다수는 지지 정당에 관계없이 북미정상회담의 결과에 대해 비판적이며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가능성에 회의적이다. 몇 달 전만 해도 서로 책상 위 핵 단추 크기를 자랑하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마주 앉아 회담을 개최함으로써 최소한 한반도 위기상황이 크게 완화되었다는 사실 자체에는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가시적 성과에 대하여는 비판적이다. 과거 6자회담 합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며, 김정은은 비핵화의 정의, 구체적 범위, 일정 등은 제시하지 않으면서,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사실 자체로서 정상국가로 공인받은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본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과 협의 없이 합동군사훈련 중단을 일방적으로 발표하였다고 비판한다. 20여 년간 북한 핵 문제를 다루어온 미국의 외교관들이나 그 경과를 지켜본 미국인들의 북한에 대한 신뢰가 거의 소진된 상태란 점을 감안하면 무리는 아니라 할 수 있다. 최악의 인권국가인 북한의 독재자가 헌법에 명기하며 생존을 걸고 준비해 온 핵무기 계획을 완성선언 직후 포기한다는 말을 그들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북한의 제안을 수락한 지 3개월 만에 정상회담을 개최하고는 역사적 성공이라고 자랑하는 무모한 자국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과 불안감이 비판적 시각의 기저에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북한 비핵화를 위한 협상의 성패는 오로지 북한의 의지와 행동에 달렸다. 북한이 과거 악순환의 역사와 단절하고 완전한 비핵화를 조속히 실행하는 것만이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부정적 여론을 잠재우는 유일한 해결책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북한의 조속한 비핵화를 그저 바라보며 기다릴 수만은 없다. 합의 당사국인 북한과 미국이 후속협상을 통해 합의를 신속히 이행하도록 독려하고, 현재의 평화정착 과정을 어떠한 경우에도 되돌릴 수 없도록 제도화하여야 한다. 비핵화한 한반도를 위한 절차를 돌이킬 수 없도록 하는 제도화 과정에는 러시아를 비롯한 주변 국가들의 참여와 기여가 필수적이다. 불과 수개월 만에 대북한 정책 방향을 180도 선회한 전력의 트럼프 대통령이 후속 협상을 둘러싼 북한의 태도에 따라 급작스레 과거 정책으로 회귀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할 경우, 후임 대통령이 북한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을 것이란 보장도 없다. 반면 젊고 임기에 제약도 없는 김정은 위원장은 수십 년에 걸친 장기협상을 염두에 두고 자신의 시계에 맞추어 이행 속도를 조절하고자 할 가능성이 크다.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과정을 다자화할 경우 이러한 위험요인을 상쇄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러시아의 한반도 평화정착 과정 참여는 첫째 불안정한 북·미간 양자 비핵화 협상 성과를 돌이킬 수 없도록 잠가주고, 둘째 남ㆍ북ㆍ러 3각 협력의 촉매 역할을 강화하며, 셋째 장기적으로 6자회담 기반의 동북아 다자안보체제 밑그림을 그리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문재인 대통령의 이번 러시아 국빈방문은 한반도 평화정착 과정을 더 단단하게 다져가려면 러시아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시형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前 주OECD대사

[세계는 지금] 일본은 지금 구인난

우리나라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5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취업자 증가 폭이 10만 명 밑으로 추락했다. 또 실업률은 4.0%이고 청년실업률은 10.5%를 기록해 1999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높았다.이런 한국의 상황과 비교해 일본의 고용상황은 구인난(노동력 부족) 현상이 심각한 실정이다. 2018년 4월 기준으로 일본의 유효 구인배율(구직자 대비 구인자 비율)은 1.59를 기록하고 있다. 즉 1명의 구직자에 1.59개의 일자리가 있다. 정규직 유효 구인배율도 1.09를 기록하고 있다. 일본 구인난의 원인은 무엇인가. 일본의 노동력 부족현상은 기본적으로 저출산의 진전으로 생산기능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것에 영향을 받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 정부는 한국도 에코붐(1991~1996년 출생) 세대만 넘기면 한국의 청년구직난이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인구구조가 변화한다고 해서 한국의 청년실업문제가 해결된다고 보는 것은 너무 낙관적인 기대다. 일본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급여 격차가 크지 않다. 이는 노동자의 중소기업에 대한 취업을 촉진하는 요인이 된다. 한국고용정보원의 ‘고용동향브리프 2017년 11월호’에 따르면 한국 중소기업의 임금은 대기업의 51.7% 수준에 불과하다.이에 반해 일본 후생노동성 2017년 임금구조 기본통계조사에 의하면 일본 중소기업의 임금(남성 기준)은 대기업의 83% 수준이다. 이처럼 일본의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급여 격차가 크지 않은 것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노동생산성 격차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OECD의 자료에 의하면 2016년 기준 한국의 중소기업의 노동생산성은 대기업 대비 32%에 불과하며 일본의 50.5%에 비해 크게 낮다. 현재 일본의 고용 상황의 부정적인 측면을 찾아보면 비정규직 고용의 비중이 높다는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8년 3월 펴낸 ‘비정규직 고용과 근로조건’에 의하면 2017년 비정규직 비율은 32.9%이며 청년층(15~24세)의 경우 비정규직 비중이 50%를 넘어섰다고 한다. 일본 총무성 노동력 조사(2017년)에 의하면 일본의 비정규직 비율은 37%이다. 한국보다 오히려 일본의 비정규직 비율이 약간 높다. 단 일본에서는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이유에 대해 ‘자신이 원하시는 시간에 일하고 싶어서’로 답한 비율이 남성의 26.6%, 여성의 29.1%로 가장 많고 ‘정규 일자리가 없어서’라고 답한 비율은 남성의 22.7%, 여성의 10.5%에 불과하다.즉 일본의 비정규직(특히 여성) 대부분은 자발적 비정규직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일본의 비정규직 노동자의 증가에도 일본의 고용은 여전히 안정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후생노동성의 노동경제 분석(2013년판)에 의하면 ‘일본은 여전히 장기고용관행이 존재하는 사회’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일본의 고용상황은 양호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아베 내각의 경제정책(이른바 ‘아베노믹스’)이 성공적이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아베노믹스’에서는 성장전략으로서 규제완화, 구조개혁 등을 통한 민간의 투자 촉진을 중시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기존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감 있는 정책 수행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고용 안정은 어느 사회에서도 사회 안정을 위해 핵심적인 부분이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민간의 투자가 촉진될 수 있도록 규제완화, 구조개혁 등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고 중소기업의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박성빈 아주대 일본정책연구센터장·국제학부장

[세계는 지금] 아베 日 총리의 개헌과 일왕의 퇴위

일본의 민족적 신화에 따르면 일본 천황은 태양 신의 아들이다. 천왕은 1세로부터 지금까지 대를 이어 내려와 일본의 유구한 역사를 상징하는 자긍심이 되고 있다. 현재 재위 중인 아키히도 일황은 고령과 건강을 이유로 2019년 4월 퇴위를 할 예정인데 일황의 자발적 퇴위는 200여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 시선을 끈다. 아키히도 천황은 퇴위 의사를 밝히면서 일본에 전쟁의 참화가 반복되지 않기를 염원하고 천황의 지위가 국가의 명목적인 상징으로 유지되기를 희망했다고 한다. 아키히도 천황은 스스로 퇴위를 결정한 배경은 고령과 건강상의 이유를 내세우고 있으나 천황이 밝힌 상징적 지위의 유지에 대한 희망이 전례에 드문 퇴위를 결심한 숨겨진 동기로 보는 시각이 있어 흥미롭다. 천황의 퇴위 결심은 아베 총리가 주도하는 평화헌법의 개헌안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우회적으로 표명하기 위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다. 일본 자민당의 홈페이지에 제시된 개헌 초안을 보면 천황의 지위를 국가의 상징적 존재에서 국가 원수로 격상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키히도 천황은 아베 총리가 추진하는 일황의 국가원수적 지위보다 현행 헌법상의 상징적 지위를 선호하는 입장을 보이는 것이다. 일왕이 퇴위의사에서 밝힌 일왕의 상징적 지위의 유지 희망은 과거 일본 제국 헌법상 천황이 국가원수였던 군국주의 시대가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의 패망으로 귀결된 역사를 염두에 두고 이러한 역사가 반복되지를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의 역사에 나타난 일왕의 지위는 변천을 보여왔다. 8세기 중앙집권적 국가시대까지는 일왕은 최고 권력자의 지위를 가졌으나 이후부터는 천황이 존재하나 후지와라 가문, 다이라 가문 등이 정권을 장악해 일본을 이중 지배하는 구조가 시작됐다. 막부시대에는 정신적인 권위는 천황과 조정이 가졌고 정치적 권력은 쇼군과 막부가 행사하는 ‘권위와 권력의 이중구조’를 보여준다. 명치유신에서 명치 천황은 다시 국가원수로서 국가 최고 통치권자로서의 지위를 회복한다. 그러나 명치 천황도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스스로 정치적, 군사적 힘으로 회복한 것이 아니라 명치유신을 주도해 나간 유신관료 그룹이 중앙집권적 통일국가의 형성을 위해 막부를 타도하고 권력을 천황에게 되돌려준 것이다. 천황의 국가 원수로서의 지위를 회복시킨 주체가 관료ㆍ군인 그룹이었던 관계로 이후 천황과 총리는 또 다른 형태의 이중권력구조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명치유신부터 제2차 세계대전 패전까지 최고통수권자인 천황이 국정을 결정하는 최종 권한을 행사한 것처럼 보이나 이는 관료ㆍ군인집단이 국정의 중요한 내용을 사실상 결정한 후 천황의 재가라는 형식과 절차를 통해 합법적으로 권력을 행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권력의 이중구조는 관료그룹이 천황의 권위를 배경으로 자신들의 의사를 국민에게 강요하는 문제점이 있으므로 아키히토 천황이 천황의 지위가 군국주의 시대를 연상케 하는 국가원수로 격상되는 것보다는 국가의 명목적 상징으로 남아 있기를 희망하는 배경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키히토 일황의 자발적 퇴위는 일본의 이중 권력구조하에서 일왕이 자신의 의사를 표명하는 방법으로 강구되었을 수도 있다고 본다. 신길수 前 주그리스대사

