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보스토크는 관광도시가 아니다. 자동차가 나올 때까지 5일간 자유롭고 편안한 마음으로 목적 없이 시내를 소요(逍遙)하기로 했다. 소요의 어원은 기원전 4세기 활약한 중국의 장자와 아테네의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유래한다. 장자는 목적 없이 산책하며 즐기는 ‘소요유(逍遙遊)’를 수양의 한 수단으로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소요학파’라고 부른다. 정원에서 자유롭게 산책하며 제자를 가르쳤기 때문이다. ■ 군사도시 블라디보스토크 러시아가 서쪽에서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하고 있지만 이곳은 전쟁의 긴장감이 전혀 없다. 시내 곳곳에 군인 동상이 많다. 박물관도 군사역사박물관, 육군박물관, 잠수함박물관, 태평양함대박물관 등 군 관련 박물관이다. 군인 존중의 상무정신, 나라에 대한 애국심과 충성심 고취는 전체주의 국가의 일반 현상이다. 우리의 경우 북한의 핵무장, 휴전선 군사도발 등 안보 현실은 군인 존중, 나라에 대한 애국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근현대 한반도 격동기 역사는 러시아와 직간접으로 관련이 많다. 고종의 아관파천, 제2차 세계대전 후 분단, 북한의 6·25전쟁 사주 등 러시아의 제국주의 팽창주의는 우리 근대사의 비극과 관련이 깊다. 망국의 슬픔이 가장 큰 서러움이라고 선조들은 말한다. ■ 발해의 유적을 찾아서 ‘아르셰니예프 향토박물관’으로 향한다. 입장료는 500루불(약 7천500원)이다. 시베리아와 만주지역에서 수집한 샤머니즘 관련 자료가 매우 풍부하다.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샤먼의 숫자가 가장 많은 나라라고 한다. 점을 보는 역술인을 포함하면 3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정보기술(IT) 강대국이라는 현실과 역설적이다. 반면 샤먼의 본거지인 시베리아나 몽골지역은 현재 무당이 거의 없다고 한다. 이곳은 발해 유적을 가장 많이 보관하고 있는 박물관이다.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은 발해 유적이 전무하다. 박물관 1층에 발해관이 있는데 한국어로 된 설명서가 있다. 다음은 박물관에 비치된 한글 설명서 첫 장이다. “발해는 중국으로부터 파괴된 고구려 터를 기반으로 7세기(698년)에 건국됐으며, 훗날 동해안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 중 하나가 됐다. 발해는 현재의 만주, 연해주, 북한지역의 영토를 지배했으며 말갈인들을 비롯해 자국 멸망 후 새로운 나라를 구하던 고구려인들이 거주했다.... 수도는 상경(현재 중국 헤이룽장성 동경성 인근)이고 동쪽 수도는 동경(현재 두만강 건너 훈춘)이다. 채굴, 금속가공, 가죽 가공 등 기술이 상당히 발달했다”고 설명한다. 전시품은 8세기 궁궐과 사찰의 지붕 장식물, 무덤에서 발굴한 불교 조각상, 청동거울 등이다. 발해사는 고려시대 삼국사기를 집필한 김부식이 우리 역사에서 제외함에 따라 오랫동안 잊혀져 왔다. 조선 후반기 실학자 유득공이 ‘발해고’에서 발해 역사를 재발견했다. 동해안을 따라 원산 이남의 땅은 통일신라, 원산 북쪽의 땅은 발해 땅이다. 유득공은 거란족에 의해 발해가 멸망(926년)함으로써 만주지역 고구려의 옛 영토가 영원히 우리 역사에서 사라졌다며 아쉬워했다. 정확히 지금으로부터 1100년 전의 일이다. 고려사에 의하면 발해 멸망 후 왕족과 주민 수만명이 귀순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구려의 후계국인 고려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태조 왕건은 발해 왕자에게 왕씨 성을 하사하고 잘 보살폈다고 전한다. 기억 속에서 사라진 우리 고대 역사의 숨어 있는 망국의 유물이 현재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박물관에서 만나볼 수 있음에 역사의 순환을 생각해 본다. ■ 러시아인의 동양인, 중국인 인종차별 블라디보스토크는 중국인 관광객이 매우 많다. 인접한 헤이룽장성에서 버스를 타고 놀러 온 관광객이다. 시내 음식점 등의 간판은 중국어가 병기돼 있다. 시내 중심가 어디를 가나 중국인 단체 관광객의 목소리가 요란하다. 러시아인의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 비하를 경험했다. 