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에도 ‘희망퇴직’과 세대교체가 필요하다. 기업에서는 오랜 경력을 쌓아온 직원들이 경영상의 이유 등으로 희망퇴직을 선택하고 그 자리를 신규 채용된 인재들이 이어받는다. 이를 통해 기업은 변화하는 대내외 환경에 대응하고 지속적인 혁신을 이뤄갈 수 있다. 농업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선순환이 필요한 산업이다. 현재 농업의 주요 과제 중 하나는 세대교체다. 농업인 평균 연령이 68세를 넘어서고 10년 후에는 농사를 지을 사람이 현재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젊은 세대가 농업에 뛰어들고 싶어도 농지를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 농지이양 은퇴직불제도다. 농업에도 희망퇴직 개념을 도입해 고령 농업인에게 안정적인 은퇴를 보장하고 신규 진입하는 농업인에게 기회를 열어주는 제도다. 많은 농업인이 연로함에도 불구하고 농지를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농사를 그만두면 안정적인 소득이 사라지고 땅을 팔더라도 이후 마땅한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불금을 받으면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 제2의 인생을 준비할 수 있다. 농지이양 은퇴직불제도는 최근 10년 이상 농업 경영을 하고 있는 만 65세 이상 만 84세 이하의 농업인이 3년 이상 소유한 농지를 청년농업인 등에게 양도하고 은퇴하는 경우 1ha 기준 최대 10년간 매월 최대 50만원의 직불금을 지원한다. 올해부터는 보조금을 한꺼번에 받을 수 있는 일시지급 방식을 도입해 가입자의 경제 상황에 따라 보조금 지급 방식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매도조건부 임대로 선택할 경우 직불금과 더불어 농지연금과 임차료도 함께 받을 수 있다. 또 농지이양 은퇴직불제도로 이전된 농지는 ‘맞춤형농지지원사업’을 통해 창업과 성장을 꿈꾸는 농업인에게 돌아간다. 성장하는 미래 세대에게 저렴하게 우량 농지를 제공해 든든한 발판을 마련하게 하고 더 나아가 ‘비축농지 임대형 스마트팜사업’을 통해 스마트팜 시설이 설치된 농지를 장기간 임대해 시설에 큰 비용을 투자하기 어려운 농업인을 지원한다. 땅을 물려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농업 모델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농지이양 은퇴직불제도는 농업의 미래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투자다. 농지은행 사업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면 고령 농업인의 안정적인 은퇴와 청년 농업인의 진입장벽 완화, 농업구조 개선 및 경쟁력 강화 등 농업인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농지 거래를 넘어 농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투자다. 우리 농업의 미래를 위해 이제는 다음 세대에게 땅을 맡길 때다.
