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후변화에 필수가 된 ‘AI 정수장’

전 세계적으로 2024년의 이슈는 기후변화와 인공지능( AI)으로 대변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반도만 해도 올여름 장기간의 폭염과 기록적인 폭우에 전국이 몸살을 앓았고 올겨울은 그 어느 때보다 매서운 추위를 예고하고 있다. 글로벌 이슈로는 뭐니 뭐니 해도 각 산업 분야와 인간의 삶의 질 향상에 깊숙이 파고든 AI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기후변화와 AI는 우리가 매일 먹고 마시고 쓰는 수돗물과는 어떠한 연관이 있을까. 수돗물은 수원에서 원수를 취수해 정수장에서 깨끗하고 안전한 상태로 처리를 거친 후 배관을 통해 각 가정 또는 각 산업 분야에 공급되고 있는데 이러한 수돗물 생산 과정에 새로운 시대를 열 미래형 AI정수장이 등장했다. 필자가 일하는 K-water 화성AI정수장은 빅데이터 기반의 인공지능을 활용한 차세대 기술을 갖춘 것이 특징으로 급변하는 기후변화로 인한 수질 및 물관리 여건 변화에도 사람보다 정확한 관리로 고품질 수돗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 올해만 해도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과 폭우로 녹조 및 흙탕물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그야말로 변화무쌍한 원수 수질에 대응해 AI 기술을 사용하고 수질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 수질 이상을 빠르게 감지하고 약품의 양을 자동으로 조정해 문제 없이 안전한 수돗물을 생산할 수 있었다. 또 AI 기술을 활용해 수돗물 생산 공정을 최적화해 에너지 소비를 줄이거나 생산량을 증가시킬 수 있고 유지보수 일정을 최적화하고 장비 고장을 예측해 사고를 예방할 수도 있다. 이렇게 정수장에 AI 기술 도입으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수돗물을 깨끗하고 안전하게 생산하고 사고를 예방하며 생산 원가를 낮춰 전 국민이 깨끗하고 안전한 수돗물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AI의 도입이 정수장에 근무하는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일은 아닐 것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지난 1월 글로벌 등대공장에 K-water 화성AI정수장을 전 세계 물 관리 시설로는 최초로 선정했다. 글로벌 등대공장은 어두운 밤에 등대가 배를 인도하는 것과 같이 인공지능, 로봇,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적용해 성과를 낸 기업의 공장으로 글로벌 선도공장을 의미하여 글로벌 무대에 대한민국의 물 관리 기술과 AI 기술을 널리 알리는 기회가 됐고 대한민국 국민은 전 세계적으로도 우수한 물복지 및 물안보를 확보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이제 성큼 다가선 기후변화에 지속가능한 물 공급을 위해 AI 기술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아닐 수 없다. 앞으로 많은 정수장에 AI 기술 도입 확대를 통해 보다 스마트하고 효율적인 물 관리를 기대해 본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경기만평] 개각설이 솔솔…

