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이원론과 주체

우리 사회에 강하게 뿌리 내리고 있는 ‘주체’ 혹은 ‘자아’의 모습은 무엇일까. 그 근원에는 ‘나’라는 강한 중심이 자리 잡고 있으며 ‘나’를 중심으로 ‘나’의 주변에 무수한 ‘대상’들이 흩어져 있는 모습일까. 최근 몇 년 동안 한국 사회의 모습을 바라보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다. 언론을 통해 만나는 모습들은 항상 ‘내가 옳다’는 목소리와 ‘너는 틀렸다’는 강한 신념들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문화와, 다양한 의견을 가지고,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임에도 그 다양한 목소리들이 서로 융화되지 못하고 마치 물과 기름처럼 끊임없이 서로 분리되기만 하려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다름을 다름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는 인류의 역사 속에 그 답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서양 철학의 흐름을 따라가 보면 가장 큰 관점 중의 하나가 ‘이원론’이다. 이는 플라톤의 이데아와 현실의 구분으로부터 시작한다. 이데아는 만물의 근원으로 절대적이며 본질의 원형이 존재하는 곳이다. 그리고 현실은 이데아의 원형을 모방한 허위의 세계일 뿐이다. 그러니 이원론의 핵심에는 항상 옳고 절대적인 이데아가 존재하며 이를 모방하고 있는 허위의 현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데카르트는 인간의 존재를 설명하면서 생각하는 주체로서 ‘코기토(Cogito)’, 즉 인식하는 주체를 제시한다. 그리고 이러한 주체를 중심으로 인식의 대상이 함께 주어진다. 이러한 주체의 존재는 20세기를 지나며 더욱 강하게 자리 잡게 되며 ‘나’라는 ‘주체’의 절대성이 강조되고 이에 따라 ‘나’를 제외한 다른 모든 것은 ‘대상’으로만 주어지게 되며 그러한 ‘대상’의 중요성은 간과되는 현상이 확산되는 계기를 제공한다. ‘주체’와 ‘대상’의 이러한 왜곡된 현상은 ‘나는 항상 옳고, 너는 항상 틀렸다’라는 잘못된 관점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세상의 모든 존재가 ‘나’와 ‘너’ 혹은 ‘중심’과 ‘주변’, ‘선’과 ‘악’, ‘옳음’과 ‘그름’ 등 이분법적으로 구분되는 것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이분법적 구분이 극단적 가치 판단으로 연결되지 않고 때로는 ‘네가 옳고 내가 틀렸다’라는 유연한 상대적 구분으로 이어진다면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성숙하지 않을까.

