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런 멍청한 놈이 어떻게 검사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부하 평검사를 두고 푸념하던 어느 부장검사의 말이었다. 경영자문을 해주던 창원에 있는 어느 기업에서 경영진과 식사를 하면서 이 이야기를 꺼냈다가 짐짓 분위기가 심각해졌다. 어느 조직이나 저성과자 문제가 있다는 차원에서 별생각 없이 들려준 말이었는데, 인사담당 임원이 너무 염치가 없다며 열변을 토했다.
대한민국 검사 정도면 지적 능력이 최상위 수준일 텐데 육성은 못 해 줄망정 비난하는 건 ‘누워서 침 뱉기’라는 게다. 일반기업은 그보다 못한 친구들을 데려다 교육하고 인재로 양성하느라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관리자로서 본분을 망각한 배부른 소리라는 항변이었다.
저성장 경제국면에 고착되면서 우리 사회가 성과에 유독 민감해졌다. 비용이나 생산성을 보다 진중하게 다루면서 성과와 관련된 오류도 적잖이 불거지고 있다. 우선, 대부분 기업의 성과평가는 비과학적 분포를 가정한다. 예를 들어, 고성과자 S등급은 10%, A부터 C등급은 각각 20%, 40%, 20%, 저성과자 D등급은 10%로 각각 강제할당하는 식이다.
그러나 신뢰성공학에서 일찍이 밝혀낸 성과분포의 전형은 ‘파레토 분포’라고 불리는, 완만한 L자 모양을 띤다. 소수 직원이 특출한 고성과를 달성하는 반면, 대다수 직원의 성과는 도긴개긴이다. 많아야 1, 2%인 슈퍼스타 외에는 성과수준이 비슷해 등급으로 구분 짓는 일이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성과평가의 객관성ㆍ정확성에 대한 원론적인 의심을 차치하더라도, 대부분 스스로 등급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설상가상 직원이 실제 창출한 성과와 어긋나 버린 평가등급을 기준으로 급여인상, 성과급, 승진 등의 보상이 차등적용되는 경우다. ‘성과 있는 곳에 보상 있다’고 역설하는 성과주의는 마땅하다. 그러나 현실의 성과보상제도는 첫 단추를 잘못 끼워, 성과 없는 곳에 보상이 이루어지고 있다. 게다가 건전한 경쟁의식을 조직 내에 조성하려던 성과주의는 위화감 조성, 사기 저하, 협력 저해, 불신을 가져왔다. 친구가 다른 회사에서 1천만 원 더 받는 것은 용납해도, 같은 회사에 다니는 동료가 1만 원 더 받는 것에는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이 인간이다.
하물며 상대평가등급에 따라 하위직원들을 기계적으로 퇴출하는 ‘랭크앤양크(rank and yank)’를 지향하는 기업이 아직도 늘고 있다니 개탄할 일이다. 해고의 두려움은 직원들이 달성하기 쉬운 일에만 치중하게 만들어 도전적인 시도, 창의성을 가로막는다. 무엇보다 일이란 자존감이어야 하는데, 처벌은 일을 생존에 얽매인 자존심으로 쭈그러뜨린다. 이를 주도했던 GE뿐만 아니라 어도비, 마이크로소프트, 골드만삭스, 갭, 액센츄어 등 강제할당식 상대평가를 폐지하는 기업은 이미 늘고 있다. 소통과 협력의 가치를 절대평가에서 모색하고, 평가로부터 보상을 분리하여 역량개발의 피드백으로만 활용한다.
돌이켜, 성과를 의미하는 영어는 ‘퍼포먼스(performance)’다. 공연, 연극, 연주라는 뜻도 있어 ‘배운 것을 행동으로 보여준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래서 학습 및 성장의 관점에서 ‘수행’으로도 번역된다. 목적을 달성하려는 행위, 계획을 실천하는 과정이 강조된 개념이다. 이에 비해 ‘성과’는 수행의 결과, 업적을 강조하는 관리 및 통제의 관점이다.
평가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다. 평가의 목적은 퍼포먼스, 즉 수행개선과 성과제고이다. 성과통제에만 경도되어 수행을 등한시하면 안 된다. 행정편의에 빠져 평가와 보상을 어쭙잖게 얽고 있는지, 그로 인해 오히려 수행이 훼멸되지 않았는지 살펴봐야 한다.
우형록 경기대 융합교양대학 교수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