[세계는 지금] 일본 총리 스캔들과 관료들의 ‘손타쿠’ 행태

일본에서 아베 신조 총리가 연루된 2개의 사학 스캔들이 뜨거운 정치ㆍ사회 이슈가 되고 있다. 2012년 12월 집권 이래 높은 대중적 지지를 받으며 강한 정치 리더십을 행사한 아베 총리가 곤경에 처하게 되고 지지율도 30%대로 떨어졌다. 그런데 아베 총리의 정치적 입지 문제보다 더 관심이 가는 것은 일본 엘리트 관료들의 행태 변화가 아닌가 싶다. 전통적으로 국가를 이끌어왔다는 긍지가 매우 높은 일본 관료사회가 강력해진 정치권력 앞에서 스스로 알아서 기는 모습이 이번 스캔들을 통해 드러났기 때문이다. 2개의 스캔들 가운데, 모리토모(森友) 학원 스캔들은 아베 총리의 부인 아키에 여사와 가까운 사이인 사학재단 모리토모 학원이 소학교 건설 부지로 국유지를 감정가 9억 3천400만 엔보다 8억 엔이나 싼값으로 불하받는 과정에서 총리 부부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다.문제의 국유지에는 다량의 폐기물이 있었는데, 관리부서였던 오사카 항공국은 처리비를 5~6억 엔으로 견적했다. 그러나 일본 재무성은 부지 지하에도 쓰레기가 매설돼 있을 것이라는 점을 들어 폐기물 처리비를 8억 2천만 엔으로 올려 잡도록 하고, 동 폐기물 처리비용만큼 할인해주는 형식으로 1억 1천400만 엔에 매각했다. 국유지 헐값 매각이 공개되자, 모리모토 학원의 소학교 명예교장에 일시 취임했던 아키에 여사와 총리의 관여 여부가 일본 국회에서 정치 쟁점이 됐다. 이에 2017년 2월 아베 총리는 국회에서 “나와 아내가 관계되어 있다면, 총리직도 의원직도 다 사퇴하겠다”고 발언하며 관여를 부인했다. 그런데 총리의 진퇴발언 이후 재무성이 모리토모 학원과의 국유지 매매교섭 서류를 조직적으로 은폐, 파기, 개찬(문서를 악용하기 위해 고의로 고침)했다는 의혹이 강력하게 제기됐다. 국회에 제출된 자료들에 의하면 개찬은 결재문서 14건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확인되고 있는데, 아키에 여사나 총리와 관계된 기술들이 삭제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문서 개찬은 재무성 이재국을 중심으로 행해졌는데, 당시 이재국장이었던 사가와 전 국세청장은 국회 증언에서 아베 총리나 총리 부인의 지시는 없었다고 거듭 답변했다. 총리의 직접 지시 여부는 미궁에 빠질 공산이 크다. 한편 총리의 의향이 관계자들 사이에 인지되어 있었다는 정황에 비추어 국유지 염가매각이나 관련 문서의 사후 개찬은 관료들이 아베 총리의 의향을 ‘손타쿠’(忖度: 미루어 헤아리기, 나쁘게는 알아서 긴다는 의미)해 행한 것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또 다른 스캔들은 수의사의 공급 과다로 대학의 수의학부 신설이 제한돼 있는데도, 사학재단 가케(加計) 학원이 이사장의 친구인 아베 총리의 특혜를 받아 수의학부 신설을 인가받았다는 의혹이다. 여기서도 총리의 지시가 있었는지는 밝혀지기 어려울 것이다. 다만 총리 보좌관으로부터 총리 의향을 전달받은 문부성 관료들이 ‘손타쿠’해 인가절차를 추진한 것은 확실하다. 정치권력도 견제하며 행정의 공평성과 공정성을 지켜왔다는 일본의 관료사회가 이번 스캔들로 크게 신뢰의 손상을 입게 됐다. 그 배경에는 아베 총리가 대중 지지를 바탕으로 정치주도 개혁을 주창하고 총리실이 행정 각부의 국장급 인사까지 깊이 관여해 관료들이 소신보다는 정치권력의 요구에 순응하려는 몸보신 성향이 작용했다며 필자의 일본인 지인은 탄식한다. 서형원 前 주크로아티아 대사·순천청암대 총장

[세계는 지금] 한반도 평화체제와 유럽의 경험

주한 대사를 역임한 스웨덴의 한 외교관은 한국에서는 스웨덴이라면 무슨 일이든 다른 나라보다 30점은 더 받고 시작한다고 술회한다. 스웨덴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여러 면에서 신뢰를 받고 있다. 중립을 표방하며 전쟁의 참화를 비켜났고, 잘 정비된 사회복지정책은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을 비롯한 세계 정치지도자들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국민총소득(GNI) 대비 공적원조(ODA) 부담률이 UN 목표인 0.7%를 웃도는 1% 이상을 유지하는 인구대비 1위 원조국이고, 난민과 정치적 망명도 꾸준히 수용해 국제사회의 인도적 책임을 선도적으로 수행하는 나라다. 스웨덴에는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 연구소들이 있다. 그 가운데 ‘안보와 개발정책 연구소(ISDP)’는 2007년 설립된 신진 연구기관으로서 수년간 남북한과 미국, 중국 등 6자회담 참여국 정부의 관리나 학자를 초청해 연중 1~2차례 1.5트랙 학술회의를 개최해왔다. 한국으로서는 북한의 중견 관리와 얼굴을 마주하고 핵ㆍ미사일 문제까지 포함한 한반도 상황에 대해 솔직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매우 드물고 소중한 기회였다. 국제사회의 엄중한 제재에도 핵과 미사일 개발을 서두르던 북한, 제재 일변도 정책에 몰두해 모든 대화와 접촉을 끊고 있던 당시 한국 사이의 대화가 의미 있는 결론을 도출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남북한 사이에 1.5트랙 대화의 장(場)이 유지된다는 자체만으로도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았다. 스웨덴에 대한 북한의 신뢰에 더해 ISDP 관계자가 수시로 북한을 방문하고 북한 인사를 연구원으로 초빙하는 등 상호 신뢰관계를 형성하고 있었기에 남북한 단절의 시대에도 직접대화를 주선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난 5.6 ISDP는 한국국제교류재단(KF)과 협력해 스톡홀름 소재 연구소 내 한국센터를 출범시켰다. 중국, 일본센터가 이미 활동 중인 데 비해 뒤늦은 감이 있으나, 축적된 한반도 연구 경험과 북한과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드는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번영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에서 유럽은 소중한 교훈의 보고(寶庫)다. 전쟁과 평화로 점철된 유럽의 오랜 역사를 들추지 않더라도, 냉전시대인 70년대 중반 동서진영 간 평화의 싹을 틔운 헬싱키 프로세스, 20년 전 ‘협상을 통한 평화’의 전례를 남긴 북아일랜드 평화협정과 같이 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체제를 확립하고 공동번영을 이룬 경험이 있다. 그뿐 아니라 30년 전 폴란드를 비롯한 중유럽 국가들의 사회주의 계획경제 체제에서 시장경제 체제로 성공적으로 전환한 경험은 북한 체제개방에 중요한 뜻을 가질 수 있다. 남북한이 직접 다방면의 교류를 확대해나갈 날이 머지않다 하더라도, 유럽이 북한의 신뢰를 토대로 북한과 한국을 대상으로 자신의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효과를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는 이유다. 유럽의 북한 연구자들에 의하면 북한은 새로운 시대에 대비해 이미 중견급 정부 관리들을 수개월씩 교육훈련에 투입하고 있으며, 금융시장이나 노사문제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 경제현장의 경험을 배울 방안을 유럽 각국에 타진하고 있다고 한다. 남북한 직접채널이 조만간 모든 면에서 위력을 발휘하길 기대하나, 결코 평탄치만은 않을 앞날을 생각할 때 유럽의 경험과 가치는 충분히 참고할만하며, 막 출범한 ISDP의 한국센터가 가교 역할을 충실히 담당해 주길 기대한다. 이시형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前 주OECD대사