[사설] 고위험 성범죄자 거주 제한, ‘한국형 제시카법’ 필요하다

성폭행범이 주변으로 이사 오면 주민들은 불안과 공포에 떤다. 요즘 안산시 단원구 와동이 그렇다. 아동 성범죄자 조두순이 기존에 살던 와동의 한 다가구주택에서 인근 다가구주택으로 지난달 25일 이사한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조두순의 새 거주지에서 직선거리로 290m 떨어진 곳에 초등학교가 있는 등 반경 1.5㎞ 내에 10여개의 초·중·고교가 있다. 뒤늦게 ‘특별치안센터’가 설치됐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심란하다. 조두순은 2008년 아침 등굣길의 8세 여아를 끌고 가 끔찍한 성폭행을 저질렀던 인물이다. 12년을 복역하고 2020년 출소해 안산에 거처를 마련했다. 그때 1㎞ 거리에 살던 피해자 가족은 가해자가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견디기 어려워 이사를 갔다. 범법자가 두려워 피해자나 선량한 주민이 거주지를 떠나야 하는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지난 5월엔 수원지역 빌라에 침입해 20대 여성 10명을 성폭행한 혐의로 징역 15년을 살다 나온 박병화가 수원 번화가의 오피스텔에 전입했다. 이곳에 20, 30대 여성이 많이 살다 보니 경찰관이 엘리베이터에 동승해 집까지 데려다 주는 일이 있었고, 일부 주민은 이사를 갔다고 전해진다. 주변에 아파트 단지 10여개, 학교 10여곳이 몰려 있어 주민 불안감이 컸다. 성범죄자 전입에 반발하는 이유는 재범 우려 때문이다. 성범죄자의 재범률이 상당히 높다. 지난해 신상공개 성범죄자의 재범은 1천417건에 달했다. 2019년 1천108건에서 4년 새 27.9% 증가했다. 주민들의 불안감을 덜기 위해 각 지자체에선 거주지 인근에 방범초소를 세우고 CCTV와 비상벨 등을 추가 설치해 감시 시스템을 강화하고 있다. 고위험 성범죄자로 인해 투입되는 치안·감시 예산이 한 해 수억원에 달한다. 고위험 성범죄자의 거주지 문제는 ‘폭탄 돌리기’가 됐다. 박병화 출소 이후 화성시가 떠안았던 폭탄이 수원시로 넘어 왔다. 이런 양상이 언제까지 반복돼야 하는지 황당하다. 조두순, 박병화 같은 흉악한 성범죄자가 매년 60여명 출소하는데 이들의 거주지를 제한할 최소한의 기준은 있어야 한다. 재범 위험이 크고, 주민들이 불안을 견디다 못해 이사를 가야 한다면 뭐가 크게 잘못된 것이다. 정부가 고위험 성범죄자의 거주지를 제한하는 ‘한국형 제시카법’을 입법 예고했지만 21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고위험 성범죄자를 해당 지자체가 관리하고 감수하기는 어렵다. 성범죄자가 거처를 옮길 때마다 일대가 뒤집히는 혼란이 반복돼선 안 된다. 고위험권 성범죄자는 ‘국가 시설 내 거주’가 필요하다. 22대 국회에선 ‘한국형 제시카법’을 제정해야 한다.

[사설] 신도대교 등 제때 개통 ‘적신호’... 인천시민들 실망 걱정이다

지금 인천에는 2개의 대역사가 진행 중이다. 청라~영종 간의 제3연륙교와 영종~신도 간의 신도대교다. 둘 다 바다를 건너 인천의 영역을 확장하는 사업이다. 오래 끌어온 지역 숙원 사업이기도 하다. 제3연륙교를 성사시키기 위해 청라·영종국제도시 주민들은 법정다툼까지 했다. 신도대교를 포함한 영종~강화 도로는 15년 전 이미 기공식까지 한 사업이다.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이 2곳 해상 교량이 마침내 개통을 목전에 뒀다. 제3연륙교와 신도대교 모두 2025년 말 완공 및 개통을 목표로 공사가 한창이다. 그런데 막상 공사를 마쳐도 개통까지는 순조롭지 않을 것이라 한다. 본공사는 열심히 했지만 연결도로 사업이 따라 주지 못한다. 제3연륙교의 경우 누가 운영을 맡을지도 불투명한 상태라고 한다. 인천시는 제3연륙교의 운영 주체를 놓고 내부 검토만 되풀이한다. 인천경제청과 종합건설본부, 교통국, 인천교통공사 등이 후보다. 인천경제청은 ‘건설만 할 뿐’이라는 입장이다. 종합건설본부는 ‘교량 등에 대한 전문성 부족’을 내세워 손사래를 친다. 아예 별도의 전담 공기업을 새로 만들자는 의견까지 나온다. 제3연륙교 통행요금 결정도 시간이 많지 않다. 인천경제청이 국토교통부와 협의를 하고 있지만 의견차가 크다. 제3연륙교가 개통하면 기존 인천·영종대교의 통행량이 줄어든다. 이에 대한 손실보전금 규모를 정하는 협의다. 인천경제청은 손실보전의 기준을 현재 요금(1천900~2천원)에 두려 한다. 그러나 국토교통부는 인하 전 통행료가 기준이라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세부 요금은 윤곽도 나오지 않는다. 영종·청라 주민 전용 요금과 그 외 인천시민 요금, 타 지역 요금 등이다. 신도대교는 막상 본공사를 끝내도 개통은 어려운 상황이다. 해상 교량에서 신도로 진입하는 연결도로 공사를 시작도 못해서다. 연결도로를 내기 위한 토지 보상조차 마치지 못한 상태다. 전체 3만2천여㎡ 중 8천여㎡에 대한 보상에 발목이 잡혀 있다. 바로 수용 절차에 들어가도 6개월 이상 걸린다. 소송까지 가면 더 늦어진다. 실제 공사 기간만도 1~2년 걸리는 연결도로는 청사진으로만 있는 셈이다. 이대로는 바다 위 텅 빈 다리로 남겨질 수도 있는 신도대교다. 후속사업인 연결도로 건설을 소홀히 한 때문으로 보인다. 토지보상 같은 문제는 늘 시간을 잡아먹는다. 아마추어 행정이란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터다. 시민들이 십수년을 기다려 온 제3연륙교, 신도대교다. 하루빨리 바다 위를 달려가고 싶은 시민들 실망이 클 것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더니, 바로 그 짝이다.

