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청명과 곡우 사이

이십사절기 중 다섯 번째다. 청명(淸明) 얘기다. 이날부터 하늘이 차츰 맑아진다고 한다. 청명부터 딱 보름이 지나면 여섯 번째 절기인 곡우(穀雨)다. 봄비가 내려 백곡을 기름지게 해준다. 농민들은 이 두 절기 사이에 바빠진다. 들녘에서 허리를 펼 틈도 없다. 농작물을 심기 위해 기초작업을 시작해야 해서다. 심을 작물들도 준비해야 한다. 벼 파종도 본격화된다. 가축 관리와 밭일 등도 그렇다. 한 해 농사의 성패를 가름한다. 농작물 성장을 촉진하는 중요한 시점이다. 이때 내리는 비는 농작물 성장에 필요한 수분을 공급한다. 조선 후기 정약용의 차남 정학유도 ‘농가월령가’를 통해 “청명·곡우는 농사 짓기에 딱 좋은 절기”라고 읊고 있다. 벚꽃도 활짝 핀다. 엷은 분홍색을 머금은 산하가 흐드러진다. 축제가 따로 없다. 그런데 요즘 날씨가 이상하다. 활짝 핀 벚꽃 위로 때 아닌 눈이 내려서다. 그래서 ‘벚꽃 위에 쌓이는 눈’이란 말이 안 될 것 같은 표현이 회자되고 있다. 왜 그럴까. 기상청은 이런 현상을 보이는 이유로 북극 찬 공기를 품고 회전하는 절리저기압 탓이라고 분석한다. 한반도 대기 상층에 절리저기압이 자리해 하층 공기를 상층으로 끌어올리면서 지상에 저기압이 발달해 그렇다는 분석이다. 절리저기압은 영하 30도 이하 찬 공기를 수반해 대기 상하층 기온차가 40~50도로 벌어지면서 대기가 불안정해지고 이에 눈비가 내릴 때 돌풍이 불고 천둥과 번개도 부른다. 4월의 눈은 생경하지만 극히 이례적인 일은 아니라는 분석에도 무게가 실린다. 강원 산지의 경우 5월에도 종종 눈이 내린다. 지난해는 5월 중순 향로봉 등에 대설이 내리기도 했다. 관측자료에 따르면 1908년부터 올해까지 4월 중 눈이 온 날(눈일수)은 총 35일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도 이제부터 들녘은 완연한 봄이다. 그게 지극히 당연한 자연의 이치다.

[천자춘추] 지속가능한 육성

경기도는 올해 초 ‘2025년 경기도 사회적경제 통합 사업설명회’에서 사회적경제 조직 지원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제시했다. 주요 내용은 사회적금융 지원 확대와 온·오프라인 판로 개척 지원 등이다. 이전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경기도가 사회적경제기업에 대한 적극 지원으로 매출 100억원 이상의 임팩트 유니콘 100개 육성 등의 비전을 제시했다. 이런 적극적인 육성 정책과는 별개로 사회적으로 이런 사회적경제기업에 대한 지원의 실효성이나 타당성에 대한 논의가 생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고용노동부는 2023년 9월 제4차 사회적기업 기본계획을 발표하며 ‘육성’에서 ‘자생’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한다고 발표했고 이에 따라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이런 정책 변화는 관련 기업의 활동 축소와 함께 사회적경제기업에 대한 지원의 타당성 논란을 더욱 강화시켰다. 우리나라는 2007 사회적기업기본법과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 등의 제정을 시작으로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작년 기준 3천700여개의 사회적기업과 2만개에 육박하는 협동조합이 운영되고 있는 등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의 급성장을 이뤘다. 정부의 적극적 지원과 국민들의 관심으로 이룬 성과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정부의 지원이 없으면 바로 문을 닫는 조직이 대다수일 정도로 질적인 성장이 더딘 것도 사실이다. ‘육성’이 정책적으로 성장을 지원하는 의미를 갖는다면 ‘자생’은 다른 지원이 없이 스스로 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생은 사회적경제기업도 일반 기업처럼 수익성을 추구하라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적경제기업이 취약계층이나 돌봄과 같은 여러 사회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된 기업이라고 했을 때 일반 기업들과는 다른 육성이나 지원 방법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국내 사회적경제의 규모가 전체 시장의 1% 미만(2023년 경기사회적경제원 추정)이라고 했을 때 아직 대다수의 기업이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육성을 위한 지원은 지속해야 한다고 판단된다. 다만 해당 기업의 자생력과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도록 일괄적 지원보다는 단계적 지원이 필요하고 사회적경제기업의 생존을 도울 수 있는 다양한 제도 개선과 금융이나 판로 개척 등의 생태계 육성에 더욱 집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경기시론] 재외동포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