[세계는 지금]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달성과 일본

지난 4월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으로 공식 명명된 선언문을 공동 발표했다. 아직 한국에 평화의 시대가 정착되었다고 단정할 수 없지만, 최근 남북관계를 둘러싼 움직임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지난 15일 북한은 한미 연합공중훈련인 ‘맥스선더’ 훈련을 비난하며 예정된 남북고위급회담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는 향후 한반도의 평화정착과정에 적지 않은 어려움이 존재할 것을 보여주는 사건일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정착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국가는 우선 미국이지만, 중국 역시 북한의 전통적인 우방으로서 한반도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북한이 지난 12일 풍계리 핵 실험장 폐기를 외신에 공개하면서 일본 언론을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한반도 평화정착과정에서 ‘재팬 패싱’에 대한 보도가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의 평화와 번역의 정착을 위해서는 미국, 중국과 더불어 일본의 존재 역시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만약 올해 6월 싱가포르 북미정상 회담이 성공적인 결과를 낼 수 있다면, 그 이후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인 조치 등이 이루어지고 이와 동시에 북한 경제개발 이슈가 중요해질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를 전제로 경제적 지원책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민간자금이 투자된다면, 이는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전 세계에 보여주는 것이 될 것이다. 북한 경제개발을 위한 자금을 조달함에 있어서 미국의 자금이 들어가는 것과 더불어 한국 자금이 들어갈 것으로 보이는데, 사실 북한의 개발을 위해서 활용도가 높은 자금 중의 하나는 일본 자금이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에 조인하면서,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5억 달러(그 중 3억 달러는 무상, 2억 달러는 유상)의 청구권 자금을 받았고, 이 자금은 당시 한국의 외화부족문제를 해결하는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 경제기획원이 1976년 발간한 ‘청구권자금백서’에 따르면 광공업(자본재, 원자재)과 사회간접자본 등에 각각 55.6%, 18%의 자금이 활용되었다. 한반도 평화정착과정에서 북일국교정상화 교섭이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 과정에서 청구권 자금의 규모가 중요 이슈가 될 것이다. 최근 일본 내 여론조사 등에 의하면 일본 국민 간에 북일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일본의 청구권 자금과 함께 역내 개발은행인 아시아개발은행(ADB)의 자금을 활용함에 있어서도 일본의 지지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국제개발은행, 미국, 일본, 중국 등으로부터 유치하는 것은 한국 입장에서는 대북 투자에 대한 리스크를 줄이고, 한반도 평화정착에 대한 주변 강대국의 지지를 얻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 내의 북동아시아과(課)가 한국과 북한에 대한 외교정책을 담당하고 있다. 일본 외무성은 최근 한반도 관련 변화에 긴급하게 대응하기 위해 올해 여름에도 북한과 한국의 외교정책을 담당하던 북동아시아과를 2개로 분할해 한국 담당의 북동아시아 1과와 북한 담당의 북동아시아 2과를 설치할 것을 발표했다. 일본에서 중앙부처 안에 과(課)의 신설은 그 자체로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외무성에 한국과 북한을 담당하는 과가 각각 생긴다는 것은 그만큼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박성빈 아주대 일본정책연구센터장·국제학부장

[세계는 지금] 역사적 관점에서 본 일본 메이지 유신의 한계

일본 아베 총리와 자민당을 중심으로 하는 우경화 세력은 메이지 유신에 대해 깊은 향수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메이지 유신은 일본이 19세기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근대화를 이룩해 서양 열강의 반열에 올라서게 하나, 메이지 및 1920년 대정(大正)시대의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지 못한 후 군국주의로 치달아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패망하는 길을 걷는다. 메이지 유신에서 출발한 일본의 근대화가 ‘제2차 세계대전의 패망에 이르는 것과는 다른 역사를 보여줄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제기해 본다면, 이에 대한 대답에는 메이지 유신의 이념적 지향점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메이지 유신의 지향점은 ‘부국강병’을 통해 서양 열강의 위협에 대처하는 것과 민주주의 국가의 건설 등 2가지로 볼 수 있다. 부국강병은 성공했으나 민주주의 국가 건설은 실패하고 만다. 그리고 부국강병의 지향은 군국주의와 대동아 공영권 건설로 변모되어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의 패망이라는 귀결을 맞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점을 메이지 유신의 한계로 볼 수 있다. 이는 영국과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영국과 일본은 1904년 영일 동맹을 맺을 정도로 이해관계를 공유했으나 이후 영국과 일본은 각각 자유주의 진영과 국가주의 진영의 다른 행로를 가게 되어 결국 제2차 세계대전에서 상이한 운명을 맞이하는 것이다. 메이지 유신이 아시아 국가 중 일본에서 가능했던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당시 일본이 봉건제하에 있었던 것이 주요한 요인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즉, 도쿠가와 막부가 약 270년간 통치했지만, 개개의 번(藩)은 영주를 중심으로 하나의 독립된 국가와 같이 정치와 경제를 운영했으며, 규모가 큰 번들은 상호 경쟁 하에 자국 번의 부국강병을 추구했다. 이러한 번들 간의 경쟁은 ‘난학(蘭學, 네덜란드로부터 수입된 근대 문명)’을 발전시켰고, 난학을 통해 서양 문명의 우위를 깨달은 일본의 대외개방 세력이 서양의 근대 문명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메이지 유신을 추동하는 배경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역사적인 가정의 하나로 흥미로운 것은 만약 19세기 말 일본이 봉건제가 아니라 조선이나 청과 같이 천황이 통치하는 중앙집권적 왕조체제였다면,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통한 근대화의 길을 갈 수 있었을까. 왕조체제하의 일본이었다면 조선이나 청과 마찬가지로 왕조를 지키기 위해 근대화에 대해 매우 수동적으로 대처하다 서양 열강의 침략을 당하는 유사한 운명을 겪었을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본다. 왕조체제는 스스로 체제를 보존하고자 하는 성향이 강해 집권층이 변화와 개혁을 거부하는 속성이 있으므로 일본의 근대사도 전혀 다른 역사가 되었을 수도 있다고 본다. 물론 일본도 당시 집권층이었던 도쿠가와 막부는 내부개혁과 대외개방에 소극적이었으나, 반(反) 막부 성향을 가진 조슈번과 사쓰마번 출신이 중심이 된 유신 세력이 막부를 타도하고 천황을 정점으로 한 근대적 중앙집권적 국가를 건립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메이지 유신은 막부의 봉건체제에서 천황이 지배하는 근대국가로의 이행과정이 없었다면 성립하기가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된다. 신길수 前 주그리스대사

[세계는 지금] 중국 전기자동차 충전대기 단 2분으로 인기

세계적으로 전기자동차(EV)의 보급 확대가 전망되는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는 전기차의 비중이 0.5%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2017년엔 전기차 보급을 누계 4만6천 대, 2020년에는 20만 대까지 달성하겠다고 했으나, 2017년 약 2만6천 대 정도에 그쳤다. 전기차 보급이 부진한 이유 중의 하나는 충전대기 시간이다. 완속 충전할 경우에는 4~5시간, 급속 충전하더라도 최소 30분 이상 걸린다. 이러한 충전대기 시간이 단지 2분으로 단축되는, 놀라운 충전방법을 쓰는 전기차가 중국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중국 항저우 시내에서 눈에 자주 띄는 콤팩트 사이즈의 전기차. 이 차량은 가격이 정부보조금 포함해 1천300만 원 정도로, 개인 콜택시와 같은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이 차의 특징은 소모된 전지의 충전방식에 있다. 시내 ‘충전 스테이션’에 전기차가 들어오면, 종업인이 기계를 사용해 EV에서 소모된 전지를 통째로 떼어내고 그 자리에 이미 충전된 전지를 장착한다. 전지를 통째로 교환하는 이 작업에 걸리는 시간은 2분 정도. 항저우 시내의 한 ‘충전 스테이션’엔 상시 100개 정도의 전지가 선반에 보관ㆍ충전되고 있고, 전기차가 충전을 위해 들어오면 컴퓨터로 충전이 완료된 전지를 골라서 교환해준다. 1일 교환건수는 200회 정도라 한다. 전지교환방식 전기차는 항저우 소재 벤처기업 SKIO가 개발한 것으로, 자가용보다는 택시와 같이 빈번하게 운행하는 운송서비스 분야의 영업차량으로 인기가 있다고 한다. 이런 차량은 빈번하게 충전할 필요가 있는데, 전지교환방식은 충전에 걸리는 시간을 절약해서 영업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년간만 해도 항저우 시내를 중심으로 1만 대가 판매되었는데, 이제는 항저우 뿐만 아니라 상하이, 시엔 조우 등을 포함한 양쯔강 일대의 1억 경제권으로 전지교환 스테이션 망을 넓히고 있다고 한다. 중국에서 개발ㆍ보급되기 시작한 전지교환방식에 대해, 전기차 판매에 적극 나서고 있는 일본 도요타 자동차와 혼다자동차도 이 방식을 채용하는 구상을 짜고 있다고 한다. 전기교환방식은 차체 비용을 인하하는 장점도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전기차는 차체 가격이 높다는 게 문제이고 이 가격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충전전지 장치인데, 전지교환방식에서는 전지를 렌털하는 형식이 되기 때문에 그만큼 차체의 가격이 저렴해진다. 전지교환방식의 전기차가 차체 가격이나 충전대기 시간의 문제점 등을 해소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과제는 남는다. 전지교환 스테이션을 다수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전지교환방식을 개발한 벤처기업 SKIO가 성장하고 있는 배경에는 전기차 보급을 뒷받침하고 있는 지자체 등의 두터운 지원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그간 자동차산업에서 한국이나 일본에 견줄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조만간에 본격화될 전기자동차 시대를 리드해가는 기세는 대단한 듯하다. 중국의 전기자동차 보유는 2016년에 65만여 대로 미국을 제치며 이미 세계 1위에 올라섰다. 나아가 전지교환방식 개발·보급에서 보이듯이 EV 벤처들의 혁신적 창업과 중국 정부와 지자체의 과감한 지원으로 향후 세계 EV 시장에서 그 무게감이 더욱더 커질 것이다. 서형원 前 주크로아티아 대사·순천청암대 총장

