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가을 들녘을 가르며 화성시 궁평항으로 떠나는 자동차의 행렬이 평화롭다. 그러나 이 길은 한때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일제에 항거한 피로 얼룩진 독립항쟁의 길이었다. 1919년 3월28일은 사강 장날이었다. 따라서 인근 지역의 면민들은 자연스럽게 장터로 모여 들었다. 당시 관할 주재소는 3월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의 독립선언문 낭독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번져 가는 거족적 만세운동과 3월21일 동탄면의 만세운동, 3월26일 사강리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난 만세시위를 빌미 삼아 상점 문을 열지 못하게 했다. 그럼에도 송산·서신·마도면민 등 1천여명이 합류, 격렬한 만세 시위를 했으며 급기야 분노한 시위 군중들이 강경 진압하는 일본인 순사부장 노구치 고조(野口廣三)를 살해했다. 이후 독립만세운동은 향남 발안 장터와 장안, 우정면으로 빠르게 확산돼 시위 행렬은 2천500여명에 달했으며 일본 군경의 총칼에 격렬하게 맞섰다. 당시 체포된 애국선열들의 재판기록을 보면 ‘다음에 언급한 자들은 1919년 4월3일 수원군 장안면, 우정면내에서 조선독립운동에 가담하고 각 동리 사람 약 2천500명을 선동해 조선 독립만세를 불렀으며, 두 면사무소의 유리와 창문 및 서류상자, 책장, 의자 따위를 파괴하고, 그곳에 비치된 장부와 서류 따위에 불을 질러 태웠다. 또 화수리 경찰관 주재소에 불을 질러 전소시키고, 그곳에 근무하는 순사 천단풍태랑(川端豊太郞)을 살해한 범인을 인치하고 이에 보고 한다’로 돼 있어 단순한 독립만세 시위가 아니라 일제와 맞서 싸운 독립항쟁이었다. 화성시가 발간한 3·1운동사에 따르면 일본 군경들은 자국의 형사들이 살해되고 시위가 확산되자 보복의 일환으로 1919년 4월15일, 향남 발안장터 만세시위 사건 인근에 있는 제암리에서 15세 이상 성인 남자를 교회에 모이게 했다. 불참한 사람들을 강제로 불러 모아 교회당을 포위하고 창문을 통해 안으로 일제히 사격을 했다. 그런 다음 예배당에 짚더미를 넣어 석유를 끼얹고 불을 질렀다. 바람이 세게 불어 교회 아래쪽 집에 불이 옮겨 붙었고, 군경들은 위쪽 집에 불을 질렀다. 그로 인해 2명의 부인을 포함해 23명이 그곳에서 순국했다. 그 후 제암리 너머 고주리로 이동해 6명을 살해, 결국 29명이 순국했다. 잔악무도한 일제에 희생된 화성시 3·1운동사의 아픈 역사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화성시의 독립운동사는 다른 지역보다 저평가됐다. 이에 화성시장은 기존의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을 대대적으로 정비해 지난 4월15일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으로 확장 개관했다. 이런 가운데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경기도 독립기념관 건립‘ 추진 의사를 밝혔다. 9월26일에는 도담소(옛 도지사공관)에서 이종찬 광복회장, 김호동 광복회 경기도지부장 등 관련 인사들과 회동, 건립과 관련된 논의를 했다. 이와 관련해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서 다른 어느 지역보다 아픔과 상처, 그리고 큰 희생을 치른 화성시민들은 화성시장과 함께‘경기도 독립기념관이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성지(聖地)인 화성시에 건립되기를 고대(苦待)하고 있다.
