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촘촘한 생명의 그물망

세계경제포럼이 작성한 2024 글로벌 리스크 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10년 이내 최대 사업 리스크로 기상 이변, 급격한 지구 시스템 변화, 생물다양성 손실, 천연자원 부족 등 자연환경 위험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이상이 자연과 자연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의존하고 있다고 분석했으며 만약 생물다양성 손실로 생태계가 붕괴되면 복합적인 사회경제적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제계에서도 민감하게 반응할 만큼 생물다양성 위기는 심각해지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국제사회도 2022년 말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를 채택해 보호지역 30% 지정 목표를 설정했다. 이에 따라 정부도 2023년 국가 생물다양성 전략을 수립했다. 아쉽게도 아직 인천시는 조례 제정이나 생물다양성 전략 수립 계획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행히 부평에서 먼저 생물다양성 증진을 위한 걸음을 시작했다. 얼마 전 정예지 부평구의원이 ‘멸종위기 맹꽁이 등 야생생물 보호 및 생물다양성 증진 조례안’ 제정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생물다양성의 중요성과 위기 등 국제, 국내 흐름을 살펴보고 부평구 자연환경 현황 및 생물다양성 증진을 위한 과제 제안이 있었다. 부평에서 양서류 모니터링, 하천 보호활동을 하는 시민들도 참석해 다양한 의견을 개진했다. 부평은 원적산, 만월산으로 이어지는 산림이 있고 부평나비공원, 부평공원 등 공원이 위치해 있다. 넓은 면적은 아니지만 논습지가 남아 있으며 도심 속 하천이 흐른다. 이 생태 공간에 맹꽁이, 금개구리, 두꺼비, 도롱뇽 등 양서류와 반딧불이 등 곤충, 새들이 기대어 살아간다. 더욱이 굴포천 일부 구간이 복원 중이고 부평미군기지도 공원 조성을 앞두고 있다. 더 많은 생태공간이 조성되고 생물다양성을 증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생물다양성 증진 정책 패러다임이 정부 주도에서 정부와 지역, 기업, 민간으로 전환된 만큼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역사회와 함께하며 공감대를 형성할 때 활동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촘촘히 짜인 그물망처럼 연결돼 있어 서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물망에 구멍이 생기면 저항력이 약해지고 균형이 무너진다. 인류도 위태로워진다. 생명의 그물망을 촘촘히 유지할 수 있도록 지역에서의 실천이 필요하다. 부평구의 생물다양성 조례 제정을 시작으로 인천의 생명 그물망이 더욱 촘촘해지길 바란다.