[사설] ‘캔맥주 투척’으로 본 현직 경기지사의 정치 참여

김동연 경기지사를 향해 캔맥주가 날아들었다. 시국과 관련된 1인 시위를 하던 중이었다. 10일 오후 6시30분께 발생한 사건이다. 평소 행인이 많은 수원역 12번 출구 앞 ‘로데오 거리’였다. 김 지사가 ‘내란 수괴/즉시 파면’이라는 푯말을 들고 있다. 한 남성이 다가와 “니가 뭘 알아”라며 시비를 걸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접근을 제지했다. 그러자 들고 있던 캔맥주를 집어던졌다. 다행히 바닥에 떨어졌지만 모두가 놀랐다. 거친 항의와 몸싸움, 투척 순간과 흐트러진 맥주가 영상으로 남았다. 현장의 위험성이 생생히 재생된다. 김 지사의 1인 시위를 취재하던 경기일보 카메라에 잡힌 장면이다. 김 지사는 별 반응 없이 시위를 계속했고 기자회견도 했다. “윤석열의 구속이 취소된 건 절차상의 하자로 나온 것인데, 지금까지 5천만 국민 아무도 누리지 못하는 권리를 윤석열이 누린 것”이라며 “검찰에서 잘못한 만큼 검찰총장의 사퇴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날 사고가 던지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현직 도지사의 정치 참여 한계다. 광역단체장의 대권 도전은 이제 뉴스거리도 아니다. 특히 경기도지사의 경우 ‘소권(小權)’이라 불린 지가 30여년이다. 이인제(민선 1기)·손학규(민선 3기)·김문수(민선 4·5기)·남경필(민선 6기)·이재명 지사(민선 7기)가 모두 대권 후보군이었다. 정치적 발언, 경선 참여 등 나름대로의 정치 행위가 있었다. 임기 단축, 장기 휴가 등 도정 피해도 있었다. 그때마다 찬반 논쟁이 있었다. ‘부적절하다’는 부정론과 ‘정치적 권리’라는 긍정론이다. 민선 8기 김동연지사도 대권 행보를 하고 있다. 그를 향해서도 똑같은 논쟁이 있다. ‘캔맥주 투척’ 동영상에 게시된 댓글이 여론을 보여준다. ‘도지사 사표 쓰고 정치 하세요’(okim—), ‘컵라면 가져온 여직원에 격노 퍼포먼스 하더니’(mine—)…. 비판적 견해다. ‘맥주캔 던진× 살인 혐의로 고소하세요’(fres—). 김 지사를 비난하거나 걱정하는 견해다. 다른 하나는 도지사의 신변 안전 문제다. 1천400만 도민의 책임자다. 도정을 수행하는 현장에서는 걱정이 없다. 전문적인 안전 요원은 없지만 기본적으로 공무원이 동행한다. 하지만 정치 현장에 나섰을 때는 다르다. 행정 인력이 동행하지 않는다. 동행해서도 안 된다. 공무원의 정치 행위는 불법이다. 정치 현장은 견해가 대립하는 공간이다. 크고 작은 충돌 가능성이 상존한다. 이런 현장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셈이다. 이번 일이 그렇다. ‘도지사의 정치 참여가 문제’라며 냉소적인 도민도 많지만 ‘험한 꼴 당하면 어쩌냐’며 걱정하는 도민도 많다. 결국 경기지사가 대선(大選) 뛰는 통에 경기도민에 안겨진 ‘안 해도 될’ 논쟁이다. ●관련기사 : [영상] '윤석열 파면' 피켓 든 김동연에 날라온 맥주캔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50310580435

[경기만평] 뜻밖의 동병상련...

[사설] 고양시청 이전의 급박함은 현재 진행형이다

고양시의회의 책임이 없다 할 수 없다. 원당 지역 개발 용역 예산을 세 차례나 삭감했다. 기존 청사 주변을 잘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일부 부서의 이전 정지 신청을 법원에 제기했다. 법원이 각하는 했지만 시에는 큰 부담이 됐다. 청사 이전 업무 전반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다음 달 31일까지 관련 업무 전반을 훑어보고 있다. 2년여간 계속된 반대가 이런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겠나. 작정하고 방해 한 측면이 있다. 결국 백석업무빌딩으로의 청사 이전은 무산됐다. 시 관계자 설명에 시의회를 향한 원망이 있다. “이동환 시장이 재선에 성공하고 여대야소가 되면 가능하겠지만 현재로서는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 2023년 벽두부터 시작된 청사 이전 논쟁이다. 시민 여론을 찬반으로 쪼갠 오랜 갈등의 원인이었다. 이게 2년 만에 없었던 일이 됐다. 시의회의 비협조를 넘어선 노골적인 반대가 원인 중 하나다. 시의 불만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시가 제공한 원인도 분명히 짚고 가야 한다. 이동환 시장이 2023년 1월4일 발표했다. 전임자 결정을 뒤엎고 전격적으로 단행한 발표였다. 시민도 시의회도 몰랐다. 담당 부서 공무원들조차 모른 듯 했다. 여론이 심상치 않았다. 그러자 이런저런 후속안을 내놓기 시작했다. 발표 20여일 뒤 ‘원당 재창조 프로젝트’란 걸 발표했다. 민간 재원을 활용한다는 개발 계획이었다. 조감도 등을 갖춘 개발 청사진이었다. 일주일 뒤 ‘원당 재창조 프로젝트TF’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주민 공론화 절차는 없었다. 절차도 앞뒤 없이 뒤죽박죽 됐다. 왜곡된 절차를 상급 기관이 모를 리 없다. 경기도가 관련 투자 심사를 퇴짜 놨다. 2023년 8월 1차 반려, 2023년 10월 2차 재검토, 2024년 9월 최종 반려됐다. 절차상 문제는 여기서도 지적되고 있다.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 주민을 설득하고, 시의회와 협의회 절차를 이행하라.’ 뜻하지 않은 법률적 문제도 생겼다. 백석업무빌딩의 용도다. 기존에 허용된 빌딩의 용도는 벤처기업 집적시설이다. 행정 청사인 시청 건물로 활용하기 어려웠다. 초기에 시가 챙겼어야 했다. 형사사건으로 비화할 부담도 간단하지 않다. 시가 종전 건물주에게 기부채납 지연 배상금을 청구했다. 456억원을 청구했는데 법원은 262억원만 인정했다. 시가 비워 놓은 1년 치를 삭감됐다. 시 의회는 시장의 배임을 주장한다. 논쟁을 접고 차분히 생각해보자. 청사를 옮기려 한 당초 이유가 뭐였나. 언제 기울지 모를 안전진단 D등급이다. 관공서 기준의 51.1%인 협소한 공간이다. 부서 70%가 다른 건물에 나가 있다. 이 중에 단 한 가지도 개선된 게 없다. 하루가 급한 현안이다. 정치적 셈법에 매달릴 시간이 있나. 하루 빨리 대안을 내고 건설적인 토론에 들어가야 한다. 낡고 협소한 청사로 생기는 시민 불이익은 시의회와 시 모두의 책임이다.