이게 뭐임? 갸웃거림이 많을까, 다 지난 얘기라는 웃음이 나올까. ‘민들레 홀씨’는 무슨 관용구처럼 쓰였던 표현. 그런데 정작 민들레 홀씨란 없다. 민들레는 홀씨식물이 아닌 까닭이다. 그럼에도 ‘민들레 홀씨’가 여전히 많은 것은 단어며 명칭에 대한 돌아보기가 부족한 탓이다. 아니면 동그랗게 멀리 날아가는 민들레 꽃씨 모습을 ‘홀’로 표현해야 더 시적 은유 같고 사랑스럽기 때문일까. 하지만 홀씨는 일반적 씨앗이 아니다. ‘단세포로 발아해서 새로운 개체를 형성’하는 식물의 무성생식세포. 홀씨는 민꽃식물인 양치식물, 이끼류, 곰팡이류 등에 있다. 확 닿지 않는 양치식물은 ‘꽃이나 씨앗을 만들지 않는 관다발의 일종’이니 고사리 같은 식물이다. 이렇게 조금만 살펴봐도 무의식적으로 쓴 ‘민들레 홀씨’가 좀 면구스러워진다. 안 맞는 표현에 대한 반성적 지적이 나온 지도 한참 지났건만 ‘민들레 홀씨’가 도처에서 여전히 피고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가수 박미경이 ‘민들레 홀씨’와 관련된 사과를 한 적이 있다. ‘민들레 홀씨되어’(1985년 MBC강변가요제 장려상) 유행으로 잘못 고착된 표현에 대한 가수의 책임감에서다. 그럼에도 이후 기사나 시 같은 전문인의 글에서조차 ‘민들레 홀씨’가 간간이 등장한다. 간판이며 상호에 나붙는 것은 말할 나위 없을 정도다. 그렇게 쓰는 이들은 틀린 줄 알면서도 안 고치는 것인지, 아니면 그게 뭐 대수냐고 웃어넘기는 것인지. 오히려 지적을 하는 쪽이 좀스러워 보일 지경이다. 부끄러움은 왜 저지른 사람보다 그것을 느끼는 사람의 몫이냐는 세간의 탄식처럼. 일찍 굳어 버린 표현을 고쳐 쓰기란 어려울 수 있다. 평소의 말이나 글을 정확하게 쓰려면 스스로 그것을 찾아야 한다. 그만큼 우리가 매일 쓰고 읽는 글에서도 의외로 많이 발생하는 오류 표현이 있다. 애초에 잘못 알려진 단어들의 이식도 문제다. 전에 잘못 쓴 말 앞에 화끈한 적이 있었는데 일본목련을 후박나무로 쓴 기억 때문이다. 잘못 알려진 것도 모르고 여러 글에서 본 이름(나무이름표에도 한동안 후박나무로 있었음)을 그대로 썼던 것이다. 지금은 돌아보기 습관화로 익숙한 단어도 다시 확인, 오류를 줄이려고 애쓴다. 언중(言衆)의 쓰기에 따라 의미 변화나 확장이 일어난 최신 버전 단어가 많아져 확인이 늘 필요한 것이다. 이처럼 여느 존재의 이름 불러주기도 신경을 써야 한다. 안도현 시인의 다정한 반성처럼. “나 서른다섯 될 때까지/애기똥풀 모르고 살았지요/해마다 어김없이 봄날 돌아올 때마다/그들은 내 얼굴 쳐다보았을 텐데요.//코딱지 같은 어여쁜 꽃/다닥다닥 달고 있는 애기똥풀/얼마나 서운했을까요?//애기똥풀도 모르는 것이 저기 걸어간다고/저런 것들이 인간의 마을에서 시를 쓴다고.”(애기똥풀) 한때 ‘이름 모를 새, 꽃, 벌레’ 등을 마구 쓴 시인들은 이 시에 죽비를 맞았다. 미물이라도 이름 제대로 불러주는 일이 말의 바른 쓰임이고 쓰는 자의 소임이다. 이번에 파면 선고를 보며 문장이 참 명료하다 끄덕였다. 단어나 문장이 정확하면 뜻은 자연스레 명징해지는 법. 틀림이 없어야 함은 물론이고 소소한 이름이라도 명확히 쓸 때 말도 글도 아름다워진다. 민들레 홀씨는 민들레 꽃씨라 불러주듯.