[세계는 지금] ‘한반도 평화 만들기’ 외교

평창동계올림픽을 전기로 숨 가쁘게 달려온 한반도 평화 만들기는 남북한 정상회담이 내용과 형식 면에서 모두 세계적 관심에 부응하며 첫 고비를 성공적으로 넘은 것으로 평가받는다.물론 선언문이 제시하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65년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 남북교류의 획기적 확대와 궁극적 평화통일 달성에 이르기까지 지난(至難)한 여정을 감안하면 이번 정상회담은 첫 걸음에 불과하다. 외교적으로는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을 필두로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요국의 적극적 관여와 지지 확보는 물론, 국제사회 전반의 광범위한 지지를 확보하는 일이 시급하다. 남북한 정상회담을 앞둔 4월 하순, 쿠알라룸푸르와 방콕에서 아세안 각국 정치·외교 분야 차세대 학자들과 한국의 학자, 전문가들이 모여 학술회의를 각각 개최했다. 아세안의 미래 생존전략을 함께 고민해보자는 취지에서 한국국제교류재단이 아세안 각국에 소재한 국제문제연구소들과 매년 개최하는 회의다. 회의에서 아세안측 한 학자가 한반도 운전석에 앉은 문재인 대통령이 운전을 더 잘할 수 있도록 아세안에게도 적절한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아세안은 최근 UN 제재 이행을 위해 북한과 관계를 줄이거나 단절하기 전까지 북한의 중국 다음으로 중요한 무역대상이었다. 또 10개 회원국이 각 상황에 따라 북한과 다양한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특히 공산당 지배체제를 유지하면서 성공적으로 시장경제를 도입한 베트남의 경험은 앞으로 북한의 변화에 실질적 도움을 줄 것이라는 의견이다. 한국이 신남방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려면 아세안이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적절한 역할을 부여하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한반도 평화 만들기’라는 영화의 성공을 위해서는 주연배우들의 탁월한 연기력과 더불어 빛나는 명품 조연, 엑스트라 배우들까지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주어야 한다. 세계 각지로 눈을 돌려 적절한 배우를 발굴해 영화의 가치를 높여줄 역할을 부여하는 일은 감독을 맡은 문재인 대통령과 한국외교의 몫이다. 아세안 국가들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뿐 아니라 폴란드를 비롯한 중유럽 각국의 90년대 초반 체제전환 경험, 스웨덴과 캐나다 등이 북한 관리들을 초청해 시장경제 교육을 해온 경험은 북한이 지구촌의 정상적인 일원으로 등장하는 과정에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역할도 기대된다. 세계는 숨 가쁘게 진행되고 있는 남북한 관계변화가 자신들에게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 커다란 관심 속에 지켜보고 있다. 북한의 개방과 평화로운 한반도는 무엇보다 세계적으로 안보 비용을 현저히 줄여주고, 한반도라는 더 큰 시장을 제공할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북한의 개방과 한국의 북한에 대한 여러 형태의 지원이 일부 국가들에는 새로운 도전으로 비칠지도 모른다. 모든 국가들이 한반도 평화가 가져올 혜택(peace dividend)에 대해 이해하고, 한반도 평화 만들기 과정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도록 하는 것은 우리 외교가 당면한 과제다.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 과정은 매우 신속히 진행될 전망이다. 대립과 대결로 지내온 70년간의 남북한 관계가 평화롭게 돕고 사는 관계로 전환하려면 우리 내부의 준비와 세계 각국이 새로운 환경의 한반도와 적절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지원하는 우리의 선제 외교활동이 시급하다. 이시형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前 주OECD대사

[세계는 지금] 여성이 활약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일본

일본의 아베 수상은 여성이 일하기 쉬운 환경을 조성하여 ‘전원참가형 사회’를 구축하는 것을 경제성장 전략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저출산, 고령화가 진전되어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는 가운데 여성의 취업 확대를 경제성장의 핵심요소로 본 것이다. 일본 정부는 여성의 활약을 촉진하기 위해서 ‘여성활약촉진법’을 제정하는 등 여성의 사회참여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2012년 12월 이후 아베 내각의 ‘아베노믹스’ 정책에 힘입어 장기간에 걸쳐 호경기(이른바 ‘아베노믹스 경기’)를 지속하고 있다. ‘아베노믹스 경기’는 이미 거품경제기의 호경기(이른바 ‘거품 경기(1986년 12월~1991년 2월)’)의 51개월보다 긴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호경기가 지속되면서 일본의 고용상황은 급격하게 개선되었다. 일본의 문부과학성(한국의 교육부에 해당)에 의하면 2017년 3월말에 졸업한 대졸자 취업률은 97.6%이다. 일본에서는 대부분 대학졸업 전에 복수의 기업에서 취업내정(就職定)을 받고 이를 거절하는 것 때문에 고민을 한다고 한다. 남성과 여성의 취업률을 비교하면 남성 96.9%, 여성 98.4%로, 여성의 취업률이 남성보다 약간 높다. 이는 일본에서 취업에 있어서 남자와 여자 간에 차별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이 나비(일본의 취업지원 사이트)의 조사에 의하면 2019년 봄 졸업 예정인 대학생ㆍ대학원생의 취업내정률은 9.5%이다. 졸업까지 1년 이상 남은 시점에 일본의 대학졸업예정자의 10명 중에 1명은 이미 취업 내정을 받은 것이다. 이과 여성의 내정률은 11.9%로, 이과 남자 내정률(10.7%)보다 높다. 이처럼 이과 여성의 높은 취업률 또는 내정률은 일본의 ‘리케조(理系女) 붐’(이과 여자 붐)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리케조’란 이과 대학에 진학하고 싶거나, 이과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여성을 의미한다. 문과 출신이라도 이과 직종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리케조’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의 회사들은 글로벌 경쟁에 필요한 참신한 인재확보를 위한 수단으로 ‘리케조’에 주목하고 있다. 기업들은 ‘리케조’를 유치하기 위해 기업설명회, 공장연학 등을 대학과 공동으로 주최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리케조’를 응원하는 사회분위기 조성을 위한 관민에 의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출판사 중에 하나인 고단샤(講談社)는 이과 여자응원 서비스 ‘Rikejo’를 운용하고 있다. 일본의 경제산업성은 이과 여성의 취업지원을 위해서 정보 사이트(이른바 ‘리케조 나비’) 설치에 대한 비용을 지원하는 등 정부차원에서의 ‘리케조’의 활약을 촉진하기 위한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은 거품경제 붕괴 이후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불리는 장기불황에 빠졌다고 여겨지고 있지만, 사실 일본형 장기불황의 구조적인 요인 중의 하나는 저출산, 고령화의 진전이다. 아베 내각 역시 이러한 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저출산 고령화 시대의 성장전략으로써 여성의 사회 참여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생산가능인구 감소 속도는 OECD 회원국 중에서 상당히 빠른 편이다. 한국 역시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를 촉진하는 다양한 정책을 마련하고 이러한 정부의 시책이 민간에 확산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성빈 아주대 일본정책연구센터장·국제학부장

