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시가 화성특례시가 됐다. 특례시는 기초자치단체 시에 부여되는 행정적 명칭이다. 인구 100만을 넘는 것이 기본 조건이다. 2021년 1월 전부 개정된 지방자치법의 제198조를 통해 특례시 규정이 신설됐다. 2022년 1월 13일 경기 수원시·고양시·용인시와 경남 창원시가 특례시로 출범했다. 당시 4개 특례시는 법 개정 당시 이미 100만을 넘어선 상태였다. 어찌 보면 이들 100만 도시를 염두에 두고 만든 성격이 강하다. 이 특례시에 화성시가 2025년 1월1일부로 진입한 것이다. 모든 지역에서 인구는 줄고, 모든 시·군이 비상이다. 이럴 때 100만 도시의 신규 진입은 현실적이지 않다. 바로 이런 확장을 화성특례시가 만들어낸 것이다. 이게 화성특례시가 기존 특례시와 다른 점이다. 인구가 팽창하는 유일한 화성, 산업 규모가 커지는 유일한 화성, 도시 개발이 진행되는 유일한 화성이다. 그래서 역동성이 크다. ‘2040년 160만’이라는 전망도 있다. 화성특례시 출범에 즈음한 슬로건이 나왔다. ‘특별한 시민, 빛나는 도시, 화성특례시’다. 좋다. 시정의 역점 둘 실천 목표도 제시됐다. 민생 경제 회복, 첨단 산업 육성, 문화·여가 인프라 확충, 균형 있는 도시 발전이다. 매우 적절하다. 좋은 특례시로 가기 위한 기본 조건이다. 균형 잡힌 대도시를 위한 필수 요건이다. 취지에 동의하고 성공을 기원한다. 여기에 더할 기대가 있다. 화성특례시가 가진 독보적 잠재력을 구현해낼 구호다. 그 힌트가 정명근 시장의 구상에 있다. 지난해 11월 공개한 ‘과학기술인재 특별시, 화성’ 구상이다. 첨단 산업의 두뇌들이 총집결된 화성시다. 세계 자동차 시장 점유율 3위의 현대차·기아차 연구소가 있다. 남양연구소를 거점으로 하는 세계 자동차 기술의 중심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의 한 축도 화성이 담당하고 있다. 이 두 첨단 산업에서 파생된 고급 두뇌들이 모두 화성에 집결해 있다. 4개 특례시가 따를 수 없는 여건이다. 정 시장이 밝힌 세부 약속도 있다. KAIST, GIST, DGIST, UNIST 등 4대 과학기술원을 모으겠다고 했다. 통합 연구 거점을 화성에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화성과학고, 마이스터고 설립을 통한 과학기술인재 특화 교육도 약속했다. AI 미래도시를 준비하는 시민, 공무원, 초중등 과학시술 및 정보통신 교육 확대도 선언했다. 우리는 정 시장의 ‘과학기술인재 특별시, 화성시’를 사실상 화성특례시의 첫째 미래 전략으로 평가한다. 화성특례시가 모든 걸 할 수는 없다. 국토균형이란 논리에도 맞지 않는다. 화성이 1등 될 수 있는 분야를 골라야 한다. 그것이 ‘화성과학기술인재특별시’다. 우리가 특례시 축하와 함께 화성에 부탁하는 미래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 지지자들에게 메시지를 전했다. 한남동 관저 앞 지지자들에 전한 인사말 형식이다. “애국시민 여러분”으로 시작하는 메시지에서 그는 “자유민주주의와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나와 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추운 날씨에 건강 상하시지 않을까 걱정”이라는 안부도 곁들였다. 5년 전, 2020년 12월15일 동영상이 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총장 직무 배제를 당한 처지였고, 지지자들은 대검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윤 총장이 출근하던 차에서 내려 시위대 앞으로 갔다. “응원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인사말을 했다. “날씨가 추워지니까 이제 그만 하셔도 마음을 감사히 받겠다”며 인사를 전했다. 많은 국민들에게 겹쳐지는 대검 청사와 대통령관저 두 모습이다. 