[사설] ‘오픈런’ 천원주택... ‘로또’ 청약 안 되게 공급 늘려야

인천형 저출생 주거정책 ‘천원주택’이 첫 신청에 들어갔다. 첫날부터 문을 열기도 전 줄을 선다는 ‘오픈런’ 을 보였다. 하루 임대료, 1천원은 파격이다. 저출생을 넘어 청년 투자이기도 하다. 개점 첫날의 오픈런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저성장 시대 우리 청년들이 마주한 어려움들이다. 취업 결혼 출산 등 평범한 생애 과제조차 힘겨운 그들이다. 천원주택은 매입임대주택과 전세임대주택으로 나뉜다. 인천시가 매입하거나 전세 계약한 주택을 청년층에 임대한다. 매입임대주택은 하루 1천원, 월 3만원 임대료로 거주할 수 있는 집이다. 최장 6년 동안 살 수 있다. 이후에는 월 임대료 28만원에 14년까지 지낼 수 있다. 입주 대상은 신혼부부(혼인 7년 이내), 예비신혼부부, 한부모가정, 신생아 가구 등이다. 소득 기준은 도시근로자 가구당 월평균 소득의 130%(맞벌이 200%) 이하다. 자산 기준은 3억6천200만원 이하다. 이들 항목별 점수 등을 따져 최종 입주 순서를 정한다. 올 하반기 시작할 전세임대주택은 신혼부부가 85㎡ 이하 시중 아파트·빌라를 직접 고른다. 그러면 시가 집주인과 전세계약을 하고 신혼부부에게 공급한다. 전세보증금이 2억4천만원 넘으면 초과분만 본인 부담이다. 지난 6일부터 매입임대주택 500가구 신청에 들어갔다. 이날 하루만 628명이 신청했다. 이어 7일에도 497명이 신청을 마쳤다. 오는 14일까지 신청이 이어지면 경쟁률이 최소한 5 대 1은 넘으리라는 전망이다. 첫날 인천시청 중앙홀에는 오전 6시부터 번호표를 뽑아 가기도 했다. 인천 청년만이 대상이 아니다. 이번 신청 대열에는 서울 경기 등 타 지역 청년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인천 신혼부부가 상대적으로 혜택을 덜 받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최근 신혼부부의 무주택 비율이 53% 정도다. 따라서 인천에서만 천원주택 신청 대상자가 5만가구에 이른다. 전국적으로는 50만가구다. 인천시는 매년 1천가구씩, 2030년까지 6천가구를 공급한다. 이번 오픈런을 볼 때 공급이 크게 부족해 보인다. 일단 흥행에는 성공했다. 정책도 수요층 주목이 필요한 브랜드 정책 시대다. 인천을 넘어 전국으로 확대한 명분도 있을 것이다. 그들 역시 우리 미래 세대이고 인구 유입 효과도 있다. 그러나 공급이 너무 따라 주지 못한다. 자칫 ‘로또’ 청약으로 흐를 수도 있다. 자격을 갖추고도 밀려난 청년들의 실망도 걱정이다. 수많은 저출생·청년 복지들을 천원주택에 집중하는 방안도 가능할 것이다. 천원주택에 대한 중앙정부의 액션을 기대하는 이유다.

