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경제] 홍익인간과 전인교육

홍익인간은 한국의 교육이념으로 명시되기 전에도 인적자본(정신자본·지식자본) 형성에 많은 영향을 줘 한국인의 뜨거운 교육열로 나타났고 경제와 사회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49년 제정된 교육법 제1조에서 홍익인간 이념을 교육의 근본 목표로 삼아 전인교육을 강조하며, 모든 국민이 인격을 완성하고 자주적인 생활 능력과 민주적 자질을 갖춘 공민으로 성장하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은 것이야말로 건국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널리 인간 세상에 도(道)를 넘치게 해 골고루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는 교육과 학습이 필수적이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하려면 적어도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 이를 위해 풍부한 지식, 올바른 정신 및 신체적 건강을 가지려면 덕지체정육(德智體情育)의 원만한 인격을 도야하고 완성해야 하므로 전인교육과 학습이 중요하다. 인격 양성의 목적은 개인은 물론이고 공동체를 위해 홍익하는 생활과 활동을 하는 것이다. 사람은 각자가 삶의 주인이며,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자신이 선택한 방식대로 자기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다. 이런 사회에서는 인간의 자기애와 자기 이익을 인정하는 것이 동기를 유발해 경제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자신은 물론이고 남과 사회를 위한 결과를 가져오게 하므로 홍익인간과 시장경제는 궁합이 잘 맞는다. 이 요청에 부응해 설정한 교육 목표는 세 가지다. ①인간의 존엄성을 인식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자유인으로 성장하는 것 ②학행일치하는 자립 능력을 갖춰 행복한 사회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지식과 기술을 익히고 ③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문화적 인재가 되는 것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교육방침은 인격교육, 기술교육, 국방교육, 지식교육을 철저히 하는 것이다. 전인교육의 목표는 개인과 국가, 나아가 인류 공영을 위한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다. 홍익인간을 교육이념으로 채택한 동기는 다음과 같다. ①홍익인간은 건국이념이기는 하나 결코 편협하고 고루한 민족주의 이념의 표현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정신과 부합되며 민족정신의 정수이고 기독교의 박애정신, 유교의 인(仁), 불교의 자비심과도 상통한다. ②자주적 생활 능력과 공민으로서의 자질은 우리 교육의 근본 목적을 달성하는 두 큰 지주로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국민 각자가 자유와 행복을 누리면서 자주적으로 국가 발전에 협조·봉사해야 개인과 국가가 조화롭게 발전할 수 있다. ③자주적인 생활 능력과 고유한 인격의 함양은 궁극적으로 민주국가 발전에 봉사하기 위한 것이다. 교육의 근본 목적인 전인교육을 달성하기 위한 교육법 제2조에 일곱 가지의 근본 교육방침은 다음과 같다. ①건강한 신체와 견인불발의 기백 ②애국애족의 독립정신과 인류 평화에의 공헌 ③민족 고유문화의 계승 앙양과 세계 문화에의 공헌 ④창의적 활동과 합리적 생활 ⑤자유와 책임 및 신의와 협동 ⑥심미적 정서의 함양과 여가의 현명한 사용 ⑦근검 노작과 무실역행하며 유능한 생산자요 현명한 소비자가 돼 건실한 경제생활을 하게 한다. 홍익인간 사상에 입각한 전인교육에 의해 축적된 인적자본은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자기 성취 동기를 유발하는 포용적 경제 제도와 정치제도를 만드는 경로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인류의 공영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천자춘추] 남한산성의 추억