추운 날씨를 걱정하는 인사말까지 닮았다. 윤 대통령 측이 또 한번의 반전을 기대하며 그 출발 지점을 지지자들로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때문일까. 윤 대통령 주변에 지지자들도 많아졌다. 윤 대통령 측 대응에는 거센 비판도 따른다. 지지자를 통해 법 무력화를 시도한다는 지적이다. 2일 변호인단의 발표가 그런 비난을 더 했다. 공수처가 경찰 기동대를 동원해 체포에 나설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반박했다. 공수처에는 경찰 기동대를 지휘할 권한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기동대가 나선다면 경호처는 물론 시민 누구에게나 체포될 수 있다”고 밝혔다. 혹여 ‘시민 누구나’를 ‘지지자 누구나’로 해석하면 상황은 위험해진다. 요 며칠 언론에 등장하는 과거 사례가 있다.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와 이인제 전 자민련 의원 등의 예다. 구속영장 집행이 당원 지지자들의 저항으로 불발된 사건이다. 그러나 그 사건들이 사법 심판 자체까지 불능화시킨 것은 아니다. 당사자들은 결국 소환됐거나 기소됐거나 재판받았다. 윤 대통령에게도 사법 절차는 이미 시작됐다. 그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체포영장 집행에 맞서고 있다. 주목되는 게 변호인 측 주장이다. 공수처는 내란죄 수사권이 없음을 강조했다. 공소 기각을 주장할 논리다. 체포영장 발부에는 판사의 ‘형소법 110조·111조 적용 예외’ 기재를 반박했다. 영장이 위법했음을 주장할 논리다. 경찰 기동대 투입은 공수처법을 위반한 행위라고 발표했다. 체포 과정의 부당성을 설명할 논리다. 수사 착수, 영장 발부, 체포 연행의 전 과정에 위법 논리를 미리 쌓아가는 듯 보인다. 쟁송을 위한 법 기술은 소송 당사자의 권리다. 윤 대통령에도 당연히 그런 권리는 있다. 다만, 그 과정이 국민을 불안으로 내몰면 안 된다. “기동대가 나서면 시민 누구에게나 체포될 수 있다”는 변호인 주장이 딱 그렇게 비쳤다.
빼곡하게 들어찬 서적, 책장, 사진, 필기도구.... 지구촌 어느 국가 지도자의 신년사 방송 배경이다. 적어도 지난해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올해는 확 달라졌다. 그것도 확연하게 변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얘기다. 2025년 신년사 방송에서다. 우선 책장과 가족사진 등이 없어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오성홍기로 대표되는 국기와 만리장성이 떡하니 들어섰다. 집권 이후 매번 단골로 선보였던 집무실 풍경이 확 달라진 셈이다. 시 주석은 집권 첫해인 2013년 이후 집무실에서 책장을 배경으로 짙은 색 나무 책상에 앉아 신년사를 발표해 왔다. 그런데 올해는 뒤에 걸린 국기는 그대로지만 만리장성 그림 양옆에 있던 우람한 책장은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이전보다 더 큰 만리장성 그림이 벽면을 가득 채웠다. 책장이 사라진 게 가장 눈에 띈다. 그는 신년사 방송 때마다 책장에 놓인 사진 20여장에 변화를 주며 그해 역점과제를 에둘러 표현해 왔다. 이 때문에 신년사 때 사진은 중국 정치를 이해하는 창구로 여겨져 왔다. 더구나 지난해는 사진 중에서도 가족사진의 비중을 늘렸다. 전통적인 가족 가치를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그의 부친인 시중쉰 전 부총리, 시 주석과 부인 펑리위안 여사, 어린 딸과 함께한 가족사진이 처음 공개되기도 했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은 무엇일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을 앞둔 심리적인 포석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외부의 비바람’이 거세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국가 권위를 강조해 내부 단결을 꾀하려는 의도로도 읽힌다. 