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위기를 번영으로 극복한 남북전쟁

인간이 인간을 부리던 시대였다. 노예 문제다. 결국 이 사안으로 충돌했다. 한쪽은 농업 위주여서 필요했지만 다른 측은 공업지대가 많았다. 한쪽은 포기할 수 없었다. 인권 문제에 앞서 생활 그 자체여서다. 노예제를 지지하던 이들은 군대를 꾸렸다. 국가로부터 분리를 선언했다. 이후 공격을 감행했다. 큰 상처를 안겨준 내전은 그렇게 시작됐다. 1861년 4월이었다. 그 포화는 1865년까지 4년 동안 이어졌다. 미국 남북전쟁의 서사가 그랬다. 노예 소유를 허용하던 남부와 이를 금지하던 북부가 공존하는 상황에서 갈등은 피할 수 없었다. 링컨 대통령은 노예제를 시행하는 주(州)에 노예제 철폐법안을 제안하진 않았다. 하지만 연설을 통해 노예제 확산을 막고 국민의 마음 속에 노예제 폐지가 불가피하다는 믿음을 심고 싶다는 의지를 표현했다. 1850년대 정치적 갈등의 줄기는 노예제 확대 여부가 주를 이뤘다. 남부는 연방에서 분리되고자 노력했다. 북부와 남부 모두 노예제가 다른 지역으로 확장되지 않는다면 범위가 축소되거나 결국 폐지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노예제에 반대하는 세력에 연방정부 통제권이 넘어갈 것에 대한 남부의 우려와 노예제 지지자들이 연방정부에 휘두르는 영향에 대한 북부의 혐오는 위기를 맞았다. 노예제의 도덕성, 민주주의의 범위, 자유노동과 노예제 간의 경제적 이득에 대한 논쟁 등이 도마에 올랐다. 그 전쟁이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 1865년 4월9일이었다. 북부군은 36만여명, 남부군은 26만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패배한 남부는 황폐화돼 경제적 손실이 막대했다. 더구나 전쟁 전까지 노예를 부려 목화를 재배하던 남부는 링컨 대통령의 노예 해방 선언으로 경제적 기반이 무너졌다. 전쟁이 남긴 상처는 북부와 남부 모두에 큰 시련이었다. 미국은 이를 극복하고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이전보다 훨씬 더 단합된 국가를 이뤘다. 태평양 건너편 나라의 역사이지만, 요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사뭇 무겁다.

[천자춘추] 체육의 봄

‘Opening a New Era for KSOC’. 대한체육회가 새로운 시대를 연다는 의미의 캐치프레이즈 아래 유승민 대한체육회장이 지난달 취임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이번 대한체육회장선거는 예상을 깨고 젊은 탁구 영웅이 승리를 거두는 이변이 연출됐다. 또 체육회의 굵직한 현안 중 하나인 ‘2036년 올림픽 유치 신청 국내 후보지 선정’에서도 서울을 제치고 전북이 선정되면서 유 회장이 취임하자마자 또 한번 이변이 일어났다. 심지어 유 회장은 대한체육회 출범 105년 만에 첫 여성 사무총장을 발탁하는 파격 인사를 단행했다. 이처럼 요즘 국내외 체육계에는 변화의 요구와 함께 신선한 바람이 불고 있다. ‘세계 스포츠 대통령’이라 불리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에 최초의 여성, 그것도 아프리카 짐바브웨 출신 커스티 코번트리가 당선됐다. 42세로 역대 두 번째 최연소 위원장인 그는 2004년과 2008년 올림픽 수영 여자 배영에서 연속 금메달을 딴 ‘짐바브웨 수영 영웅’이다. 특히 코번트리의 당선은 오랜 기간 뿌리 내린 ‘유럽·남성’ 중심의 IOC ‘유리천장’을 깬 대단한(?) 사건이다. 당선 배경을 보면 IOC 위원 109명 가운데 변화를 갈망하는 젊은 위원들이 최연소 후보(1983년생)인 그녀에게 표를 몰아준 것이 크게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겨울 시즌 국내 체육계는 대한체육회장을 비롯해 회원 종목단체 회장들을 선출하는 선거가 이어졌다. 경기도체육회도 산하 종목단체 총 69개 가운데 68개 단체가 회장 선거를 마무리했다. 지난 겨울은 정치적으로 어지러운 시기였지만 체육계도 그에 못지않은 잡음과 혼선이 이어졌다. 과거 선거가 끝나면 반드시 ‘화합’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후보들을 중심으로 갈라졌던 단체 구성원들을 다시 하나로 뭉치는 조치를 가장 먼저 취해온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선거 후에도 분열된 조직의 ‘화합’보다 권력 주변인들을 위한 ‘끼리문화’, 즉 그들만의 조직문화가 만들어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히 선수, 지도자, 동호인, 심판 등을 위해 할 일이 산적한 체육단체에서만은 ‘화합’이 최우선임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우리가 그토록 변화를 갈망하며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키는 이유는 다양성을 수용하고 발전적인 ‘진화’를 바라기 때문이다. 많은 이변을 연출하며 새롭게 등장한 국내외 체육계 수장들이 과연 어떤 리더십을 보여줄지, 갈등과 반목의 겨울이 가고 다시 움트고 있는 ‘체육의 봄’은 또 어떤 모습의 꽃을 피울지 기대가 크다. “오늘 유리천장은 산산조각이 났다. 이 투표 결과가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줬으면 좋겠다”는 사상 첫 여성 IOC 위원장 커스티 코번트리의 당선 소감처럼 이번 봄에는 국내 체육계에도 많은 ‘희망’이 싹틔우길 바라본다.