인천의 ‘핫플레이스’인 인천 상상플랫폼. 수도권의 MZ세대 등 젊은층이 많이 찾는 인천의 대표적인 관광지다. 최근 상상플랫폼을 찾았더니 내부 널따란 공간에서는 인천의 로컬 브랜드가 모두 모인 제물포 웨이브마켓이 열리고 있었고, 상상플랫폼과 이어진 1883 개항광장에서 공연이 열린 탓에 많은 시민들로 북적였다. 내부에는 바다를 볼 수 있는 카페와 미술품 등이 걸린 뮤지엄도 있다. 이어 길 건너 차이나타운과 인천 개항 관련 각종 근대문화유산이 있는 골목, 그리고 닭강정 같은 각종 먹거리로 유명한 신포시장까지 인파로 가득했다. 가장 고무적인 것은 이곳을 찾은 시민들의 연령층이 매우 젊다는 것이다. 한때 인천의 대표적인 원도심이던 일대가 젊은층의 발길이 닿는다는 것이 생소하면서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이는 우선 경인국철(경인선·1호선)로 서울에서 곧장 올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으로 꼽힌다. 그리고 아기자기하면서도 예쁜 카페들이 많이 생기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핫플로 꼽힌다. 여기에 상상플랫폼에서는 각종 공연이 계속 열리고 있다. 여름에는 워터밤 행사가, 최근에도 유명 가수들이 참여하는 뮤직 페스티벌이 열리는 등 젊은이들의 축제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다만 항구인데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직접 바닷물을 보기가 쉽지 않다. 아직 항구가 운영하다 보니 바다 앞은 철조망 등으로 막혀 있고 대형 트럭들이 그 사이를 오간다. ‘항구도시’인데도 직접 항구를 코앞에서 보지 못하고, 바다내음이 잘 맡아지지 않는 것은 좀 아쉽다. 게다가 임시로 만들어진 무대 뒤편이 그대로 보여 이미지가 좋지 않다. 해마다 각종 행사가 10번 이상 열린다는데 왜 대형 무대 하나 없나 싶다. 그 무대로 더 많은 행사가 열려 일대는 더욱 활성화가 이뤄질 테고 돈 낭비는 줄고, 되레 무대 임대 수익도 나올 텐데. 인천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상상플랫폼 일대가 앞으로 더 인천의 핫플로, 아니 수도권의 핫플로, 대한민국의 핫플로 뜨길 기대해본다.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나이가 약 1천100살로 추정되며, 높이 42m, 뿌리 부분 둘레 15.2m다. 우리나라 은행나무 가운데 나이와 높이에 있어 최고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줄기 아래에 혹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나무는 통일신라 경순왕(재위 927∼935년)의 아들인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다가 심었다는 전설과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자라서 나무가 됐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조선 세종(재위 1418∼1450년) 때 당상관(정3품)이란 품계를 받을 만큼 중히 여겨져 오랜 세월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이며, 생물학적 자료로서도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되고 있다. 국가유산청 제공
지난해 2월 이천시의 한 제조업체에서 7명의 노동자가 트리클로로메탄이 함유된 유독성 세척제에 노출돼 독성간염 증상을 보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고는 단발적인 사건이 아니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에도 유사한 사고가 연이어 발생해 큰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이 같은 문제는 특정 시기나 지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해 6월에도 이천의 한 제조업체에서 친환경으로 홍보된 세척제를 사용하던 작업자가 자극성 피부염에 걸렸다. 무독성 친환경제라는 홍보에 속아 독성이 강한 1, 2-디클로로프로판을 사용한 경기 평택의 다른 업체도 있었다. 기업들은 그저 세척 성능이나 친환경이라는 마케팅 문구에만 의존해 제품을 변경하고, 결과적으로 근로자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사고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가 반복되는 원인 중 하나는 세척제 변경 시 독성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성능이나 친환경성에만 치중하는 경향이다. 독성물질을 간과하면 중대한 사고를 초래할 수 있다. 