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칼호에서 달콤한 짧은 휴식을 보내고 우리는 몽골고원으로 내려간다. 지난해 7월 초 한여름 서울에서 출발해 블라디보스토크, 스코보로디노, 바이칼호 등 고(高)위도 ‘한대 지방’을 통과해 달려왔다. 이제는 중국의 시안까지 직선으로 약 3천㎞를 내려갈 계획이다. 한대기후에서 스텝기후, 반사막기후, 사막기후, 온대기후 등 며칠 동안 많은 기후 변화를 경험할 것이다. 러시아 ‘울란우데’에서 몽골 국경 도시 ‘다르항’으로 가야 한다. ■ 극동 시베리아 중심 도시 울란우데 화창한 햇볕을 맞으며 오전 8시 바이칼호 숙소를 힘차게 출발한다. 어제 오후 정비소에 맡겨 놓은 일행의 자동차를 찾기 위해 ‘울란우데’ 정비소로 향한다. 서울에서 140㎞ 떨어진 정비소라면 무척 먼 거리라 생각하지만 광대한 대륙성 분위기에 적응한 우리는 가까운 거리로 생각한다. 정비소 기사는 구멍 난 ‘터보’ 주위를 감싸 임시로 이동할 수 있도록 고쳤다고 한다. 어제 일행은 경기도에 사는 한 동생에게 전화해 새 부품 ‘터보’를 구입, 4일 후 중국 내몽골 국경 도시 ‘엘렌하오터’로 가져오도록 연락했다. 우리 차가 몽골고원을 제대로 통과하는 것이 당면 목표다. 중국 내몽골 국경에서 서울에서 가져온 새 ‘터보’로 고장 난 부품을 교체할 계획이다. 몽골로 출발 전 울란우데 시청 앞에 있는 레닌 동상을 구경하기 위해 시내로 향한다. 레닌이 1924년 사망 후 후계자 스탈린은 레닌 우상화를 위해 소련 내에 수만개의 레닌 동상을 설치했다고 한다.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개혁개방 분위기에서 대부분의 레닌 동상은 철거됐다. 울란우데 시청 앞에 설치된 레닌의 머리동상은 1991년 철거를 계획했다가 당시 철거비가 너무 많이 들어 포기했는데 지금은 울란우데의 대표적인 관광지가 됐다. 역사의 재미있는 반전이다. 레닌 시신은 모스크바 붉은광장 레닌묘에 ‘미라’로 만들어 안치돼 있다. 울란우데부터 동쪽의 태평양, 사할린섬까지의 영토를 ‘극동 러시아’로 부른다. 극동 러시아의 인구는 겨우 800만명이다. 매년 인구가 줄어들어 영토 관리에 위기를 느끼는 지역이다. 블라디보스토크를 포함한 연해주 지역은 19세기 중반 청나라로부터 강탈한 영토이고 사할린 남쪽의 섬들은 일본으로부터 2차 세계대전 후 빼앗은 영토다. 모스크바로부터 거리가 멀고 인구가 줄어들면 미래 이 지역은 지정학적 분쟁지역으로 발전할 수 있다. ■ 몽골고원의 스텝 지대 울란우데에서 남쪽으로 넓은 초지로 조성된 지리학상 ‘스텝’ 지대다. 이곳 스텝 지역을 중심으로 몽골인들이 신성시하는 ‘셀렝게강’이 바이칼호로 흘러 들어간다. 지리학에서 스텝 지역은 나무는 띄엄띄엄 자라고 초지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남쪽 몽골 방향으로 내려가면서 양, 말, 소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 목가적 풍경을 보면서 자동차 여행의 지루함을 잊고 있다. 러시아의 남쪽 국경 세관이 있는 국경 도시 ‘캬흐타’까지 260㎞를 달려야 한다. 캬흐타는 1727년 중국과 러시아 간 국경을 확정한 ‘캬흐타조약’을 체결한 지역인데 오늘 통과한다. 오늘 러시아 남쪽 변방의 세관에 출국 신고를 하고 몽골공화국의 세관에 입국 신고를 해야 한다. 세관에서 어떤 일이 생길지 내심 걱정하면서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다. 시베리아 대평원은 추운 한대기후지만 북극해로부터 실려 온 수증기로 인해 여름은 비가 자주 오고 겨울은 눈이 많이 내린다. 강수량이 충분해 산림지대와 초원지대가 형성돼 사람이 거주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북극해로부터 멀리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몽골고원의 남쪽 지역은 비가 적게 오는 반사막, 사막기후로 변하고 있다. 