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실크로드, 지구 반바퀴] 블라디보스토크 문화탐방

■ 러시아정교회, 시바토수도원 방문 자동차가 세관에서 나올 때까지 블라디보스토크 시내 곳곳을 소요하고 있다. 시내 중심부에 있는 러시아정교회 포크롭스키 주교좌교회를 방문했다. 우리는 동방정교회, 러시아정교회, 조지아정교회 등 정교회(正敎會)에 낯설다. 정교(正敎)는 한자 의미대로 ‘옳은 교회’라는 의미다. 로마가톨릭 교회가 8세기 게르만족 포교에 필요한 성화 제작을 허용할지, 우상숭배로 볼지 등 교리 다툼으로 갈라진 교회다. 성화 제작을 우상숭배로 반대했던 비잔틴 교회는 스스로 ‘옳은 교회’, 정교(正敎)회라 칭했다. 교회 벽면의 이콘 성화가 화려하다. 정교회도 결국은 포교를 위해 성화를 허용했다. 예배 시간 내내 사제와 신자는 계속 서 있어야 한다. 교회 홀에 의자는 없다. 성가도 악기 없이 육성으로만 부른다. 러시아정교회는 결혼한 사람도 신부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다만 결혼한 신부는 주교 등 고위직 사제는 될 수 없다. 러시아 혁명 후 스탈린은 ‘1도시 1교회’ 원칙을 정하고 러시아정교회, 이슬람교 등 종교를 탄압했다. 원칙적으로 한 도시에 하나의 교회만 인정되고 나머지 교회나 사원은 폐지했다. 포크롭스키 교회는 1도시 1교회에 해당돼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다. 스탈린이 1953년 사망하고 후계자 흐루쇼프는 스탈린 격하운동과 함께 종교의 자유도 허용함에 따라 스탈린 사후 많은 신설 교회가 생겼다고 한다. “인류 역사는 세속의 정치 권력과 영적인 종교 권력의 투쟁, 내가 믿는 신이 최고신(最高神), 참된 신이라는 종교와 종교의 투쟁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의 말이 생각난다. 택시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 외곽 러시키섬에 위치한 시바토 수도원에 갔다. 태평안 연안 러시키섬에 위치한 시바토 수도원은 신부 2명, 수도사 20명이 거주한다고 한다. 검은 사제복을 입고 수염을 기른 신부에게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고 사진 촬영을 요청하니 기꺼이 응한다. 향후 이런 오지의 수도원에 찾아올 한국인은 없을 것이라고 우리끼리 말하며 서로 웃는다. ■ 아르바트 거리,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 19세기 말 블라디보스토크에 이주한 조선인이 처음 정착한 장소가 ‘개척리’라고 한다. 현재 이곳은 블라디보스토크 젊음의 거리인 ‘아르바트’ 거리로 변했다. 초창기 정착지로서 움막 등 주거환경이 매우 불결하고 전염병이 창궐해 1911년 러시아 정부가 외곽에 새로운 주거지를 만들어 ‘신한촌(新韓村)’으로 이주시켰다. 옛 개척리인 아르바트 거리는 서구식 건물, 예술 조형물, 젊은이 대상의 문화거리다.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은 항구 옆에 있다. 제정러시아가 1904년 완공한 시베리아 철도의 종착역이다. 모스크바까지 9천300㎞, 기차 정거장만 850개로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다. 이 역에서 1907년 고종의 헤이그밀사인 정사 이상설, 부사 이준 등 세 분이 출발한 역이다. 힘없는 망국 조선의 젊은 관리 세 명이 비장한 각오로 만국평화회의가 열리는 네덜란드 헤이그로 출발한 역을 바라본다. ■ 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 이동휘 선생 기념비 상하이 임시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이동휘 선생 기념비가 있는 곳을 들렀다. 상하이 임시정부는 1919년 9월 수립됐다. 상하이, 연해주, 한성에 있던 세 개의 독립단체를 통합해 설립한 것이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 초대 국무총리 이동휘 선생이다. 이동휘 선생은 조선 말기 한성무관학교를 나온 무관이다. 조선 멸망 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한 사회주의 성향의 독립운동가다. 1920년 소련의 레닌이 200만루블을 상하이 임시정부 독립운동 자금으로 줬다. 이 선생의 측근이 40만루블을 공산당 확장에 사적으로 사용한 것이 발견돼 감찰 담당이던 김구 선생이 척살했다. 이승만 대통령, 안창호 선생 등과 노선 차이로 일찍 임정과 결별하고 1921년 1월 연해주로 돌아가 고려공산당 창당 등 평생 공산주의 운동을 한 인물이다. 조선 말, 일제강점기 암울한 시기에 많은 지식인들이 공산주의,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된 것은 당시의 시대상이다. 이 선생은 1920~30년대 스탈린의 공포 정치와 잔혹한 숙청 정치를 목격했는데 공산주의 실상은 잘 모르는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건국훈장도 공산주의 경력 때문에 매우 늦은 1995년 수상했다. 역사의 현장을 역사학과 대학생처럼 많이 걸어다녔다. 어두웠던 100여년 전 우리의 역사 현장을 보면서 다시는 이 같은 역사를 반복하지 않도록 냉혹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 자동차 5일 만에 세관 통과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 지 5일째인 7월8일 오후 자동차가 세관에서 통과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모두가 환호성을 지른다. 한국 식당에서 김치찌개로 저녁식사를 하면서 무사고 완주를 다짐한다. 일행 중에서 가장 연장자인 K 교수는 “걱정을 떨치고 즐겁게 갑시다”로 건배사를 한다. 모두 “가자, 이스탄불”을 힘차게 소리쳤다. 영어로 여행은 ‘travel’인데 어원은 ‘고생, 고난’이라는 ‘travail’에서 나왔다고 한다. 우리도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이 있는데 서양도 여행은 고생이라는 뜻에서 문화적 동질감을 느낀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 장기간 여행하면서 마찰 없이 보내기 것은 쉽지 않다. 서로 마음의 거리를 좁혀야 한다. 고난을 함께 겪으면서 우정이 생기기를 희망한다.

