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슈만의 사랑이 담긴 ‘피아노 4중주’

슈만의 사랑과 결혼 이야기는 음악가들의 여러 사랑 이야기 중에서도 특히 유명하다. 부모님의 뜻대로 안정적 생활을 위해 법대에 입학했던 청년 슈만은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피아니스트를 꿈꾸며 스승인 비크를 만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른손에 영구적인 부상을 입으며 피아니스트로서의 꿈은 좌절됐고 그 대신 스승의 외동딸이자 뛰어난 피아니스트로서 장래가 밝던 클라라를 사랑하게 된다. 클라라가 아직 성년도 되지 않았기에 자신을 탐탁지 않게 여긴 스승 비크와 법적 투쟁까지 벌인 끝에 결혼하게 된 슈만은 출판업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에 따라 문학적인 재능도 있었기에 피아노 대신 음악평론과 작곡을 통해 생계를 꾸린다. 신음악지의 편집장을 맡아 주필로서 쇼팽, 베를리오즈, 브람스 등을 찬사해 세상에 널리 알리기도 했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취약했던 집안 내력에 따라 양극성 장애를 앓았던 슈만은 조증이 왔던 시기에는 왕성한 작곡활동을 보여줬으나 울증이 왔던 시기에는 작곡을 전혀 못하기도 했다. 1840년 클라라와 결혼한 슈만은 정신적 안정을 얻고 ‘가곡의 해’라 불릴 만큼 그해 많은 가곡작품을 쏟아내며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해냈다. 1841년에는 보다 거대한 규모의 교향곡을 작곡했고 1842년에는 ‘실내악의 해’로 불릴 만큼 피아노 4중주와 피아노 5중주 등의 걸작을 발표했다. 특히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의 4명이 주고받는 내밀한 사적 대화 같은 피아노 4중주 op.47은 요즘 성격유형검사(MBTI)에 따르면 ‘극 I’(내향적 성향)였을 듯한 슈만이 따뜻한 가정을 이루고 신혼의 달콤함 속에서 부인이자 뛰어난 피아니스트인 클라라를 위해 피아노를 포함시켜 은은하게 사랑을 속삭이는 듯하다. 귀족의 살롱 중심의 음악회에서 벗어나 교향곡이 중심이 되는 거대한 공공음악회가 성행하기 시작한 당대에 바그너, 베를리오즈 등의 신독일악파에 의해 고루하다고 비판받던 장르인 실내악은 이러한 슈만과 브람스 등의 걸작 덕분에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수 있었다. 특히 3악장 안단테 칸타빌레는 낮은 음역에서 가슴을 잔잔히 적시는 첼로의 서정적인 선율로 시작해 바이올린과 비올라로 이어지는 따뜻한 선율이 일품이다. 찬란한 봄 로맨틱한 슈만의 사랑을 생각하며 들어보기 적절한 클래식이리라 확신한다.

[인천시론] 글로벌 인천의 매력적 관광자원 ‘전통시장’

