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지방정부, 민생경제 희망 씨앗 뿌려야

지난 3일 충격적인 통계자료가 발표됐다. 민생경제 상황을 보여주는 작년 소매판매액지수가 21년 만에 최대 폭으로 감소한 것이다. 특히 3년 연속으로 지수가 감소한 것은 통계 작성 이래 최장 기간이다. 내수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다 보니 서민경제의 근간인 자영업자의 폐업은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 후 실업급여를 받은 자영업자 수는 지난 4년보다 2.3배나 늘어나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가장 많은 인구가 몰려 있는 경기도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경기도시장상권진흥원의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자영업자의 1년 생존율이 83%에 달했으나 2024년에는 76.8%로 크게 떨어졌다. 올해 1월에만 도내 자영업자 수는 7천명이나 감소했다. 설상가상으로 윤석열 불법 계엄이 식어가는 경제에 얼음물을 끼얹었다. 영국의 캐피털이코노믹스는 계엄의 영향으로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로 끌어내렸다. 계엄의 여파로 중앙정부가 제대로 손을 쓰지 못하는 사이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지방정부의 발걸음은 분주하다. 경기도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정책사업인 ‘통큰 세일’의 예산을 지난해 40억원에서 올해 100억원으로 증액했다. 전통시장 상인들의 반응이 뜨거웠기 때문이다. 통큰 세일의 효과는 숫자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사업 대상 재래시장의 매출액이 27.5%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의회 더불어민주당이 설 명절을 앞두고 방문한 재래시장에서도 상인들은 통큰 세일에 대한 호평을 이어갔고 사업 확대 요청도 빗발쳤다. “계엄의 여파로 민생과 경제가 참담한 수준이지만 지방정부와 시민이 제자리를 굳건하게 지킨 덕분에 혼돈의 시대에도 희망을 찾을 수 있었다. 주민들이 몸소 체감할 수 있는 우수 민생정책을 지방에서부터 확산할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으자”. 지난달 27일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에서 열린 전국자치분권민주지도자회의(KDLC) 정책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결의한 내용이다. 전대미문의 재앙인 코로나 사태 당시 지방정부는 ‘드라이빙 스루 검사소’ 같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K-방역을 이끌었다. 중앙집권적 권력의 폐해로 발생한 계엄 사태 속에서 지방정부가 민생경제에 희망의 씨앗을 뿌려야 한다.

