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특혜가 답이다

“대한민국은 완전히 망했네요.” 조앤 윌리엄스 캘리포니아대 명예교수가 한국의 저출생 실태를 듣고 머리를 부여잡은 채 한 말이다. 현실이 그렇고, 미래는 암담할 따름이다. 이러다가는 국가의 존립 자체도 어려울 수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대한민국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은 0.75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합계출산율이 1.0명 미만이다. 저출생으로 인한 참담한 예측은 인구 추이에서도 드러난다. 세계 인구는 2024년 81억6천만명에서 2072년 102억2천만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같은 기간 우리나라의 인구는 5천170만명에서 3천600만명으로 감소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줄어든 인구의 절반은 65세 이상 노인이라는 전망은 더욱 충격적이다. 손 놓고 절망할 시간이 없다. 인천시의 사례를 보자. 2023년 인천시의 합계출산율은 0.69명으로 전국 평균(0.72명)보다 낮았다. 그런데 지난해에는 0.76명으로 상승하며 전국 평균(0.75명)을 넘어섰다. 1년 만에 나타난 이 성과에는 인천형 저출생 정책 제1호 ‘아이(i) 플러스 1억드림’의 역할이 컸다. 지난해부터 시행된 이 정책은 △임산부에게 교통비 50만원을 지원하는 ‘임산부 교통비 지원’ △1세부터 18세까지 중단 없이 지원하는 ‘천사지원금(연 120만원·1~7세)’ △‘아이(i)꿈수당(월 5만~15만원·8~18세)’ 등을 통해 출산과 육아에 대한 부담을 경감시켰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도 미성년 자녀를 3명 이상 둔 가족은 6월부터 인천공항 등에서 우선출국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고 ‘든든전세’ 입주사 선정 시 신규 출산가구에 대한 가점이 상향되는 등 출산·다자녀 가정에 대한 주거 분야 우대를 강화한다고 밝혔다. 국가 존망이 달린 중대 기로에선 출생률 향상에 선택적 복지를 통해 특혜인 것만큼 많은 지원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100년 뒤에 대한민국이 없어지기 전에 말이다.

[삶, 오디세이] 출가적 일상

불교의 수행자를 ‘출가자’라고 부른다. 여기서 말하는 출가(出家)는 ‘집을 떠나감’을 의미한다. 그래서 과거부터 출가자를 속세를 떠나 산 속으로 들어간 사람이나 은둔 수행자와 같이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는 출가해 깨달음을 얻은 후 단 한 번도 깊은 산이나 아무도 찾지 않는 곳에서 머물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이 사는 마을과 성을 찾아 가르침을 전하고 그들의 일상에서의 수행과 변화를 일깨워 줬다. 즉, 우리는 출가라는 개념을 ‘가출(家出)’과 같이 어떤 문제나 불만 등으로 집을 나와 아무도 없는 곳으로 떠난 것과 같이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출가에 대한 바른 설명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기 직전의 장면에 상세하게 나타난다. 특수한 힘이나 신비한 능력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이고, 그 삶을 이어주는 것이 어떠한 법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던 태자 싯다르타는 궁극에 이르러 원인과 결과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삶 속에서 무엇도 영원불변하게 존재할 수 없다는 것에 눈뜨고 ‘연기법(緣起法)’을 깨닫는다. 그러나 그 직전에 자신의 내면에서 항상 자문하고 타협시키며 나약하게 만들던 또 다른 자아인 마왕 파순을 대면하게 된다. 이 마왕 파순은 다름 아닌 자신이 확고부동하게 존재한다고 믿는 그 생각이다. 그리고 이때 싯다르타는 파순에게 ‘집 짓는 자여, 드디어 그대를 만났도다. 이제 그대 두 분 다시 집을 짓지 못하리’라고 한 뒤 그의 항복을 받고 깨달음을 얻어 부처님이 된다. 즉, 파순을 지칭한 ‘집 짓는 자’는 언제나 우리 자신을 가꾸고 만들며 그것이 절대적으로 존재한다고 믿는 바로 ‘나’다. 불교는 ‘무아(無我)’를 말하는 종교로 절대불변의 ‘자신’이라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내가 분명히 여기 있다. 그런데 어떻게 자신이 없다는 것인가.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의 가르침은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에 대한 고정적인 생각에 대한 부정이다. 만약 절대불변의 자신이 있다면 우리는 늙을 일도, 병들 일도, 죽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노병사를 절대로 피해 갈 수 없다. 그리고 태어난 순간부터 사람들과 어울리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고 변화하며 살아간다. 이처럼 피할 수 없는 숙명적 법칙과 계속해서 변화하는 자신 속에 그 무엇도 고정적이고 영원불변할 수 없다는 가르침이 불교의 ‘무아’다. 우리는 오늘 하루도 수많은 사람들과 여러 일을 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 안에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고, 어디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우리는 자신으로서 존재하지만 그 자신은 매일의 삶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찾지 말고 ‘나’를 만들어 가야 한다. 그럼 그 여정의 길에서 나로 인해 나를 변화시키고 나와 함께 맺어진 인연들과 오늘 하루를 참되게 살 것이다. 출가적 일상을 살자. 어제와 같겠지라는 실망을 버리고, 내일도 그렇겠지라는 생각을 지우고, 오늘 하루 매 순간 변화하는 자신을 만들고, 그 길에서 스스로 한 걸음을 내디뎌 오늘로 나아가자.