최근 들어 각종 도시여행 프로그램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야시장 등 먹거리 가득한 전통시장이다. 21세기 도시들은 도시 간 경쟁 속에서 도시 마케팅에 주력하고 있으며 인천도 이를 위해 다양한 도시관광 전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형마트, 온라인 쇼핑 시대에도 여전히 전통시장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한 상업공간을 넘어서 지역공동체의 중심이자 역사와 문화의 보존 공간이며 도시관광의 중요 자원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일본 와카야마현의 인공섬 ‘마리나시티’에 위치한 수산시장인 구루시오시장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와카야마 시정부는 쇠락해 가는 지역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1990년대 초에 약 49만m² 규모의 인공섬을 조성하기로 했는데, 그 중심부에 일본의 전통적 이미지를 구현하는 전통시장을 배치해 지역경제의 구심점으로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핵심적 앵커시설로 계획된 구루시오시장은 풍부한 해산물과 특산품으로 유명한 와카야마현의 지역 자원을 홍보하고 판매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었고, 참치 해체쇼 등 재미있는 이벤트와 함께 신선한 해산물을 현장에서 바로 맛볼 수 있는 바비큐 코너 등이 마련돼 일본 국내뿐 아니라 한국 등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유명한 관광지로 이미 알려져 있었다. 도시관광에서 멋지고 세련된 신도시의 현대적인 건축물에서보다 지역의 맛스러운 가치를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의 장소가 기억에 강하게 인식된다는 것을 우린 알고 있다. 그래서 도시 여행객은 빠지지 않고 전통시장을 찾게 되는데 정작 현대화라는 이름으로 그 정체성을 잃거나 도시개발 사업에 밀려 흔적없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전통시장은 소상공인의 생계와 관련되는 지역경제 활성화 측면에서도 그 의미가 있겠지만 이웃 간의 교류와 공동체 문화 형성 등 도시의 정체성과 역사 보존의 장소로서의 가치도 지닌다. 시설 노후화나 접근성 등 현실적 한계를 지녔지만 지역의 특색을 반영한 공간마케팅 등 좀 더 계획적이고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구도심에 위치한 전통시장은 재개발사업에 포함되는 경우가 많았고 개발사업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사라지거나 소규모 슈퍼처럼 한편으로 밀려나기도 했다. 또는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전통시장의 유휴공간을 활용해 청년의 창업을 지원하고 전통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목표로 청년몰 사업이 추진되기도 했다. 이러한 시도가 일부 지역에서는 성공한 사례도 있지만 저조한 매출, 상인들과의 갈등 등 여러 이유로 현재는 이렇게 조성된 청년몰은 빈 상가로 남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역의 특성을 살리면서 교통이나 편의시설 등 물리적 환경을 조성하고 다양한 즐길거리와 문화적 생태계를 조성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도시의 가치를 높이고 매력적인 도시로서의 장소 만들기 핵심전략으로 전통시장은 소중하고 귀하게 다뤄져야 할 것이다. 구루시오시장처럼 도시를 계획함에 중심부에 전통시장을 배치하고, 특색을 살리는 공간디자인과 지역사회와 연계된 프로그램 등 아낌 없는 투자와 지원을 통해 도시의 상징으로서 자리매김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항과 항만을 지닌 글로벌 도시로의 전통시장은 우리가 지켜내야 하는 소중한 지역자원이며 정책적, 시민적인 측면의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단순한 보존이 아니라 살아 있는 공간으로의 재창조해야 할 것이다.

[기고] 청소년을 노리는 사이버 도박

‘한 번만 해보자’는 호기심이 ‘멈출 수 없는 습관’이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요즘 청소년 사이에서 은밀하게 퍼지고 있는 사이버 도박은 단순한 유희가 아닌 중독성과 범죄성을 동반한 위험한 덫이다. 과거 도박이 어둠 속에서 몰래 이뤄졌다면 이제는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대다. 청소년들이 자주 사용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유튜브, 공개 채팅방을 통해 유입되는 불법 스포츠토토, 온라인 바카라, 슬롯머신 게임, 게임머니 환전 사이트 등은 외형상 단순한 게임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청소년을 노리는 불법 사이버 도박이다.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이나 ‘용돈벌이’로 시작하지만 결국 돈을 잃고 관계가 무너지고 학교생활과 미래까지 흔들리는 결과를 낳는다. 청소년들이 사이버 도박에 빠지는 이유는 다양하다. 친구의 소개, 경제적 유혹, 손쉬운 접근성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특히 SNS와 메신저를 통해 도박 사이트가 무분별하게 확산되면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일부 청소년은 도박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가족의 금전까지 손대는 상황에 이르기도 한다. 더 나아가 절도, 중고물품 사기, 대리 입금 등과 같은 2차 범죄로 이어지는 사례도 적지 않아 사회적 우려를 낳고 있다. 이에 경기남부경찰청은 사이버 도박에 연루된 청소년들이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지난 1일부터 5월31일까지 청소년 도박 자진 신고제인 ‘고(GO)-백(BACK) 프로젝트’를 운영한다. 이 제도는 처벌보다는 선도와 회복을 중심에 둔 제도로 도박에 참여했거나 관련 정보를 아는 청소년이 ‘117 신고센터(전화)’에 자진 신고할 수 있다. 자진 신고자는 수사 및 처벌에서 일정 부분 감면받을 수 있으며 전문 상담, 예방 교육, 병원 치료 등 종합적인 회복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단순히 법적 처벌을 피하는 것이 아니다. ‘숨김없이 말해 청소년들이 도박에서 벗어나 본래의 삶으로 돌아간다’는 데 진정한 의미가 있다. 실수보다 중요한 것은 그만두는 용기이며 청소년들이 문제를 혼자 끌어안지 않도록 주변의 따뜻한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 나아가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문제이니 만큼 정부와 지역사회는 예방교육과 지속적인 지원 체계를 강화해 청소년들이 건강한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가정에서는 청소년 도박에 관심을 가지고 아이들과 소통해 도박을 사전에 차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경기만평] 이럴 수도...?

