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6일 홍콩 중심가 IFC몰에 모인 시민들이 흰 종이를 꺼내 들었다. 시민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지켜보는 이들은 그 의미를 알았다. 홍콩보안법이 발효되면서 반중 구호가 적힌 피켓만 들어도 처벌받게 되자 표현의 자유를 빼앗긴 홍콩 시민들이 저항의 수단으로 ‘백지시위’를 선택한 것이다.
2년이 넘은 현재, 이번에는 중국 전역에서 ‘제로 코로나’ 정책에 반대하는 백지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발단은 11월24일 신장위구르의 성도 우루무치에서 아파트 화재가 발생해 10명이 목숨을 잃은 사고였다. 시민들은 정부의 코로나 방역 강화로 인명 피해가 컸다고 주장했다. 화재가 발생한 아파트는 외출이 금지돼 수많은 차량이 주차돼 있었고, 당국이 봉쇄를 위해 설치한 장애물들로 소방차 현장 진입이 늦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사실은 SNS를 통해 중국 전역으로 퍼졌다.
3년 가까이 이어진 ‘제로 코로나’에 중국인들은 심한 피로감을 느끼면서 우루무치 화재 사건에 크게 동요했다. 상하이의 위구르인 거주지에선 26일 밤부터 수천명이 봉쇄 정책 반대 시위를 벌였다. ‘제로 코로나 해제’를 외치는 반코로나 시위는 베이징을 비롯해 우한, 청두, 광저우, 난징 등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열려 중국 전역이 들끓고 있다. 대학생과 시민들은 백지를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백지시위는 시위 참가자들이 검열과 통제에 저항한다는 의미로 아무런 구호를 적지 않은 종이를 든 데서 붙여졌다. ‘무엇이든 쓸 수 있는 백지에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상하이에선 ‘시진핑과 공산당 퇴진’을 외치는 구호가 등장했다. 중국당국은 이번 시위를 적대 세력에 의한 불법행위로 규정하고 시위 가담자에 대한 강경 진압에 나섰다. 외신은 백지시위 확산으로 장기 집권에 돌입한 시진핑 체제가 전례 없는 도전에 직면했다며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가장 큰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했다. 중국의 백지시위가 국제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우리도 차이나 리스크로 인한 한·중관계 영향 등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이연섭 논설위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