[경기만평] 곧 수금하러 올듯...

[사설] 그린벨트 풀어 수도권에 5만가구, 속도가 관건이다

정부가 수도권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689만㎡를 해제해 5만가구의 아파트를 공급하겠다고 5일 발표했다. 신규 택지 후보지는 경기도의 고양 대곡(9천400가구), 의왕 오전왕곡(1만4천가구), 의정부 용현(7천가구)과 서울 서초 서리풀지구(2만가구) 등 네 곳이다. 국토부는 이들 후보지에 대해 “환경적 보전 가치가 낮은 개발제한구역과 공장·창고 등이 난립해 난개발됐거나 난개발이 우려되는 지역으로 계획적·체계적 개발이 필요한 곳”이라고 했다. 신규 택지는 내년 지구 지정, 2029년 첫 분양, 2031년 첫 입주가 가능하도록 추진할 방침이다. 국토부는 내년 상반기에도 수도권에 3만가구 규모의 신규 택지 후보지를 추가 발표할 예정이다. 지금부터 5년 뒤 분양하고 7년 뒤엔 첫 입주가 가능하도록 하겠다는데, 토지 보상 등 절차를 얼마나 빠르게 진행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그린벨트는 공장·주택 등 지장물이 적어 보상을 비교적 빠르게 진행할 수 있다. 그럼에도 공공주택지구 지정, 지구계획 수립, 해당 지역 주민과의 협의, 토지 보상 등을 거쳐야 해 후보지 발표 후 주택 공급까지 길면 10년까지 걸릴 수 있다. 전문가들은 토지 수용과 보상에 시일이 얼마나 걸릴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한다. 실제 3기 신도시 중 하남교산은 2018년 12월 신도시 후보지로 선정됐으나 토지 보상 과정에서 토지주들이 반발하면서 6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착공에 들어가지 못했다. 남양주왕숙, 고양창릉, 부천대장 등 다른 3기 신도시도 비슷한 상황이다. 이들 지구는 올해 안에 주택 착공을 계획하고 있다. 3기 신도시 최초 입주 시점이 2025년 상반기였는데 17만4천여가구 중 올해 안에 착공에 들어가는 물량은 전체의 6% 수준이다. 문화재와 보호종 발견도 주택 공급 속도를 좌우한다. 하남교산, 과천지구 등 3기 신도시 여러 곳에서 멸종위기 야생동물인 맹꽁이 서식 등이 확인돼 대체 서식지를 마련하느라 공사가 지연됐다. 이해관계자와의 조율도 중요하다. 서울 태릉 골프장 용지는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 8·4 대책의 주택 공급 후보지 중 가장 주목받았으나, 노원구 주민들의 반발로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주민들은 태릉 인근 교통 체증이 심각한 상황에서 1만가구가 더 들어서면 일대 교통이 마비될 것으로 우려해 반대했다. 정부가 이번에 발표한 경기도 신규 택지는 서울 주변 10㎞ 이내 지역이어서 도심 접근성이 좋아 공급 효과가 클 수 있다. 관건은 계획한 대로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다. 선호하는 입지에 공급 대책을 내놓아도 제대로 실행되지 않아 성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집값 안정에 도움이 안 된다. 정부는 사업의 전 과정을 꼼꼼히 챙겨 공급 속도를 높여야 한다.

