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초 임진강거북선 복원,그 방향을 찾다] 3. 내부 3층구조 본격화

가지각색의 거북선 원형 그대로 복원이 관건 거북선유적지가 산재한 경상남도는 2008년 이순신 거북선 프로젝트 용역을 마무리하면서 기존에 복원된 거북선이 임진왜란 당시가 아닌 1795년 편찬된 이충무공전서 기록을 토대로 한 거북선 복원 및 모형으로 한계가 있다며 1592년 이순신 장군 거북선을 3층 구조로 건조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해군사관학교가 1980년 1호 거북선 내부를 2층구조로 복원, 30년째 거북선 표준모델로 유지돼 온 것을 뒤엎는 것이어서 충격적이었다. 특히 당시 거북선연구가들 사이에서도 인정받던 거북선 내부구조가 2.5층설마저 뛰어넘는 것이어서 이목이 쏠렸다. 정진술 전 해사박물관 기획실장은 경남도 발표 이전 복원 거북선은 30년 전에 설계된 것들로 그 당시 연구결과를 충분히 반영해 복원했다며그러나 법으로 규정한 것은 아니지만 2층구조로 표준모델 지위를 갖는 해사거북선이 있었는데 경남의 3층구조 거북선이 현재 서로 다른 모습으로 전시되면서 거북선 원형 모습에 대한 국민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거제 1~2호거북선, 사천거북선, 통영거북선 경상남도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 거북선 제작방침에 따라 2010년 이후 새로 복원 건조된 거북선은 3층구조이며 1592년 당시 임진왜란 거북선임을 분명히 내세우고 있다. 거제시 조선해양문화관 광장에 전시된 거제1호와 대우조선해양 건물 앞 공원에 전시된 거제2호 거북선은 3층구조다. 1층은 병사들의 휴식처, 2층은 노역, 3층은 전투할 수 있도록 건조됐다.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 제원 추정치로 길이 25.6m, 너비 6.87m, 높이 6.06m, 무게 122t 등의 규모로 제작됐다. 통영 거북선은 전라좌수영 거북선과 통제영 거북선 2종류가 1795년 이충무공전서 기록을 토대로 2012년 3층구조로 제작됐다.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사 시절 1592년 5월29일 거북선을 첫 출전시킨 사천해전의 사천거북선도 3층 구조이다. 실물 크기로 2012년 12월 복원됐다. 길이 25.6m, 너비 6.87m, 높이 6.06m 등의 규모다. ■3층이나 내부는 2.5층 구조 등 각종 고증 부실 시달려 경상남도 발표와 달리 이 시기에 실물크기로 복원된 거제ㆍ통영ㆍ사천 거북선들은 제작된 지 10년 가까이 된 지금까지도 각종 고증 부실 논란에 휩싸여 있다. 확인 결과 내부구조는 3층이 아닌 2,5층에 가깝게 건조됐고 당시까지 학계에서 연구돼 온 1592년 이순신장군 당시 거북선 구조나 형태를 원형대로 복원하지 않았다. 거제1~2호 거북선은 임진왜란 당시 용두가 -자형으로 현자 철환을 쏘던 통제영 거북선구조이나 이와 무관한 전라좌수영 거북선 용두로 제작됐고 용두 크기(길이 1.34m, 넓이 93.9㎠)마저 축소해 만들었다. 노 또한 좌우현 7개씩 만들어 이순신 장군 거북선과 비슷하다고 언급된 통제영 거북선의 좌우현 20개에 크게 못 미쳤다. 거제 2호는 포혈이 아예 없고 내부 관람이 가능하지만 3층 아닌 2.5층 구조에 가깝다. 기록에 있는 거북꼬리 없이 제작됐다. 통영 거북선이 임진왜란 이후 203년 뒤인 1795년 편찬된 이충무공전서 기록을 토대로 건조됐다고 하나 통제영 거북선 포혈이 72개, 전라좌수영 거북선은 그 절반인 36개 등의 기록과는 달리 통영거북선은 모두 포혈수가 크게 못 미쳤다. 노 또한 좌우현 총 4개에 불과, 통제영 거북선 20개, 전라좌수영 16개 등에 비해 부족했다. 