또 화학물질관리법 및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이하 화관법 및 화평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의 규정 차이가 혼란을 초래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1, 2-디클로로프로판의 경우 작년까지 화관법 및 화평법에서는 25% 이상 함유된 경우에만 유독물질로 분류했기 때문에 사업장에서는 25% 미만일 경우 이를 무독성 친환경 물질로 오인할 수 있다. 한편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이미 0.1% 이상 함유된 경우에도 특별관리물질로 지정하고 있다. 이처럼 법률 간 규제 기준의 차이와 사업장의 용어 이해 부족이 문제를 일으킨 사례다. 친환경이라는 홍보 문구에 대한 과도한 신뢰도 문제다. 친환경이라고 해서 유해성이 전혀 없다는 착각은 위험하다. 제품 변경 시 정확한 정보를 확보하고 검토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사고 예방을 위해 몇 가지 조치가 필요하다. 첫째, 세척제나 화학물질을 변경할 때는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통해 독성을 철저히 검토해야 한다. 둘째, 변경된 세척제에 대한 정보를 노동자에게 적시에 전달하고 그들이 적정한 보호구를 착용하도록 교육해야 한다. 셋째, 환기장치 설치 등 작업 환경 개선을 통한 독성물질 확산을 막아야 한다. 더 많은 정보는 안전보건공단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급성중독이 의심되는 경우 전국 근로자건강센터나 직업병안심센터를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세척제 변경을 고려 중이라면 반드시 MSDS를 확보하고 독성을 확인한 후 도입을 결정하자.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건군 76주년 국군의 날 시가행진이 있었다. ‘괴물 미사일’ 현무-5가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됐다. 지하 벙커를 파괴하는 대량 응징보복 수단이다. 탄두 중량이 8t에 달하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K9 자주포와 K2 전차도 한층 개량된 모습으로 참가했다. 압도적 우위를 자랑하는 공군 자산도 공개됐다. F-15K, F-35를 비롯해 최초의 한국형 전투기 KF-21이 함께했다. K-방산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국방부의 설명도 그랬다. 한국의 무기는 이제 한국 수출의 중심이다. LIG넥스원은 천궁, 비궁, 신궁, 현궁 등을 잇따라 생산해 왔다. 올해 1분기 수출이 작년 동기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K9 자주포는 세계 자주포 시장의 점유율 1위다. 지금까지 누적 수출액이 13조원에 달한다. 호주, 이집트, 인도 등 10개국이 고객이다. K2 전차는 2022년 폴란드와 1천대 규모의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이런 K-방산 행진이 세계에 생중계됐다. 흡사 K-방산만의 독자적인 엑스포였다. 여기에는 경기도민이 뿌듯해 할 얘기도 있다. K-방산의 연구자들이 경기도 재원이다. LIG넥스원의 연구 중심은 성남 분당이다. 판교하우스와 판교연구소가 위치해 있다. 현대 로템도 본사를 겸한 기술연구소가 의왕에 있다. 충남 당진의 공장을 가동시키는 두뇌 집단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도 최고의 기술 연구소인 판교 R&D 캠퍼스는 분당구 판교로에 있다. 세계와 경쟁하기 위한 연구자들의 노력이 눈물겹다. 그 뜨거운 열기가 우리 곁에 있다. 우리 경제는 안 그래도 어렵다. 반도체를 비롯해 수출 주력 산업들이 위기에 빠졌다. 자동차 등 일부 품목은 중국의 추격을 턱밑까지 허용했다. 수출 아니면 먹고살기 힘든 우리에게 닥친 크나큰 위기다. 이런 때 우리 수출을 떠받치는 효자가 K-방산이다. 주식 시장에 호흡을 유지시키는 것도 방산주다. 우리에게 방산은 현재와 미래다. 수출 시장에서 세계 10위다. 이제 목표는 5위 도약, 수출 30조원이다. 유럽이라는 버거운 상대와 맞서 있다. 방산 시장만의 특수성이 있다. 세계 시장에서의 판로 개척이 여의치 않다. 특히 우리에겐 미국과의 국제 관계가 늘 부담이다. 그런 측면에서 ‘국군의 날’은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다. 잠재적 수요국에 우리의 방산을 알릴 공개된 마당이다. 국익이 되는 방향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국군의 날은 올해로 76주년이다. 자주 국방에 머물던 우리 방산은 이제 세계 시장에 우뚝 섰다. 어느 정권이든 국방에서는 이견 없이 노력해온 결과다.
