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 논술

‘현실적인’ 결혼이냐 ‘낭만적인’ 사랑이냐, 이것이 문제로다

영상토론(映像討論)

<오만과 편견> 논술로 감상하기

18세기 영국 사회를 들여다보니 결혼은 재산획득과 신분 상승을 위한 하나의 수단인 경우가 허다하다. 21세기 한국 사회를 들여다 보면 좀 다를까?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입으로는 결혼을 사랑의 결실이라 미화하지만 실제로 결혼은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기반을 어느 만큼 보장해 줄 수 있는지 저울질한 연 후에야 하는 일종의 보험 상품 같다. 너무 지나친 풍자일까? <오만과편견> 의 엘리자베스는 사랑없는 결혼은 생각할 수도 없다며 조건을 중시하는 전통적 결혼관에 맞선다. 그는 사랑의 결실인 결혼을 향해 당당히 걸어 나가지만, 그 길이 쉽지는 않다. 자신에 대한 ‘오만’과 타인에 대한 ‘편견’이 방해꾼 노릇을 하기 때문이다. 베넷가의 자매들을 보며, 나는 과연 누구와 가까운지 견주어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김경미(상임연구원)

CF 광고에서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라고 노래한다. 하지만 미녀들이 정말 좋아하는 것은 재벌이 아닐까? 유명 연예인들과 재벌의 결혼 소식은 언제나 구설수에 오르내린다. 몇 달 전에는 1000억 재산가가 자신의 딸을 대신해서 공개구혼을 해 화제를 모았다. 공개구혼에는 수백명의 남성들이 지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 걸 보면 여성이나 남성이나 부자와 결혼하기를 꿈꾸기는 마찬가지인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린다.‘ 결혼’이 장사처럼 거래되고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사실 결혼의 이중성이 꼭 유명 연예인이나 재벌가 사이에서만 드러나는 문제는 아니다. 정도와 수준의 차이는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결혼의 관문을 통과할 즈음에는 멈칫거리며 자신의 배우자를 전혀 다른 기준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돈 많은 신붓감, 신랑감, 사윗감, 며느리감이 나타나면 절로 눈이 밝아진다.

고집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엘리자베스의 사랑과 결혼을 보면서, 과연 우리 안에 결혼에 대한 이중잣대가 없는지 곱씹어볼만 하다.

● 결혼은 사랑의 종착역?

사람들은 말한다. 결혼은 사랑의 결실이라고. 더불어 결혼은 사랑을 새롭게 시작하는 계기라고. 사랑과 결혼의 관계를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 사랑은 결혼의 전제조건이고, 결혼은 더 큰 사랑을 만들기 위한 출발점? 제인 오스틴의 유명한 소설을 영화로 만든 <오만과편견> 을 보면 그 비유가 꼭 들어 맞는 것 같지는 않다.

<오만과편견> 은 18세기 영국의 가난한 시민계층 베넷가(家) 사람들 이야기를 화면에 담았다. 베넷가의 안주인 베넷부인은 딸만 다섯인데 딸들의 결혼문제야말로 일생일대의 고민거리다. 다섯 딸의 이름을 줄줄이 열거해 보면, 제인, 엘리자베스, 키티, 메리, 리디아다. 베넷 부인은 딸들의 ‘유리한 결혼’을 성사시키기 위해 언제나 분주하다. 짧게 말하면 <오만과 편견> 은 ‘결혼’을 두고 벌어지는 우여곡절을 담은 이야기다.

그런 베넷부인이 호들갑을 떨 수밖에 없는 일이 생긴다. 젊고 부자인 빙리 씨가 이웃에 머무르게 된 것이다. 베넷 부인은 이것이야말로 딸들의 ‘유리한 결혼’을 위한 절호의 기회라고 보고, 어떻게 해서든 찬스를 놓치지 않으려 동분서주한다. 빙리 씨에게 자신의 딸들을 소개시키는 일만큼 중요한 일은 없으므로.

그런데 대체‘유리한 결혼’이란 어떤 결혼일까? 눈치 빠른 독자들은 진작 알아차렸을 것이다. 베넷부인에게 유리한 결혼이란 자신보다 훨씬 부유한 사람과 결혼해 평생을 편하고 안락하게 지내는 것은 물론 가족들의 살림에도 보탬이 되는 결혼이다. 이렇게 단정하고 보니 베넷부인은 돈만 밝히는 속물로 보인다. 아니, 베넷부인만 이런 ‘유리한’ 결혼을 바란 것은 아니다. 제인과 엘리자베스를 제외한 나머지 딸들도 그런 결혼을 꿈꾸었고, 베넷가의 주변 인물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비단 여성들만 이런 유리한 결혼을 꿈꿨던 게 아니라 남성들 역시 부유한 여성이나 자신보다 신분이 높은 여성과 결혼하기를 원했다. 그렇다면 당시 영국 사람들은 모두 속물? 하나의 일반적 관념은 그 사회상에서 비롯된 것이니, 영화에 나타난 사람들의 결혼관은 당시 영국 사회의 한 단면이 사실적으로 반영된 것이다. 당시 영국 사회에서 결혼이 어떠한 의미를 지녔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그들을 이해하기 한결 수월할 것이다.

