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공공기관 이전 대표적 ‘탁상행정’

경기도 북부지역 발전을 위한 산하기관 이전 추진은 표면적으로 지역 균형 발전을 목표로 하지만 실제로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경기 북부지역의 경제적 활성화와 인프라 개선을 위한 노력은 필요한 과제다. 그러나 도 산하기관 이전이라는 방법론은 실질적 문제 해결보다는 단순한 행정적 ‘성과’를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공산이 크다. 산하기관 이전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은 제한적이다. 산하기관이 이전되더라도 그곳에 근무하는 인력의 대부분은 기존의 거주지를 고수하는 경우가 많다. 지역 내 소비와 고용 창출 효과는 미미하다. 또 산하기관의 이전이 곧바로 지역주민들에게 혜택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이전된 기관의 업무 성격이 해당 지역의 특성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주민들과의 상호작용이나 협력이 적을 수밖에 없다. 이는 기관의 존재가 지역사회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단지 건물만 이전하고 그 지역의 필요와 무관한 행정적 작업만을 이어간다면 이는 결국 ‘무늬만 지역 발전’에 그칠 소지가 있다. 경기도 북부지역의 발전을 위해서는 단순한 산하기관 이전보다도 지역에 특화된 산업 육성, 교통 인프라 개선, 교육 및 복지 수준 향상 등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추진되고 있는 산하기관 이전 정책은 이 같은 종합적 발전 계획과는 동떨어져 있다. 경기도가 계획대로 2028년까지 도 산하기관 북부 이전을 완료하겠다고 한다. 경기도 북부지역의 진정한 발전을 원한다면 산하기관 이전이라는 보여 주기식 행정보다는 지역주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정책적 대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천자춘추] 다중지능이론과 교육개혁

IQ(지능지수) 이론은 사람의 지능은 필기시험으로 측정할 수 있는 단일한 문제 해결 능력이며 저마다 타고나는 고정된 것이라고 설명해 왔다. 이는 개인의 노력이나 훌륭한 환경 속에서도 타고난 지능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관점이다. 지능은 선천적으로 주어진 범접할 수 없는 고유한 능력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관점은 지능이 실제 삶 속에서 창의성이나 문제 해결 능력을 평가해 주지 못하기 때문에 학교 졸업 후 사회에서의 성공을 예측하기는 어렵다. 또 지능검사가 평가하는 지적 능력의 범위는 매우 협소하다.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떻게 소통하며 협력할 수 있는지 측정하기에도 미흡하다. 특히 창의성과 예술성은 지능검사로 점수화하기 힘들다. 인지과학의 최신 연구들은 사람이 여러 종류의 지능을 갖고 있으며 IQ만으로는 모두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지능을 바라보는 또 다른 관점은 인간에게는 여러 갈래의 능력과 지능이 있고 환경과 훈련으로 이를 강화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지적 능력을 여덟 가지 형태로 구분한 하버드대 심리학과 하워드 가드너 교수의 다중지능이론이 대표적이다. 언어를 습득하고 구사하는 능력인 언어지능이 있고 숫자와 논리를 다루면서 기호 간 논리적 관계를 개념화하는 논리수학지능이 있다. 음악을 이해하고 분석하며 창작·연주하는 음악지능이 있고 공간을 구성하는 공간지능이 있다. 타인을 이해하고 상호작용하는 인간친화지능이 있으며 자기의 감정과 욕구를 이해하고 행동하는 자기성찰지능도 있다. 세상의 모든 사물을 구분하고 자연을 인식하는 자연지능이 있고 신체를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고 작품을 만들어내는 신체운동지능이 있다. 여덟 가지 영역의 지능은 생물학적으로는 동등하다. 또 각각의 지능은 독립적으로 뇌의 특정 부분과 관련돼 있으면서도 상호작용하며 복잡한 형태로 강화된다. 모든 사람이 여덟 가지 지능을 갖고 있지만 각 지능의 높낮이 분포는 개인마다 다르다. 각 지능은 그것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따로 존재하지만 서로 긴밀한 영향을 주고받는다. 여전히 우리 교육은 IQ 이론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수능이나 내신 등의 입시제도는 IQ에 기반한 문제로 시험을 치른다. 하지만 언어지능과 논리수학지능에만 의존해 획일적으로 인재를 선발하는 방식은 한계가 뚜렷하다. 축구 선수 손흥민의 활약상과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연주 실력을 IQ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영어·수학 성적이 우수한 정치인들보다 인간친화지능이 탁월한 인재들이 정치권에 더 많이 들어왔다면 좋은 세상이 오지 않았을까. 다중지능이론을 교육 현장에 적용하기 위한 많은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다. 다중지능이론을 통한 교육적 토대가 체계적으로 마련돼 아이들의 재능과 진로를 적절하게 찾아줄 수 있어야 한다. 기존의 낡은 잣대와 결별해야만 교육개혁이 가능하다.