[왕선택의 세계는 지금] 윤석열 내란이 보여준 한국의 약점

2025년 4월4일,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을 내리면서 122일간 이어졌던 ‘윤석열 내란 사태’는 마무리됐다. 이번 사태가 윤석열 파면으로 귀결된 것은 민주주의 회복 탄력성을 국내외적으로 과시한 것으로 국가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우리의 취약점이 국제적으로 노출된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목격한 대한민국의 취약점을 되짚고 제도적·문화적 성찰을 기록하는 것은 이런 일의 재발을 막고 국가 이미지 개선에 다소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본질적인 문제는 민주주의와 헌정질서가 일시적이지만 붕괴됐다는 점이다. 헌법 수호자인 대통령이 스스로 헌법을 유린하는 내란을 일으켰다는 것은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대통령은 국민 신임을 받아 막강한 권한을 위임받았지만 그 권한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행사해야 한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은 야당이 자신의 통제에 따르지 않는 것을 국가비상사태로 규정하고 국민을 계몽하겠다며 군대를 동원해 국회 장악을 시도했다. 앞으로 대통령 지시라 해도 계엄 선포에 따른 군부대 동원의 경우에는 추가적인 확인 장치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 또 대통령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헌법을 수호할 것인지 철저하게 따져보고 투표해야 한다는 교훈도 얻었다. 대통령의 난폭한 헌정질서 파괴에 대해 공직사회가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는 점도 실망스러운 점이다. 특히 국무위원들은 국무회의 심의를 통해 계엄 선포를 만류했어야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무기력한 방관자였을 뿐이다. 윤리와 양심, 헌법 책무보다도 권력에 대한 충성을 택한 결과다. 사실은 결과적으로 자신들의 주군이 파면됐으니 제대로 충성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비겁하고 무책임하며 무기력한 대응이었을 뿐이다. 어리석고 난폭한 대통령과 이기적이고 무기력한 국무위원들이 다시 나타난다면 대통령 내란이 재발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여당이었던 국민의힘이 이번 내란 행위에 동조하는 태도를 보인 것도 예상하지 못한 충격이다. 윤 전 대통령은 정치인 출신이 아니어서 착각할 수 있다고 하지만 국회의원은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정치인이고 민주주의와 헌정질서 수호에 책임이 있는 헌법 기관이다. 국회의원과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내란 동조는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다. 정치 셈법으로 봐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과반수 국민과 대립하면 대선 패배와 권력 상실은 당연하다. 국민의힘은 국민에 봉사하는 정치 기본으로 돌아가 셈법을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내란 주도 세력은 물론이고 내란에 동조하는 세력들이 진실과 사실 문제에 대해 보여준 파렴치한 태도는 윤리와 양심을 무시하고 이기주의에 집중하는 우리 사회 일단의 병리를 극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다. 윤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 변론 기회에 계엄 당일 자신이 동원한 군부대 지휘관이 자기에게 국회의원 체포를 지시받았다고 했는데도 그런 적이 없다고 잡아뗐다. 계엄이 금방 해제될 것을 알고 계엄을 지시했다고 말했다. 부당한 지시를 군인들이 따르지 않을 것임을 알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초등학생도 속기 어려운 거짓말은 일부 언론의 가짜뉴스와 부정선거 주장에서도 극적으로 노출됐다. 주한미군이 선관위에 체류하던 중국인 99명을 체포해 일본 오키나와 미군부대로 이송했다는 한 매체의 보도는 상식선을 뛰어넘는 가짜뉴스다. 부정선거 주장은 이번에 헌법재판소에서도 확인했지만 그동안 다양한 조사와 심리를 통해 근거가 없다는 점이 밝혀졌는데도 여전히 음모론을 제기하거나 동조하는 사람들은 태도를 바꿀 생각이 없어 보인다. 취약한 부분이 드러났으면 고치는 노력이 필요하다. 몇 주일이나 몇 달 만에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고 꾸준하게 노력하면 2, 3년이 지나면 개선을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100여년 간의 국가적 고통을 겪은 이후 경제 성장과 정치 발전, 한류 확산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멋진 나라로 올라선 만큼 이번에 드러난 몇 가지 취약점을 극복하는 과제도 멋지게 수행할 것이다.