바다는 수억년 전 생명 탄생의 고향인데 지금도 수증기를 증발시켜 육지에 비를 내려 인간 생활에 가장 큰 도움을 준다. 우리처럼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영토는 신의 축복을 받은 지역이라는 감사한 생각이 든다. 1년 중 7, 8월은 사막에도 비가 오는 우기(雨期)여서 몽골고원 초원은 환상적으로 아름답다. 고려청자의 비취색을 닮은 하늘, 연초록색 초원, 지평선 멀리 야트막한 구릉, 하얀 뭉게구름 등 대자연의 아름다운 조화가 여행의 피로를 날려 보낸다. ■ 러시아, 몽골 ‘육상국경’ 통과하기 2주일 전 블라디보스토크 항구의 해관(海官)으로 입국했는데 오늘은 러시아 남쪽에 설치된 육상국경을 통과해야 한다. 군대 초소, 경찰 초소와 출입국 기관, 세관 등 많은 정부 기관의 검사를 받아야 한다. 이번 자동차 여행에 육상국경을 여덟 번 통과해야 하는데 오늘이 첫 번째다. 가장 먼저 국경으로부터 30여㎞ 후방의 군부대 검문소에서 여권을 검사한다. 군대 초소 앞에 앉아 무한정 기다린다. 40여분을 기다리니 통과하라고 여권을 돌려준다. 군대 초소를 통과해 수십㎞ 달려가니 경찰 초소 검문소를 만난다. 이후 캬흐타에 있는 세관에 도착한다. 우리는 자동차가 무사히 빨리 통관하는 것이 관심사다. 세관 직원들이 자동차가 러시아 입국 당시 신고 서류와 출국 차량이 동일한지 조사한다. 이러한 자동차 확인 과정에 무척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자동차 여행이 만만치 않음을 국경에서 다시 한번 체험한다. 관세법상 자동차는 ‘휴대전화’로 분류된다. 처음 출국할 때 가져온 차를 중간에 팔거나 다른 차로 바꾸면 안 된다. 사고가 나 폐차하게 되면 해당 국가의 ‘폐차 확인서’를 발급받아 서울에 가져가야 한다. 몽골 국경에서 자동차 입국 신고, 차량 검사에 1시간이 걸렸다. 두 나라 국경 통과에 4시간이 걸렸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는 오후 9시다. 국경에서 숙소인 몽골 도시 ‘다르항’까지 160㎞를 달려야 한다. 캄캄한 밤중에 갈 길은 먼데 몽골의 도로 형편은 시베리아 못지않게 구멍이 파인 포트홀이 많고 편도 1차선 좁은 도로다. 화물차가 많이 다니는 도로여서 속도 내기도 어렵다. 문제는 일행의 차가 수리했음에도 언덕길은 잘 못 가고 평지나 내리막길에는 80㎞로 달려가는 수준이다. 일행의 차는 임시방편 운행을 하고 있다. 향후 1천㎞ 이상 몽골고원을 어떻게 통과할지 걱정이다.
조선 숙종 때 경기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 사인비구가 1674년 만든 조선시대 종이다. 사인비구는 18세기 뛰어난 승려이자 장인으로 전통적인 신라 종의 제조기법에 독창성을 합친 종을 만들었다. 현재 그의 작품 8구가 서로 다른 특징을 보이며 전해지고 있다. 이 종은 종을 매다는 고리인 용뉴와 소리의 울림을 도와준다는 대나무 모양의 음통에 역동적인 모습의 용이 새겨져 있다. 또 종의 어깨와 아래 입구 부분에는 연꽃과 덩굴을 새긴 넓은 띠를 두르고 있으며 어깨 띠 아래에는 사각형의 대가 있고 그 사이사이에는 보살상을 세웠다. 사실적으로 표현한 수법이 특히 돋보이는 작품으로 사인비구가 김룡사 종, 수타사 종(1670년)을 제작한 이후 완숙한 기량을 발휘한 수작인 점에서 조선 후기 장인 사회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국가유산청 제공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소설 ‘작은 아씨들’은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작품으로 이 소설이 등장한 시기에는 보기 드문 여성서사를 핵심으로 하고 있다. 이 작품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드라마와 영화 등에서 다양하게 재해석되고 있는 이유다. 