수도권 1기 신도시 재건축 ‘선도지구’ 지정 공모에 지역 내 아파트 단지들이 대거 뛰어들었다. 분당·일산·평촌·중동·산본 등 1기 신도시 162개 특별정비예정구역 중 61%에 해당하는 99개 구역이 제안서를 냈다. 선도지구 경쟁이 치열하다. 특별정비예정구역은 지자체가 정비기본계획을 통해 재건축이 필요한 단지 2∼4개를 묶어 지정해 놓은 곳이다. 선도지구 제안서를 제출한 구역의 가구 수는 15만3천가구로, 1기 신도시 전체 주택 수 29만가구의 53%에 이른다. 주택 수든, 정비구역 수든 1기 신도시 절반 이상이 선도지구를 희망하며 재건축 의사를 표한 것이다. 정부는 앞서 분당 8천가구, 일산 6천가구, 평촌·중동·산본 4천가구를 합쳐 총 2만6천가구를 선도지구로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신도시별로 1∼2개 구역을 추가(기준 물량의 50% 이내)할 수 있어 최대 3만9천가구까지도 지정이 가능하다. 이번에 선도지구 신청을 한 가구는 기준 물량 2만6천가구 대비 5.9배, 최대 물량 대비로는 3.9배 수준이다. 특히 분당의 선도지구 경쟁이 대단하다. 공모 대상인 특별정비예정구역 67곳 중 70%(47곳)가 참여했다. 평균 주민동의율이 90.7%로 과열 양상이다. 일산은 공모 대상 특별정비예정구역 47곳 중 22곳(47%)이 참여했다. 이곳 역시 평균 주민동의율이 84.3%에 이른다. 평촌도 19곳 중 9곳(47%)이 참여했고, 평균 동의율은 86.4%다. 중동이나 산본 역시 관심이 지대하다. 선도지구 선정 결과는 11월 발표된다. 이후 2026년 재건축의 마지막 관문으로 불리는 관리처분 계획 수립을 마치고, 2027년까지 첫 삽을 뜨겠다는 일정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으로는 변수가 많아 사업이 계획대로 추진될지 미지수다. 장밋빛 계획에 그칠 가능성도 크다. 가장 큰 변수는 공사비다. 공사비 급등으로 가구당 분담금이 증가하게 된다. 여기에 재건축으로 얻은 이익의 최대 50%까지 정부가 환수하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가 발목을 잡고 있다. 정부가 재초환을 폐지한다고 발표했으나 현재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용적률도 변수다. 정부는 3종 일반주거지역 용적률이 최고 450%까지 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지자체별 기준 용적률은 315∼350%로 발표됐다. 더 높은 용적률을 받으려면 더 많은 기부채납을 해야 한다. 선도지구 지정 이후 여러 단지가 통합 재건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공사비 및 공공 기여 완화, 재초환 폐지 등 선행조치 없는 재건축사업은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다.
최근 정치권에서 계엄 논란이 다시 불거지며 국민의 불안이 증폭됐다. 야권은 정부의 계엄 준비설을 제기하며 강하게 공세를 펼쳤고 이로 인해 여야 간의 논란이 격화됐다. 그러나 헌법과 법률에 비춰 볼 때 실제로 계엄령이 발동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그렇다면 이러한 논란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공포와 불안이 정치 지도자들에게 쉽게 악용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대중의 불안은 권력 강화를 위한 유력한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도 미국의 ‘적색 공포’나 냉전 시대의 ‘매카시즘’은 과도한 공포를 부추겨 대중을 통제하고 정치적 권력을 강화하는 데 활용된 대표적인 사례다. 이번 계엄 논란도 이러한 정치적·심리적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계엄이라는 단어는 한국 현대사에서 군사 독재와 민주화운동을 떠올리게 하는 강력한 상징이다. 이는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 치열하게 싸워온 국민들의 아픈 기억을 되살리며, 과거의 억압적 통치와 투쟁의 역사를 상기시킨다. 야권은 이러한 상징성과 기억을 전략적으로 활용해 국민의 두려움을 자극하고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려는 의도로 비친다. 그러나 이러한 계엄 논란은 장기적으로는 국민의 신뢰를 잃고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를 훼손할 위험이 있다. 정치적 선동은 민주주의의 건강한 발전을 저해하고 국민의 불신을 심화시킬 수 있는 중대한 문제이므로 신중하게 다뤄져야 한다. 우리 헌법과 법률은 계엄령 발동 절차를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 국무회의 의결과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권 등 다양한 견제 장치가 마련돼 있어 계엄령은 매우 제한된 상황에서만 발동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엄 음모설이 여전히 정치적 선동의 도구로 악용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유감스럽다. 