[김종구 칼럼] 한 대표의 김 여사 공격, 기괴하다

왜 하필 강화도를 찾았을까. 당선 사례라면 17일이어야 했다. 선거 다음 날 인사하는 거다. 한동훈 대표는 22일에 갔다. 하루만 지나도 썰렁한 선거판이다. 6일 늦은 방문이 흔한 일은 아니다. 세상은 그 의도를 다 알고 있다. 대통령과의 회동이 21일이었다. 빈손 회동, 모욕 회동.... 언론에서 굴욕적인 평가가 나왔다. 다음 날 아침 행보에 관심이 쏠렸다. 그게 강화도 방문이었다. 의미심장한 한마디도 남겼다. “이제부터 국민만 보고 가겠다.” 10·16 승리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윤석열 대통령? 한동훈 당 대표? 섣불리 재단할 게 아니다. 정답도 오답도 없다. 굳이 따진다면 기준치는 있다. 보궐선거 득표율이다. 당(黨)·정(政) 지지율은 30%, 20% 근방이다. 승리한 두 곳의 득표율이 다 높았다. 강화군수 국민의힘 후보는 51%다. 금정구청장 국민의힘 후보는 61%까지 갔다. 윤석열 정부, 한동훈 정당의 지지율과 동떨어진다. 이러다 보니 해석이 많다. 서로 끌어다 붙이기 좋다. 한 대표는 본인의 승리로 해석한 모양이다. ‘굴욕적 회동’ 직후 방문이 그렇게 보였다. 또 다른 승리의 땅, 금정구도 찾았다. ‘민심을 받들어 나라를 잘되게 하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 해석은 다른 듯하다. 압승 직후 통화가 알려졌다. “거봐, 열심히 하면 된댔잖아”. 박수영 의원이 받은 눈치다. 그 금정구를 대통령이 찾아갔다. 한 대표가 강화에 가던 날이다. 대통령 역시 승리의 땅에 징표를 남기고 왔다. 결과는 시간차로 중계된 결별의식이었다. 거기서 대통령의 범어사 발언이 있었다. ‘돌을 던져도 맞고 가겠다’, ‘업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의 ‘업보’에 해석이 제각각이다. 누구는 검찰총장 시절 수사를 얘기한다. 권력을 겨눴던 수사의 추억이다. 누구는 국민의힘으로의 합당을 얘기한다. 권력을 향한 변신의 추억이다. 답은 화자(話者)인 윤 대통령만 알 것이다. 토론 없이 짐작될 건 하나 있다. 모든 업보는 김건희 여사에서 증폭됐다는 점이다. 주가조작, 핸드백, 명태균, 공천개입.... 한 대표가 이걸 직격하고 있다. (김 여사가) 공식 석상에서 물러나라고 한다. (김 여사의) 측근들을 정리하라고 한다. (김 여사 살필) 특별감찰관을 임명하겠다고 한다. 오늘(30일)도 또 나아갔다. “국민 우려를 과감히 해결하겠다.” 나쁘지 않은 정치 승부다. 민심은 윤 대통령을 떠났다. 김 여사 의혹에 대한 분노다. 그 표심에 향한 구애가 필요하다. ‘김건희 지우기.’ 그걸 한 대표가 시작했다. 그런데 왠지 어색하지 않나. 한 대표가 김 여사를? 2020년 7월29일 황당한 일이 벌어진다. 한동훈 검사장이 정진웅 부장검사에게 폭행 당했다. 한 검사장의 휴대폰 비밀번호 때문이다. 김 여사와의 문자가 있다고 알려졌다. 한 대표는 끝내 열지 않았다. 그렇게 김 여사는 영부인이 됐다. 또 있다. 민주당이 도이치모터스 수사를 촉구했다. 이번에는 법무장관 한동훈이 막아섰다. “(전 정권 검찰이) 2년 간 수사했던 사건”이라며 선을 그었다. 한 장관 내내 김 여사 수사는 없었다. 문자 내용보다 중요한 게 있다. 그게 감춰졌고 그 공은 한 대표라는 거다. 주가 조작 유무보다 중요한 게 있다. 그 수사가 지연됐고 그 공도 한 대표라는 거다. 그 한 대표가 확 바뀌었다. 명태균 문자를 비판한다. 도이치모터스를 기소하라고 한다. 여론을 좇는 것이 정치인이다. 다수 여론이 그렇게 간다. 하지만 그게 한 대표인 건 기괴하다. ‘영부인 김건희’ 탄생의 기여자 아닌가. 수사 지연의 옹호자 아닌가. 먼저 받아야 할 질문이 있을 것 같다. ‘비밀번호 풀어 김 여사 문자 공개할 생각 없나’, ‘도이치모터스 수사를 막았던 이유는 정당했나’, ‘그래야 김 여사 공격이 정당하다고 보지 않나’. 여당은 곤란해서 못할 거고. 야당은 아끼느라 안 할 거고. 내 주위의 평민들만 모였다 하면 열심히 떠든다.

