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는 개항장과 차이나타운, 월미도를 중심으로 문화와 관광을 통한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며 지역 활성화를 도모해 왔다. ‘제물포 르네상스’ 프로젝트는 인천시의 이러한 노력이 집약된 정책이다. 그러나 중·동구 일대는 항만시설과 배후 산업 지역의 유휴화 및 이전으로 인한 공간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송도·청라·영종 경제자유구역 등 외곽 신도시 개발이 빠르게 진행됨에 따라 중·동구의 경제적, 물리적 쇠퇴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인천시가 추구하는 목표가 시민이 편안하고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하는 것이라면 ‘원도심과 신도시’ 간의 균형 발전은 더는 미룰 수 없는 핵심 과제가 됐다. 도시 개발은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얽히고설켜 복잡하기 그지없다. 특히 원도심의 활성화는 인구 감소로 인해 주민들의 목소리가 점점 약해지고, 그로 인해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위험이 커지고 있어 더욱 어려운 과제다.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난제를 단기간에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천시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시정부가 제시하는 비전과 시정 슬로건은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실천되는 것일까. 그 해답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곳이 정책 연구와 자문을 제공하는 싱크탱크, 즉 인천연구원과 같은 기관이다. 이들은 실현 가능한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고 필요한 근거와 자료를 마련해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단순한 비전 제시를 넘어 그 비전을 실천 가능한 정책으로 구체화하는 것이 이들의 임무다. 인천연구원은 인천시 산하의 ‘정책 지식인’ 싱크탱크다. 인천시의 각종 정책이나 주요 미래 구상에 대해 여러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시정을 자문하는 싱크탱크 역할을 맡고 있다. 인천연구원에서 수행한 정책 연구 과제 건수가 2023년 241건, 2022년 214건에 달했지만 이러한 연구 성과가 실제 정책에 반영되는 데 한계가 존재한다. 많은 연구 결과가 정책 결정 과정에서 충분히 활용되지 않거나 일회성 프로젝트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연구 성과의 실질적 적용을 위해서는 정책을 만드는 입안권자와 연구자 간의 긴밀한 협력이 필수적이다. 현재 많은 연구 결과가 일회성 프로젝트로 끝나는 문제는 연구 결과에 따른 정책 실행과 평가를 위한 체계적 피드백 메커니즘의 부재에서 기인한다. 이를 보완하려면 연구 결과부터 정책이 시행된 이후까지 그 효과를 분석하고 개선 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 ‘연구 및 정책 평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 시스템은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객관적 평가를 가능하게 하여, 정책뿐 아니라 연구의 질적 향상도 동시에 도모할 수 있다. 이러한 피드백 과정이 지속된다면 인천시는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더욱 정교한 예측과 계획을 수립할 수 있고, 사안에 따라 장기적 정책과 단기적 정책을 구분한 논의도 가능해져, 정책의 전략 또한 한층 효율적으로 실행될 것이다. 또한, 정책 입안자와 연구자 간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정책연구회의’를 활성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책연구회의는 인천연구원의 전문가와 정책 담당자가 연구 결과와 정책 제안을 논의하고 실질적 적용 방안을 검토하는 장으로서 기능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연구자는 자신의 성과가 실제 정책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체감할 수 있으며, 정책 입안자는 현장의 문제 해결과 연구 성과의 연결 고리를 더욱 명확히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부서 간 소통을 촉진해 정책의 일관성을 높이고, 중복된 연구와 비효율적인 정책을 줄이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 아울러, 인천연구원이 진정으로 실효성 있는 연구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시민 중심의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되짚어봐야 한다. 토론회, 세미나 등 공개적인 논의를 통해 시민의 의견을 반영하고, 실제로 직면하는 문제를 연구 주제로 삼는 방식도 고려해 본다면, 인천연구원은 단순한 연구기관을 넘어 인천시 정책의 성과를 높이는 전략적 파트너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300만 인구를 품은 인천은 진정한 글로벌 도시로의 비상을 꿈꾸고 있다. 진정한 성장과 도약을 이루기 위해 인천연구원의 역할 강화는 인천시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중요한 투자다. 결국, 도시 문제 해결의 열쇠는 객관적 자료와 논리를 바탕으로 한 정책에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싱크탱크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연구자와 정책 입안자 간의 긴밀한 협력 시스템이 마련된다면, 인천은 미래 세대에게 지속 가능한 도시이자 시민 공감을 더한 진정한 르네상스를 선사할 수 있는 소중한 밑거름을 갖추게 될 것이다.