[지지대] AI 디지털교과서 유감

인공지능(AI) 바람이 거세다. 교육계에서는 지난해부터 AI 디지털교과서(AIDT)에 대한 논의가 뜨거웠다. 교육부가 AIDT를 2025년부터 초등 3·4학년, 중 1, 고 1부터 단계적으로 적용한다고 발표하면서다. 과거 서책형 교과서를 웹 브라우저에서도 볼 수 있도록 한 디지털교과서가 있었다. 여기에 인공지능을 활용해 학습자 맞춤형 자료가 실시간 지원될 수 있는 기술이 탑재되면서 AI 디지털교과서로 이름 지어졌다. 이후 교사, 학부모들의 찬반 논란이 가열됐고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교과서 지위가 아닌 교육자료로 격하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단독으로 통과시켰다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로 다시 국회로 돌아갔다. 우여곡절 끝에 학교장이 채택 여부를 결정하게 됐다. 민주당 백승아 의원실이 교육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17일 기준 경기도내 학교의 44%가 AIDT를 채택하거나 채택할 예정으로 전국 32.4%에 비해 높은 수준이라고 한다. 혼란의 가장 큰 원인은 누구도 AIDT의 실체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AIDT가 검정을 통과하면서 박람회와 온라인을 통해 공개되고 올해 1월 AIDT 검정 청문회를 거치면서 겨우 사용 후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교사와 학부모, 학생들을 혼란스럽게 만든 교육당국에 책임을 물을 수도 있지만 AI라는 거대한 시스템 앞에 보지 못한 것,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두려움이 혼란을 더욱 키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3월 새 학기다. AIDT를 대면하게 된 학생들에게서 어떤 평가가 나올지 자못 궁금하다.

[천자춘추] 꽃이 주는 치유와 위로

꽃은 단순히 시각적인 아름다움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현대인의 스트레스와 정서적 고립감이 점점 심화되는 시대에 꽃은 사랑, 우정, 감사 등의 마음을 표현하거나 우리의 감정에 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연 치료제와 같다. 블루벨, 아이리스 같은 파란색 꽃은 안정감과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고 해바라기와 튤립의 노란색 꽃은 활기를 불어넣으며 행복감을 증진시킨다. 장미와 라벤더 같은 향기로운 꽃은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신경계를 안정시키며 기억력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 이러한 꽃의 효능은 단순히 과학적 연구에서만 증명된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많은 사람이 체험하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최근 불면증으로 고생 중인 지인을 만났다. 그분에게 라벤더와 재스민 향이 섞인 꽃다발을 추천했더니 몇 주 뒤 그는 이 꽃들이 침실의 분위기를 바꾸고 더 깊은 숙면을 취하는 데 도움이 됐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꽃은 단순히 한 장소를 꾸미는 역할을 넘어 우리의 삶에 깊이 스며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무실 책상 위에 작은 화분을 두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줄이고 집중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특히 색상에 따른 심리적 효과는 공간의 분위기를 크게 좌우한다. 파란색 계열은 냉정함과 집중력을, 노란색과 오렌지색은 창의력과 에너지를 활성화시킨다. 향기로운 꽃은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긴장을 푸는 데 효과적이다. 아로마테라피에서 자주 사용되는 라벤더와 로즈메리는 감정을 안정시키고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 주며 티트리, 유칼립투스는 면역력 증진에 도움을 준다. 이렇게 다양한 허브는 반려식물로 키우는 재미도 느낄 수 있고 스트레스 및 불면증 완화와 숙면 유도, 피부 진정, 통증 완화, 항균 효과까지 정말 인체에 유익하고 자연 치유적인 효능이 많다. 실내 환경을 변화시키는 꽃의 배치법, 다양한 색상의 심리적 효과, 특정 향기가 감정 조절에 미치는 영향 등 꽃 한 송이로도 우리의 삶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경험해 보길 추천한다.