[사설] 외국인도 못써 생산라인 멈출 판... 규제들 인천 옥죈다

경제자유구역(Free Economic Zones)은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한 경제특구다. 외국인 투자기업의 경영환경과 생활여건을 만들어 준다. 기업의 경제활동 자율성과 투자 유인을 보장하려 규제도 풀어준다. 2003년 출범한 인천경제자유구역은 투자나 기업 유치에서 전국 9곳 경제자유구역 중 1등이다. 그런 인천경제자유구역에서 “빛 좋은 개살구 아니냐”는 하소연이 나온다고 한다. 수도권 규제 때문에 인력을 충원 못하니 ‘경제부자유구역’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인가. 인천경제자유구역 송도국제도시에 입주한 중견기업들의 사정이 그렇다. 생산라인을 돌릴 인력이 없어 공장 문 닫기 직전이라고 한다. 외국인 노동자라도 쓸 수 있으면 좀 낫겠다는 것이다. 한 반도체 제조 기업은 최근 생산라인을 주야간 풀가동할 인력을 구하느라 애를 먹었다. 중견기업 규모로 사원복지도 괜찮지만 지원자가 없었다. 주야간 교대근무와 생산직에 대한 편견이 장벽이었다. 외국인 노동자를 쓰려 해도 수도권 규제에 가로막힌다. 역시 송도의 한 바이오 기업도 사정이 같다. 최근 생산라인을 확장했지만 교대근무 생산직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먼 지방의 인력시장까지 훑어봤다. “이제 내국인으로 생산직 채우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한다. 요즘 생산직 일손 구하기가 어려운 것은 비단 송도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경제자유구역이라 해도 수도권은 더 힘들다. 외국인 노동자 비전문취업비자(E-9) 고용허가제에 막혀 있어서다. 300인 이상 제조사업장 또는 수도권의 중견기업은 외국인 노동자를 아예 고용할 수 없다. 현재 인천경제자유구역의 외국인 투자기업 중 상시 노동자 300인 이상 제조업체는 모두 7곳이다. 동시에 중견기업 이상 규모다. 중견기업은 매출이 400억~1천500억원 이상이거나 자산 규모가 5천억원 이상 10조원 미만인 곳이다. 이 때문에 첨단산업 분야의 이들 업체가 일손을 못 구해 생산라인을 멈춰야 할 판이다. 실제 인천경제자유구역 입주 기업 60%가 가장 큰 애로 사항으로 ‘인력 수급’을 꼽았다고 한다. 도대체 이해하기 어려운 못난 규제들이 너무 첩첩이다. 수도권에 적용되는 공장총량제도 과하지만 어느 정도 수긍은 간다. 그러나 수도권의 좀 큰 공장들은 외국인 노동자를 쓸 수 없다는 건 무슨 논리인가. 외국인 노동자를 위해서인가 아니면 그냥 수도권이 못마땅해서인가. 제 발목 잡기식 규제를 치면서 반도체·바이오의 글로벌 경쟁력을 바랄 일인가. 그나저나 우리 청년들은 다 어디에 있길래 내국인 충원은 꿈도 못 꾼다 할까.