[기고] 용인역삼도시개발 '다시 기본'으로 풀어야

2005년 시작된 용인역삼도시개발 사업. 자신의 땅임에도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매년 큰 폭으로 늘어나는 세금만 내 온 수백명의 조합원 속은 이미 탈대로 탄 상태. 무려 20년, 지역개발 정체 전국 1위라는 오명을 가진 용인역삼도시개발 사업은 과연 가능성이 있는가. 지금 어떻게 되고 있나. 용인시를 위해 지역개발 전문가로서 이 문제를 다시 살펴보기 시작한 것은 최근이었다. 이 사업의 직무대행자가 총회 개최를 위해 정비업체와 계약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와 관련된 세력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고 이 사업을 둘러싼 문제들이 또 다시 이슈화된다는 게 감지됐기 때문이다. 지금 조합원들은 얼마나 기대하고 있을까. 조합원들의 여론이 궁금했다. 의외로 내가 만난 조합원들의 반응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지난 수십년 실패했던 코스를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직무대행자는 다시 일상적 총회를 여는 것에만 급급하고 다시 슬금슬금 총회꾼들이 모여들면서 자기 세력의 유익 계산에 따라 이합집산을 하고 있는 것. 거기다 참으로 황당한 것은 작년 총회에서 불법이라고 법원의 판정을 받은 세력들이 또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때 공모, 동조라고 불러도 될 만큼 그들의 불법을 수수방관했던 용인시 관계자들도 거의 그대로인 상황이다. 그렇다. 나도 조합원들의 이러한 우려에 동의한다. 이대로 가면 이 사업은 또 실패할 수 밖에 없고 설사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땅 주인인 조합원들은 뒤로 밀리고 세몰이로 정권을 잡은 조합장과 지도부 그들만의 잔치로 끝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백 투 더 베이직(Back to the basics)’, 다시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조합은 조합원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조합장은 조합원의 이익을 위해 섬기는 사람이다. 이러한 ‘근본’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조합원을 위해 충성하겠다고 약속한 후보가 조합장만 되면 갑자기 돌변해 자기 이익만 추구하다가 또 엎어져온 것이 지금까지의 스토리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현재 이 근본이 왜곡되고 오염된 상황에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주인공은 조합원들 자신이다. 이제 말로만 해서는 안 된다. 현 제도에 대해 혁신적인 행동을 해야만 한다. 조합원들이 새로운 총회를 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총회에서, 정치적으로 조합장이 되려 하던 자들이 그 권력을 사용해 차지하려던 밥그릇을 조합원들이 결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게 뭐냐. 두말 할 것도 없이 체비지 매각의 결정이다. 수천억원을 만져볼 수 있게 하는 정책이기에 이제까지 모든 그룹이 자기 편 조합장을 세우고, 자기 편 인사들로 대의원들을 뽑아 결국 자기 그룹에 유리한 방향으로 밥그릇, 즉 체비지 매각을 추진하려 했던 것이다. 나는 20년 실패의 고리를 끊으려면 조합원들이 각성해 똘똘 뭉쳐 새로운 총회를 열고 조합원들이 그 총회에서 체비지 매각을 공개경쟁입찰로 정정당당하게 결정하기를 강력히 제안한다. 이렇게 항상 뒷전으로 밀리던 조합원들이 주인으로서의 자리를 찾으면 나머지는 다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이렇게 한다면 체비지 매각을 둘러싼 밥그룻 싸움으로 서로 물고 뜯느라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던 용인역삼도시개발 사업은 재개될 수 있다. 조합원들이 그 밥그릇 싸움의 근원을 일거에 제거했으니 용인시민들의 숙원사업이기도 한 용인역삼도시개발 사업이 빠르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경기만평] 제발 풍요로운 한가위를...