[이슈&경제] 기준금리 피벗, 공은 다시 부동산시장으로

지난 11일 한국은행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위원 7명 중 6명의 동의로 드디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했다. 2021년 8월 저금리에서 통화 긴축으로 전환한 지 3년2개월 만에 통화 완화로 돌아선 것이다. 본격적인 피벗(통화정책 기조 전환)의 시작에 시동을 걸었다. 마지막 기준금리 인하가 2020년 5월이었으니 금리 인하만 보면 4년5개월 만이다. 기준금리 인하가 불안한 수도권 집값과 가계부채를 자극할 우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은행이 금리 인하를 단행한 이유는 그만큼 경기 침체, 성장 부진이 더 문제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금통위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성장 전망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긴축 완화의 필요성이 커졌다”고 금리 인하의 배경을 설명했다. 사실 경기 침체가 하루이틀 일도 아니고 계속 기준금리 인하의 필요성은 제기됐다. 그런데도 그동안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하하는 용기를 내지 못했던 이유는 미국의 고금리, 서울 집값 상승, 가계부채 증가 세 가지 악재가 발목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과 기준금리 격차가 2%포인트나 벌어진 상태에서 한국은행이 추가로 기준금리를 인하할 경우 자금 유출 가능성이 커지게 되는데 다행히 지난 9월 미국이 기준금리를 빅컷(0.5%포인트 인하)하면서 한미 기준금리 격차가 줄어들어 한국은행의 통화 정책에 숨통을 터 줬다. 무엇보다 5월부터 가파르던 서울 집값 상승세와 가계부채 증가세가 추석 이후 한풀 꺾이면서 한국은행이 생각하는 기준금리 인하의 조건이 충족됐다. 한국부동산원 서울 주간매매가격지수 변동률을 보면 8월 0.32%까지 올라갔다가 10월 들어 0.10%까지 상승률이 줄어들었으며 7월 8천건이 넘었던 서울 아파트 거래량 역시 8월 6천건을 간신히 넘겼고 9월은 4천건대에 머물 것으로 예상이 될 정도로 거래량도 크게 감소했다. 이 덕분에 5대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10월4일 기준 9월 대비 1조1천307조원 감소했다. 기다리던 기준금리가 인하되면서 이제 공은 다시 부동산시장으로 넘어왔다. 2021까지 거침없이 오르던 집값이 2022년 금리 인상으로 꺾였기 때문에 다시 금리가 내리면 집값이 올라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시장에 팽배해 있었다. 과연 기준금리 인하가 다시 집값을 밀어 올릴 수 있을까. 먼저 과거로 돌아가 2000년 이후 미국이 기준금리 인하로 방향을 전환했던 세 번의 금리 인하기에 한국 증시와 집값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살펴보자. 2000년 12월부터 2003년 6월까지 정보기술(IT) 버블 붕괴 시절 미국의 기준금리가 6.5%에서 1.0%로 내려오는 동안 우리나라 코스피는 504에서 669로 올랐고 서울 아파트 가격은 2022년 1월 가격을 100으로 봤을 때 매매가격지수 기준으로 24에서 39.2로 올랐다. 2007년 9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글로벌 금융위기 시절 미국의 기준금리가 5.25%에서 0.25%로 인하하는 동안 우리나라 코스피는 1,946에서 1,124로 큰 폭으로 떨어졌으며 서울 아파트 가격은 56.9에서 59.2로 소폭 올랐다. 2020년 3월에서 2022년 3월까지 코로나 시절 미국의 기준금리가 1.25%에서 0.25%로 내려가는 동안 우리나라 코스피는 1,754에서 2,757로 크게 올랐고 서울 아파트는 77.3에서 100.1로 역시 크게 상승했다. 2000년 이후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기 세 번 중 증시는 두 번, 서울 아파트 가격은 세 번 모두 올랐다. 물론 과거에 그렇다고 해서 지금도 똑같이 상승한다는 보장은 없다. 아파트 가격이 금리 하나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고 공급 물량, 부동산 정책, 주택시장 분위기, 소득 대비 집값 저평가 유무 등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큰맘 먹고 기준금리를 인하한 한국은행은 대외적인 큰 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 올해 말까지는 3.25% 기준금리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서울 집값 자극을 최소화해 가계부채 증가를 억제해야 하는 한국은행이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추가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시중은행 창구지도를 통해 대출 규제를 더욱 강화해 서울 집값 상승을 최대한 누르려 할 것이다. 미국 역시 11월 대선을 앞두고 추가 기준금리 인하는 쉽지 않을 것이다. 예상처럼 올해 말까지 추가 금리 인하 없이 3.25%인 현재의 기준금리가 유지된다면 0.25%포인트 기준금리 인하는 이미 시장에서 예상했고 일정 부분 선반영된 부분도 있으며 대출 규제도 시행되고 있어 실제 대출금리는 내려가지 않을 것 같다. 시장의 수요자들이 금리 인하 효과를 체감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에 단기 급등에 대한 피로감까지 맞물려 올해 말까지는 서울 집값이 자극을 받아 다시 상승 거래가 크게 늘어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이런 불안한 안정은 내년으로 넘어가면 달라질 수 있다. 새해가 돼 영업실적이 급한 시중은행이 계속 정부의 창구지도를 따라 올해와 같은 강한 대출 규제를 유지할지는 미지수다. 추가 금리 인하 기대감과 서울 입주 물량 부족, 전셋값 상승 등 상승 압력이 여전한 상황에서 버티는 집주인들보다 집을 사려는 매수자들이 더 불안해하는 상황이어서 예상치 못한 자극에 선호도가 높은 지역의 인기 아파트는 다시 들썩일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물론 내년까지 추가로 기준금리를 내려도 미국은 3% 중반, 한국은 2% 중반의 중금리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아 코로나 시절처럼 저금리의 폭발적인 유동성 증가로 이어지기는 어렵고 상승장이 아닌 아직은 등락을 거듭하는 조정구간을 통과하는 상황에서 소득 대비 여전히 높은 집값을 전국의 매수자들이 따라가기는 어렵기 때문에 올해처럼 선호 지역 인기 단지 위주로 수요가 몰리는 양극화 현상은 당분간 부동산시장을 관통하는 트렌드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