용두에는 임진왜란 당시 현자총통을 이용해 철환을 쏘거나 조선후기 때 등장한 통제영 거북선의 용두에서 유황과 염초를 태워 연기를 내뿜었다는 기록은 있지만 통영 거북선들은 기록에도 없는 용두에 여의주를 물고 있는 등 전체적으로 고증 부실이라는 지적을 면치 못하고 있다. 사천거북선도 거제 1~2호 거북선과 통영 거북선 등과 마찬가지로 기록대로 복원하지 않았다. 내부는 3층 구조를 표방했으나 실제 2층 위에 원두막형태의 공간을 만든 2.5층 구조에 근접해 복원했다. 노도 좌현 3개, 우현 7개 등 총 10개에 불과, 통제영 거북선 20개, 전라좌수영 거북선 16개 등과는 차이가 있다. 용두 또한 현자총통으로 철환을 발사할 수 없는 구조로 제작됐다. 2층에는 수군과 노군이 함께 있는 마네킹을 만들었으나 학자들은 3층 구조에서 제각각 존재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거북선 내부구조의 자의적 해석 부실 불러올바른 해석 필요 거북선 부실 복원 논란과 관련, 정진술 전 해사박물관 기획실장은 거북선 복원에는 임진왜란 때의 것과 1795년 것을 별도로 구분해 복원할 필요가 있는데 현재 복원된 거북선은 사대를 뛰어넘어 뒤죽박죽 혼합된 형태로 복원돼 논란이다라며 구조나 크기, 형태 등이 최적인 이충무공전서의 귀선도설과 그림에 대한 자의적 해석이 아닌 올바른 해석이 복원의 관건이라고 주장했다.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장 제장명 교수도 거북선 복원 기본원칙은 내부구조가 3층이고 용두는 전투원의 활동공간과 같은 위치에 놓여야 하며 거북선 등판의 철갑선 재고도 필요하다며 이 같은 원칙에 맞게 거북선을 복원한다면 1592년 임진왜란 때 거북선형태에 더욱 근접한 거북선을 국민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조선 최초 임진강 거북선은 고려말 1380년 등장 북한이 바라보는 거북선 연막전법 과 화약무기 시초는? 북한은 거북선이 용두를 통해 유황과 염초를 태워 연막을 만들어 적들로 하여금 눈을 뜨지 못하게 하고 싸울 수 없게 한 연막전법에 능했다고 주장한다. 염초는 연소할 때 검은 연기를 배출하는 화약으로 질산칼륨(KNO3), 유황, 탄소 등을 일정한 비율로 섞어 만든 흑색 화약이다. 북한의 거북선 연막장치 사용과정을 보면 바람을 일으키는 수군(발풍수)이 발판을 밟으면 가마에 농축된 유황염초가 연통과 배출관으로 공기압력에 따라 배출판에서 뿜어 올라가 배출되면서 용두에서 흑색화약이 내뿜어진다. 이때 질산칼륨은 산화제, 탄소는 가연제, 유황은 점화촉진제 등으로 작용한다. 1795년 편찬된 이충무공전서에는 통제영 거북선이 용두에서 연기를 내뿜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편 북한은 화약무기를 군선에 실은 시기를 조선 최초 임진강 거북선이 등장한 33년 전인 고려말 1380년으로 보고 있다. 고려사 권 114 등을 근거로 1380년 8월 화포를 장착한 100척의 고려 군함이 진포 앞바다에 나타난 왜선 500척에 불을 지르고 격멸했다고 주장했다. 유럽에선 1571년 처음으로 포격전이 펼쳐졌는데 반해 진포해전은 세계해전사에서 처음으로 화포를 적용한 해전이었으며 해상포격전의 시초라는 견해다. 거북선의 화약무기도 이 전통을 계승한 화포무장선이었다고 강조했다.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 거북선모형은 축소형 서울ㆍ경기 등 수도권 등지에는 거북선이 축소형으로 복원돼 전시돼 있다. 이순신 장군 생가가 있는 충남 아산 현충사는 1969년 기증받아 전시된 거북선이 있었으나 고증문제에 시달려 2014년 자진 철거했다. 실물 60% 크기였던 현충사 거북선은 용두가 전라좌수용 거북선 형태의 ㄱ 자형으로 포를 쏠 수 없도록 제작됐다. 