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종의 클로즈업] 비상계엄과 군의 명령 복종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40일이 지났다. 이 과정에서 장성급 군인 7명이 계엄에 동조한 혐의로 구속됐으며 그들의 계급은 별 20개에 달한다. 비상계엄은 국가의 비상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헌법적 조치지만 이번 사태는 군의 역할과 명령 복종이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가치와 충돌하면서 심각한 논란을 일으켰다. 군에서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위기 상황에서 군의 신속한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불법적인 명령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우리 군사법원법과 군형법은 “명백히 위법한 명령”에는 따를 의무가 없다고 해석하고 있지만 ‘명백히’라는 기준이 모호해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이는 상관의 불법적인 명령을 거부하고자 하더라도 실제로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 이 문제는 단순한 이론적 논쟁을 넘어 보스니아 내전과 5·18 광주화운동에서 민간인들에 대한 폭력 사례가 ‘상관의 불법 명령’이 책임을 면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또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확립된 “명백히 위법한 명령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원칙은 여전히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 이번 비상계엄 사태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군의 지휘 체계와 명령의 정당성이 과거와 어떻게 달라졌는지 면밀히 살펴보는 것이다. 비상 상황에서 위법성을 즉각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현실적 한계를 인정해야 하지만 군 병력 출동 같은 중대한 명령이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단순히 위기 대응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1980년대 초 일부 군인이 정치적 압력에 따라 군사력을 행사하며 헌법적 가치를 훼손한 사례는 군 명령 체계의 위험성을 잘 보여준다. 현재 명령의 적법성을 판단할 제도적 장치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군인들에게 윤리적 판단을 요구하는 것은 과도한 부담이 될 수 있다. 이를 개선하려면 실질적이고 제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비상 상황에서도 군 지휘관이 명령의 적법성을 신속하게 검토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이나 유엔의 사례처럼 군내에 법률자문팀을 상시 배치해 명령의 법적 타당성을 독립적으로 평가할 수 있게 할 수 있다. 베트남전쟁 당시 미라이 학살(1968년) 사례에서처럼 이러한 자문팀은 명령의 법적·윤리적 적합성을 검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비상 상황에서도 헌법적 가치를 우선시하는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군의 전통적 가치인 명령 복종이 민주주의와 충돌하지 않도록 헌법적 원칙과 윤리적 기준을 적용하는 구체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위법한 명령을 식별할 수 있는 윤리적 판단력을 배양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군형법의 모호성을 해소하고 ‘명백히 위법한 명령’에 대한 판단 기준을 명확히 명문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 위기 상황에서도 군 조직이 법치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확고히 지킬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군의 법적 판단과 군사작전의 신뢰성을 확보하는 것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수호하는 핵심 수단이다. 물론 명령 복종과 관련된 위법성 문제는 향후 법적 판단을 통해 명확히 규명될 사안이다. 그러나 이번 계엄 논란은 군의 안보적 역할과 정치적 중립성이 얼마나 잘 유지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중요한 사례가 될 것이다. 군이 명령 수행 과정에서 작전의 적시성과 법적 균형을 효과적으로 조화시킨다면 국가적 혼란을 극복하고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신뢰받는 군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적 논란과 오용을 방지하는 것이다. 이번 논란이 군 조직과 명령 체계가 헌법 및 윤리적 원칙에 부합하도록 발전하는 전환점이 되기 바란다. “군은 헌법적 가치를 바탕으로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방패여야 한다.”