[말글 풍경] 외래어를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 下

우리 외래어 표기법은 원음주의(原音主義)를 뼈대로 한다. 한자(漢字)를 공유하는 대표적인 두 나라 일본과 중국에도 예외를 두지 않았다. 곧 중국어·일본어 표기를 글로벌 언어 체계와 함께 다룬 것. 동양적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았고 한국어의 문자 및 음운체계에 예외적 허용을 거절했다. 물론 한중일은 역사·정치·문화가 다른 여느 나라에 비해 유사하고 밀접하다. 그러나 모름지기 어문규범을 관통하는 일관된 정신, 간결성·체계성·통일성은 그 어떤 것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1988년 개정된 이래 현재까지 시행 중인 외래어 표기법(문교부 고시 제85-11호)은 오롯하다. 일부 기관·단체명·상호 등의 표기가 생경하고 조악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어문규범 자체를 함부로 손대는 건 근시안적이다. 중국·일본 인명·지명의 한국음화(韓國音化)는 더 큰 부작용을 낳는다. 중국어를 잣대로 문제를 짚어보자. 첫째, 난삽한 한자의 범람 문제다. 우선 인명. 중국인 이름을 우리 식으로 발음하려면 그 한자를 독음(讀音)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대다수 국민에게 한자 읽기는 여전히 큰 부담이다. 모택동(毛澤東)·등소평(鄧小平)·주은래(周恩來)의 친연성에 함몰돼 요즘 화제인 인공지능(AI) 기업 딥시크의 주역 량원펑과 뤄푸리를 양문봉(梁文鋒), 나복리(羅福莉)로 해야 할까. 중국 인명에 등장하는 한자는 그 범위와 종류가 상상 이상이다. 난삽한 한자들이 우리 눈을 어지럽힐 것이 틀림없다. 따라서 중국 인명을 소리 나는 대로 중국음에 따라 적는 것이 합리적이다. 지명의 경우도 광둥성의 광저우(廣州)를 ‘광주’라 표기하면 경기도 광주(廣州)의 정체성은 난감해진다. 후난성(湖南省)·허난성(河南省)도 호남성·하남성이 돼 그 유사성에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또 이 땅의 수많은 주(州)·산(山)·천(川)으로 끝나는 지명은 뜻 모를 열패감에 사로잡힐 개연성이 농후하다. 둘째, 글로벌화에 어긋난다. 동양권의 인연을 볼모로 세계화를 멀리하는 것은 어리석다. 세계인이 시진핑·라이칭더(대만 총통)라고 하는데 우리만 습근평(習近平)·뇌청덕(賴清德)을 고집할 것인가. 중국 인명·지명의 한국음화는 하나를 얻고 열을 잃는 결과다. 한자를 따로 익혀 그들의 이름과 땅을 우리 식으로 읽으면 끝나나. 그것이 통용되는 글로벌 표준, 곧 이들의 본이름을 따로 기억해야 하는 큰 불편을 감수해야만 한다. 참고로 중국 인명은 신해혁명(1911년)을 기준으로 그 이전 인물은 한국음, 이후 인물은 중국음으로 하는 양해 규정을 뒀다. ‘공자·맹자’를 ‘쿵쯔·멍쯔’로 하기엔 뜨악하지 않은가 말이다. 신해혁명이 기준점인 이유는 봉건 왕조의 몰락, 중화민국의 탄생을 역사 변환의 큰 물줄기로 본 것. 손문(孫文)이 아닌 ‘쑨원’, 원세개(袁世凱)가 아니라 ‘위안스카이’인 이유다. 지명은, 모호하긴 하지만 아주 익숙한 지명일 때 중국음을 인정한다. 북경·상해·대만·대북 등이다. 셋째, 일본어와의 형평성 문제다. 한자를 공유하면서 중국과 일본을 차별하는 것은 우습다. 현 총리 이시바 시게루를 석파무(石破茂)라고 하면 생경하다. 촌상춘수(村上春樹)는 누구인가. 유명인이지만 이제 이 사람을 이런 식의 한국음으로 기억할 필요가 없다. 한국음을 발화(發話)했다고 해서 자주성이 고양되는 게 아니다. 일본어를 말하는 게 아니라 일본 인명을 무심히 독음하는 게 우리 외래어 표기에 걸맞다. 이 점을 망각해선 안 된다. ‘촌상춘수’라 하지 않고 그저 ‘무라카미 하루키’라고 부르면 되는 것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豊臣秀吉),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伊藤博文)의 유혹은 그래서 무효(無效)하다. 지명의 한국음 표기 주장은 더 옹색하다. 찰황(札幌)·충승(沖繩)·횡빈(橫濱)은 과연 어디를 말하는가. 삿포로·오키나와·요코하마면 충분할 터. 우리는 일본어를 말하는 게 아니라 일본 인명과 지명을 우리 표기대로 발음하는 것이다. 그러나 익숙한 지명은 역시 예외를 둔다. 동경·대마도·북해도 등이 속한다. 외래어를 둘러싼 여러 논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일부 개선의 여지도 있으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대목은 무엇이 시대정신에 걸맞고 미래지향적인가에 대한 숙고와 통찰이다.