좌우현 노는 각각 8개로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과 비슷한 통제영 거북선 노 좌우현 각각 10개와는 차이를 보였다. 앉아서 젓는 서양식 노라는 지적도 받았으며 2층 구조여서 포를 쏘는 포군과 노를 젓는 노군이 같은 층에 모여 전투하는 것과 거북 모양의 꼬리가 없는 모형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서울 용산전쟁기념관 거북선은 실물의 40%크기 축소형으로 1795년 편찬된 이충무공전서에 등장하는 통제영 거북선을 모델로 건조됐다. 하지만 통제영 거북선이 -자형으로 된 용두에서 현자총통으로 철환을 쏜데 반해 ㄱ자형의 전라좌수영 거북선 용두로 제작됐다. 개판(지붕) 또한 통제영 거북선과는 다르게 복원되는 등 전체적으로 통제영 거북선과 전라좌수영 거북선을 혼합한 형태의 새로운 거북선류로 분류돼 고증 부실 논란을 빚고 있다. 과천국립과학관에 전시된 거북선은 2층 구조의 축소형 모형으로 용두가 -자형으로 1795년 편찬된 이충무공전서를 바탕으로 복원된 통제영 거북선으로 추정되나 좌우현 노가 10개씩인 통제영 거북선과는 달리 노가 없다. 70개가 넘는 통제영 거북선 포혈수와도 맞지 않게 제작됐다. 김요섭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파주 메디컬클러스터 부지에 아주대병원 들어선다

파주시 파주메디컬클러스터 조성사업 부지에 아주대학교병원이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최종환 파주시장은 지난 11일 아주대를 전격 방문, 추호석 학교법인 대우학원 이사장과 박형주 아주대총장, 박해심 아주대학교 의료원장 등과 잇따라 면담하고 파주메디컬클러스터 조성사업부지 내 아주대병원 유치를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주시와 아주대는 파주메디컬클러스터 조성사업부지 내 아주대학교병원 건립을 위해 올해 초부터 긴밀하게 협의를 지속해 왔으며, 이번 방문을 통해 그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게 됐다. 파주시 관계자는 민선7기 핵심 역점사업인 종합병원 유치를 위해 수도권 내 여러 대학과 접촉해 유치활동을 했다. 최근 아주대를 방문, 소기의 성과를 거둔 건 사실이라며, 조만간 시민들이 바라는 좋은 소식을 전해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아주대 측은 지난 11일 최종환 파주시장 방문 후 협의가 막바지인 건 맞다면서 공식적인 자리를 갖기까지 자세한 사항은 공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파주메디컬클러스터는 대학병원 건립과 혁신 의료연구센터, 의료바이오기업 유치를 통한 보건의료 인프라 확충과 4차산업 중심의 미래 신정장 동력 등을 확보하기 위한 파주시 역점사업으로 운정신도시 인근 46만㎡ 규모로 조성된다. 파주메디컬클러스터 조성사업부지 내 들어서는 대학병원은 파주지역 거점병원으로 고품격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통일기반 의료거점으로 남북의료협력 선도적 역할을 담당하며, 연구단지 내 임상연구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한편 아주대학교병원은 보건복지부 지정 연구중심병원(3회 연속)으로 지난해 기준 국가고객만족도(NCSI) 병원부문 4위, 미국 뉴스위크지 세계 100대 병원(국내 6위) 등에 선정됐으며 권역응급의료센와 권역외상센터를 갖춘 국내 최상위권 대학병원이다. 파주에 들어서는 아주대학교병원은 경기북부 의료산업 발전을 이끌어갈 것으로 기대된다. 파주=김요섭기자

코로나19 확진자 탈주, 파주병원 경비보안 강화나서