[함께하는 미래] 이런 한 해가 돼야 한다

지난 9일 기상청은 2024년이 113년 관측 이래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됐다고 공식 확인했다. 불과 최근 30년 전보다 연평균 기온이 2도나 높아진 것으로 더 이상 한반도는 기후변화의 ‘안전지대’가 아닌 ‘취약지대’임을 분명하게 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지구 평균 기온을 높이는 나라, 즉 ‘기후 악당’ 국가임을 실시간 증명하고 있다. 기후 변화와 관련된 기사를 접할 때마다 마음 한편에 그 결과가 조금이라도 빗나가기를 바라지만 항상 그 기대는 속절 없이 무너져 미래를 어둡게 한다. 전 세계 어떤 국가나 정부, 지구인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의 지름길이 재생에너지로의 전환과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것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이미 과학적 사실과 검증으로 확인되고 합의된 결과이며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보편 타당한 경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속도와 양은 우리가 선택한 정부의 성격과 공동체의 준비 정도에 따라 결과는 매우 큰 격차를 보인다. 기후위기 해결책은 어떤 권력을 가진 특정인에게 헛되게 맡겨진 것이 아니다. 제멋대로 권력을 부리며 날뛰고, 낯짝이 두꺼워 부끄러움이 없는 시절이다. 결국 기후위기의 해결책도 조직된 시민의 힘에 있다. 그 힘의 크기가 경로를 바로잡고 속도를 배가시키고 양도 결정할 것이다. 최근 국회에서 ‘국가 기간전력망 확충 특별법’안에 대한 긴급 토론회가 열렸다. 관련 전문가·지역주민·현장 운동가들은 한목소리로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과 환경성, 주민 수용성, 형평성 등의 관점에서 입법화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인식을 같이했다. 현재의 ‘전원개발촉진법’ 하에서도 결국 형식적인 주민 참여, 정보 비공개, 일방적인 의견 수렴, 현실과 괴리된 보상 방식 등으로 갈등은 커지고 기간은 더 길어지고 있는 상황인데 본질을 외면한 채 전력망 건설 기간만 단축시키려는 법안이 현재의 상황을 넘어서기는 어려울 것이다. 탄소중립과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전력 산업과 전력 시장의 구조 개편, 분산형 전력망, 전력 계통의 운영 기준과 운영 기술의 선진화, 에너지 저장장치 확대 등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무도한 시절을 이겨내면 새로운 세상을 향한 밑그림을 그리는 논의가 본격화될 것이다. 그 시작은 장밋빛 청사진보다는 현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보듬고 감싸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가장 현실적이고 창의적인 대안이 나온다. 모래성처럼 파도에 휩쓸려 흔적 없이 허물어지는 것이 아닌 장기간의 험난한 여정을 함께 이겨낼 수 튼튼한 초석을 놓아야 한다. 이미 현실이 된 기후재난을 우리 모두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2025년 새해는 씨줄에 날줄이 걸리고 날줄에 씨줄이 걸리는 것처럼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묶고 서로에게 묶여 전체가 되고 방향이 되고 면적이 되기 바란다. 각기 다른 과정을 통해 삶과 생존, 사회생활에 필요한 생필품도 만들어내며 문화도 일으키고 의식도 일깨우기를 바란다. 진정 우리 사회의 상식과 정의, 기본과 순환고리가 지켜지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한다. 생로병사의 순환 속에서 깊은 위로와 애도를 표하는 일들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감히 뭐라 위로하고 어떻게 아픔을 나눠야 하는지 가늠조차 힘든 일들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또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길 수 없다는 상식을 목격하고 행동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세대와 세대를 이어 희망이 샘솟기를 바란다. 이런 한 해가 돼야 한다.