프롬이 지적했듯이 정치적 선동은 국민의 비판적 사고를 마비시키고 권위주의로의 회귀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이러한 점에서 근거 없는 계엄령 소문을 남용해 국민의 두려움을 자극하는 것은 극히 무모한 정치적 전략이다. 하지만 야권만 비판할 수는 없다. 정부 또한 국민의 불안을 해소하는 데 필요한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했다. 계엄 논란이 확산되는 동안 정부는 명확한 해명이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해 오히려 불안을 증폭시켰다. 정부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불안을 잠재울 책임이 있다. 그렇지 않다면 계속되는 정치적 공방의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정치의 중심은 언제나 민심이어야 한다. 어쩌면 이번 논란은 단순한 정치적 충돌을 넘어 한국 정치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수 있다. 현실 정치에서 여야 간의 정치적 갈등은 불가피할 수 있지만 그 해결 방식은 성숙한 자유 체제의 원칙에 기반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우려되는 점은 여야가 국가 안보라는 중대한 문제를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의 긴박한 안보 상황을 외면하고 이를 정치적 논쟁의 도구로 삼는 것은 결코 책임을 회피할 수 없는 행위다. 안보는 추상적이고 공허한 논쟁의 소재가 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양극화와 음모론의 확산이다. 양극화는 대화와 타협의 가능성을 저해하며 국민 간의 불신과 혐오를 더욱 심화시킨다. 또 음모론은 국민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들며 민주주의의 기능을 저해하는 독으로 작용한다. 결국 민주주의는 진실과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현재 한국 정치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근거 없는 두려움을 조장하는 선동이 아니라 국민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는 진정성이다. 안보가 정치적 이익을 위한 수단이 아닌, 국민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기능할 때 한국의 민주주의는 더욱 강건해질 것이다. 이제 정치권은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책임 있는 정치를 실현해야 한다. 허상에 기대어 논란을 이어간다면 우리 사회의 민주적 토대는 더 큰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근데 왜 그렇게 세대를 나누는 거야? 애플도 아니고 1세대, 2세대..” 어느 가수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한 말이다. 케이팝 ‘세대’론에 대해 기기도 아닌데 그렇게 구분하는 것이 큰 의미가 있느냐는 말이다. 그에 대한 댓글들 또한 다양하다. ‘4세대가 신인인데 무슨 5세대인지, 5세대를 누가 열었는지 아무도 모르는데, 5세대는 뭐임? 누군가 신박한 걸 해야 5세대가 될까말까 인데..’ 케이팝(K-POP) 시장에는 암묵적으로 많은 이들이 동의하고 있는 이른바 ‘세대론’이 있다. 2024년 현재 무려 ‘5세대’ 아이돌까지 등장했다. MZ세대라 불리는 나는 어렸을 적 가수 ‘H.O.T’의 팬클럽이었다. 이들이 ‘1세대 아이돌’이라는 것에 반박할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이때부터 K-POP 아이돌 산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들의 홍보·소통의 매체는 전통적인 미디어였다.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의 이야기다. 이후로 확연한 구분점들을 보이며 아이돌의 ‘세대’가 교체됐다. 2004년 동방신기가 데뷔하고, 원더걸스, 빅뱅의 히트에 이어 2009년 소녀시대의 ‘Gee’에 이르면서 이들은 전 세계에 K-POP을 알렸다. 서구권까지 K-POP의 시장 환경과 팬덤이 확장되었다. 유튜브와 인터넷 블로그, 웹진을 비롯한 새로운 매체가 K-POP을 글로벌 시장에 소개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었다. ‘2세대 아이돌’이 세계로 나아가는 로켓이 됐다.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포문으로 ‘3세대 아이돌’이 글로벌, 팬덤 산업의 본격화를 일궈냈다. ‘EXO’, ‘블랙핑크’, 수많은 신기록을 남긴 ‘BTS’까지. 