제2차 세계대전 전후에 국제 이주를 해 외국 국적을 취득하거나 무국적자가 된 재외동포의 수가 많았던 이스라엘이나 독일 등은 그 재외동포의 귀환권(Right of Return)을 인정했다. 이스라엘은 1950년 귀환법을 제정해 모든 유대인에게 이스라엘로 돌아올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고 이스라엘로 입국하면 국적을 부여했다. 여기서 유대인이란 할라카(Halakha)라는 유대교법에 따라 어머니가 유대인이거나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을 말한다. 1970년 귀환법을 개정해 유대인의 배우자, 자녀와 손자녀 및 그 자녀와 손자녀의 배우자는 유대인이 아니더라도 귀환권을 부여했다. 독일은 기본법에 따라 1937년 12월31일 현재 독일제국 영역에서 독일 국적을 가졌거나 독일 민족에 속하는 사람 중 망명자나 추방된 사람과 그 배우자 및 자손은 독일인으로 인정한다. 또 1933년 1월30일부터 1945년 5월8일까지 정치적, 인종적 또는 종교적 이유로 독일 국적을 박탈당했던 자와 그 직계비속에 대해 국적 회복을 허가하고 1945년 5월8일 이후 독일에 주소를 가져온 사람은 독일 국적을 상실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국적법에 따라 과거 대한민국 국적을 가졌던 자에 한해 국적회복(그 미성년인 자녀만 수반취득 허용)을 허용하고 그 외에 일제강점기에 이주한 동포의 직계비속은 그 대상에서 제외한다. 1999년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면서 외국 국적 동포에게 재외동포(F-4) 비자를 발급해 국내 입국을 허용하고 일정한 범위에서 경제활동을 허용하는 등 법적 지위를 향상시켰다. 그러나 중국동포 등의 대량 입국으로 인한 혼란을 우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 국적을 가졌던 자(동포 1세)와 그 자녀(동포 2세), 손자녀(동포 3세)에 한해 외국 국적 동포로 인정했고 단순노무 분야에는 취업을 할 수 없도록 했다. 2004년 헌법재판소의 불합치 결정으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에 해외로 이주한 외국 국적 동포에 대해서도 재외동포법을 적용했다. 또 국내 노동시장에서의 인력난이 심화됨에 따라 2007년 중국동포와 옛소련동포 등의 단순노무 분야 취업을 가능케 하고 방문취업제를 시행했다. 2019년 정부는 동포 3세까지만 외국 국적 동포로 인정하던 것에서 벗어나 과거 대한민국 국적을 가졌던 자의 직계비속에 대해 세대 제한없이 그 범위를 확대했다. 이러한 법제도의 변화는 해외로 이주한 동포의 직계비속에 대해 다른 외국인과 구분, 점차 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동포로 보는 방향으로 변화해 가고 있음을 보여주지만 아직까지 일제강점기에 해외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상처를 우리 사회가 완전히 포용했다고 평가하기에는 이른 점이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의 제7차 인구센서스 자료(2020년)에 따르면 중국 내 조선족 인구는 170만2천479명으로 2000년 제5차 인구 센서스 당시에 비해 22만1천363명 줄었다. 지난해 12월 말 국내 체류 중인 중국동포는 64만3천277명으로 이 중 재외동포(F-4) 자격으로 처우를 받고 있는 중국동포는 38만9천544명이다. 중국동포 인구 감소 추세와 국내 거주를 원하는 인구의 대부분이 이미 국내에 체류 중이거나 고령화로 노동시장에서 한국어가 가능한 중국동포를 구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국회는 2023년 제정된 재외동포기본법을 통해 재외동포가 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함양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재외동포의 대한민국에 대한 이해와 신뢰 증진활동 장려 등 대한민국과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것을 정책의 기본 방향으로 설정하고 있다. 또 정부는 제4차 외국인정책 기본계획(2023~ 2027년)에서는 방문취업(H-2) 비자를 재외동포(F-4) 비자로 점진적으로 통합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향후 두 제도를 통합해 한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유대감을 가진 사람은 재외동포(F-4) 자격을 부여해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허용하고 중도에 입국한 외국 국적 동포에 대해 한국 언어, 사회, 문화에 대한 이해와 수용성을 높이기 위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과거의 역사적 상처를 우리 사회가 포용함은 물론이고 미래를 위해 한인의 정체성에 대한 개념을 단순히 혈연으로만 보는 시각을 넘어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를 수용하고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까지 포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합법적으로 정주하는 외국인의 자녀가 국내에서 출생해 초·중등교육을 받았고 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졌다면 한인의 범위에 포함해 국적을 보다 쉽게 취득할 수 있는 기회를 줄 필요가 있다.