[지지대] 인천 강화 주민들을 살려라

제22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여야의 정쟁으로 뒤덮인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끈 장면을 꼽으라면 바로 지난 24일 국방위원회의 국방부 대상 국감이다. 인천 강화군의 주민 A씨가 참고인으로 출석, 국방부 관계자들 앞에 무릎을 꿇고 피해와 대책 마련을 호소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 7월부터 사이렌, 북·장구 소리 등 최대 전철 소음 정도의 기괴한 소음을 24시간 동안 송출과 멈춤을 반복하며 대남방송을 하고 있다. 현재 강화군 송해면, 양사면, 교동면 등 3개 면에 사는 8천800여명 가운데 약 52%인 4천600여명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A씨도 국감에서 “일상이 무너졌다”, “딸은 입에 구내염이 생기고 아들도 새벽 3~4시까지 잠을 못 잔다”고 피해를 증언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와 국회는 지난 3개월간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난 10·16 강화군수 보궐선거에서도 여야 모두 대책 마련을 약속했지만 아직 근본적인 대안은 없다. 현재 정부와 인천시 등은 주민들의 건강 상태를 점검하는 등의 지원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북한 대남방송으로 인한 소음이 없어지거나 소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은 아니다. 박용철 강화군수는 최근 민간단체가 풍선으로 북한에 날려 보내는 대북전단부터 차단하자는 대책을 내놨다. 조금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야기지만 주민들을 위해 꺼냈다. 핵심은 대북전단 살포 방지를 위해 위험구역을 설정하는 것이다. 북한이 대북전단에 맞대응하면서 쓰레기 풍선을 날려 보낸 데 이어 이 같은 대남방송을 하는 등 일이 커진 만큼 대북전단을 막자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인천 계양을)가 31일 오전 신정훈 국회 행정안전위원장 등과 함께 강화 대남방송 피해 지역을 찾는다. 정쟁에서 벗어나 강화 주민을 위한 진정한 대책이 국회 차원에서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천자춘추] 인간의 연약함, 마음 읽기