이들은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강력한 팬덤의 지원을 받아 영미권 팝 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K-POP이 한류를 이끄는 선두에 선 것이다. 빌보드 차트 1위는 더 이상 우리에게 놀라운 일도 아니다. ‘4세대 아이돌’은 2020년대 들어 데뷔 즉시 글로벌 스타로 등극하기에 이르렀다. 르세라핌, 뉴진스, 아이브, 엔하이픈,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등이 그들이라 하겠다. 이 당시 유행한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한 데뷔의 형태는 해외에서 K-POP이 현지화하는 모델로 발전되고 있다. 2024년. 갑자기 ‘5세대 아이돌’이 출범했다. ‘5세대 청량돌’, ‘5세대 모델돌’ 처럼 수식하는 말도 각양각색이다. 아일릿, 투어스, 라이즈, 제로베이스원 등 2020년대 중반 등장한 그들은 국내·외로 우수한 성적을 보이고 있고, 팬덤 문화 또한 복합적으로 확대되었다고 말한다. 알파세대의 본격적 팬덤 유입, 숏폼의 생산, AR·VR의 성과 또한 그들의 특징. ‘5세대’ 아이돌이 과연 ‘4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변화를 보이고 있는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석연치 않다. 오히려 ‘5세대 아이돌’에서 이전 세대의 모습이 오버랩되기도 한다. 이전 세대에 비해 괄목할 만한 성과가 있다고 특징짓기에도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 1~2년만의 세대교체이다. 자칫 작위적인 느낌이다. 이 5세대론이 과연 문화 생산자와 소비자가 주체가 된 것인지, 오히려 그들이 마케팅을 위해 수단으로서 소모되고 있는 현실은 아닐는지. K-POP의 정점, K-POP의 위기론이 회자되는 요즘, 이는 ‘5세대’ 아이돌이 이렇다 할 큰 특징과 변화를 불러오지 못하는 것으로도 증명되는 것은 아닐까? 이들이 앞선 세대들보다 대단한 성과를 이루었다면, 분명 이후 K-POP 시장은 한층 더 확장, 발전할 것이다. 좋건 싫건 지난 시대는 물러가고 새로운 시대는 온다. 그러나 인위적인 세대 구분은 언젠가는 사라지게 되어있다.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5세대’라는 이름을 당당히 부여받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 그런 변화가 아니라면 대중은 이름뿐인 ‘5세대’를 인정하는데 야박할 것이다.
심심찮다. 귀를 쫑긋한 채 귀를 기울이면서 걸어가는 이들을 보는 게 말이다. 그렇지 않은 행인을 보는 게 신기할 정도다. 노이즈 캔슬링(Noise Cancelling)이다. 소리는 일정한 형태를 갖는 파동이다. 이와 반대되는 흔들림을 같은 시간에 만들면 서로 소멸된다. 상쇄 간섭이다. 이 같은 특성을 이용해 제거하려는 소음의 진폭 등을 파악하고 이와 상반되는 파장을 연산해 인위적으로 발생시켜 소음을 제거한다. 주로 음향기기를 통한 음악 감상이나 모니터링 시 유입되는 생활 소음을 차단하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원래는 제트엔진 소음으로 인한 여객기 승객들과 승무원의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개발됐다. 기기에 내장된 소음조절기로 외부의 시끄러운 소리를 감소시켜 소란스러운 공간에서 쾌적하게 노래를 들을 수도 있다. 최근 무선 이어폰·헤드폰 등이 대중화되면서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보행 중 안전사고 위험을 증가시키고 있다는 지적(본보 9월30일자 6면)이 나왔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에 따르면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탑재된 기기를 착용하고 걸을 때 무단횡단 발생 비율은 31%, 타인과 충돌이 발생할 비율은 23.5%로 나타났다. 스마트폰을 보며 걷는 경우보다 각각 16.9%포인트, 0.4%포인트 높다. 지난해 11월 도로교통공단이 노이즈 캔슬링 기능의 주변 상황 인지방해 효과를 실험한 결과도 마찬가지다. 해당 기능을 켜면 엔진소리가 큰 경유차도 0.8m 뒤에 와야 보행자가 알아차렸다. 해당 기능을 끄면 약 4.6m, 주변 음을 허용하면 약 8.7m 등으로 인지거리가 늘어났다. 노이즈 캔슬링 기능은 외부로부터 청각을 완전히 차단한다.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면 여러가지 위험한 상황에 부딪친다. 최근 우리 사회 뉴스 소비 성향도 이 같은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반갑지 않다. 극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심쩍지 않은 건강한 사회 구축은 요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