미국 달러를 루불화로 교환하기 위해 은행에 갔다. 은행원이 “미화 100달러 지폐가 약간 구겨졌다”, “흠이 있다”며 환전을 거부했다. 러시아정교회 예배를 구경하기 위해 건물에 들어가려 하니 경비원이 한 시간 후에 오라며 못 들어가게 막는다. “우리는 한국 관광객이다. 예배에 참석하고 싶다”고 하니 친절하게 들어가라고 한다. 알고 보니 중국인으로 오해해 은행과 교회에서 인종차별을 당했다. ■ 영화배우 율 브리너 생가 방문 ‘왕과 나’, ‘십계’ 영화로 유명한 미국 배우 율 브리너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시내를 배회하다가 율 브리너 생가에 들렀다. 주택은 수리 중이고 마당에 동상이 서있다. 1950~60년대 활약한 배우로 대머리에 카리스마 넘치는 눈매로 인기를 끌었던 배우다. 요즘도 크리스마스 때 ‘십계’ 영화를 TV에서 가끔 상영한다. MZ세대는 율 브리너를 모를 것이다. 딱히 갈 곳을 정하지 않고 시내 여러 곳을 자유롭게 소요(逍遙)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대통력은 명나라의 역법(曆法)으로 고려 말인 공민왕 19년(1370년) 수입돼 조선 효종 4년(1653년) 시헌력을 채용할 때까지 근 300년간 우리나라에서 사용된 역법이다. 이 경진년 대통력은 모두 15장으로 구성돼 있다. 그중 첫 장은 정월에서 12월까지 윤4월을 포함한 13개월의 24절기에 관한 내용과 연신방위지도이고 제2∼14장은 책력의 본체인 1월에서 12월까지의 월력이다. 달력에는 날짜별로 일상생활에서 그날그날 하기에 좋은 일과 하면 좋지 않은 일을 기록하고 있다. 마지막 제15장은 부록격으로 간지별로 피해야 할 일들을 열거한 부분과 이 책력의 편찬, 인쇄에 관여한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목록이다. 경진년 대통력은 관상감에서 활자로 찍은 임진왜란 이전의 역서로는 유일한 것이다. 또 관상감 인력자(印曆字)로 찍어낸 책 중 가장 앞선 것으로 조선시대 활자 및 서지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다. 국가유산청 제공
경기도에 물류단지가 우후죽순 들어서고 있다. 전국의 절반가량이 경기도에 입지해 있다. 현재 운영 중인 곳, 건설 중인 곳, 실수요 검증이 끝나 착공 예정인 곳을 합하면 전국의 물류단지는 60곳에 달한다. 이 중 33곳(55%)이 경기도에 몰려있다. 운영 중인 물류단지 28곳 중 13곳, 건설 중인 13곳 중 3곳, 착공 예정인 19곳 중 17곳이 경기도에 있다. 경기도내 33곳 중 32곳이 남부지역에 밀집돼 있다. 광주, 여주, 안성, 이천, 용인, 화성에 집중돼 있다. 교통망 등 입지 여건이 좋은 데다 서울의 물류단지 수요까지 감당하면서 신규 물량이 자꾸 늘고 있다. 이로 인해 과잉공급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경기도에 물류단지가 급증한 것은 정부가 규제 완화 차원에서 물류단지 조성 관련법을 완화했기 때문이다. 2014년 6월 물류단지 총량제를 폐지했다. 대신 업체가 물류단지 입지를 제안할 수 있는 실수요 검증제가 도입됐다. 지역별로 물량을 제한하는 총량제로는 늘어나는 물동량에 대응하기 힘들다는 업계 의견이 반영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입지 여건이 좋은 경기도에 신규 물량이 집중됐다. 물류단지가 집중·과밀화된 지역에선 갖가지 민원이 제기되고 있다. 대형 화물차량이 드나들면서 도로 정체, 교통사고 등 교통 문제를 유발하고 있다. 대형 화재가 종종 일어나 주민 불안도 야기하고 있다. 실제 2022년 평택의 한 물류단지 화재로 3명이 사망했다. 2020년에는 이천의 냉동·냉장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로 38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당한 대형 참사가 있었다. 같은 해 용인의 물류센터 화재로 5명이 사망한 사고도 있다. 때문에 많은 지역에서 물류단지 조성에 반대하는 집단민원이 잇따르고 있다. 주민들은 물류단지가 여러 가지 불편만 주고 지역경제에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물류단지 입점 효과로 홍보되는 지역 고용창출과 세수 확대 등의 효과는 미미하다. 대신 대형 화물차량이 드나들면서 안전을 위협하고 도로 파괴 등 비용만 떠안아야 한다. 자연녹지를 훼손하는 데 따른 환경분쟁, 폐기물 등으로 인한 환경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광주시는 2021년 6월 경기도에 ‘물류단지 과밀화에 따른 건의사항’을 제출, 신규 물류단지 반대 입장을 표하기도 했다. 