지난 10월31일 남한산성역사문화관이 개관식을 개최하고 일반에 공개됐다. 2014년 남한산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고 나서 경기도는 박물관 건립을 추진했으며 수년간의 준비와 공사를 거쳐 드디어 문을 열게 된 것이다. 역사문화관은 산성도시로서의 세계유산적 가치와 경관을 널리 알리는 역할을 담당해 나갈 예정이다. 역사적으로 남한산성 하면 병자호란이 가장 먼저 떠오를 수밖에 없다. 산성의 기원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현재의 모습으로 갖춰진 것은 후금의 위협이 고조되고 이괄의 난을 겪은 후인 1624년(인조 2년)이었다. 그로부터 12년 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고 청나라 군대의 남하가 시작되자 임금은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후 47일간 항전했으나 결국 항복하고 굴욕적인 강화를 체결한다. 이런 통한의 역사도 있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직접 기억되는 산성의 모습도 또한 존재한다. 6·25전쟁을 거친 1950년대 남한산성은 이승만 대통령의 자취가 많이 남아 있다. 1954년 5월 “전쟁으로 파괴됐던 남한산성은 이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경기도가 고적 수리와 도로 신설을 마쳤고 국립공원으로 지정·개방했다.” 1955년 6월에는 “이 대통령의 탄신 80주년을 맞이하여 산성에 ‘이승만박사송수탑(頌壽塔·장수를 기원한다는 의미)’을 제막하고 아울러 광주군 온정리로부터 산성까지의 7.6㎞의 신설 도로도 개통하는데 이름을 우남로(雩南路·우남은 이승만의 호)라고 명명한다.” 이런 당시 신문기사를 통해 이승만의 남한산성 사랑이 각별했음을 알 수 있다. 산성에는 1953년 이승만이 방문했을 때 심었던 전나무와 기념비, 그리고 송수탑 하부석이 남아 있다. 송수탑신은 4·19 후 철거됐고 국립공원 지정도 해제됐다. 산성에 육군형무소가 설치된 시기도 있었다. 그 후 남한산성이라는 단어 속에는 무시무시한 인권 사각지대라는 통념이 오랫동안 자리 잡았다. 5·16군사정변 이후에는 형무소 재소자들에 의해 산성 중턱에 ‘혁명기념탑’이 건립됐다는 신문기사도 찾아볼 수 있다. 1970년대는 서울시민들이 자주 찾는 근교 유원지로서의 기능을 했다. 영화와 TV촬영의 단골 장소이기도 했다. 1974년 방영됐던 KBS 연속극 ‘에루야’는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 봉화잡이를 둘러싼 서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사극으로 주무대인 산성에서 야외 녹화가 진행됐다고 한다. 서울시민과 경기도민들이 자주 찾는 유원지, 닭백숙으로 유명했던 이곳이 세계유산으로 탈바꿈했다. 많은 유산을 복원·정비했다. 도립공원으로서의 역할도 담당하지만 나라를 대표하는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으로도 자리 잡았다. 역사문화관도 한몫할 것이다. 오랜 더위 끝에 찾아온 좋은 계절에 남한산성을 찾아 늦가을의 정취를 만끽해 보자.

[아침을 열면서] 사이를 다시 보는 ‘사이사이’