이미지를 강조하는 사회주의 정권이어서 더욱 그렇다. 시 주석은 올해 신년사 방송에서 강대국의 위상을 강조했다. “외부 환경의 불확실성이라는 도전과 신구(新舊) 동력 전환 압박 등 몇 가지 새로운 상황에 직면해 있지만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올 한 해 펼쳐질 중국의 대미정책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 시베리아 소도시 벨로고르스크에서 오전 9시 시베리아 시골 도시 벨로고르스크의 자동차정비소가 문을 열면 문제가 생긴 L실장의 차를 고쳐야 한다. 오늘은 자동차 수리 때문에 늦게 출발할 수밖에 없다. 손님이 적은 시골 여관이라 아침 식사를 제공하지 않는다. 부득이 컵라면으로 아침을 때우고 아내와 함께 시내 공원에 산책을 갔다. 1991년 소련 해체 후 레닌 동상은 대부분 철거됐는데 이곳은 시골 도시라 한 개 남아 있다고 한다. 레닌은 1924년 사망했으니 지난해가 사망 100주년이다. 레닌 사망 후 후계자 스탈린은 레닌 우상화를 위해 소련 각지에 수만개의 동상을 건립했다고 한다. 요즈음 러시아 전체에 남아 있는 레닌 동상이 희귀해 사진 찍는 관광 장소라고 한다. 아침 기온이 13도여서 두꺼운 패딩을 꺼내 입는다. 한국의 초가을 날씨처럼 선선하다. 노상에서 동네 주민들이 시베리아 산딸기, 야생 베리를 팔고 있다. 시식해 보라고 권해 먹어 보니 모양새는 맛있어 보이는데 신맛과 약간 씁쓸한 맛이다. 이곳은 일조량이 적어 한국보다 과일 당도가 낮다. 어제 산 야생 꿀도 확실히 당분이 적은 것을 느낀다. 언제 시베리아에 다시 오겠는가 생각이 들어 두 종류의 야생 베리를 노점상에서 샀다. 한 컵 가격이 250루불(약 4천원)이다. 짧은 여름 한 번 먹을 수 있는 무공해 자연식품이라 아내에게 권하니 배탈 난다고 먹지 않는다. ■ 인근 도시 스보보드니: 자유시 참변 장소 스보보드니는 벨로고르스크에서 60㎞ 떨어져 있다. 러시아어 스보보드니는 한국말로 ‘자유’라는 의미다. 이 도시는 독립군부대가 참변을 당한 ‘자유시 참변’으로 잘 알려져 있다. 봉오동전투가 1920년 5월, 청산리전투가 1920년 10월에 있었다. 일본군의 추격에 쫓기던 독립군은 추운 겨울 두만강 건너 지린성 백두산 자락에서 출발해 북만주 벌판, 헤이룽장, 싱안링산맥을 넘어 수천㎞ 먼 길을 걸어 1921년 봄 ‘스보보드니(자유시)’에 도착했다. 혹독한 만주의 겨울 추위에 빈약한 복장과 부족한 식사를 하면서 얼마나 고생했겠는가. 어렵게 이곳에 도착한 뒤 1921년 6월 러시아 적군과 고려공산당 군대에 의해 독립군이 학살당한 도시다. 독립군 측 기록에 의하면 600여명 사망, 900여명이 체포됐다. 학살로 대한독립군 부대는 거의 소멸돼 1921년 이후 일본군과 독립군의 변변한 전투는 없다. 청산리전투 사령관 김좌진 장군은 학살의 낌새를 눈치채고 사전에 빠져나와 참변을 면했다고 한다. 러시아 변방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분들은 대부분 무명용사일 것이다. 그 후손들이 독립유공자 혜택을 받지도 못했을 것이다. 스보보드니는 스탈린 치하 정치범수용소로 유명하다. 최대 19만명이 수용됐다고 한다. 스탈린 자신도 러시아혁명 이전 반체제범으로 체포돼 어느 시베리아 수용소에 2년 동안 수감된 경력이 있다. 억압받았던 자가 억압하는 위치에 있게 되면 더욱 잔인해지는 일이 인간사와 역사에 많다. ■ 스코보노디노로 가는 여정 자동차정비소에서 시간을 많이 소모하고 아침 늦게 스코보노디노로 출발한다. 북위 54도에 위치한 인구 1만명의 작은 도시다. 오늘 이동할 거리는 550㎞다. 우리 여정의 시베리아 초원로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지역이다. 3일간 2천여㎞를 시베리아 숲길로 지나오면서 원시적인 자연계에 익숙해지고 있다. 