[사설] 정당과 대선 후보자들은 개헌 로드맵을 제시해야

헌법재판소가 지난 4일 윤석열 전 대통령을 파면 선고함으로써 제21대 대통령선거가 오는 6월3일 실시된다. 각 정당은 이미 대선 후보자 당내 경선을 위한 선거관리위원회를 구성, 당내 경선 일정을 확정하고 오늘부터 후보자 등록을 받는다. 각 정당은 대선에 출마할 최종 후보자를 이달 말 또는 5월3일까지 확정할 예정이다. 이미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4일 오후부터 대통령 후보자 예비 등록을 받고 있으며 본선에 출마할 후보자 등록은 5월10~11일이며, 선거운동은 5월12일부터 6월2일까지로 22일 동안 전개될 예정이다. 내달 중순경부터는 각 후보자의 공약이 적힌 선거벽보가 거리에 부착되고 유권자들은 책자형 선거홍보물을 받는다. 이번 선거는 역대 어느 대선보다도 국가 발전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지난 12·3 비상계엄 사태로 정국 혼란은 지속되고 경제는 침체되고 있으며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관세 폭탄 등 국제 정세는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초불확실성 시대로 인해 국민들은 불안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번 대통령선거는 시대정신을 반영해야 한다. 87년 개헌 이후 역대 대통령은 성공적인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 충분한 여론 수렴없이 졸속으로 개헌된 87년 헌법은 5년 대통령 단임제를 채택했으나, 이는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후유증만 발생해 국가 발전에는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줬다. 때문에 역대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개헌을 약속했지만, 집권 후 개헌 약속은 흐지부지돼 오늘과 같은 불행한 사태가 발생했다. 따라서 그동안 변화하는 시대를 반영하자는 개헌 논의는 무성했다. 특히 이번 대선이 개헌에 적기라는 공감대는 정치인들은 물론 국민들 간에 형성돼 있다. 최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도 개헌에 찬성하는 국민이 54%나 된다. 지난 6일 우원식 국회의장도 “다시는 이런(비상계엄과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없도록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며 “이번 대통령선거일에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시행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우 의장의 제안은 사실상 민주당의 반대로 사흘 만에 철회하는 촌극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국민의 최대 관심사는 개헌을 통해 제7공화국을 열자는 것이다. 이번 대선에 출마할 후보자와 소속 정당은 대선 공약에 개헌의 일정·내용 등을 밝힌 개헌 로드맵을 제시해 유권자로부터 심판을 받고 당선 후 반드시 공약대로 이행하기 바란다. 개헌을 통해 87년 체제를 청산, 제7공화국을 열기를 요망한다.