11월은 사이가 더 느껴지는 달이다. 1과 1이라는 숫자의 나란한 모습에서 사이를 시각적으로 확연히 보듯. 어쩌면 가을과 겨울 사이에 낀 느낌의 인상이 그렇게 구체화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선입견을 접고 일상의 거리만 훑어도 한층 멀어지는 나무들에서 사물의 사이를 실감한다. 잎이 지면서 나무들도 가지 사이를 더 드러내고, 그렇게 비어가는 곳곳의 사이들이 휑하니 쓸쓸해 보이는 것이다. 그 곁을 지나는 사람들 어깨 사이나 바람의 걸음 사이도 더 성글어지는 느낌이다. 문득 사이를 되짚는 것은 세간의 사이들이 더 보이는 계절 때문이다. 어떤 이미지에 걸려 그에 따르는 연상들을 곱씹듯 사이의 사유며 사달 같은 게 겹쳐온다. 사이는 시간이며 공간의 간격만 아니라 사람이나 사물의 관계나 거리 같은 것들을 포괄해온 말이다. 사이 속의 다면이 새록새록 손을 흔드는 즈음, 간명한 단어에 얼마나 많은 함의를 담아 왔는지 되작이게 된다. 그 말에서 시각과 촉각과 청각 같은 인지와 시간이나 공간의 감각들을 다시 본다. 11월의 이미지로 불러본 사이라는 표현이 그 안팎에 서린 정서적 거리감이며 서정적 표현까지 조곤조곤 깨우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사이에서 발생하는 일들이 이루는 게 생의 궤적이지 싶다. 바로 직전까지 더없이 좋은 사이에서도 자칫 마음 상하는 말을 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사이를 만들듯 사이는 종종 어떤 일을 발생하고 파생한다. 그런 사이가 만드는 사달 중에서도 세상 센 것은 ‘우리가 남이가’라는 관계의 과시가 아닐지. 누구보다 끈끈한 관계를 바탕에 깔고 엮는 사이에서 자칫 부정적인 일로 연결되는 일이 많았던 것이다. ‘남이 아닌’ 사이로 혈연보다 깊어지다 함께한 일에서 문제로 비화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우리 일상은 연약해 새로 잇거나 자르는 세상의 사이에 따라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고 복잡한 영향을 받는 게다. 때로는 사람과 사람의 사이가 거미줄 같다. 생존을 위해 먼 데까지 줄을 치고 거기서 먹이를 얻고 아름다운 문양도 이루지만 센 바람이 닥치면 끊어지는 거미줄 말이다. 세간의 관계 설정이나 거리 조정이나 사람 사이를 함축해온 줄의 유지는 그만큼 어려움이 많다. 현대인의 사이는 5년마다 재조정된다는 말이 있었는데 사이라는 연줄의 다면이 상황에 따라 자주 변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적 관계의 사이사이를 더 복잡하게 타고 사는 이즈음은 재조정의 시기가 더 짧아졌을 법하다. 갈수록 마음이 아주 편한 사이만 오래 다독이며 함께 사는 세상이랄까. 그러면서 돌아본다. 요즘 저자와 독자와의 사이는 어떠한가. 독자에서 저자로 가는 머나먼 꿈을 실현해도 마음에 두었던 독자와의 사이는 대부분 더 멀고 지난하다. 책도 신문도 많이 나오는 만큼 예전 종이책이며 신문이 누리던 호시절은 회복이 어려운 시절이다. 최근에 노벨상 선정 소식이 나오자 수상 작가 책을 사려고 줄 서는 모습에서 많은 생각이 스쳤다. 그런 열풍만도 저자와 독자 사이의 회복에 기여하려니 믿어본다. 그렇게 책갈피 사이를 높이는 마음의 온도를 등불 삼아 외롭고 높고 쓸쓸한 나날을 건너기도 하려니.

[기고] 블루칼라 열풍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일자리 시장에서 때 아닌 색깔론이 불고 있다. 정치적 표현의 색깔이 아닌 육체 노동직을 뜻하는 ‘블루칼라 열풍’ 얘기다. 최근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 젊은 세대의 블루칼라 선호도가 높아졌다는 언론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발전소 엔지니어, 방사선 치료사 등 고임금의 생산·기능 직군에 젊은 세대들이 몰려 스스로를 공구벨트 세대라 부를 정도라고 한다. 블루칼라 열풍은 인공지능(AI)의 급속한 발전과 고령화에 따른 육체노동 인구의 절대 감소에 기인한다. 챗GPT 등 고도화된 AI 기술이 점점 화이트칼라의 일자리를 대체하면서 먼 미래에 아예 직업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 속에 AI가 침범 못 할 직종이 우위에 서고 있다. 블루칼라 일자리가 화이트칼라보다 고용안정성이 더 높다고 판단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이유다. 그러나 첨단 기술력은 물론이고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르다는 우리나라에선 이런 변화를 체감하기 어렵다.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한국은 이미 노동력 부족 현상이 심각한 수준이다. 남동구 남동국가산업단지만 봐도 일손이 부족하다는 기업이 한두 곳이 아니다. 이유가 뭘까. 지금 급부상하는 블루칼라는 과거의 육체노동이 아닌 새로운 직업 계층을 뜻하는 ‘뉴칼라’ 직종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뉴칼라는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의 중간 개념으로, 고도의 기술력과 전문지식을 갖춘 생산직 노동자를 일컫는다. 개인의 발전 가능성과 워라밸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선 ‘더 나은 선택’이란 당위성을 제시해야 한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의 TSMC를 보자. 높은 업무강도로 악명이 자자하지만 매년 수천 명이 채용시장의 문을 두드린다. 대만 내 최고 연봉과 전 세계 1위라는 소속감을 보장한 덕분이다. TSMC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TSMC의 평균 연봉은 250만 대만달러(1억420만원)로 대만 평균보다 2~3배 높았다. 비단 높은 임금뿐만 아니라 개인의 발전 가능성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다. 산업단지는 제조업의 근간이자 중소기업의 요람으로 우리나라 전체 제조업 생산의 70%를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연구개발과 스마트 자동화 등에 뒤처지면서 상당수 영세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근본적인 산업구조의 변화가 절실하다. 현장 수요에 맞는 직업교육을 통해 맞춤형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 더불어 퇴직 후 재취업을 희망하는 중장년과 인력난에 시달리는 기업 간 매칭도 고령화 시대 노동력 부족을 해소할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물론 일부에선 블루칼라 직종을 기피하는 현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루칼라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먼저가 돼야 한다. 미국의 젊은이들이 공구벨트 세대를 자처하는 건 그만큼의 가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경제의 근간인 뿌리산업을 육성하고 산업단지에 젊은 인재가 찾아오게 할 방법은 더 나은 선택을 제시하는 길뿐이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경기만평] 조그만 돌…?