시베리아 산림은 비슷하다. 자작나무 숲이 주종이고 때로는 소나무 군락지도 나타난다. 열대지방, 온대지방 등에 비해 수종이 매우 단순하다. 텅 빈 대초원도 번갈아 나타난다. 연초록색 물결이 출렁이는 초원의 바다다. 농사를 짓고 싶어도 근처에 사람이 안 살고 소비할 시장이나 판로가 없으므로 경작도 쉽지 않다. 도로변의 많은 초지가 텅 빈 채로 있다. 여름철 낮 시간이 16시간으로 매우 길고 강한 햇볕 때문에 짧은 여름 3개월 동안에 감자, 밀, 채소 등 경작이 가능하다고 한다. 공기는 매우 맑고,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고, 무공해 자연은 아름답다. 거의 경치의 변화가 없는 시베리아 대평원 길을 며칠째 달리고 있다. 가끔 마을이 나타나는데 사람이 안 사는 폐가가 많이 보인다. 젊은이들은 모두 모스크바 등 대도시로 떠나고 시베리아에 살던 부모가 죽으면 우리 농촌처럼 자연스럽게 폐가가 될 것이다. 자작나무, 소나무가 서로 경쟁하면서 군집을 이루고 있다. 어떤 곳은 자작나무가 주종이고 어떤 곳은 소나무가 주종이다. 대체로 숲속의 나무는 매우 빽빽하게 밀집해 자라고 있다. 겨울 강풍과 추위에 서로를 지탱하기 위함이다. 가혹한 겨울 날씨에 살아남기 위한 식물의 지혜다. 초원에 잠시 사진을 찍으러 들어갔다가 야생 벌레들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처음엔 모기에 물린 줄 알았는데 나중에 초원의 야생 곤충에 물린 것을 알게 됐다. 곤충의 독성이 매우 강해 일주일 이상 붓고 가려워 큰 고생을 했다. 시베리아 곤충의 독성에 면역력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에서 가져간 모기약은 전혀 듣지 않는다. 밖에서 보면 아름다운 초원인데 속은 무서운 곤충들의 천국이다. 다시는 초원에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면역력이 생긴 이곳의 농민이나 목동은 아마 괜찮을 것이다.
한탄강 연안에는 현무암 평원이 발달해 있으며 현무암 평원을 관류하는 한탄강 유로에는 경관이 특이한 현무암 협곡이 형성돼 있다. 철원 대교천 현무암 협곡은 그중 대표적인 것으로 신생대 제4기의 지질과 지형 발달을 이해하는 데 학술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협곡은 하천 바닥의 경사가 급해 직류 하천에 형성되고 좌우 방향의 침식보다는 아래쪽 방향의 침식이 더 활발하다. 협곡 곡벽 곳곳에 현무암의 주상절리가 아름답게 분포한다. 주상절리는 지표로 분출한 용암이 냉각 응고함에 따라 수축되면서 형성된 육각기둥이다. 이 현무암 협곡의 총 길이는 약 1.5㎞이고 깊이는 20∼30m로 경관이 빼어나며 주변에는 고석정, 순담계곡 등의 유명한 관광지가 있다. 국가유산청 제공
여야의 극한 긴장과 대치 속에서도 민생과 미래에 꼭 필요한 법안들이 지난해 12월2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 가운데 주목받는 법은 ‘인공지능기본법’이다. 인공지능기본법은 인공지능(AI)의 건전한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을 목적으로 한다. 이 법을 통해 국민 삶의 질을 향상하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려는 궁극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인공지능산업의 진흥과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3년마다 ‘인공지능 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사람이나 상황에 좌지우지되는 발전계획에서 벗어나 체계적이며 지속적인 인공지능 발전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그리고 주요 정책을 심의하고 의결하기 위한 조직으로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45인 이내로 구성된 ‘국가인공지능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했다. 