파주시는 코로나19 확진자 탈주에 따라 재발방지위해 확진자 입원 병원인 경기도의료원 파주병원에 대한 경비보안 강화에 나섰다. 파주시는 지난 21일 최종환 파주시장이 경기도의료원 파주병원을 방문해 파주병원의 경비방호 실태를 확인하고 파주경찰서장, 파주병원장과 함께 경비강화를 위한 방안을 집중 논의 했다고 22일 밝혔다. 앞서 지난 18일 새벽 경기도의료원 파주병원에서 격리치료 중이던 사랑제일교회 신도 확진자 평택시민 A씨가 병원을 탈출했다가 약 25시간 만에 서울 신촌에서 검거됐다. 이에따라 경기도의료원 파주병원은 병원 입원실 복도 스크린도어에 콜벨(차인벨) 장치를 설치해 출입과 이동시 벨이 울리게 하고 병원 자체 모니터링을 기존 2시간에서 1시간 이내로 조정했다. 병원 정문 잠금장치 보안을 강화해 낮에는 경비 인력이 상주하고 밤에는 보안업체를 통해 경비를 강화할 예정이다. 파주경찰서는 경비경찰 2명을 파견해 병원 외곽에서 근무하는 등 방역당국의 관리가 소홀하지 않도록 보안 강화에 나섰다. 최종환 파주시장은 파주시와 의료기관, 경찰 각 기관이 협심해 코로나19 위기상황을 반드시 극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파주=김요섭기자

파주시 겨울철 블랙아이스 대비 국도비 11억7천만원 확보

파주시가 겨울철 불랙아이스(Black Ice) 및 제설취약구간 자동염수장치와 도로안전시설 설치 관련 국도비 11억7천900만원을 확보했다고 19일 밝혔다. 이는 도내 31개 시ㆍ군 중 가장 많은 국도비 예산이다. 블랙아이스는 기온이 갑작스럽게 내려갈 경우, 도로 위에 녹았던 눈이 다시 얇은 빙판으로 얼어붙는 현상이다. 과목은 지역 내 자동염수분사장치 7억9천500만원을 확보하는 한편 도로안전시설(LED표지판) 3억8천400만원 등이다. 이로써 올해 이미 제설평가 우수 등으로 확보한 7억4천500만원을 포함, 모두 19억2천400만원의 국도비를 확보하는 성과를 거뒀다. 파주시는 이번 국도비 확보에 따라 법원읍과,적성면 등 파주북부권역 8곳에 도로안전시설을 설치하고 법원읍과 적성면 등 4곳에 자동염소분사장치를 설치할 예정이다. 이달 안으로 실시설계을 완료하고 오는 11월 안으로 사업을 완료한다는 방침이다. 파주시 도로사업소는 이번 예산 확보를 위해 지난 4월부터 지역 내 결빙 취약구간을 면밀히 조사하는 등 발품을 팔아 경기도와 꾸준히 협의를 거쳐 이번에 가장 많은 국도비를 확보했다. 최종환 파주시장은 도로사업소 직원들의 노력으로 좋은 성과를 냈다. 올 겨울에는 파주북부권역이 결빙 취약으로 인한 안전사고 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파주=김요섭기자

파주병원 탈출 사랑제일교회 확진자 25시간만에 검거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 예배에 참석한 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경기도의료원 파주병원에서 격리치료 중 달아났던 50대가 도주 25시간여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19일 파주시에 따르면 전날 새벽 파주병원을 탈출했던 A씨(평택 177번 확진자)가 이날 오전 1시15분께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한 커피숍에서 경찰에 검거됐다. 검거된 A씨는 구급차를 이용, 현재 파주병원으로 이송 중이다. 당시 커피숍에는 손님 40여명이 있었으며 서울시가 이들과 커피숍 등을 상대로 방역 조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당국은 A씨가 병원에 도착하는 대로 코로나19 재검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보건당국 관계자는 A씨에 대한 도주 이유 등 조사는 감염 우려로 당장 이뤄지기는 힘들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A씨에 대한 조사에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파주병원은 지난 18일 오전 8시께 A씨가 격리치료 중이던 병실에 배식을 위해 들어갔다가 A씨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10분 뒤 경찰에 신고했다. 