인천은 현재 인구대비 전국 3대 도시이자, 인구증가속도로 보면 조만간 부산을 추월하여 전국 2대도시로 발전할 가능성이 충분함에도 아직까지 고등법원이 설립돼 있지 않다는 것은 명백히 인천시민의 헌법상 기본권인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지 않고 방치해온 결과이므로 지금이라도 하루속히 인천에 고등법원을 설치해야 한다. 고등 법원이 유치됨으로 인해서 인천광역시 자체의 위상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인천광역시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서 인천의 경제적 인프라 와 법조 직역의 법조인프라 등이 확대될 수 있고, 그로 인해서 인천광역시의 학술 인프라의 저변까지 확대되어 다양한 인재들이 인천광역시로 유입되는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 현재로서는 인천에 고등법원이 설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법조 인프라가 형성되기 어렵고 인천이 소외되었다는 대외적 인식이 여전히 존재해서 서울에 있는 유능한 인재들이 인천에 유입되기 어렵고, 인천에 있는 유능한 인재조차도 인천에 머물기를 꺼려해서 서울로 취업가거나 인천을 떠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인천은 현재 전국에서 인구 증가 속도가 가장 높은 도시로서 향후 전국 어느 도시보다도 발전 가능성이 높은 도시이다. 앞으로 인천은 인구 300만 시대를 넘어 인구 400만, 인구 500만 시대에 대비해야 될 상황에 직면해있다. 변호사 수에 있어서도 현재 인천변호사회에 800명이 넘는 변호사가 인천변호사회 등록되어 있으며, 조만간 인천변호사회 변호사 수가 1천명이 훌쩍 넘어갈 것으로 예상되므로 이제는 변호사 1천명 시대에 걸맞는 법조 인프라가 구비 되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점을 종합해볼때, 인천고등법원 설립은 더이상 지체되어서는 안될 시급한 민생현안이므로, 하루속히 국회에서 인천에 고등법원을 설치하는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결론적으로 인천에 고등법원을 설치하는 것은 지나칠 수 있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인천시민의 재판을 받을 헌법상 권리이며, 인천시민의 경제적, 학술적 인프라를 위한 초석이 된다 할 것이므로 더이상 지체할수 없는 시급한 민생법안인 것이다. 인천지역의 모든 국회의원, 법조인, 인천시민은 한마음으로 똘똘뭉쳐 조속히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재명 대표가 기소된 사건은 7개다. 4개 재판부가 심리를 진행 중이다. 첫 번째 선고가 15일 나온다. 선거법 위반 1심 선고다. 징역형 또는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이 선고되면 치명적이다. 국회의원직과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이어 25일에는 위증교사 사건의 1심 선고도 있다. 법조계 전망은 무죄부터 실형까지 다양하다. 이 재판이 정치를 강타할 경우의 수가 있다. 모두가 생각하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화두, 바로 ‘이재명 대안’이다. 유시민, 김두관의 이름도 나온다. 야당의 한 관계자가 얘기하는 시나리오다. ‘이 대표가 본인이 출마하지 못하게 될 경우 유시민이나 김두관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흔한 추론도, 검증된 분석도 아니다. 사실 지금 수면 위에 뜬 이름은 김동연 경기도지사다. 김 지사 스스로 연출한 장면들이 많다. 고비마다 문 전 대통령과 회동했다. 문 전 대통령 내외가 경기도를 답방했다. 전해철 전 의원 등 친문 인사들이 경기도에 들어왔다. 여기에 정황이 추가됐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와 독일에서의 회동이다. 외자 유치를 위한 유럽 방문 길이었다. 비공개로 만났다. 경기도는 자연스러운 만남이었다고 설명했다. 정치권은 그렇게 믿지 않는다. 김 전 지사는 친문 핵심이다. 