유리보다 더 깨지기 쉬운 게 사람의 마음이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깨질수록 더 단단해지는 것도 사람의 마음이다. 인생은 결국 자기 마음의 여행일지도 모른다. 죽도록 깊은 심연의 계곡을 지나기도 하고 날아가도록 기쁜 환희의 순간을 맞기도 한다.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 한강의 작품을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는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평한 스웨덴 한림원의 선정 이유를 전해 들었을 때 내 귀엔 유독 ‘연약함(fragility)’이라는 단어가 꽂혔다. 역사적 트라우마는 소재이고 시적 산문은 기교일 뿐 그가 천착했던 건 ‘날것’ 그대로의 인생이었다. 세계 여덟 번째 고봉 마나슬루봉(해발 8천163m)을 세계 최고령으로 등정해 기네스북에 오른 경기도 산악인 남상익 대장(71), 김덕진 대원(66)의 성공 스토리를 들었을 때도 첫 느낌은 ‘얼마나 힘들었을까’였다.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큰 고비가 한두 번이 아니었을 게다. 안세영 등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비롯한 스포츠 스타들에 대해 느끼는 경외심도 다르지 않다. 얼마나 많은 고된 훈련과 갈등과 좌절, 실패의 상흔으로 고단했을까라는 마음속 연민과 공감이 먼저다. 만만한 세상은 없다. 세상의 변화는 찰나의 성공이나 실패의 결과가 아니다. 세상을 바꾸는 건 인간의 연약함을 이해하고 상대의 아픔에 공감하며 시작된다. 사람이 사람 그 자체로 존엄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이어달리기’ 과정을 함께 하는 일이다. 세상이 힘들다. 체육계는 더 시끄럽다. 서로 바꾸려 하지 않고 너만 바꾸라고 윽박지른다. 상대에 대한 이해와 존중은 아예 안중에도 없다. 허상의 법제도가 아니라 인간의 연약함을 이해하고 상대의 아픔에 공감하며, 이어달릴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존중에서 새 출발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너와 나 마음 읽기부터 다시 시작하자.

[삶, 오디세이] 우리가 원하던 문화 강국

김구는 ‘백범일지’에서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며 문화 강국을 꿈꿨다. 이제 김구의 꿈이 이뤄졌다. 한국의 문화는 케이팝, K-드라마, K-뷰티, K-푸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한강이 202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돼 K-문학이 세계의 변방에서 중심이 됐다. 한림원은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을 선보였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그동안 국제 사회에 부정적으로 비쳤던 한국의 역사적 트라우마가 뛰어난 문학작품이 돼 빛을 발한 것이다. 한강의 노벨 문학상이 갖는 의미는 한국의 문화가 대중문화뿐만 아니라 순수문화인 문학에서도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 쾌거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를 지나 분단 시대를 맞이했고 6·25전쟁을 겪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군사독재를 유지하다가 민주화를 이뤄냈다. 따라서 외국인의 시각에서 보면 한국은 부정적인 면이 많은 나라다. 권위주의 시대 우리는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았다. 가수가 음반을 낼 때 건전가요를 넣어야 했다. 작가들도 글을 쓸 때 자기 검열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예술과 문학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으면 발전하기 어렵다. 한국은 경제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다. 민주화가 되자 예술인과 작가들은 자유롭게 창작활동을 했다. 이 때문에 국제적인 가수가 탄생했고 한류를 주도할 드라마가 만들어졌다. 드디어 한국의 문화는 글로벌 시대 세계인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게 됐다. 문화의 힘은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긍지와 자부심을 준다. 선진국들은 자신의 나라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가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우리를 대표하는 작가가 그동안은 없었다. 이제 한강이 그 길을 열었으니 우리의 K-문학도 세계 중심이 됐다. 문학의 본질을 놓고 보면 노벨 문학상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노벨 문학상이 갖는 의미는 아주 크다. 세계화 시대 국제 시장에서 한국의 제조업 상품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예술과 문화라는 부가가치가 제조업 상품에 얹어져야 한다. 수준 높은 예술과 문화가 없으면 싼 가격으로 경쟁할 수밖에 없다. 제조업을 하는 분들은 예술과 문학에 종사하는 문화인들로부터 사실 큰 도움을 받고 있다. 국제 시장에서 소비자가 상품을 구매할 때 그 나라의 문화나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이유로 예술과 문화는 제조업 상품을 판매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실질적 상황이 이런데도 한국에서 예술과 문학을 한다는 것은 늘 고통을 동반한다. 국가의 지원은 약하고 기업의 후원은 찾기 어렵다. 우리나라가 진정한 문화 강국이 되려면 정치인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하거나 지원금을 삭감하는 일이 더는 반복되면 안 된다. 필자가 발행인으로 있는 ‘포엠피플’도 재정난이 심각하다. 매번 발간 위기에 놓여 전전긍긍한다. 우리나라에서 작가로 산다는 것은 소수를 빼고는 작품 활동으로 수익을 내지 못한다. 제2, 제3의 한강이 나오기 위해 문학에 대한 지원 대책을 다양하게 만들어야 한다. 국가 예산이 700조원 가까이 되는 나라에서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의 경우 2024년 총예산 지원이 발간지원 6억원, 발표지원 6억원이라는 것이 말이 되는가. 상황이 이런데도 한강은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한강의 기적’이다.