[지지대] 생명표 위의 아이들

생명표라는 게 있다. 한국에서 사람이 나고 죽는 일에 대해 국가가 조사해 발표하는 자료다. 조사 당시 태어난 출생아들이 앞으로 몇 살까지 살고 어떤 원인으로 삶을 마감할지를 예측한다. 통계청이 작성한 2022년 표가 최신이다. 자료를 보면 2022년 출생아의 기대수명은 약 82년이다. 주요 사인은 암이다. 여러 요인 중 18%로 가장 높다. 암이 없다면 기대수명은 3년 넘게 증가한다. 2022년 사망 원인 통계만 봐도 악성 신생물, 즉 암이 사망 원인 1위다. 한창 뛰어놀 아이들을 암과 연결하는 것은 꺼림칙하다. 두 단어를 함께 배열시키고 싶지 않지만 현실에서 그런 법할 일이 벌어졌다. 지난 여름 경기일보 기자들이 땀나게 뛰어다니며 취재한 결과 아이들이 발암물질 놀이터 위에서 뛰놀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충격적이었다. 특히 부모들이 분기탱천했다. 기자들은 유럽으로 건너가 대안을 찾았고 국정감사에도 알려졌다. 그러던 11월 첫날, 경기도의회에서 ‘경기도 안전한 어린이 놀이터 조성을 위한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 발암물질 놀이터의 직접적인 당사자이자 미래의 이해관계자라 할 수 있는 아이들이 나타났다. 유치원생들은 어른들 앞에서 ‘안전한 놀이터를 만들어 달라’는 피켓을 들고 섰다. 아이들은 피켓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몰랐을 것이다. 암이, 발암물질이 뭔지도. 단지 놀이터에서 못 논다는 게 억울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언젠가 사실을 깨닫는다. 발암물질 놀이터는 이제 해결해야 한다. 어른이 된 아이들에게 원망을 듣고 싶지 않다면 지금부터 손을 봐야 한다. 아이들이 발암물질에서 벗어나 생명표가 보여준 수명보다 더 오래 건강하게 살 수 있게 말이다.