물류단지가 필요하긴 하지만 무분별하게 들어서는 것은 막아야 한다. 조용한 시골 마을이 공장 난개발로 몸살인데 물류단지 난립으로 또 다른 고통을 겪는 사례들이 있다. 경기도와 지자체는 과밀화로 인한 주민 불편, 파생되는 문제점과 부작용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난 4월 유정복 인천시장이 일본 미에현의 F1 그랑프리 경기장을 찾았다. F1 최고 경영자를 만나 인천 개최 의향서를 전달했다. F1 측의 반응도 좋았다. 곧 인천에 와서 후속 협의를 하겠다 했다. 인천시는 2026년, 늦어도 2027년께 인천 F1 그랑프리 첫 대회를 열 수 있을 것이라 했다. 그러나 반년이 지나도록 인천 F1은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타당성조사는 물론 국비 지원도 가능할지 불투명하다. 올해 F1 그룹 측과 양해각서(MOU)라도 마치려 했으나 물 건너갔다. 사업의 타당성이나 기본 구상 등도 없는 탓이다. 여기에 인천공항공사까지 F1 그랑프리 유치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가. 인천시는 5억원을 들여 F1 유치 사전타당성조사 용역을 하려 했다. 최적의 F1 개최지를 찾고 관람석 등 각종 시설 계획이나 사업비를 검토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용역을 맡길 업체를 찾지 못해 발주조차 못하고 있다. 국제자동차연맹(FIA)의 그레이드1 인증을 받아 F1 서킷 디자인이 가능한 업체부터 많지 않았다. 몇몇 업체와 접촉했지만 용역의 범위나 비용 등의 문제도 넘지 못했다. 지난 8월에는 발주하려던 일정이 계속 미뤄지고 있다. 이 때문에 국비 지원을 이끌어 내기 위한 작업도 스톱이다. F1 대회의 인천 개최를 설득할 만한 기본 구상이나 타당성 조사 결과도 없어서다. F1 대회는 올림픽, 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스포츠 이벤트로 꼽힌다. 그러나 국제경기대회지원법의 지원 대상에서는 빠져 있다. 현재는 올림픽과 패럴림픽, 월드컵, 유니버시아드, 아시안게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등만 가능하다. 이런 가운데 인천공항공사도 지난 6월부터 F1 대회 유치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공항 인근의 오성산 절토 부지에 F1 대회용 상설 서킷을 포함한 모터스포츠 테마의 관광레저클러스트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상설 서킷은 과거 전남 영암 F1 대회가 만들어 운영하다 적자로 4년 만에 중단한 적이 있다. 이에 인천시는 상설이 아닌 시가지 서킷 형태로 F1 대회를 유치한다는 계획이다. 이대로라면 송도국제도시에는 시가지 서킷이, 영종도에는 상설 서킷이 따로 들어설 판이다. 좁은 인천에서 F1 서킷 경쟁이라도 하려는 건가. F1 유치, 거창한 발표에 일솜씨는 설익었다. 국제행사로 격상시키려던 인천상륙작전 기념사업과 판박이다. 시간에 쫓길 일이 아니다. 꼭 해야만 하는 사업인지를 따지는 것이 먼저다. 이참에 인천공항공사와 힘을 모으는 것도 돌파구일 수 있다.
문화대혁명. 20세기 중반 지구촌을 강타했던 정치적 사건이다. 마오쩌둥은 이념 경쟁을 통해 중국을 이처럼 좌경 모험주의로 내몰았다. 1966년부터 중국 전체는 혼돈으로 엎치락뒤치락했다. 무엇보다 국민들에게 아물지 않은 깊은 상처를 남겼다. 강산이 한차례 바뀌는 동안 지속됐다. 중국 당국은 이후 이 사건에 대한 언급을 철저히 금지해오고 있다. 중국인들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의 아버지인 마오쩌둥에 대해 문화대혁명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과오(過誤)를 범했다는 이유로 꺼릴 정도다. 최근 중국의 저명한 법학자가 중국 공산당의 문화대혁명 연구 금지는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허웨이팡(賀衛方) 전 베이징대 법대 교수다. 그는 외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공산당이 문화대혁명을 완전히 부정하면 다음 세대는 무엇인지도 알 수 없다”며 이처럼 언급했다. 그는 오랜 기간 문화대혁명을 모티브로 중국 정치와 사법 개혁을 주장해왔다. 그의 지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덩샤오핑 세대 이후 정치개혁 부재로 부패가 만연해졌고 이익집단이 특권을 유지하려는 동기가 강해져 더 심각한 딜레마에 빠졌다”고 짚었다. 