[생각 더하기] 특혜도 감수해야 한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인천의 별명은 마계다. 마계란 악마의 세상이란 뜻. 지극히 부정적인 별명이지만 젊은이들은 이를 숨기려 하지 않고 축제까지 연다. 지난해 마계인천 축제에 1만여명이 다녀갔다고 입소문이 나면서 공공기관인 부평문화재단도 가세했다. 지난해 ‘부평지하던전’이라는 임시매장을 열었다. ‘던전’은 괴물들의 소굴이라는 의미의 게임용어다. 이는 이행 행동적(Transitive Action) 역브랜드 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소비자의 관찰과 체험으로 캐릭터 및 동기 등을 추론하게 만드는 게 핵심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썩 달갑지는 않다. 2000년대 중반 폐허 상태로 십수년 방치돼 오던 가정오거리 일대의 괴괴한 풍경 때문에 그 별명이 붙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현재 그곳은 루원시티로 탈바꿈했지만 마계의 불명예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도시 곳곳에 방치된 빈 건물, 짓다 만 미준공 공사현장 따위가 원인이다. 민간은 몰라도 공공 부문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건축물들까지 끼어 있는 것은 문제다. 동인천역사, 영종도 리포 카지노, 인천대 제물포 캠퍼스 등이 대표적이다. 공교롭게도 모두 그 지역의 랜드마크다. 민선 8기 인천시는 이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고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동인천역은 일정 성과도 보인다. 문제는 속도다. 인천대 제물포 캠퍼스는 가장 시급하다. 2015년 대학과 전문대가 송도로 이전하면서 건물이 비워진 지 10년이다. 그동안 학교나 인천시는 지금까지 이곳의 활용이나 개발에 관한 어떤 계획도 내놓지 않고 있다. 지역주민들의 성화에 주차장이나 운동장을 개방하는 정도의 임시대책만 내놓고 있다. 시와 학교가 체결한 협약서가 문제다. 시는 2040 도시기본계획에 부지의 일부를 상업용지로, 나머지를 공공시설로 개발한다는 계획을 세워 놨지만 협약서에는 상업용지를 일절 분양(판매)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이 때문에 민간업자들은 입질조차 없고 인천대는 고개만 젓고 있다. 지난해 시와 학교 등이 참여하는 태스크포스팀까지 꾸렸지만 의견 대립은 여전한 것으로 알려진다. 공짜로 땅 주고 ‘개발 특혜’까지 주면 법적 책임 소지가 있다는 시의 입장이 특히 완강하다고 한다. 틀린 소리는 아니지만 다 옳은 말도 아니다. 아이들을 먼저 생각하자. 텅 비어 방치된 건물 주위론 매일 수천명의 학생들이 오간다. 폐쇄회로(CC)TV나 첨단 시건장치 등을 내세우며 안전을 장담하지만 그건 관리자의 생각일 뿐이다. 언제 어떤 사고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환경이다. 우리 아이가 그런 학교에 다닌다 해도 그렇게 법 타령만 할까. 야밤에 제물포역에서 보이는 도화언덕의 풍경은 섬뜩하다. 달리 ‘마계’가 아니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특혜는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공공기관이라면, 특히 학교라면 말이 달라진다. 더 크고 유연하게 보자. 그래서 민선 8기 임기가 끝나기 전에 실시계획이라도 나오기를, 그것으로 멋들어진 도화언덕이 완성되기를, 그게 기폭제가 돼 마계인천의 고리가 완전히 끊기기를 정말 간절히 기대해 본다.