[세계는 지금] 평창 동계올림픽의 여운

4월과 5월에 개최될 남북 정상회담과 미북 정상회담을 눈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실험으로 금년 초만 해도 한반도에 긴장이 감돌았던 위기 국면에서 극적으로 전환하여 북한의 비핵화와 평화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하는 현국면이 도래하는 계기를 제공한 평창 동계올림픽이 떠올려진다.남북한 간 평창올림픽의 단일 하키팀 구성에 관한 합의는 미국과 중국 간 관계 정상화를 이끌어낸 1970년대 초 탁구 외교를 연상시키면서 세계의 비상한 주목을 끌었으며, 현재 전개되고 있는 남북한 간 긴장 완화와 관계의 발전을 모색하는 대화를 예고하는 상징이 됐다. 그러나 남북 단일팀이 노정한 또 하나 다른 성격의 상징은 폐막 후 북한선수단의 귀국 시 목도된 남북한 하키팀 선수들 간 이별의 장면이었다. 앞으로 더 이상의 재회가 불가능할 수도 있음을 인지한 양측 선수들의 비탄에 잠긴 표정들은 일회적인 동계 올림픽행사로는 넘을 수 없는 분단의 엄중한 비극성을 다시금 각인시켰다고 본다. 이러한 이별의 장면만큼 남북한이 통일되어야 하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는 것은 많지 않다고 생각되어 이를 계기로 통일의 필요성을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 통일은 우리에게 남겨진 어두운 근대사의 현재적 결과인 남북분단을 극복하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본다. 19세기 말 이후 우리의 역사는 일본에 의한 식민지화, 해방과 남북분단 등 타율적으로 강요된 행보를 보여왔으며 우리에게 깊은 자괴감을 주어 왔다. 그러나 우리는 1960년대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하는 역량을 발휘하여 민족적 자부심을 회복하였다.이제 우리는 통일로써 우리의 손으로 남북분단을 해소함으로써 우리 근대사의 부정적인 측면을 종료시키고 우리의 역사를 정상화시키는 민족적 자긍심을 되찾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이는 우리의 선대들이 근대사에서 겪은 오욕과 한(恨)을 우리 후대가 풀어주는 것이 되는 것이라고 본다. 둘째, 남북 분단이 세계에 주는 이미지다. 세계인의 시각에서 보면 북한은 비정상적인 체제로 인해 세계에서 고립된 국가다. 문제는 세계인의 눈에는 이러한 북한도 한국의 일부라는 점이다. 남한이 아무리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으로 발전하더라도 한국의 이미지는 외국인에게는 분단으로 인해 절름발이 민족으로 보이는 것이다. 우리가 통일을 해야만 외국인들도 우리 한민족을 진정으로 인정하고 수용할 것이다. 북한이 정상적인 국가로 발전하고 통일이 되지 않는 한 남한만의 국가적 발전으로는 한민족이 세계에 올바르게 평가받을 수 없다고 본다. 셋째, 통일은 우리에게 경제발전 제2의 도약기를 가져다줄 수 있다고 본다. 남한의 기술과 자본, 북한의 노동력과 천연자원이 조화롭게 결합하면 경제발전을 위한 엄청난 추진력을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남북한 간 우리 민족의 역량이 결집하면 상상도 못할 그림을 가져올 에너지가 분출될 수 있다고 본다. 그날을 고대하며 우리의 외교 노력이 이뤄져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역사와 민족의 온전성을 회복하기 위해 통일에 대한 비전이 필요하다. 통일은 우리 외교 최고의 가치로서 우리 외교의 좌표를 설정해주는 외교 목표의 최정점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신길수 前 주그리스대사

[세계는 지금] 일본, 전문직 대학 설립으로 직업교육 국가책임 강화

일본의 고등교육기관은 대학과 단기대학, 그리고 전문학교 등으로 구성된다. 대학(4년제)과 단기대학(2~3년제)은 특정직업에의 취직을 전제로 하지 않고 폭넓은 교양이나 전문 지식·이론을 교육한다. 대학 졸업생들은 취업한 후에 기업에서 필요한 실천적 직무교육과 훈련을 받는다. 전문학교는 취업을 목적으로 특정직종의 실무에 직접 필요한 지식과 기능을 교육하며, 직종에 따라 1~3년 과정으로 운영된다. 그간 반세기 이상 일본의 경제사회를 뒷받침해온 이러한 고등교육 제도에 변화가 일고 있다. 내년 봄 학기부터 실천적인 직업교육을 실시하는 새로운 고등교육기관으로서 전문직 대학이 새로 문을 연다. 현재 보건·복지나 전자 등의 분야를 중심으로 전문학교를 운영하는 학교법인들이 모체가 되어 모두 13개의 전문직 대학의 개교를 준비 중이다. 전문직 대학의 도입은 급격한 경제사회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타입의 인재 육성을 강화하는 것이 긴요해졌기 때문이다. 제4차 산업혁명과 국제경쟁의 격화로 직업의 성쇠 사이클이 짧아지고 직업의 장래를 예측하기 어려워졌다.일본에서 10~20년 후엔 노동인구의 약 49%가 인공지능(AI)이나 로봇 등에 의해 대체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에 취업구조는 일자리 고용 형태로 전환되고, (평생고용을 전제로 한) 기업 내 교육훈련도 축소되고 있다. 또한 저출산·고령화의 진전으로 생산연령인구가 감소함에 따라 노동생산성 향상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로 산업계 등에서 보다 실천적인 교육과 사회인의 재교육에 대한 수요가 증대되고 있으나, 현행 고등교육기관으로는 그런 수요를 충족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어왔다. 이런 배경 하에 도입되는 전문직 대학은 전문학교의 장점인 실무중심의 직업교육과 대학의 장점인 폭넓은 교양이나 지식·이론 교육을 통합하여, 고도의 실천력과 풍부한 창조력을 갖고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창출해낼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문직 대학의 교육과정은 산업계와 연계 하에 개발·편성·실시하며, 장시간의 기업현장 실습을 포함해 졸업학점의 3~4할 이상을 실습과목으로 편성한다. 수업 연한은 4년이며, 전기와 후기로 구분하여 전기 과정 수료 후 일단 취업했다가 후기과정에 재입학할 수 있다. 학생으로 고졸자 외에 사회인편입생 및 유학생도 적극 수용하며, 사회인도 공부하기 쉽게 신축적인 과정이수 방식을 마련한다. 4년제 전문직 대학 외에도 직업교육을 위한 고등교육기관으로 2~3년 전문직 단기대학이 신설되고, 일반 대학 및 단기대학도 전문직 대학의 교육과정에 준하여 전문직 학부나 학과를 설치할 수 있게 된다. 그간 일본에서 직업교육은 기본적으로 기업이나 전문학교 등이 중심이 된 민간부문에서 담당하여 왔는데, 일본정부가 고등 직업교육기관으로 전문직 대학을 제도화한 것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한 직업교육을 국가책임하에 강화할 것임을 의미한다. 실천력과 창조력을 갖춘 전문직업인의 육성이 일본의 제4차 산업혁명 전략을 실현하는 데 핵심요소이기 때문이다. 서형원 前 주크로아티아 대사·순천청암대 총장

[세계는 지금] 한반도 평화 외교정책도 공공외교 자산이다

공공외교(public diplomacy)는 ‘군사력이나 경제력과 같은 하드파워가 아닌 소프트파워를 바탕으로 상대국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외교활동’이다. 공공외교 분야의 대표적 학자인 조셉 나이(Joseph Nye) 하버드대학 교수는 소프트파워의 원천으로 첫째, 매력적인 문화(culture), 둘째, 존경받는 정치적 가치(political values), 셋째, 정당성과 도덕성을 갖춘 외교정책(foreign policies)을 들고 있다. 공공외교를 한류와 같이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우리 문화를 매개로 하여 한국을 알리는 일 정도로 여기는 경우도 있다. 매력적인 문화가 분명 소프트파워 원천 중 하나이지만, 정치적 가치나 외교정책도 공공외교 자원으로서 보다 활발히 활용돼야 한다. 우리나라는 50년 만에 최빈국에서 국내총생산(GDP) 11위, 수출 6위의 경제대국으로 발전해 세계사에 유례없는 경제발전 성공사례로 인정받고 있으나, 민주주의 발전 과정은 최근까지 국제사회에서 충분히 인식되지 못해왔다. 하지만 2016~2017년 촛불시위를 통해 한국의 역동적인 민주주의 역량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민주주의의 세계적 확산을 위해 활동하는 미국의 비영리단체인 민주주의기금(NED) 주관으로 오는 5월 세네갈에서 개최되는 ‘민주주의를 위한 세계운동’ 제9차 총회에는 한국국제교류재단 후원으로 국내 인사들이 참여하여 한국의 촛불민주주의를 의제의 하나로 다루면서 다른 나라의 학자, 운동가들과 토론할 예정이다. 총회 외에도 올해 중, 워싱턴과 서울에서 각각 학술회의가 한 차례씩 개최되어, 우리의 민주주의를 향한 노력이 국제사회로부터 ‘존경받는 정치적 가치’로 인정받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평창동계올림픽을 전환점으로 한반도는 전쟁의 위기에서 벗어나, 주요 당사국간 일련의 정상회담을 통해 핵무기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제도적으로 정착시켜 나아가기 위한 모멘텀을 쌓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이 압도적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으며 준비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소프트파워 원천 중 하나인 ‘정당성과 도덕성을 갖춘 외교정책’의 사례라고도 하겠다. 런던에 본부를 둔 Portland Communications사와 미국 남가주대학(USC)의 공공외교센터가 측정한 2017년도 소프트파워 순위에는 한국이 30개 대상국가 중 21위에 올랐다. 평가기관은 한국이 실제 구비한 다양한 요소별 역량에 비해 국제사회에 충분히 알려져 있지 않거나 부정적 인식을 주고 있는데, 북한의 위협이라는 이미지가 주는 영향이 크므로 이를 줄이기 위한 공공외교 노력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문화를 매개로 하는 공공외교, 경제와 민주주의 발전을 주제로 한 공공외교를 꾸준히 전개하는 한편, 한반도 평화구축을 위한 우리의 정책과 노력에 대해 국제사회에 보다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남북한과 주변국간 복잡한 조합으로 일련의 정상회담을 거쳐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이라는 과업을 달성하는 일은 확고한 국민적 지지, 국제사회의 충분한 동의 없이는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이 엄중한 과업의 성패를 좌우할 영향력을 가진 미국, 중국 등을 상대로 하는 정부의 외교활동을 공공외교 측면에서 지원하려면 무엇보다 이들 국가의 여론주도층으로 하여금 한반도 평화구축을 위한 우리의 정책 방향에 대해 명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처럼 국가와 민족의 명운을 좌우할 중대한 외교 사안이 숨 가쁘게 전개되고 있는 시점에는 범국가적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잘 정제된 메시지를 흐트러짐 없이 수면 위, 아래에서 국제사회에 발신할 수 있도록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이시형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前 주OECD대사

