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성(性)비위 정치, 시민 얼굴에 먹칠한다

정치인의 비위처럼 시간에 묻혀 가는 것도 드물다. 국민적 공분을 샀던 행위도 슬그머니 잊혀진다. 때론 정치 탄압의 희생자로 둔갑되기도 한다. 금품 비위가 그렇고, 독직 비위도 그렇다. 하지만, 좀처럼 시간에 묻히지 않는 것이 있다. 성과 관련된 각종 비위 또는 학폭 등의 생활 속 비위다. 이런 비위를 대하는 시민의 공통적인 정서가 있다. 정치인의 기본적 도덕성이 결여됐다고 본다. 시민에게 창피함을 떠안기는 민폐 정치인이라고 본다. 그래서 다른 분노보다 오래간다. 웬만해선 정치적 반전도 없다. 이런 일이 경기 남부의 한 지자체에서 생겼다. 법원에서 진행 중인 1심 사건이 알려졌다. 다음 달 13일이 1심 선고 공판이다. 상당 기간 재판이 진행돼온 구속 사건이다. 공소사실 속 범죄는 주거침입 준유사강간이다. 지난 1월7일 평택의 한 모텔에서 발생했다. 피고인이 여성 투숙객의 객실에 침입했다. 신체 주요 부위를 만지는 등 범죄를 저질렀다. 필설 못 할 행위다. 처음에는 모텔 종업원이라고 진술했다. 거짓말이었다. 혐의 내용을 완강히 부인했다. 피해 여성 신체에서 그의 DNA가 검출됐다. 결국 지난 5월 구속기소됐다. 알음알음 알려진 그의 신분이 시민에게 충격이다. 경기 남부 시(市)에서 유명한 정치인이다. 직전 시장선거에서 유력 정당의 후보였다. 낙선했지만 무려 47.45%를 득표했다. 유명한 정치인의 참모로도 활동했다. 시의원을 두 번 했고 시의회 의장도 지냈다. 파문은 확산 중이다. 공소사실만 봐도 이미 파렴치한이다. 모텔 객실에 침입하고, 뻔뻔히 부인하고, 신분을 은폐했다. 신병 구속이라는 처분에서 그 중대성은 결론 났다. 여기서 강조하려는 것은 지역의 분노다. 교육 도시로 성장해 가는 지역이다. 활기찬 변화로 우일신하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 10년간 공개 정치인으로 살았다. 초등학교 운영위원, 교육포럼 간부, 학교폭력대책단체 활동도 했다. 대통령선거에서는 선대위 부대변인까지 했다. 그런 정치인의 참담한 성 관련 범죄다. 지역 당(黨)에서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들린다. 그를 천거하고 후원해 온 정당이다. 자리를 줘 행세하게 해준 당이다. 불똥이 튀고 안 튀고 문제가 아니다. 무조건 반성하고 사과할 일이다. 학생 시민이 알게 될 정치인 성범죄 아닌가. 이보다 나쁜 교육은 없다. 여성 시민이 알게 된 정치인 성범죄 아닌가. 이보다 큰 여성 모욕은 없다. 결국엔 남녀노소 시민 모두가 알게 될 정치인 성범죄 아닌가. 시(市) 승격 이래, 이런 참담한 일이 있었나. 시의 이미지는 시민의 자산이다. 그걸 쌓아 올리는 데 10, 20년 걸린다. 무너지는 데는 1, 2주일도 안 걸린다. 정치인의 성 비위라는 게 그런 거다. 많은 시민이 부끄러워하고 있다.

