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만평] 위하여...?!

[사설] 고려아연 기술 유출, 그 수챗구멍을 막아라

고려아연은 재계 서열 28위다. 최근 3년간 연매출 7조~9조원이다. 현재 기준 시총이 10위권에 올라 있다. 세계 아연시장 점유율 1위다. 규모에서 보더라도 국내 핵심 기업이다. 이 존재감을 몇 배 더하는 가치가 있다. 바로 세계를 석권하는 기술력이다. 친환경 제련 기술력이 세계 최고다. 친환경 기술은 제련술의 핵심이다. 석유, 철강과 함께 오염물질 배출 해결 기술력이 생명이다. 고려아연은 폐기물에서 금, 은, 동을 뽑아낸다. 100% 가까운 자원화다. 1990년 중반부터 이 재처리 기술을 사용했다. 금속 회수, 잔재 처리를 동시에 사용하고 있다. 이 기술력의 가치를 설명한 전문가의 말이 있다. “투기 회사들이 돈만 놓고 보면 고려아연에서 팔아먹을 기술이 매우 많다. 몇 천억원짜리 기술도 있다. 그런 기술이 공정마다 수백개 존재한다.” 이런 평가에 이견을 제시하는 전문가는 없다. 이런 고려아연이 경영권 분쟁에 휩싸였다. 사모펀드 MBK파트너스, 영풍과 다툰다. 우리의 관심은 기술력 유출이다. 고려아연 최고기술책임자(CTO)들의 선언이 있었다. 단체 사직을 예고하는 충격적인 발표였다. 부회장을 포함한 기술인력 20명이 함께했다. “MBK·영풍이 고려아연을 차지한다면 핵심기술은 순식간에 해외로 빠져나가고 산업경쟁력은 무너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인된 기술력의 주인공들이 함께 낸 목소리다. 분쟁 상대방은 즉시 반박했다. 핵심 기술 유출이나 중국 매각 가능성은 억측이라고 밝혔다. 양측 주장 어느 것도 맞다고 단언할 수 없다. 대신 우리에겐 생생히 남은 과거의 예가 있다. 기술력을 지닌 국내 기업을 무너뜨린 기업 사냥의 결말이다. 종국적 타깃은 늘 기술이었다. 해외로의 매각 역시 정해진 순서와도 같았다. 쌍용차가 그랬다. 중국 상하이차가 경영권을 가져갔다. 국내 첨단 자동차 기술이 뭉텅이로 넘어갔다. 껍데기가 인도 자본으로 갔다. 국가 자산인 기술 유출과 이윤 착취의 역사다. 쌍용차 역사는 경기도민이 처음부터 끝까지 목격했다. 기술 유출을 걱정하는 근거는 분명하다. 무수한 기술력 기업의 역사가 명백하다. 고려아연의 기술력도 유출될 것이다. 그럴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우려하는 게 합리적인 경험칙이다. 지금 한국 경제는 비상이다. 이 위기를 버티는 것도 기술이다. 세계 3위 삼성전자, 반도체 기술이다. 세계 5위 현대차, 자동차 기술이다. 세계 1위를 지켜온 고려아연, 50년 제련 기술이다. 이 기술이 흘러 나갈 수챗구멍을 막아야 한다. 그 파국적 수챗구멍이 경영권 상실에서 시작될 수 있다.