자동차의 경우만 살펴보자. 트럼프 대통령이 2일(현지 시간)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서 판매되는 자동차의 81%는 한국에서 생산됐다.”, “미국 자동차는 일본(한국)에서는 매우 조금만 판다.” 그 이유를 ‘비금전적 무역제한’이라고 지목했다. 25%의 관세로 이를 극복하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실제로 한국 내에서 미국차의 점유율은 낮다. 2024년 기준 한국 자동차 시장에서 국산차는 83%, 수입차는 17%였다. 초유의 관세 폭탄을 던진 트럼프의 이유다. 국내 자동차 업계에서는 이런 지적에 어이 없어 한다. 시장 점유율은 기본적으로 소비자들이 만드는 영역이다. 미국산 자동차가 시장에서 밀리는 가장 큰 이유는 기술·가격이다. 한국, 일본뿐 아니라 세계시장에서 증명된 미국산 자동차의 한계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자국 자동차의 한국 시장 점유율을 트집 잡고 있다. 소비자의 선택을 관세로 뒤집어엎겠다는 거다. 국가에는 무역수지 악화다. 젊은 세대에게는 일자리 강탈이다. 이런 무역 횡포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대화와 설득을 통해 조정 국면을 만들어야 하나. 가능하다면 가장 옳은 대응일 수 있다. 하지만 이미 25% 관세가 현실로 공표됐다. 일본(24%), 유럽(20%)보다도 가혹하다. 원칙적이고 외교적인 체면만 따지고 있을 시점이 지났다. 각국에서는 반(反)트럼프 바람이 불고 있다. 해당 국민들이 지지한다. 쥐스탱 트뤼도 전 캐나다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 볼로드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무역, 방위 압박을 받는 나라의 지도자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맞섰다는 공통점이 있다. 국산품장려운동, 보복 관세 부여, 국민 선동, 핵 무장 공언 등이 무기다. 이들의 1~3월 여론조사 추이가 보도됐다. 국민 지지율이 7~18% 치솟았다. 반면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지지율이 추락했다. 트럼프 정책에 순응하거나 대항하지 못한 지도자들이다. 트럼프에 맞선 지도자와 굽힌 지도자의 극명한 대비다. 이 분석에 특별한 과학은 필요 없다. 일자리, 먹거리를 지키겠다는 각국 국민의 의지다. 우리는 앞선 모든 나라보다 혹독한 관세를 맞았다. 필요하다면 우리도 대항해야 한다. 국민 정서를 표현하는 게 정치다. 그런 면에서 지적해둘 게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이 있다. 우파 시위 현장에 등장하는 성조기다. 우호를 강조하는 순수한 뜻임을 안다. 하지만 그것도 때가 있고 상황이 있는 것이다. 트럼프 압박에 경제가 질식하기 직전이다. 도내 수출 1, 2위인 반도체와 자동차가 아우성이다. 올해 신규 연구 인력 모집이 없다는 얘기도 돈다. 현대제철소는 최근 공장 문을 아예 닫았다. 뭐 고마운 게 있다고 성조기를 흔들어대나. 젊은 세대, 직장인들 보기에 미안하고 민망하다.
경기도의회의 여야 동수 균형이 무너졌다. 더불어민주당이 78석으로 국민의힘 76명보다 많아졌다. 개혁신당은 1석, 무소속이 1석이다. 무소속인 박세원 의원도 조만간 민주당에 합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박 의원은 민주당 소속에서 탈당했었다. 이렇게 되면 민주당 의원은 79명이 된다. 단독 의결이 가능해지는 의석 분포다. 단순히 여야 동수가 무너졌다는 의미를 넘는다. 의회 운영권이 사실상 넘어갔다는 얘기다. 4·2 재보선 투표율은 전국적으로 낮았다. 성남6선거구는 25%, 군포4선거구는 28.8%였다. 통상 낮은 투표율은 보수에 유리하다고 해석된다. 국민의힘이 유리할 수 있는 조건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결과는 통설과는 반대로 나타났다. 두 선거구 모두 민주당 후보가 이겼다. 성남6선거구는 김진명 후보가 53.38%를 획득했다. 군포4선거구는 성복임 후보가 58.25%를 얻었다. 주목해 볼 것은 양당 후보의 득표율 차다. 