[사설] 이준석이 큰 정치로 성장할 기반은 동탄이다

초일회는 전직 민주당 의원 모임이다. 언제나처럼 언론은 눈앞의 선택을 묻는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냐, 김경수 경남도지사냐.’ 공개된 답은 ‘현재는 김동연도, 김경수도 아니다’다. ‘올바른 지도자를 통한 정치 개혁 추구’를 말한다. 재미 없는 이 답변이 사실은 답일 수 있다. 굳이 지금 선택해야 할 이유도 없어 보인다. 정치공학적으로도 이른 선택이 좋을 건 없을 듯하다. 다만, 초일회의 이념적 구획에 대한 정의는 묻고 답할 만하지 않을까 싶다. 지도자감을 폭넓게 보고 있다는 정도의 답이 나온다. 언론이 여기에 논리를 붙여 여러 가설을 낸다. 대체로 민주당 계열 인사들이 그 대상에 거론된다. 초일회 소속 한 관계자에게 가정을 전제로 질문을 했다. ‘정치적 상황이 주어진다면, 개혁신당 이준석도 포함되느냐.’ 지극히 사견임을 전제로 그가 답했다. “당연히 포함된다. 포럼 강연에 그를 초청할 수도 있다.” 이 의원은 국민의힘 당 대표 출신의 범여권 정치인이다. 사담치곤 여운이 있다. 이 의원은 최근 검찰로부터 무혐의 결정을 받았다. 성상납 의혹과 관련된 피고발 사건이다. 국민의힘 대표직에서 쫓겨난 사유였다. 고발인의 항고로 재검토 절차는 남아 있다. 하지만 12년 전 사건의 결론이 바뀔 가능성은 많지 않아 보인다. 그의 향후 정치 일정을 보는 눈이 많아졌다. 대권 주자로서의 중량감을 논하는 의견도 늘었다. 그의 정치적 자산은 여야를 아우르는 중도성이다. 앞서 초일회 인사의 ‘이준석 포함론’도 그런 측면일 것이다. 여기에 또 하나 중요한 건 지역이 바라보는 시각이다. 그의 정치적 둥지는 동탄(화성을)이다. 동탄은 GTX가 닿아 있는 도시다. 이 매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 중이다. 그런 만큼 속도에서 파생되는 불균형도 생긴다. 생산 기반 시설이 전무하다. 교육 등 생활 인프라도 부족하다. 엄밀히 교통만 좋은 ‘베드타운’으로 남아 있다. 이를 채워야 할 지역의 현안이 많다. 신생 정당의 후보자를 선택한 동탄 표심을 정치개혁으로만 봐서는 안 되는 이유다. 엊그제 본보 기자와 대담을 나눴다. 동탄의 미래와 자신의 역할을 설명했다. 서울로 보면 ‘GTX 종점 동탄’이지만 전국으로 보면 ‘2시간대 전국 중심 동탄’이라고 했다. 동탄을 중심으로 하는 경기 남부가 한국 산업의 중심이어야 한다고 했다. 동탄에 대한 그의 책임감을 읽을 수 있다. 아직은 어색하지만 ‘동탄 이준석’으로 가려는 노력도 보였다. 맞다. 이게 지역구 정치다. 큰 정치로 성장시키는 기반이고, 변함 없는 지지를 생성하는 근원이다.