[문화산책] 필름의 빛과 그림자

1937년 미국 뉴저지주 리틀페리에 있는 20세기 폭스사의 영화 보관소에서 대규모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의 원인은 나이트로셀룰로스의 자연 발화 현상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영화 필름은 나이트로셀룰로스를 기반으로 한 셀룰로이드로 만들어졌다. 이 화재로 유실된 영화 필름의 규모는 4만점이 넘을 정도로 막대했고 이는 1930년 이전에 제작된 영화의 75%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이트로셀룰로스는 1845년 독일 화학자 크리스티안 프리드리히 쇤바인이 바닥에 엎지른 질산과 황산을 면으로 훔친 후 말리다가 우연히 발견한 물질이다. 언뜻 보면 솜처럼 생겨 안전해 보이지만 건코튼(gun cotton)이나 면화약이라고도 불릴 만큼 위험한 화약 물질이기도 하다. 나이트로셀룰로스는 특정 용매에 녹이면 젤 상태가 되거나 단단한 고체 상태로 변하는 특성도 있다. 1846년 프랑스 출신의 루이 니콜라스 메나르는 나이트로셀룰로스를 에탄올로 녹여 ‘콜로디온’이라는 젤 상태의 물질을 만들어 냈다. 1847년 미국 출신의 의사 존 파커 메이너드는 이를 피부 상처 보호제로 처음 사용했다. 특히 1851년 프레드릭 스콧 아처는 콜로디온을 사진 감광제를 유리판에 고정하는 도포용 접착제로 사용하기도 했다. 콜로디온이라는 명칭은 접착제라는 뜻의 그리스어 ‘콜로디스’에서 온 말이다. 1869년 존 웨슬리 하이엇은 나이트로셀룰로스를 콜로디온보다 더 단단하고 투명한 물질로 만들어 이를 ‘셀룰로이드’라 명명하고 1870년 미국에 특허를 출원한다. 1888년 존 커버트는 당시 사진 필름의 유리판 베이스를 하이엇의 셀룰로이드로 대체했다. 이듬해인 1889년 조지 이스트먼은 커버트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사진 촬영 방식을 더 쉽게 롤 형태의 필름으로 감아 쓰도록 만들었다. 초기 롤 필름의 폭은 기술상의 이유로 70㎜였다. ‘이스트먼 코닥 필름’은 그렇게 시작됐다. 1893년 윌리엄 케네디 로리 딕슨은 이스트먼의 70㎜ 사진 촬영용 롤 필름을 35㎜ 폭으로 잘라 만든 영화용 롤 필름으로 최초 영화를 촬영했다. 이 기록은 상영 방식의 차이 때문에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 발명에 가려졌다. 하지만 필름의 표준 규격인 35㎜는 딕슨의 필름에서 유래한다. 이런 필름의 운명은 제1, 2차 세계대전을 마주하면서 급변했다. 이를테면 2차대전에서는 막판 전세가 불리해진 일본이 백린탄 등의 생산을 위해 수많은 나이트로셀룰로스 필름을 수거해 갔다는 정황이 기록돼 있기도 하다. 1930년대와 그 이전의 한국 영화 필름이 유독 남아 있지 않은 이유는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어쩌면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을 아직도 못 찾고 있는 이유 역시 불행히도 이런 사정이 있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1930년대 이전 영화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엄청난 수난을 겪은 것이다. 다시 1937년 미국 뉴저지주 리틀페리. 20세기 폭스사는 재앙에 가까운 그 화재를 처음에는 가벼이 여겼다. 영화들의 사본이 다른 곳에 있으리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50년대에 들어 초기 무성영화의 대량 유실이 확인되면서 영화 보존의 중요성이 학계와 영화계에서 제기되기 시작했다. 결국 테라 바라(40편 중 34편 소실), 톰 믹스(85편 중 73편 소실), 셸리 메이슨(16편 모두 소실) 등 무성영화 시대의 최고 스타들은 그 화재의 가장 큰 피해자임이 밝혀졌다. 존 포드 감독의 무성영화 역시 60편 중에서 10편만 남아 있을 정도다. 1928, 1929년에 제작된 유성영화는 최소 50편 이상이 사라졌다. 당시 유실된 영화들이 지금까지 잘 보존돼 있었다면 그들과 그들 작품은 물론이고 영화 자체의 문화적, 역사적 평가는 많이 달라졌을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의 탄생에 일조한 나이트로셀룰로스는 영화의 수난을 안겨준 원흉이면서 영화가 가진 기록문화 유산의 가치를 일깨워준 빛과 그림자라 할 수 있다.

