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글 풍경] 문해력 문제, 입체적으로 보자

낱말·어휘력·한자어 틀에서 해석하지 말고
발음,텍스트 구조 등 파악하고 분석해야
‘읽기•쓰기•듣기•말하기’ 입체적 접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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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곤 KBS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

혼숙을 ‘혼자 숙박’, 구두가 ‘신발’, 두발은 ‘두 다리’ 아니냐는 문해력 소동이 최근 있었다. 가결, 혈연, 이지적 등의 단어는 중고등학생들이 아예 뜻을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돌이켜보면 그 시작은 ‘심심한 사과’ 사례일 터. 이를 소재 삼아 담론화하고자 한다.

 

수도권의 한 카페가 연전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사과문 “심심한 사과 말씀을 드린다”. 매우 깊고 간절하게 사과한다는 뜻의 ‘심심(甚深)한 사과’를, 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가 없어 하는 사과로 해석해 누리꾼들이 주인을 비난한 것이다. 여론 다수는 어떻게 이런 기본적인 단어를 모를 수 있느냐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일각에선 “‘진심 어린 사과’나 ‘깊은 사과’ 등 다른 쉬운 말을 두고 굳이 ‘심심한 사과’라는 말을 써야 하느냐”라는 반발도 나왔다.

 

예컨대 ‘심심한 사과’라는 글이 아니고 말로써 카페 주인이 진정성을 담아 [심:심한 사:과]라고 발화(發話)했어도 같은 사태가 벌어졌을까. 아니었으리라. 바로 발음과 음성의 힘이다. 우리가 글, 문서, 텍스트의 영역으로만 여기는 문해력의 새뜻하고 근본적이며 구조적인 지평은 이렇다.

 

‘심심하다’는 뜻이 넷이다. 먼저 심심(甚深)하다. ‘심할 심’, ‘깊을 심’이 겹쳤다. ‘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하다’의 뜻. 주로 ‘심심한 사과, 심심한 사의(謝意), 심심한 감사’ 등에 쓰인다. 다음은 심심(深深)하다. 말 그대로 ‘깊고 깊다’라는 뜻이다. [심ː심산천](深深山川)은 깊고 깊은 산천, [심:심산곡](深深山谷)은 깊은 산의 골짜기다.

 

셋째와 넷째는 고유어, 토박이말이다. 심심하다[심심하다]는 ‘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라는 뜻으로 짧은 발음이다. 다음 ‘슴슴하다’로 많은 경우 잘못 쓰는 ‘심심하다’도 있다. 음식 맛이 조금 싱겁거나 간을 적게 한 건 ‘슴슴하다’가 아니라 ‘심심하다’라야 맞다. 따라서 곧잘 쓰이는 ‘슴슴한 물냉면’은 잘못이다. 느낌으로도 심(甚)하거나 깊거나(深) 하는 건 ‘낮고 깊고 길게’ 발음해야 어울리지 않나. 지루할 때, 싱거울 때는 짧은 발음이 걸맞고 말이다. 바로 이런 감각을 키우는 발음과 읽기 교육을 어려서부터 받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문해력을 낱말, 어휘력, 한자어라는 박제된 틀 안에서 해석하는 건 단견(短見)이다. 언어 능력은 입체적으로 다뤄져야 하는 것이며 이 대목을 너무 소홀히 여겨왔다는 생각이다. ‘읽기’라 하면 많은 사람이 ‘지문 읽고 이해하기(Reading Comprehension)’로 받아들인다. 지필 시험 문제의 한 장르로만 여기는 것이다.

 

혀, 입술, 허파, 성대 등을 활용해 소리를 밖으로 내는 본연의 ‘읽기’를 망각하고 있다는 건 불행한 일이다. 아름답게 읽기가 낭독(朗読)이다. 낭독을 위해서는 우선 단모음과 이중모음을 명료하게 구별하는 발음과 더불어 텍스트의 구조를 파악해야 한다. 알맞은 어조, 호흡, 휴지, 억양을 유지하며 연결, 분절, 강조의 기술을 부리는 능력도 필요하다. 그래야 다른 이의 청각을 근사하게 자극할 수 있다. 텍스트가 음성에 실리는 것을 전제로 이해하고 분석하는 힘, 이게 문해력이 아니고 무엇인가. 곧 ‘읽기 문해력’인 것이다. 요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말하기는 또 어떠한가. 무슨 말로 시작하고 본론은 어떻게 펼치며 끝을 어떤 방식으로 마무리할까. 어느 대목에 인상적인 내용을 넣어 상대를 매료시킬까. 어떤 설득의 기법을 쓰고 감동을 주는 포인트는 어디에 둘까. 신체언어(보디랭귀지)는 어떤 정도로 어느 시점에서 구사할까. 이런 다방면의 고려가 곧 ‘말하기 문해력’이다.

 

듣기는 더 절실하다. 소통의 출발이 잘 듣기여야 함은 불문가지다. 상대의 말을 잘 듣고, 자신이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의 고갱이를 숙지하며 어떤 응대를 해야 할지 판단하는 역량이야말로 ‘듣기 문해력’이 추구해야 할 핵심적 지평일 테다. 맨 앞의 예에서 남녀의 혼숙(混宿)은 [혼:숙]으로 긴소리다. 말로 하는 구두(口頭)는 [구:두]로, 짧은 발음 [구두]인 신발이 아니며 머리털을 뜻하는 두발(頭髮)은 발[足]이 둘이라는 [두:발]이 아닌 것이다. 문해력 문제는 기능국어, 즉 읽기, 쓰기, 듣기, 말하기라는 틀에서 입체적으로 접근해서 다뤄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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