[세상읽기] 가짜뉴스 시대,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이 뉴스, 진짜 맞나요?” 학생뿐 아니라 일반 시민 사이에서도 자주 들리는 말이다. 정보는 넘치지만 진위를 가리지 못한 채 믿고 싶은 대로 해석하고 전파하는 일이 흔하다. 우리는 지금 정보의 양이 아니라 내용을 판단할 힘이 부족한 위험한 시대를 살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누구나 정보를 생산하고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 편리함 뒤에는 허위 정보, 조작 콘텐츠, 음모론, 혐오 표현 등 고질적인 사회적 병폐가 따라붙는다. 정보 생산자의 특정한 목적을 반영한 알고리즘은 감정적인 콘텐츠를 덧붙여 더욱 빠르게 확산되고 이 과정에서 편향된 사실과 감정이 뒤섞여 정보의 혼란은 극심해진다. 정보의 진위 판독 문제는 단순히 글을 읽는 능력이 아니라 정보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해석하는 능력, 즉 오늘날 우리가 ‘리터러시(literacy)’라고 부르는 종합적 사고 역량에 있다. 과거 문해력은 글을 읽고 쓰는 기술에 머물렀지만 현대의 리터러시는 정보의 출처와 목적을 따져보고 숨겨진 의도와 편향을 감별하며 그 내용을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해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포함한다. 한국 학생들은 2022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독해 영역 평균 점수가 OECD 평균을 웃돌았고 전체의 13%가 상위 수준(Level 5 이상)에 도달했다. 이 수준의 학생들은 긴 글을 해석하고 추상적이거나 직관에 반하는 개념을 이해하며 암시된 단서와 출처를 바탕으로 사실과 의견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은 이러한 흐름을 반영해 ‘미디어 리터러시’를 민주시민교육의 내용 요소로 포함했지만 교육 현장에서는 여전히 선언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교사 연수는 부족하고 실질적인 교육 콘텐츠도 드물다. 교과 간 연계나 정책 차원의 지원도 미흡한 상황이다. 미디어 리터러시의 부족은 단지 교육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공중보건의 문제로도 직결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코로나19 팬데믹이다. 백신에 대한 음모론, 잘못된 건강정보, 과장된 민간요법 등은 접종률을 떨어뜨리고 감염병 확산을 부추겼다. 공동체의 정신적 건강까지 위협한 것이다. 잘못된 정보는 단지 오해를 낳는 수준이 아니라 생명을 위협하는 사회적 위험 요소가 된다. 보건학에서는 이를 ‘건강정보 이해능력’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이는 건강 관련 정보를 찾고 해석하며 신뢰성을 평가해 적절히 활용하는 능력이다. 하지만 많은 시민은 유튜브 영상이나 블로그 글이 ‘전문가의 말’처럼 보이기만 해도 쉽게 신뢰한다. 과학적 근거 없이 소비되는 정보는 의료적 판단을 흐리게 하고 불필요한 건강 비용을 초래하며 때로는 치료 시기를 놓치게 만든다. 더 큰 문제는 정보 접근성의 격차다. 노인, 장애인, 저소득층 같은 정보 취약 계층은 허위 건강정보에 더욱 쉽게 노출되고 이로 인해 질병 예방과 치료에서도 소외될 가능성이 높다. 이 모든 문제의 근원에는 ‘정보를 비판적으로 읽고 판단하는 힘’, 즉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부재가 자리하고 있다. 이제는 국어 교과 속 ‘읽기’ 수업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사회, 도덕, 과학 등 모든 교과를 아우르는 교육 시스템과 국가 차원의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법적 기반을 마련하고 관련 기관이 협력하는 ‘미디어 교육 거버넌스’가 구축돼야 한다. 이제 우리도 행동해야 한다. 가짜뉴스에 맞서는 가장 강력한 백신은 단속이 아니라 비판적 사고력이며 그것은 오직 교육을 통해 길러질 수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수단일 뿐 아니라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공공의 장치다. 디지털 시대의 시민은 더 이상 수동적인 정보 소비자가 아니다. 우리는 정보를 읽고, 해석하며, 판단할 줄 아는 ‘능동적 시민’을 길러야 한다. 그 출발점은 바로 지금, 교육 현장에 있다.