[사설] ‘추락사’ 못 막은 건설사, 법정 구속 못 피한다

안성 서울세종고속도로 사고는 추락이었다. 교각 위에 올려진 ‘거더’ 6개가 옆으로 밀렸다. 그 위에 올려진 ‘런처’를 옮기는 작업 중이었다. 상판과 함께 작업자들이 추락했다. 사고 원인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런처’ 고정 작업이 부실했다는 얘기도 있다. 워낙 대형 사고여서 사회적 관심이 집중됐다. 사실 우리 주변의 추락사는 생각보다 많다. 많은 경우 사고의 원인은 안전장치 미비다. 작업모, 안전대 등을 착용하지 않는 원시적 사고다. 그 실태를 보자. 지난해 3월 용인시 처인구 주택 건설 현장에서 60대 남성이 숨졌다. 거푸집 고정 작업을 하다가 5m 아래로 추락했다. 지난달 5일에도 오산의 건축 현장에서 60대 남성이 숨졌다. 추락 사고였다. 지난 6일에도 평택의 예술의전당 건설 현장에서 50대 남성이 숨졌다. 역시 추락사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경기도에서 228명이 추락해 숨졌다. 같은 기간 전체 건설 현장 사고 사망자는 288명이다. 무려 79.1%가 추락사다. 큰 사고가 생길 때마다 대책이란 게 나왔다. 작업자의 안전 조치를 더 강제하는 온갖 방안이다. 더 이상 안전 대책을 낼 게 없을 정도다. 채진 목원대 소방안전학부 교수가 이렇게 진단했다. “우리나라 건설 현장의 안전매뉴얼은 완벽에 가깝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근로자들이 편의 등을 이유로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고 있다. 안전 수칙이 잘 지켜질 수 있도록 관리 및 감독을 철저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 결국 문제는 현장의 안전 수칙 준수다. 이 대목에서 모두가 주목해야 할 판결 추이가 있다. 추락사가 발생한 책임에 대한 벌이 엄하다. 26일 인천지법 형사2단독 김지후 판사의 판결이 그랬다. 2022년 7월 한 건설 현장에서 작업자가 13m 아래로 추락해 사망했다. 작업자는 안전모와 안전대를 착용하지 않고 있었다. 김 판사는 작업자를 고용한 건설사 대표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지난 1월 서울지법 형사7단독에서도 유사한 판결이 있었다. 건축 현장에서 작업자가 추락해 사망한 사건이었다. 안전모 미착용, 안전 난간 미설치 등이 확인됐다. 재판부는 대형 건설사 현장 소장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역시 법정 구속했다. 관련 판결의 공통점이 있다. ‘피해자 합의=집행유예’라는 통례를 깨고 있다. 적당한 형량을 기대하던 피고인들에 철퇴를 내리고 있다. “안전조치 의무 위반과 과실 정도가 가볍지 않다”는 뜻을 분명히 판시하고 있다. 건설업계가 주목해야 할 판결 추이다. 인부가 추락사한 건설회사를 법원이 용서하지 않고 있다.

[사설] 주차장 방불 아암대로… 빨리 제2순환선 돌파구 찾아야

해안도로라 불리는 인천 아암대로가 과포화 상태라고 한다. 화물차와 승용차가 뒤엉켜 거대한 주차장을 이룬다. 이런데도 주변 지역 교통량은 계속 늘어난다. 인천신항과 송도국제도시, 시흥 배곧신도시 등의 간선도로다. 생업을 위해 매일 이곳을 지나야 하는 시민들은 비명을 지른다. 이곳 10여㎞ 구간에서 1시간을 까먹기도 한다. 몇 차례 확장 사업으로 더 넓힐 수도 없다.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 건설이 해법이지만 마냥 늦어지니 답답하다.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는 수도권제1순환선의 바깥쪽을 원형으로 도는 노선이다. 전체 12개 구간(263.4㎞) 중 9개 구간은 이미 개통했다. 그러나 인천~안산 등 일부 구간이 빠져 미완성이다. 수도권제2순환선 인천~안산(19.8㎞) 구간 사업비는 1조6천889억원이다. 지난 2018년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했다. 1구간인 시화나래나들목(IC)~남송도IC(8.4㎞) 구간은 올 하반기 착공할 예정이다. 그러나 2구간 남송도IC~인천 남항(11.4㎞) 구간은 아직 노선도 정하지 못하고 있다. 국토부는 처음 송도국제도시 바깥 서해 바다를 통과하는 노선을 계획했다. 그러나 지역주민, 환경단체 등이 반대하고 나섰다. 조망권 등 주거 환경이나 갯벌 습지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국토부는 인천시와 협의해 대체 노선을 마련했다. 원안 노선보다 송도 6·8공구 구역에서 더 먼 바다로 떨어뜨리는 노선이다. 이와 함께 대체 습지 조성 방안도 포함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환경부의 전략환경영향평가를 통과하지 못했다. 환경부는 ‘갯벌 보전과 주민 피해를 고려해 노선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달았다. 이후 국토부는 손을 놓고 있다고 한다. 국토부와 인천시는 인천 구간의 대안 노선 마련을 서로 떠밀고 있다. 국토부는 인천시가 해양수산부, 주민, 단체 등과 협의, 대체 노선을 내놓으면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인천시가 처음부터 이 도로의 부지 확보를 제대로 하지 않은 탓도 지적한다. 그러나 인천시는 사업 주체인 국토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무슨 국가 기간 사회간접자본시설 사업이 이토록 꼬여 있나. 인천시와 국토부, 환경부, 주민, 환경단체가 제각각이니 사업이 나아갈 수 있겠는가. 이미 개통한 인천~김포 수도권제2순환선을 달려보면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국토부는 수도권제2순환선이 하루 5만대의 교통량을 처리할 것으로 본다. 그러면 아암대로 과포화도 해결된다. 그런데도 애꿎은 인천시민들만 꽉 막힌 아암대로에서 한숨을 쉬고 있다. 다른 곳에선 잘만 달리는데 인천만 막혀 있다니.