이어 “문화대혁명의 쓰디쓴 교훈이 중국에 민주주의와 법치, 인권을 중시하는 역사의 흐름과 거꾸로 갈 때마다 국민들이 고통받고 국가가 혼란에 빠지게 된다는 걸 일깨워준다”고 강조했다. 중국 현대사를 연구한 서양 학자들의 지적도 날카롭다. “아직 희망은 남아 있겠지만 퇴행적인 현상은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황허(黃河)와 창장(長江·양쯔강)이 거꾸로 흐르지 않을 걸로 믿지 말라. 때때로 그렇다. 그러나 일반적으론 여전히 (태평양으로 가는) 동쪽으로 흐른다”. 역사는 특별한 성찰과 반성이 없으면 반복된다. 이웃 나라에서 벌어졌던 사건을 강 건너 불 구경하듯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까닭이다. 언제 폭풍처럼 우리에게 닥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여행을 오면 두 번 놀라는 일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수많은 커피숍이 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그 커피숍들이 한결같이 예쁘기 때문이란다. 맞는 말이다. 어느덧 대한민국은 미국, 독일, 브라질…. 세계 15위 커피 소비국이 됐다. 현대인들의 삶 깊은 곳에는 커피의 향이 스며 있다. 아침이면 잘 내린 커피 한잔, 점심이면 식후 커피 한잔, 친구를 만나도 커피 한잔을 빼놓을 수 없다. 점심시간에 길거리에 나가 보면 젊은이뿐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이 손에 커피 하나를 손에 들고 길을 걷는 것을 볼 수 있다. 직장 생활의 피곤과 힘든 것을 커피를 마시면서 힘을 얻어 오후 업무를 준비하는 것이다. 올여름에 필자도 작정하고 거금을 들여 커피 공부를 했다. 수원에서 세종을 열한 번 오가며 커피의 대가를 찾아가 커피의 생성 및 맛과 향을 감별하는 것에서부터 커피를 추출하는 것까지의 과정을 열심히 공부했다. 필자가 커피를 공부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맛있는 커피가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기 때문이다. ‘왜 사람들은 어떤 커피는 맛있는 커피라고 말하고 어떤 커피는 맛없는 커피라고 말하는가. 그 기준은 무엇이고 누가 기준을 만드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컸다. 필자에게 커피를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은 첫 번째 시간에 “커피란 무엇인가”라고 질문을 했다. 필자는 “커피는 행복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아주 훌륭한 대답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맛에는 사회성이 있다’라는 말로 많은 궁금증에 답을 주셨다. 어머니의 요리 솜씨가 세계 최고는 아니지만 어머니가 끓여 주는 된장국을 그리워하고 그 어머니의 된장국을 맛있게 먹는 것은 어려서부터 길들여진 맛의 사회성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르신들은 멋진 커피숍의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잔보다 종이컵에 따뜻한 물을 담아 타 마시는 맥심 커피가 더 맛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커피는 개인 취향이 강한 기호식품이란다. 커피를 배우고 난 다음 교인 13명에게 커피를 가르쳐드리고 바리스타 자격증을 갖게 해 드렸다. 그리고 매주 토요일 오전에 만나 커피 공부를 계속하던 중 가을에 교회 앞마당에 거리 카페를 열고 지나가는 분들에게 맛있는 커피를 나누고 있다. 커피 한잔을 놓고 마주 앉아 수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자식 이야기, 동네 이야기, 나라와 정치 이야기, 북한의 오물풍선 성토와 노후의 삶 이야기…. 커피 향이 은은하게 퍼지면서 대화는 누구 하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거나 거스르지 않아 좋다. 커피가 주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맛있는 커피를 마시면서 누군가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싶은 마음은 아무도 없다. 