원작 소설은 가난한 마치(March) 가문의 자매들이 백인 남성 중심의 보수적 사회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성장하는 이야기다. 이 점에서 문화비평 영역에서는 ‘작은 아씨들’을 페미니즘 비평이론의 관점으로 해석하곤 한다. 그렇다. 적어도 문화비평 분야에서 페미니즘은 특정 대상을 혐오하거나 조롱하기 위함이 아닌 그런 대상을 재해석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된다. 그래 왔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은 혐오의 단어가 됐고, 이는 그러한 경향의 사람들을 ‘페미’라고 부르며 낙인을 찍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는 아무래도 페미니즘을 단순히 특정 경향의 집단으로 오해하고 정치적으로 악용한 데서 비롯된 것 같다. 물론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이 페미라는 조롱의 표현으로 전락하기까지 여러 과정과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페미니즘이 우리 사회의 톨레랑스를 성찰하고 인식적 탄력성을 형성하는 데 기여한 바는 부정할 수 없다. 무엇보다 대중이 페미니즘을 단순히 남성 혐오 정도로만 인식하는 것과 달리 문화비평 이론에서 정리하는 페미니즘의 사적 전개 과정은 복잡다단하다. 19세기부터 1950년대까지의 페미니즘은 여성들의 참정권, 아프리카계 영국·미국인의 권리 신장 등을 주도한 1세대 페미니즘의 성격을 띤다. 즉, 자유주의적 여성주의를 표방한 것이다. 이후 페미니즘은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노동 문제에 입각한 급진적 성격으로 전개되고 1990년대 이후부터는 좀 더 다양한 계층과 영역으로 확장되면서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등의 권리운동과도 결탁해 포스트모던적 성격을 지니게 된다. 이 같은 페미니즘 이론은 대중문화 속에서 ‘타자화’된 소수자들에게 우선 주목한다. 즉, 가부장적 전통사회의 남성과 같은 특권층이 주체화된 문화 속에서 여성 같은 소수자가 부당하지만 자연스럽게 객체화되는 고정성과 보편성을 비판하며, 배경으로 밀린 그들을 중심부로 소환해 목소리를 돌려주고 그것을 전경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흔히 대중문화 속에 재현되는 소수자의 이미지가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하는 문제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 또한 소수자성을 또 다른 방식으로 개념화한다는 점에서 큰 한계가 있었고 이후 수정된 혹은 새롭게 정의된 페미니즘에서는 젠더적 정체성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끊임없이 변모한다는 점에 더 큰 주목을 하고 있다. 일례로 몇 해 전 방영된 한국 드라마 ‘작은 아씨들’은 원작 소설을 각색한 작품으로 이 드라마에서는 단순히 여성 해방이나 근로자성, 소수자와 타자와의 연대를 이야기하는 데 머물러 있지 않다. 그보다는 매 순간 변모하고 진전하는 여성 캐릭터들 그리고 그들의 연대와 연대의 가치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돈, 섹스, 권력이라는 인류의 원죄적 속성과 맞물리면서 결과적으로는 단순히 여성의 이야기로 젠더 특수화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구원에 대한 문제로 보편화된다. 