[함께하는 미래] 기후시계탑 앞에서

지난해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에 참가한 198개 당사국들은 기후재난의 최소화를 위해 지구 평균기온 1.5도 상승 억제를 목표로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용량을 3배로 확충하고 에너지 효율을 2배로 증대하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정부와 국회는 이를 회피하고 싶은지 아직도 ‘시곗바늘을 디지털로 할까, 아날로그로 할까’ 등 소모적인 논쟁을 주도하면서 그나마 남은 탄소 예산을 개인의 일탈처럼 소진하고 있다. 이미 일어난 과거와 다가올 미래에 대한 절박한 선택의 기로에서 그 원인에 대한 진단이 과학적으로 분명하고 해결 방안도 이미 기술적으로 일반화된 방법으로 충분하다는 것은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또 전환의 시점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피해도 눈덩이처럼 커지고 부담도 현 세대보다 미래 세대에게 전가되고 있다는 사실도 이미 경험하고 있다. 낡은 것과 얽힌 고리를 끊기 어려운 이유는 그들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일 것이라는 것 외에는 다른 이유를 찾기 어렵다. 국민의 시곗바늘과 정부와 국회의 시곗바늘이 같아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2022년 국회 ‘국민동의청원’으로 모아진 ‘탈석탄법’ 제정을 원하는 시민의 바람은 21대 국회의 임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 하물며 새로운 개념으로 등장한 ‘탄소중립’이라는 용어마저 우리에게 인식되기도 전에 마치 연기처럼 아무런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그 무엇보다 리더의 역할이 중요한 시점인데 선출된 공복이 오히려 지배하려는 모양새인지 최근에는 이마저 언급되는 것조차 꺼린다. 22대 국회는 ‘정의로운 탈석탄법’으로 거듭나야 한다. 초기 화석연료 문명을 개척했던 유럽연합의 변신은 놀라운 정도다. 의회에서 지난해 재생에너지 목표를 2030년까지 기존 32%에서 42.5%로 상향시켰고 45%까지 확대하도록 노력한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세부적인 실행계획까지 법제화하는 것으로 전환의 시대에 부응하는 그들의 의지와 철학을 담았다. 하지만 우리는 2030 온실가스감축목표가 법제화돼 있음에도 이를 뒷받침하는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계획’이나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전혀 그런 의지가 읽히지 않는다. 온갖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짜집기하고 갖은 미사여구를 동원해 과학적으로 기술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신규 사업을 제시하기 바쁘다. 마치 거꾸로 가는 기후에너지 정책생산소처럼 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재생에너지를 생산·이용하는 누구에게나 나침반이 되도록 법제화가 우선이다. 특히 이달부터 2016년부터 시행되던 ‘1㎿ 이하 소규모 신재생에너지 계통접속보장제도’가 폐지됐다. 지난 9월부터는 광주광역시, 전남·북, 강원도에서는 2032년까지 신규 재생에너지 발전사업 허가가 불가능하게 됐다. 정부와 한전은 전력계통 안정성 확보를 방기하고 그 부담을 소규모 재생에너지 사업자에게 전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기후위기시대 재생에너지의 생산과 이용은 시민의 기본권이다. 정부와 국회는 ‘재생에너지 계통연계 의무화’로 화답해야 한다. 곧 정부와 국회에서 내년도 예산 심의가 이뤄진다. 정부의 정책 브리핑을 통해 홍보된 예산안 핵심 사업을 살펴보니 한숨부터 나온다. 기후재난으로 우리의 삶이 위협받고 있다. 우리의 권리는 우리 스스로 지켜야 한다. 디지털로 돌아가는 국회 기후시계탑의 시곗바늘을 아날로그로 바꿔야 할까.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차이가 아니라 작동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기고] 가족보다 가까운 든든한 119