[경기일보] 빠지면 섭섭...

[사설] 고압송전로·LNG 발전소, 끼인 안성에 보상은 없는가

갈 길 바쁜 용인시는 피가 마른다. 원삼면 SK반도체클러스터 사업이다. 세계 반도체 시장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준공 계획을 맞추기 위해 총력전에 나서야 한다. 이런 사정을 안타깝게 하는 갈등이 있다. 고압 송전선로 반대와 LNG발전소 반대다. 둘 다 반도체 산단 가동에 필수 요건이다. 인근 안성시의 격한 반대에 부딪혀 있다. 용인시 고위 관계자가 이렇게 상황을 설명했다. “국가 경쟁력의 문제인데 너무 지역 이기주의만 말하고 있다.” 안성시 반대는 실제로 격하다. 최근에도 안성시의회 앞에서 규탄 회견이 있었다. 안성시의회 의장과 부의장, 운영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이들이 비난한 건 용인 LNG발전소 건설이다. 원삼면 죽능리에 들어설 1.05GW 규모다. 안성 경계로부터 2.5㎞ 떨어졌다. 대기질 안정 가이드라인에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LNG발전소는 탄소 배출이 석탄 발전의 50% 정도다. 온실효과는 이산화탄소의 25배라고 알려졌다. 시민의 건강 걱정이다. 고압 송전선로 반대도 거세다. 안성시를 지나는 송전선로 3개 공사다. 용인 원삼·남사 반도체 산단이 목적지다. 송전선로는 전자파 노출의 우려가 있다. 지역 미관 저해로 인한 지가 하락도 있다. 과학적 증명에는 여러 이견이 있다. 하지만 주민들이 갖는 거부감은 현실이다. 송전선로가 놓이는 곳마다 마찰이 컸다. 안성시도 지난해 11월부터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경기도 시장군수협의회에 공식 제기도 했다. 역시 주민 건강 걱정이다. 지방선거가 1년 앞으로 다가왔다. 시장·시의원들에 대한 재신임의 시간이다. 반대 목소리는 높아질 것이다. 기자회견, 성명 발표, 서명운동, 항의 방문도 늘어날 것이다. 산단 조성 공정을 맞춰야 할 용인시다. 선택의 여지도 별로 없는 사업이다. 추진해야 할 필요성에는 이견이 없다. 용인시 고위 관계자의 주장도 일리 있다. 하지만 안성시민의 박탈감 또한 현실이다. 지역이 받는 유무형의 피해도 사실이다. 강요하고 밀어붙일 게 아니다. 안성시민을 위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 대안이 없다면 보상이라고 내놔야 한다. 직접적 보상이 안 된다면 우회적 보상이라도 고민해야 한다. 지방자치의 속성은 무한 경쟁이다. 용인시와 안성시 모두 이런 공통의 목표에 산다. 용인시를 천지개벽할 반도체 클러스터다. 용인시민이 부자 되는 대개발 사업이다. 행정구역 너머의 안성시민이 있다. 희생만 강요해서는 안 된다.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시-도-국가에 맡겨진 책무다.