[세상읽기] 블랙컨슈머

블랙컨슈머(black consumer)는 상품 및 서비스 이용 과정에서 불만을 제기해 이익을 취하려는 소비자를 의미한다. 소비자는 안전한 물품과 서비스를 제공받을 권리가 있고 이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경우 공정한 절차에 따라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소비자기본법 제4조 제5호에 명시돼 있다. 블랙컨슈머는 ‘소비자’ 용어를 포함하고 있어 마치 하나의 소비자 유형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블랙컨슈머의 행위는 고의로 물품에 하자가 있다고 꾸며 기업에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악성 민원을 제기해 과도한 보상을 요구하는 등 합리적인 피해 보상을 요구 행위와는 매우 거리가 멀다. 개별 행위에 대한 정도와 방식에 따라 업무방해죄, 강요죄, 명예훼손 및 정보통신망법 위반, 공갈죄, 사기죄 등 다양하며 형사고소나 민사소송 형태로 대응하는 엄연한 범죄행위에 해당한다. 2005년 미국에서 발생한 햄버거 손가락 사건, 2010년 국내에서는 쥐가 들어간 밤식빵 조작 사건 등은 모두 자작극을 통한 사기로 밝혀지면서 12년형과 1년6개월의 실형을 각각 선고받은 사건도 대표적인 블랙컨슈머다. 블랙컨슈머는 소상공인들에게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며 경제적 사회적 영향을 미친다. 경기도 소상공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55.8%가 블랙컨슈머를 경험했고 41.9%가 금전적 피해를 봤다고 답했다. 악성 리뷰나 과도한 보상 요구로 인해 매출 감소와 평판이 크게 훼손돼 생계 위협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특히 소상공인은 악성 민원에 대해 그들의 요구에 일일이 법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 많아 요구를 들어주거나 피해를 감당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최근 한 연구에서 밝혀낸 바에 따르면 블랙컨슈머 성향은 고의성, 상습성, 억지성을 특징으로 한다. 의도적으로 기업의 약점을 공격하거나 제품 결함을 찾아내 문제를 제기하고 과도한 보상 요구는 보복 의도와 자기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또 이들이 가진 열등감은 공격적 행동을 더욱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 기업과의 갈등을 통해 자신감을 얻거나 우월감을 느끼며 작은 노력으로 금전적 보상이 실현되는 경우 반복적인 행동으로 이어져 상습성을 띤다. 블랙컨슈머 사건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은 경제 상황과도 맞닿아 있다. 빈부격차가 심화하고 실업률이 증가하는 경제 불황일 때 소비자들은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기업의 약점을 고의로 찾아내 환불이나 교체, 과도한 보상 요구하는 사례가 늘어난다. 즉, 금전적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부당한 이익을 추구하려는 동기가 증가하며 기업의 약점을 악용해 손쉽게 경제적 이득을 취할 기회로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블랙컨슈머는 결국 사회 전체적인 비용의 증가로 이어진다. 이러한 악성 민원 처리와 피해 보상 요구에 대응하기 위한 기업의 노력은 결국 비용을 상승시키고 제품 및 서비스의 원가 상승으로 이어져 대다수의 선량한 소비자들에게도 비용이 전가된다. 또 법적 대응과 같은 관리 비용 또한 사회 전체적으로는 경제적인 부담을 준다. 소비자의 정당한 제품 및 서비스 불평 행동은 서비스의 품질을 높이고 기업의 불공정한 관행을 개선하는 등 긍정적 기능이 있지만 블랙컨슈머의 불법적인 악성 행위로 인해 다수의 합리적 소비자의 문제 해결 방식을 매도할 수 있다. 디지털 환경의 시장경제에서 소비자의 권리와 이익을 증진하는 제도는 더욱 촘촘하게 발전하고 있지만 소비자 역시 높아지는 권리 신장에 부응하며 균형 있게 책임을 행사할 수 있는 인식도 높아져야 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인터넷에서 허위 정보 유포의 위험성을 알리고 블랙컨슈머 행동이 다른 소비자와 기업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강조하는 교육 콘텐츠는 더욱 강화돼야 할 것이다.