인공지능 글로벌 전쟁에 대비한 일종의 국가 지휘소가 생겨난 셈이다. 막대한 자본과 기술력을 앞세워 인공지능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외국 기업을 상대하는 데 있어 필요한 국가적 차원의 인프라 구축도 가능해졌다. 인공지능집적단지 지정, 인공지능실증기반 조성, 인공지능데이터센터 구축 등이 여기에 속한다. 우수한 전문인력 확보도 가능해졌다. 인공지능 기본계획 수립에 필요한 전문기술 지원을 포함해 종합적인 정책 연구를 담당할 ‘인공지능정책센터’, 인공지능사업자 중심의 진흥 기구인 ‘한국인공지능산업협회’도 설립 근거를 가지게 됐다. 반면 인공지능이 가지는 잠재적 위험을 찾아 제거해 안전성과 신뢰성을 담당할 조직으로 ‘인공지능안전연구소’가 명시돼 있다. 데이터 학습에 사용된 누적 연산량이 일정 기준 이상인 첨단인공지능(Frontier AI)에 요구된 안전성 확보 의무 관련 업무는 물론이고 인공지능 안전에 관련된 위험 정의부터 시작해 안전 정책 연구, 안전 평가, 안전 기술 개발 및 표준화, 국제협력까지 이 연구소가 담당한다. 유럽연합의 인공지능법이 ‘위험(risk)’을 중심으로 기술됐지만 우리나라 인공지능기본법은 ‘영향(Impact)’을 중심으로 기술돼 있다. 사람의 생명, 신체의 안전 및 기본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거나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인공지능을 ‘고영향 인공지능’이라고 정의하며 10가지 대표적인 영역을 명시하고 있다. 다만 고영향 인공지능인지가 불분명한 경우 해당 사업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서 문의하게 돼 있다. 고영향 인공지능의 경우 안전성과 신뢰성 확보를 위해 다양한 책무가 부과된다. 고영향 인공지능을 개발하려면 사전에 사람의 기본권에 미치는 영향평가를 실시해야 한다. 사전 영향평가를 한 경우 국가기관 등에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우선권이 주어진다. 고영향 인공지능은 생성형 인공지능과 더불어 ‘투명성’ 확보 의무가 특별히 명시돼 있다. 인공지능에 의해 생성됐거나 인공지능이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용자가 인식할 수 있도록 고지하거나 표시해야 한다. 딥페이크 사건을 연상하면 이해가 쉽다. 인공지능의 안전성과 신뢰성 확보를 위해 ‘인공지능 윤리원칙’을 과기부 장관이 제정해 공표하게 돼 있고 인공지능 관계자들이 윤리원칙을 잘 이행하도록 ‘민간자율인공지능윤리위원회’를 설치 운영하며 안전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율적으로 검증과 인증을 받도록 하고 있다. 고영향 인공지능의 경우 이러한 검증과 인증이 강하게 추천된다. 끝으로 몇 가지 주목할 부분이 있다. 인공지능 관련 외국 기업도 일정 규모 이상이면 국내 대리인을 지정하게 돼 있다. 챗GPT를 만든 오픈AI는 이미 개소한 일본 사무소 외에 한국에서도 공식 사무소를 열어야 한다는 뜻이다. 인공지능 사업자가 투명성 의무, 안전성 의무를 지켜야 하는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만일 지키지 않았을 때 이에 대해 과기부 장관은 사실 조사를 실시할 수 있으며 위반행위 중지와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다. 그리고 국가적 지휘소인 국가인공지능위원회는 법의 시행일로부터 5년간 존속한다는 제한조건도 가지고 있다. 이 조항은 아무리 길어도 5년 안에 인공지능에 관한 국가 경쟁력 확보 및 신뢰 체계 구축을 확실하게 수립해 내재화하라고 요구하는 메시지로도 볼 수 있다. 그만큼 국가적 역량 집중이 필요한 골드타임에 우리는 살고 있다.