[사설] 경기국제공항, 갈등 타개하고 추진할 묘책 찾아내야

경기도가 31일 경기국제공항 후보지를 발표한다. 연구용역 결과 평택·화성·이천·안산·여주시 등 다섯 곳 안팎이 후보지로 예측된다. 이 중 평택시와 화성시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경기국제공항 후보지 발표와 함께 지역주민들의 반발이 우려된다. 공항이 들어서면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겠지만, 이보다는 소음과 고도제한에 따른 개발 문제 등의 피해가 생기기 때문이다. 주한미군기지가 위치한 평택은 이미 이런 문제들에 직면해 민원이 자주 발생한다. 실제 평택시 전체 면적(487.8㎢)의 약 38%(186.6㎢)가 군사기지법에 의한 비행안전구역이다. 팽성읍은 캠프 험프리스가 위치해 92.4%가, 서탄면·서정동 일원은 오산공군기지(K-55) 인근으로 90% 이상이 비행안전구역이다. 비행안전구역은 건축물 높이가 45m를 넘을 수 없어 15층 이상 건물을 짓지 못한다. 때문에 평택시는 국제공항 입지로 규제가 더 늘어날까 봐 지역사회 전체가 후보지 선정을 꺼리는 분위기다. 화성시는 적극 반대 입장이다. 매향리 일대 소음 피해 가중, 고도제한 적용에 따른 개발사업 차질 우려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국방부가 2017년 6천200만㎡ 규모의 화옹지구 간척지를 수원 군 공항 예비 이전 후보지로 지정한 바 있다. 이후 수원시가 화옹지구에 ‘민·군 통합 국제공항’을 조성하는 의견을 내놔 갈등이 심화돼 있는 상태다. 지난해 11월에는 김진표 전 국회의장이 ‘화옹지구에 수원 군 공항을 이전해 통합 국제공항을 조성한다’는 내용의 특별법을 발의했다. 수원시와 화성시가 군 공항 이전을 둘러싸고 갈등이 첨예한 가운데 경기도가 경기국제공항 후보지로 화성시를 지목하면 논란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경기국제공항 건설은 김동연 경기도지사의 공약이다. 경기도는 당초 ‘지방자치단체 유치 공모’ 방식으로 입지 선정을 계획했다. 하지만 진척이 없자 방침을 바꿔 ‘지자체 협의체’ 구성을 먼저 하는 안을 마련 중이다. 주민 중심의 공론화 과정을 생략하고 행정기관 주도로 추진해 갈등이 고조된 점을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에 경기국제공항 후보지가 발표돼도 사업이 순조롭지는 않을 것이다. 수원 군 공항 이전까지 합쳐지면 사업은 더 어려워진다. 군 공항 이전은 국방부 사무이고, 경기국제공항 후보지 지정은 도 사업이어서 추진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군 공항과 국제공항을 별도 건설하는 방안도 검토한다지만 쉽지 않은 문제다. 경기국제공항 추진이 지자체 간 갈등을 부르지 않으면서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는 해법을 찾아내야 한다. 공론화는 물론이고 군 공항 이전과 연결된 것이면 국방부 등 정부 참여도 필요하다.

[지지대] 억새 그리고 환삼덩굴

약육강식의 처절한 전쟁. 식물의 세계에도 적용된다. 억새와 환삼덩굴이 그렇다. 으름장을 놓는 차원을 넘어 틈만 나면 상대의 영역을 무단 침범한다. 가해 측은 환삼덩굴이다. 억새는 볏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키 1~2m에 줄기는 원기둥 모양이다. 수세적이고 수동적이다. 잎은 길이 40~70㎝에 너비는 1~2㎝다. 잎 가운데 굵고 흰색 맥이 있다. 꽃은 줄기 끝에서 작은 이삭이 빽빽이 달린다. 가을에 무리를 지어 피는 꽃이 근사하다. 환삼덩굴의 잎은 손바닥 모양이다. 줄기는 억센 털이 촘촘하게 돋아 있다. 외형부터 공격적이고 호전적이다. 길가에서 잡초들과 자란다. 억센 줄기도 눈길을 끈다. 다른 식물을 휘감아 말라죽게 하면서 서식지를 넓혀서다. 제거하지 않으면 기존 고유 식물들의 터전이 좁아진다. 환삼덩굴이 억새 군락지를 점령(경기일보 10월24일자 7면)했다. 그것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특례시 팔달구 장안동 수원화성 화서문에서다. 억새들이 무리를 지어 피어 있던 억새밭 일대가 군데군데 파여 있고 훼손됐다. 환삼덩굴의 확산으로 억새들이 잠식당한 것으로 분석된다. 인근에 있는 둘레길을 따라 언덕길을 올라가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길 주변에 펼쳐져 있는 억새들이 윗부분에만 간신히 남아 있어 억새 군락지라고 보기에도 무색할 정도다. 이 현장은 2~3년 전부터 그랬다. 그때부터 억새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호소도 이어졌다. 화서문 일원 억새들이 외래종 확산으로 위협받고 있다. 억새들은 2004년 서문 아파트를 철거하며 진행된 화서공원 복원공사를 통해 심어졌다. 하지만 20년 만에 파괴되고 있다. 시의 무관심 탓이다. 전문가들은 일정한 시기에 두세 번 나눠 방제가 시급하다고 조언한다. 자연의 복원력에만 의존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외래종 확산에 적극 대처해야 한다. 생태계도 후손들로부터 빌린 유산이다.