[천자춘추] 2025년에 보는 3·1정신

2025년 삼일절은 비상계엄 사태의 혼돈 속에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지나갔다. 올해가 광복 80주년인 것을 감안하면 아쉬움이 남지 않을 수 없다. 한편 계엄 국면에서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과 실행력은 우리 공동체의 높은 의식 수준을 보여줬으며 이는 106년 전 울려 퍼졌던 독립만세운동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3·1운동은 두말할 나위 없이 일제 식민지배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고 이를 전 국민이 행동으로 보여준 역사적 쾌거다. 단 한시도 일본의 지배를 용납할 수 없다는 결연한 의지를 전 세계에 보여줬다. 당시 발표된 독립선언서에는 조선 독립이 “조선인으로 하여금 정당한 삶을 누리게 하는 동시에 세계 평화와 인류 행복에 필요한 단계가 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단 한 줄도 무력을 사용하자는 표현이 없고 오로지 “인류 공통의 옳은 성품과 이 시대의 지배하는 양심이 정의(正義)라는 군사와 인도(人道)라는 무기”에 힘입어 독립을 주장했다. 어떤 사람은 온건한 독립선언서를 당시 추세였던 민족자결주의에 기댄 독립청원서 수준이라고 분석한다. 초안을 쓴 최남선이 후에 친일파로 변절했음을 꼬집기도 한다. 이런 견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선언서가 우리 민족과 문화에 대한 자긍심 표출과 함께 일본의 부당한 지배를 일갈하고 우리의 도덕적 우위를 극명하게 드러냄으로써 자유와 정의를 위한 운동의 정당성을 설파하고 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위력(威力)의 시대는 가고, 도의(道義)의 시대가 왔음’을 선언한 부분은 우리의 지난한 반독재 민주화 투쟁과 연결된다. 일제의 압박과 구속에서 벗어나는 것은 민주주의라는 시대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과 같은 의미다. 4·19, 5·18, 6·10으로 쌓아 올린 민주주의라는 공든 탑을 일거에 무너뜨리려고 했던 반헌법적 계엄 시도는 국민의 저항에 부딪혀 물거품이 됐다. 이후 탄핵 국면 속에서 보여준 국민들의 열렬한 의사 표현은 “최후의 한 사람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시원하게 발표하라”는 선언서의 내용을 떠올리게 하고 “모든 행동은 질서를 존중하며, 우리의 주장과 태도를 광명정대(光明正大)케 하라”는 부분은 오늘날 비폭력적이고 질서정연한 시위문화를 자리매김하는 지표가 됐으리라. 1919년 3월1일 시작한 만세 시위는 4월30일까지 전국적으로 1천200회 이상 벌어졌다. 가장 많은 인원이 참여했던 경기도에는 곳곳에 많은 3·1운동 유적지와 기념관이 위치해 있다. 화성시의 제암리 순국 유적지와 2024년 개관한 독립운동기념관, 오라니장터 만세운동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김포시 독립운동기념관, 3·1운동 3대 실력항쟁지로 꼽히는 원곡·양성 만세운동을 간직한 안성시 3·1운동기념관 등 많은 관련 시설이 있다. 이번 3, 4월에는 가까운 독립운동기념관을 방문해 3·1정신 속에서 민주주의 수호의 의지를 찾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함께하는 미래] 트럼프 상호관세보다 더 심각한 미국의 경기 침체

