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식남이라는 용어가 일본 사회에서 폭넓게 사용된 것은 2008년부터다. 기존 일본의 여성잡지의 연애기사에서는 어떻게 하면 남성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여성이 될 수 있을까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즉 기존의 남성은 이성에 대해 관심이 있으므로, 복장 등을 귀엽게 꾸미면 사랑스러운 여성이 될 수 있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남성과의 연애기회가 생긴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여성지 ‘non-no’는 2008년 4월 5일호에서 더 이상 일본의 남성이 여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접근해오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고 설명하고, 향후 초식남과 사귀기 위한 다음 3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첫째 초식남은 남자로서의 능동성이 없어서 여성이 연애를 리드해야 한다. 둘째 과도한 밀당(밀고 당기기), 연애 기술은 금물이고 대신, 알기 쉬운 호의를 표현해줘야 한다. 셋째 초식남은 여성 내면의 매력을 중시하기 때문에 인간성을 높여야 한다. 초식남은 2009년 유행어 대상에서 탑 10에 뽑히는 등 일본 사회에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초식남의 출현과 함께, 일본에서는 여성 자신이 연애나 결혼상대를 적극적으로 ‘사냥’하러 가는 ‘육식계 여성(육식녀, 肉食女)’이라는 단어가 주목을 받고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일본에서는 여성이 결혼하고자 한다면 여성 자신이 보다 적극적으로 남성을 ‘꼬실’ 필요가 생긴 것이다. 최근 일본의 남성은 초식남을 넘어서 ‘절식남(絶食男)’으로 불린다. 절식남이란 여성에 대해서 전혀 흥미가 없는 남성을 의미한다고 한다.
일본 사회에서 초식남과 육식녀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결혼정보회사인 파트너 에이전시의 조사에 의하면, 13%의 남성이 ‘본인은 완전히 초식남’이라고 답했으며, 61%가 ‘본인도 굳이 말하자면 초식남에 해당한다’고 답했다. 즉 일본 남성 대다수가 자신을 초식남으로 인식하고 있다. 동 조사에 의하면 여성들은 초식남에 대해 ‘믿음직스럽지 못하다(39%)’, ‘냐약하다(11%)’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강하게 가지고 있다.
한편 육식녀에 대해서 여성들은 ‘품격이 없다(20%)’, ‘거슬린다(26%)’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경우가 적지 않지만, 남성은 육식녀에 대해 ‘믿음직스럽다(13%)’, ‘사귀고 싶다(22%)’ 등 긍정적인 의견이 과반을 넘었다. 일본에서 초식남, 육식녀 현상은 과도하게 여성잡지 등에 의해서 그 이미지가 부풀려진 측면이 있지만, 많은 사람이 그 용어에 공감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즉 이러한 용어의 등장은 남성은 남자다워야 하며, 여성은 여자다워야 한다는 일본 사회의 상식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본에서는 한류 드라마나 영화의 영향으로 한국 남성은 열정적이고 남자다운 면을 가지고 있는 남자(이른바 육식남)로 인식되고 있다. 즉 일본 여성들은 일본 남성이 초식화해 나약해지고 있는 반면 한국 남성들은 지금도 연애와 일 등에 대한 적극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다만 최근 한국에서도 남성들이 점차 초식화되어 가고 있다는 이야기가 증가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 사회든 남성과 여성의 성역할, 양자의 관계라는 것도 항상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으며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을 강조하는 것에 대해서 주의 깊게 접근해야 한다. 초식남, 육식녀는 갑자기 나타난 돌연변이가 아니라 그 자체로 사회 변화의 결과다. 그들의 등장을 기성세대가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 새로운 사회를 이끌어나갈 젊은 세대의 변화에 대해 기성세대는 사고의 유연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박성빈 아주대 국제학부장·일본정책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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