[사설] 반입협력금 유예... 쓰레기 떠넘기기 조장한다

지난주 인천시민·환경단체들이 환경부를 겨냥한 공동성명을 냈다. 요지는 ‘생활폐기물 발생지 처리 원칙’을 제대로 지키라는 것이다. 반입협력금 징수 유예 조치가 이 원칙을 흔들고 있다고 했다. 자기 동네 쓰레기를 남의 동네에 떠넘기면서도 아무 부담이 없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서울 쓰레기가 거리낌 없이 인천·경기로 흘러 들어오는 중이라 했다. 틀린 말 하나 없어 보인다. 국회는 지난 2022년 폐기물관리법을 개정, 반입협력금을 도입했다. 생활폐기물 발생지 처리 원칙을 확립하기 위해서다. 쓰레기를 반출하는 지자체에 대해 쓰레기를 받아들이는 지자체가 징수하는 보상적 금액이다. 남의 폐기물을 받아 소각 처리한 지자체는 이 돈을 소각장 주변 환경 개선 및 주민 지원에 쓴다. 지난해 12월28일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갈 참이었다. 그러나 환경부는 지난해 10월 이를 3년 유예 조치했다. 종량제 폐기물이 공공소각시설로 반입되는 경우에만 예정대로 반입협력금을 시행한다. 그러나 민간소각장에서 처리되는 경우는 2028년 1월1일부터 반입협력금을 부과한다는 것이다. 환경부의 설명은 이러하다. 반입협력금이 부과되면 타 지역 민간소각장에서 처리되는 폐기물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된다. 주민 반발 등 혼란이 예상돼 축소 시행한다는 것이다. 지난주 공동성명에는 인천지역 4개 시민·환경단체가 참가했다. 인천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가톨릭환경연대, 인천녹색연합, 인천환경운동연합 등이다. 이들은 “환경부가 공공소각장 확충에 실패한 서울시의 생활폐기물 처리 방안을 마련해 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곧 인천·경기지역 주민에게 환경 피해를 전가하는 ‘서울 쓰레기 외주화’나 마찬가지라 했다. 특히 민간소각장에 대한 반입협력금 유예는 폐기물 이동에 대한 공적 통제를 어렵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환경부가 서울시의 공공소각장 확충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인천·경기시민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생활폐기물 발생지 처리 원칙은 매우 엄중하다. 생활폐기물은 발생한 그 지역에서 처리돼야 한다는 의미다. 장소성의 원칙이다. 이유가 있다. 환경 보호, 지역사회 안전, 경제적 효율성, 사회적 책임성 등이다. 당연하고도 상식적이며 현재 전 세계에서 두루 통하는 명제다. 대한민국 자원순환 정책의 근간이 발생지 처리 원칙과 직매립 금지다. 발생지 처리 원칙이 흔들리면 쓰레기 처리 의무 주체가 불분명해진다. 소각장도, 대체매립지도 ‘내 알 바 아니다’ 생각하게 한다. 환경부는 장차 어쩌려고 스스로 발생지 처리 원칙을 뒤흔드는가.

[지지대] 특성화고 졸업생들의 ‘설 자리’