취임 후 50일 만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첫 번째 정치적 위기에 직면했다. 감세와 규제 완화를 통한 황금시대를 예고했던 그는 과도기에는 경기가 침체될 수도 있다고 말을 바꿨다. 이러한 말 바꾸기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지난 10일 하루에 다우지수 2.08%, 스탠더드앤드푸어스500 2.7%, 나스닥은 4.0% 폭락했다. 주가 폭락의 직접적 원인은 불황에 대한 우려에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이고 재무장관까지 나서 경제 성장의 둔화 가능성을 시인했다. 이에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들은 경기 침체 위험도를 상향 조정했다. 앞으로 남은 50일 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이러한 우려를 완전히 불식시키지 않으면 그가 주가 상승을 견인할 것이라는 트럼프 풋에 대한 기대가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다. 경기 침체 가능성이 커진 가장 중요한 요인은 관세 인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의 심화다. 계란 한 알이 1달러에 육박할 정도로 폭등하면서 미국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몇몇 국가로부터 계란을 수입하는 상황에 부닥쳤다. 작년 선거에서 핵심 쟁점이었던 인플레이션을 조만간 제어하지 못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 중간선거에서 패배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통치 방식에 대한 불만도 무시할 수 없다. 50일 동안에 트럼프 행정부는 무려 83개의 대통령 행정명령을 통해 경제·외교·국방·원조·이민·정부조직 개혁을 밀어붙였다. 특히 각 부처의 업무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정보가 부족한 정부효율부(DOGE)가 기존 부처의 조직과 예산을 일괄적으로 감축하라고 요구하다 보니 정부효율부와 기존 부처 사이의 갈등 및 반목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정부효율부에 대한 반감은 일론 머스크가 경영하는 테슬라 주가가 하루 만에 15% 급락했다는 사실에 잘 반영돼 있다. 현재 우리 경제는 미국의 경기 침체를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취약한 상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의 전국 50인 이상 508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5년 기업규제 전망조사’에서 ‘올해 경제위기가 1997년보다 심각’(22.8%)하거나 ‘1997년 IMF 위기 정도는 아니지만 상당한 위기가 올 것’(74.1%)으로 답변했다. 자영업자 수는 지난해 11월 570만명보다 20만명 이상 감소한 550만명으로 IMF 외환위기가 발생한 1998년의 561만명보다도 적다. 원-달러 환율도 IMF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1,400원대를 석 달 이상 유지하고 있다. 대외 충격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대외경제정책의 초점을 상호관세 협상에서 경기 침체 대비로 빨리 전환해야 한다. 미국의 경기 침체는 관세 인상보다 우리 경제에 훨씬 더 심각한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관세는 특정 수출품의 가격경쟁력을 약화시키지만 경기 침체는 수출 전반을 감소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환율과 금융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정부가 금융시장과 환율을 조속히 안정시키지 못하면 미국의 경기 침체가 제2의 IMF를 불러일으키는 촉매로 작용할 수도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한국은행에 제공한 30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 덕분에 잘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방위분담금 9배 인상을 요구하는 트럼프 행정부가 자금을 지원해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따라서 미국의 도움을 기대하기보다는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자구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경기만평] 한동안 뜸하다 했더니...