이렇게 페미니즘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고, 그것이 문화계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에 끼낀 영향력은 잠잠하면서도 파워풀하다. 그것은 페미니즘이 기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 곧 틀렸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인정하고 용인하는 사회를 지향하고, 그것을 통해 한 사회문화의 개방성과 다양성을 확장하는 데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이 단순히 급진적 여성주의나 남성 혐오 정도로만 폄훼되는 현상은 다소 위험하고 그러한 점에서 세대를 거듭하며 발전할 수 있었던 서양의 페미니즘과 달리 발전 동력을 압제당한 한국 페미니즘의 흐름은 매우 안타깝다.
광주시에 용도가 의심스러운 주차 공간이 있다. 경안천 자연생태시설에 조성된 주차장이다. 광주시가 2021년 퇴촌면 광동리에 만들었다. 부지만 8만3천237㎡로 23억원이 투입됐다. 장미와 국화, 억새, 라벤더 등 9종의 식물도 심었다. 잔디광장까지 갖춘 제대로 된 시설이다. 관광객들을 맞이하겠다는 의욕으로 시작했다. 지역주민들이 기대하는 부대 수익도 있었다. 이랬던 모습을 최근에는 찾아 보기 어렵다. 특히 주차장이 엉망이다. 대형 캠핑카가 장기간 주차하고 있다. 그렇다고 캠핑장으로서의 역할도 못한다. 입구부터 흉물스러운 드럼통들이 목격된다. 건축 폐기물로 보이는 쓰레기들도 버려졌다. 누군가 버린 것으로 보이는 냉동차 짐칸도 방치돼 있다. 주인을 알 수 없는 목재와 대리석도 쌓여 있다. 주차장 한 편에 관리 주체를 짐작케 하는 광주시 마크가 있다. 하지만 담당 부서나 연락처 등은 표시되지 않았다. 민원을 제기하려 해도 부서를 정확히 알기 어렵다. 본보가 첫 보도 이후 한 달여 만에 이유를 지적했다. 담당 부서가 정확히 지목되지 않았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부서끼리 업무를 떠넘기고 있었다. 당초 업무는 건설과에 속해 있었다. 이후 조직 개편이 있었고 하천과로 넘기는 게 옳았다. 하지만 관련 서류가 여전히 건설과에 보관된 상태였다. 하천과는 ‘서류가 건설과에 있으니 건설과 업무’라고 주장했다. 반면 건설과는 ‘하천부지에 있는 시설이니 하천과 업무가 맞다’고 주장했다.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업무 지정은 원칙과 기준에 의해 분류된다. 하천 담당 부서가 하천과라면 하천부지 주차장도 하천과 소속이 타당하다. 서류가 건설과에 남아 있다는 것은 그냥 현상일 뿐이다. 그런데 ‘서류가 있는 부서가 책임 부서’라는 주장을 편 셈이다. 더구나 건설과에서 주차장 문제를 담당했던 팀장이 현재 하천과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을 누구보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혼란을 지켜만 봤다. ‘서류 있는 곳이 담당 부서다.’ 처음 듣는 논리다. 딱 떨어지는 부서 간 업무 떠넘기기다. 벌어진 일에 대한 책임 회피다. 두 부서가 이렇게 업무 미루기를 하는 사이 주차장은 쓰레기, 폐차, 무단 주차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관할 퇴촌면이 출입 제한을 위한 차단봉 설치를 시도했다. 하지만 시청 관리 부서를 확인하지 못해 설치하지 못했다고 한다. 어처구니없는 일 아닌가. 무엇보다 시민이 알게 되면 참 민망할 일이다.