파주시와 파주병원은 A씨가 이날 0시18분께 병원 정문을 나서는 모습이 CCTV에 촬영된 것을 확인했다. A씨는 푸른색 계열의 환자복 바지와 흰색 민소매 티를 입고 하얀색 슬리퍼를 신은 채 병실을 나선 뒤 간호사들이 업무를 보는 공간에서는 바닥에 엎드려 기어 출입문까지 이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주병원 정문을 나선 A씨가 맞은편 파주경찰서 쪽에서 이동하는 모습도 CCTV에 촬영된 것으로 파악됐다. 그는 이후 오전 4시30분께 파주병원에서 3㎞가량 떨어진 조리읍 봉일천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어 오전 9시께부터 종로구 한 커피전문점에서 1시간가량 머문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이 커피점에서 마스크를 착용했고, 음료를 마실 때만 마스크를 잠깐 내린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A씨를 검거하기 위해 경력을 동원해 서울 종로구 등 일대를 수색하고 CCTV 등을 통해 그의 행적을 추적했다. 파주=김요섭 기자

[조선 최초 임진강 거북선 복원, 그 방향을 찾다] 2.1980~2009년 복원 거북선

최근 파주시가 1413년 조선 최초 임진강 거북선 복원사업을 본격화하는 가운데, 거북선 연구자들은 1592년 임진왜란 때 이순신장군 거북선의 구조, 기능, 형태 등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고려 선박과 거북선 등을 복원했던 전통한선연구 권위자 이원식 박사는 고려 때 배무이(선박건조) 기술이 조선시대까지 많은 영향을 미쳤다며 이순신장군 거북선 기록을 소홀히 할 수 없으며 당연히 살펴봐야 하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이순신장군 거북선 내부구조의 함포 배치 연구 결과로 주목을 끌었던 채연석 박사는 태종실록에 임진강거북선이 튼튼함 등 일부 기록은 남아 있지만 구조나 크기 등에 대한 언급이 없다. 임진강거북선의 기능, 구조, 형태 등이 어떤 형태든지 이순신장군 거북선 제작에 영향을 끼쳤다며 임진왜란 거북선을 살펴보면 조선 최초 임진강거북선이 보인다라고 강조했다. 이순신장군 거북선연구의 첫 시작과 발표는 1934년 연희전문학교 미국인 교수인 언더우드 교수다. 그는 1795년 정조 때 편찬된 이충무공전서를 토대로 △거북선은 내부구조 2층 △서양식 노 장착 등 연구결과를 영ㆍ미권에 발표했다. 언더우드 교수 연구는 현재의 학계 연구결과와는 큰 차이를 보이지만 국내 연구자들에게는 각자 전문성을 무기로 지속적으로 거북선을 연구하며 서양식 노를 동양식 노로 수정하는 등 연구의 기폭제가 됐다. ■ 해군사관학교 1호 거북선, 한강거북선과 여수돌산거북선 언더우드 교수의 거북선이 첫 연구 이래 46년 만인 1980년 해군사관학교에서 첫 실물크기 1호 거북선을 복원했다. 이충무공전서를 완역한 노산 이은상 선생 등이 참여했다. 당시까지 연구된 거북선 내부구조를 토대로 2층으로 건조됐다. 1795년 이충무공전서 기록으로 길이 34.2m에 선체 높이 6.4m, 선 폭 10.3m, 홀수는 1.4m, 함포는 14문 등으로 좌우현 각각 6개 뱃머리 용두와 꼬리 등에 각각 1개씩이다. 승조원은 130명 정도다. 국가가 아닌 지자체로는 서울시가 처음으로 실물크기 거북선을 1990년에 제작했다. 길이 34m, 폭 10m, 높이 6.3m, 180t 등의 규모다. 해사 1호 거북선 영향을 받아 내부구조가 2층이다. 