18세기 영국에서는 장남만 부모의 재산과 지위를 상속받을 수 있었다. 그 외의 아들들은 군인이나 목사가 되어 귀족의 지위와 생계를 근근이 유지해 나가야 했다. 그러니 장남 이외의 아들들이 부를 누릴 수 있는 기회란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은 상대와 결혼해야만 가능했던 것이다. 그럼 딸들은 어떤가? 차등없이 균등하게 상속받을 수 있었을까? 딸들은 일정한 조건에 맞는 경우에만 상속을 받을 수 있었고 그럴 때에도 결혼을 해야 가능했다.

그러고 보니 당시 영국 사람들은 결혼의 힘을 빌지 않고서는 부나 높은 지위를 손에 넣기가 매우 어려웠다. 따라서 사람들은 돈 많고 지위 높은 사람과 결혼하려 들 수밖에. 사람들은 사랑없는 정략결혼도 서슴지 않았다.

게다가 여성들의 경우 남성에 비해 재산을 상속받기도 어려웠고, 경제력 있는 직업을 갖기란 거의 힘들어 결혼에 목을 맬 수밖에 없었다. 그녀들은 군인도, 목사도 할 수 없었으니. 결혼의 첫째 조건이 사랑이라는 엘리자베스의 말이 친구인 샬롯에게는 한가하고 사치스러운 소리로 들렸다. 샬롯은 엘리자베스가 사랑을 느낄 수 없다며 거절한 콜린스와 결혼했고, 엘리자베스는 그런 샬롯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엘리자베스에게 샬롯이 일침을 놓는다. “사람들 모두가 로맨틱해질 여유가 없는 거야. 덕분에 안락한 집에서 보호받으며 살게 됐어. (중략) 난 스물일곱이야. 돈도 없고 미래도 없어. 게다가 난 이미 우리 부모님께 짐만 되고 있단 말이야! 난 그게 두려워!”

여러분이 샬롯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 18세기 영국, 21세기 한국

자, 이제 영화밖으로 나와 볼까? 18세기 영국을 떠나 21세기 한국으로 돌아와 보자. 우리는 사실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다. 또한 스스로 능력만 갖춘다면 직업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여성들에게도--물론 논란의 여지야 있지만--직업적 자유가 보장되고 있다. 지위와 재산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널려 있으니, 엘리자베스의 말처럼 사랑은 결혼의 전제조건이 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 사회의 결혼세태를 바라보면, 무언가 불순한 것이 끼어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결혼의 외피는 사랑인데, 그 외피를 들추고 보면 수많은 조건이 내걸려 있다. 안정적인 경제적 기반을 위해, 신분 상승을 위해 결혼 조건을 보는 일은 다반사다. 21세기 한국의 상황은 18세기 영국의 상황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1등 신랑감과 1등 신부감은 재력과 학벌이 좋은 사람이다. 각종 결혼 정보 회사에서도 재력이나 학벌을 최우선으로 꼽는다. 물질적으로 넉넉해지고 직업 선택의 폭이 넓어졌는데도 사람들은 부자나 돈 잘 버는 직업을 가진 사람과 결혼하기를 갈망한다

왜 그럴까? 예나 지금이나, 영국에서나 한국에서나 결혼이 사랑의 결실이 아닌 재산 획득과 신분 상승의 수단이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렇게 이야기 하고 보니, 결혼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너무 부정적으로 본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모든 사람들이 사랑보다도 재산과 지위만을 계산하여 결혼 결심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오만과 편견> 의 엘리자베스는 고집스럽게 말한다. 사랑이결혼의 첫번째 전제 조건이라고.

그러나 엘리자베스를 보니 오로지 사랑만을 결혼의 전제조건으로 삼는데도 그 결혼조차 순탄하기 어려운 듯하다. 사실 결혼을 하고 결혼 생활을 잘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요소들이 잘 어우러져야 가능하다. 사랑 하나만으로 실제 생활을 유지하기에는 너무나 버겁다. 결혼은 개인과 개인이 만나 법적으로 부부가 되는 일이기도 하지만 한 가족과 한 가족이 어우러져 또하나의 가족을 만들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구성원들의 경제적 사회적 요소의 차이로 여러 갈등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 때문에 결혼이 낭만적일 수만은 없다.