[세계는 지금] ‘무인기 이전투구’와 글로벌 중추국가의 품격

북한군의 러시아 파견 소식으로 한반도가 흔들거리는 와중에 이른바 ‘평양 상공 무인기’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가열되고 있다. 북한 국방성 대변인은 28일 평양 상공 무인기와 관련해 조사를 마쳤다면서 해당 무인기가 지난 10일 밤 백령도를 출발해 다음 날 새벽 평양 상공에서 정치 선전물을 살포했다고 발표했다. 대변인은 또 해당 무인기가 2023년 6월5일부터 2024년 10월8일 사이에 238회를 비행했는데 10월8일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한국 영내 비행 기록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우리 합참은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라며 “확인해줄 수 없고, 대꾸할 필요도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북한 발표를 액면 그대로 믿을 필요는 없지만 그들이 보여준 사진 속 무인기가 한국군 무인기와 비슷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22년 12월 북한으로 무인기 침투를 공공연하게 지시한 점, 그리고 우리 합참에서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사실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 군이나 민간 단체가 무인기 및 풍선을 이용해 북한으로 전단을 살포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부적절한데 무엇보다도 각종 국내법과 국제법 위반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지할 필요가 있다. 먼저 남북교류협력법상 무허가 물품 반출과 무허가 통신 교류에 해당할 수 있다. 남북관계발전에 관한 법률에서 남북 간 적대행위 금지 조항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 국가보안법에는 북한 측과 무허가 회합이나 통신 금지 조항에 해당할 수 있다.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에 군사경계지역에서 군사적 충돌을 일으킬 수 있는 행위는 금지된다는 조항에도 해당할 수 있다. 항공안전법에도 걸린다. 전단을 살포하면서 대형 풍선이나 드론을 사용하게 되는데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았다면 위반이다. 전단 살포 과정에서 헬륨가스 등 폭발성 물질은 무허가로 사용하면 위험물안전관리법 위반에 해당한다. 형법 및 경범죄 처벌법에도 위반 항목이 있다. 공공의 안전을 위협하거나 타인 재산에 피해를 줄 수 있는 행위는 금지된다. 대북전단 등 북한으로 물품을 막연하게 보내는 행위는 관세법과 무역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 수출입 절차와 세금 납부 절차를 어기는 것이고 결국 관세 미납에 해당한다. 식품위생법도 문제다. 대북전단과 함께 식품이나 의약품, 생활용품을 보내기도 하는데 위생검사를 거치지 않았으므로 위반이다. 감염병 예방과 관리법 위반에도 해당한다. 환경법 차원에서 전단과 비닐풍선 등이 자연 오염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당연히 위반이다. 더욱 심각한 부분은 국제법 위반이다. 대북전단 살포는 전형적인 심리전인 만큼 정전협정에서 군사분계선에서의 적대행위 금지 조항 위반이다. 유엔 헌장에서 무력 사용 또는 위협 금지 조항, 그리고 국제인도법에서 적대적 선전물 금지 조항에 해당할 수 있다. 대북전단 내용은 국제인권 관련 규약에서 금지한 정치적 선동과 국가 간 증오 발언에 해당할 수 있다. 대북전단 살포는 일방적인 통신 행위인 만큼 국제우편 및 통신 관련 규정에도 위반이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선도국가인 만큼 국제 질서와 규범을 위반하는 것은 정체성과 품격을 훼손하는 자해 행위에 속한다. 북한이 먼저 도발하는데 우리만 법을 지킬 수 없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그러나 남과 북은 국가 역량이나 성격 등을 고려하면 격차가 매우 커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기 어렵다. 경제적으로 남과 북은 80배 정도 차이가 난다. 글로벌 중추국가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이 한계국가로 취급받는 북한과 쌍방과실로 처리되는 전단 살포 맞대결을 벌이면 당연히 한국이 손해다. 전단과 오물을 주고받는 진흙탕 싸움은 북한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게임이다. 설사 한국이 이긴다고 해도 오물을 뒤집어쓰는 낭패를 피할 수 없다.