친문과의 연합에 정점이 될 중량감이 있다. 더구나 시점이 이재명 사법리스크 직전이다. 이런저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이재명 사법리스크에 김 지사가 겹치고 있다. 여기서 주목되는 야권 정치 모임이 있다. 초일회다. 야권 내 대표적인 비명계 모임이다. 22대 총선에서 공천받지 못한 전직 의원들이다. 이재명 체제와 함께 섞이기 어려운 면면이다. 대부분 친문이고 수도권 출신이 많다. 친문과 경기도라는 점에서 김 지사의 정치 행보와 겹친다. 자연스레 나오는 김 지사와의 연대설이다. 현재 상태에서는 어떤 접점도 없는 듯 하다. ‘대안의 하나일 뿐’이라는 평이 초일회에서 나온다. 여기에 김 지사를 보는 회원 간의 의견 차이도 크다고 알려진다. 초일회가 현 상태에서 밝히는 입장은 관망과 관찰이다. 누구를 정할 단계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다음 주가 이 대표 선고다. 급격한 정치 변화의 가능성이 없지 않다. 현재 민주당에서 비명이 설 자리는 없다. 15일, 25일 재판 결과로도 쉽게 바뀔 당도 아니다. 결국 김 지사의 대권 전략은 밖으로부터의 진입이다. 초일회는 야권에서 유일하게 비명을 천명한 모임이다. 김 지사와 초일회의 관계를 힐끗힐끗 봐 둬야 할 이유다.
경기도의회가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국민의힘이 등원 거부에 이어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진경 의장에 대한 불신임안까지 제출했다. 여야 같은 수인 양당 간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민생은 외면당하고 있다. 도의회 국민의힘이 6일 ‘불신임의 건’을 발의한 것은, 김 의장이 도의회 의장으로서의 역할과 소임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의사일정 파행이나 산하기관장 인사청문회 무산 등에 적극 대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정호 국민의힘 대표의원은 “도의회 후반기 운영은 파행과 함께했으며, 경기도와의 소통 부재로 인해 의회 본연의 기능인 견제·감시 역할이 철저히 무시됐다”며 “이런 상황에서 의장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은 중대한 문제”라고 했다. 지방자치법에 따라 지방의회 의장이 법령을 위반하거나 정당한 사유 없이 직무를 수행하지 않으면 지방의회는 불신임을 의결할 수 있다. 불신임 의결은 재적 의원 4분의 1 이상의 발의와 재적 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가능하다. 현재 도의회 재적 의원은 154명이다. 민주당 76명, 국민의힘 76명, 개혁신당 2명으로 구성돼 있다. 불신임안이 통과되려면 78표가 필요하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의원 수가 동일한 상황에서 앞으로 불신임안 처리를 둘러싼 양당의 총력전이 불가피해 보인다. 혼돈과 갈등 양상이 고조될 것으로 예측된다. 정례회 등원 거부와 함께 의장 불신임안을 발의한 국민의힘은 경기도의 정무라인 인사가 잘못됐다고 주장한다. 경기도시장상권진흥원장과 경기도의료원장에 대한 인사청문회 미개최도 지적하고 있다. 경기도의 중요 정책을 이끌어갈 인물들이 도민의 신뢰를 담보할 자격이 있는지 검증하는 청문 절차가 무산된 것에 유감을 표명했다. 민주당의 반응은 냉담하다. 국민의힘의 등원 거부와 의장 불신임안 제출을 ‘파행을 조장하는 무책임한 행동’으로 규정하고, 도민의 민생을 외면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김동연 지사의 인사권이 법적으로 보장된 영역이라며, 이를 문제 삼아 정쟁을 일삼는 국민의힘의 행태를 질타했다. 김동연 지사가 6일 도의회 국민의힘 대표실을 찾아 대화를 나눴으나 별 진전이 없었다. 양당의 극한 대립으로 도민들만 피해를 보게 생겼다. 국회에서 벌어지는 지겨운 정쟁이 도의회에서 유사하게 벌어지고 있으니 답답하다. 도의회 여야는 부끄러움과 책임을 느끼기는커녕 ‘네 탓 공방’만 하고 있다. 도의회 파행이 지속되면서 행정사무 감사와 조례안 처리, 내년도 예산안 심사도 차질을 빚게 됐다. 도의회는 정쟁에서 벗어나 도민을 위한 정책을 고민하고 집중해야 한다. 현안이 산적해 있다.