[경기만평] 도대체 한다는겨... 만다는겨...?

[사설] 세종·충청으로? 또 서운해지는 경기·인천·서울

대통령선거만 오면 어김없이 이런다. 상대적으로 민주당 쪽 주장이 강하다. 그렇다고 국민의힘 쪽도 다를 것이 없다. 경기지사 출신들도 거침없이 가세한다. 바로 세종·충청권으로의 행정·기관 이전 구호다. 2000년대 초반 노무현 정부가 시작이었다. 20년도 훌쩍 넘었다. 그런데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이번에는 대통령실·국회, 대법·대검이다. 식상하지만 언제 들어도 불쾌하다. 경기·인천·서울에는 박탈이다. 지난 13일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경남 출신인 그가 세종시청에서 발표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이라는 그다. 노 전 대통령의 행정수도 이전을 되살릴 장소로 선택한 모양이다. 일성은 예상한 대로 ‘세종시 완성’이다. 대통령실을 세종으로 이전하겠다고 했다. 이를 위한 헌법 개정과 특별법 제정 등도 약속했다. 차기 대통령의 직무를 아예 세종시에서 시작하겠다고 했다. 충청표를 구애하는 ‘세종팔이’다. 이 대열에는 현직 수도권 단체장도 가세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다. 지난 2월 한국지방자치학회 학술대회에서 특강을 했다. “대통령실과 국회는 세종시로, 대법원과 대검찰청은 충청으로 이전해야 한다.” 대통령실은 물론이고 사법·법원까지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이를 ‘노무현 (전)대통령이 미처 하지 못했던 사업’이라고 했다. ‘충청’에 공들여온 그다. 새로울 건 없다. 18대 경기도지사 이재명 전 대표도 한목소리다. 지난 대선부터 그랬다. 행정수도 명문화 개헌 추진, 대통령 세종 집무실 설치를 약속했다. 당 대표 때도 행정수도 이전 재추진을 지시한 바 있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도 끼어들었다. 지난 3월 중순 대전을 방문한 자리에서 말했다. “청와대, 여의도 국회를 합친 명품 집무실을 (세종시에) 구축하겠다.” 중원의 지배자가 대권을 잡는다고 했나. 충청 잡기 경쟁이다. 국민의힘 쪽은 탄핵 충격이 아직 깊다. 공약을 말할 단계가 아니다. 다만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의 입은 주목된다. 8년간 경기도지사였다. 재임 중 했던 말이 있다. 2010년 1월14일 경기언론인클럽 초청 특강에서다. 세종시 정책에 대해 “국토를 남북으로 나눠 놓고, 다시 수도를 4개로 찢는 나라가 어디 있나”며 비판했다. 당시와 현재 상황은 다르다. 입장이 달라졌을까. 그라고 다를까 싶기는 하다. 식상하고 진부하다. 새로울 것도 없고, 충격받을 것도 없다. 어차피 기관이란 기관은 다 빼갔다. 수도권에 남아 있는 기관도 없다. 국회 분원과 대통령 집무실도 그렇다. 세종시에 사 둔 부지로 가져 가면 끝이다. 뭐가 새롭다고 떠들고 유난을 떠나. 그저 충청에 잘 보일 대선이 왔을 뿐이다. 수도권 홀대의 시간이 또 왔을 뿐이고.