[세상읽기] 대통령 탄핵, 대통령제 탄핵

김건희 여사에 대한 공적 통제가 가능한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핵심에 가닿는 질문이다. ‘대한민국이 민주국가가 맞나’ 자괴감이 든다는 국민이 늘고 있다. 김건희의 라인, 김건희의 논문, 김건희의 사업, 김건희의 주식, 김건희의 가족 등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이 낯뜨거운 윤석열 정권의 속성과 위태로운 민주주의의 현실을 보여준다.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달은 민주주의 체제가 점진적으로 약화되고 민주적 원칙이 점차 침해되는 현상을 민주주의의 부식으로 정의했다. 우리의 민주주의 지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상승했다가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결함 있는 민주주의’로 하락했다. 문재인 정부 때 회복된 민주주의는 윤석열 정부에서 ‘부식된 민주주의’로 추락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몰락한 보수정권에 대한 분노와 인내의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 민주주의의 기둥들이 부식되면 균열되고 약화되며 붕괴로 이어진다. 민주주의 위기는 국가의 장래를 총체적으로 위협한다. 윤석열 정부 경제성장률은 추락했고 미래산업은 정체됐다. 외교와 안보는 구한말이 연상될 만큼 강대국 대리전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늘 그랬듯 결국 시민의 힘으로 민주주의는 회복될 것이다. 하지만 “회복과 퇴보의 반복이 민주주의의 진정한 발전인가”, “준비되지 않은 인물이 권력을 획득하고, 권한이 없는 사인이 국정을 쥐락펴락할 때 민주주의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이것이 다음 공화국을 준비하는 모든 이들의 근본적 질문이 돼야 한다. 그 질문은 우리를 두 가지 과제로 이끈다. 하나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탄핵할 때가 됐다는 점, 다른 하나는 정권교체를 넘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연합정치의 모델을 확립해야 한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 때문에 국민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위험성을 더욱 분명하게 알게 됐다. 입법 사법 행정 3부 위에 군림하는 대통령의 오만과 전횡으로 나라의 장래가 심각한 위험에 빠지게 된다는 분노이자 성찰이다. 정권 심판과 제7공화국의 문을 여는 데 동의하는 모든 국민이 담대한 뉴딜 연합에 합의하고 참여할 때가 됐다. 미국 민주당은 1930년대 대공황을 극복하면서 새로운 사회경제 질서를 만들었다. 강력한 사회보험과 노동정책으로 정부 정책에서 소외되고 배제된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줬고 유권자 지형 변화를 통해 진보 블록을 형성했다. 뉴딜 정책은 광범위하고 안정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장기적으로 추진됐고 미국은 번영을 구가했다. 한국형 뉴딜 연합이 필요하다. 개헌, 민주주의, 불평등, 선거제도, 고용, 사회보장, 공교육, 기후, 인공지능(AI) 경제, 한반도 평화 등 모든 분야를 망라한 사회계약을 쓰고 구체적 프로그램을 추진해야 한다. 2017년 탄핵 직후 다수 연합정치를 완성하지 못한 것은 아픈 점이다. 탄핵 연합과 촛불 대선의 결실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몫이 됐다. 그때 탄핵에 참여했던 정치세력, 사회세력과 함께 탄핵 과정에서 분출된 국민의 요구와 비전을 실천할 틀을 마련했다면 지금처럼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과 그를 세운 세력과 제도의 미흡함 때문에 민주주의가 파괴되지 않았을 것이다. 또 국민을 위한 진보적 정책이 오직 전 정부의 것이라는 이유로 폐기되는 참담한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제 그 뼈아픈 교훈을 되살려 담대한 뉴딜 시대를 열어야 할 때다.

