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텅텅 비는 송도 상가... 대전환의 시대 지나고 있는가

과거 상가 재테크는 고수급 부동산 투자라 했다. 꼬박 꼬박 임대료가 들어오고 자산 가치도 올라간다. 그래서 퇴직자들의 노후 준비 수요도 많았다. 그러나 이제 그런 시절은 지난 모양이다. 전국 곳곳에서 상가가 텅텅 비어 간다는 비명이 터져 나온다. 그간 사정이 나았다는 수도권으로까지 번져 온다는 것이다. 인천 송도국제도시가 상가 무덤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한다. ‘인천의 강남’이라는 송도가 그러니 다른 곳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곳 상가단지들에서는 문을 연 가게보다 공실이 더 많다. 상가 공실률이 1년 사이에 15배나 뛰었다. 과잉 공급이 1차적 요인으로 꼽힌다고 한다. 송도 상가 현장을 들여다보자. 송도에서도 아파트 값이 가장 비싸 ‘대장 단지’라 불리는 한 주상복합아파트. 단지 상가 1층의 70개 가게 중 절반 이상이 비어 있다. 입주 2년이 지나도록 첫 입주조차 없는 상가가 수두룩하다. 인천지하철 1호선 역세권에 GTX-B 노선 역까지 예정된 곳이다. ‘인천의 타워팰리스’라 불리는 인근 단지 상가 형편도 마찬가지다. 지은 지 10년도 더 지난 상가들엔 슬럼화의 그림자까지 비친다. 한 동의 1층 내부 상가는 인기척이 끊긴 채 적막하다. 오랜 시간 비어 있던 흔적이 역력하다. 내부 벽과 바닥은 갈라지고 녹슬어 있다. 내놓은 상가도 분양 당시의 절반 가격에도 팔리지 않고 있다. 처음 분양 초기에는 빈 상가도 없었다고 한다. 유동 인구도 많아 북적였지만 지금은 적막하다. 새 상가들이 계속 들어서고 코로나19까지 덮친 때문이라 한다. 송도에 상가가 너무 많이 쏟아졌다는 분석도 나왔다. 수도권 다른 신도시와 비교해, 2~3배 더 많은 물량이다. 송도 주민 1인당 상가 연면적은 12.6㎡(3.8평)다. 그런데 김포 한강신도시는 5.77㎡(1.7평), 하남 미사강변신도시도 7.72㎡(2.3평)다. 차이가 크다. 송도는 주상복합 건물을 따라 상가도 함께 무더기로 쏟아진 탓이라고 한다. 상가의 거래나 임대차는 결국 시장의 기능에 맡길 일이다. 상가가 빈다고, 값이 떨어진다고 정부나 인천시가 개입할 일은 아니다. 다만 적막한 상가를 못 이겨 줄폐업하는 소상공인이 걱정이다. 이들에 대한 각종 지원책은 더 과감해야 할 것이다. 한때 영화를 누리던 송도의 텅 빈 상가를 보며 시대적 대변환에 주목한다. 사람과 사람 간의 오프라인 영토는 갈수록 줄어든다. 인감증명서까지 온라인으로 떼는 시대다. 시대의 파도에 밀려 오프라인 관계가 퇴장당하고 있다. 그 자리들을 비대면의 온라인 거래가 속속 채우고 있다. 우리는 지금 대전환의 시대를 지나고 있는가.