[아침을 열면서] 우리말과 우리글을 사랑하세요

20여년 전, 국내 유명 어학당에 다니던 외국인들에게 우리말 가운데 그 뜻을 제대로 알기 전까지 가장 예쁘다고 생각한 낱말이 무엇인지 들었던 적이 있다. 여러 답변 중 지금까지도 확실하게 기억하는 건 ‘옷’과 ‘물집’이다. 옷은 사람이 땅에 발을 딛고 서서 두 팔을 벌린 것 같은 모양 자체가 재미있고 환영한다는 느낌이 들어 좋다고 했다. 듣고 보니 그럴듯해 그 이후 옷이라는 글자를 쓸 때마다 옷이 나를 반기는 기분이 들어 혼자 웃곤 했다. 물집은 꽤 의외였다. 뜨거운 것에 데거나 벌레에 물려 피부가 부풀어 오르면서 생기는, 쓰라리고 아픈 느낌의 물집이 그들에겐 전혀 다른 이미지였다. ‘물’과 ‘집’의 뜻을 알고 두 낱말을 연결해 투명하고 동그란 물방울 모양의 집을 떠올린 것이다. 그들이 물집의 제 뜻을 모른 상태에서 혹시라도 피부 상처인 물집을 매개로 나와 함께 대화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아마 서로 엉뚱한 이야기만 나누는 동상이몽이 벌어졌을 것이다. 말과 글로 소통하려면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정확하게 아는 것뿐만 아니라 제대로 잘 쓸 수 있어야 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느꼈던 경험이었다. 올해 초 콘텐츠 개발 회의 중에 수석연구원이 요즘 문해력 저하는 비단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꺼냈다. 초등 4학년 첫째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알림장 문구 중에 ‘중식’이라고 써오던 걸 ‘중식(점심식사)’으로 표기한다든지 괄호 안에 따로 낱말 뜻풀이가 달리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단다. 아동이든 성인이든 사회 전반적으로 문해력과 독서력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음은 1990년대 중반부터 줄곧 인지하고 있던 터라 새삼스럽지 않았으나 자세한 사례들을 듣고 보니 흘려들을 일이 아니었다. 급식 메뉴를 왜 중식(중국 음식)으로만 제공하냐며 항의하는 학부모가 있다는 뉴스 기사도 봤으나 실제로 그런 일이 필자 주변에서도 일어나고 있음을 확인하니 여간 걱정스러운 게 아니었다. 문해력 저하 문제는 단순히 낱말의 뜻을 알고 쓰는 차원이 아니라 소통 부재 현상과 이어지고 부정적 사회 문제로도 비화될 여지가 있기에 가볍게 여길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독서교육을 전공했고 30년 가까이 독서 현장에 종사해 왔기에 문해력 저하 문제를 단시간에 해결해 줄 방안이 무엇인지 알려 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았다. 전문가라고 해서 ‘단번에’ 문해력을 향상시킬 방법이 있다고 말하긴 어렵다. 문해력은 보편적 언어 교육 외에도 학습자의 언어 감수성과 개별 특성의 영향을 받는 데다 시간과 노력과 경험이 켜켜이 쌓여야 길러지기 때문이다. 문해력 전문 교육을 받으면 실력이 나아지겠지만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기에 쉬운 선택지는 아니다. 그래서 누구나 일상에서 실천 가능한 문해력 향상 비법을 하나 알려주고자 한다. 평소에 잘 듣고 깊이 생각한 후 정돈해 말하며 다양한 글을 제대로 읽고 짧은 글이라도 꾸준하게 쓰는 습관이 바로 그것이다. 이 또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문해력 문제가 심각하게 발생한 후에 전문적 교정을 받아야 하는 수고로움에 비한다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사람은 말과 글에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담아 표현하며 다른 이와 소통하고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문화를 전수한다. 생각과 마음이 있다 해도 이를 표현할 만한 말과 글이 없었다면 인류 문화가 이렇게까지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바벨탑 시절부터 인류에게 수천개의 말이 있어 왔으나 문자는 몇 백개뿐이었고 현재 일상에서 쓰이는 것은 한글을 포함해 겨우 60여개뿐이라고 한다. 고유어로 말하고 듣고 고유의 문자로 읽고 쓸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문화의 힘이고 자부심을 가질 만한 일이다. 한글날이 있는 10월의 어느 저녁, 멀리 스웨덴으로부터 우리 말과 글로 창작하는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낭보가 전해졌다. 기쁜 마음과 함께 최근 대두되는 문해력 저하 현상의 심각성이 떠올랐다. 우리 말과 글을 이해하지 못하는 현상이 점점 심해져 전 세계인이 공감하는 우리 문학작품을 정작 우리가 알지 못하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이런 우려가 단지 기우이길 바라며 평소에 잘 듣고 깊이 생각한 후 정돈해 말하며 다양한 글을 제대로 읽고 짧은 글이라도 꾸준히 써보기를 권한다.