[삶, 오디세이] 2025년, 나의 꿈

바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꿈’은 좀 먼 나라의 무지개를 손에 잡는 것 같은 비현실적인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새해를 맞으면서 새로운 마음으로 꿈 꿀 수 있다면 많이 혼란스럽고 어려운 시대 속에서도 의미 있는 새해, 2025년을 살 수 있을 것이다. 필자도 새해 아침 광교산 형제봉을 오르면서 2025년 ‘나의 꿈’을 찾는 시간을 가졌다. 2025년 버킷 리스트 50이다. 꿈은 꾸는 사람에게 이뤄진다. 이 글을 읽으며 각자 2025년 자신의 꿈을 찾아보았으면 좋겠다. 리스트 중에는 조금은 황당한 것도 있지만 꼭 50가지는 아니더라도 5가지, 10가지, 20가지를 정해 꿈을 따라 살아가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그럼 천천히 하나씩 꿈 찾기에 도전해 보자. △잘 웃기 △먼저 인사하기 △약속 시간 늦지 않기 △감사일기 쓰기△큰 소리로 노래 부르기 △안 먹는 음식 먹기에 도전하기 △해외여행 가기 △장례식장 조문하기 △3명의 친구 만들기 △결혼식장에 가서 사진 찍기 △부모님께 용돈 드리기 △서점 방문해 책 구입하기 △영혼의 짝 1명 만들기 △헤어스타일 바꾸기 △새 노래 배우기 △운동 시작하기 △악기 한 가지 배우기 △몸에 안 좋은 음식 끊기 △다이어트 △외국어 배우기 △장롱 속 면허증 꺼내 운전하기 △유튜브, 카톡 사용 시간 줄이기 △면허증 따기 △친척 집 방문해 1박하기 △건강을 위해 매일 비타민 먹기 △매일 1만 걸음 걷기 △말하기보다 경청하기 △아직 가보지 않은 가장 높은 산에 가기 △양보 운전하기 △겸손하게 낮아지기 △직장에서 가족 자랑하기 △손해인 줄 알지만 선행하기 △책 읽기(한 달에 1권) △저축하기 △필요한 사람에게 돈 빌려주고 받지 않기 △아기 갖기 △컴퓨터 배우기 △섬 여행하기(제주도, 울릉도, 백령도 등) △사진찍는 법 배우기 △사막에 가보기 △아들딸 결혼시키기 △한 달에 한 번 가족들과 외식하기 △가족들과 여행하기 △요리 배우기 △사람들 앞에서 연설하기 △부모님 여행 보내 드리기 △캠핑에 도전 △자전거 타기 △혼자서 하루 여행하기 △유언장 쓰기 꿈을 좇아 살아가는 사람은 바쁘지 않다. 해야 할 일을 하지만 그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삶은 여유가 있고 동기와 목적이 분명하기에 발걸음은 힘이 있다. 빅토르 위고는 “매일 아침 하루를 계획하고 그 계획을 실행하는 사람은 극도로 바쁜 미로 같은 삶 속에서도 그는 인내할 수 있는 한 올의 실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계획이 서 있지 않고 단순히 우발적으로 시간을 사용하게 된다면 곧 무질서가 삶을 지배할 것”이라고 말했다. 꿈을 꾸라. 꿈을 이루기 위해서 살라. 2025년이 과거가 됐을 때의 성공과 실패는 오늘 나의 꿈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진심으로 변화된 인생을 살고 싶다면 새해 첫날이 아니라 지금 당장 시작하라.” -짐 스토벌

[경기만평] 세번째...

[사설] 청년들은 명분만으로 건설 현장에 남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건설 노동자 수가 줄어들고 있다. 건설업 고용보험 가입자 추이를 보면 확인된다. 고용행정 통계로 보는 노동시장 동향이 있다. 2024년 11월 말 현재 건설업 고용보험 상시 가입자 수가 76만3천명이다. 2023년 8월 처음으로 신규 가입자 수 0명을 기록했다. 그 후 16개월 연속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건설 현장에 외국인 노동자 대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 추세는 이런 건설 현장 사정이 심각한 수준에 와있음을 보여준다. 더 큰 문제는 젊은 노동자들의 소멸에 가까운 감소다. 관련 통계를 보면 2004년 건설 기술인 평균 연령이 38.1세였다. 2024년 6월 현재 51.2세다. 20년간 무려 13세나 높아졌다. 전체 건설 기술인 중 20·30대 비중도 그렇다. 2004년 64%에서 현재 15.7%까지 떨어졌다. 쉽게 말하면 20년 전 건설 노동자들이 그대로 이어온 꼴이다. 그 기간 젊은 노동자들의 신규 유입은 거의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래서 나온 타개책이 여러 개 있다. 그중의 하나가 ‘건설 뉴 마이스터 양성 훈련’이다. 건설공제회가 지난 2023년 6월 도입한 제도다. 특성화고등학교 3학년생들이 대상이다. 4개월간 적성에 맞는 교육을 실시한다. 타일, 측량, 건축목공, 형틀목공, 조적 등의 분야다. 전문 건설사에서 실습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갖췄다. 교육, 졸업, 취업까지 이어지는 혜택이 주어진다. 경기권 5개교를 비롯해 전국 10개 고등학교가 참여했다. 115명이 교육과정을 이수했고 51명이 취업했다. 그런데 현장에 남아 있는 교육 이수생이 없다. 건설공제회가 상반기 직업훈련 지원금 지급을 위해 현장 확인을 했다.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고 한다. 더는 관련 조사도 하지 않는다. 사정이 이러니 교육 프로그램도 2023년 시작이 곧 끝이었다. 건설 현장에 건설 기능인을 육성한다던 목표가 민망하다. 학생 이탈의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학생 입장에서는 대학 졸업자와의 형평성이다. 대학 간다며 모두 떠나 버렸다고 한다. 건설공제회의 노력 자체는 평가한다. 젊은 건설 기능인을 배출하려는 절박한 시도였을 것이다. 다만, 그 접근이 너무 안이하거나 순진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학 졸업생과의 임금 차이는 우리 사회 고학력을 부추기는 출발이다. 이것을 뛰어넘을 대책 역시 임금·복지 등에서 도출돼야 한다. 건설업계가 아닌 보다 높은 수준의 정책 집행이 필요하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고용노동부의 고민·토론·입안이다. 건설현장 고령화 어쩔 것인가.