특성화고의 변천사만큼 복잡한 게 또 있을까. 특성화고는 처음에 전문계고 또는 실업계고로 불렸다. 이후 자연현장실습 등 체험 위주의 전문적인 교육을 목표로 한 특성화고로 전환됐다. 2012년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91조에 근거해서다. 그러다 정부가 기술명장 육성을 내세우며 마이스터고를 설립하면서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됐다. 한국교육개발원 통계자료에 따르면 경기도내 특성화고는 70개교로 2023년 기준 23.7%의 취업률을 보였다. 특성화고가 취업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2016년 취업률이 정점을 찍었다가 이내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반면 2023년 진학률은 50.5%로 취업률을 앞서고 있다. 이렇다 보니 중학교를 직접 찾아가 진학설명회를 할 때도 주요 학과에 대한 소개와 함께 ‘특성화고 전형으로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점을 전면에 내세우기도 한다. 취업담당 교사들은 낮아진 취업률과 높아진 진학률은 ‘환경이 달라져서’라고 설명한다. 가정 형편 때문에 직장으로 향하던 청소년들이 줄었고 학부모도 자녀가 고졸로 남길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거기에 일자리가 제조업일 경우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외국인 밑에서 배워야 할 만큼 인력구조가 바뀐 것도 요인 중 하나로 꼽는다. 최근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직업계고 외국인 유학생에게 취업비자를 부여할 수 있도록 법무부에 비자정책 개선을 요청한다는 내용의 안건을 의결했다. 갈 곳 잃은 국내 특성화고 졸업생들의 설 자리가 더 좁아지는 건 아닌지 세밀한 점검이 요구된다.

[문화산책] 다시 봄 ‘벚꽃엔딩’

벚꽃엔딩. 매년 봄이면 어김없이 들려오던 이 노래를 올해는 유독 듣기가 힘들었다. 그간 예상하지 못한 정치적 혼란과 항공기 사고, 대형 산불 등으로 인해 전 국민이 봄을 맘껏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리라. 가슴 졸이던 시간이 지나고 진짜 봄을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다. 때마침 이번 주부터 수도권은 본격적인 봄꽃 개화기에 돌입한다. 많은 이들이 여전히 겪고 있는 아픔을 생각하면 봄 꽃놀이를 논하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피어난 봄꽃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상처 입은 마음과 소중한 일상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우리 선조들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화류, 화전, 화취, 답청놀이로 불리는 봄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화류놀이를 ‘음력 3월 무렵 화창한 봄날,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산기슭이나 산골짜기에서 하루 종일 즐기는 민속놀이, 세시풍속’, 화전놀이는 ‘진달래가 피어나는 춘삼월에 여성들이 인근의 산천을 찾아 벌이는 집단적 놀이활동’으로 설명하고 있다. 과거의 봄놀이는 진달래, 살구꽃, 복사꽃이 필 무렵 절정을 이뤘고 단순히 꽃 감상에 그치지 않고 시와 가무를 함께 즐겼다고 하니 그때나 지금이나 봄꽃은 사람들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고 시와 노래를 흥얼거리게 하는 매력을 갖고 있는 듯하다. 봄꽃을 즐길 수 있는 명소가 많은 수도권에 사는 이들이라면 저마다 나만 아는 봄꽃 명소 한두 곳쯤은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좀 더 색다른 봄꽃여행을 즐길 수 있는 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동두천에 위치한 니지모리 스튜디오는 일본 에도시대로 떠나 봄꽃놀이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종종 왜색문화를 전파하는 곳으로 오해받지만 이곳은 원래 일본 로케이션을 대체하기 위해 조성된 촬영 세트장으로 미스터선샤인 등의 시대물이 이곳에서 촬영됐다. 타 지역의 촬영세트장과 달리 모든 시설물을 카페, 전시장, 숙박시설 등으로 실제 활용해 수준 높은 전시와 일본문화 체험이 가능하다. 특히 봄에는 쇼죠마쓰리가 개최돼 좀 더 색다른 봄꽃여행을 즐길 수 있다. 인천 강화군의 북문길은 인천관광공사가 선정한 10대 봄꽃 명소 중 한 곳으로 벚꽃의 개화 시기가 늦고 야간조명이 설치돼 느긋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다. 고려시대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강화산성 북문에서 고려궁지까지 아름드리 벚꽃터널 구간을 지나 강화군의 원도심으로 내려오면 용흥궁,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이화견직 담장길, 소창기념관, 조양방직 카페 등 우리나라 근현대의 이야기를 품은 장소들도 함께 만날 수 있다. 강화군의 이색 먹거리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꾼과 함께한다면 더욱 특별한 시간여행을 즐길 수 있다. 삼국시대의 군사적 요충지였던 연천군의 호로고루는 봄꽃은 아니지만 청보리밭과 주상절리를 함께 볼 수 있는 봄여행 명소로 6·25전쟁 이전 번성했던 고랑포구 일대의 역사와 이후 분단된 한국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특별한 곳이다. 또 예부터 복사골로 유명한 부천시는 3대 봄꽃(진달래, 벚꽃, 복사꽃)과 튤립, 장미를 릴레이로 즐길 수 있는 봄꽃관광주간을 운영 중으로 좀 더 오래 다양한 봄꽃여행을 즐길 수 있다. 경기도 곳곳의 수목원들도 수선화 등 봄꽃을 테마로 축제와 이벤트를 운영한다고 하니 인근의 봄꽃 명소를 찾아 치유와 위로의 시간을 갖는 건 어떨까. 물론 우리 주변의 상처 입은 사람들과 자연을 돌아보며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각자의 역할을 생각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인천시론] 인천 짠물과 소금박물관