[사설] ‘발암물질 놀이터’ 전국 전수조사 필요하다

경기도내 유치원과 초등학교의 어린이 놀이터 수십 곳에서 기준치를 초과한 발암물질이 검출됐다. 우려했던 내용이다. 경기도교육청은 지난 9월 도내 유치원 28곳과 초등학교 15곳 등 총 43곳의 탄성포장재 놀이터 바닥재 시료를 채취, 환경부 공인 검사기관에 유해성 검사를 의뢰했다. 검사 결과 34곳(79%)의 놀이터에서 발암물질을 포함한 PAHs(다핵방향족탄화수소)가 기준치 이상 검출됐다. PAHs는 암이나 호흡기 질환 등을 일으키는 발암성 물질이다. PAHs를 구성하고 있는 18개 화합물 중 일부 물질은 국제암연구소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에 포함돼 있다. 접촉할 경우 피부 자극을 일으키고 장기간 노출되면 간 손상이나 유전자 독성 등의 문제를 유발한다. 발달 단계의 어린이들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발암물질 어린이 놀이터의 심각성을 알린 것은 경기일보다. ‘발암물질 위의 아이들’이란 연속보도를 통해 놀이터 탄성포장재에 유해물질이 함유돼 있음을 지적했다. 이에 도교육청은 ‘어린이 활동공간 지도점검’ 대상 학교 200곳 중 탄성포장재를 사용 중인 43곳을 대상으로 자체 유해성 검사를 했다. 그런데 검사 결과는 공개하지 않았다. 발암물질 놀이터의 ‘시설 개선’과 ‘제도 개선 건의’ 투트랙 대응 방침을 밝히고서도 결과를 숨긴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처사였다. 환경단체에선 “어린이 놀이터가 전반적으로 어떠한 상태인지 공개하고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며 검사 결과 공개를 촉구했다. 22일 열린 경기도교육청에 대한 국회 교육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그 결과가 밝혀졌다. 이날 공개된 ‘어린이 놀이시설 탄성포장재 PAHs 표본점검’ 자료에 따르면 유해성 검사를 실시한 43곳 중 34곳에서 PAHs가 기준치 이상 검출됐다. 탄성포장재 상부에서 16곳, 하부에서 32곳이 PAHs 기준을 넘겼다. 상·하층부 모두 기준치를 초과한 놀이터도 14곳이나 됐다. 놀이터들은 기준보다 평균 3배 이상의 PAHs가 검출됐으며, 하남의 한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은 하층부에서 기준치의 5배가 넘는 ㎏당 50.5㎎의 PAHs가 검출됐다. 어린이 놀이터의 탄성포장재가 발암물질 덩어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린이들이 이런 놀이터에서 놀았다는 사실이 끔찍하다. 이는 경기도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당장 탄성포장재 놀이터 운영을 중단해야 한다. 이와 함께 전국 어린이 놀이터에 대한 전수조사도 필요하다. 어린이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게 놀이터 시설 개선과 법 정비가 시급하다.

[지지대] 어패류 생산량도 ‘뚝’

지난 여름 폭염의 후유증일까. 바닷물 온도의 상승으로 양식 등의 어패류 생산량이 급감하고 있다. 광어와 우럭 등이 딱 그렇다. 가을 생선인 전어도 피해 가지 못하고 있다. 해양수산부 집계에 따르면 양식 광어의 2022년 생산량은 3천635t이었으나 지난해 3천499t, 올해는 3천400t(추정치)으로 줄었다. 지난달은 바닷물 고수온을 견디지 못해 폐사한 어린 광어가 급증하면서 250g 미만 생산량이 지난해 같은 달보다 35.6% 줄었다. 우럭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같은 기간(1천10t)과 지난달(1천185t)보다 적은 1천t가량 생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어도 어획량이 확 줄었다. 올해 들어 지난 8월까지 3천380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6천470t)의 절반 수준이다. 2020년 4만1천t에서 지난해는 1만5천100t으로 감소했다. 홍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올해 들어 폐사한 홍합은 2천245줄(1줄은 약 14만2천마리)로 집계됐다. 바닷물의 고수온 탓이다. 지난해는 폐사한 홍합이 없었다. 굴도 그렇다. 올해 고수온으로 폐사한 굴이 7천628줄로 지난해(916줄)의 무려 8배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은 이달 홍합 생산량이 지난해 같은 달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달 생산된 홍합도 폐사하거나 양성 상태가 불량한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집계됐다. 오징어와 바지락 등도 어획량이 감소했다. 오징어는 지난달 2천643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평년 등에 비해 각각 39.0%, 74.9%로 줄었다. 어업계는 오징어가 수온이 낮은 어장을 찾아 기존 어장을 이탈하면서 어획량이 급감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모두 기후변화 때문이다. 갈수록 바다 환경도 악화되고 있다. 달라진 변화에 대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개선이 필요한 규제는 무엇인지 등도 명쾌하게 분석해야 한다. 정치권도 정쟁에서 벗어나 이 난제들을 풀어야 한다.