[지지대] 편의점 단골 된 5060

1989년 5월,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 세븐일레븐 1호점이 문을 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편의점이다. 여기서 편의점의 상징인 삼각김밥을 처음 출시했다. 세븐일레븐 올림픽점으로 불리는 이 편의점은 지금도 있다. 편의점 붐이 일어난 건, 1992년 MBC 미니시리즈 ‘질투’ 덕분이다. 당시 최고 인기를 누리던 최수종·최진실이 극 중에서 컵라면과 김밥을 먹으며 편의점에서 데이트를 했다. 깔끔하고 세련돼 보이는 가게에서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 즉석에서 먹는 것 자체가 센세이션이었다. 1990년대 편의점이 들어설 때는 주로 젊은층이 이용했다. 젊은이들의 맞춤 공간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당시 ‘편의점은 젊은층이 많이 가고, 구멍가게는 노년층이 많이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편의점은 세월 따라 크게 변화했다. 초창기만 해도 편의점은 도시의 산물이라 여겼지만 이젠 농어촌에도 편의점이 엄청 많다. 시골 구멍가게들이 편의점으로 전환돼 ○○상회 등은 찾아보기 어렵다. 국내 편의점 점포 수는 지난해 말 기준 5만5천여개에 이른다. 도시의 골목 곳곳에 포진한 편의점들은 과포화로 과열 경쟁이 우려될 정도다. 편의점은 끊임없는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이제 편의점은 물건만 구매하는 곳이 아니다. 이곳에서 놀고 즐기고, 택배를 보내고, 은행업무까지 가능한 생활플랫폼으로 진화했다. 편의점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대부분 ‘가성비’를 생각한다. 삼각김밥, 컵라면, 도시락, 초저가 커피, 네 캔에 1만원 맥주, 1+1이나 2+1 행사, 제휴통신사 할인까지 가격경쟁이 치열하다. 이벤트도 많다. 고객 연령대가 다양해졌다. 10대들이 하굣길에 들러 컵라면 먹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요즘 가장 많이 늘어난 고객은 50~60대다. 고령화에 물가까지 급격히 오르면서 편의점 도시락이나 빵, 우유 등으로 끼니를 해결하려는 중장년층이 크게 늘어서다. 점심시간 즈음엔 5060 고객이 끼니도 해결하고 담소도 나누다 가는 동네 사랑방이 된다. 지금의 중장년층은 젊은 시절부터 30년 넘은 편의점 변천사를 지켜봐 온 고객들이다. 50·60대가 편의점 단골이 돼 도시락을 먹고 빵으로 식사를 때우는 풍경이 조금 쓸쓸해 보인다.

[문화산책] 안일함이 낳은 ‘역사의 비극’

201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남한산성은 주말마다 줄지어 찾는 행락객들로 몸살을 앓는다. 서울에서 가까워 울창한 자연을 마주하며 백숙, 손두부, 산채정식 등 저마다 솜씨를 자랑하는 식당이 모여 있다. 하지만 훈민정음, 거북선, 광개토태왕비, 동궁과 월지 등 역사의 화려한 순간을 간직한 유산들과 대조적으로 이 산성에는 굴욕이라는 낙인이 깊숙이 찍혀 있다. 다른 나라의 군주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한반도까지 침입한 사례는 두 차례 있었다. 그러나 조선을 빠른 시일에 정벌해 후방을 든든히 하고 시들해져 가는 중원을 정복하고 싶었던 청나라의 홍타이지(청 태종)는 우리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하지만 이런 사태를 예방하거나 막을 순 없었던 것일까. 일본의 침략을 겪은 선조에 이어 광해군은 사르후 전투로 애써 키운 군대를 잃긴 했지만 명과 후금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며 균형을 유지했다. 하지만 인조 정권으로 바뀌자마자 그 균형은 금이 가기 시작한다. 재조지은(再造之恩), 임란 때 조선을 구원한 명나라를 어버이처럼 여기고 북방의 후금(청나라)은 오랑캐 취급을 하며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호전적인 홍타이지는 즉위하자마자 그의 사촌 아민과 3만 군대를 파견해 황해도까지 파죽지세로 성들을 격파해 나간다. 인조는 강화로 슬그머니 피란해 형제의 예로 일단락 지었지만 위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젊고 기세등등한 대간들은 대의라는 허구를 쫓아 강경한 자세를 잃지 않기를 강권했고 공신들과 임금은 서로 책임을 전가하며 외교, 방어 어느 것 하나 차일피일 미루기를 반복했다. 만일 청나라가 침략해 온다 하더라도 강화도에서 피란을 가 있으면 임란처럼 의용군과 명나라가 도와줄 것이라는 기대만 갖고 있었다. 이미 명에서 항복한 세력을 통해 수군과 신무기인 홍이포를 입수한 홍타이지는 황제로 등극해 나라 이름을 청으로 바꾸고 친히 조선을 정복하기로 결심한다. 1636년 12월 꽁꽁 얼어붙은 압록강을 청의 10만 대군이 건너며 병자호란이 시작됐다.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전진한 그들은 인조가 대피해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홍제원(서울 은평)을 지난 상황이었다. 강화도를 포기하고 남한산성에 웅거해 45일간 추위와 배고픔 속에서 척화와 주화의 논쟁만 가득했다. 그들에게 실질적으로 조선을 구할 방안은 중요하지 않았다. 왕조의 존망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휘청거리는 상황 속에서 왕권을 위협할 장군들에게 지휘권을 허락할 수 없었다. 멀리 다가오는 태풍의 존재는 애써 외면한 채 눈앞의 잔불만 끄기 바빴던 것이다. 사람은 버틸 수 있지만 말은 버틸 수 없다는 명분으로 추위를 피하기 위한 가마니를 거둬 말 먹이로 쓰고 늙은 대신의 어리석은 주장으로 삼백 군사가 북문에서 전멸을 당하는 동안 왕과 신료들은 그저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홍이포가 행궁의 지붕을 박살 내고 강화가 청에 함락되는 순간 항전을 주장하던 신료들은 현실로 돌아왔다. 세 번 무릎 끓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궤구고두례를 행하며 청의 속국이 된 것이다. 그들은 지나간 역사의 사례만 생각하고 변해 가는 세상의 흐름을 깨우치지 못한 채 큰 치욕을 맞이하게 됐던 것이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교훈을 배운다. 하나 현재에 대한 명쾌한 답을 내려주지 않는다. 만약 자의적인 해석에 빠져 착각으로 미래를 유추한다면 과거에 평생 얽매일지도 모른다. 이 모두 ‘어떻게든 되겠지’가 빚어낸 안일함의 참혹한 결과다.