[천자춘추] 대구간송미술관과 경기도박물관, 그리고 뮤지엄파크

뮤지엄은 유물창고가 아니다. 전시를 통해 유물의 사회적 가치를 창조하는 공장이다. 전시도 그냥 학예사가 작품을 늘어놓는 행위가 아니다. 학예사의 철학이 유물을 통해 전시되는 곳이다. 전시는 신규 모델의 자동차 출시와 같다. 대구간송미술관 개관전 ‘여세동보’가 한 달 만에 10만명의 관객을 훌쩍 넘기면서 대구문화를 넘어 대구시민의 삶 자체를 바꾸고 있다. 그 동인은 물론 40건, 97점의 보물이다. 이것은 간송 전형필과 위창 오세창의 컬렉션 위에 최완수 학파의 연구가 쌓여 사립의 대구간송과 공공의 대구시가 다시 합작으로 피워낸 100년의 꽃이다. 그러고 보면 뮤지엄의 성격도 수집→연구→전시로 포개지면서 진화하고 있다. 전시장에서 만난 혜원의 ‘미인도’만 해도 관객들로부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와 만나 문명의 동서를 넘어 시공초월로 대화하고 있는 지경까지 왔다. 유물의 존재 이유나 가치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렇게 보면 경기도박물관의 장한종 ‘책가도’와 청나라 보물 중의 보물인 낭세녕의 ‘낭견도’와의 동서 문명 대화도 늦었지만 당연지사다. 이런 맥락에서 여세동보는 전시를 넘어 상생모델의 사건이고 경기도박물관의 크나큰 타산지석이다. 망국기 간송의 필사적인 유물 컬렉션 정신만큼이나 기계시대 오늘날 유물의 진짜 가치를 각성하고 존중하는 대구시의 태도도 대단하다. 그 결과가 민관 합작의 대구간송인데 골자는 관은 하드웨어와 돈을 대고 민은 기획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파괴적인 가치창조 행정을 예술로 일으켜 낸 시발점이다. 사실 대구는 근대미술 발상지였지만 서울, 광주와 비교하면 문화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훈민정음은 논외로 하더라도 49건, 297점의 경기도박물관의 보물급 유물은 간송과 비등하다. 조선시대만 해도 간송의 겸재, 단원, 혜원, 추사의 걸작과 도박의 독보적인 초상화와 복식유물은 뮤지엄 각자의 정체성과 세계성을 각인시키고도 남는다. 하지만 경기도박물관은 이런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당장 대구간송과 같은 전시혁명을 일으켜내지는 못한다. 그 이전에 경기도박물관의 해묵은 선결과제가 있다. 지속적인 유물 구입과 깊이 있는 학예연구 수행이 그것이다. 컬렉션의 경우 고미술 값과 가치평가가 땅에 떨어진 지금이야말로 유물 구입 최적기임은 역설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국내총생산(GDP) 3만5천달러로 세계 10대 경제대국이고 그 선도가 경기도다. 더구나 간송은 망국이라는 암흑천지 시공에서 개인이 국가를 대신해 땅과 집을 팔아 유물을 샀지 않은가. 여기서 문제의 본질은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의식이 없다는 데 있다. 예술에 대한 투자는 경부고속도로와 차원이 다른 천년만년의 정신고속도로를 개통하는 행위다. 결국에는 경제와 정치 판도를 변화 도약시켜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하는 ‘정신 공간(Spritual space)’을 창출하는 행위의 시작이 컬렉션이다. 경기도박물관의 2024년 유물 구입비는 7천만원이다. 국립박물관 40여억원과는 비교 불가다. 국립박물관 역시 국가 위상에 비하면 400억원이 돼도 부족하다. 경기도박물관의 당면 과제인 경기뮤지엄파크 브랜딩작업도 결국 지속적인 유물 구입과 학예연구가 토대가 된 전시프로그램으로 완성된다. 경기도박물관의 유물이 어린이박물관에서 기획 전시되고 백남준의 비디오아트가 경기도박물관의 유불도(儒佛道)와 무(巫)를 주제로 한 유물과 격의 없이 만날 때 경기뮤지엄파크는 피가 돌면서 그 실체가 만천하에 저절로 드러난다.