[사설] 19년째 미준공 루원시티... 전 재산 들인 입주민은 뭔가

지금 인천 서구 루원시티는 상전벽해를 실감케 한다. 10년, 15년 전 이 일대는 거대한 폐허였다. 대규모 개발 사업을 위해 보상·이주가 먼저 이뤄졌다. 곧이어 글로벌 금융위기가 덮치면서 사업은 실종 상태로 들어간다. 캄캄한 동네의 상가며 빈집들은 마냥 을씨년스러웠다. 지금은 사라진 가정오거리에서는 밤마다 ‘개발 촉구’ 촛불 시위가 열렸다. 강산이 바뀔 만큼의 세월이 지나고서야 달라졌다. 이제는 8천여가구의 신흥 신도시로 거듭났다. 인천시의 복합행정청사가 들어서고 서울지하철 7호선 연장 공사도 한창이다. 그러나 이런 겉모습과 달리 안으로는 꼬여 있다고 한다. 준공이 6차례나 미뤄지면서 여전히 미준공 신세라고 한다. 인천시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간의 줄다리기지만 피해는 입주민 몫이다. 루원시티는 지난 2006년 사업이 시작됐다. 2조9천여억원을 들여 인천 서구 가정오거리 일대 90만6천여㎡를 개발하는 사업이다. 표류를 거듭한 끝에 2022년 들어 주민 입주가 시작됐다. 현재 6개 공동주택단지에 8천544가구가 입주해 있다. 그러나 미준공 상태로 인해 입주민들은 토지등기도 없는 반쪽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는 실정이다. 인천시·LH 간의 갈등 때문이다. 인천시는 LH에 대해 경인고속도로·인천대교 구간의 방음벽 설치와 가정중앙시장역의 지하철 시설물 이설을 요구하고 있다. 아니면 준공인가를 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루원시티 사업 도중에 환경·교통영향평가의 기준이 달라진 만큼 이들 추가 시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LH는 그러나 당초의 영향평가 결과와 다르므로 이행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결국 이들 공사에 따른 비용 문제일 것이다. 최소 수백억원이 드는 공사라고 한다. 입주민들이야 이럴 줄 알았겠는가. 주민들은 현재 건물등기만 있을 뿐 토지등기가 없다. 신규 택지에서 분양을 받은 주민들은 지자체가 준공 인가를 내줘야 지번을 받아 등기권을 설정할 수 있다. 건물등기뿐이니 은행 담보대출 한도도 낮다. 금리도 상대적으로 올라간다. 추가 대출을 내려 해도 제한을 받는다. 대부분 주민들이 3년이 넘도록 불완전 등기에 따른 이런 재산상의 피해를 안고 산다. 뒤늦게나마 인천시와 LH가 수습에 나섰다고 한다. 집합건물 등 입주구역을 중심으로 한 단계별 준공 등이다. LH는 이를 위해 부분 준공을 위한 개발계획 변경 절차를 밟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직까지 준공 면적 및 규모 등에 대한 협의도 끝내지 못했다. 도장을 움켜쥔 지자체와 국가 공기업 간 힘겨루기인가. 전 재산을 털어 들어온 입주민들은 무슨 날벼락인가.

[지지대] 캐즘의 사회학<Chasm>

캐즘(Chasm)이란 단어는 원래 지질학 용어다. 땅, 바위, 얼음 속 등에 난 아주 깊은 틈을 설명할 때 사용됐다. 요즘은 새로 개발된 제품이나 서비스가 대중에게 수용되기 전까지 겪는 침체기를 가리킬 때 쓰인다. 초기 시장에서 주류 시장으로 넘어 가는 과도기에 일시적으로 수요가 정체되거나 후퇴하는 단절 현상을 뜻한다. 경제학에서 소비자는 혁신·선각 수용, 전기 다수, 후기 다수, 지각 수용 등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첨단 제품이 출시되면 혁신·선각 수용자는 기술 애호나 잠재적 이익 등을 고려해 구입한다. 전기 다수 및 후기 다수 계층은 실용적인 측면이 증명돼야 구매한다. 기업 관점에서 볼 때 이 두 계층이 사들일 때 비로소 수익성이 좋아진다고 판단한다. 그렇다면 누가 처음 이 단어를 경제 용어로 사용했을까. 실리콘밸리에서 활동하던 컨설턴트 제프리 무어 박사다. 1991년 상반기였다. 그때로 돌아가 보자. 당시 MP3 플레이어가 막 시장에 출시됐다. 이후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와 CD 플레이어 등에 밀려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음원 다운로드 플랫폼이 구축됐고 그러면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MP3 플레이어는 캐즘을 이겨낸 대표적인 제품이었다. 캐즘은 주로 정보기술(IT) 등 첨단 산업에서 발생한다. 해당 산업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한 제품과 서비스를 많이 선보이는데 소비자가 이에 적응하고 가치를 알아보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이 현상을 극복하지 못하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는 점이다. 대다수 벤처기업이 성공하지 못하고 중도에 쓰러지는 건 캐즘을 이겨 내지 못해서다. 이런 가운데 최근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일시적 수요 정체에다 전기차용 배터리도 제대로 공급되지 못하고 있어서다. 최근 정국에서도 이런 현상이 감지되고 있다.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선 꼭 넘어야 할 산이다. 반드시 이겨 내야 한다.