[말글 풍경] 문해력 문제, 입체적으로 보자

혼숙을 ‘혼자 숙박’, 구두가 ‘신발’, 두발은 ‘두 다리’ 아니냐는 문해력 소동이 최근 있었다. 가결, 혈연, 이지적 등의 단어는 중고등학생들이 아예 뜻을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돌이켜보면 그 시작은 ‘심심한 사과’ 사례일 터. 이를 소재 삼아 담론화하고자 한다. 수도권의 한 카페가 연전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사과문 “심심한 사과 말씀을 드린다”. 매우 깊고 간절하게 사과한다는 뜻의 ‘심심(甚深)한 사과’를, 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가 없어 하는 사과로 해석해 누리꾼들이 주인을 비난한 것이다. 여론 다수는 어떻게 이런 기본적인 단어를 모를 수 있느냐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일각에선 “‘진심 어린 사과’나 ‘깊은 사과’ 등 다른 쉬운 말을 두고 굳이 ‘심심한 사과’라는 말을 써야 하느냐”라는 반발도 나왔다. 예컨대 ‘심심한 사과’라는 글이 아니고 말로써 카페 주인이 진정성을 담아 [심:심한 사:과]라고 발화(發話)했어도 같은 사태가 벌어졌을까. 아니었으리라. 바로 발음과 음성의 힘이다. 우리가 글, 문서, 텍스트의 영역으로만 여기는 문해력의 새뜻하고 근본적이며 구조적인 지평은 이렇다. ‘심심하다’는 뜻이 넷이다. 먼저 심심(甚深)하다. ‘심할 심’, ‘깊을 심’이 겹쳤다. ‘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하다’의 뜻. 주로 ‘심심한 사과, 심심한 사의(謝意), 심심한 감사’ 등에 쓰인다. 다음은 심심(深深)하다. 말 그대로 ‘깊고 깊다’라는 뜻이다. [심ː심산천](深深山川)은 깊고 깊은 산천, [심:심산곡](深深山谷)은 깊은 산의 골짜기다. 셋째와 넷째는 고유어, 토박이말이다. 심심하다[심심하다]는 ‘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라는 뜻으로 짧은 발음이다. 다음 ‘슴슴하다’로 많은 경우 잘못 쓰는 ‘심심하다’도 있다. 음식 맛이 조금 싱겁거나 간을 적게 한 건 ‘슴슴하다’가 아니라 ‘심심하다’라야 맞다. 따라서 곧잘 쓰이는 ‘슴슴한 물냉면’은 잘못이다. 느낌으로도 심(甚)하거나 깊거나(深) 하는 건 ‘낮고 깊고 길게’ 발음해야 어울리지 않나. 지루할 때, 싱거울 때는 짧은 발음이 걸맞고 말이다. 바로 이런 감각을 키우는 발음과 읽기 교육을 어려서부터 받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문해력을 낱말, 어휘력, 한자어라는 박제된 틀 안에서 해석하는 건 단견(短見)이다. 언어 능력은 입체적으로 다뤄져야 하는 것이며 이 대목을 너무 소홀히 여겨왔다는 생각이다. ‘읽기’라 하면 많은 사람이 ‘지문 읽고 이해하기(Reading Comprehension)’로 받아들인다. 지필 시험 문제의 한 장르로만 여기는 것이다. 혀, 입술, 허파, 성대 등을 활용해 소리를 밖으로 내는 본연의 ‘읽기’를 망각하고 있다는 건 불행한 일이다. 아름답게 읽기가 낭독(朗読)이다. 낭독을 위해서는 우선 단모음과 이중모음을 명료하게 구별하는 발음과 더불어 텍스트의 구조를 파악해야 한다. 알맞은 어조, 호흡, 휴지, 억양을 유지하며 연결, 분절, 강조의 기술을 부리는 능력도 필요하다. 그래야 다른 이의 청각을 근사하게 자극할 수 있다. 텍스트가 음성에 실리는 것을 전제로 이해하고 분석하는 힘, 이게 문해력이 아니고 무엇인가. 곧 ‘읽기 문해력’인 것이다. 요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말하기는 또 어떠한가. 무슨 말로 시작하고 본론은 어떻게 펼치며 끝을 어떤 방식으로 마무리할까. 어느 대목에 인상적인 내용을 넣어 상대를 매료시킬까. 어떤 설득의 기법을 쓰고 감동을 주는 포인트는 어디에 둘까. 신체언어(보디랭귀지)는 어떤 정도로 어느 시점에서 구사할까. 