[지지대] 떨어진 화살을 굳이

최근 아역 출신 여성 배우가 유명을 달리했다. 그를 사망하게 한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 악플. 연예계 악플 잔혹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특히 가수 설리 죽음 이후 비극의 사슬을 끊기 위해 20대 국회에서는 소위 ‘설리법’(악플 방지 법안)이 우후죽순 쏟아졌지만 현재까지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러는 사이 이젠 일반인도 악플의 표적이 돼 고통받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지난해 12월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 유족들에 대한 비난과 조롱이 온라인상에 퍼졌다. 악플은 꼭 인터넷상에 남기는 독화살이 아니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며 타인으로부터 근거 없는 평가와 조롱을 하기도, 받기도 한다. 과거 한 기관에서 실시한 조사에서 직장인 33%가 사내 루머에 휩싸였다는 여론 결과도 발표됐다. 언론사의 생태계를 예로 들자면 ‘A기자가 과거에 무슨 일을 했다더라’ , ‘B경찰 사생활에 대해 내부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라’ 등 동료 혹은 기관 직원들에 대한 평가는 제대로 된 확인 절차 없이 ‘정보보고’라는 미명하에 여전히 남아 있다. 날조된 정보로 인한 구설수에 대처하는 올바른 자세는 무엇일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떤 처지나 상황에 있더라도 초연함을 유지하라는 명언이 있다. ‘벼락에도 멍들지 않는 허공이 되어라’, ‘바다는 소낙비에 젖지 않는다’. 범부중생(凡夫衆生)이 듣기에는 너무나 거창한 문구다. 최근 유튜브를 즐겨 보고 있다. 몇 달 전 우연히 본 한 채널에서 진행자가 악플에 힘들어하는 게스트에게 자신이 본 드라마 대사를 인용하며 건넨 위로의 말이 생각난다. ‘떨어진 화살을 굳이 집어 들어 내 가슴에 꽂지 마라.’ 진실에 닿지도 않는, 숨어서 하는 말에 자해하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문화산책] 여행의 계절, 여행의 위대함을 위하여