국가와 광역 지자체와는 달리 이 시기에 민간영역에서 주도한 거북선 첫 복원도 있다. 여수돌산거북선으로 1986년 4억여원을 들여 (유)전라좌수영문화개발이 건조했다. 해사1호거북선 영향을 받아 2층 구조에 길이 37m, 높이 6.8m, 넓이 8.20m, 150t 등의 규모로 탑승인원 130~150명 속도 6노트 수준으로 만들어졌다. 전라좌수영 거북선이 모델이다. ■ 복원된 거북선들은 1592년 이순신장군 거북선이 아니다 이순신장군 거북선의 특징은 선조에게 올린 그의 장계와 함께 해전에 참전했던 장조카 이분의 이충무공행록 등에 어느 정도 나와 있다. 이순신장군 장계는 용머리를 붙여 현자 철환을 쏘고, 등에 쇠못을 꽂았으며, 천ㆍ지ㆍ현ㆍ황자 총통을 쏘고, 안에선 밖을 볼 수 있으나 밖에선 안을 볼 수 없도록 했다고 기록됐다. 이분의 이충무공행록은 거북선 크기는 판옥선만 하고 위는 판자로 덮고 판자 위에 십자형세로를 두어 사람들이 지나다닐 수 있도록 했으며 그 나머지는 칼 송곳을 꽂아 사방으로 발붙일 곳이 없도록 했다고 기록했다. 앞에는 용머리를 붙이고 그 입은 총구멍이 됐고 뒤는 거북꼬리처럼 됐는데 꼬리 아래에 총구멍이 있고 좌우에 각각 6개의 총구멍이 있다고 기록했다. 이순신장군 거북선 등장 203년 뒤인 1795년 정조 때 편찬된 이충무공전서에는 통제영거북선이 당시 이순신장군 거북선과 수치에 약간 가감은 있지만 비슷하다고 기록돼 있다. 이들 기록을 토대로 1980~2009년 실물크기로 복원한 해사1호 거북선, 한강거북선, 여수돌산거북선 등이 전시된 장소를 방문, 확인한 결과 이순신장군 장계 등의 기록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 국가 주도로 제작돼 거북선표준인 해사1호거북선은 1592년 당시 이순신장군 거북선이 아닌 1795년 편찬된 이충무공전서기록을 토대로 건조됐고 개판을 철갑선으로 복원했다. 용두가 - 자형이 아닌 ㄱ자형으로 함포를 쏠 수 없는 구조였다. 용두 크기 또한 길이 1.34m에 넓이 93.9㎝ 기록과 다르게 축소됐다. 이 때문에 전라좌수영거북선이 아닌, 그렇다고 통제영 거북선도 아닌 어정쩡하게 이 둘을 합친 혼합형 거북선으로 만들어졌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강거북선도 2층 구조로 제작됐는데 용두는 기록에도 없는 여의주를 물고 있었고 현자 철환이 발사되지 못하는 구조였다. 노는 앉아서 젓는 서양식에 가깝고 이마저도 전라좌수영(16개) 혹은 통제영거북선(20개)과는 노 숫자와는 다르게 건조됐다. 전통 노가 아닌 디젤엔진으로 추진동력을 삼은 것도 상업용으로 제작됐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전라좌수영 거북선을 모델로 복원됐던 여수돌산거북선도 옛 기록과는 차이가 있다. 1795년 이충무공전서에 나오는 전라좌수영거북선은 포 위치가 거북머리 아래 포혈이 2개, 방패에 각각 10개의 포혈이 있는 등 전체 36개로 기록돼 있으나 복원된 거북선은 이보다 한참 못 미친다. 2층에 노군과 포군이 한데 모여 노를 젓고 포를 쏘도록 재현한 것도 지금의 연구결과로 보면 포를 쏘는 공간이 확보돼야 하는 등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용두에 유황ㆍ염초를 태워 연기를 내품었다는 기록을 토대로 용두를 복원했지만, 이는 통제영거북선 기능으로써 전라좌수영거북선과는 다른 기능이다.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장 제장명 교수는 복원된 거북선들은 오래전에 설계되다 보니 당시의 연구 한계로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 모습을 복원하지 못하고 있다. 용두가 기록과는 다르게 기능하고, 노군과 전투원이 같은 층에서 활동하는 등 기록과는 무관하게 만들어져 혼란을 겪기 때문이다. 