이런 다방면의 고려가 곧 ‘말하기 문해력’이다. 듣기는 더 절실하다. 소통의 출발이 잘 듣기여야 함은 불문가지다. 상대의 말을 잘 듣고, 자신이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의 고갱이를 숙지하며 어떤 응대를 해야 할지 판단하는 역량이야말로 ‘듣기 문해력’이 추구해야 할 핵심적 지평일 테다. 맨 앞의 예에서 남녀의 혼숙(混宿)은 [혼:숙]으로 긴소리다. 말로 하는 구두(口頭)는 [구:두]로, 짧은 발음 [구두]인 신발이 아니며 머리털을 뜻하는 두발(頭髮)은 발[足]이 둘이라는 [두:발]이 아닌 것이다. 문해력 문제는 기능국어, 즉 읽기, 쓰기, 듣기, 말하기라는 틀에서 입체적으로 접근해서 다뤄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천자춘추] 아이들이 책을 읽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재능을 갖고 태어난다. 악기를 잘 다루는 사람, 글을 잘 쓰는 사람,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 스포츠로 성공하는 사람도 있다. 재능이 있어도 좋아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재능이 없어도 좋아하다 보면 꿈을 이룰 수 있다. 박지성은 몸도 약하고 키도 작아 축구선수로 성공하기 어렵다는 평을 들었지만 축구를 워낙 좋아했기 때문에 성공했다. 스스로 잘할 수 있는 일을 즐기다 보면 꿈이 춤을 춘다. 춤을 추면 기분이 좋아지듯이 꿈이 춤을 추면 더 잘할 수 있다. 꿈은 생물처럼 물을 주면 무럭무럭 자란다. 학교는 아이들에게 물을 주는 곳이다. 어떤 꿈을 가질지는 천천히 생각해도 된다. 어렸을 때는 선생님과 부모가 재능을 찾아내 좋아하도록 돕고 고등학생, 대학생이 돼 구체적인 꿈을 꿔도 늦지 않다. 세상에는 1만1천655개나 되는 많은 직업이 있다고 한다. 그 많은 직업 중에서도 초등학생에게 꿈을 물어 보면 대부분 가수, 배우, 소방관, 경찰, 군인, 사장, 운동선수 등 단순하다. 어린이들은 보고 듣고 경험한 것만 대답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릴 때는 이것저것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아이들이 자연과 직접 어울릴 기회를 많이 만들어야 하지만 책을 많이 읽히는 것도 간접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집 없는 천사’를 통해 불쌍한 아이들과 만나고, ‘보물섬’에서는 모험심에 가득 찬 해적을 만나고, ‘걸리버 여행기’를 읽으면 마치 내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상상의 나래를 편다. ‘어린 왕자’나 ‘갈매기의 꿈’을 통해 세상의 지혜를 읽고 ‘위인전’을 통해 세상을 밝힌 위대한 인물들과 대화를 나누게 된다. 아이들이 독서에 몰입하고 있는 동안은 꿈이 현실이 된다. 그러나 21세기 ‘문명의 총아(寵兒)’인 스마트폰이 아이들에게서 책을 빼앗아 가고 있다. 세상의 모든 재미를 모아 놓은 스마트폰은 그나마 읽던 책마저 팽개치도록 만들었다. 스마트폰은 어린이들의 상상력과 지혜를 앗아간다. 옆자리 친구와 직접 이야기하면 될 일을 카톡으로 대화하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이들이 책을 읽도록 해야 한다. 아이들이 아무리 졸라도 5G 첨단 스마트폰을 사줄 게 아니라 부모들이 나서 2G 핸드폰으로 바꿔줘야 한다. 엄마 아빠가 열심히 도서관에 아이들을 데려가고 틈틈이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자. 그래야 아이가 꿈을 꿀 수 있다. “잘 생각해 보세요. 내가 제일 잘하는 게 무엇인지, 좋아하는 일은 어떤 건지, 잘 모르겠으면 열심히 책을 읽으세요. 읽으면 행복합니다.” 혁신학교 아이들에게 들려준 말이다.