연탄은 돈 없는 서민에겐 생존의 불씨와도 같았다. 추운 겨울이면 연탄 후원에 생존을 의지했다. 그런데 이 온정의 손길로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연탄 후원으로 취약계층을 돕고 있는 연탄은행이 있다. 2023년 10월 말까지 총 10만장의 후원이 있었다. 2024년 같은 기간 4만장이 후원되는 데 그쳤다. 지자체나 기업도 연탄 대신 반찬 후원, 이불·전기매트로 방향을 바꿨다. 한파가 극에 달하는 1월이다. 연탄 사용 가정에는 걱정이 태산이다. 연탄 단가는 이미 한 장당 900원까지 치솟았다. 더는 값싼 연료라고 부르기도 어렵다. 경기일보 취재진이 만난 70대 어르신의 사정이 딱하다. 도시 가스가 들어오지 않는 ‘달동네’에 거주하고 있다. 연탄 소비량은 평소 8장, 추울 때는 12장이 필요하다. 매일 7천200원에서 1만800원의 비용이 들어간다. 어렵사리 100장을 구입해 놨지만 한 달치도 안 된다. 해마다 부족분을 후원에 의존했다. 연탄 후원이 급감하면서 이제 그 ‘공백’을 메울 방법도 없다. 경기일보 취재는 또 다른 측면도 조명했다. 태우고 남는 연탄재 처리 문제다. 연탄재는 일일이 비닐봉투에 싸서 버려야 한다. 부피·무게를 줄일 수 없는 불연성 쓰레기라서다. 돈이 없어 연탄도 충분히 사지 못하는 형편이다. 이들에게 폐기용 비닐 구입 비용은 적지 않은 부담이다. 지자체에서 나눠 주는 비닐의 도움이 컸다. 하지만 이마저 한계가 오고 있다. 현재 연탄재는 매립 외에 쓰임새가 없다. 연탄재를 처리하는 데 근본적인 한계가 다가온 것이다.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가 받은 연탄재는 지난해 10월 말 현재 5천652t이다. 이 가운데 3천8t이 경기도에서 나왔다. 지자체별로는 의정부시, 노원구, 미추홀, 파주시 등이 많다. 화훼·축산 농가, 음식점, 군(軍)에서 발생한 연탄재까지 포함된 양이다. 결과적으로 모든 연탄재 매립의 한계를 불렀다. 이는 서민의 연료 문제가 됐다. 연탄 태울 돈도 없고 연탄재 치울 돈도 없는 서민 생활이다. 연탄을 대하는 행정에 닥친 딜레마다. 과연 서민의 연료로 연탄을 계속 봐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대체 서민 연료를 찾을 수 있는지도 고민해야 한다. 줄었지만 ‘연탄 봉사 온정의 손길’은 여전히 곳곳에서 이어진다. 푸근한 이웃사랑의 표본으로 계속 지켜만 봐도 좋을지 정말 걱정이다.
희망 가득한 새해가 밝았다. 올해 인천에서는 지역 숙원의 대역사 2개가 완공된다. 청라~영종 간 제3연륙교와 영종~신도 간 신도대교다. 둘 다 올해 말 개통을 목표로 공사가 한창이다. 요즘 영종도 삼목선착장에서 바라보는 신도대교의 위용은 새삼 대단하다는 느낌이다. 뱃길만 있었던 섬들이 바다 위 길을 통해 인천으로 다가온다. 엄청난 재정을 쏟아부은 해상교량들이다. 그러나 제때 제대로 개통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한다. 어찌된 일인가. 제3연륙교와 신도대교 모두 올해 말 완공, 개통이 목표다. 제3연륙교는 4.68㎞ 구간의 왕복 6차로로 2020년 12월 착공했다. 사업비 6천550억원이다. 3.26㎞ 구간 왕복 2차로의 신도대교는 2021년 1월 착공했다. 제3연륙교가 들어서면 서울 등 수도권에서 인천공항과 영종도를 찾는 차량이 급증할 전망이다. 통신 빅데이터를 통해 분석한 2026년 1일 평균 교통량이 2만533~4만2천836대에 이른다. 현재 1일 평균 1천여대 규모인 신도 일대 교통량도 8배 이상 늘 전망이다. 