[사설] ‘인천 공약’ 없던 일로... 더 이상 요술방망이 아니다

대통령의 중도 하차로 폐기 수순으로 가는 게 많다. 2022년 대통령선거 공약도 그렇다. 후보들마다 대동소이하긴 했지만 당시 ‘인천 공약’도 화려했다. 다른 지역들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대로만 되면 상전벽해가 따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28개 사업 중 1개 정도만 ‘이행 완료’다. 사실 그 이전, 이전에도 ‘공약’이 늘 그러하긴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으로 ‘인천 7대 공약’도 없던 일이 됐다. 7대 공약의 28개 세부 사업 중 1개 사업만이 ‘완료’ 판정을 받았다. 서해 5도 어장 확대 및 조업시간 연장이다. 나머지 27개는 여전히 ‘일부 추진 중’이다. 7대 공약 중에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D노선 Y자 및 GTX E노선 신설이 으뜸이다. 그러나 이 공약은 현재 국토교통부가 12월께 마련할 ‘제3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반영하는 것이 그 첫 단추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예측조차 어려운 상태다. 경인선·경인고속도로 인천구간의 지하화도 공약에 있었다. 그러나 최근 국토부의 철도 지하화 선도 사업 대상에 들어가지 못했다. 당분간 사업의 추진 여부조차 불투명하다. 수도권매립지가 옮겨갈 대체매립지 조성도 공약했다. 그러나 3차 공모까지 실패한 상태다. 국무총리실 산하 전담 기구 설치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인천 제2의료원 설립은 예비타당성 조사 신청에도 다가가지 못했다. 영종 국립대학병원 유치는 사실상 백지화 수순에 놓여 있다. 인천내항 1·8부두 재개발은 유정복 인천시장의 제물포 르네상스 프로젝트와 맞물려 있다. 그러나 중요한 앵커시설 유치 등은 늦어지고 있다. 서북단 접경지역 주민 삶의 질 향상도 제자리걸음이다. 강화 주민들이 북한의 대남 소음 방송에 시달려도 정부 차원의 대책은 없기 때문이다. 조기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으니 다시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6·3 조기 대선 후보들에게 받아들이라고 할 ‘인천 공약’이다. 그러나 시민들은 사실 별무관심이다. ‘또 그러다 말겠지’ 정도로 여긴다. 한 표가 아쉬운 대선 후보들이니 무언들 못 들어줄 것인가. 그래서 선거 때만 반짝 통하고 마는 지역 공약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먼저 최소한의 합리적인 어젠다 선정이 중요해 보인다. 인천시민 의견의 최대공약수가 반영된 실현 가능한 현안 말이다. 지금까지는 어떤 경로를 통한 것인지도 모를 사업도 없지 않았다. 단순히 국비 지원 규모만 겨냥한다면 공약(空約)이기 쉽다. 다른 지역들도 손 놓고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지역 공약 다 지키면 나라가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공약이 더 이상 요술방망이는 아니다.

[지지대] 일상 파고든 최악의 변수들

상수(常數). 수식에서 변하지 않는 값을 뜻한다. 항상 일정한 값을 갖는 수. 변수(變數). 어떤 상황의 가변적 요인, 어떤 관계나 범위 안에서 여러 가지 값으로 변할 수 있는 수를 의미한다. 상수와 달리 예측이 어렵고 그만큼 대비도 힘들다. 우리의 일상 속, 최악의 변수라 여겨질 만한 각종 재난 사고가 불청객처럼 소리 소문 없이 다가오고 있다. 지난 3월24일 오후 6시가 조금 넘어 서울 강동구 명일동 인근 사거리에서 발생한 폭 20m, 깊이 18m 규모의 대형 싱크홀. 이날 여느 때와 같이 평범했던 퇴근길 도심과 30대 오토바이 운전자의 삶도 함께 무너져 내렸다. 지난 11일, 광명시 신안산선 지하터널 공사 현장 붕괴 사고. 인근에 위치한 600여가구 규모의 아파트 단지와 초등학교, 교회 등 시민들의 생활공간과 인접한 현장. 당시 붕괴 우려 조짐을 인지한 시공사 측의 작업 중단 이후 15시간 만에 도로가 ‘와르르’ 주저앉았다. 여러 상황과 변수를 계산한 뒤 결정한 시공사 측의 보강 공사. 이 판단에서 정작 공사를 멈춘 ‘붕괴’ 가능성은 크게 고려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보강 공사에 투입된 작업자가 매몰된 지 수일째 생사 여부조차 확인이 안 되는 끔찍한 참사를 예견하면서도 내린 결정은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11년 전 오늘,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기 하루 전. 단원고 학생 및 교사 339명을 포함한 승객 476명을 태운 청해진 해운 소속 세월호 여객선이 짙은 안개를 뚫고 오후 9시 인천항을 출발했다. 추억을 만들기 위해 들뜬 마음으로 제주를 향하고 있었을 당시, 자신들이 대한민국의 역대 슬픔과 분노로 기억되고 있는 세월호 사건의 희생자가 될 것이라고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1995년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생존자인 이선민씨가 말했다. “참사는 사람을 가려 오지 않는다. 이번에 ‘운 좋게 당신이 아니었을 뿐’.”