[사설] 성남 장애인 히말라야 등반을 응원하자

신상진 성남시장의 치사가 있었다. “한국인의 기백을 보여 달라...장애인의 희망이자 빛이 될 것이다.” 지난해 8월23일 있었던 발대식 행사였다. 성남지역 장애인 등으로 구성된 등반대다. 이들의 목표는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칼라파타르다. 해발 5천550m로 전문 산악인도 쉽지 않은 코스다. 이들의 당찬 도전을 내외에 선포하는 날이었다. 성남종합스포츠센터에서 열렸고 신 시장이 전한 인사말이다. 등반대에 전하는 당부가 담겨 있다. 그때부터 혹독한 훈련에 돌입했다. 1년간 한 달에 두 번씩 지리산 훈련을 수행했다. 그 예정된 시간이 다가왔다. 이달 4일부터 14박16일간이다. 원정대는 곧 네팔로 출발하게 된다. 그런데 순탄해 보이는 겉과 달리 내부의 잡음이 들렸다. 경비 부담 문제다. 시는 이번 원정에 항공권, 숙박비, 식비 등을 지원키로 했다. 대략 1억원 정도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장애인들은 말 못할 서운함을 말한다. 전부 지원 약속이 바뀌었다고 얘기한다. 등반에 필요한 장비 지원 논란이 있다. 한 참여 장애인의 부모는 ‘300여만원의 경비를 자체 부담했다’고 밝혔다. 현지 이동 비용 논란도 있다. 국내에서 네팔로 이동하는 항공권과 수하물 25㎏은 시가 부담한다. 그런데 현지 이동에 필요한 항공비와 수하물 15㎏ 비용은 장애인 등 참가자가 부담한다고 했다. 이를 장애인 측에 전달한 건 시가 아니다. 계약을 맺은 민간 여행업체가 알렸다. 고지 시점도 출발을 열흘 앞둔 24일 출정식이었다. 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이 많이 당혹스러워한다. 모집 당시에는 모든 비용을 지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 믿음을 확신하게 한 지난해 출범식이었다. 이후 1년여간의 적응훈련 기간에도 이와 다른 설명은 없었다. 그런데 출발을 상징하는 출정식에서 상당 부분에 대한 개별 부담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시는 소통 과정의 문제를 얘기한다. 현지 이동 비용에 예비비 800만원을 지원 계획과 장비 구매 비용 30만원 지원 계획을 설명했다. 항간에는 후원 업체가 붙지 않았다는 얘기도 들린다. 예상했던 등산의류 업체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후원의 경영적 가치가 없다는 것인가. 이들의 도전이 의미를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인가. 안타깝다. 씁쓸하다. 신 시장은 ‘(이번 등반이) 전국 265만 장애인의 희망이자 빛이 될 것’이라고 했었다. 그의 이런 당부를 많은 언론이 성남시청발(發)로 썼다. 그 장담과 홍보가 1년 만에 이렇게 됐다. 지원이 있느니 없느니 갈등하고 있다. 사흘 뒤면 출발해야 한다. 논쟁의 시간은 아닌 것 같다. 혹독한 훈련을 견뎌왔을 이들이다. 장도(壯途)를 격려할 성남시 결정을 고대한다.