성남6선거구는 분당이다. 경기도의 대표적인 보수 텃밭이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도 국민의힘 의원을 뽑았다. 지난해 총선에서도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당선됐다. 민주당 후보였던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에 6.55%포인트 앞섰다. 그 득표율이 이번에는 반대가 됐다. 민주당 후보가 국민의힘 후보를 6.77%포인트차로 이겼다. 군포는 전통적으로 민주당 강세 지역이다. 여기에서 관심은 차이였다. 민주당 후보가 20%포인트 앞섰다. 결과를 헌재 결정과 연결하는 민주당 논평이 있다. 김승원 경기도당위원장이 ‘탄핵 염원’이라고 말했다. “경기도에서 윤석열은 사전 파면됐다”고 밝혔다. 분당갑 이광재 당협위원장도 “불법 계엄을 심판한 것”이라고 했다. 중앙당의 시각으로는 충분히 펼 수 있는 논리다. 하지만 지역의 관심은 이와 다르다. 완패(完敗)와 참패(慘敗)의 당사자는 경기도의회 국민의힘이다. 표심이 3년 만에 쏠렸다. 이 부분이 중요해 보인다. 3년 전, 도민은 78석 동수를 만들어줬다. 민주당과 선의의 경쟁을 하라는 뜻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엉뚱하게 당내에서 싸웠다. 당 대표 자리를 두고 법정까지 갔다. 또 다른 표심에는 도의회를 주도하라는 기대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기대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하반기 의장도 못 받았고 상임위 장악도 하지 못했다. 최근에는 황당한 궤변으로 언론과 갈등까지 불렀다. 이번 참패를 난데없다 할 순 없다. 이제 1년여 뒤면 전국동시지방선거다. 소속 의원 76명이 모두 평가 대상이다. ‘2석 참패’ 속에 ‘76석 평가’가 포함됐을 수도 있다.
1천원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의 범위가 제법 넓었다. 시점이 과거형인 까닭은 요즘은 찾기 어려워서다. 흔히 ‘1천냥 하우스’로 불리던 가게가 그랬다. 비슷한 이름의 간판을 걸었던 점포가 서울에도, 수도권에도 즐비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이처럼 적은 지출을 통해 즐거움과 만족감을 추구하는 구매 행위가 ‘작은 소비’다. 어쩌면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누리는 작은 사치다. 작은 소비에서 중요한 건 ‘어떤 물건을 사느냐’가 아니라 ‘왜 사느냐’다. 의미가 있는 구매라면 과감하게 투자한다. 실례로 사진 촬영을 좋아한다면 다른 부분의 소비를 줄이고 카메라나 렌즈 등에 투자한다. 먹는 것에 행복을 느낀다면 비용과 상관 없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거움을 누린다. 작은 소비가 줄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 산업활동 동향 분석 결과다. 내수 부진 장기화 속에 추위와 정국 불안까지 겹쳐서다. 좀 더 깊게 들어가 보자.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월 준내구재 소매판매액지수(계절조정)는 전월보다 1.7% 감소했다. 비내구재의 소매판매액지수도 2.5% 줄었다. 준내구재는 예상 사용수명이 1년 미만인 옷, 신발, 소형가전 등이다. 비내구재는 음식료품, 수도, 휘발유 등이다. 준내구재·비내구재 소비는 지난해 12월 1.0%, 1.5% 상승했으나 올해 1월 줄어든 뒤 두 달째 감소세를 이어갔다. 준내구재 중에선 옷이 1.7%, 신발 및 가방 등이 8.7% 줄었다. 예년보다 춥고 눈이 많이 내리는 날씨가 이어진 가운데 겨울옷과 봄옷 등도 덜 산 것으로 분석된다. 비내구재 중에는 음식료품 소비가 6.3% 감소했다. 지난해 10월부터 5개월 연속 감소세다. 감소율은 지난해 2월(-6.6%) 이후 1년 만에 가장 컸다. 의약품과 화장품 등은 각각 0.4%, 0.8% 줄었다. ‘작은 소비’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의 경제적 파장이 심상찮다. 미국의 관세폭풍까지 불어닥치고 있는데 말이다.