[세계는 지금] 일본의 가상통화거래소 해킹 사건과 가상통화 규제

최근 가상통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일본 모델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1월26일 코인체크라는 가상통화거래소가 해킹으로 인해 580억엔 상당의 NEM이 탈취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동 사건을 계기로 일본의 금융청은 자금결제법에 의거, 가상통화거래소로서는 최초의 업무개선명령(1월29일)과 현장 검사(2월2일)를 실시했다. 지난해 4월 개정된 자금결제법에서는 가상통화거래소의 금융청ㆍ재무국에 대한 등록제를 도입, 거래소에 대해 자본금 요건과 시스템 안전관리 체제 구축, 거래 시 본인확인, 재무제표 외부감사 등의 의무를 부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부터 거래소를 운용하고 있는 업자는 등록신청을 하면, ‘간주업자’로서 기간제한 없이 영업을 계속할 수 있었고, 이번에 해킹사고를 낸 코인체크는 등록심사단계에 있는 ‘간주업자’였다. 사실 일본에서 거래소에서 대규모 사고가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4년 당시 세계최대 가상통화 거래소의 하나인 MTGox(마운트곡스)의 파산 사건에서는 많은 이용자가 피해를 봤다. ‘MTGox 파산 사건’은 일본 정부가 가상통화에 대한 규제를 정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그럼에도 올해 코인체크 해킹 사건은 여전히 ‘이용자 보호’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지난해 도입된 가상통화에 대한 규제가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용자 보호’와 더불어 일본의 가상통화 규제의 중요한 축은 ‘자금세탁 및 테러자금 등으로의 악용 억제’다. 이는 가상통화 규제에 대한 다음과 같은 국제적 논의를 고려한 것이다. 2015년 6월26일 FATF(자금세탁방지 금융대책기구)에서는 자금세탁, 테러자금공여를 방지하기 위해 각국에 대해 등록제, 본인확인의무를 부과해야 한다는 점을 제시하고 있다. 즉 일본 정부는 ‘이용자 보호’와 ‘자금세탁 방지’ 등의 측면에서 가상통화에 대한 규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가상통화를 완전히 금지할 경우, 혁신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가상통화의 과세를 검토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일본에서는 이미 과세를 하고 있다. 일본에서 가상통화는 본래 소비세(부가가치세) 부과 대상이었으나, 지난해 7월 소비세법 시행령 개정으로 가상통화를 매매할 경우에도 소비세의 비과세가 결정됐다. 한편 2017년 12월 일본의 국세청에서는 가상통화의 매각, 사용에 의해서 얻은 소득을 잡소득으로 규정하고, 그 소득이 20만 엔 이상인 경우 확정신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잡소득은 급여소득 등 다른 소득과 합산하여 소득세가 부과되므로, 일본에서는 가상통화의 매각 등을 통해 얻은 소득에 대해 최고 55%(소득세 45%+주민세 10%)의 세금을 부담하게 된다. 일본의 사례가 한국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가상통화는 아직 그 효과, 잠재력 등이 불확실한 부분이 많다. 정부 입장에서는 어떻게 규제해야 할지 명확한 해법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가상통화를 규제할지 말 것인지는 쟁점이 될 수 없다. 규제는 당연히 필요하다. 다면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규제 시에 어떠한 정책목표를 중시하고, 구체적으로 어떠한 규제 내용을 담을 것 인지일 것이다. 일본의 사례를 고려했을 때 가상통화에 대한 이용자 보호를 철저히 하고 테러자금 등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규제를 하면서도, 아직 확인되지 않은 가상통화가 갖는 잠재적인 가능성이 완전히 차단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박성빈 아주대 일본정책연구센터장·국제학부장

[세계는 지금]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고독한 투쟁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여러 가지 점에서 요즈음의 지도자들과는 다른 점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7년 5월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40세의 젊은 나이에 아무런 정치적 기반 없이 무소속으로 출마해 기존 정당들의 쟁쟁한 후보들을 물리치고 당선된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의 병자로 알려지고 있는 프랑스를 개혁하여 새로운 나라로 만들고자 하는 국정운영 철학을 보여주면서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자신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가고 있어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특히 그의 국정운영에서 주목되는 특징은 세계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대중영합주의적인 인기정책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대중영합주의적 정책으로는 프랑스를 개혁해 낼 수 없으며, 무기력한 대통령으로 평가된 전임자들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의 개혁정책 핵심은 프랑스 경제의 부흥을 위한 노동개혁과 기업 활동 활성화의 촉진에 있다. 취임 이후 실시한 노동조합의 근로조건 협상권 약화, 기업의 해고 권한 확대와 법인세 인하 등 강력한 개혁정책의 결과, 프랑스 경제의 지난해 말 4분기 경제성과는 괄목할 만하다. 실업률(8.9%)과 국내총생산(GDP) 성장률(1.9%)이 2011년 이후 가장 좋은 수치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개혁정책이 괄목할 만한 경제적 성과를 가져오고 있지만 마크롱 대통령에 대한 프랑스 국민들의 지지도는 의외로 다시 하락하고 있다. 최근의 여론 조사에 의하면 국민들은 국가의 거시적인 경제성과를 높이 평가하기보다는 국민 다수가 원하는 것은 개인의 실질소득 증가라고 한다. 이러한 국민들의 낮은 평가와 지지도에 대한 마크롱 대통령의 정책적 대응이 그를 전임자들과는 확연히 다르게 만든다. 마크롱 대통령은 국민의 지지도를 올릴 수 있는 정부의 공공지출 확대 또는 조세감면 등의 정부재정을 악화시키는 단기적인 소득증가 정책은 취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확고히 하면서 개혁정책을 변함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한다. 마크롱 대통령은 국민들의 실질소득증가를 위해 단기적인 대응정책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개혁정책을 통해 프랑스 경제가 부흥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개인의 실질소득이 증가하는 결과를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의 개혁정책은 3월 중 연례적인 노조의 대규모 춘투로 인해 혹독한 시련을 겪게 될 것이다. 대통령이 국가를 위해 바람직한 국정운영을 해도 대통령과 소속정당은 정치적으로 실패할 수도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인기에는 연연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의 정책을 추진해 나가고 있다. 개인주의가 심한 프랑스 사회에서 국가관을 고취시키고 단결을 이끌어 내기 위해 18세 이상 청년들이 한 달간 의무적으로 군사훈련을 받도록 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철밥통으로 이름 높은 국가철도공사는 올해 누적부채가 500억 유로(약 67조 원)을 넘어선다고 하는데 마크롱 대통령은 이 또한 강력한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앞으로 마크롱 대통령이 개혁정책을 통해 국가 경제의 부흥과 함께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높이 세울 수 있을지는 두고 볼만한 일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대외적으로도 역동적인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영국의 EU 탈퇴로 손상된 EU가 신뢰도를 회복하기 위해 EU재무장관의 신설과 유로존 차원의 예산안 작성 방안 등 유럽통합의 심화에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를 제시함으로써 메르켈 독일 총리와 함께 유럽의 지도자로 부상되고 있다. 신길수 前 주그리스대사

[세계는 지금] 한일 역사 갈등에 우방국들의 시각은?