[사설] ‘줄폐업’ 늪의 인천 건설... 부동산 과열, 그 다음 걱정이다

건설경기 장기 불황이 업체들을 코너로 몰고 있다. 인천에서도 크고 작은 건설업체들이 ‘줄폐업’ 중이다. 사무실 유지도 어려워 폐업사유를 사업 포기라 적고 있다. 새해 시작과 함께 지역 건설업에 또 하나 악재가 터졌다. 시공능력 58위의 신동아건설의 법정관리 신청이다. 검단신도시 등에서 대형 사업을 벌이던 업체다. 인천 건설업체들의 연쇄 도산 등 후폭풍이 걱정이다. 신동아건설은 검단신도시 대규모 아파트 건설사업의 주관 시공사다. 그러나 지난주 예정했던 청약 당첨자 발표도 취소했다. 당첨자들도 계약을 포기할 수 밖에 없게 됐다. 영종도 미단시티 개발 사업에도 불똥이 튈 전망이다. 이곳 공동·단독주택 부지 개발 사업의 시공을 맡고 있다. 시행사 인천도시공사(iH)에 낼 중도금, 잔금도 연체 중이다. 인천여상과 인천예고의 공간재구조화 사업도 타격을 받게 됐다. 낡은 학교 시설을 개축하고 리모델링하는 사업이다. 시공 주관사인 신동아건설이 빠지면서 사업 지연이 불가피하다. 더 큰일은 협력사로 참여 중인 지역 중소 건설사의 연쇄 부도 우려다. 인천 전문건설협회가 이들 사업 협력사와 피해 상황 파악에 나섰다고 한다. 인천에서는 지난해에만 168곳의 종합·전문건설업체가 문을 닫았다. 이 중 종합건설업체만 74곳이다. 자본금 등록 기준에 미달하거나 자금난 등으로 사업을 접었다. 지역 건설업체 폐업은 3년 연속 증가세다. 종합건설업체 폐업은 2022년 26곳, 2023년 29곳이던 것이 지난해 74곳으로 크게 늘었다. 전문건설업도 2022년 51곳, 2023년 80곳, 지난해 94곳이 폐업했다. 자본금 미달로 사업을 포기하고 자진 폐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건설 경기 악화가 길어져 일감을 따내지 못하면서 자본 잠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입찰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보증가능금액 기준도 채워야 한다. 그러나 자금난 악화로 이마저 충족하지 못하니 사업을 지속할 수 없다. 문제는 올해도 상황이 나아질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재·인건비 폭등에 고금리 유지 정책까지 악재가 수두룩하다. 여기에 정국 불안까지 건설경영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건설업은 전후방 연관 효과가 매우 큰 산업이다. 일자리 감소 등으로 서민경제까지 옥죈다. 도배·장판업이나 심지어 식당, 술집들까지 건설 경기에 흔들린다. 인천시는 상반기 중에나 활성화 계획을 검토한다고 한다. 너무 미온적이다. 건설 예산을 빨리 풀어 우선 일감을 늘려줘야 한다. 정부도 규제 다 풀고 금리 인하 등 정책수단을 다 써야 할 때다. ‘집값 부추길라’ 걱정은 그 다음 일이다.