수도권의 해양 관광 수요가 신·시·모도 등으로 대거 몰릴 것으로 예상한다. 개통 초기를 지나 안정화 상태로 돌아가도 1일 평균 5천900대에 이를 것으로 본다. 그러나 막상 준공해도 개통까지는 난관이 많다고 한다. 본공사는 착착 진행해 왔지만 연결도로 등 운영 준비가 따라 주지 않아서다. 신도대교의 경우 해상교량에서 신도로 진입하는 연결도로 공사를 아직 시작도 못했다. 도로를 내기 위한 토지 보상조차 마치지 못했다. 전체 3만2천여㎡ 중 8천여㎡에 대한 보상에 발목이 잡혀 있다. 수용 절차에 들어가도 6개월 이상 걸린다. 소송까지 가면 더 늦어진다. 연결도로 공사도 1~2년 잡아야 하니 본사업과 전혀 연결되지 않는 사업 추진이다. 신도 일대의 주차장 확보도 더디다. 618면이 목표지만 현재 103면 규모의 부지만 확보한 상태다. 제3연륙교 운영 주체나 통행료 결정도 시간이 많지 않다. 특히 민간투자사업인 인천·영종대교의 손실보전금 규모를 정해야 통행료가 산출된다. 그러나 국토부와 인천 시간 의견 차이가 커 계속 난항이다. 이 때문에 완공을 하고도 통행료도 채 결정하지 못하는 사태가 우려된다. 섬으로 진입하는 연결도로도 없는 해상교량이라니. 시민들이 십수년을 기다려 온 숙원의 해상교량들이다. 수천억원씩의 인천 자산이 들어갔다. 그런데도 바다 위 텅 빈 다리로 남겨진다면 세간의 얘깃거리가 될 것이다. 비상한 다짐으로 이들 과제를 풀어내야 한다. 새해 인천시 역량의 큰 시험대라 할 것이다.
‘푸른 뱀의 해’ 2025년 을사(乙巳)의 새 아침이 밝았다. 매년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이 해돋이 명소를 찾아 붉게 떠오르는 새 아침의 태양을 보며 소망을 빈다. 서로 덕담을 나누면서 희망의 첫발을 내딛는다. 지난해의 아쉬움과 어려웠던 일들을 털어내고 새로운 기대감이 가장 큰 때가 바로 신년 벽두다. 올해도 어김없이 국민들은 지난해보다 더 나은 한 해를 기대하며 새해를 맞이하고 있다. ‘청룡의 해’로 상서로운 기운에 대한 기대감을 안고 출발했던 2024년. 많은 국민이 청룡처럼 힘차게 비상하는 부푼 꿈을 안고 새해를 출발했으나 국민들이 체감하는 시대 상황은 이 기대감과는 전혀 다르게 전개됐다. 국내 정세는 장기 불황에 따른 물가 상승과 의료대란, 12·3 비상계엄 선포 사태, 무안공항 여객기 참사 등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 희망으로 힘찬 새해 첫발을 내디뎠던 많은 사람은 상실감과 절망, 분노, 슬픔으로 가득찼다. 이제 그 고통과 슬픔의 해를 넘기고 새로운 해가 열렸다. 아직도 국내 정세는 어둠의 터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불안정이 이어지고 있지만 그래도 국민의 가슴속에는 새해에 대한 기대감과 희망의 새싹이 움트고 있다. 새해를 맞아 건네는 덕담에 담겨진 건강과 안녕, 행복과 번영은 국민 모두가 추구하는 바람이다. 어둠의 끝은 반드시 오기에 그 여명의 시간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이다. 우리 국민은 역사적으로 나라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놀라운 응집력과 지혜로 위기를 극복했다. 21세기 들어 가장 큰 위기에 직면한 이 시기에도 새해 설계를 통해 난관을 극복하고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이제는 국가가, 정치권이 새해 덕담에 담긴 국민의 소망과 기대감을 결과물로 담아낼 수 있도록 변해야 한다. 새해 붉게 떠오른 태양이 환하게 이 세상을 비출 수 있도록.