[사설] 평화경제특구, 계획 수립에 도·시군 참여시켜라

통일부가 ‘평화경제특구 기본구상’을 확정했다. 평화경제특구법에 의해 조성되는 특별 지역이다. 지방세 부담금 감면 등 세제 혜택이 주어진다. 각종 자금과 기반시설이 지원된다. 그동안 가장 컸던 관심은 지역 선정이었다. 경기·인천·강원에서 모두 15개 시·군이 선정됐다. 경기도에서는 김포, 파주, 고양, 동두천, 양주, 포천, 연천 등 일곱 곳이 포함됐다. 인천에서는 강화와 옹진이 선정됐고 나머지 여섯 곳은 강원이다. 정부는 선정된 지역을 서부·중부·동부권으로 구획했다. 각자 지역에 맞는 특화 산업단지를 만든다는 구상이다. 강화·옹진·김포·파주·고양으로 구성된 서부권은 ‘미래 혁신제조업, 신산업 분야 첨단산업단지’다. 양주·동두천·연천·포천·철원으로 구성된 중부권은 ‘농업+관광+경공업 융합형단지’다. 춘천·화천·양구·인제·고성이 포함된 동부권은 ‘관광중심 첨단물류·서비스 특화단지’로 육성한다는 방향을 세웠다. 이번에 발표된 그림은 ‘기본 구상’이다. 대상 지역을 선정한 것이 가장 큰 의미다. 사업의 구체성을 담은 ‘기본 계획’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통일부는 “연내 수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연말까지 놓여 있는 정치적 변수가 많다. 가장 큰 것이 6월3일 치러지는 대선이다. 대북 정책은 정권에 따른 변화와 부침이 많은 분야다. 새로 출범하게 될 정부의 대북 정책을 예단하기 어렵다. 변화가 커질 수 있다. 결국 경기도의 주도적 참여가 중요하다. 경기도 관계자도 이런 현실적 책임을 설명했다. “기본 계획이 수립되면 내년에 도에서도 개발계획을 세워야 하기 때문에 경기연구원에 단기 정책 과제를 의뢰했다.” 때마침 경기북부특별자치도를 구상한 경기도다. 상당 부분 지역이 겹친다. 북자도 구상을 평화경제특구에 담아낼 수도 있다. 그러려면 평화경제특구 구상 단계부터 경기도가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건 지역의 목소리다. 다들 평화경제특구를 준비해 왔다. 이를테면 파주시는 지난달 ‘파주시 평화경제특구 조성 구체화 방안 마련 연구용역’을 보고했다. 규제 혁파, 산업기반 시설 활용, 교통망 활용 등의 구체안을 담았다. 고양, 동두천, 양주, 연천에도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자체 구상이 있다. 지역의 사정이 철저히 분석돼 있다. 문제와 해결책이 정리돼 있다. ‘기본 계획’이 가져다 써야 한다. 수십년간 억눌려 온 접경지역 경제다. 세금 몇 푼 깎아서 살아날 빈곤이 아니다. 기반시설 몇 개 세웠다고 몰려올 기업도 없다. 포괄적이면서도 세밀한 수술이 필요하다. 그 조건을 가장 잘 아는 것은 해당 지역이다. 정부, 경기도, 7개 시·군이 함께 연구해야 한다.

[지지대] 아직도 대학은 ‘우골탑’

허리가 휠 정도로 힘들었다. 베이비붐세대 부모들의 자녀 대학등록금 마련이 그랬다. 1980년대 한우 한 마리 값은 60만~70만원대이었다. 사립대 연간 학비는 70만원대, 국립대는 30만원대였다. 그래서 자녀를 대학에 보낸 부모는 소도 팔고 논도 팔아야만 했다. 학생들도 학비를 버느라 고생하긴 마찬가지였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입주 과외 같은 것들이 있었다. 당시 중앙 일간지 하단에는 학교와 학과 등을 소개하며 입주 과외를 호소하는 광고들이 빼곡했다. 최근 대학등록금을 포함한 교육물가가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크게 인상(경기일보 8일자 8면)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사립대를 중심으로 이 같은 움직임이 국·공립대와 전문대까지 퍼지며 물가 상승의 뇌관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통계청 국가통계 포털 분석 결과다.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자. 지난 3월 교육물가(지출목적별 분류)는 지난해보다 2.9% 올랐다. 금융위기 시절인 2009년 2월 4.8% 이후 16년1개월 만에 최대 폭이다. 교육물가는 전체 소비자물가를 0.21%포인트 끌어올렸고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1%를 기록했다. 원인은 사립대를 중심으로 한 등록금 인상인 것으로 집계됐다. 2월20일 기준 전국 4년제 사립대 151곳 중 79.5%인 120곳이 등록금을 올리기로 했다. 3월 물가지수에서 사립대 납입금은 1년 전보다 5.2% 뛰었다. 2009년 2월 7.1% 이후 상승 폭이 가장 컸다. 이 여파로 국·공립대 39곳 중 28.2%인 11곳도 등록금을 올리기로 했다. 가난했던 시절 대학등록금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마련해야만 했던 타협 불가 영역이었다. 그러다 보니 대학은 소의 뼈로 세운 건물이라는 뜻의 ‘우골탑’으로도 불렸다. 코끼리의 엄니인 상아로 이뤄진 탑이라는 뜻의 ‘상아탑’ 대신 말이다. 요즘도 그때로부터 조금도 자유롭지 않은 것 같아 씁쓸하다.