[지지대] “훈춘사건을 아십니까”

느닷없이 총을 든 병사들이 들이닥쳤다. 명분은 마적 토벌이었다. 그런데 끔찍했다. 처참한 학살도 이어졌다. 끊임이 없었다. 일제강점기였다. 이 대목에서 참으로 이상한 점이 있다. 습격을 감행한 병력이 일본인들만 골라 무차별 살해했다는 점이다. 특히 일본영사관에서 일본 경찰 간부의 가족 등이 이들에게 목숨을 잃었다. 전대미문의 천인공노할 사건이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사건이 발생한 건 중국 만주의 한복판인 훈춘이었다.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 동쪽에 위치한 조그마한 도시다. 19세기 후반부터 한반도에선 조선인이 많이 건너와 상주하던 곳이다. 주민의 80%가 조선인이었다. 3·1독립운동 이후로는 더 많은 조선인이 이주했다. 그래서 독립군도 결성되고 항일 무장투쟁도 펼쳐졌다. 총독부 입장에선 그야말로 ‘눈엣가시’였던 곳이다. 그러자 일제는 이들을 없애기 위해 병력을 투입할 구실을 꼼꼼하게 찾기 시작했다. 아주 흉악한 모략이었다. 그래서 이곳에서 활동 중인 중국인 마적 수령 장강호(長江好)를 매수해 마적단 400여명이 훈춘을 공격하도록 종용했다. 마적들은 최우선으로 훈춘의 일본영사관을 습격했다. 그리고 시부야(渋谷) 경부의 가족 등을 포함해 일본인 9명을 살해했다. 그것도 부녀자들을 말이다. 일제는 이 사건을 빌미로 마적 토벌이라는 구실을 내세워 나남사단(羅南師團)을 비롯한 대규모 군대를 훈춘으로 출동시켰다. 이어 조선인과 독립운동가를 무차별 사살했다. 한민회와 독립단조직 등도 철저하게 파괴했다. 독립군의 활동 기반으로 여겨지던 조선인 학살에 역점을 뒀다. 훈춘에서 조선인 242명이 학살당했다. 이 사건을 시발로 일본군의 만행은 그치지 않았다. 105년 전인 1920년 이맘때 발생했다.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사건이다.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민족은 또다시 아픔을 겪는다는 교훈은 그래서 오늘도 유효하다.

[세상읽기] 웨이팅문화

일반적으로 줄서기, 긴 대기시간은 고객 서비스 만족도를 낮추는 요소로 여겨졌다. 대기시간이 길어지면 부정적인 감정이 유발되고 고객의 인내심을 시험하게 돼 서비스 자체의 품질이 높더라도 전체적인 경험이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소비자는 시간을 낭비한다고 느껴 다른 브랜드나 옵션으로 전환하는 주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긴 대기시간을 뜻하는 웨이팅이 하나의 문화로 잡기 시작했다. 대기줄이 길다는 것은 서비스나 제품이 인기가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한정된 상품이나 특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 이러한 기다림은 소비자의 기대감을 증폭시켜 더 큰 만족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애플 아이폰이 출시될 때 길게 늘어선 줄은 희소성과 트렌드 리더십이 강조돼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 기여해 소비자는 서비스나 제품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되는 심리적 효과가 발생한다. 스타벅스 리저브 역시 한정된 메뉴와 특별한 메뉴로 소비자의 웨이팅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며 고급 프리미엄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지난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넷플릭스 요리 경연 콘텐츠인 흑백요리사의 경우 출연 셰프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의 예약이 매우 힘들어지자 식당 예약 양도권을 웃돈을 얹어 판매하는 틈새시장이 생기기도 했다. 기다림=희소성의 등식이 작동하는 한 이는 또 다른 소비의 대상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웨이팅이 흔한 현상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 세대 특징인 소비와 경험에서 독특한 가치를 추구하며 웨이팅을 단순한 기다림 이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한정판’과 ‘독점적’인 것에 큰 가치를 둔다. 웨이팅이 길수록, 희소성이 높을수록 그 서비스나 제품이 특별해져 더욱 갈망하게 된다. 웨이팅은 순서대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원칙이 통하는 상황에서 나의 오랜 시간 투자를 통해 얻어낸 일종의 결과물이므로 이를 인증샷과 함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자랑할 수 있는 콘텐츠로 변환할 수 있다. “나는 이런 특별한 것을 경험했다”는 훌륭한 SNS 스토리가 된다. 단순히 제품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얻는 과정을 경험으로 인식하는 것은 줄 서서 기다리는 것도 새로운 콘텐츠가 되는 것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 트렌디한 것을 탐구하는 세대들에게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다. 웨이팅 열기는 다수의 소비자가 만들어내는 유행을 따라가고자 하는 편승효과의 얼굴을 하고 있다.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면 왜 인기가 많은지 호기심이 발동하고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새로운 욕망을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성취감을 느끼고자 하는 사치재의 새로운 방식일 뿐이다.