인천 광역버스 준공영제가 제 구실을 못하는 모양이다. 인천시의 2번째 대중교통 준공영제다. 팬데믹 여파로 운행률이 뚝 떨어진 광역버스를 정상화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나도록 신규 노선 개통도 못하고 있다. 기존 노선 운행률 개선도 제자리걸음이다. 광역버스를 몰 기사를 구하지 못해서라고 한다. 갈 길이 험난한 광역버스 준공영제인가. 인천시는 지난해 10월부터 광역버스 준공영제를 시작했다. 버스회사에 인건비와 유류비, 보험비 등을 6 대 4 비율로 보전해 주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2개 신규 광역버스 노선도 따냈다. 검단신도시~여의도 간 M6659, 검단신도시~구로디지털단지 간 M6660 노선이다. 당초 올해 1월 개통이 목표였지만 계속 늦춰지고 있다. 이 노선들을 맡을 버스회사가 기사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들 노선의 7대를 운행하려면 기사 20명이 필요하다. 채용 공고는 계속 내고 있지만 지원자가 없다고 한다. 기존 광역버스 노선에서도 기사를 구하지 못해 운행을 줄이고 있는 실정이다. 송도국제도시에서 강남을 오가는 M6405 노선이 대표적이다. 최근 17대인 버스를 1대 감축했다. 1일 운행횟수도 68회에서 64회로 줄었다. 인천시는 지난해 광역버스 준공영제를 시작하며 기사 처우 개선에 나섰다. 예산을 들여 1백만원 정도 급여를 높였지만 여전히 시내버스 기사와는 차이가 크다. 현재 광역버스 기사 급여는 3호봉 기준 월 450만원이다. 반면 시내버스 기사는 3호봉 기준 월 520만원 수준이다. 경기지역 광역버스 기사 급여와도 차이가 난다. 이러니 시내버스 쏠림 현상에다 타 지역 유출까지 빚어진다. 현재 인천 광역버스 31개 노선의 운행률이 70% 수준이다. 정상 운행률(100%)을 맞추려면 기사 900명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510명뿐이다. 피해는 고스란히 인천시민들에게 돌아온다. 검단지역 신규 노선 2개가 개통하면 40~50분이면 서울 구로, 여의도로 바로 갈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2번 이상 환승해도 1시간30분이나 걸린다. 운행 횟수가 줄어든 송도 주민들도 출퇴근 시간마다 광역버스 얻어 타느라 지쳐 간다. 결국은 돈 문제로 모아진다. 여기저기서 예산을 더 늘려 기사 처우를 개선하라고 한다. 세수 보릿고개 시대에 쉽지 않을 것이다. 준공영제이니 버스업체가 답답해하지도 않을 것이다. 16년째인 시내버스 준공영제를 보면 걱정이다. 처음 223억원이던 예산 부담금이 지난해 2천580억원으로 불어났다. 앞으로 광역버스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준공영제의 딜레마다.
정치부장 때 노무현 탄핵을 취재했다. 대통령의 정치 중립 위반이 사유였다. 경기·인천 언론 국장단 간담회 발언이었다. 그 자리에서 나도 밥을 먹고 있었다. 빵으로 시작하는 양식이었던 거 같다. 그 밥자리 직전 발언이었다. 한나라당이 탄핵으로 끌고 갔다. ‘내가 현장에서 들었는데 문제 없는 발언인데....’ 주위에 몇 번을 얘기했다. ‘내가 부족한가 보다’며 반성도 했다. 하지만 최초 내 판단이 맞았다. 탄핵 기각, 노무현 대통령 복귀. 논설실장 때 박근혜 탄핵을 취재했다. 최순실 특혜와 국정 농단이 사유였다. 연설문 대리 작성이 시작이었다. 최태민 목사, 7시간 불륜, 보톡스 시술, 비아그라 매입.... 지금도 확인되지 않은 ‘설’이 난무했다. 2016년 12월9일 국회가 탄핵을 소추했다. 내란·외환의 죄가 없는 탄핵이었다. 법에서 배운 것과 달랐다. 하지만 내 취재와 칼럼은 여론에 묻혔다. 법(法)도 광화문을 가득 메운 촛불을 따라갔다. 탄핵 인용, 박근혜 대통령 파면. 주필인 지금 윤석열 탄핵을 취재한다. 12·3 계엄 선포가 사유다. 모든 국민과 세계 언론을 놀라게 했다. 지난해 12월14일 국회가 탄핵을 소추했다. 오늘까지 110일간 헌재가 심의·평의를 해왔다. 국회와 윤 대통령의 주장이 첨예하다. ‘헌법 위반’(국회)과 ‘내란죄 철회’(윤), ‘명백한 증언’(국회)와 ‘오염된 증언’(윤), ‘검찰 조사 인정’(국회)과 ‘헌재법 위반’(윤).... 이번 취재를 한 문장으로 모아본다. ‘행위가 과연 파면에 이를 정도인가.’ 4월4일 오전 11시에 결정 난다. 