목사인 필자에게 뭔가를 듣고 싶은 기대가 있지만 필자는 열심히 듣다가 필요하면 또 커피를 준비해 지나가는 한 분에게 맛있는 커피 드시고 가라고 권할 뿐 말을 줄인다. 필자가 가지고 있는 커피를 대하는 자세는 첫째는 행복하기 위해 커피를 마시는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커피를 준비한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먹고살 수 있는 양식뿐 아니라 과일을 주신 것은 더 행복하라고 하시는 뜻이라고 믿는다. 밥만 먹으면 살 수 있고 일할 수 있는데 식후에 후식으로 과일을 먹는 것은 배고파 먹는 것이 아니다. 배부르기 위해 먹는 것은 양식이지만 행복하기 위해 먹는 것이 과일이다. 필자는 유난히 과일을 좋아한다. 다른 사람은 너무 시다며 못 먹겠다는 자두도 사과도 필자는 참 맛있게 먹는다. 그래서 아내에게 종종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서 맛없는 과일이 어딨어.’ 커피는 과일 열매다. 그 과일의 씨앗을 농사해서 잘 볶아 정성스럽게 준비해 행복하기 위해 마시는 것이 커피다. 그리고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청결’이다. 깨끗하게 위생적으로 관리하고 만들어야 한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커피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커피 기계를 다루는 과정에서 맡은 사람들이 청결에 집중하지 않으면 사람을 속이는 일이 된다. 커피 한잔 때문에 몸이 상하거나 병이 생기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겉으로는 실컷 웃으면서 행복하게 커피를 마시는데 그 커피를 담은 손이 깨끗하지 않다면 불행한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와 내 곁에 있는 사람들, 이웃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고양이 하면 뭐가 떠오르는가. 작지만 다부진 체격, 게으름, 날렵함, 반짝이다가도 게슴츠레한 눈,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 일본의 마네키네코, 행운과 불행. 이처럼 다양하고 대조적인 개념이 동시에 떠오르는 대상이 있나 싶다. 개뿐만 아니라 고양이는 자연스럽게 사람과 함께 지낸 반려동물이다. 그러나 그 역사는 사뭇 개와 다르다. 반려견이 인간 생활사에 풍덩 담긴 ‘묵은지’라면 고양이는 잘 익은 ‘김치와 겉절이’다. 열 반려견 안 부러운 애교쟁이 ‘실내냥이’에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는 ‘길냥이’까지 사는 모양이 다양하다. 고양이는 1만년 전 농경이 태동한 마을에 쥐를 잡기 위해 먼저 왔고 스스로 길들여졌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그들은 적절한 거리 두기로 야생성을 간직하고 있다. 나를 잃지 않고 남에게 물든 이 현명함이 고양이가 지닌 정체성이 아닐까 한다. 나 자신을 지키는 힘은 세상을 사는 원동력이다. 또 남을 돕는 유용한 그릇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그릇은 거울과도 같아 나와 남을 동시에 비춘다. 고양이의 조상, ‘아프리카 들고양이(Felis lybica)’는 인류와 함께하면서 ‘집고양이(Felis catus)’가 됐다. 그들은 이집트에서 쥐로부터 식량 창고를 지켜낸 공을 높이 인정받아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고양이는 파라오를 보호하고 서민의 식량을 지키는 신으로 칭송됐고 행운, 정의, 다산의 상징이 돼 수많은 미라, 조각상, 벽화로 재탄생했다. 이집트인들은 고양이가 가져온 이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감사해했다. 세월이 흘러 유럽까지 퍼진 고양이들은 농업 사회에 큰 도움을 주며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이어갔다. 그러나 13세기부터 균열이 생겼다. 중세 유럽에서는 과학을 반기독교적 사상으로 믿고 지식을 탐구하는 사람들을 마녀로 몰았다. 무지가 낳은 미신은 고양이를 악마로 규정했고 오랜 기간 마녀사냥과 동시에 고양이 숙청이 자행됐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쥐벼룩에 기생하는 세균으로부터 발생한 흑사병은 14세기부터 발생해 10년 동안 최소 3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18세기까지 창궐했다. 