사람은 기쁜 일이 있을 때 가족을 가장 먼저 찾는다. 사랑하는 사람과 좋은 순간을 나누면 행복이 배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몸이 아프거나 위기에 처한 절체절명의 순간엔 누구를 가장 먼저 찾을까. 많은 사람은 망설임 없이 119를 떠올린다. 119는 365일, 24시간, 언제, 어디서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신뢰의 상징이다. 화재, 구조, 구급 상황뿐만 아니라 긴급하지 않은 생활안전 분야에서도 신속하고 전문적인 도움을 제공한다. 지난해 5월19일 경기도 119종합상황실에 ‘찌지직’ 소리만 들리는 신고가 접수된 적이 있다. 신고자는 말이 없었다. 상황 요원은 위급 상황임을 직감하고 위치 추적을 통해 트랙터에 갇힌 60대 남성을 구조했다. 전화를 걸거나 문자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구조 시스템이 마련돼 있다. 또 119안심콜 서비스는 임산부, 장애인, 홀몸노인 등 보호가 필요한 이를 위해 사전 등록된 정보를 기반으로 맞춤형 응급 서비스를 제공한다. 미리 등록된 정보 덕분에 119에 전화만 해도 응급 상황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119는 응급 출동 서비스뿐만 아니라 응급의료 상담 서비스도 제공한다. 119는 24시간 언제든지 실시간 응급처치 방법을 안내하고 주말과 공휴일에도 진료받을 수 있는 병원과 약국 정보를 제공한다. 이러한 서비스는 작은 위기에서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119의 숨은 힘이다. 오늘날 가족의 형태는 다양하고 복잡해졌다. 전통적인 가족의 모습에서 벗어나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서로 다른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배경 속에서 살아간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단순한 소방 서비스 제공자가 아닌 ‘가족보다 더 가깝고 든든한 119’로서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소방관들은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항상 준비하고 있고 그 헌신은 늘 증명되고 있다. 매일 고된 훈련과 교육을 통해 최고의 대응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그 결과 실제 위기 상황에서 전문성과 열정을 바탕으로 생명을 구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들의 헌신은 단순한 직무적 의무를 넘어 ‘가족 같은 존재’와 다름없다. 경기 소방은 화재 예방 교육, 응급처치 교육, 안전 캠페인 등으로 시민에게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전달하며 우리 모두의 일상을 더욱 안전하게 만들고 있다. 일상에서 우리는 언제든지 예상치 못한 위기와 마주할 수 있다. 그러나 경기 소방 1만2천여명은 365일, 24시간 여러분 곁에 있다. 화재, 구조, 구급 등 다양한 상황에서 도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빠르고 정확한 대응으로 여러분의 안전을 지키겠다. 가족처럼 언제나 가까이에서 든든하게 함께하는 119가 되겠다는 다짐을 제62주년 소방의 날을 맞아 다시 한번 새긴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천자춘추] 일상 속 보훈의 첫걸음

국가의 품격은 그 나라가 누구를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달려 있다. ‘일상 속 살아 있는 보훈, 모두의 보훈’이라는 슬로건 하에 8월29일 국가보훈부에서 출범한 ‘모두의 보훈 아너스클럽’이 바로 이 국가의 품격을 한 단계 높이기 위한 의미 있는 시도다. 올해 국가보훈부 창설 제63주년을 맞아 63명의 위원으로 출발한 아너스클럽은 국가를 위해 헌신한 분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억·선양하고 이를 토대로 국민 통합과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는 국가보훈의 기본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일상 속 살아 있는 보훈문화’를 조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아너스클럽의 다양한 구성원이다. 사회 각계각층의 인사들부터 보훈가족, 그리고 일상에서 제복근무자를 향한 따뜻한 마음을 전한 학생들까지. 이 모임은 보훈이 특정 구성원만의 관심사가 아닌 우리 모두의 것임을 보여준다. 또 94세 영국 참전용사인 콜린 태커리 옹, 밴플리트재단 이사장 조지프 매크리스천 주니어 등 해외 인사들의 참여는 보훈의 가치가 국경을 넘어 인류 보편의 가치임을 일깨워준다. 이들은 앞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자발적인 재능기부를 통해 ‘보훈문화 조성과 확산’을 위한 지속적인 활동을 추진해 나갈 예정이며 이는 시민사회가 주도하는 보훈문화 조성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보훈제도와 국민들 사이에 보훈문화가 깊이 뿌리내린 미국에서는 군인과 마주치면 “Thank you for your service(당신의 노고에 감사한다)”라는 말을 건네는 것이 자연스러운 문화다. 호주, 캐나다 등 주요 선진국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일상적인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실천되는 보훈문화야말로 진정한 보훈의 완성이다. 보훈은 이념과 세대, 지역과 계층을 초월하는 가치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이들을 기억하고 예우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도덕적 의무이자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보훈문화를 뿌리내리기 위한 ‘모두의 보훈 아너스클럽’의 활동은 지역사회 특성에 맞게 간담회, 실천안 논의를 거쳐 각종 지역 행사 및 봉사단체와 연합해 펼쳐지고 있다. 모두의 보훈 아너스클럽의 진정한 성공은 이 움직임이 전 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 더 많은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어질 때 가능하며 이제 막 첫발을 뗀 아너스클럽이 우리 사회에 진정한 보훈문화가 뿌리내리는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삶, 오디세이] 프로답게 산다는 것은