[천자춘추] 브라보 마이 라이프

건조한 가을바람이 스치니 마음에도 여유가 생겨 문득 삶을 돌아보게 된다.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은 하루 견디니 하루치만큼 살아진 날들의 집적이라는 느낌이다. 지난 시간을 다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많으니 잘 살지 못한 건 맞다. 현재도 잘 사는 것 같지 않고 앞으로 잘 살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면 내 인생은 실패인가. 소위 말하는 이번 생은 망한 것인가. 인생에 정답이 없다고들 한다. 어떤 사람은 자기에게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어떤 사람은 잘 놀다 가는 것이 정답이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자신에게 충실한 삶이라고 해석한 사람의 삶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를 수 있고 잘 놀다 가려는 인생이 쾌락에 빠져 허우적거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철학자는 인생을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라고 하는지 모른다. 삶은 의사 결정, 다시 말해 끊임없이 갈라지는 여러 개의 길에서 하나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리라. 사는 이유를 알면 그 하나를 결정하는 데 좀 용이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왜 사는가. 이 질문은 중요하다. 살아진 날들의 의미 없는 집적이라고 했지만 내 삶이 진화한 것은 분명하다. 인간은 진화의 DNA가 탑재된 진보적 생명체라고 생각한다. 인생을 비유하는 말에 길이라는 키워드는 앞으로 나아간다는 의미도 있다. 하나의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단순한 선택이 아닌 앞길을 가로막는 것과의 싸움인지 모른다. 이겨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거창한 싸움은 아니어도 게임의 대상을 걸고 행동해야 탄력을 받는다. 상대는 자신의 내부일 수도 있고 외부의 힘일 수도 있다. 이득은 불확실하지만 이기면 한 발 전진할 수 있다. 한 발 떼면 관성이 붙어 계속 나아가게 된다. 이겨냈을 때 존재감이 커진다. 삶은 중독이고 이기는 것에 재미를 느낄 것이다. 수동적인 하루가 되지 않으려는 액션은 각자의 몫이다. 순간순간이 선택이다. 삶의 방향으로 일상의 작은 선택들이 있지만 어떤 고비를 넘길 때는 이기는 선택이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진다면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채 외부의 물살에 떠밀려도 운신할 수 없는 비루한 현실이 된다. 모르는 것이 나를 결정한다. 비참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기는 건 사는 것이고 지는 건 죽는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이 맞는다 해도 또 다른 길은 열릴 것이다. 실패해도 괜찮아. 이기기 위해 땀을 흘렸다면 누구의 삶이라도 응원할 일이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Bravo, My Life).