원인은 여전히 논란 중이나 당대에 만연했던 사회 풍조에 대해 한 번쯤 인과관계를 생각해 볼 일이다. 중세 유럽인들은 고양이의 유입을 비뚤어진 사회적 시각으로 해석했고 되돌아온 부메랑은 처참했다. 고양이는 먼저 인간에게 다가왔고 공생(共生)했다. 서로에게 식량을 줬고 터전을 나누며 존엄을 인정해 왔다. 그러나 세상에 대한 인간의 관점이 왜곡되고 정신이 황폐해질 때, 고양이는 악행의 피해자가 돼 인간이 지닌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소설 ‘검은 고양이’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고양이를 아꼈다. 그러나 알코올 중독이 심해질수록 파괴된 자아상은 학대로 대변됐다. 이런 모습은 주변에서도 볼 수 있다. 최근 기사를 검색하면 동물 학대의 동네북은 늘 고양이다. 가끔 생각한다. “고양이야 도망가”라고. 왜 이렇게 당하면서 사람 곁에 있는지 묻고 싶기도 하다. 그럴 때 이 작은 생명체는 느긋한 눈빛으로 이런 대답을 하는 것만 같다. 고마우니까 곁에 남는 거라고. 그래서 사람이 사람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때까지 거울이 돼 비춰 주고 싶다고.
우리나라는 1970년대 후반부터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공급되기 시작하면서 전체 주택에서 공동주택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높아졌으며 2023년 말 기준으로 전체 주택 중 공동주택이 79.2%를 차지하고 있다. 이 가운데 30년 이상 노후한 공동주택은 전체 공동주택의 18.0%로 약 279만가구에 달하고 있다. 공공주택관리법상 의무관리대상 공동주택은 자치관리나 위탁관리를 하고 있으나 의무관리대상에서 제외되는 소규모 공동주택의 경우에는 이 같은 규정이 없어 관리주체가 없거나 장기수선계획 및 장기수선충담금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아 적절한 유지관리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30년 이상 된 노후 공동주택의 경우 비의무관리대상 비중이 38.9%로 약 108만가구에 달하고 있다. 또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2000년 이전에 건축된 공동주택 중 51만5천가구가 빈집인 것으로 조사됐다. 단독주택의 경우 공·폐가로 방치되면 해당 주택을 철거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공동주택에서는 공가가 발생하면 건물 전체의 유지관리 문제가 발생해 공가가 증가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우려가 높다. 현재 우리나라는 저출생, 고령화에 따른 사회 문제가 심각하며 총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대도시권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신규 주택 수요가 낮은 지역에서는 전면 철거 방식의 정비사업을 통해 노후 공동주택을 정비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실정이다. 지자체에서는 공동주택관리법 제85조 규정 등에 근거해 관련 조례를 제정하고 건물 외벽, 옥상 유지 보수 등 공동주택 관리에 필요한 비용의 일부를 지원하고 있지만 지자체의 재정 여건 등을 고려할 때 증가하는 노후 공동주택에 대응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앞으로 노후 공동주택은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가적 차원의 체계적인 유지관리 및 정비 방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자체에서는 노후 공동주택에 대한 전반적인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종합적인 공동주택 유지관리계획 수립이 필요하며 정부 차원에서는 노후 공동주택에 대해 에너지 성능 향상과 연계한 개·보수, 위험 건축물에 대한 공공 정비 등 다양한 지원사업 마련 및 확대가 필요하다. 현재 신규 주택 공급에 집중된 정책적 관심을 노후 공동주택에 대한 유지관리로 조금씩 전환해야 한다.