바이칼호에서 달콤한 짧은 휴식을 보내고 우리는 몽골고원으로 내려간다. 지난해 7월 초 한여름 서울에서 출발해 블라디보스토크, 스코보로디노, 바이칼호 등 고(高)위도 ‘한대 지방’을 통과해 달려왔다. 이제는 중국의 시안까지 직선으로 약 3천㎞를 내려갈 계획이다. 한대기후에서 스텝기후, 반사막기후, 사막기후, 온대기후 등 며칠 동안 많은 기후 변화를 경험할 것이다. 러시아 ‘울란우데’에서 몽골 국경 도시 ‘다르항’으로 가야 한다. ■ 극동 시베리아 중심 도시 울란우데 화창한 햇볕을 맞으며 오전 8시 바이칼호 숙소를 힘차게 출발한다. 어제 오후 정비소에 맡겨 놓은 일행의 자동차를 찾기 위해 ‘울란우데’ 정비소로 향한다. 서울에서 140㎞ 떨어진 정비소라면 무척 먼 거리라 생각하지만 광대한 대륙성 분위기에 적응한 우리는 가까운 거리로 생각한다. 정비소 기사는 구멍 난 ‘터보’ 주위를 감싸 임시로 이동할 수 있도록 고쳤다고 한다. 어제 일행은 경기도에 사는 한 동생에게 전화해 새 부품 ‘터보’를 구입, 4일 후 중국 내몽골 국경 도시 ‘엘렌하오터’로 가져오도록 연락했다. 우리 차가 몽골고원을 제대로 통과하는 것이 당면 목표다. 중국 내몽골 국경에서 서울에서 가져온 새 ‘터보’로 고장 난 부품을 교체할 계획이다. 몽골로 출발 전 울란우데 시청 앞에 있는 레닌 동상을 구경하기 위해 시내로 향한다. 레닌이 1924년 사망 후 후계자 스탈린은 레닌 우상화를 위해 소련 내에 수만개의 레닌 동상을 설치했다고 한다.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개혁개방 분위기에서 대부분의 레닌 동상은 철거됐다. 울란우데 시청 앞에 설치된 레닌의 머리동상은 1991년 철거를 계획했다가 당시 철거비가 너무 많이 들어 포기했는데 지금은 울란우데의 대표적인 관광지가 됐다. 역사의 재미있는 반전이다. 레닌 시신은 모스크바 붉은광장 레닌묘에 ‘미라’로 만들어 안치돼 있다. 울란우데부터 동쪽의 태평양, 사할린섬까지의 영토를 ‘극동 러시아’로 부른다. 극동 러시아의 인구는 겨우 800만명이다. 매년 인구가 줄어들어 영토 관리에 위기를 느끼는 지역이다. 블라디보스토크를 포함한 연해주 지역은 19세기 중반 청나라로부터 강탈한 영토이고 사할린 남쪽의 섬들은 일본으로부터 2차 세계대전 후 빼앗은 영토다. 모스크바로부터 거리가 멀고 인구가 줄어들면 미래 이 지역은 지정학적 분쟁지역으로 발전할 수 있다. ■ 몽골고원의 스텝 지대 울란우데에서 남쪽으로 넓은 초지로 조성된 지리학상 ‘스텝’ 지대다. 이곳 스텝 지역을 중심으로 몽골인들이 신성시하는 ‘셀렝게강’이 바이칼호로 흘러 들어간다. 지리학에서 스텝 지역은 나무는 띄엄띄엄 자라고 초지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남쪽 몽골 방향으로 내려가면서 양, 말, 소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 목가적 풍경을 보면서 자동차 여행의 지루함을 잊고 있다. 러시아의 남쪽 국경 세관이 있는 국경 도시 ‘캬흐타’까지 260㎞를 달려야 한다. 캬흐타는 1727년 중국과 러시아 간 국경을 확정한 ‘캬흐타조약’을 체결한 지역인데 오늘 통과한다. 오늘 러시아 남쪽 변방의 세관에 출국 신고를 하고 몽골공화국의 세관에 입국 신고를 해야 한다. 