[세상읽기] 우리는 왜 유행을 따르는가?

2024년에도 어김없이 새로운 유행들이 있었다. 두바이 초콜릿, 미국 스탠리의 텀블러, 러닝 크루, 요아정(요거트와 아이스크림 정석), 스몰 럭셔리, 추구미… 모두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유행 키워드들이다. 유명인의 소비 취향을 따라하는 디토 (Ditto)소비 또한 유행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따라 구매하고 여가활동을 하는 행위를 뜻한다. 무엇을 먹고, 입을지, 어떤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낼지를 결정하는 데 우리는 왜 타인의 선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유행을 따르고자 하는 (혹은 따르지 않고자 하는) 그 마음 이면에는 무엇이 감춰져 있을지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한 주제다. 현대사회의 소비자는 소비를 통해 상품·서비스가 주는 단순한 기능적 사용 가치를 넘어 다양한 사회적·심리적·상징적 가치를 충족시킨다. 튼튼하고 오래 쓰고 편리한 도움을 주는 상품보다는 그 상품 소비를 통해 ‘나’의 개성과 가치를 창출하고 표현함으로써 사회적 경쟁우위를 드러낼 수 있다. 혹은 ‘요새 그게 대세라며’, ‘나도 한 번 사볼까’. 다수의 사람들의 선택지를 선택함으로써 나도 대세에 동참하고 소외되지 않았다는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 방식으로 상품을 소비하기도 한다. SNS에서 타인의 삶을 지속적으로 전시하고, 새로운 트렌드는 빠르게 생산해 내면서 이를 따라잡고 뒤처지지 않기를 원한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자신이 트렌드에 민감하고 시대적 흐름에 부합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소비활동에 큰 동인이 된다. 유행을 따르는 것은 온전히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지만 유행에는 따라야 한다는 일종의 사회적 압박이 작용하기도 한다. 유행에 뒤처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뜻하는 FOMO(Fear of Missing Out)의 용어에서도 알 수 있듯 모두가 열망하는 일에 혼자만 동참하지 않을 때 사회적 비난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다. 특히 집단의식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개인의 지적·경제적·사회적 지위는 그가 속한 집단을 통해 평가되는 경향이 있어 준거집단의 기대에 맞춰 자신의 소비를 결정하거나 타인의 소비를 모방함으로써 소속감을 느끼고자 하는 소비동조 현상이 비교적 뚜렷하게 일어난다. 끊임없이 타인의 소비를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하고 타인의 소비 수준에 맞춰 자신의 소비를 조정하면서 자신이 뒤처지지 않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한편 한 심리학자는 유행에 따르는 심리를 현대인이 경험하는 다양한 부정적인 심리 상태와 연결 지어 설명한다. 경제적 불황, 극심한 경쟁 환경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끊임없이 입증해야 하는 사회적 압박에 시달리고 SNS을 통해 빈번하게 비치는 타인의 성공적이고 행복해 보이는 삶의 모습에 불안과 열등감, 무력감을 느끼게 만들어 부정적인 정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부정적인 심리가 현대인의 삶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만성화되면 미래에 대한 통제력 상실, 패배감, 우울, 불안, 자신감 하락, 성취 욕구 좌절, 수동성 증가로 이어진다. 이러한 부정적 심리들은 회복하려는 욕구로 이어져 특정을 행동을 취하기도 하고, 특정 소비에 대한 욕구를 불러일으키면서 유행에 동참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경제적인 무력감을 크게 느끼는 사람들은 소외감과 자원의 부족함을 느끼게 되며 이런 경우 지위를 상징하는 상품을 통해 좌절된 무력감을 회복시켜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원이 부족한 현실은 보상 소비를 어렵게 만들고 그 대신 립스틱, 값비싼 디저트, 오마카세, 향수 등 작은 사치품을 통해 소비만족을 시키는 것이다. 심리학자 아들러는 적절한 수준에서의 부정적인 심리 상태는 오히려 자기 성취에 긍정적인 동인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한다. 자신의 불완전함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사회적 지위나 권력을 드러내는 고급 제품에 대한 선호도로 이어진다. 유행과 합리적 소비는 상충하는 면이 존재한다. 유행은 빠르게 변화하는 속성이 있고 소비자들은 최신 트렌드를 따르려는 욕구가 강하기 때문에 충동적이고 반복적인 소비를 유발할 수 있다. 그러나 유행의 본질을 이해한다면, 그리고 나의 마음 상태를 제대로 알고 있다면 합리적인 방법으로 유행을 따르는 소비 방식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경기만평] 이러면 곤란한데...