[세상읽기] 대한민국 응급의료의 위기

최근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드라마 ‘중증외상센터’가 큰 인기를 끌면서 우리나라 응급의료체계의 현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 드라마는 외상센터 의료진이 생명을 살리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내며 응급실 과밀화와 의료진 부족, 지역 간 의료 격차 등의 문제를 현실적으로 조명했다. 실제 대한민국 응급의료체계는 지금도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이 절실하다. 우리는 소위 ‘응급실 방랑’ 문제로 인해 중증외상 환자가 의료기관에 수용되지 못해 치료를 받지 못하고 사망한 사건을 종종 접한다. 이는 우리나라 응급실 과밀화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현재 대형 병원의 응급실은 환자로 가득 차 있으며 특히 야간과 주말에는 대기시간이 급격히 증가한다. 경증 환자와 중증 환자가 한 공간에 뒤섞이면서 응급 의료진이 신속하게 환자를 분류하고 치료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중증 환자가 적절한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해 골든타임을 놓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2023년 응급의료 환자 중증도 분류기준(KTAS)을 개선해 경증 환자가 불필요하게 응급실을 이용하는 문제를 줄이고 중증 환자가 신속하게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분류 기준 적용이 일관되지 않으며 병원마다 운영 방식이 달라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다. 일부 병원에서는 경증 환자를 돌려보낼 수 있는 법적 권한이 부족해 응급실 과부하가 지속되고 있으며 응급의료기관 간 협력도 원활하지 않은 실정이다. 이에 정부는 KTAS 적용의 실효성을 높이고 지역 병원 및 야간진료센터의 역할을 강화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에서도 의료진이 극심한 피로와 압박 속에서 일하는 모습이 강조됐듯이 현실에서도 응급실 의료진 부족 문제가 심각하다. 특히 외상외과의 경우 업무 강도가 높고 야간근무 부담이 커 지원자가 점점 줄고 있다. 대한응급의학회에 따르면 응급의학과 전공의 지원율이 해마다 감소하고 있으며 특히 중증외상센터의 경우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진다. 정부는 응급의료진 처우 개선을 위해 응급실 내 인력 배치 기준을 강화하고 추가 수당과 복지 혜택을 확대해야 한다. 또 응급의료 전담 간호사 및 지원 인력을 확충해 의료진의 부담을 덜 필요가 있다. 이와 더불어 의료진의 과중한 업무를 줄이기 위해 응급실 내 환자 분류 및 이송 시스템을 개선하고 119 구급대와 의료기관 간 협력 체계를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응급의료체계는 민간 병원 중심으로 운영돼 수익성이 낮은 응급의료 분야가 점점 위축되고 있다. 이는 곧 중증 응급환자에 대한 의료 서비스의 질 저하로 이어진다. 일본의 경우 정부가 공공 응급의료센터를 적극 운영하고 있으며 독일은 민간 병원이라도 응급의료 분야에 대한 정부 지원이 체계적으로 이뤄진다. 한국도 공공의료기관의 역할을 확대하고 응급의료 관련 예산을 대폭 증액해야 한다. 특히 국공립 응급의료센터를 확충하고 지역 거점 병원의 응급의료 기능을 강화해 수도권과 지방 간 의료 격차를 해소하는 정책이 시급하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는 단순한 의학 드라마가 아니다. 이는 현실에서 생명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의료진의 목소리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응급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응급의료체계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다. 정부와 의료계, 그리고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나서야 할 때다.