모든 논쟁은 거기서 정리될 것이다. 재판관들의 절묘한 법어(法語)가 등장할 것이다. 항고도 재심도 없는 탄핵은 그렇게 끝난다. 나는 결과를 모른다. 남 모르고 나만 아는 정보는 없다. 그러니 쓸 가치도 없다. 맞으면 요행이고 틀리면 망신이다. 대신 이 얘기는 적어 두겠다. 전국을 뒤덮었던 보수의 물결이다. ‘노무현’ 땐 전혀 없었고, ‘박근혜’ 땐 거의 없었다. 그 모습을 적는 것도 이게 마지막일 거다. 탄핵과 길거리 투쟁은 진보의 무기였다. 어이 없는 노무현 탄핵도 그들이 증명했다. 내란 없는 박근혜 탄핵도 그들이 완성했다. 그런데 이번은 달랐다. 탄핵 반대로 뭉친 보수가 길거리를 점령했다. 부산, 대구, 광주, 대전을 휩쓸었다. 규모로도 탄핵 찬성을 압도했다. 그들 스스로 이것이 대한민국의 여론이라 믿었다. 그래서 내일이 걱정이다. 혹시 저들이 분노할 결과가 나오면 어떻게 되는 걸까. 내가 지켜본 사람도 그 속에 있다. 주위에선 그를 ‘I 언니’라고 부른다. 평범한 아줌마였고 보통의 엄마였다. 2024년 12월까지는 그랬다. 그가 거리를 누비는 투사로 변했다. 가정보다 정치를 외치는 시위대가 됐다. “윤석열 대통령 석방하라”고 외쳤다. 대통령을 본 적 없다. “이재명 대표 구속하라”고 외쳤다. 이 대표와도 생면 부지다. 그런데도 그렇게 외치며 추운 겨울을 보냈다. 손등이 추위에 갈라져 보기에 흉하다. 평소 안 좋던 허리에 몸져 눕기를 반복했다. 하루 남은 오늘, 그에게 해 줄 말이 있다. -지난 겨울은 충분히 의미 있었다. 작은 목소리를 충분히 전달하셨다. 이념의 균형을 유지시켰다. 탄핵이 얼마나 위험한지 세상에 알리셨다. 이제 역사에 넘기고 가정으로 돌아가시라. 포용할 수 없다면 잠시 잊으시라.- 우리 언론은 이걸 ‘승복’이라고 쓴다. 또 고백하건대 나는 정보가 없다. 그럼에도 보수가 서운해할 결과를 전제해 봤다. 이래야 승복과 멈춤을 권할 수 있어서다. 세 번째 탄핵 취재가 끝나간다. 보수와 진보 모두 무서웠던 취재였다. 그래서 네 번째 취재는 상상하지 않는다.
부천의 50년은 문화예술도시를 지향하며 성장했다. 특별한 관광지나 역사가 전혀 없는 부천이 도시 성장을 거듭하며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와 ‘국가 문화도시’로 선정된 기반에는 문화예술 인프라가 주를 이뤘다. 짧은 도시 역사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정주의식을 갖고 부천에서 행복을 찾았고, 그들이 어른이 돼 다시 아이를 키우는 세대가 됐다. 오늘날 그들은 갈망한다. 신도시 붐을 타고 부천시청 잔디광장과 중앙공원을 잇는 ‘차 없는 거리’에서 자유롭고 안전하게 자전거를 타고 공연을 보며 자신들이 자란 것처럼 이제는 자녀들과 함께 주말을 즐기고 싶은 것이다. 최근 시의회 제282회 임시회에서 부천시의회 최의열 의원은 중앙공원과 시청 잔디광장을 하나의 열린 문화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주말 ‘차 없는 거리’ 운영 재개를 제안했다. 이에 사단법인 한국예총부천지회(회장 고형재)는 지난 30년 가까이 복사골예술제를 비롯한 각종 문화예술 행사를 이곳에서 치러 왔기에 이 의견에 매우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했다. 코로나 이후로 주말 ‘차 없는 거리’ 운영은 중단됐고 봄부터 가을까지 시민들이 자유롭게 광장에서 즐기는 아름다운 부천 풍경은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물론 축제 기간에 맞춰 일부 운영되기는 했지만 중앙공원이라는 신도시 유일한 휴식처와 시청 잔디광장의 확장성이 단절되는 바람에 예술 공연의 주최자나 시민 모두 불편함을 감수하고 안전에도 취약했다. 