[경기만평] 허풍선일까⋯?

[사설] K-컬처밸리 특위, 김동연 지사는 증인이다

경기도의회 K–컬처밸리 특위가 산으로 가고 있다. ‘진실’이 아닌 ‘증인’을 두고 정쟁이 벌어지고 있다. 김동연 지사 채택 문제로 여야가 갈등했다. 국민의힘이 요구하는데 민주당이 반대한다. 급기야 전직 도지사들이 무더기로 거명되는 상황에 왔다. 국민의힘이 ‘이재명 전 지사를 포함해야 한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이 “그렇다면 윤석열 대통령, 김문수 장관, 남경필 전 지사, 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출석시켜야 한다”며 반박했다. 서로 막 던지는 건가. 이재명 대표 소환의 정당성이 있을까. 2020년 사업계획 변경 동의에 따른 합의서가 체결됐다. 도가 CJ의 사업 중단을 알고도 맺었다고 국민의힘이 주장한다. 글쎄다. 이 사실과 2024년 협약 해제가 직접 관계가 있는지 의문이다.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이 대표는 당 대표이자 차기 대권 후보다. 경기도의회 특위에 출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물며 협약 해제 당사자인 김 현 지사의 증인 채택도 확정된 바 없는 상태다. 서로 알면서 하는 정쟁일까. 경기도민이, 그리고 고양시민이 특위에 원하는 게 있다. 밝혀 주기를 기대하는 실체적 진실이다. 해제 결정의 사유와 정당성, 해제를 결정한 실제 당사자, 검토했다는 법률 내용, 추후 계획의 내용과 라임라인이다. 경기도가 답변해야 할 일이다. CJ 라이브를 불러 물어야 할 부분도 있다. 해제가 부당하다는 근거, 사업 진행 의지 증명, 향후 대응 방향 등이다. 결국 실무부터 ‘상향식 토끼몰이 조사’가 필요한 사안이다. 이미 진행했더라도 촉박하다. 난잡하게 벌여 놓을 일 아니다. 필요한 증인은 김 지사다. 사업 기간 8년, 투자 사업비 2조원, 경기 북부 프로젝트다. 일개 도청 간부가 백지화를 밀어붙일 일 아니다. 도지사의 의중, 지시, 결정 등이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향후 계획에 대한 청사진도 그렇다. 원형 유지, 공영개발, 민간 참여 등이 공개됐다. 이를 직접 언급한 것이 김 지사다. 특위에 출석해 이 부분을 확인하고 보충해야 한다. 이는 경기도의회에 대해 경기도지사가 갖는 의무다. 특위의 중심은 국민의힘이다. 따라서 정쟁 지적의 상당 부분도 국민의힘에 있다. 다만 민주당이 성찰해야 할 자유롭지 못할 역사도 있다. 2017년 도의회 민주당이 주도했던 특위가 있다. K¯컬처밸리 특혜 의혹을 파헤치겠다고 시작했다. 박근혜·김문수·남경필을 그때 거론했다. 확인한 비위는 없었다. 그게 1차 공사 지연의 원인이었다. CJ 측이 그렇게 증언하고 있다. 민주당이 이번에 성실히 임해야 하는 이유다. 여야 없이 특위에 충실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고.