[사설] 남양주·양주에 공공의료원, 환영하지만 과제도 많다

경기도가 동북부 권역에 설치하기로 약속한 공공의료원 입지를 남양주와 양주로 확정했다. 두 지역이 경합을 벌였는데, 의료원 설립 심의위원회가 두 곳 모두 선정 의견을 내 경기도가 이를 수용한 것이다. 남양주와 양주에 설립되는 의료원은 의료와 돌봄 서비스를 융합한 혁신형 공공병원으로 운영된다. 예비타당성조사 등 행정 절차를 거쳐 2033년 각각 300병상 이상 규모의 의료원으로 개원한다. 도가 의료원을 복수로 선정한 만큼 예산이 두 배 늘어난 3천억원(부지 매입비 제외)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는 동두천, 양평, 가평, 연천 등 4개 지역에는 ‘의료취약지 거점 의료기관’을 지정해 지원하기로 했다. 운영비와 시설장비 도입에 27억원 이상을 투입한다. 종합 의료시설 부족으로 동북부 주민들이 많은 불편을 겪어 왔는데 늦었지만 다행이다. 이곳 주민들은 가까운 종합병원에 가려면 최소 40분 이상 걸려 의료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 돌봄 기능까지 갖춘 공공의료원이 설립된다니 당연히 반기는 분위기다. 공공의료시설 부족은 사회적 불평등과 건강 격차를 심화시킨다. 때문에 낙후되고 열악한 곳에 공공의료시설을 설립, 저소득층이나 취약계층이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코로나19 장기화 때 정부의 대응 허점을 메운 것도 지역 공공의료기관들이다. 하지만 여러 가지 아쉬움과 과제가 남아 있다. 이곳에 의료원이 추진된다 해도 본격 진료까지 거의 10년은 기다려야 한다. 그때까지 의료공백을 메울 수 있는 방안은 없는 건지 안타깝다. 공공의료원과 관련해 그동안 제기됐던 문제점에 대한 해법도 나와야 한다. 현재 경기도의 6개 공공의료원은 경영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전담병원으로서 큰 역할을 하며 희생을 감수했지만, 이후 병원을 찾는 외래환자가 급감해 회복되지 않고 있다. 코로나로 인한 정부의 손실 지원도 없고, 경영난 타개를 위한 경기도의 해결책도 나오지 않고 있다. 경기도의료원 산하 6개 병원의 운영 정상화를 위해 대대적인 개혁이 시급하다. 이들 의료원의 누적 적자가 수백억원인 데다 의사가 부족하고 의료 역량 면에서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시설 또한 낡고 협소해 지역민들이 이용을 기피한다. 공공병원이 지역의료의 한 축을 담당해야 하는 건 맞다. 그러려면 의료 역량을 강화하고 시설도 보강해야 한다. 철저한 진단과 구조개혁으로 공공의료 시스템을 다시 구축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남양주와 양주의 공공의료원도 내실 있게 운영될 수 있다.