[사설] 경기 ‘안전전세 프로젝트’, 법적근거 부족 한계 있다

전세사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전국 곳곳에서 여전히 전세사기 소식이 들린다.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 심의를 거쳐 차례대로 피해자로 인정받고 있지만, 보증금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올해 10월 기준 정부가 인정한 피해자는 2만2천503명이다. 이중 74%가 2030세대다. 대출을 받은 이들은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 전부터 빚의 굴레를 짊어져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전세사기의 원인을 개인의 부주의로만 볼 수는 없다. 피해자들은 국가가 만든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른 중개제도를 믿고 거래했다. 일부 임대사업자와 공인중개사의 불법 행위에 사기를 당한 것이다. 정부가 전세사기 관리 감독을 제대로 못한 탓이 크다. 전세대출 위험도 방관했다. 사기에 노출되기 쉬운 전세제도의 허점을 보완할 대책은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 경기도에서 전세피해 예방을 위해 ‘안전전세 프로젝트’를 7월15일부터 시행 중이다. 공인중개사들의 자발적 협력을 통한 ‘안전전세 길목 지킴 운동’과 이를 실천하기 위한 민관 합동 1천70명 규모의 ‘안전전세 관리단’ 운영이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안전전세 길목 지킴 운동은 공인중개사가 전세피해 예방을 위한 실천 과제를 이행하는 사회적 운동이다. 참여 중개사무소는 ‘안전전세 지킴이’ 스티커를 배포해 도민들이 이를 확인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들은 위험물건 중개 금지, 명확한 권리관계 안내, 임차인 체크리스트 제공, 전세특약 명확히 작성, 계약 후 정보변동 문자 알림 서비스 등의 사항을 준수해야 한다. 지난 달 15일 기준 도내 등록된 3만명의 공인중개사 중 약 37%인 1만1천명 이상이 이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도는 연말까지 동참률 50%를 목표로 하고 있다. 9월 말까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제출된 전세 보증사고와 전세피해지원센터에 등록된 피해 금액 합계는 전국적으로 13조7천907억원에 달한다. 이 중 경기도내 피해 금액은 4조2천284억원(30.7%)으로 드러났다. 경기도가 전세피해 예방을 위해 ‘안전전세 프로젝트’를 시행하는 건 바람직하다. 아쉬운 점은, 이 프로젝트가 강제 사항이 아니어서 공인중개사의 자발적 참여에 기대야 한다는 것이다. 법적 근거에 따른 전세사기 예방책이 아니라 공인중개사의 선의나 약속만 믿고 하는 것이라 대책에 한계가 있다. 인증받은 공인중개사들이 합의한 내용을 지키지 않아도 처벌할 수는 없다. 경기도가 임차인 보호를 위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 및 전세사기범죄자 처벌 강화 등 10건의 개선안을 중앙정부에 건의했다. 정부는 사기에 노출되기 쉬운 전세제도의 허점을 보완할 대책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 지자체 노력만으로는 어렵다.

[지지대] 노래로 재건축된 ‘아파트’