지구촌의 이웃나라 관계 가운데 한일관계처럼 역사 갈등이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전선이 국제사회로 확대되고 있는 양국관계는 없다. 매년 봄이면 한일 간 역사 갈등의 1년 주기가 시작된다. 4월 초 일본에서 교과서 검정결과, 6월 전후 일본의 외교백서와 방위백서가 발표될 때마다 우리 정부나 언론은 일본의 역사왜곡을 날선 눈으로 검증하고 반박한다.일본의 춘계 대제사, 8ㆍ15 종전기념일과 추계 대제사 때마다 일본의 총리나 각료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우리의 대응을 자극한다. 겨울의 끝 2월이면 일본 시마네현의 소위 ‘다케시마의 날’ 행사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그리고 봄부터 또다시 같은 패턴으로 갈등이 반복된다. 위안부, 독도, 동해 명칭, 일본의 역사인식 문제 등이 한일 양국 간 연쇄 반응을 일으키는 사안들이다. 매년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때 당시의 양국 내 정치상황, 특정사안에 대한 정치인들의 언동, 양국 정부의 태도나 여론의 반응에 따라서는 갈등의 진폭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곤 했다. 이렇게 역사 갈등이 반복ㆍ지속되는 과정에서 어느 때부턴가 한일 간 싸움의 전선이 국제사회로까지 확대됐다. 특정사안에 대해 한일 양국 간 입장이 첨예하게 부각되고 감정이 고조되면, 우리 정부나 민간단체는 관련 국제기구나 국가들을 상대로 일본의 주장을 반박하고 우리의 입장을 지지하도록 치열하게 요청한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이래서 세계 곳곳에서 한일 양국의 지지확보 경쟁이 전개되곤 한다. 필자도 현직 근무 중 주재하는 국가의 정부나 언론 인사들을 접촉하며 한일 역사문제에 관한 우리의 입장을 설명하고 지지를 요청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주재국 인사들은 한국이 처했던 역사적 상황에 대한 이해와 동정을 표하면서도, 대체로 한국과 일본이 모두 자신들의 중요한 우방국인 만큼 어느 쪽을 공개 지지하기 어려운 사정임을 토로하고 한일 양자 간 대화와 협의를 통해 문제가 해결되기 바란다는 반응을 보이곤 했다. 우리 외교관들에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주재국 인사를 접촉한 일본 외교관들도 비슷한 반응을 받은 것으로 보였다. 최근 어느 포럼에서 미국의 전직 외교관 출신 한일관계 전문가로부터 ‘미국인의 관점에서 본 한일관계’에 관해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역사문제와 관련, 미국인들이 위안부 문제에 관해 처음 접했을 때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한국인의 마음에 동정적이었으며 일본정부의 태도에는 비판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에서 역사문제를 둘러싼 한일 간 외교전이 오래 지속되면서, 한국과 일본이 왜 미국에 와서 역사전쟁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워졌다고 했다. 미국에서 계속되는 한국인들의 호소가 얼마나 대한민국에 도움이 되는지 의문을 갖게 되고, 위안부 문제 관련한 일본의 반대 캠페인은 일본의 이미지에 역효과가 날 뿐이라고 했다. 나아가 미국인들에게 과거도 중요하지만 미래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압도적이라고 하면서, 미국의 동맹인 한일 양국의 관계에서 역사문제가 지역안보 등 현재와 미래의 문제에 악영향을 주지 않기 바란다고 했다. 이러한 기대는 미국만이 아니라 한일 양국의 우방국들에 대체로 공통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우방국들의 바람과 기대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경색돼온 한일관계가 획기적으로 풀리기를 희망해 본다. 서형원 前 주크로아티아 대사·순천청암대 총장

[세계는 지금] 평창올림픽과 공공외교

평창올림픽은 인상적인 개막식과 폐회식, 원만한 경기진행, 완벽한 치안유지, 흑자운영, 다양한 종목에서 우리 선수들의 선전 등 대체로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된다. 북한 핵문제로 유례없이 긴장이 고조되던 한반도는 올림픽을 계기로 일단 대화국면으로 전환됐으며, 정부는 이러한 남북 대화 기조가 미국과 북한 간 대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역량을 동원하고 있다. 88 서울올림픽이 냉전체제가 와해되던 시기에 우리의 북방정책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듯, 평창올림픽은 한반도 평화정착의 전기를 이룰 수 있는 고비가 되고 있다. 올림픽을 통해 개최국이 거양할 수 있는 성과는 첫째, 평화를 추구하는 인류의 화합을 도모함으로써 올림픽 정신을 구현하는 일이며 둘째, 대규모 국제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는 국가적 역량을 과시하고 셋째,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기회를 활용해 자신의 문화를 알리는 일이라 하겠다. 평창올림픽은 동계올림픽 역사상 가장 많은 92개국의 대표단이 참석한 가운데 테러는 물론 경미한 치안사고나 불미스러운 사건도 없이 평화롭게 진행됐다. 북한 대표단과 선수단의 참가와 남북한 단일팀 출전으로 분단 현장에서 평화의 메시지를 발신하는 극적인 요소까지 더해졌다. 또한 동계올림픽 개최에 필요한 시설이나 기술적 지원 등 운영 측면에서도 흠결이 없었으며, 개막식과 폐회식 등 다양한 계기를 활용하여 한국의 전통 고전문화와 현대 대중문화, 세계적 음악과 한국 음악이 어우러지는 다양한 연출을 통해 한국의 역동적인 이미지를 세계에 전했다. ‘한국을 세계에 제대로 잘 알리는 일’로 정의할 수 있는 공공외교 측면에서 평창올림픽은 서울올림픽 이후 한 세대 만에 맞이한 절호의 기회였으며, 한국은 그 기회를 최대한 활용했다고 자부하면서도 아쉬움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개막식 중계도중 주관방송사 해설위원의 한일관계 관련 발언이 우리 국민들의 실망과 분노를 불러일으켜 방송사와 본인의 사과로 이어졌다. 공공외교를 통해 모든 외국인들로 하여금 우리와 동일한 역사인식이나 시각을 가지도록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이런 상황이 발생할 때 우리의 시각으로 대응해 줄 여론이 국제사회에 나타날 수 있도록 평소 우호적 여론 주도층을 폭넓게 구축해두어야 한다. 한편 개 사육장을 방문하고 개를 입양하는 등 한국의 개고기 음식문화와 관련한 일부 외국선수들의 행동이 국내외 언론에 보도되었다. 해외 온라인 댓글은 한국인을 무작정 비난하는 대신 각국의 문화는 존중돼야 하지만 동물권리 보호 차원에서 잔인한 도축방법은 근절돼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한국사회가 개의 도축과 위생관리에 있어 법적 공백상태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우리에게 고유한 현상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가진 외국인이 있다면 잘 납득시키는 것이 한국인으로서 할 도리이지만, 외부인의 시선으로 본 지적이 의미 있는 것이라면 개선의 노력을 서두르는 것이 지구촌 일원으로 살아가는 지혜다. 남가주대학(USC)의 공공외교센터가 조사한 2017년도 각국의 소프트파워 순위에는 서유럽, 미국, 일본 등이 상위권을 차지한 데 비해 한국은 21위에 머물렀다. 소프트파워는 문화·가치·이념과 같이 만져지지 않는 힘,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힘이며, 이를 바탕으로 한 외교활동이 바로 공공외교다. 군사력, 경제력 등 한국의 하드파워는 대체로 세계 10위권 안팎인데 비해 소프트웨어는 미진한 편이어서 공공외교 활동의 분발이 요구된다. 평창올림픽이 한국의 2018년도 소프트파워 순위를 끌어올려주기를 기대한다. 이시형 국제교류재단 이사장·前 주OECD대사

[세계는 지금] 이탈리아의 중소기업

세계적으로 중소기업이 가장 견고하고 활발한 나라를 든다면 독일, 이탈리아, 대만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이탈리아는 중소기업의 크기가 다른 두 나라보다 더 작고도 견고하며, 훨씬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이탈리아 기업의 제조업 기술과 장인정신은 유럽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부터 유명했다. 그래서 중소기업의 육성에 관심이 많은 한국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이 시찰차 이탈리아를 많이 방문하곤 한다. 그러나 그곳 중소기업의 개념이나 운영방식이 한국과 너무도 달라서 한국에 적용할만한 점을 별로 발견하지 못하고 떠나곤 한다. 필자가 주이탈리아 대사로 일하던 2015년 당시 이탈리아는 1인당 국민소득(GDP) 순위가 한국의 바로 코앞에 있었고 더욱이 당시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이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고 있던 터라, 한두 해만 지나면 한국이 이탈리아를 곧 추월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그러나 뜻밖에도 그 정반대로 이탈리아의 GDP 순위는 더 격상된 반면 이탈리아와 한국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 그것은 다분히 이탈리아 경제를 떠받치는 이름 없는 수많은 중소기업 덕분이었다. 그들은 혹독한 경제적 불황 속에서 정부의 별다른 지원도 없이 대부분 살아남았고, 지난 수백 년간 그래왔듯이 바깥세상이야 어찌되건 묵묵히 자신들의 자리를 지켰다. 이탈리아의 중소기업의 대표적 특성을 들자면, 첫째 대부분이 가족단위의 미니기업이고, 둘째 집안에 전해져 내려오는 기술력을 토대로 농가공업과 제조업에 종사하는 기업이 대부분이며, 셋째 수백 년간 자손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기업이 많다는 점이다. 이탈리아의 전체 GDP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70%에 달하며, 특히 가족기업이 GDP의 80%를 점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규모는 아주 작다. 이탈리아의 전체 기업 중에서 10인 이하 소기업이 94.8%이고, 5인 이하 기업도 약 90%에 달한다. 5인 기업이라고 해서 사장 한 사람이 4명을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사장으로서 세일즈를 하고, 아들과 사위가 가게 위층에서 제품을 만들고, 부인은 1층 가게에서 물건을 팔고, 딸은 회계를 보는 식이다. 그러니 노조도 없고 파업도 없고, 아무리 회사 사정이 어려워도 이익금을 조금씩 덜 가져가면 그만이므로 큰돈은 못 벌더라도 망하는 기업은 별로 없다. 필자가 포도밭을 경작하는 토스카나의 어느 농가에서 민박했을 당시 주인에게 물어보니, 직접 포도농사를 지어 연간 2만 병의 포도주를 자기 브랜드로 생산해 출하한다고 했다. 직원이 몇 명인지 물어봤더니, 자기 부인과 두 자녀가 전부이고 포도 수확철에만 1~2명을 임시로 채용한다고 했다. 그야말로 이탈리아의 가장 전형적인 중소기업 형태였다. 자기 부모세대보다 더 편하고 더 고귀한 직장을 추구하는 우리나라의 사회상과는 달리, 이탈리아의 젊은이들은 아버지가 농부이건 요리사이건 구두제조공이건 전기기술자건 간에 가업을 승계하는 것을 대부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수백 년의 가업승계가 가능했고 가업을 통한 기술의 전수와 축적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대다수 젊은이가 불필요한 대학 진학을 안 하려는 풍조가 만연하여, 이탈리아 정부에게 하나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기도 하다. 이탈리아 상류사회 사람들의 명함을 받고 보면 이름 앞에 ‘Dott.’ 라는 호칭이 붙은 경우가 많다. 장관이건, 주지사건, 교수건, 변호사건 자랑스럽게 그 호칭을 명함의 이름 앞에 꼭 붙인다. 필자는 그것이 당연히 ‘박사’라는 표시일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나중에 알고 보니 뜻밖에도 ‘대졸’이라는 뜻이었다. 대체 얼마나 대학들을 안 가기에 대졸이라는 것이 자랑거리가 될 수 있을까. 고학력자의 무제한 과잉생산으로 취업난과 실업률 증가를 자초한 우리나라의 사례와는 너무도 대조적인 이탈리아 사회의 일면이다. 이용준 前 주이탈리아 대사