[문화산책] 우주에 새긴 페르소나

1960~70년대는 SF영화와 문학의 인기 그리고 록 음악의 부흥이 만나면서 가장 특별한 문화적 융합이 일어났던 시기다. 당시 SF는 비디오, 커버 아트, 우주복 등의 테마에서뿐만 아니라 전자 사운드의 음악에서도 혁신을 일으켰다. 영국 출신의 가수이자 배우인 데이비드 보위는 그런 융합을 주도한 인물이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9일 전인 1969년 7월11일 보위는 ‘스페이스 오디티’라는 노래를 발표했다. 노래는 ‘메이저 톰’이라는 상상의 우주 비행 조종사가 우주 미아가 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보위는 1968년 개봉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큰 감명을 받았고 노래 제목은 그 제목을 변주해 스페이스 오디티로 결정했다. 보위는 이 우주 영화를 통해 얻은 소외된 자들에 대한 영감을 평생 마음속 깊은 곳에 새겼다. 그 후 보위는 깡마른 체격에 날카로운 인상을 지닌 자기의 페르소나, ‘지기 스타더스트’, ‘알라딘 세인’ 그리고 ‘씬 화이트 듀크’ 등으로 변신해 우주에 홀로 버려진 이른바 소외된 존재의 이미지를 쌓는다. 1972년 정규 5집 앨범 ‘화성에서 온 거미들과 지기 스타더스트의 흥망성쇠’에서 지기 스타더스트를 소개한 이후 영화 ‘지구에 떨어진 남자’(니컬러스 로그 감독·1976년)에 출연하기도 했고 1973년 4월 발매된 여섯 번째 정규 앨범 ‘알라딘 세인’에서는 말 그대로 알라딘 세인으로 변신해 새로운 음악적 스타일을 시도하기도 했으며 1976년 정규 10집 앨범 ‘스테이션 투 스테이션’을 발매하면서 ‘씬 화이트 듀크’를 세상에 소개하기도 했다. 그의 페르소나들은 록 음악, 드라마, 영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알라딘 세인은 패션, 젠더의 모호성, 화려한 퍼포먼스가 결합된 글렘 록의 시초가 됐으며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트윈 픽스에서는 보위가 직접 열연한 FBI 요원 필립 제프리스의 모태가 되기도 했다. 거기서 제프리스는 현실과 꿈, 시간과 정체성의 경계에서 소외된 존재로 설계됐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프레스티지’에서는 삼고초려로 모셔온 보위가 니콜라 테슬라로 등장한다. 놀런 감독의 ‘오펜하이머’에 등장하는 킬리언 머피의 실루엣은 씬 화이트 듀크에서 따온 것이다. 닐 게이먼 작품 ‘샌드맨’의 ‘루시퍼 모닝스타’ 역시 보위의 페르소나로부터 영향을 받은 캐릭터다. 페르소나와 더불어 그의 영향력은 상상의 세계를 넘어 현실의 과학 세계에도 가닿았다. 2008년 독일의 거미학자 피터 예거는 새로 발견된 사냥거미에게 ‘헤테로포다 데이비드보위’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2015년에는 스페인에서 2008년 발견된 소행성의 이름을 ‘342843 데이비드보위’라고 최종 결정짓기도 했다. 여섯 번째 정규 앨범 알라딘 세인의 표지에는 데이비드 보위의 얼굴이 등장하는데 그 얼굴에는 번개 모양이 그려져 있다. 벨기에 천문학자들은 이 번개 모양을 일곱 개의 별로 구성한 후 그 별자리를 2016년 1월13일 제정해 보위에게 헌정하기도 했다. 보위가 타계한 1월10일로부터 3일이 지난 후의 일이다. 2018년 일론 머스크는 스페이스X의 팰컨 헤비 로켓을 이용해 테슬라 로드스터를 우주로 발사했다. 당시 테슬라 로드스터에서는 보위의 스페이스 오디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데이비드 보위는 정말로 ‘스타맨’이 돼 자신의 노래와 페르소나를 실제 우주에 새긴 것이다.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능력은 그렇게 자신의 또 다른 정체성, 페르소나에게서 온다.