[경기시론] ‘학교 법교육’ 그 백년대계

학교폭력을 입었다고 응답한 학생들이 또 늘었다. 코로나19 첫해인 2020년부터 현재까지 피해응답률은 지속적으로 상승한 데다가 초등학생은 2013년 학교폭력 실태조사를 실시한 이래 가장 높은 피해 응답률을 기록했다고 하니. 잘못돼도 무언가 한참 잘못됐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교육부 발표에 따르면 최근 3년 동안(2021~2023년) 전체 신고건수는 4만4천444건→5만7천981건→6만1천445건이다. 이 중 학교장 자체해결로 종결되지 못하고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로 올라온 건수는 1만5천653건→2만1천565건→2만3천579건으로 동반 상승했다고 하니, 학교폭력이라는 학교 갈등이 커지고 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대입 불이익’을 포함하는 교육부의 고강도 근절대책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리라. 그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것인가. 학교 내 따돌림은 직장 내 괴롭힘이나 갑질로 이어진다. 학창 시절의 폭력이 사회로 이어지기도 하니 학교폭력은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이런 행위들은 징계를 받을 수 있는 행위임을 넘어 범법행위로서 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가르쳐야 한다. 작년의 기억보다 이십여 년 전의 기억이 더 선명한 건 필자만은 아닐 테니 학창 시절의 ‘배움’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회적 문제가 된 학교폭력 역시 결국 ‘배움’, ‘교육’의 문제이다. ‘법 교육’은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법적 이해능력, 합리적 사고능력, 긍정적 참여의식, 질서 의식, 헌법적 가치관 등을 함양함을 목적으로 하는 법과 관련된 모든 교육을 말한다. ‘학교 법교육’을 통해 학생들은 공동체 일원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이해하고 법적인 소양을 길러, 자신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타인을 배려하며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행동하는 시민으로 커 나갈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학교 법교육은 어떠한가.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는 고운 말을 써야 한다는 교육, 쓰레기를 길에 버리면 안 된다는 교육, 고맙다는 인사와 사과하는 방법에 대한 교육 등 기본적인 도덕적 교육을 진행한다. 이때의 배움으로 아이들은 공동체에서 지켜야 할 규범을 배운다. 초등학교 입학한 이후에는 이러한 도덕적 교육을 뛰어넘어 본인들에게 허용되는 행동과 금지되는 행위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배워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법교육은 여전히 어린이집, 유치원의 도덕적 교육에 멈춰있다. 학교폭력이나 교육활동 침해 예방 교육 등 법정교육도 대부분 형식적으로 이루어질 뿐이다. 2008년에 제정돼 한 차례도 개정되지 않은, 그만큼 우리 관심에서 멀어져 있는 ‘법교육지원법’에 따르면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질 높은 학교 법교육을 위해 각종 법교육 활동을 지원할 수 있고, 교원을 대상으로 전문성 함양을 위한 법교육 연수기회를 제공하고 민간 교육기관의 법교육 연수 활동을 지원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 학교 법교육은 교육의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려나 있다.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이뤄지는 법교육을 운영하는 교사들도 체계적인 교육을 받아본 바 없다. 법은 사회에 맞닿아 있다.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사회의 근간은 ‘법’이다. 학교 법교육을 통해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과 교원들을 배려하며 학교 공동체 내에서 조화롭게 생활하는 데 필요한 소양을 배울 수 있다. 다른 이들을 배려해야 하는 이유, 폭력을 행사하면 안 되는 이유 등을 분명하고 무겁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당장은 드러나지 않을지라도 이러한 체계적인 법교육은 학생들의 준법의식을 함양시키고 공동체 의식을 배우게 한다. 이는 학교폭력 가해 학생에게 ‘대입 불이익’을 주는 정책보다 더딜지는 몰라도 폭력을 예방하고 저지하는 데 훨씬 더 효과적이고 건전한 방법이다. 어차피 교육은 백년대계가 아니던가? 결국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야 하는 학생들이 건전한 법의식을 배우는 것은 학교폭력 예방을 위하여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학교 법교육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교육부는 깊이 있게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기고] 주 4.5일제는 시기상조