[기고] 담배소송 10년. 국민건강지킴이로서 국민에게 희망을

국민건강보험공단은 2014년 4월14일 흡연의 폐해를 은폐한 담배회사의 책임을 규명하고 흡연관련 질환으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의 누수를 방지하기 위해 담배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2020년 11월20일 1심 판결에서는 흡연과 폐암 발병과의 인과관계, 담배회사의 불법행위 등이 인정되지 않으면서 공단이 패소 판결을 받았다. 공단은 2020년 12월10일 항소심을 제기했으며, 2024년 9월11일 9차 변론에 이어 오는 11월6일 10차 변론이 예정돼 있다. 우리나라 흡연자들은 담배 한 갑을 살 때마다 약 3,330원의 제세부담금을 납부하고 있으며 이중에는 841원의 국민건강증진기금 부담금이 포함돼 있다. 담배회사는 실제 흡연자가 담배구매 시에 지불하는 돈을 모아서 그대로 지자체에 신고․납부하는 구조로 막대한 사회․경제적 흡연폐해에 대해서는 어떠한 책임도 지고 있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담배 위해성은 이미 많은 연구를 통해 과학적으로 입증됐고, 해외 담배소송에서도 담배회사의 불법행위가 인정되어 거액의 배상책임을 지고 있다. 미국의 경우 1998년 46개 주정부들이 4개 담배회사와 25년 간의 소송을 통해 2,060억불(260조원)의 배상액 합의를 이루어냈으며, 캐나다의 경우에도 퀘백주에서 3개 담배회사를 상대로 156억불(약 14조원)의 집단소송을 제기해 2019년 승소 판결을 이끌어 냈다. 이와 같은 사례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담배 폐해에 대한 담배회사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처럼 담배 회사의 수익금 중 일부를 흡연피해자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다면 국민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공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그동안 담배가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을 여러 경로를 통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직접흡연으로 인해 연간(‘19년 기준) 사망자가 5만8천36명 발생하고, 흡연이 폐암과 후두암의 발생 원인이 돼 이로 인해 지출되는 건강보험 진료비가 3조8천억원(‘23년 기준)에 이른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직접 체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간접흡연으로 인해 50여종 이상의 발암물질을 포함한 최소 250여종 이상의 유해 화학물질에 노출 가능성이 있어 지속적인 간접흡연 노출은 하루 5~10개비 정도를 흡연하는 수준과 같아 폐 기능이 저하되는 등 건강위험을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사실 또한 우리 국민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다행히도 담배소송을 진행 중이던 지난 10년간 흡연에 대한 국민들의 시각이 많이 변화됐다는 것을 사회현상을 통해 알 수 있다. 2015년 담배 값이 대폭 올랐으며, 2016년부터는 담뱃갑에 흡연의 폐해를 나타내는 경고성 그림이 부착되는 등 규제가 확대됐다. 특히 지난해 10월에는 ‘담배의 유해성 관리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2025년 11월1일 시행을 앞두고 있어 담배의 유해성을 공개할 수 있게 됐고, 향후 담배소송에도 유리하게 적용할 것이라 믿어 본다. 이제는 1심 판결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국내외 연구논문 확보를 통해 법리 보강을 충실히 하고 내외부 인프라를 활용한 전방위적 홍보추진을 통해 대국민 관심도를 높여 재판부의 인식전환을 유도해야 할 것이다. 또한 흡연폐해로 인한 담배소송의 당위성을 전파함과 동시에 막대한 영업이익을 남기고도 자유로웠던 담배회사의 사회·경제적 책임을 부각시킬 수 있는 전략적 홍보를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이제 담배소송 10년의 문턱을 넘었다. 어떻게 보면 지칠 수도 있는 시점이다. 하지만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적극적인 법리보강을 통해 항소심에 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항소심에서 승리하여 국민건강지킴이로서 국민들의 새로운 희망이 되어야 할 것이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경기만평] 국힘의 딜레마...