[경기시론] 저성장 극복... 사회경제 배려와 함께해야

올해 들어 각종 경제지표가 마이너스 수치를 보이고 있다. 한국 경제가 원래 어두웠는데 여기에 정치적 불안정이라는 요인이 가미돼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 정치적 불안정은 그 진폭이 크든 작든 어떤 형태로든 조만간 해소될 것이다. 그런데 경제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특히 단기간에 해소될 성질의 것이 아니기에 우리를 몹시 불안하게 만든다. 경제 문제 중 대표적으로 저성장이 요즘 화두다. 한국은행 등 여러 기관의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지난해 말 2.1%이던 것이 이제는 1.5%까지 조정됐다. 대외 여건 악화로 수출이 위축되고 제조업 부진은 설비투자를 감소시켜 고용에도 영향을 끼치는 실정이다. 내수 둔화와 경기 부진의 지속성을 벗어나기 위해 금리를 탄력적으로 조정해야 하는데 이는 환율 변동과 연동되기에 이마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이러다 일본의 장기 정체가 우리의 현실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저성장을 극복하는 주요 방안으로 기술혁신이 자주 거론된다. 기술혁신이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경제를 성장시킨다고 보기 때문이다. 기술혁신은 경제성장만 아니라 개개인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고 한다. 예를 들어 최근 부각되고 있는 인공지능이 기술적 특이점에 도달하는 일반형 인공지능이 되면 엄청난 생산성 증가를 보일 것으로 예측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미국과 중국은 인공지능을 놓고 사활을 건 기술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 과학기술의 변화와 그에 따른 사회적 변화 흐름은 거역하기 어려운 법인 만큼 이 흐름을 타야 하고 한국도 여기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한국 경제를 저성장에서 성장으로 전환시키는 주요 동력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다만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이러한 기술혁신 또한 숱한 사회적 문제 발생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술혁신이 생산성 향상을 추동하는 것은 좋은 일이나 여기에는 일자리 문제, 먹고사는 생계 문제가 수반돼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버 택시 도입이 우리나라에서 기존 택시업자들의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좌절한 적이 있었다. 이는 기술혁신이나 경제적 효율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먹고사는 문제 해결과 사회적 이해를 조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편 일자리가 사라지기도 하지만 새로 생긴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런데 기술혁신이 이루는 높은 기술 수준을 감안할 때 새롭게 생긴 일자리가 아무에게나 쉽게 허용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기에 중단기적으로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이 더 크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더군다나 일반형 인공지능이 보편화되는 시기도 머지않다고 한다. 이 경우 특히 중산층 일자리나 전문직 일자리까지도 조만간 대대적인 변화가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전통적으로 제조업 및 남성 중심 고용의 산업화에 오랜 기간 고착돼 왔다는 것이다. 이는 중산층과 전문직을 포함해 대부분의 일자리가 고용을 통한 소득 확보 장치이고 이로써 자신의 생계 위협에 대비했다는 것을 말한다. 사회보험이나 공공부조 등이 있다고 하나 아직은 미미한 보완 장치에 불과하다. 그런 만큼 일자리의 위협은 목숨을 건 싸움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기술혁신에 의한 경제성장은 소수의 특수한 계급이나 계층을 제외한 대다수가 불안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위험 사회에 대한 합당한 대비책이 마련돼야 가능해 보인다. 실직자에게 일자리를 보장하든지 사회보장성 소득을 충분히 보장하라는 주장이 비록 급진적이긴 하나 우리 사회의 주요 담론이 된 적도 있었다. 최근에 대안으로 대규모의 세계적인 기술혁신 기업을 만들어 그 지분의 일부를 국민들에게 나눠 주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지금은 이 모든 것에 대한 열려 있는 자세와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기고] 여주는 봉인가, 한강법 폐지하라