지난 10월1일 건군 76주년 ‘국군의 날’은 세계 만방에 국가의 위용을 높이고 국민에게 안보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준 매우 좋은 날이었다. 그날은 나라에서 지정한 임시공휴일이었다. 그런데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은 공휴일을 만끽하기 부담스러웠다. 공장을 멈출 수 없는 중소기업으로서는 오히려 시간외근무수당을 지급하며 공장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초과근무수당을 안 받는다거나 국가가 지원한다는 말은 못 들어봤다. 고스란히 기업주가 부담했다. 누군가의 인심 씀이 누군가에게 피해로 돌아오는 것이다. 공공기관이나 단체에서 가장 경계해야 일은 ‘사익 추구와 인심 쓰기’다. 기관·단체를 이용해 개인의 이익을 취하려거든 개인사업을 해야 하고 기관장이나 부서장이라는 직위를 이용해 자기 것도 아니면서 인심 쓰는 일은 비도덕적이고 무책임하고 배임이나 권한 남용의 우려도 있다. 그 피해는 자기가 지는 것이 아니라 조직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최근 ‘정년 연장’과 ‘주4.5일제’라는 담론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것도 아예 ‘임금 삭감 없는 주4.5일제’란다. 경기도가 적극 나서는 모양이다. 누구 맘대로 그리한단 말인가. 이를 시행하는 지방정부나 기관장이 개인 돈으로 부담한다는 말인가. 경기도는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매년 1조원 이상 빚이 늘어나 ‘지역개발기금’에서까지 빌려 쓰면서 2023년에는 빚이 4조5천676억원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부득이한 면도 있겠지만 인심 쓴 결과라고 보인다. 그야말로 빚잔치다. 사정이 그런데도 ‘주4.5일제 인심 쓰기’로 빚을 더 늘려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기업활동은 전쟁이다. 기업활동은 여가나 자선활동이 아니다. 열악한 환경과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만 기업이 존속됨은 물론이고 노동자와 그 가족의 생계도 보장되는 것이다. 주4.5일 근무제라니 말문이 막힌다. 중소기업은 문 닫으란 말인가. 기업주가 가장 힘든 날은 ‘급여일’이다. 가슴을 졸이며 통장 잔고를 봐가며 근로자들의 급여를 지급하기 때문이다. 최저임금과 주4.5일제 근무가 생산성을 향상시켜 원래 목표 이상을 달성할 수 있다면 그리해도 된다. 하지만 그런 제도로 생산성이 올라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쉬는 만큼 급여를 깎으란 말인가. 만약 주4.5일 근무제로 급여가 줄어든다면 가뜩이나 어려운 가계살림을 근로자들은 어찌하란 말인가. 몇 년간 급여를 올리지 않아도 된다는 말인가. 그리했다가는 난리가 나고 아예 기업 문을 닫게 될지도 모른다. 결국 주4.5일제의 혜택은 외국인 근로자에게만 복권 당첨이 되지 않을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물론 주인 없는 조직 같은 공공기관이나 은행, 단체, 대기업 등의 노동자는 달콤할 것이다. 그들만의 달콤한 휴일과 고액 급여를 만끽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중소기업 근로자들에게는 사기가 꺾이고 일할 기회마저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일하고 싶은 이들의 기회도 보장해 줘야 한다. 초과근무를 해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아이들 학원이라도 보낼 수 있는 사람도 많다. 주4.5일제가 그들을 ‘투잡’으로 몰아가지 않을까 매우 우려된다. 삶의 질이 더 떨어질지 모른다. 주4.5일제는 돌이킬 수 없는 ‘정치가 경제를 짓누르는’ 제도가 될 우려가 많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은 최저임금제와 중대재해처벌법 등으로 옥죄는 경영 여건에서 고군분투하며 일자리와 먹거리를 생산해내고 있다. 함부로 주4.5일제 분위기를 띄우거나 밀어붙이는 일은 ‘인심 쓰기’의 대표적 포퓰리즘이라는 생각이다. 성경(聖經)에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라’는 말씀이 있다. 일하기 싫거든 창업하라. 내 돈으로 근로자들에게 봉급을 줘 보라. 주4.5일제는 시장경제 논리에도 안 맞고 자유민주주의의 헌법적 가치에도 반할 수 있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은 토, 일 휴무가 닥치기 전에 어렵게 벌어 가맹수수료, 카드수수료, 공과금, 월세, 광고비를 내고 근근이 기업을 유지해야 한다. 자본 투자의 보람은 아예 없어질 것이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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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원폭피해, 일본에선 노벨상 한국에선 관심 밖