[세계는 지금] 오폭보다 더 실망스러운 오폭 대응

지난 6일 발생한 경기 포천 공군 전투기 오폭 사고는 여러모로 충격적이다. 조종사의 좌표 입력 실수가 원인이었다는 점은 매우 실망스럽고 두 차례에 걸친 교정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는 점도 안타깝다. 또 사고 전투기 2대가 미리 정해진 경로와 다르게 비행했는데도 지상 관제팀이나 훈련 통제팀에서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 점도 아쉽다. 그런데 이번 사고와 관련해 가장 불만스러운 대목은 오폭 이후 군 당국의 대응이다. 군사훈련은 실전과 같이 진행돼야 하지만 훈련 중에 치명적인 민간인 피해가 발생했다면 군은 즉시 군사활동 모드를 멈추고 대민 행정 서비스 모드로 전환해야 한다. 최대한 신속하고 투명하게 사실 관계를 알리고 추가적인 손실을 예방하거나 최소화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그런데 사고 이후 군의 움직임을 보면 늑장 대응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관련 보도를 종합하면 사고는 오전 10시4분 발생했지만 합참에 최초 보고가 이뤄진 것은 10시24분이었다. 소방 당국은 이미 10시5분에 주민 신고를 받고 즉각 대응에 나섰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늦은 대응이다. 합참의장이 보고를 받은 시각은 10시40분, 국방부 장관 직무대행에 대한 보고는 10시43분이었다. 전시였다면 합참의장은 중대한 전투 차질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로 30분 이상 전쟁을 지도한 것이다. 국방부 출입기자들이 사고와 관련해 공군의 문자 공지를 받은 것은 11시41분으로 사고 발생 이후 거의 100분이 지난 뒤였다. 합참의장 보고 시간을 기준으로 하면 61분 늦게 공지 문자가 온 것이다. 이해가 불가능할 정도로 기자들에 대한 공지가 지연된 것이다. 공군은 오폭 상황을 확인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고 하지만 납득하기 어렵다. 긴급한 상황에서는 1보, 2보, 3보를 순차적으로 내면서 새롭게 추가되는 내용을 보강하는 것이 표준 절차라는 점을 몰랐다는 것인가. 포천시 일대에 재난문자가 발송되지 않았다는 점도 유감스럽다. 사고 관련 초동 대응이나 인근 주민 대피가 진행됐다고 하지만 다른 행정기관과의 협조나 잠재적인 추가 폭발 가능성, 유언비어 등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 문제까지 고려한다면 재난문자는 발송됐어야 한다. 당시 사고 주변 거주 주민들은 남북 전쟁 가능성을 상상하면서 불안감에 떨었다고 한다. 오폭 자체보다 오폭 대응이 더 심각한 문제로 주목하는 배경 중에 하나는 과거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사태에서 경험한 군과 국민 간 신뢰 붕괴 경험이다. 당시 군은 사건 발생 이후 최초 보도자료에서 사건 시점을 9시45분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후 이어진 다양한 제보를 종합하면 9시25분 이전이라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됐다. 합참은 만 이틀이 지난 뒤에야 폭침 시각이 9시22분이라고 수정했다. 수정은 했지만 군에 대한 신뢰는 이미 심각하게 훼손된 후였다. 천안함 폭침이 북한의 어뢰 공격에 의한 것이라는 최종 발표가 나왔지만 발표를 둘러싼 논란은 오히려 더 커졌다. 전시라면 군사작전과 관련해 보안이나 정보 통제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정보 ‘통제’와 ‘조작’은 다른 문제다. 정보 조작은 언제, 어디서나 금지 사항이다. 하물며 평시 훈련 중 발생한 사고에서 정확한 사실 관계를 신속하게 알리지 않는 것은 또 하나의 불신 이유를 만드는 일이다. 군 당국은 민간과 장병들의 안전과 관련한 사안에 대해서는 투명하고 신속하게 사실을 알리는 것이 최상의, 그리고 유일한 옵션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군 지휘관들은 자신의 통제구역에서는 ‘정보 통제뿐만 아니라 조작도 가능하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조작은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드러나게 돼 있다. 조작 사실이 드러나면 군 조직 전체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다. 상식에 맞지 않은 늑장 대응은 정보 조작을 시도했다는 의심을 초래한다. 오폭은 물론이고 군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는 오폭 대응이 재발하지 않도록 군 수뇌부의 심기일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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