최근 사교육비의 급격한 증가는 심각한 수준이다. 학령인구 감소에도 학생 1인당 월평균 43만4천원, 전체 규모 27조1천144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갈아 치우고 있다. 이 문제는 단순히 교육제도 내에서만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친 양극화, 안정적인 직종에 대한 과도한 선호와 경쟁, 그리고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의대 광풍’에서 볼 수 있듯이 안정된 직업을 얻기 위한 경쟁이 과열되면서 사교육은 스펙을 쌓기 위한 필수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사교육비의 급증 원인 중 하나는 불안정한 대학입시 제도다. 수시, 정시 등의 빈번한 입시제도 변화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혼란을 주면서 사교육을 필요로 하는 상황을 유도한다. 또 공교육이 그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이 사교육에 대한 의존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 입시 위주의 교육이 불러온 ‘이권 카르텔’의 존재 역시 사교육 시장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공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대책이다. 우수한 교사를 양성하고 이들이 수업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교사들이 행정 업무가 아닌 교육 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교육 정책을 개선하고 수업의 질을 높여 학생들이 사교육 없이도 충분한 학습 경험을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한다. 또 학교 교육의 품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공교육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학부모와 학생들이 공교육으로 충분하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사교육을 부추기는 ‘이권 카르텔’을 발본색원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사교육 시장에 관여하는 이권 카르텔은 교육의 공정성을 훼손하고 과도한 경쟁을 부추긴다. 공교육 내에서의 모든 자원이 올바르게 사용되도록 제도적 감시를 강화하고 사교육 시장의 불법적인 부분을 철저히 단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사교육 문제는 교육 내부의 문제만이 아닌 사회적 구조와도 깊이 연결돼 있다. 양질의 일자리가 제한되고 직종 간 임금 격차가 큰 상황에서 사람들은 소위 ‘승자독식’의 직종에 몰리고 있으며 이로 인해 특정 대학, 특정 학과에 진학하기 위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이러한 직업 시장의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지 않고서는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정부는 직종 간 과도한 소득 격차를 줄이고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해 다양한 분야에서 일자리의 매력을 높이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또 공교육 문제를 교육부만의 문제가 아닌 범정부적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사교육 공화국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부 부처 간 협력을 통해 교육 및 직업 구조의 불평등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 사회 전반의 양극화가 해소되지 않는 한 교육에 대한 과열 경쟁은 계속될 것이며 이는 사교육 시장을 더욱 확대시킬 것이다. 결국 사교육 문제는 단순히 공교육 개선이나 입시제도 개편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 구조를 해결하고 공교육의 신뢰를 회복하며 직업 선택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정책들이 유기적으로 작동해야만 한다.