[세계는 지금] 한일 위안부 합의와 한일간 민간감정

그동안 논란이 되어온 한일위안부 합의에 관한 우리 정부의 선택은 고심 끝에 한일 협력관계는 투트랙 정책을 추진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위안부 합의의 폐기 또는 재협상은 추진하지 않되 10억 엔의 일본 정부 자금을 우리 예산으로 대체하고 일측에는 위안부 희생자들에 대한 진실되고 성의 있는 조치를 촉구하는 절충적 방침을 취했다.이에 대해 일 정부는 추가적인 사과 조치는 절대로 불가하다는 냉담한 반응을 보이면서 우리 측에 합의의 이행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소녀상의 이전이나 철거에 관한 한국 측의 의무가 합의 내용에는 명시적으로 열거되어 있지 않은 데도 일 측이 이에 대한 이행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일 측의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하다. 앞으로 한일관계의 정상화는 위안부 합의에 관한 양국 정부 간 현재의 입장 차이가 여하히 조율되는가에 달렸다고 보인다. 우리 국민의 위안부 합의에 대한 비판적 여론에 비추어 일본정부로부터 합의의 생명력을 살리고자 하는 노력이 없으면 현재의 합의는 사실상 사문화가 될 개연성이 커 보인다. 일본의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83% 정도의 압도적인 수준으로 위안부 합의에 관한 일 정부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한일관계에 있어 안타까운 점은 국내에서 한일 과거사에 대한 일 정부의 태도를 성토하는 여론이 높아질 때마다 역으로 일 정부의 과거사를 왜곡 또는 미화하는 수정주의 노선에 대한 일본 대중들의 지지도는 높아지는 현상이다. 일본인들은 서양인들의 시선에 관해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예민하다. 일본인들은 서양인들의 시선이 긍정적이기를 바란다. 한국이 국내외에서 위안부 소녀상을 건립하는 것에 대해 자신들이 폄훼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한국에 대해 불편한 심정을 갖게 됨과 함께 이에 대한 반동으로 일 정부의 역사 왜곡적인 수정주의 역사관을 지지하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 한일 위안부 문제 등 한일 간 과거사 양국 문제는 정부 간 차원의 대립에서 그치지 않고 양국 국민 간의 상호 불편한 감정이 증폭돼가는 측면도 보여 우려가 된다. 이와 관련해 사드 이후의 한중 관계에 관해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을 제시한 한 언론사의 베이징 특파원의 논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특파원은 현재의 한중 관계에서 중국의 경제 보복이나 홀대보다는 양국 민간에서 확산되는 반한 반중 감정이 가장 우려스럽다고 지적하고 우리가 처한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볼 때, 북한의 핵 문제 해결 그리고 이후 북한의 체제개혁과 한반도 통일까지의 지난한 과정에서 중국의 협조는 필수불가결하다고 보면서 이러한 중국과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는 게 우리의 숙명이라면 우리의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우리가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정착이라는 백년대계를 위해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갈지를 생각케하는 충언이라고 생각된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가 일본과의 관계를 이끌어 나갈 때 일본 지도층이 수정주의 역사관을 내세워 과거사를 합리화하고 진정한 사과를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더라도 이는 마치 타조가 얼굴을 모래사막에 박고 엉덩이는 내보이는 모습에 불과하므로 우리는 이에 대해 냉철한 대응을 통해 국익을 위한 용일의 차원에서 일본과의 협력관계를 추구해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신길수 前 주그리스대사

[세계는 지금] 난민문제로 부각된 EU 내 동서유럽 갈등

EU는 국제사회에서 지역 국가들의 평화와 번영을 보장하는 지역통합의 이상적 모델이었다. 그런 EU가 지난해 영국의 탈퇴 선언에 이어, 올해는 동유럽 회원국들과의 갈등으로 심상치 않은 도전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 EU 집행위원회가 난민 할당제(EU 영내에 유입된 난민들을 EU 회원국에 할당, 수용시키는 제도)에 따른 의무이행을 거부해온 폴란드헝가리체코를 EU 재판소에 제소했고, 이들 동유럽국들은 이에 정면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EU 회원국들 간 갈등요소가 된 EU의 난민 할당 문제는 2011년 시작된 시리아 난민위기에서 비롯된다. 시리아 내전으로 수백만 명의 시리아 국민이 터키, 이라크 등 주변 국가로 피난하여 거주하게 되었는데, 2015년 중반까지 많은 시리아 난민들이 EU 회원국으로 이주하기에 이르렀다(2015년 8월까지 독일 약 9만 명, 스웨덴 약 6만 명 등). 독일이 경제력과 노동력 부족을 바탕으로 난민들을 계속 수용하는 정책을 펴자, 독일을 우선 목표지로 한 난민의 이동은 물밀듯이 계속됐다. 터키에서 쪽배로 목숨 걸고 풍랑이 심한 바다를 건너 그리스로, 그리스에서 다시 발칸반도의 마케도니아-세르비아를 거쳐 EU 경계이기도 한 헝가리 국경을 넘은 후, 서유럽으로 향했다. 2015년 9월에는 EU 경계를 넘는 난민들이 하루 평균 8천여 명에 달할 정도였다. 대규모 난민 유입이 계속되자 헝가리는 독일 등의 난민 수용정책을 비난하면서 난민들의 자국 통과를 거부하고 국경을 폐쇄하였다. 그러나 대규모 난민의 EU 입국 행렬은 헝가리의 인접국이자 EU 회원국인 크로아티아 국경을 통해 2015년 말까지 계속됐다. 이후 EU는 터키에 대규모 지원을 제공하고 터키는 자국을 통한 난민의 유럽 유입을 막는데 협조키로 하면서, 난민의 대거 유입은 소강상태가 된다. 그러나 대규모 난민사태가 남긴 후유증은 여전히 크다. EU 집행위원회는 회원국들이 난민을 수용하는 부담을 공정하게 분담토록 한다는 입장에서, 2015년 난민 16만 명을 회원국 크기나 경제력에 따라 할당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때 루마니아,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등 동유럽국들은 의무할당에 반대투표를 던졌는데, 동 할당의 이행과정에서도 동유럽국들의 반발은 두드러졌다. 체코는 할당된 2천 명 중 12명만을 수용했고, 폴란드와 헝가리는 이행실적 제로다. EU 집행위는 결국 지난해 12월 이들 3국을 EU 재판소에 제소하게 됐고, 폴란드는 헝가리, 체코 및 슬로바키아와 함께 대EU 도전을 주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들 동유럽 4국은 난민 할당제가 국가 정체성을 약화하고 국가안보를 위협한다며 거부하고 EU의 지나친 주권제약과 내정간섭에 반발해온 점에서 입장이 같다. 그래서 향후 EU 내에서 동서유럽 회원국들 간 이민정책과 가치관을 둘러싼 갈등이 격화될 우려가 있다. 특히 폴란드는 현재 우파 민족주의 집권당이 영국을 본받아 EU 탈퇴를 추진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우리나라는 EU와 기본관계협정과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정치적 경제적으로 깊은 호혜적 관계를 유지해왔고, 동유럽 4개국에는 각각 우리기업들이 많이 진출하여 경제적 이익이 클 뿐만 아니라 이들 4개국과 정치적 관계도 강화되어 왔다. EU와 동유럽 4국 간 갈등격화와 분열은 남의 나라의 일이 아니라 우리가 관심 갖고 지켜볼 일이다. 서형원 前 주크로아티아 대사·순천청암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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