일본에 원폭피해자단체협의회가 있다. 1956년 결성 이후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핵무기 폐기와 원폭피해자 지원이 핵심이다. 이 단체가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핵무기 없는 세상을 향한 노력을 평가받았다. 일본은 50년 전에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였다. 그 당시 선정된 이유도 핵이었다. 제조·보유·반입을 금지한 비핵 3원칙이 공로였다. 허탈한 국내 단체가 있다. 한국원폭피해자협의회다. 일본의 원폭피해자 지원은 우리와 다르다. 건강수첩을 통해 체계적으로 파악한다. 건강검진, 의료 서비스를 지원한다. 원폭피해자 전문 병원도 운영한다. 건강관리수당, 특별수당 등도 있다. 마지막 순간의 장례 지원까지 책임진다. 원폭피해자의 사회적 지위도 당당하다. 적극적 증언으로 피해를 세상에 얘기한다. 비핵화 등으로 그 목소리를 넓혀 왔다. 이런 노력이 세계 주목을 받은 것이다. 노벨 평화상 수상의 배경이다. 우리 현실은 어떤가. 월 10만원의 진료 보조비를 준다. 연 1회 건강검진 기회가 주어진다. 그나마 경기도는 상대적으로 후한 편이다. 원폭 피해자 1세대에 월 7만원의 수당을 준다. 1·2·3세대에 의료 및 휴양, 문화 지원을 한다. 경기도 의료원에서는 진료비, 종합검진비 50% 할인 등의 지원을 한다. 하지만 실제 집행된 경우는 미미하다. 2022년 13건, 2023년 16건이 전부다. 휴양·문화 지원 이용자는 2년간 5명 이내다. 도내 원폭 피해자가 900명인데 이렇다. 조례도 있다. ‘경기도원자폭탄피해자 지원 조례’다. 조례 내용 중에 지원 센터 규정이 있다. 각종 지원을 위한 컨트롤타워 격이다. 이를 구체화하는 운영 위원회 규정도 있다. 여기에 원폭피해자들이 전문가, 지원단체 관계자, 공무원 등과 함께 참여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조례 규정의 실행이 이뤄지지 않는다. 피해단체 관계자는 “조례가 있는데도 위원회가 열리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러니 원폭피해자가 당당해질 수 있나. 죄인 아닌 죄인이다. 일본은 전범 국가다. 원폭을 부른 교전 당사국이었다. 그런데도 원폭 피해를 당당히 말한다. 전 세계 비핵화에 앞장서고 있다. 노벨 평화상의 주인공까지 됐다. 대한민국 원폭 피해자는 아무런 죄가 없다. 그런데도 피해 사실을 공개하는 것조차 꺼린다. 국가·지자체의 외면이 만든 사회 분위기다. 경기도가 그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구체적 실행의 단계를 보여줘야 한다. 본이 될 조례까지 만들어 놨다. 그 조례에 있는 대로 하면 된다.