[시베리아·실크로드, 지구 반바퀴] 출발, 시베리아 초원으로

‘시계는 살 수 있지만 시간은 살 수 없다’는 금언이 있다. 삶의 과정에서 꼭 하고 싶은 일을 뒤로 미루지 말라는 뜻이다. 학창 시절부터 오랫동안 꿈꿔 왔던 소망이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몸으로 직접 체험하고 싶은 소망이다. 누군가는 늦었다고 할 수 있지만 나에겐 가장 이른 지금, 70세를 기념해 이를 실천한 여행기를 싣는다. 경기일보 독자께 가슴 설레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가닿았으면 한다. ■ 오지로 자동차 여행 2024년 7월2일 오후 3시 동해항 여행터미널에서 카페리호에 자동차를 싣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출발한다. 국제선 출발 3시간 전, 출국 체크인을 위해 12시까지 동해항에 도착해야 한다. 아침에 서울에서 자동차로 영동선 고속도로를 타고 강릉 방향으로 향한다. 장맛비가 출발할 때부터 계속 내린다. 평창, 대관령에 들어서면서 강한 비에 산안개까지 진하다. 자동차 앞 유리창 브러시가 쉼 없이 움직여 더욱 마음이 심란하다. 이번 장거리 여행에 동반자로 함께 가는 아내(미세스 송으로 부름)의 심기는 매우 불안한 기색이다. 이번 여행은 설렘, 즐거움보다 뭔지 모르게 걱정, 불안 등 무거운 기분이 짙게 깔려 있다. 유라시아 대륙 횡단 자동차 여행. 서쪽으로 계속 가면서 북쪽과 남쪽으로 오르내리는 장거리 여행이다. 이동해야 할 거리도 약 2만2천㎞다. 여행사조차 관광상품으로 팔지 않는 오지, 초원, 사막, 반사막, 스텝지역, 고산지대를 운전해 가는 것이다. 낭만적이기보다는 고행길이고 터프한 여행이다. 여행을 결정한 이후부터 걱정의 연속이다. 장거리 여행 도중 미지의 세계에서 부딪치게 될 예측 못 할 상황에 대한 불안감이다. 내 나이가 70세이고 미세스 송은 66세다. 나이가 드니 겁이 많아지는 모양이다. 함께 가기로 약속한 미세스 송의 불안감과 신경의 예민함, 수시로 자기는 빼고 나 혼자 떠나라는 하소연이 나를 더욱 힘들게 한다. 동해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도 아들들, 손자들, 친구들과 보내는 것이 훨씬 재미있다고 투덜댄다. ‘향후 나와의 여행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선언까지 한다. 불안감이 커질수록, 미세스 송의 반발이 커질수록 이번에 떠나지 않으면 영원히 못 가게 된다는 생각으로 못 들은 척 무시한다. ■ 유라시아 대륙 여행 코스 자동차 양쪽 벽에 우리가 갈 여행 코스를 나타내는 대형지도를 붙여 놨다. 함께 가는 일행이자 자동차를 선두에서 리드하는 현대장의 아이디어다. 학창 시절 친구들은 지겨워하는 한국지리, 세계지리 과목을 나는 좋아했다. 광대한 시베리아 초원, 유목민들이 살았던 사막, 스텝, 실크로드 유적, 카스피해 등 언젠가는 가보리라 생각만 했던 곳을 향해 드디어 출발한다. 통과하는 국가는 러시아, 몽골, 중국,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러시아 재입국, 조지아, 튀르키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서쪽 시베리아를 따라 바이칼호로 간다. 여기서 남쪽으로 내려와 몽골을 지나 중국으로 들어가는 코스다. 험하기로 소문난 고비사막, 타클라마칸사막, 카라쿰사막, 키질쿰사막을 통과해야 한다. 몽골고원, 파미르고원, 톈산고원, 아나톨리아고원 등 고산지대도 넘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 자동차 여행이 무척 힘든 나라다. 지구 반대편의 서유럽 국가는 국경 통과가 자유롭고 맘만 먹으면 자동차로 동유럽, 튀르키예, 러시아, 중앙아시아 국가를 갈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대륙으로 가는 길목을 북한이 가로막고 있다. 북한을 우회해 카페리에 자동차를 싣고 인천에서 중국 산둥반도로 가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은 자동차 여행을 금지하는 국제협약(제네바협약) 미가입국이다. 우리나라 관세청에서 중국으로 자동차 여행을 위한 승용차 반출 허가가 나지 않는다. 이에 불가피하게 러시아와 몽골을 경유, 중국의 네이멍구로 우회하기로 여행계획을 짰다. ■ 동해항에서 블라디보스토크 국제여객선 탑승 동해항에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까지는 거리로 900㎞, 운항 시간은 25시간이다. 일주일에 한 번만 왕복하는 국제선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으로 러시아로 들어가는 항공편이 중단됐기 때문에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배 편이 유일하다. 동해항 국제여객터미널에 도착하니 대다수 승객이 러시아인이다. 러시아 언어만이 대합실에서 시끄럽다. 키도 크고 몸도 뚱뚱한 사람들이 많다. 마치 어느 러시아 지역에 온 것 같다. 배에 싣고 갈 보따리가 많다. 상당수가 보따리상이거나 누군가의 부탁으로 짐을 가지고 가는 것 같다. 아침 출발할 때부터 내리던 빗줄기가 더욱 강해지고 계속 내린다. 배가 정시에 출발할지, 파도가 높으면 배 멀미는 어떨지, 당초보다 운항 시간이 훨씬 늘어날지 걱정이다. 여객선 예약이 늦은 관계로 선실은 10여명이 함께 쓰는 3등실이다. 러시아 사람도 몇 명 같은 방에 있다. 사람당 퇴색한 갈색 매트리스와 베개 하나씩 배정됐다. 꼭 설악산 등산객 산장처럼 매트리스가 촘촘하게 붙어 있다. 이러한 상태로 25시간 누워 갈 생각을 하니 한심하다. 밤중에 화장실에 가려면 누워 있는 옆 사람을 밟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출발 첫날부터 예상보다 매우 불편한 여정이다. 미세스 송은 말은 안 하지만 정말로 심란하다.