세관에서 어떤 일이 생길지 내심 걱정하면서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다. 시베리아 대평원은 추운 한대기후지만 북극해로부터 실려 온 수증기로 인해 여름은 비가 자주 오고 겨울은 눈이 많이 내린다. 강수량이 충분해 산림지대와 초원지대가 형성돼 사람이 거주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북극해로부터 멀리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몽골고원의 남쪽 지역은 비가 적게 오는 반사막, 사막기후로 변하고 있다. 바다는 수억년 전 생명 탄생의 고향인데 지금도 수증기를 증발시켜 육지에 비를 내려 인간 생활에 가장 큰 도움을 준다. 우리처럼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영토는 신의 축복을 받은 지역이라는 감사한 생각이 든다. 1년 중 7, 8월은 사막에도 비가 오는 우기(雨期)여서 몽골고원 초원은 환상적으로 아름답다. 고려청자의 비취색을 닮은 하늘, 연초록색 초원, 지평선 멀리 야트막한 구릉, 하얀 뭉게구름 등 대자연의 아름다운 조화가 여행의 피로를 날려 보낸다. ■ 러시아, 몽골 ‘육상국경’ 통과하기 2주일 전 블라디보스토크 항구의 해관(海官)으로 입국했는데 오늘은 러시아 남쪽에 설치된 육상국경을 통과해야 한다. 군대 초소, 경찰 초소와 출입국 기관, 세관 등 많은 정부 기관의 검사를 받아야 한다. 이번 자동차 여행에 육상국경을 여덟 번 통과해야 하는데 오늘이 첫 번째다. 가장 먼저 국경으로부터 30여㎞ 후방의 군부대 검문소에서 여권을 검사한다. 군대 초소 앞에 앉아 무한정 기다린다. 40여분을 기다리니 통과하라고 여권을 돌려준다. 군대 초소를 통과해 수십㎞ 달려가니 경찰 초소 검문소를 만난다. 이후 캬흐타에 있는 세관에 도착한다. 우리는 자동차가 무사히 빨리 통관하는 것이 관심사다. 세관 직원들이 자동차가 러시아 입국 당시 신고 서류와 출국 차량이 동일한지 조사한다. 이러한 자동차 확인 과정에 무척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자동차 여행이 만만치 않음을 국경에서 다시 한번 체험한다. 관세법상 자동차는 ‘휴대전화’로 분류된다. 처음 출국할 때 가져온 차를 중간에 팔거나 다른 차로 바꾸면 안 된다. 사고가 나 폐차하게 되면 해당 국가의 ‘폐차 확인서’를 발급받아 서울에 가져가야 한다. 몽골 국경에서 자동차 입국 신고, 차량 검사에 1시간이 걸렸다. 두 나라 국경 통과에 4시간이 걸렸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는 오후 9시다. 국경에서 숙소인 몽골 도시 ‘다르항’까지 160㎞를 달려야 한다. 캄캄한 밤중에 갈 길은 먼데 몽골의 도로 형편은 시베리아 못지않게 구멍이 파인 포트홀이 많고 편도 1차선 좁은 도로다. 화물차가 많이 다니는 도로여서 속도 내기도 어렵다. 문제는 일행의 차가 수리했음에도 언덕길은 잘 못 가고 평지나 내리막길에는 80㎞로 달려가는 수준이다. 일행의 차는 임시방편 운행을 하고 있다. 향후 1천㎞ 이상 몽골고원을 어떻게 통과할지 걱정이다.