케이팝이 또 일을 냈다. 세계적인 차트 상위권에 올라서다. 그것도 반세기 전에 발표됐던 대중가요와 같은 이름의 곡으로 말이다. 뭔 뜬금없는 넋두리냐고 반문하는 분들이 많겠다. 실타래를 풀어 보자. 전기기타 반주에 맞춰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라는 노랫말로 시작되던 유행가가 있었다. 가수 윤수일이 불렀던 ‘아파트’라는 곡이다. 발표 시기는 1982년 이맘때였다. 최근 블랙핑크의 로제가 팝스타 브루노 마스와 듀엣으로 ‘APT.’를 불렀다. 그 사이 세월은 반세기가 흘렀다. 이 노래가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100’에 8위로 올랐다. 케이팝 여성 가수로는 최상위권이다. 물론 ‘아파트’와는 완전히 다른 곡이다. 가사도 영어다. 전체적인 리듬도 경쾌하다. 노래 끝 부분에 들어가는 ‘아파트 아파트~’가 유일한 한국어라는 분석도 있다. 중독성도 있다. 다시 반세기 전으로 돌아가 보자. ‘아파트’ 인기가 하늘을 찌를 당시는 산업화시대였다. 서울을 중심으로 아파트가 우후죽순으로 들어섰다. 영어로 ‘따로 떨어졌다’는 뜻의 외래어인 아파트는 모두의 로망이었고 중산층의 상징이었다. 찬바람이 불어도 러닝셔츠 차림으로 지낼 수 있다거나 도둑 걱정도 없다는 등의 이야기들도 많았다. ‘아파트’는 그때 탄생했다. 유행가는 늘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아파트’ 탄생에는 어떤 배경이 있었을까. 한 젊은이가 어느 날 한강을 끼고 있는 연인의 아파트를 찾았다. 그런데 가족은 이미 외국으로 이민을 간 뒤였다. 휑했다. 그때의 심정이 노래에 녹여졌다. 가수 윤수일의 기억이다. 강산이 몇 차례 바뀌면서도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각종 운동경기에서 목청껏 부르는 국민 응원가가 됐다. ‘아파트’는 ‘띵동’ 하는 초인종 소리로 시작한다. 반세기 후 ‘APT.’에는 ‘아파트 아파트~’라는 후렴이 들어갔다.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조합이 제법 아름답다. ‘아파트’가 노래로 근사하게 재건축됐다.

[생각 더하기] 문화로 함께한다는 것

지난 2022년 8월 무더운 여름의 어느 날, 수원시 권선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세 모녀가 사망한 채 발견됐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이들은 지병과 생활고로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지만 주변의 관심이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고립돼 있었다고 한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서로를 살피는’ 공동체의 중요성을 일깨웠고 수원시가 3차 법정문화도시로 선정됐기에 더욱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수원시와 수원문화재단은 ‘서로를 살피고 문제에 맞서는’ 문화도시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시민들이 겪는 문제들에 대한 인식을 끌어올리고자 했다. 시민 주도 거버넌스를 기반으로 문화자치 상생 모델을 개발하며 문화와 생활이 연결된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급격한 도시 팽창 속에서 새로운 도시문화 커뮤니티를 모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로 3년 차에 접어든 문화도시 조성 사업은 시민을 중심으로 예술가, 문화 기획자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과정으로 더욱 발전하고 있다. 특히 시민들의 목소리를 반영한 문화축제와 플리마켓, 국내외 유명 공연 등 수요자 중심의 프로그램이 다수 추진됐다. 이러한 변화는 그동안 ‘그들만의 리그’라고 혹평을 받았던 문화도시 수원이 시민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이제는 문화예술인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함께할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된 것이다. 지난 10월19일, 수원제1야외음악당에서 열린 ‘문화도시 수원 페스티벌’은 기존 축제들이 단순하게 문화를 향유하는 데 그쳤다면 이번 축제에서는 시민이 직접 참여하고 기획하는 프로그램이 진행됐는데 ‘문화배율×125 나의 사사로운 나의 도시이야기’와 ‘수원했어, 오늘도’가 대표적이다. 수원 인구 125만명을 대표하는 수원시민 125명을 모집해 그들의 ‘사사로운’ 이야기를 담은 아카이빙 영상을 통해 나를 암에서 이겨내게 해준 공간, 타지에서 왔을 때 나를 보듬어준 공간 등 수원시민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담아내며 서로를 살피고 의지할 수 있는 도시로서의 문화도시 수원의 가치를 재조명했다. 또 ‘수원했어 오늘도’는 문화배율×125에서 선정한 시민과 수원에서 활동하는 공연예술가들이 함께 공연을 만들어 서로에게 위안이 돼 주는 콘서트로 진행됐으며 시민 한 분은 직접 무대에 나와 연주를 선보이며 큰 울림을 줬다. 이번 축제는 수원이 단순한 생활공간을 넘어 각 개인의 삶과 기억이 깃든 장소를 공유하고 축제에 참여한 시민들이 수원이라는 도시와 더 깊이 연결되며, 앞으로의 문화적 발전과 소통의 가능성을 기대하게 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문화도시 수원은 단순히 문화적 행사나 프로그램을 넘어 시민들이 서로를 살피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공동체로 나아가고자 한다. 우리가 함께하는 문화도시 수원은 외로움과 아픔이 없는 미래를 꿈꾸고 행복을 나누는 도시를 만드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의정단상] 백만 평택의 선결과제