[사설] 정치는 특검·탄핵 투쟁, 김동연은 외자 유치 전쟁

국정감사는 계속해서 ‘김건희 감사’다. 거대 야당이 잡아가는 방향이다. 명품백을 비롯한 많은 공방으로 3주 보냈다. 새로운 논란거리까지 더해졌다. 명태균씨가 제기한 김 여사 공천개입 의혹이다. 의혹 제기 당사자가 국감장에 출석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도 커졌다.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대한 반발이 크다. 이재명 대표가 직접 검찰을 규탄했다. 민주당은 검찰총장, 서울지검장·부장검사를 탄핵하겠다고 밝혔다. 장외 집회도 시작됐다. 국민의힘도 똑같이 빠져들었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로 되받았다. 검사 탄핵 등을 헌정질서 파괴라고 풀었다. 이 대표는 7개 사건, 11개 혐의로 기소돼 있다. 이 양단의 대립이 이번 국정감사의 모든 것이다. 지방정부에 대한 국감도 정치에 휘말렸다. 서울시 국감은 야당과 오세훈 시장의 설전이었다. 본질은 사라지고 태도, 발언 등을 트집 잡는 감정 싸움만 난무했다. 이 와중에 유독 정상으로 진행된 국감이 있었다. 경기도 국감이다. 여야 의원들의 정치 공세는 여전했다. 하지만 전체 분위기는 차분했다. 우리는 그 이유를 김동연 지사에게서 찾은 바 있다. 대권에 휘말릴 발언을 스스로 경계했다. ‘(대권 의지를) 밝히는 자리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재명 대표와의 차별화도 내비치지 않았다. ‘기본적인 방향이 다르지 않다’며 피해 갔다. 도 채무 증가, 일산대교 무료화, 반도체 단지 교통 등의 행정이 다뤄졌다. 정치적 ‘한 방’보다는 도민 알 권리 감사였다. 또 다른 소식이 왔다. 외자 유치다. 미국발 소식이다. 김 지사는 국감 직후 미국 방문 길에 올랐다. 18일 2조1천억원 상당의 결과를 밝혔다. 외국인 투자기업인 ESR캔달스퀘어와 미국 유엘 솔루션즈와의 협약이다. ESR캔달스퀘어는 여주시에 친환경 복합물류단지를 짓기로 했다. 99만㎡(30만평) 규모다. 7천700명의 고용창출, 2조5천억원의 경제 유발효과가 추산된다. 유엘 솔루션즈는 첨단 자동차·배터리 시험센터를 건립하기로 했다. 평택시 오성 단지로 온다. 평가할 대목은 협약에 이르는 과정이다. ESR캔달스퀘어와 김 지사의 만남은 두 번째다. 지난해 4월 투자 의향을 밝혔다. 그 가계약을 2027년으로 확정한 이번 협약이다. 유엘 솔루션즈 역시 김 지사가 지난 5월 비공개로 방문해 투자 의향을 받았다. 그 결실을 위한 만남이 이번이었다. 투자의향(MOU)에서 투자 확정까지 마무리 짓는 방문이다. 100조원 외자 유치를 선언한 김 지사다. 외자 유치의 내실을 기대하게 한다. 잘한 일이다. 사생결단에 모두를 건 국내 정치다. 이 난장(亂場)과 떨어져 부(富)를 챙겼다. 그 부는 여주·평택시민의 먹거리다. 이 지점에서 굳이 평에 박할 필요가 있겠나.