조선 숙종 때 경기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 사인비구가 1674년 만든 조선시대 종이다. 사인비구는 18세기 뛰어난 승려이자 장인으로 전통적인 신라 종의 제조기법에 독창성을 합친 종을 만들었다. 현재 그의 작품 8구가 서로 다른 특징을 보이며 전해지고 있다. 이 종은 종을 매다는 고리인 용뉴와 소리의 울림을 도와준다는 대나무 모양의 음통에 역동적인 모습의 용이 새겨져 있다. 또 종의 어깨와 아래 입구 부분에는 연꽃과 덩굴을 새긴 넓은 띠를 두르고 있으며 어깨 띠 아래에는 사각형의 대가 있고 그 사이사이에는 보살상을 세웠다. 사실적으로 표현한 수법이 특히 돋보이는 작품으로 사인비구가 김룡사 종, 수타사 종(1670년)을 제작한 이후 완숙한 기량을 발휘한 수작인 점에서 조선 후기 장인 사회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국가유산청 제공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소설 ‘작은 아씨들’은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작품으로 이 소설이 등장한 시기에는 보기 드문 여성서사를 핵심으로 하고 있다. 이 작품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드라마와 영화 등에서 다양하게 재해석되고 있는 이유다. 원작 소설은 가난한 마치(March) 가문의 자매들이 백인 남성 중심의 보수적 사회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성장하는 이야기다. 이 점에서 문화비평 영역에서는 ‘작은 아씨들’을 페미니즘 비평이론의 관점으로 해석하곤 한다. 그렇다. 적어도 문화비평 분야에서 페미니즘은 특정 대상을 혐오하거나 조롱하기 위함이 아닌 그런 대상을 재해석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된다. 그래 왔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은 혐오의 단어가 됐고, 이는 그러한 경향의 사람들을 ‘페미’라고 부르며 낙인을 찍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는 아무래도 페미니즘을 단순히 특정 경향의 집단으로 오해하고 정치적으로 악용한 데서 비롯된 것 같다. 물론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이 페미라는 조롱의 표현으로 전락하기까지 여러 과정과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페미니즘이 우리 사회의 톨레랑스를 성찰하고 인식적 탄력성을 형성하는 데 기여한 바는 부정할 수 없다. 무엇보다 대중이 페미니즘을 단순히 남성 혐오 정도로만 인식하는 것과 달리 문화비평 이론에서 정리하는 페미니즘의 사적 전개 과정은 복잡다단하다. 19세기부터 1950년대까지의 페미니즘은 여성들의 참정권, 아프리카계 영국·미국인의 권리 신장 등을 주도한 1세대 페미니즘의 성격을 띤다. 즉, 자유주의적 여성주의를 표방한 것이다. 이후 페미니즘은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노동 문제에 입각한 급진적 성격으로 전개되고 1990년대 이후부터는 좀 더 다양한 계층과 영역으로 확장되면서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등의 권리운동과도 결탁해 포스트모던적 성격을 지니게 된다. 이 같은 페미니즘 이론은 대중문화 속에서 ‘타자화’된 소수자들에게 우선 주목한다. 즉, 가부장적 전통사회의 남성과 같은 특권층이 주체화된 문화 속에서 여성 같은 소수자가 부당하지만 자연스럽게 객체화되는 고정성과 보편성을 비판하며, 배경으로 밀린 그들을 중심부로 소환해 목소리를 돌려주고 그것을 전경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흔히 대중문화 속에 재현되는 소수자의 이미지가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하는 문제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 또한 소수자성을 또 다른 방식으로 개념화한다는 점에서 큰 한계가 있었고 이후 수정된 혹은 새롭게 정의된 페미니즘에서는 젠더적 정체성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끊임없이 변모한다는 점에 더 큰 주목을 하고 있다. 일례로 몇 해 전 방영된 한국 드라마 ‘작은 아씨들’은 원작 소설을 각색한 작품으로 이 드라마에서는 단순히 여성 해방이나 근로자성, 소수자와 타자와의 연대를 이야기하는 데 머물러 있지 않다. 그보다는 매 순간 변모하고 진전하는 여성 캐릭터들 그리고 그들의 연대와 연대의 가치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돈, 섹스, 권력이라는 인류의 원죄적 속성과 맞물리면서 결과적으로는 단순히 여성의 이야기로 젠더 특수화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구원에 대한 문제로 보편화된다. 이렇게 페미니즘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고, 그것이 문화계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에 끼낀 영향력은 잠잠하면서도 파워풀하다. 그것은 페미니즘이 기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 곧 틀렸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인정하고 용인하는 사회를 지향하고, 그것을 통해 한 사회문화의 개방성과 다양성을 확장하는 데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이 단순히 급진적 여성주의나 남성 혐오 정도로만 폄훼되는 현상은 다소 위험하고 그러한 점에서 세대를 거듭하며 발전할 수 있었던 서양의 페미니즘과 달리 발전 동력을 압제당한 한국 페미니즘의 흐름은 매우 안타깝다.