[함께하는 미래] 우크라이나에 공격용 무기 지원, 어떻게 할 것인가

북한이 러시아에 병력 1만명을 파견하면서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공격용 무기 제공을 미국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협의하고 있다.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논리에 따르면 우리의 주적인 북한이 러시아를 지원하면 우리는 러시아의 주적인 우크라이나를 도와주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이 지원이 우리나라 국가안보를 강화하는 데 기여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을 언제 어떻게 줄 것인가에 대한 다각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모든 국가안보 정책의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은 ‘국가이익’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이 우리나라의 이익에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아직 없다. 현재 우리가 당면한 가장 큰 위협은 북한의 핵무기 공격이다. 그런데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이 대북 억지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에 개입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안보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연루 위험도 고려해야 한다. 어느 동맹국이 개입한 전쟁에 나머지 동맹국들이 자국의 의지와 관계없이 휘말리게 되는 상황에서 이 위험은 더욱 커진다. 미국은 러시아와 직접적 군사 충돌을 막기 위해 개전 후 2년 동안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공격용 무기를 제공하지 않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주장했듯이 미국은 이 전쟁이 러시아와 전면전으로 비화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다. 더 나아가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요구에 계속 미온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가입하면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에서 러시아-NATO 전쟁으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연루 위험은 대리전에 대한 우려와 연결돼 있다. 대리전은 분쟁의 당사국이 직접 충돌하지 않고 동맹국이나 관련국이 적대국과 싸우도록 만드는 전쟁을 의미한다. 현재 우크라이나는 NATO를 대신해 러시아와 싸우고 있다. 만약 우리가 보낸 공격용 무기가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북한군을 살상하는 데 사용되면 한반도의 긴장은 급속하게 고조될 것이다. 최악의 경우 우리나라가 NATO와 우크라이나를 대신해 북한과 무력으로 충돌하게 되는 상황이 조성될 수도 있다. 정부는 NATO 회원국도 아니며 군사동맹국도 아닌 우크라이나를 위해 병력과 무기를 희생해야 할 명분과 근거를 충분히 제공하고 있지 않다. 공격용 무기 지원의 실질적 효과에도 주목해야 한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지난 6월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조약 체결 이후 러시아와 북한의 밀착을 견제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에 지원은 러-북 관계의 약화가 아니라 강화로 귀결될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파병의 대가로 러시아는 북한에 식량과 에너지는 물론이고 핵 및 미사일과 관련된 기술을 제공하고 있다.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정찰 및 항법위성, 대륙간탄도탄(ICBM) 재진입, 핵잠수함 건조,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기술을 전수받는다면 그동안 국제사회가 부과했던 대북 제재는 사실상 무력화된다. 중차대한 국가안보 문제가 정쟁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정부는 이 문제들을 국회와 우선적으로 협의해야 한다. 초당적 합의에 기반을 두지 않은 정책은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다. 여야가 잘 논의해 안보 불안을 조속히 해결해 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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