[사설] 만성적자에 꼴찌 경영평가... ‘인천의료원 이용’ 캠페인이라도

과거 살림살이가 어렵던 시절, 도립병원이나 시립병원은 시민들 가까이 있었다. 관록 있는 의료진에 합리적인 병원비 등 친근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소득 수준이 올라가면서 의료기관 눈높이도 달라졌다. 저마다 이름난 병원만 찾으면서 공공의료원이 한산해져 갔다. 환자가 없으니 의사를 못 채우고 다시 환자가 줄어드는 악순환이다. 인천의료원도 수십년간 이 악순환의 고리에 빠진 듯하다. 올해 경영평가에서 최하 등급을 받았다고 한다. 재정 관리나 의료 부문 성과까지 모두 낙제점을 받았다. 64.95점으로 ‘마 등급’을 받았다. 인천시 산하 12개 기관의 평균점수(77.85점)에도 한참 떨어지는 성적이다. 우선 리더십 부문 성적부터 좋지 않다. 2022년 기준 경영평가의 개선 권고 사항 이행률이 46%에 그쳤다. 총액인건비도 15억원을 초과하는 등 2년 연속 위반으로 나타났다. 원외 무료검진 서비스 지원 실적도 아주 저조했다. 양질의 의료 평가 점수는 74점이었다. 직원 만족도 점수도 58.8점에 그쳤다. 채용 비리 등으로 인한 감점 사항도 있었다. 장애인 의무고용 비율이나 중증장애인 생산품 우선 구매 등도 기준에 미달해 감점을 받았다. 인천의료원은 적자경영이 이어지고 있다. 2020년 202억원, 지난해 277억원의 적자를 냈다. 올해도 257억원의 적자를 예상하고 있다. 특히 정부의 코로나19 손실보상금 중단의 타격이 크다. 엔데믹을 맞아서도 병상가동률이 회복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그간 모아둔 이익잉여금이 바닥나는 등 자금난이 심각하다. 이에 인천시는 내년 의료원 출연금에 운영지원자금 145억원을 더 보태 인천시의회에 제출해 놓은 상태다. 물론 인천의료원만의 문제가 아닌 것도 현실이다. 전국의 각급 공공의료원들이 공통으로 겪고 있는 현상이다. 2년 연속 총액인건비 위반 등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을 것이다. 의료진을 충원해야 병원이 돌아갈 터인데 현실은 만만치 않다. 인천의료원의 의사 임금은 민간 병원의 70% 수준이라고 한다. 안 그래도 의사가 부족하니 의사 찾기가 더 어렵다. 이에 인천의료원은 그간 인천시에 총액인건비 운영에서 의사 임금은 예외로 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만성적 경영위기의 공공기관이 뚜렷한 자구책이나 혁신 방안도 없어서는 곤란하다. 그래서는 시민 세금에 의한 경영 지원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것이다. 환자 수 급감이 1차적 문제라면 지역사회가 나설 필요도 있어 보인다. 지역 지도층이나 공공 부문에서부터 ‘인천의료원 이용’을 솔선수범하는 등이다.

[지지대] 사회적 타살 ‘고독사’

고립과 빈곤의 벼랑 끝에서 죽음을 맞는 이들이 있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라는 명제를 보면 죽음이 평등한 것 같지만, ‘어떻게 죽었는가’를 보면 평등하지도 않다. 홀로 쓸쓸하게 맞는 죽음, 고독사(孤獨死)가 그렇다. 고독사 예방법에 따르면 고독사는 가족, 친척 등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사회적 고립 상태로 생활하던 사람이 자살, 병사 등으로 임종을 맞이한 경우를 칭한다. 2022년에는 고독사 사망자를 ‘홀로 사는 사람’에 한정했으나, 지난 2월 혼자 살지 않더라도 사회적 고립 상태에서 생활해 왔던 사람까지 범위를 확대하는 쪽으로 법이 개정됐다. 보건복지부가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2년간 고독사 발생 현황과 특징을 조사한 ‘2024년 고독사 사망자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사회와 단절된 채 살다가 쓸쓸히 사망하는 고독사가 한 해 3천6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독사는 정부가 공식 집계를 시작한 2021년 3천378명, 2022년 3천559명, 2023년 3천661명으로 3년째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전체 사망자 100명당 고독사는 1.04명이다. 정부는 고독사가 늘어나는 주요 원인으로 1인 가구 증가를 꼽고 있다. 1인 가구는 2021년 716만6천명에서 2022년 750만2천명, 2023년 782만9천명으로 매년 증가세다. 지난해 1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35.5%를 차지했다. 1인 가구는 은퇴나 실직, 가족 해체 등으로 고립돼 있는 경우가 많다. 고독사를 사회구조적 고립이 낳은 ‘사회적 질병’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 칭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고독사는 여전히 장년층인 50~60대에서 집중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50~60대 남성 고독사 비율은 전체 고독사의 53.9%나 됐다. 이들은 홀몸노인 등과 달리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해 전체 고독사 중 극단적 선택을 한 사망자는 14.1%였다. 이 중 20대 59.5%, 30대 43.4%가 자살 사망자였다. 청년층이 고독사에 이르는 과정은 취업 실패나 실직과 연관이 크다고 한다. 생계 해결에 실패하면서 세상을 등질 생각에 빠진다는 것이다. 고독사를 줄이기 위한 연령대별 맞춤형 예방대책과 촘촘한 사회안전망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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