[지지대] ‘수원, 2024년 가을’

육사시험에 떨어진 청년이 어느 날 동갑내기 대학원생과 포장마차에서 만났다. 그리고 술잔을 부딪쳤다. 그 틈으로 책 외판원 사내가 끼어들었다. 그는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팔고 받은 돈을 다 써버리고 싶어했다. 그와 달갑지 않지만 함께 식사하고 헤어졌다. 김승옥 작가의 한 단편소설 줄거리다. 4·19와 5·16으로 이어진 우울했던 한국 사회를 그렸다. 암울했던 시절의 수채화였다. 당시 서울의 겉은 화려했지만 속살은 어두웠다. 부자와 가난뱅이가 제 삶을 사느라 바빴다. ‘서울, 1964년 겨울’이 그 작품의 제목이다. 그로부터 60년이 흘렀다. 이번에는 수원이다. 이곳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입양된 한 청년의 부모를 찾는 사연(경기일보 11일자 6면)이 안타깝다. 신해식(미국 이름 Ryan Waguespack·39)씨가 주인공이다. 가족을 찾기 위해 아버지의 나라를 밟았다. 40여년 만이다. 입양 당시 기록상 1985년 10월19일 태어나 두 살 되던 해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미국으로 입양됐다. 이름도 홀트아동복지회가 지어준 것으로 추정된다. 양부모 및 형제들과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내면서도 낳아 주신 부모에 대한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한국말을 몰라 용기도 필요했다. 의사 소통부터 쉽지 않아 해외입양인연대를 통해 가족을 찾을 방법을 문의했다. 혹시 어머니와 가족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입양기관도 찾았지만 친부모에 대한 단서는 발견하지 못 했다. 경기일보가 신씨의 가족을 찾는 여정을 함께하기로 했다. 수원 새빛민원실 베테랑 팀장들도 이날 수원지역 행정복지센터에 전단을 배포하는 등 흩어진 퍼즐 조각을 모으는 데 힘을 보탰다. 추석을 맞아 “엄마를 만나면 꼭 안아주고 싶다”는 그의 소원이 꼭 이뤄지길 기원한다. 김승옥 작가를 흉내 내 이 사연에 감히 제목을 붙여 본다. ‘수원, 2024년 가을’. 2024년 가을 수원의 담담한 자회상이다.

[경기만평] 생명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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