일부 인근 차량 혼잡을 걱정하는 목소리는 이해하지만 삭막해지는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시민이 행복한 도시’가 우선이라는 것과 주 5일제를 넘어 4일제가 논의되는 등 여가생활 확대가 필수인 것은 모두 알고 있는 만큼 이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시민들의 행복지수를 높일 수 있는 최상의 대안이 문화예술이기에 부천예총 예술인들은 도시 공간을 시민들에게 되돌려주기를 희망한다. 이번 제40회 부천복사골예술제 슬로건처럼 ‘광장-그 도시의 매력’을 시민들이 제대로 즐기고 느끼기를 희망한다면 광장을 더 이상 도시 속의 섬으로 만들지 말고 잔디광장과 중앙공원을 하나의 예술문화벨트로 구축해 문화시민의 긍지와 수준 높은 예술을 만끽할 수 있도록 차 없는 거리를 시민들에게 되돌려주자.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난달 25일 발표된 오픈AI의 새로운 이미지 생성 기술이 연일 화제다. 누구나 디자이너나 애니메이터 수준의 그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여러 혁신적인 기능 중에서도 가장 큰 주목을 받은 것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지브리’의 그림체를 완벽하게 구현하는 기능이었다. ‘지브리피케이션’이라는 새 유행어가 탄생하면서 소셜미디어와 커뮤니티는 지브리풍으로 바뀐 자신들의 사진과 그림을 공유하는 사람들로 넘쳐 났으며 백악관까지 이 열풍에 동참했다. 누구나 이제 애니메이션의 거장이자 지브리의 수장인 미야자키 하야오 같은 그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이 기술 혁명을 환영한 것은 아니다. 창작자 커뮤니티에서는 정보기술(IT) 기업이 거장 예술가의 지식 재산권을 무단으로 훔쳤다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에 몇 년 전 AI 애니메이션을 ‘삶에 대한 모욕’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던 미야자키의 인터뷰까지 다시 주목을 받으면서 생성형 AI 기술이 창작의 민주화를 이끄는 혁신인지, 아니면 창작자의 예술혼을 훼손하는 천박한 모방이자 무단 복제인지에 대한 논쟁이 격화되고 있다. 하지만 이 논쟁에서 어느 쪽에 서 있든 부정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독창적 원본’이 가진 강력한 힘이다. 사람들이 AI가 만든 지브리풍의 외형적 스타일에 열광하는 밑바탕에는 미야자키의 원작 애니메이션 속에 담긴 섬세한 스토리텔링과 철학적 깊이, 그리고 작품을 통해 공유했던 감정과 시간에 대한 기억, 예술적 아우라에 대한 향수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 일본 아이치현에 문을 연 ‘지브리파크’가 큰 성공을 거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 테마파크는 놀이기구 대신 ‘이웃집 토토로’의 숲, ‘마녀 배달부 키키’의 거리 등 지브리 애니메이션 속 공간을 현실에 그대로 구현해 놓았다. 관람객들은 가상이 아닌 현실의 공간을 직접 걷고 체험하면서 자신들이 작품을 보며 느꼈던 감흥과 기억을 되살리고자 이곳에 모여든다. 지자체와 지역 산업계가 협력해 조성한 이 파크는 개장 직후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연간 180만명의 관광객 유치, 480억엔의 경제효과를 창출하면서 자동차산업지구였던 아이치현에 ‘지브리의 성지’라는 새로운 문화 브랜딩을 부여했다. 이 모든 성공의 배경에는 한 장인이 수십년에 걸쳐 묵묵히 쌓아 올린 독창적 세계관과 예술적 깊이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기술의 발전은 특정 스타일을 무한히 재생산할 수 있게 만들었지만 그 가벼운 재미에 빠질수록 사람들은 복제할 수 없는 창작의 깊이와 진정성을 더욱 갈망하게 될 것이다. 