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원더걸스’와 ‘소녀시대’를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정도다. 올해 상반기와 하반기에 연이어 등장한 이들 소녀 그룹은 침체의 늪에서 좀체 탈출할 기미가 보이지 않던 한국 가요계의‘구세주’가 되어 있다. 두 그룹은 멤버 숫자, 음악 스타일, 캐릭터 등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그보다는 공통점이 더 부각되고 있다. 두 소녀 그룹은 모두 10대 소녀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고, 팬층은 30~40대 성인 남성들까지 폭넓게 걸쳐 있다. 이 두 가지 공통점이 요즘 연예계는 물론이고 대중 문화계 전반의 가장 큰 이슈로 떠올라 있는 상태다. ‘원더걸스’는 5인조이다. 16살 중학교 3학년 2명, 19살 고등학생 3학년 2명, 20살 대학생 1명이다.‘ 소녀시대’는 9인조이다. 17살이 1명, 18살이 2명, 19살이 6명이다. 완전히 소녀 일색이다. 두 소녀 그룹의 의상을 보면 ‘원더걸스’가 스트리트 룩이나 언더그라운드 씬의 패션을 하고 있고,‘ 소녀시대’는 그보다는 훨씬 세련되고 정돈된 패션을 하는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10대 소녀 멤버들의 앳됨, 건강함, 밝음, 명랑함을 최대한 강조하고 있다는 기본 전략은 같다. 이들 소녀 그룹을 또래 청소년들은 물론이고 30~40대 성인 남성들이 좋아한다고 해서 방송사 뉴스에도 소개된 적이 있다. 오마이뉴스의 조은미 기자는 ‘원더걸스’의 대표곡 ‘텔미’에 중독된 사례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30대 김유식씨는 황당했다. 나이가 몇인데 10대 아이돌 가수 노래에 이렇게 빠지다니? 창피했다. 그런데 ‘텔미’ 중독자가 그뿐이 아니었다. 둘러보니 많았다.” 같은 기사는 ‘원더걸스’의 ‘텔미’가 열풍을 넘어 중독증으로까지 확산되어 있다고 진단하고, 심지어 중독단계까지 소개하고 있다. 1단계 중독은 ‘텔미’노래를 자꾸 듣는 것, 2단계는 ‘텔미’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 3단계는 ‘텔미’ 뮤직비디오를 보고 ‘텔미’UCC 동영상을 찾아 보는 것, 4단계는 ‘텔미’ 댄스를 따라하는 것, 5단계는 ‘텔미’ 댄스 UCC를 제작하는 것이라고 한다. 대학교와 군대는 물론이고 경찰들도 따라하고 여러 직장의 중년 남성들도 ‘텔미’를 흥얼대거나 ‘텔미’ 댄스를 어설프게라도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이다. 같은 기사는 1단계 중독이면 괜찮지만, 2단계 이상으로 넘어가면 헤어 나오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30~40대 남성들까지 이들 소녀 그룹에게 열광하는 것일까? 음악 전문가들은 두 소녀 그룹의 대표곡인 ‘텔미’와 ‘소녀시대’ 노래가 모두 1980년대에 유행했던 음악 스타일을 복고풍처럼 차용해 쓰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여기에 덧붙여 특히 ‘텔미’는 곡이 쉽고 멜로디가 단순하며 어려운 창법도 쓰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텔미텔미테테 테테테 텔미’라는 후렴구가 신나게 반복된다. 한번만 들어도 후렴구를 금세 따라 부를 수 있고, 더욱이 댄스 동영상과 함께 보았다면 몸을 들썩이게 된다는 것이다. 댄스의 위력을 원인으로 꼽는 사람도 있다.‘ 원더걸스’는 ‘텔미’를 통해 일명 팔찌춤과 흔들흔들춤을 선보이고 있고,‘ 소녀시대’는 데뷔곡인 ‘다시 만난 세계’에서 일명 안녕춤과 꽃봉오리춤을 선보이고 있다. 두 소녀 그룹의 댄스는 확연하게 차이를 보이는데,‘ 소녀시대’의 댄스는 파워풀하고 화려하며 따라하기에 난이도가 높은 반면, ‘원더걸스’의 댄스는 몸치라도 대충 따라 할 수 있게 간단하고 쉬운 동작이 반복된다. 어쨌든 두 소녀 그룹의 댄스는 10대 소녀들의 건강함과 섹시함이 뒤섞인 묘한 매력을 한껏 발산한다. 이 때문에 문화평론가들은 두 소녀 그룹에 대한 성인 남성들의 뜨거운 관심을 롤리타 현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롤리타 신드롬은 남성 어른들이 미성숙한 소녀에 대해 정서적으로 동경심을 갖고 성적으로도 집착하는 현상인데, 사회적 문제가 되었던 일명 ‘원조교제’나 일본의 경우 애니메이션 영화와 만화책 그리고 라이트 노블(light novel)이라 불리는 소설 등에서 광범위하게 마니아를 거느리고 있는‘미소녀’ 캐릭터 열광까지 다양하게 적용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원더걸스’로 예를 들면, 그 이전까지는 한국 가요계의 여성 코드가 성인 남성들을 겨냥한 섹시 코드로 치달아왔다면, ‘원더걸스’로 인해 성인 남성들이 섹시 코드에서 귀엽고 앙증맞은 여동생 코드로 넘어 갔다고 진단한다. 다시말해 문근영 신드롬으로 확인되었던 그 열망이 지금 ‘원더걸스’와 ‘소녀시대’에 대한 인기로 재확인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경제적 구매력을 가진 30대이 상 남성들의 소비를 이끌어내기 위한 철저한 분석과 마케팅에 따른 결과라고 바라보는 평가도 있다. 실제로 이들은 수년간의 기획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들 소녀 그룹의 멤버들이 갖는 별명만 해도 그렇다.‘ 원더걸스’는 민죽이, 태왕사유빈, 순수천사, 박여사님, 만두소희 등으로 불린다. ‘소녀시대’는 꼬마리더, 매력소녀, 흑진주, 티파니, 얼음공주, 명랑소녀, 사과공주, 막내공주, 귀염둥이 등으로 불린다. 이런 별명은 이들이 다양한 캐릭터들로 구성된 애니메이션 드라마의 주인공들 같은 느낌을 준다. 요컨대 이들은 그냥 10대 가수가 아니라 10대부터 30~40대 남성들까지를 소비자로 포섭하는 다양한 미소녀 캐릭터 종합세트인 셈이다. 김종휘 문화평론-기획자, 방송인, 노리단 단장, 하자센터 기획부장. 저서 <일하며 논다, 배운다> <내 안의 열일곱> <너 행복하니?> 등
사회
김종휘 (문화평론-기획자)
2007-12-10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