[천자춘추] 21세기 로컬 골드러시

행정안전부는 2021년 10월 기준으로 우리나라 시·군·구 중 89곳을 인구소멸지역으로 지정했다. 또 우리나라의 낮은 출산율은 2020년 인구 증가율을 마이너스로 돌아서게 했고 인구소멸지역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저출산과 지역소멸 위기는 우리나라의 미래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소멸 위기, 혹은 붕괴 위기를 겪고 있는 지역은 대부분 부족한 일자리와 정주여건 등에서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그 지역이 가진 가치를 찾아내고 상품화해 지역 공동체와 함께 발전해 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로컬 크리에이터’라고 불리는 기업가다. 이들은 로컬 자원을 활용하고 비즈니스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로 지역소멸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의 효과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로컬(local)이라는 단어는 글로벌(global)과 대비되는 단어로 보편적이기보다는 독특함과 본연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지역 개념이다. 일반적이지 않고 지역만의 환경이나 스토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강력한 브랜딩이 가능하고 아무데서나 사거나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집객 능력도 좋아 지역 활성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공장이나 기업을 유치하는 것도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되지만 개발이 아닌 보존과 활용을 통해 지역이 가진 유무형의 자산을 가꾸고 상품화하면 지역 발전에 직접적인 혜택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장단콩으로 유명한 파주의 사임당두부협동조합은 법원읍 상인들이 지역 상권을 살리기 위해 설립했다. 지역의 식재료를 사용한 두부 요리를 판매하고 장단콩 두부 체험 등을 진행하는데 해외 방문자가 늘어나는 등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경험을 통해 새로운 관광자원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파주 장산의 독수리 식당은 멸종위기종인 독수리 보호 운동으로 시작됐는데 수백마리의 독수리와 재두루미 등 철새가 찾아오면서 관광객들에게 새로운 생태체험을 선사하고 있다. 로컬자원은 발굴하기에 따라 엄청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그런데 로컬의 가치는 숨어 있고, 로컬크리에이터 같은 기업가의 발굴 노력도 필요하고, 지역의 공간을 함께 사용하기 때문에 지역공동체와의 협력이 필요하다. 소멸될 것 같은 지역의 숨은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고 도전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21세기 로컬 골드러시가 이뤄지길 기대해본다.