나뭇잎의 엽록소가 분해되면 엽록소에 가려졌던 색소가 겉으로 나타난다. 어떤 색깔이든 그렇다. 그게 단풍이다. 하지가 지나면 낮의 길이가 짧아진다. 일조시간이 줄면서 광합성은 덜 활발해지고 엽록소 생성량은 감소한다. 가을에 접어들어 기온이 떨어지면 잎으로 영양분과 수분이 들어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 겨울을 나기 위해서다. 이때부터 엽록소가 분해되기 시작한다. 그래서 단풍은 쌀쌀해지면 찾아 오는 ‘선물’이다. 일반적으로 단풍은 최저기온이 5도 이하로 내려가면 물들기 시작한다. 기온이 낮아야 단풍색도 선명한 까닭이다. 올해 단풍이 유난히 늦다. 폭염이 원인이라는 게 기상당국의 분석이다. 특히 올해는 1월부터 10월까지 한 달도 빠지지 않고 예년보다 무더웠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구처럼 ‘참 위대한 여름’이었다. 예년에 비춰 보면 이맘때면 온 산하가 울긋불긋했다. 지난해도 그랬다. 코로나19가 한창인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단풍 명소로 떠나는 관광버스가 아침마다 도심에 즐비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썰렁하다. 발길도 예년 같지 않다. 기후 변화를 만나 단풍이 지각한 셈이다. 이제 가까스로 중부지방은 뒤늦은 절정이고 남부지방은 시작이다. 전국의 단풍 명산 21곳 중 11곳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월악산은 12일이고 내장산은 ‘아직’이다. 통상 중부지방은 10월 중순에서 11월 상순 사이였다. 남부지방은 10월 하순에서 11월 중순 사이였다. 올해는 이 관례마저 깨졌다. 한 논문에 따르면 1989년에서 2014년까지 늦여름에서 초가을로 이어지는 시기 기온이 1년에 0.04도씩 높아지며 단풍이 드는 시점도 매년 0.21일씩 늦어졌다. 이런 결과를 토대로 계산한 결과 현 추세대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경우 단풍이 드는 시점이 2046~2065년에는 1989~2014년보다 10.37일이나 늦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이래저래 우울한 계절이다.
■ 러시아정교회, 시바토수도원 방문 자동차가 세관에서 나올 때까지 블라디보스토크 시내 곳곳을 소요하고 있다. 시내 중심부에 있는 러시아정교회 포크롭스키 주교좌교회를 방문했다. 우리는 동방정교회, 러시아정교회, 조지아정교회 등 정교회(正敎會)에 낯설다. 정교(正敎)는 한자 의미대로 ‘옳은 교회’라는 의미다. 로마가톨릭 교회가 8세기 게르만족 포교에 필요한 성화 제작을 허용할지, 우상숭배로 볼지 등 교리 다툼으로 갈라진 교회다. 성화 제작을 우상숭배로 반대했던 비잔틴 교회는 스스로 ‘옳은 교회’, 정교(正敎)회라 칭했다. 교회 벽면의 이콘 성화가 화려하다. 정교회도 결국은 포교를 위해 성화를 허용했다. 예배 시간 내내 사제와 신자는 계속 서 있어야 한다. 교회 홀에 의자는 없다. 성가도 악기 없이 육성으로만 부른다. 러시아정교회는 결혼한 사람도 신부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다만 결혼한 신부는 주교 등 고위직 사제는 될 수 없다. 러시아 혁명 후 스탈린은 ‘1도시 1교회’ 원칙을 정하고 러시아정교회, 이슬람교 등 종교를 탄압했다. 원칙적으로 한 도시에 하나의 교회만 인정되고 나머지 교회나 사원은 폐지했다. 포크롭스키 교회는 1도시 1교회에 해당돼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다. 스탈린이 1953년 사망하고 후계자 흐루쇼프는 스탈린 격하운동과 함께 종교의 자유도 허용함에 따라 스탈린 사후 많은 신설 교회가 생겼다고 한다. “인류 역사는 세속의 정치 권력과 영적인 종교 권력의 투쟁, 내가 믿는 신이 최고신(最高神), 참된 신이라는 종교와 종교의 투쟁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의 말이 생각난다. 택시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 외곽 러시키섬에 위치한 시바토 수도원에 갔다. 태평안 연안 러시키섬에 위치한 시바토 수도원은 신부 2명, 수도사 20명이 거주한다고 한다. 검은 사제복을 입고 수염을 기른 신부에게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고 사진 촬영을 요청하니 기꺼이 응한다. 향후 이런 오지의 수도원에 찾아올 한국인은 없을 것이라고 우리끼리 말하며 서로 웃는다. ■ 아르바트 거리,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 19세기 말 블라디보스토크에 이주한 조선인이 처음 정착한 장소가 ‘개척리’라고 한다. 