지금 수원에는 신분당선 광교~호매실 구간 연장 사업이 2029년 개통을 목표로 진행 중이다. 이 사업은 수원 서부권 주민들의 숙원사업으로 개통될 경우 획기적 교통 편의는 물론이고 서부지역 발전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 노선은 총 길이 9.9㎞로 5개 역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 가운데 우여곡절 끝에 구운역이 신설되는데 이는 구운동 주변 주민을 위한 수원시의 통 큰 결정에 따른 것이다. 이 역은 화서역과 호매실역 중간쯤에 신설될 것으로 보이는데 아마 구운동을 지나기에 가칭 구운역으로 정한 것 같다. 여기서 조심스럽게 새로 들어설 역의 이름을 ‘국립농업박물관역’으로 하면 어떨까 하는 제안을 해본다. 구운역 예정지는 국립농업박물관에서 도보로 10분 남짓 걸리는 가까운 거리에 있고 머지않아 수원의 대표 농업역사문화체험 시설이 되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박물관과 더 가까운 곳으로 노선을 정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지하철 역 이름 선정은 철도 및 지명에 관한 전문성과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로 구성된 ‘역명심의위원회’에서 정하도록 돼 있다. 국토교통부가 고시한 ‘철도노선 및 역의 명칭 관리지침’을 보면 역명의 제정 기준으로 행정구역 명칭, 역에서 인접한 대표적 공공기관 또는 공공시설의 명칭, 국민들이 인지하기 쉬운 지역의 대표 명소, 역사가 대학 부지 내에 위치하거나 대학과 인접해 지역의 대표 명칭으로 인지할 수 있고 해당 지방자치단체 주민의 다수가 동의하는 경우 대학명을 역명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이 기준에 따라 대학, 공공기관 등의 역 이름은 다수 있으나 특정 박물관 이름이 들어간 역은 없다. 다만 일부 지역에서는 그냥 ‘박물관역’ 정도로 쓰고 있다. 필자가 파악한 바로는 세계 3대 박물관으로 일컬어지는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영국의 대영박물관, 러시아의 에르미타주박물관도 지하철 이름에는 없고 말레이시아에 국립박물관역 정도가 있을 뿐이다. 국내의 경우 소위 3대 국립박물관이라는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도 역 이름엔 없다. 역 이름 선정이 지난하고 험난하겠지만 만약 구운역(가칭)을 국립농업박물관역으로 결정한다면 이는 상징성이 매우 큰 역사적 사건이 될 것이다. 우선 대한민국 최초로 박물관 이름을 딴 기차역이 탄생하는 것이고 수원시는 박물관 이름이 들어간 역을 가진 유일한 도시가 되는 것이다. 역 이름 결정에는 다수의 이해관계자가 있어 복잡다단할 수 있겠으나 국립농업박물관역은 누구에게나 이익이 될 수 있는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구운동 주민은 물론이고 주변 지역주민들은 고품격 문화시설이 이웃에 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고 지역발전을 통한 경제적 혜택도 누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립농업박물관은 경기도에 소재하고 있는 국내 최초, 유일의 농업전문 국립박물관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국립박물관이 전국 각 시·도에 1~2개씩 다 있는데 유독 경기도에만 하나도 없다. 이런 차원에서 국립농업박물관이 경기 수원에 들어선 것은 의미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박물관 주변에는 정조 때 농업부국을 염원하며 축조된 수리시설인 축만제, 농업연구기관인 권업모범장, 세계적 육종학자인 우장춘 박사 묘소, 1970년대 식량 자급 달성을 기념해 세운 녹색혁명 성취탑 등 소중한 농업유산이 산재해 있다. 국립농업박물관은 2022년 12월 개관한 2년이 채 안 된 신생 박물관으로 연간 50만명 이상이 찾는 성장잠재력이 큰 문화시설이다. 장기적으로는 주변의 농업유산을 아우러는 문화 거점 역할을 할 것이며 100만 박물관을 지향하기 때문에 지하철이 개통될 즈음에는 수원시 전체 인구 이상이 찾는 국제적 박물관이 될 것이다. ‘다음 역은 국립농업박물관역, 국립농업박물관역입니다’라는 지하철 안내방송을 들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며 구운동과 주변 주민, 나아가 수원시민들의 자존감을 높일 역 이름 선정에 전향적인 자세를 기대한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