[김종구 칼럼] ‘경기도 국밥집’ 회견에 ‘경기도’는 없었다

신선했다. 의미도 있었다. 그의 말대로 ‘1% 경제’다. 경제성장률, 수출증가율, 민간소비증가율이 1%대다. ‘1%짜리 대한민국’을 걱정했다. 여기서 서민을 직격하는 건 소비증가율 1%다. 당장 가계(家計)를 타격한다. 식당, 가게마다 아우성이다. 이런 때 찬물을 부은 계엄 정국이다. 소상공인의 연말 특수가 다 날아갔다. 이런 때 등장한 특별한 기자회견이다. 김동연 경기지사의 ‘신년 간담회’. 설렁탕 먹는 식당이었다. 그 뜻을 칭찬할 만하다. 이런 배려조차 서민에겐 감사한 일이다. 그래서 아쉬움이 남는다. 그날 경기도 국밥집엔 경기도가 없었다. 강조된 화두가 ‘중앙정부·정치’였다. 모든 언론이 ‘대한민국 비상 경영 3대 조치’를 받아 적었다. 50조원 슈퍼 추경, 트럼프 2기 대응 체제, 기업 기 살리기…. 전부 중앙정부에 전권이 있는 일이다. 표현부터가 ‘요구’다. ‘(추경) 늘려야 한다’, ‘(대응체제) 제안한다’, ‘(기업 살아나게) 해야 한다’. ‘하겠다’는 약속이 있긴 했다. 대외신인도 회복을 위한 역할이다. 다보스포럼에서 다양한 노력을 하겠다고 했다. 유럽·미국 언론인들과의 대화의 시간, 유니콘 기업과의 자리 등이 예정된 것 같다. 이 기회를 잘 이용하겠다고 했다. 앞서 김 지사는 외국 지인 2천400명에게 편지를 보냈다. 미국·영국·네덜란드 주한 대사도 만났다. 그만의 국제 관계 챙기기다. 이미 노력을 평가한 바 있다. 그럼에도 구멍은 있다. 경기도정이다. 작금의 도정 하나를 짚어 보자. 경기도·지자체 간의 경기남부광역철도 논쟁이다. 용인특례시 이상일 시장이 석 달째 따지고 있다. -수원·용인·성남·화성 주민의 숙원이다. 2023년 김 지사가 협력은 약속했다. 그런데 국토부에 올린 건의문에 참여 안 했다. 후순위로 미룰 땐 시장들과 협의도 안 했다…. -모두 맞진 않다. 이 시장의 욕심이 과하긴 하다. 하지만 현시(顯示)된 노력이 안 보인 건 맞다. 그래서 청원이 올라왔다. 김 지사가 답했다. -관련 사업을 국토부에 건의했다. 후순위 배치는 정부 요구로 인한 것이다. (검토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주장은) 왜곡된 정보다. 도민 분란을 야기하는 것이다. -31개 시·군을 관할하는 도(道)다. 도지사가 할 법한 해명이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이 시장 주장도 맞다. 지역의 기대를 충족 못한 건 맞지 않나. 여기에 경제부지사의 지원은 사실 관계도 틀리다. 이래저래 지역민에게는 경기도가 영 미덥지 않다. 경기도정이 얼마나 넓은가. 철도 현안만 40개라고 한다. 그런 철도(鐵道)도 수많은 교통 정책 가운데 하나다. 그런 교통(交通)도 수많은 도정 가운데 하나다. 여기에 김 지사의 공약도 있다. 2023년에 295개라고 확정했다. 기회소득, 경력단절여성, 어르신 일자리, 어린이집, 장애인, 청년…. 신년 기자회견에 모든 걸 담을 순 없다. 강조해야 할 도정을 선언하고 방향을 정하는 정도다. 그렇다면 1년 전 신년 회견은 어땠나. 경기북부특별자치도로 가득 채웠다. 설치 필요성 설명, 정부 방해 비판, 총선 공약 채택 캠페인…. 남북 분도는 1천400만명 모든 도민의 관심사다. 북부 주민 360만명의 관심은 더하다. 전문(全文)을 할애할 이유가 넉넉하다. 실천력 강한 김 지사다. 선언대로 2024년 도정은 북자도에 모아졌다. 그런 김 지사의 2025년 신년 화두가 ‘정부·정치’다. 이번에는 그 실천력이 걱정이다. ‘정부·정치’에 너무 많은 시간을 쓸까 봐. 이재명 전 경기지사도 대권 후보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도 대권 후보다. 여론 조사에서 최근 여야 1등이다. 둘 다 도지사 때부터 잠룡이었다. 그들의 경기지사 신년 회견이 언론에 남아 있다. 핵심 화두를 ‘도정’으로 잡고 있다. ‘정부·정치’는 질문으로 받거나 아예 생략했다. 돌아보면 극히 경기지사다운 회견이었다.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