원래 기록에 충실하게 복원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 북한 거북선은 통제영거북선모델 이 시기 북한에서 제작된 거북선을 확인하기 위해선 방문이 어려워 거북선 관련 북한서적을 입수해 전문가와 함께 분석했다. 2001년 북한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가 발간한 김흥규 저 거북선이다. 북한에선 거북선의 구조와 형태 등을 도해로 기술한 거북선 권위서로 평가받고 있다. 북한은 복원된 거북선을 목선에서 철선으로 가는 과도기적 함선구조형식으로 보고 있다. 노는 좌우현 20개로 이순신장군 거북선과 비슷한 것으로 기록된 1795년 통제영거북선 형태를 띠고 있다. 외형상으로 거북선 내부가 2층 구조로 개판이 철갑으로 완전히 둘러싸여 있는데 지붕에는 십자형 세로를 둬 2개의 돛을 세우고 눕히도록 했고 수군들이 이동하도록 길을 만들었다. 용두는 -자형으로 현자총통을 쏘도록 한 기록처럼 포를 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채연석 박사 등 거북선 전문가들은 일부 오류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복원개념을 통제영거북선 형태를 유지하도록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고 분석했다. 제장명 순천향대 교수거북선 세계 첫 철갑선 아닌, 쇠못 꽂은 형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당연시하는 1592년 이순신장군 거북선의 개판(지붕)이 철갑선인지 여부에 대해 남북 학자들 사이에서 견해가 갈리고 있다. 1934년 연희전문학교 언더우드 교수가 1795년 편찬된 이충무공전서를 토대로 한 첫 연구 발표 이후 국내 학자들의 거북선 연구가 80여년이 넘었지만 거북선이 세계최초 철갑선이냐라는 논란은 여전하다. 반면 북한은 세계 최초 철갑선은 거북선이라고 일관 되게 주장하고 있다. 거북선문헌연구자 권위자인 순천향대학교 이순신연구소장 제장명 교수는 거북선의 등 부분은 철판으로 장갑 된 형태가 아니라 목판으로 장갑한 가운데 쇠못(또는 칼ㆍ송곳)을 꽂은 형태라며 이순신장군 장계와 이순신장군의 장조카인 이분의 이충무공행록 등 옛 문헌을 뒤져 봐도 철갑선이란 근거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어 일본의 고문서인 정한위략(가와구치), 고려선 전기(도노오카) 등과 미국인 헐버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며 그래서 국내 실물크기로 복원된 거북선 개판(지붕)이 고증문제로 논란의 중심에 있다고 말했다. 반면 북한학자 김흥규는 자신의 저서 거북선에서 임진란 발발 184년 전 태종실록 태종 8년(1408년) 12월 정유조에 배무이((선박건조)용 철물을 수군에게 제련할 수 있게 해달라고 전라도 통제사가 왕에게 건의했다며 당시 거북선의 6각형 장갑철 주조는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의 임진란 기록인 고려전전기와 정한위략 등에는 과장이 없다며 6각형의 철갑판 두께를 5㎜로 했을 때 개당 질량은 25㎏으로 거북선의 총철갑 질량은 7천385㎏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이순신장군 거북선의 철갑선 여부는 논란의 소지가 크지만 이미 조선 최초 임진강거북선 등장 5년 전 선박기술용 철을 확보해 달라고 건의한 전라도 통제사의 기록은 군선 관련 철사용에 대한 연구 필요성을 강력하게 제기하고 있다. 김요섭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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