[이슈&경제] 2025년 뉴노멀, 트럼프

요즘에는 사용 빈도가 뜸해 보이는데 얼마 전까지 ‘뉴노멀(New Normal)’이라는 용어가 자주 쓰였다. 뉴노멀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부상하는 경제적 기준이나 표준을 의미하는 개념인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저성장, 저소비, 고실업, 규제 강화 등이 주요한 뉴노멀로 논의됐다. 글로벌 경제의 현재 상황을 보면 ‘트럼프’가 그 자체로 뉴노멀의 범주에 포함돼야 할 것 같다. 트럼프는 2기 출범 직후부터 현재까지 관세로 글로벌 경제를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의 아이콘인 트럼프를 새로운 표준으로 삼아야 할지도 모르는 현재의 상황은 표준이라는 것이 기준점의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다소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불확실하고 예측이 어렵다는 점 이외에 확실한 것이 없다는 점을 우리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현재 정세를 보면 당분간 트럼프가 글로벌 경제에 어떤 방식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는 점만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취임 첫날 동맹국인 멕시코, 캐나다산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주변국을 긴장시킨 트럼프는 동맹국에도 예외 없는 관세 정책으로 우리 기업을 불확실성의 공포에 빠뜨렸다. 지난 2일 있었던 상호관세 발표에서는 미국에 대한 무역흑자 규모를 기준으로 최대 50%까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는데 중국에는 34%, 대표적 대미 무역흑자 국가인 일본과 우리나라에는 각각 24%, 25%를 부과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미중 간의 관세 갈등으로 상황이 극한으로 치닫던 9일 미국은 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에 대한 관세 부과를 90일간 유예한다고 발표하면서 상황이 다소 진정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은 글로벌 금융시장에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상호관세 발표 시 급락했던 국내외 증시는 9일 유예 발표로 급등하며 회복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다소 진정된 것처럼 보이는 현재 상황이 언제 어떻게 또 달라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이렇게 자고 일어나면 달라지는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지지자들로부터도 비난을 받고 있다. 국내 주요 일간지의 한 기사에 따르면 트럼프 주변의 억만장자 지지자들마저 ‘상호관세가 너무 성급하고 공격적이다’, ‘심각한 정책적 실수다’, ‘국가 간의 신뢰를 심각히 훼손하고 있다’ 등의 볼멘소리가 나오는 지경이라고 밝혔다. 상호관세 발표 이후 벌어진 미국 국채 폭락 사태로 ‘중국을 제외한 국가들에 대한 90일 유예 조치’가 발표되며 다소 진정되는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상황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관세만으로도 머리가 아픈데 다음 무기는 환율이라는 이야기들이 벌써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8일 뉴욕타임스 등의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가 달러 가치 조정을 위한 다자간 협의체 구성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그 유명한 1985년의 ‘프라자 합의’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생각하면 기우일지도 모르지만 아찔하다. 우리는 지난해 말부터 계속되고 있는 정치적 혼란으로 가장 중요한 대외 변수인 트럼프와 그가 촉발한 글로벌 경제질서의 급격한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발생하는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기업과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당분간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의 지배력이 큰 시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트럼프의 경제 정책 변화에 따른 시나리오를 선제적으로 마련하고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프레임워크가 시급하다. 정치적 혼란이 전략적 대응의 공백으로 이어져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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