[아침을 열면서] 4월, 책과 독서를 기념하는 달

스마트폰 등이 일상화되기 전에는 연말연시에 새 다이어리를 장만한 후 으레 달력 안에 챙겨야 할 중요 행사나 기념일, 꼭 기억해야 할 날들은 색 펜으로 표시하곤 했다. 집중력과 꼼꼼함이 필요한 작업이라 다 정리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지금은 스마트폰 일정표 앱에 한 번 입력해 놓으면 해마다 정보가 연동되니 편리하다. 예전만큼 하나하나 점검하는 데 시간이 걸리지는 않으나 그만큼 기억하고 싶은 기념일에 둔감해져 자칫 중요한 일정을 놓치는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그래서 월말이나 월초에 매달 챙겨야 할 주요 일정을 꼭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4월에도 개인 기념일과 더불어 여러 국가기념일이 있어 정리해 본다. 제일 먼저 4·3 희생자 추념일이 있다. 제주4·3사건에서 참혹하게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고 국가폭력이 국민에게 자행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을 다지게 되는 날이다. 제주 4·3공원을 방문했을 때 위패봉안실에 있던 수많은 희생자 이름을 보며 말문이 막혔던 경험이 있다. 비극의 역사이지만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될 일이기에 꼭 기억해야 할 날이다. 4월4일은 57주년이 되는 예비군의 날이다. 예비군 신분임을 증명하면 여러 놀이공원이나 전시 관람 할인 행사가 있었다고 하니 징병제 국가에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청춘의 시간을 내어준 이들을 위한 마땅한 혜택이라고 생각한다. 4월5일은 식목일이다. 6·25전쟁 이후 산림녹화 시절에야 식목일이 중요했겠으나 지금은 큰 의미가 있을까 싶었는데 3월 말 대규모 산불로 산림 소실률이 어마어마했고 이재민도 대량 발생해서인지 이번 식목일을 맞이하는 마음은 남달랐다. 7일은 보건의 날이고 11일은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기념일이다. 우리 헌법과 정부의 정통성이 수립된 날이므로 우리나라 민주화의 중요한 기점인 4·19혁명기념일과 함께 매우 중요한 날이 아닐 수 없다. 20일은 장애인의 날이고 21일은 과학의 날, 22일은 정보통신의 날, 25일은 법의 날, 28일은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 4월 4주 차 금요일은 순직의무군경의 날이다. 모두 국가가 지정하자고 한 이유가 있을 법한 날이니 꼭 기억해 두면 좋겠다. 국가기념일은 아니지만 책이나 책 읽기와 연관해 기념할 만한 날도 있어 마저 정리해 본다. 2021년 도서관법을 개정하면서 도서관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높이고 이용 촉진을 위해 4월12일을 도서관의 날로 지정해 이후 일주일간은 도서관 기반의 다양한 독서 행사가 열린다. 4월23일은 세계 책의 날이다. 책의 소중함을 기억하고 책 읽기의 중요성을 확인하며 저작권을 존중하자는 의미로 제정된 날이다. 세계 책의 날에는 가족이나 지인에게 책과 꽃을 선물하는 행사가 열린다. 올해도 공공 및 민간 영역에서 다양한 책 행사가 진행될 예정이니 꼭 참여해 보길 바란다. 독서의 달인 9월 외에 4월도 중요한 책의 달임을 잊지 말자. 이런 기념일들은 지정해도 참여하는 이들이 없다면 공허한 울림일 뿐이다. 그러려니 무심하게 지나치지 말고 진짜 의미 있는 날이 될 수 있도록 함께 즐기고 기억하면 좋겠다.