필자는 개인적으로 미국에 대해 별다른 적대심도 없고 그렇다고 크게 선호하는 마음도 없지만 미국의 대선 때만 되면 한 번쯤 미국에서 살 때를 떠올리며 추억에 젖곤 한다. 한국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대학원 펠로십이라는 이름으로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한 사립대학을 다닐 때의 이야기다. 평소 전공 분야뿐만 아니라 영화평론에도 관여하고 있던 터라 그날도 영화 리뷰 하나를 쓰기 위해 도서관 인문학 열람실을 찾았다. 참고로 그 대학 도서관의 경우 주중에는 24시간 개방이었는데 신기하게도 늦은 밤이나 새벽 시간대에도 책을 읽고 있는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한국 대학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주중 24시간 개방이라는 학교 도서관 정책에 한번 놀라고, 그 늦은 시각에도 학교 도서관에서 책에 집중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또 한번 놀랐던 순간이다. 그렇게 인문학 서적이 진열된 장서실 여기저기를 대중없이 훑어보다가 우연히 정치학 코너에서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놈 촘스키. 촘스키는 필자가 속한 언어학 분야에서 변형생성문법 이론을 창시해 미국이 좁다 하고 전 세계 언어학계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세계적인 언어학자다. 그런 언어학자의 이름을 대학 도서관의 정치학 코너에서 발견하게 되리라고는 개인적으로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그 순간에는 잠시 동명이인일 것이라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당연히 그 책의 저자 소개란에는 언어학자 촘스키의 사진이 붙어 있었고 그걸 확인하는 순간 느껴졌던 한 인간에 대한 경이로운 감정은 지금도 생생하다. 사실 촘스키와 관련해 놀랐던 적은 그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그가 교수로 소속된 학교가 흔히 MIT로 불리는 매사추세츠공대라는 것을 알았을 때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의 과학기술 연구 중심의 대학들은 언어학과 같은 순수 인문학을 대학 글쓰기나 외국인 유학생 대상의 한국어 등의 교양 과목 운영을 위한 조건 정도로만 여길 뿐 그것을 핵심 연구 분야로 두고 명성을 떨치는 곳은 없기 때문이다. 물론 MIT가 테크닉 중심의 기술인 양산이 아닌 인간을 생각하는 철학적 공학인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됐다는 것은 익히 알고는 있었다. 그렇다고 언어학이라는 순수 인문학이 공대를 기반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필자로서는 감히 쉽게 상상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그만큼 놀라움이 컸던 것이다. 언젠가부터 한국에서는 ‘문송하다’는 자조 섞인 신조어가 대학생들과 채용가를 중심으로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 정도로 인문학의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 상황을 생각해 보면 학문의 경계를 넘어 학제적 연구가 자유롭게 이뤄지는 미국 대학의 개방성에 눈길이 간다. 이뿐만 아니라 연구자든 누구든 스스로를 단 하나의 정체성으로만 정의할 필요가 없는 미국식 인재상 또한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한국은 불과 10년 전만 해도 한 사람이 여러 전문 분야에 걸쳐 이른바 멀티태스킹을 할 경우 어느 영역에서도 전문성을 갖지 못하는 한량처럼 정의하려 들곤 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한국의 지배적 정서상 MIT나 촘스키 같은 멀티플레이란 한국에서 태생적으로 기대하기 힘든 구조인 것이 명확하다. 하지만 반가운 것은 그러한 한국의 경직된 사회 분위기가 지금의 MZ세대를 중심으로 크게 변하고 있는 점이다. 비록 구직 후 잦은 이직이 문제처럼 비치기도 하지만 그것은 한 개인이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이리라. 지금 여기에서 프로답게 산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리는 반드시 프로여야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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