컴퓨터 앞에서 누구나 손쉽게 창작물을 만들어 내는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함께 모여 독창적 창작품의 숨결을 나누고 공유하는 집단적 경험을 더욱 그리워할 테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질수록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의 가치는 높아지며 가상의 공간에서 유사한 콘텐츠가 늘어날수록 독창적 오리지널리티를 직접 경험하려는 욕구도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미야자키 하야오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즐겁게 받아들이면서도 그 과정에서 더욱 중요해지는 독창성과 인간 고유의 가치를 되짚어보는 것, 이것이 ‘지브리피케이션’ 현상이 우리에게 던지는 진정한 의미다.
“진짜래?” 4월1일 만우절이면 느닷없는 뉴스에 사실 여부를 확인하느라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댔다. “에잇~” 만우절 장난이라는 답변을 들을 때면 깜빡 속은 내가 한심해서, 깜짝 속인 상대가 얄미워 입 밖으로 실망스러운 마음이 새어 나왔다. 지인들 사이의 장난에 그치지 않고 전 세계 주요 매체들이 그럴듯한 가짜 뉴스를 쏟아내는 날인 만우절. 아무리 거짓말을 해도 용서가 되는 날이라지만 영국의 BBC며, 미국의 ABC며 세계 유수의 언론들이 내보낸 가짜 뉴스에 속았다가 만우절 장난이라는 걸 알고 나면 괜스레 부아가 치밀었다. 사실을 전달해야 할 뉴스매체가 앞장서 가짜 소식을 전하다니. ‘에이프릴 풀스 데이(April Fools’ Day·4월 바보의 날)’, 서양에서 유래한 풍습이라 그런지 나와는 영 맞지 않았다. 그러다 간혹 어떤 뉴스는 거짓이기를 바랐다. 2003년 4월1일 홍콩 스타 장국영(장궈룽)의 사망 소식이 그랬고, 1988년 4월1일 천호대교 버스 추락 사고가 그랬다. 만우절에 전해진 거짓말 같은 슬픈 소식이 제발 사실이 아니길, 만우절 장난이길 바랐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대체로 만우절은 내게 영 탐탁지 않은 날이었다. 무엇보다 덮어놓고 의심부터 해야 하는 게 피곤했다. 게다가 거짓말하지 말라고 손사래를 치며 믿지 않았는데 사실인 게 확인되고 나면 소식을 전해준 사람을 거짓말쟁이로 만든 게 미안했다. 거짓말이 왜 재미있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더니 요즘은 매일이 만우절이다. 가짜 뉴스에 딥페이크까지. 교묘하게 위장해 진짜 같은 거짓말이 넘치는 요즘, 언론의 만우절 뉴스 정도에는 사람들이 속지 않는다. 어떤 게 진짜이고 어떤 게 거짓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허위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 거짓이 진짜라고 믿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거짓임이 드러났는데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최근 언론의 만우절 뉴스가 확연히 줄었다. 언론까지 나서 가짜 뉴스를 만들면 안 되는 시대가 됐다. 차라리 4월1일 하루 가짜 뉴스가 나오던 그때가 좋았다. 영 탐탁지 않았던 만우절이었는데 이제는 모두 만우절을 즐기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스위스에 스파게티가 열리는 나무가 있다고, 남극에서 하늘을 나는 펭귄 무리가 발견됐다고 사람들을 속이던 언론의 만우절 장난이 부활했으면 좋겠다. 만우절 하루를 뺀 나머지 364일은 진짜만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