3월이다. 사람마다 상황이 다르지만 날씨만 놓고 본다면 여행하기에 좋은 시절이 다시 찾아왔다. 여행,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단어가 아닐 수 없다. 누구나 더 많이, 더 자주, 더 좋은 곳으로의 여행을 꿈꾸며 살아간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러하며, 미래에도 여행은 우리에게 그런 존재일 것이다. 여행은 일상의 공간을 벗어나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며 자기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는 과정이다. 여행이 주는 편익은 오랜 기간 다양하게 증명돼 왔으며 특히 청년 세대의 여행은 각자의 인생에 큰 전환점을 제공하는 계기가 된다. 과거 유럽의 그랜드투어나 신라 화랑의 풍류도는 청년 세대들의 여행이 자아 발견과 성장에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지난해 5월, 스카이스캐너가 Z세대 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기사를 보니 응답자의 약 61%는 이미 부모 없이 해외여행을 경험했으며 대부분 19~21세에 첫 해외여행을 경험한다고 한다. 이들은 ‘새로운 경험과 정신적 충전을 위해, 덜 알려진 여행지보다는 인기 여행지로 떠나고, 스스로 여행경비를 마련해 저렴한 상품을 이용하는 등 가성비를 중요시’한다고 한다. 과거에 비해 젊은 세대의 해외여행에 대한 인식, 접근성, 편의성 등이 얼마나 개선됐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고, 이들의 여행 경험이 그들의 인생에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렇게 해외여행이 보편화된 시대에 부정적인 영향도 적지 않다. 여행 경험 자체가 문화 자본화돼 해외여행 경험 유무가 또 하나의 스펙처럼 활용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다른 이들의 해외여행 사진을 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은 매년 3월20일, ‘국제 행복의 날’에 ‘세계행복보고서’를 발표하는데 작년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행복 수준은 전 세계 143개국 중 52위로 여전히 낮은 수준이고 소득 수준에 따른 행복감의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상황과 별개로 ‘세계행복보고서’에 나타난 뚜렷한 현상 중 하나가 세계 젊은 세대의 행복감이 급격하게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연령대별 행복감 그래프가 대체로 ‘U’자 형태로 젊은 세대와 노년 세대의 행복감에 비해 중장년층의 행복감이 현저히 낮았다. 그러나 지금은 청년들의 행복감이 중장년보다 낮게 나타나고 있으며 유럽 및 미국 등에서는 이의 원인 중 하나를 SNS 이용률 증가로 보고 있다. SNS엔 여행의 기록이 넘쳐난다. 멋진 리조트와 테마파크, 이색적인 자연경관, 여행지의 맛집과 카페를 배경으로 자신의 여행을 과시하는 콘텐츠도 쉽게 발견된다. 여행의 진짜 묘미와 가치는 그런 것에 국한되지 않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리고 그런 게시물을 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을 사람들도 생각하게 된다. 관광 취약 계층에 속한 장애인, 다문화 및 저소득 가정의 아이들이 그들이다. 과거에 비해 다양한 지원제도가 늘었다고 해도 더 세심한 관심이 여전히 필요하다. 여행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안다. 여행이 주는 위대함을. 그 위대함을 더 많은 청년 세대, 장애를 가진 이들도 경험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꼭 해외가 아니어도 우리 주변에 여행 가기에 좋은 곳이 얼마나 많은가. 학교에서부터 다양한 여행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생겨나고 더 쉽게 접근 가능한 정책과 지원사업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이제부터 본격 여행의 계절이니까.