인천은 흔히 ‘짠물’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서 짠 바닷물을 맛볼 수 있는 곳은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도 유독 인천만 ‘짠물’이라 불리게 된 이유는 사실 바다가 아니라 염전 때문이다. 1907년, 바닷물을 햇볕에 말려 소금을 만드는 천일제염(天日製鹽) 방식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작된 곳이 바로 인천의 주안염전이다. 조선 중기 문헌에서부터 보이는 ‘주안’은 원래 지금의 남동구 간석동과 부평구 십정동 일대를 가리키는 이름이었다. 그런데 이 천일제염 방식이 십정동 일대 염전에서 처음 성공하자 동네 이름을 따서 이곳을 ‘주안염전(정식 명칭은 ‘주안 천일제염 시험장’)’이라 이름 짓고 사업을 본격화했다. 이어 조선을 완전한 식민지로 삼은 일제(日帝)는 질 좋은 소금을 많이 생산하기 위해 주안염전을 확장하는 한편 남동과 소래, 군자 등지에도 계속 염전을 만들었다. 이 때문에 1930년대 이후 인천의 소금 생산량은 전국 최고 수준이 됐다. 1940년대 정부에서 운영한 전국의 천일염전 면적 통계를 보면 인천의 염전 면적이 1천664정보(1정보는 3천평)로 나온다. 이는 당시 정부가 운영한 전국 천일염전 전체 면적 5천925정보의 28.1%로 다른 행정구역에 비해 가장 넓은 면적이었다. 이뿐 아니라 이들 염전에서 나오는 소금을 정제(精製)하는 공장들까지 계속 늘어나 인천은 온통 ‘짠 동네’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인천 짠물’은 이런 이유로 탄생한 별명이다. 그러나 그 뒤 인천의 도시 규모가 점점 커지고, 여기에 정부의 수출 주도 정책에 따른 산업단지 계획이 적극 추진되면서 주안염전은 1968년 무렵부터 없어지기 시작했다. 그 대신 그곳에는 수출공단 5·6 단지가 만들어졌다. 1980년대에는 남동·군자염전 등지에도 줄줄이 공단이 들어섰다. 그래서 이제 인천은 염전과는 거의 관계없는 도시가 됐지만 한때를 풍미했던 소금밭의 기억은 ‘짠물’이라는 별명 속에 여전히 살아있다. 이런 역사를 따져보면 인천에는 이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시설이 진작에 생겼어야 옳았다. 하지만 십정동에 우리나라 최초의 천일염전이 있었음을 기념하는 ‘천일제염 시험장 표지석’이 1989년 세워진 것 이외에는 지금까지 별다른 후속 사업이 없었다. 그런데 다행히 얼마 전부터 부평구의 구의회와 주민들을 중심으로 소금박물관을 만들자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천일제염 발상지인 십정동에 박물관을 만들어 인천과 소금에 얽힌 여러 역사적 사실과 가치를 널리 알리자는 뜻이다. 생각해 보면 2천여년 전 주몽의 아들 비류가 굳이 인천(미추홀)에 도읍을 정했던 것도 소금 무역을 통한 해상권(海上權) 장악을 꾀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짠물 인천’에 당연히 있었어야 할 박물관의 건립이 이제야 논의되다니 반가움과 함께 시민의 한 사람으로 그동안의 무심함을 반성하게 된다. 부평구뿐 아니라 인천시 차원에서 적극적인 동참과 지원이 이뤄져 멋진 소금박물관이 태어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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