광주시에 용도가 의심스러운 주차 공간이 있다. 경안천 자연생태시설에 조성된 주차장이다. 광주시가 2021년 퇴촌면 광동리에 만들었다. 부지만 8만3천237㎡로 23억원이 투입됐다. 장미와 국화, 억새, 라벤더 등 9종의 식물도 심었다. 잔디광장까지 갖춘 제대로 된 시설이다. 관광객들을 맞이하겠다는 의욕으로 시작했다. 지역주민들이 기대하는 부대 수익도 있었다. 이랬던 모습을 최근에는 찾아 보기 어렵다. 특히 주차장이 엉망이다. 대형 캠핑카가 장기간 주차하고 있다. 그렇다고 캠핑장으로서의 역할도 못한다. 입구부터 흉물스러운 드럼통들이 목격된다. 건축 폐기물로 보이는 쓰레기들도 버려졌다. 누군가 버린 것으로 보이는 냉동차 짐칸도 방치돼 있다. 주인을 알 수 없는 목재와 대리석도 쌓여 있다. 주차장 한 편에 관리 주체를 짐작케 하는 광주시 마크가 있다. 하지만 담당 부서나 연락처 등은 표시되지 않았다. 민원을 제기하려 해도 부서를 정확히 알기 어렵다. 본보가 첫 보도 이후 한 달여 만에 이유를 지적했다. 담당 부서가 정확히 지목되지 않았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부서끼리 업무를 떠넘기고 있었다. 당초 업무는 건설과에 속해 있었다. 이후 조직 개편이 있었고 하천과로 넘기는 게 옳았다. 하지만 관련 서류가 여전히 건설과에 보관된 상태였다. 하천과는 ‘서류가 건설과에 있으니 건설과 업무’라고 주장했다. 반면 건설과는 ‘하천부지에 있는 시설이니 하천과 업무가 맞다’고 주장했다.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업무 지정은 원칙과 기준에 의해 분류된다. 하천 담당 부서가 하천과라면 하천부지 주차장도 하천과 소속이 타당하다. 서류가 건설과에 남아 있다는 것은 그냥 현상일 뿐이다. 그런데 ‘서류가 있는 부서가 책임 부서’라는 주장을 편 셈이다. 더구나 건설과에서 주차장 문제를 담당했던 팀장이 현재 하천과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을 누구보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혼란을 지켜만 봤다. ‘서류 있는 곳이 담당 부서다.’ 처음 듣는 논리다. 딱 떨어지는 부서 간 업무 떠넘기기다. 벌어진 일에 대한 책임 회피다. 두 부서가 이렇게 업무 미루기를 하는 사이 주차장은 쓰레기, 폐차, 무단 주차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관할 퇴촌면이 출입 제한을 위한 차단봉 설치를 시도했다. 하지만 시청 관리 부서를 확인하지 못해 설치하지 못했다고 한다. 어처구니없는 일 아닌가. 무엇보다 시민이 알게 되면 참 민망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