[인천시론] 이처럼 사소한 말들

거칠고 격한 말들이 귀를 찢는다. 전쟁이라는 끔찍한 단어가 휘저어 놓은 일상이 난리다. 내전이니 내란이니 쉽게 내뱉지만 한마디 한마디에 수명을 단축할 무서운 살기가 실린다. 내전이라는 말은 같은 편끼리 죽도록 싸운다는 뜻이다. 같은 편이라면 등을 보여도 안심이 되는 동료거나 이웃이다. 친근한 얼굴로 다가와 칼을 내미는 서스펜스 영화 장면이 관객을 더 전율케 하듯 바깥에서 온 적보다 안에서 만난 예상치 못한 적이 몇 배 더 무섭다. 공포감에 배신감이 더해지고 미련스럽게 당하고 말았다는 자괴감까지 끼어들면 그런 철천지원수가 따로 없다. 전쟁은 정전협정이 가능하지만 내전에는 정전이라는 개념조차 들어서기 어렵다. 전쟁보다 추스르기 어려운 게 내전에서 입은 상흔이다. 상처를 주고받은 이들이 응어리를 풀어야 새살이 돋는 화해를 도모할 수 있다. 말부터 바꿔야 한다. 악마라는 수식어가 너무 쉽게 나오는 정치는 내전을 부르는 선전포고다. 극한 표현을 써대며 먼저 도발한 이가 누구인가를 서로 따질 때, 우리는 도발이라는 단어 주변부터 서성거려 봐야 한다. 남침, 북침, 도발은 붙어 다니는 전쟁 용어 묶음이다. 오죽하면 악마라고 불렀을까 싶은 감정을 다독이는 편에 서야 2차 도발, 3차 도발을 거치며 확전하는 내전을 예방할 수 있다. 국민저항권이라는 오염된 말에 저항하는 말도 필요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소수자 인권이 아니라 기득권자들에게 인권이라는 날개까지 달아 줄 때, 가치 전도에 저항하는 게 원뜻에 부합하는 국민저항이다. 계몽령은 또 어떤가. 계엄이 무력을 사용해 피를 부르겠다는 말이라면 계몽은 국민에게서 주권을 빼앗아 종처럼 부리겠다는 말이다. 똑똑한 주인이 무지한 종에게 한 수 가르치겠다는 속셈이 ‘계몽이라는 영’을 내리게 했다. 정치적 반대자들을 수거한다는 퇴역 군인 수첩 메모야말로 어긋난 말의 정점을 찍는다. 수거는 대상자들에게서 인격을 박탈하고 개체성을 지워 쓰레기 더미로 만든다. 쓰레기조차 분리해서 수거해야 남은 가치를 되살릴 수 있는데 인간 수거에는 그러한 고민조차 없다. 최근에는 폭탄교사라는 교육계 은어가 언론을 타고 퍼져 나간다. 폭탄은 터지라고 만든 대량 살상 무기다. 표현 하나가 평화로워야 할 학교 이미지를 처참하게 훼손해 버린다. 크고 드센 말들이 작은 소리들을 윽박지르고 있을 때 클레어 키건에게서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 대해 듣는다. 주인공 펄롱은 존재감조차 희미한 어린 사람을 억압하는 사회로부터 구해 낸다. 그는 그저 마음에서 벼르고 벼르던 작디작은 말을 건넬 뿐이다. “나랑 같이 집으로 가자. 세라!” 말 한마디가 밤을 낮으로 바꾸듯 세라의 삶을 진흙탕에서 건져 올려 구원에 이르게 한다. 우리네 일상은 거대한 음성들이 지배하는 듯 보여도 대다수 삶은 ‘이처럼 사소한 말들’이 채워 낸다. 다중을 향해 일방에서 쏟아내는 주장들은 떠다닐 뿐 사회적 의미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정작 세상을 움직이는 말들은 펄롱이 들은 나지막한 음성이다. “아저씨, 우리 좀 도와주시겠어요?” 펄롱은 이 소리와 함께 들린 내면의 소리에 행동으로 응답한다. 인천은 도움을 청하는 낯선 음성이 늘어나는 도시다. 낯선 외국어에 익숙해지라고 등 떠미는 ‘외국어 친화 도시’보다 다정하게 말하는 인천은 어떤가? 우리끼리 쓰는 같은 말이 다르고 생경한데다가 거칠어지고 있다. <말에 구원받는다는 것>에 나온 표현을 빌리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 어떤 기분 나쁜 말들이 넘쳐흐르는 데 맹렬한 위기감”부터 느껴야 한다.