[사설] 삼성은 ‘주 6일’ 비상, 경기도는 ‘주 4.5일’ 고집

경기도가 ‘주 4.5일제’를 몰아가고 있다. 시범사업평가위원회에서 기준을 넘겼다고 밝혔다. 도가 밝힌 심의 결과 평가 점수는 89점이다. 22, 23일 실시된 심의위에는 7명이 참여했다. 6명은 민간위원, 1명은 공무원이다. 위원회가 강조한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업무 효율성, 노사 공감대, 기업 환경 고려, 대상 기업 다양화 등이다. 도 관계자는 “(위원들의 의견을) 반영하려 노력하겠지만 모두 반영되지는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결과를 토대로 연구 용역이 이어질 것 같다. 주 4.5일제 시행에 대한 밑그림 그리기다. 내년 3월에는 시범 사업을 추진하게 된다고 밝혔다. 시범사업평가위원회나 연구 용역 모두 일정한 방향이 정해져 있는 듯하다. 도의회 등의 반대를 피하려는 구색 맞추기 느낌이다. 돌이켜 보면 주 4.5일제 모든 과정이 그랬다. 김동연 지사의 선창 이후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20일 전에는 관련 공청회가 있었다. 그때도 그랬었다. 경기도의회 정하용 의원(국민의힘)이 의견을 냈다. 사회적 타협 전제를 강조했고, 사회적 갈등 야기를 우려했다. ‘충실한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하지만 목소리는 묻혔다. 국내 몇몇 기업의 도입 사례가 소개됐다. 도입했다가 철회한 얘기는 소개되지 않았다. 성공 사례를 발표한 기업인이 있었다. ‘주 4일제 효과만은 아니다’라고 유보했다. 이런데도 도는 공청회 분위기를 찬성 위주로 전했다. 결론은 나와 있었다. 김동연식 경제 철학은 사람 중심 경제(휴머노믹스)다. 4.5일제 시범실시를 이렇게 설명했다. ‘노사 합의로, 임금 삭감 없이 시행한다’, ‘임금 단축분은 도에서 지원한다’. 그런데 실제 모습은 딴판으로 간다. 사측을 대표하는 기관에 경기도중소기업CEO연합회가 있다. 집행부가 반대한다. 경기도에 항의도 했다. 다 무시됐다. 세금 집행은 도민 동의가 필요하다. 도의원이 우려했는데 반영되지 않았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중심인가. 삼성전자가 흔들린다. 누가 뭐래도 경기도 기업이다. 수출 실적은 경북, 충남 등에서 이뤄진다. 그래도 연구·생산 인력의 중심은 경기도다. 함께 생존하는 크고 작은 관련 기업도 엄청나다. 삼성에 부품을 공급하는 기업만 2천515개다. 그 기업과 노동자 상당수가 경기도에 있다. 위기의 삼성전자가 빼든 칼이 있다. ‘전자 계열 임원 주 6일 근무’다. 근무 일수 조정이 그렇게 준엄한 것이다. 하물며 악전고투하는 중소기업들엔 어떻겠는가. 시기적으로 설득력 없다. 혈세 들여 실험할 일 아니다. 혹여 정치적 셈법이라도 있는가. 친(親)노동 이미지 만들기의 하나인가. 그렇다면 그건 정치의 영역이다. 앞으론 토론의 주제에서 빼는 게 옳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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