[사설] 민생보다 정쟁에 몰두한 제22대 국회 첫 국정감사

제22대 국회가 지난 5월 말 개원 후 처음으로 행한 국정감사는 국민을 실망시킨 제21대 국회를 반면교사 삼아 민생을 챙기고 정부의 잘못에 감사와 비판, 대안을 제시하는 정책감사가 되지 않을까 했다. ‘혹시나’ 했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여야 간 정쟁으로 일관된 ‘역시나’로 마무리되는 국정감사가 됐다. 지난 7일 시작한 제22대 국정감사가 운영위, 정보위, 여성가족위, 기획재정위 등을 제외한 13개 상임위의 25일 종합감사를 끝으로 사실상 마무리됐다. 국정감사는 예결산심의와 더불어 국회가 행정부를 견제하는 중요한 기능으로 1987년 개헌에 의해 부활했으며 그동안 국회는 그런대로 이런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하느라 노력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민생을 위한 정책감사보다는 정쟁의 장으로 변해 국민들에게 실망을 주고 있다. 매년 국회 국정감사를 평가해온 시민단체인 ‘국정감사NGO모니터단’은 지난 3주 동안 행한 국감에 대해 “감사 기능은 상실했고, 피감기관을 범죄인 취급한 정쟁 국감이었다”며 올해 국감을 최악 수준인 평점 ‘D-’로 평가했다. 이번 국정감사는 김건희 여사와 이재명 민주당 대표 관련 사안이 거의 모든 상임위에서 다른 안건을 빨아들인 정쟁으로 일관된 감사였다. 더구나 국정감사 후반부에는 김 여사 공천 개입 의혹의 핵심인 ‘명태균 사태’가 발생하면서 여야 간 정쟁은 더욱 격화되는 모습이었다. 특히 지난 24일 TV로 생중계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국정감사 상황은 차마 시중에서 듣기 어려운 막말과 험담이 오갔으니 이를 과연 신성한 민의의 전당에서 행해진 의정활동이라고 할 수 있는가. 구태의연한 국정감사 악습은 이번에도 역시 재연됐다. 하루 수십개 기관을 불러놓고 한 건의 질의도 하지 않은 경우도 있는가 하면, 특별히 해당 상임위 업무와 관련 없는 유명 인사나 기업인을 증인으로 마구 채택하는 사례는 비효율적인 국감 행태가 아닌가. 일반 증인 채택도 법사위의 경우 지난해 6건인 데 반해 올해에는 85건, 과방위는 지난해 0건이었는데 올해는 216건에 달했다. 민생이 날로 어려워지고 있으며 자영업자들의 폐업이 확산일로에 있다. 북한군의 우크라이나전쟁 참여 등으로 국제 정세가 날로 급변하고 있으며,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가 민생을 챙기지 못하고 정쟁만 하고 있으니 국민은 참으로 불안하다. 국회가 본연의 기능으로 돌아가 어려운 민생을 챙기기를 간곡히 요망한다.

[지지대] 반가운 아기 울음소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한국을 저출산 ‘월드 챔피언’이라고 했다. “한국 여성의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낮다”며 “‘월드 챔피언’이지 말아야 할 부분에서 ‘월드 챔피언’이 됐다”고 했다. OECD는 ‘2024 한국경제보고서’에서 “한국은 60년 뒤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들고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은 전체 인구의 58%를 차지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을 내놓으며 “노년부양비가 급증해 노동력 공급과 공공 재정에 상당한 부담을 줄 것”이라고 했다. OECD의 경고는 통계청 전망보다 부정적이다. 통계청은 장래인구추계를 통해 60년 뒤인 2084년 인구를 3천80만명(중위추계 기준)으로 전망했다. 2022년 기준(5천167만명)의 60% 수준이다. 다행히, 뚝 끊겼던 아기 울음소리가 다시 들려오고 있다. 8월 출생아가 1년 전에 비해 1천124명(5.9%) 늘어난 2만98명을 기록했다. 8월 기준 12년 만에 가장 큰 증가폭이다. 4, 5월 연속 늘어난 출생아 수가 6월 감소 뒤 7월에 이어 두 달째 증가한 것이다. 이런 추세라면 연간 출생아 수가 10년 만에 상승 반전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8월 혼인 건수도 1만7천527건으로 전년 동월 대비 2천917건(20%) 늘었다. 7월엔 1만8천811건으로 전년 동월 대비 33% 증가했다. 국가소멸 위기론까지 대두될 정도로 심각한 저출산 상황에서 결혼과 출생아 수 반등은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저출산이 바닥을 찍은 건 아닌가 하는 희망까지 품게 한다. 출생아 수 반등이 코로나19 장기화로 결혼과 출산이 급감했다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시적 효과인지, 앞으로 계속 이어질 추세인지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대출·청약 등에서 불리했던 이른바 ‘결혼 페널티’를 ‘결혼 메리트’로 바꾸는 정책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결혼율·출생률 증가 흐름이 이어지게 하려면 신혼·출산 가구 대상 주택 공급을 확대하고 육아휴직 급여를 높이는 등 각종 지원책을 더 늘려야 한다. 획기적이고 과감한 정책으로 아이를 더 많이 낳고 키우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야 더 많은 아기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것이 곧 국가경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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