[경기시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연대감·정체성은 무엇일까

2021년 법무부는 국내에서 출생한 외국인에게 국적을 부여하기 위해 국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대한민국에서 출생한 자는 ‘부 또는 모(대한민국에서 출생)가 영주자격을 가질 것’과 ‘6세 이하이거나 7세 이상으로서 5년 이상 계속해 대한민국에 주소가 있을 것’이라는 요건을 갖추면 신고 절차를 통해 쉽게 국적 취득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특정 국가 출신의 증가로 인한 정치적 결정이 편향될 수 있다는 여론 등에 부딪혀 입법 추진이 중단됐다. 이러한 논란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연대감과 정체성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민주주의, 법치주의, 인권보호 등 헌법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책임과 의무를 함께 한다는 연대감과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과 국가 간의 법적 유대관계를 규정한 것이 국적법이라고 볼 수 있다. 국적법에 따라 부 또는 모가 대한민국 국민인 사람은 출생과 동시에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다. 해외에서 출생해 교육을 받은 사람이 국내에서 생활할 경우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인한 어려움, 정체성 혼란 등을 겪더라도 혈연이라는 유대를 통해 국민으로서의 연대감과 정체성을 가질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국내 출생자의 부모가 모두 외국 국적을 가지더라도 국내에서 출생해 성장하고 우리나라 교육과정을 이수할 경우 대한민국의 언어, 문화, 헌법적 기본가치 등을 이해하면서 우리 사회에 통합될 수 있다. 그러나 현행 국적법은 그가 미성년자일 때 그의 부 또는 모가 귀화 허가를 신청할 때에만 함께 귀화를 신청할 수 있으므로 부 또는 모가 허가를 받지 않는 한 국적 취득을 할 수 없다. 지난해 11월 이민정책연구원, 서울시, 교육청 등이 함께 개최한 세미나에 참석한 교육 전문가들에 따르면 한국에서 태어나 정상적으로 교육을 받은 이주배경 아동은 한국 언어와 문화에 익숙하고 오히려 부모 국가의 언어와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고 한다. 따라서 이들은 성인이 돼 가면서 차츰 국적으로 인한 정체성 혼란, 소외감, 진로에 대한 불안감 등을 느끼게 된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이주배경을 가진 초·중·고교생 수는 19만3천814명으로 전체 학생 수의 3.8%를 차지한다. 2017년 이주배경 학생 수(10만9천387명)가 전체 학생 수의 1.91%를 차지한 것과 비교할 때 학교에서 이주배경 학생이 차지하는 비중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이주배경 학생 중 부모 중 한 명이 외국인인 ‘국제결혼 가정’의 자녀는 14만6천804명으로 74%를 차지한다. 국제결혼 가정의 자녀 중에서 국내 출생자는 91.8%이고 해외출생자는 8.2%를 차지한다. 그리고 부모 모두 외국 국적을 가진 학생은 4만7천10명으로 이주배경 학생의 24.3%를 차지하며 2020년 21.4%에 비해 증가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와 역사적 경험을 고려할 때 혈연만을 중심으로 대한민국과 법적 유대관계가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우리 사회의 성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혈통주의 원칙과 함께 보충적 출생지주의를 도입한 국가 사례를 보면 독일은 부모 모두 외국 국적을 가진 국내 출생자는 그 부 또는 모가 8년 이상 독일에서 합법적으로 거주하거나 영주권을 가지고 3년 이상 거주하면 출생과 동시에 국적을 취득할 수 있고 복수국적을 갖게 되면 18세가 된 후 5년 이내에 하나의 국적만을 선택해야 한다. 프랑스의 경우 국내 출생자가 13세까지 프랑스에 거주하면 16세부터 18세까지 국적을 신청할 수 있다. 영국은 부 또는 모 중 한 사람이 영주권을 소지한 경우 출생과 동시에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같은 외국의 입법 사례, 보충적 출생지주의를 도입할 경우의 우려 사항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때 다음과 같은 입법 방향을 고려할 수 있다. 첫째, 국내 출생자가 국내에서 성장하고 교육을 이수했는지를 살펴 국민으로서의 연대감과 정체성을 갖추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에서 출생한 후 대한민국에서 13년 이상 거주하면서 초등 교육과정을 이수하거나 초·중등 교육과정을 6년 이상 이수한 경우 16세부터 18세까지 특별귀화 신청을 허용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 귀화자는 병역의무가 면제되지만 동 대상자에게는 병역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국민으로서의 연대감과 정체성을 강화할 수 있고 부족해지는 인적 자원을 보충할 수 있다. 둘째, 이 제도를 도입할 경우 우리나라로 원정출산을 오는 문제와 부모가 아동을 국내 정주 수단으로 이용하는 문제를 고려해 우선 부 또는 모가 영주(F-5) 체류자격을 가진 경우로 한정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국회, 정부, 민간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토론을 통해 국민의 대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세부적인 방안을 마련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천자춘추] 파파 하이든의 런던 교향곡