그런 점에서 보면 재력이나 신분 등 외적 조건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결혼관이 오히려 합리적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하지만 근대를 지나 현대로 넘어 오면서 사람들 사이에서는 개인의 성품과 선택을 중시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사회의 위계질서나 가족의 화합만큼이나 나의 자유와 선택도 중요해졌다. 사랑에 대한 욕망도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조건만을 우선시 하는 전통적인 결혼관은 현실성이 떨어져 보이기도 한다.

최근 들어서는 또다른 새로운 결혼관이 생겨나고 있다. 결혼이 하나의 형식에 불과하다며 동거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결혼을 아예 하지 않으려 하는 사람도 여럿이다. 앞으로는 조건이냐 사랑이냐가 아닌 다른 이유들이 결혼에 대한 기존 관념에 맞설지도 모르겠다. <오만과 편견> 은 1813년 영국에서 처음 출판된 이후 지금까지 많은 나라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200여년이 흐른 뒤에도 그토록 사랑을 받는 이유는 결혼을 통해 전통적 가치관과 근·현대적 가치관의 충돌과 융합을 그렸기 때문이 아닐까?

● 엘리자베스의 결혼이 쉽지 않았던 이유는…

엘리자베스는 사랑에 깊이 빠졌을 때에만 결혼을 할 생각이다. 전통적 결혼관이 지배적이었던 당시 상황에서 엘리자베스의 결혼관은 현실화되기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엄마가 부의 획득을 위해 친척인 콜린스와 결혼하라는 요구를 거부한다. 엄마가 콜린스와 결혼해 동생과 가족들을 가난에서 구하라고 애걸하는데도 엘리자베스는 사랑없는 결혼은 할 수 없다며 당차게 돌아선다. 이런 엘리자베스에게 전통적인 결혼관이 널리 퍼졌던 당시 사회 분위기는 사실 큰 문제가 아니었다. 엘리자베스가 생각처럼 결혼을 쉽게 할 수 없었던 것은 사랑을 제대로 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는 결국에 가서는 다아시를 사랑하게 되고 둘은 결혼에 이른다. 그런데 둘이 처음부터 마음이 맞았던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은 오해 때문에 꽤 오랜 시간 동안 서로를 증오했다. 그리고 오해가 생긴 것은 두 사람 모두 자신에 대한 오만과 상대방에 대한 편견을 지녔기 때문이다. 둘은 첫인상만 보고 서로를 성급하게 판단했다. 첫인상만 보고 타인에 대해 잘 알 수 있다는 오만이 발동한 셈이다. 그리고 첫인상을 가지고 내린 판단을 오랜 시간 동안 유지했다. 편견이 자리잡으면서 상대를 제대로 볼 수 없게 되었다. 오해로 서로 멀어졌다가 가까워지는 두 사람의 모습은 여느 연인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이런 점에서 <오만과 편견> 은 하나의 연애담으로 읽히기도 한다.

그런데 오만과 편견은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태도나 생각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종종 오만과 편견으로 사물이나 사람 혹은 상황을 잘못 판단하곤 한다. 여러분은 혹시 오만과 편견 때문에 오류를 범하거나 실수를 저지른 경험이 없는가? 그때 어떤 방법으로 오만과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었나?

● 영화 VS 소설

앞서 말했듯이 영화 <오만과 편견> 은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어떤 이들은 영화가 소설 내용을 제대로 농축하고 있다고 평하는 반면 원작의 본질을 흩뜨려 놓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영화의 큰 줄거리는 소설의 줄거리와 거의 흡사하다. 하지만 소설은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쓰인 데 반해 영화는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를 주인공으로 한다. 소설에서와는 달리 영화에서는 엘리자베스와 다아시가 첫눈에 서로에게 호감을 갖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또한 영화는 주인공들 사이의 성적 긴장감을 그려내기도 한다. 이 때문에 오스틴 순수주의자들은 영화가 원작의 의도를 왜곡한다며 분노를 표했다. 그들은 오스틴이 소설에서 당시 사회적 관습과 형식을 표현하려 노력했는데 영화가 그것을 훼손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를 재미있게 본 관객의 경우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다. 그들은 영화가 전통적인 결혼관이 퍼져 있는 당시 현실과 낭만적 사랑을 갈구하는 주인공의 갈등을 박진감 넘치게 표현하고 있다고 호평한다. 소설은 언어를 통해 상황의 디테일을 표현하고 있지만 영화는 등장인물들의 몸짓이나 옷차림새 등으로 소설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들을 섬세하게 담고 있다고 말한다.

어느 쪽 입장이 더 설득력이 있는지 궁금한 독자는 영화와 소설을 함께 보며 직접 확인해보는 것은 어떨까? 하지만 누구든 쉽사리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는 어려울 것 같다. 모름지기 예술은 예술을 발판삼아 나아가는 것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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