빠르게 늘고 있는 평택시 인구는 2030년 1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지금보다 하루에 15만t가량 많은 40만t의 물이 생활용수로 공급돼야 한다. 평택시 물 공급의 변수는 삼성반도체 평택캠퍼스다. 하루에 22만t의 물을 공급받고 있는 평택캠퍼스는 6기 공장까지 전부 가동되면 25만t이 더 필요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삼성전자는 물 부족에 대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2022년 11월30일 환경부, 경기도, 수원시, 용인시, 화성시, 평택시, 오산시, 한국수자원공사, 한국환경공단과 하수처리수 재이용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삼성전자는 수원·용인·화성·오산시 공공하수처리장의 방류수를 처리해 반도체 사업장 공업용수로 재이용하겠다는 얘기다. 이를 통해 2030년까지 반도체 국내 사업장의 ‘물 취수량 증가 제로화’를 달성한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삼성전자의 이런 계획이 성공하면 평택캠퍼스의 원활한 운영과 함께 생활용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평택캠퍼스는 하수 재이용을 통해 하루에 물 29만t을 수원공공하수처리장에서 받아오려 한다. 그러나 하수 재이용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이 사업은 민간투자사업으로 추진된다. 투자에 나서는 민간사업자가 있어야 한다. 수원공공하수처리장 인근에 들어설 하수재이용처리시설 설치 예산은 6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사업비의 10%만 민자로 조달한다고 해도 600억원이 필요하다. 평택지역 물 공급을 위해 수원시가 수백억원을 떠안아야 할 수도 있다. 민간사업자가 사업제안서를 제출하면 한국개발연구원 공공투자관리센터의 사업타당성 평가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렇게 해서 사업의 경제성이 인정되면 제3자 제안공고와 우선협상대상자 지정을 통해 실시협약이 체결된다. 그리고 1년간 실시설계를 거쳐 30개월간 공사가 이뤄진다. 모든 절차가 순조롭게 이뤄진다 하더라도 2030년 들어서야 비로소 하수 재이용을 통한 공업용수가 공급될 수 있다. 하수 재이용을 통해 공업용수가 공급되면 삼성전자는 지금 쓰고 있는 물 22만t에 더해 평택에 공장 6기 전부를 지어 가동하는 데 들어가는 25만t을 추가로 취수할 필요가 없다. 그만큼 시민들을 위한 생활용수가 공급될 수 있다. 그러니까 하수 재이용 시설이 설치될 때까지 생활용수와 공업용수를 어떻게 배분해 물 수요 증가에 대응하느냐는 것이 관건이다. 평택시 인구 예상치에 따르면 2030년 인구는 현재보다 37만명가량 증가한다. 물은 지금보다 15만t가량 더 공급돼야 한다. 평택 반도체 공장 증설도 마냥 늦출 수 없다. 평택 반도체 공장 4, 5, 6기가 더 지어져야 한다. 정부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밀어붙이고 있다. 팔당 물 공급 여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앞으로 평택의 물 사정이 좋다고 보기 어렵다. 설상가상으로 정부는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건설을 위해 내년 상반기에 평택시민 3만명에게 생활용수를 공급해 온 송탄상수원보호구역을 해제하겠다고 한다. 상수원보호구역을 해제하려면 사라지는 취수원을 대신할 수 있는 대체수원이 필요하다. 문제는 아직 민간 사업제안서조차 받지 못 한 채 구상 단계에 머물러 있는 하수재이용시설을 대체수원으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동안 물 부족을 메워줄 것이라던 해수 담수화나 초순수 개발은 기약이 없다. 하수 재이용도 아직 불투명하다.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을 위한 막대한 물과 전기 공급 문제는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 있다. 상수원보호구역 해제 논의에 앞서 하수재이용시설 설치를 현실화하는 일이 먼저다. 국가가 책임 있게 나서야 한다. 국민의 마실 물이 무엇보다 우선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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