매섭고 혹독한 겨울이 지나면 따뜻한 생명력이 다시 꽃피우는 봄이 온다. 무엇인가 새롭게 출발하고 싶지 않은가. 따뜻하고 자유로운 생명력을 만끽하고 싶은 봄의 시작 즈음 하이든의 런던 교향곡들을 감상해 보면 어떨까. 하이든은 생의 대부분을 에스테르하지 가문에서 음악감독으로 고용돼 성실하게 일하며 차근차근 명성을 쌓아 올렸다. 니콜라스 에스테르하지가 세상을 떠난 후 거의 60세가 돼서야 에스테르하지 가문에서 벗어나 빈에서 자유롭게 활동했던 하이든은 이때 런던의 음악흥행사 잘로몬의 초청을 받아 런던 청중을 위해 93번에서 104번까지 소위 런던교향곡을 작곡했다. 이 12개의 런던교향곡은 하이든 교향곡의 정수로 일컬어지는 걸작이다. 런던교향곡 중 느린 악장의 약박에 갑작스러운 포르티시모의 음향 효과를 넣어 의도적으로 사람들의 마음과 집중력을 사로잡은 94번 놀람교향곡은 새롭고 신선한 요소를 재치 있게 풀어낸 작품이다. 그런가 하면 100번 군대교향곡은 2악장 알레그레토에 이전까지의 교향곡 편성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던, 고전주의 시대 교향곡으로는 획기적인 다양한 타악기가 등장한다. 트라이앵글, 심벌즈, 베이스드럼이 등장하고 트럼펫은 군대 신호를 연상하게 하는 팡파르를 연주한다. 4악장의 주요 선율은 영국민속무곡집에 실렸을 정도로 이 교향곡은 런던 청중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또 101번 시계교향곡은 2악장에서 시계추처럼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반주음이 끊기지 않고 그 위로 하이든 특유의 소박하지만 우아한 선율이 따뜻하게 노래한다. 이처럼 런던교향곡은 청중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새롭고 신선한 생명력과 특유의 유머감각이 돋보이면서도 교향곡의 아버지라 불리는 하이든답게 탄탄한 구성미와 연륜이 느껴진다. 이와 더불어 따뜻한 인품과 모범적인 통솔력으로 ‘파파 하이든’이라 불리던 그의 품격이 배어 나오듯 담겨 있어 시작되는 봄, 누구나 듣기에 매력적인 작품이라 확신하며 선뜻 권하고 싶다.

[기고] 지도자의 철학

비록 어제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오늘일지라도 슬기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법구경에 심연이 청명하고 조용한 것처럼 양식은 사람의 도를 듣고 빈(貧)을 배워 그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슬기로운 지도자는 편파적인 일에 동요하지 않고 직면한 문제를 대국적으로 판단해 난관을 극복한다. 어리석은 지도자는 눈앞의 일에만 사로잡혀 당황하거나 허둥대다가 일을 그르친다. 사람들은 특히 재산, 지위, 명예 등을 추구하기 마련이지만 사리 판단을 하는 자신을 잃어버리고서는 그 무엇도 할 수 없다. 갈등 속에서 서로의 이익을 위해 닫힌 문을 열지 못하고 상대방에게만 양보와 이해를 요구한다면 문제의 해결은 멀어질 수 밖에 없다. 화해만이 추운 겨울의 봄에 눈 녹듯이 풀릴 것이다. 자신을 돌아보는 겨울 추위와 같은 아픈 매를 스스로 때림으로써 아픔과 기쁨의 가치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무겁고 준엄한 자세로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맞고 선 나무의 가르침을 배워야 한다. 사람의 생각은 어디라도 갈 수 있다. 그러나 어디로 가더라도 자기 자신보다도 더 소중한 것은 발견할 수 없다. 겨울이 추운 것은 따뜻한 사람들의 온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법이 옳지 않은 도구가 돼서도 안 된다. 법이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닌 사람이 편히 살아가는 울타리가 돼 줘야 한다. 옛날 성스럽고 현명한 군주들은 자신에게 원인을 찾아 행동했다. 자신을 위해 마음을 수행하듯 나라를 다스리면 그것이 최선이었다. 군주의 품행이 단정한데 나라가 안정되지 못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지도자는 오직 모든 사람들이 필요한 철학이 있어야 한다. 중국 당나라 태종은 현명하고 유능한 사람만 뽑아 정사를 맡겼다. 신하들의 혹독한 충고도 받아들였다. 어쩌다 신하들의 지나친 충고에는 칼을 뺐다가 집어넣기를 300회가 넘었다고 한다. 그렇게 참고 경청한 날은 편히 잠을 잘 수 있었다. 옳고 그름의 직언을 받아들이는 리더십이야말로 지도자의 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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