[이만종의 클로즈업] 소크라테스가 오늘날 한국 정치를 본다면

정치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이 질문은 인류 문명이 시작된 이래 끊임없이 제기된 근본적인 물음이다. 2천400년 전 고대 아테네에서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이 질문에 답하려 했다. 그는 당시 민주정의 몰락을 목격하면서 대중의 열광과 선동에 휘둘린 정치가 어떻게 파국을 맞이할지 경고했다. “여론은 이성적 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그의 말은 단순한 회의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 내면에 숨어 있는 구조적 취약점을 꿰뚫은 통찰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정치가 공공선을 위한 철학적 성찰과 도덕적 책임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도자는 단순히 다수의 인기를 얻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무지를 자각하고 더 나은 지혜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러한 철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현대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인 ‘절제’와 ‘진실’은 점점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한국 정치의 현실은 어떤가.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 정치적 변화와 혼란은 한국 정치의 불안정성을 보여준다. 오늘날 정치는 점점 ‘숙고의 공간’이 아니라 ‘감정의 장’으로 변해 가고 있다. 정치인들은 국민의 분노와 불안을 자극하는 언어로 표심을 끌어들이고 유권자들은 정책보다는 이미지와 말투로 지도자를 평가한다. 정치 담론은 깊이가 아니라 자극을 좇고 실용보다는 선동이 앞선다. 이런 감정 정치가 반복될수록 정치적 양극화는 심화되고 사회는 합리적 해결 능력을 잃게 된다. 최근 여야 공방은 정치가 대결과 진영의 프레임에 갇혀 있음을 잘 보여준다. 한쪽은 정권 심판을 외치고 다른 한쪽은 야당의 발목잡기를 비난한다. 비전과 실현 가능한 정책은 사라지고 언론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정치적 구호와 혐오의 언어로 넘쳐 난다. 국민은 피로감을 호소하고 정치에 대한 불신은 커져만 간다. 이대로라면 정치의 본령은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정치는 본래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는 숙의와 협력의 과정이어야 한다. 싸움도, 쇼도, 권력 쟁탈전도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기적 정략이 아니라 장기적 안목이다. 감정적 반응이 아니라 이성적 토론이 필요하다. 정쟁이 아니라 문제 해결의 정치, 증오가 아니라 공감의 정치가 절실하다. 정치는 삶의 질을 높이고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 돼야지 상대를 꺾기 위한 전쟁이 돼서는 안 된다. 소크라테스는 훗날 플라톤에게 ‘철인왕’을 이상적인 통치자로 묘사하게 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그를 문자 그대로 따를 수 없다. 그럼에도 그의 가르침—지도자는 지혜와 도덕성을 겸비해야 하며 권력은 국민을 위한 책임이어야 한다—은 여전히 유효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자는 말 잘하는 인기인이 아니라 국가의 본질적 문제를 꿰뚫는 통찰과 실천 능력을 갖춘 인물이다. 책임 있는 언행, 삶에서 드러나는 품격, 그리고 비전 제시의 능력이 결합된 리더십이 절실하다. 특히 급변하는 국제 질서와 기술 혁신의 시기에 고정관념에 갇힌 정치가 아니라 유연성과 통찰을 겸비한 정치가 필요하다. 다가오는 조기 대선은 단지 정치적 변화를 위한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의 본질을 다시 묻고 우리가 어떤 사회를 원하는지를 성찰하는 계기다. 감정이 아니라 이성, 이미지가 아니라 정책을 기준으로 선택해야 한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중요한 절차이지만 동시에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대한 선택이기도 하다. 유권자의 선택 하나하나가 미래 세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소크라테스가 오늘의 한국 정치를 바라본다면 아마 광장에서 이렇게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지금 당신들이 뽑으려는 지도자는 진정으로 국가를 위한 준비가 돼 있는가.” 그 물음에 우리는 떳떳이 답할 수 있을까. 정치의 본질은 권력 쟁취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책임과 헌신임을 지금 이 순간 다시 새겨야 한다. 국민이 현명한 선택을 할 때 정치도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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