현재 이곳은 블라디보스토크 젊음의 거리인 ‘아르바트’ 거리로 변했다. 초창기 정착지로서 움막 등 주거환경이 매우 불결하고 전염병이 창궐해 1911년 러시아 정부가 외곽에 새로운 주거지를 만들어 ‘신한촌(新韓村)’으로 이주시켰다. 옛 개척리인 아르바트 거리는 서구식 건물, 예술 조형물, 젊은이 대상의 문화거리다.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은 항구 옆에 있다. 제정러시아가 1904년 완공한 시베리아 철도의 종착역이다. 모스크바까지 9천300㎞, 기차 정거장만 850개로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다. 이 역에서 1907년 고종의 헤이그밀사인 정사 이상설, 부사 이준 등 세 분이 출발한 역이다. 힘없는 망국 조선의 젊은 관리 세 명이 비장한 각오로 만국평화회의가 열리는 네덜란드 헤이그로 출발한 역을 바라본다. ■ 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 이동휘 선생 기념비 상하이 임시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이동휘 선생 기념비가 있는 곳을 들렀다. 상하이 임시정부는 1919년 9월 수립됐다. 상하이, 연해주, 한성에 있던 세 개의 독립단체를 통합해 설립한 것이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 초대 국무총리 이동휘 선생이다. 이동휘 선생은 조선 말기 한성무관학교를 나온 무관이다. 조선 멸망 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한 사회주의 성향의 독립운동가다. 1920년 소련의 레닌이 200만루블을 상하이 임시정부 독립운동 자금으로 줬다. 이 선생의 측근이 40만루블을 공산당 확장에 사적으로 사용한 것이 발견돼 감찰 담당이던 김구 선생이 척살했다. 이승만 대통령, 안창호 선생 등과 노선 차이로 일찍 임정과 결별하고 1921년 1월 연해주로 돌아가 고려공산당 창당 등 평생 공산주의 운동을 한 인물이다. 조선 말, 일제강점기 암울한 시기에 많은 지식인들이 공산주의,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된 것은 당시의 시대상이다. 이 선생은 1920~30년대 스탈린의 공포 정치와 잔혹한 숙청 정치를 목격했는데 공산주의 실상은 잘 모르는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건국훈장도 공산주의 경력 때문에 매우 늦은 1995년 수상했다. 역사의 현장을 역사학과 대학생처럼 많이 걸어다녔다. 어두웠던 100여년 전 우리의 역사 현장을 보면서 다시는 이 같은 역사를 반복하지 않도록 냉혹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 자동차 5일 만에 세관 통과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 지 5일째인 7월8일 오후 자동차가 세관에서 통과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모두가 환호성을 지른다. 한국 식당에서 김치찌개로 저녁식사를 하면서 무사고 완주를 다짐한다. 일행 중에서 가장 연장자인 K 교수는 “걱정을 떨치고 즐겁게 갑시다”로 건배사를 한다. 모두 “가자, 이스탄불”을 힘차게 소리쳤다. 영어로 여행은 ‘travel’인데 어원은 ‘고생, 고난’이라는 ‘travail’에서 나왔다고 한다. 우리도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이 있는데 서양도 여행은 고생이라는 뜻에서 문화적 동질감을 느낀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 장기간 여행하면서 마찰 없이 보내기 것은 쉽지 않다. 서로 마음의 거리를 좁혀야 한다. 고난을 함께 겪으면서 우정이 생기기를 희망한다.
김포 문수산성(金浦 文殊山城)은 갑곶진과 함께 강화의 입구를 지키던 조선시대 성이다. 조선 숙종 20년(1694년) 돌을 이용해 쌓은 석축산성으로 순조 12년(1812년) 고쳐 쌓았다. 잘 다듬어진 돌로 견고하게 쌓았고 그 위에 몸을 숨기기 위한 방어시설인 여장을 둘렀다. 당시의 성문은 취예류, 공해루 등 3개의 문루와 비밀 통로인 암문 3개가 있었다. 이 중 취예루는 갑곶진과 마주 보는 해안에 있었으며 육지로 나오는 관문 역할을 했다. 현재 해안 쪽의 성벽과 문루는 없어지고 마을이 됐으며 산등성이를 연결한 성벽만 남아 있다. 고종 3년(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과 치열한 전투를 치른 곳이다. 국가유산청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