여주는 오랜 세월 중첩된 규제 속에서 희생을 강요받아 왔다. 특히 수도권 상수원 보호를 명분으로 한강 상류 지역에 적용된 각종 규제는 지역 발전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그중에서도 ‘한강수계 상수원 수질개선 및 주민지원 등에 관한 법률’, 즉 한강법은 시대착오적인 규제로 작용하며 주민들의 재산권과 생존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 ▲여주를 옥죄는 불합리한 규제 한강 팔당댐은 원래 전력 생산을 목적으로 건설됐으나 이후 수도권 상수원 역할을 맡으면서 여주를 비롯한 팔당 상류 7개 시·군이 강력한 규제에 묶이게 됐다. 1972년 개발제한구역 지정, 1975년 상수원보호구역 지정, 1994년 특별대책지역 및 자연보전권역 지정, 1999년 수변구역 지정 등 각종 규제가 연이어 도입되면서 지역주민들은 점점 더 큰 불편을 감내해야 했다. 상수원 보호라는 명분 아래 주택 신축 제한, 공장·연구시설 입지 제한, 관광지·택지 개발 금지 등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들이 유지되고 있다. 팔당 상류지역의 주민들은 수도권 시민들을 위해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보상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한강법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1999년, 주민들의 거센 반발 속에서 정부는 한강법을 제정하며 일정 부분 지원책을 마련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팔당 상류지역 주민들에게 피해 보상의 의미로 ‘주민지원사업비’를 지급하고 물이용부담금제도를 도입해 하류지역 시민들이 상류지역의 희생에 일정 부분 기여하도록 했다. 하지만 2025년부터 주민지원사업비를 9% 삭감하기로 결정했다. 여주시는 연간 8억6천만원의 예산이 감소된다. 주민들의 피해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보상은 오히려 줄어드는 것이다. 더욱이 한강수계기금은 예산이 남더라도 타 용도로 사용할 수 없는 목적세다. 주민들의 희생을 당연시하면서 보상만 삭감하는 것이 과연 정의로운 일인가. ▲환경은 개선됐는데, 규제는 그대로 팔당호와 남한강의 수질은 1급수를 유지하고 있으며 하수처리 기술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 주민들도 상수원 보호를 위해 적극 협조해 왔다. 하지만 여전히 한강법은 제정 당시의 틀을 유지한 채 변함없이 지역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정부는 2013년 ‘수질오염 총량관리제’를 도입하며 특별대책지역 지정 고시 폐지, 대규모 개발 허용, 주민지원사업 확대 등을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오히려 주민지원사업비 삭감이라는 조치를 통해 상류지역 주민들의 희생을 더욱 강요하고 있다.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는 무조건적인 규제가 아닌, 현실적인 수질관리 정책이 필요하다. 하수처리 기술을 더욱 발전시키고 오염방지시설을 확충하며 친환경 농자재 보급과 축산분뇨 공공자원화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상류 주민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불합리한 구조를 유지하는 것은 더 이상 정의롭지도, 효과적이지도 않다. 이에 한강법 폐지를 강력히 촉구한다. 이제 여주시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한강법 폐지 여주시 범시민 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폐지 운동에 돌입할 것이다. 한강법을 폐지하고 그 이후의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특히 △주민지원사업비 삭감 철회 및 증액 △주민지원사업비 용처 확대 △주민 소득사업 허용 △중첩 규제 완화 등을 강력히 요구한다. 여주 시민 여러분, 우리는 더 이상 희생만을 강요당할 수 없다. 수도권 시민의 맑은 물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오랜 세월 희생해 왔지만 이제는 우리의 정당한 권리를 되찾아야 할 때다. 한강법 폐지를 위해 여주시민의 적극적인 지지와 동참을 부탁드린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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