헌법재판소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87년 설립됐고 1988년 문을 열었다. 제헌국회 이후 등장까지 40년 세월 걸렸다. 그 출발의 결정적 동기는 6·29 민주화다. 그런 만큼 헌재의 정신은 권력의 견제와 부패에 있다. 그 정신이 잘 드러난 게 재판관 추천 분배다. 입법, 사법, 행정에 고르게 몫을 정해줬다. 국회, 대법원장, 대통령에 각각 3명씩이다. 서로 침범해선 안 되는 영역이다. 이 간단한 원칙에 대통령 권한대행 둘이 갈라졌다. 와 있는 건 국회 몫 재판관 3명이다. 한덕수 전 대통령 권한대행은 임명하지 않았다. 그의 입장이 정리된 게 지난달 26일 담화다. 결국 마지막이 된 담화에서 그는 여야 합의를 강조했다. 여야 합의 없이 임명된 헌법재판관은 없었다고 했다. 사실 이 논리가 향하는 곳은 대행의 역할이다. 헌법 기관 인사는 대행의 권한 밖이라는 주장이다. 담화 어디에도 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평가는 없었다. 갈 길 바쁜 야당의 분노를 사 결국 탄핵 당했다. 최상목 ‘대행의 대행’은 3명 가운데 2명을 임명했다. 말로는 한 전 대행의 원칙을 존중한다고 했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옳고 그름은 따질 필요는 없다. 그건 곧 지금의 여론이다. 다만 ‘마은혁 후보자 제외’는 비논리다. ‘3명 후보자’는 전부 국회 몫이다. 대통령(또는 권한대행)이 후보자 적격성을 다시 판단하면 안 된다. 절묘한 선택이라는 얘기도 있긴 하던데. 내 눈에 기괴한 선택이다. 결국 가까운 시일 내에 다 임명하지 않겠나. 바로 그날, 최 대행이 재판관을 임명할 때 서울서부지법은 윤석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공수처가 적시한 혐의는 ‘내란 우두머리(수괴)와 직권 남용 권리행사 방해’다.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체포영장 발부였다. 한남동 공관에서 경호요원들과의 대치가 예상됐다. 그런데 법원은 윤 대통령의 이 기회까지 차단했다. ‘해당 영장은 형소법 110조(군사 비밀), 111조(공무 비밀)의 예외’라고 못 박았다. 경호처도 막으면 불법이라는 경고다. 수사기관의 윤 대통령 압박은 오래됐다. 계엄 실패 직후에는 검찰·경찰이 다퉜다. 서로 하겠다며 특수본과 특수단을 만들었다. 공수처까지 뛰어들었다. 세 기관 모두 성역 없는 수사를 부르짖었다. 수사 흐름을 서로 선점하려는 여론전도 치열했다. 여기서 ‘대통령 수사’를 말하면 저기서 ‘대통령실 압수수색’이 나왔고, ‘대통령 출국 금지’, ‘대통령 체포영장’으로 이어졌다. 오죽하면 윤 대통령 측에서 ‘수사보다 헌재를 선호한다’고 했을까. 윤 대통령 주변에 남은 권력은 없다. ‘내란죄가 아니다’라고 강변했다. 그런데 수사 기관이 내란죄라고 추궁한다. 윤석열 정부의 검찰총장, 경찰차장이다. ‘체포영장은 위법’이라고 강변했다. 그런데 법원이 체포하라고 했다. 윤석열 정부의 조희대 법원이다. ‘시간 좀 달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국무회의에서 재판관을 임명했다. 윤석열 정부의 최상목 부총리다. 주변이 모두 그의 적수가 돼 있다. 탄핵보다 훨씬 참담하게 여겨질 현실이다. 검찰총장 윤석열의 추억이 있다. 수사지휘권 빼앗기고 홀로 됐다. 구내식당을 오가는 모습만 보였다. 그때 그를 향했던 여론이 있다. 법의 수호자를 지키자는 목소리다. 결국 그는 지위를 찾았고 대통령도 됐다. 5년 지나 또 권한이 정지됐다. 그를 지키는 여론은 여전히 있다. 그를 지키겠다며 공관을 촘촘히 에워쌌다. 공관 안과 공관 밖의 희망은 같을 것이다. 2020년 윤석열 검찰총장의 반전과 같은 2025년 윤석열 대통령의 반전. ‘뒤집힐 것이다’, ‘턱 없는 소리다’. 각자의 소망으로 갈리게 될 얘기다. 어차피 정답 없는 미래 일이다. 다만 좌우 없이 궁금해할 의문이 있다. 윤 대통령은 어떻게, 저렇게, 빨리 권력을 잃을 수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