[사설] 마약중독자 급증하는데 치료·재활 손 놓고 있나

우리나라는 더 이상 마약 청정국이 아니다. SNS 등을 통해 마약 구입이 쉬워지면서 10~20대의 마약 투약도 크게 늘었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손쉽게 마약을 살 수 있으니 학생, 직장인, 주부 등을 가리지 않고 퍼지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민주당 장종태 의원이 경찰청, 보건복지부 등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마약류 검거 인원은 2021년 1만626명, 2022년 1만2천387명, 2023년 1만7천817명 등 해마다 증가 추세다. 가장 많은 지역은 경기도다. 2021년 2천819명, 2022년 3천167명, 지난해 4천235명 등 연평균 3천185명이다. 이어 서울(연평균 2천854명), 인천(1천61명) 순이다. 마약류 사범 2명 중 1명은 수도권에서 적발되는 것이다. 마약 중독자가 급증하고 있지만 치료 등을 위한 재활 시설과 프로그램은 크게 부족하다. 2022년 자료에 따르면 치료받은 마약 중독자는 24만명의 0.3%인 721명에 불과했다. 중독자들이 치료를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는 실정이다. 전국에 마약 치료 병원을 수십 곳 지정했지만 예산과 의료진 부족으로 대부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한다. 마약사범의 절반이 재범이다. 마약류의 중독성과 의존성이 치료되지 않아서다. 전국의 마약류 재범 인원은 2021년 5천357명(재범률 50.4%), 2022년 6천178명(49.9%), 지난해 8천821명(49.5%) 규모다.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마약류 예방·근절을 위한 대책을 쏟아냈다. 하지만 실효성은 의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마약류 관리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마약류 중독자 치료보호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6월 기준 전국에 32개가 있다. 이곳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169명과 정신건강전문요원 232명이 함께한다. 전국 치료보호기관의 34.3%(11개)는 수도권에 있다. 전문의 80명(47.3%)과 전문요원 105명(45.2%)이 몸담고 있다. 마약류 중독자 치료 인프라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지만 상당수 기관의 실적이 전혀 없다. 인천참사랑병원만 지난 1~6월 실적이 205명으로 전국 1위다. 서울은 2개의 치료보호기관에서 11명을 치료했다. 경기도는 7곳 치료보호기관의 실적이 없다. 마약류 중독자들이 자발적으로 병원을 찾지 않는 데다 의료기관들도 환자를 적극 유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약류 중독자의 치료보호 예산은 2019년 2억4천만원에서 지난해 17억6천800만원까지 급증했는데 효과가 없다니 문제가 많다. 마약류 사범의 치료·재활·교육 정책을 꼼꼼히 점검하고 근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시베리아·실크로드, 지구 반바퀴] 연해주의 독립운동가, 기억해야 할 사람들

■ 블라디보스토크 세관 통과하기 공항 세관은 익숙하지만 항구 세관인 해관(海關) 경험은 흔치 않다. 2천년 전 로마 시대부터 항구에 세관을 설치하고 수입품에 관세를 징수했다. 관세(關稅)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세금이다. 우리 일행은 여객선에서 가장 늦게 하선했다. 일행 중 한 명의 가방이 없어져 부두에 흩어져 있는 여러 짐가방을 뒤져 어렵게 찾았다. 문제는 사람과 짐가방이 아니라 자동차 통과였다. 통관 전문업자에게 위임했지만 최소한 5일이 걸린다고 했다. 러시아 세관 공무원에게 항의할 수도 없다. 자동차 여행에서 감수해야 할 기다림과 체념이다. 향후 열 번의 육상 국경의 세관 통과가 미리 걱정된다. 러시아 구간 운전에 따른 자동차보험 가입, 영어 표시 국제번호판 부착 등 준비를 병행한다. 다행인 점은 공통 경비를 보관 중인 일행의 짐가방이 세관검사에서 무사히 통관한 점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전쟁 제재로 달러와 신용카드 사용이 금지되고 사막 등 오지 통과 때문에 현금을 많이 가져갈 수밖에 없다. 세관 직원이 일행의 돈가방을 열어 보라고 했는데 위쪽만 살짝 보고 아래쪽은 확인하지 않아 모두가 가슴을 쓸어 내렸다. 러시아 공무원은 생트집 잡기 등 악명이 높다고 여러 여행자에게 들었다. 1만달러 초과 세관 미신고로 처음부터 곤욕을 치를 뻔했는데 다행이다. 향후 교통법규 준수, 육상 국경 세관 통과 시 현금 분산 보관 등 큰 공부를 한다. ■ 연해주의 신한촌, 근현대 우리 민족 수난사의 현장 첫째 날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이 살았던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과 독립운동가의 유적지를 찾아보기로 했다. 처음 방문지는 ‘신한촌(新韓村)’ 기념탑이다. 스탈린에 의해 1937년 강제로 중앙아시아로 이주당한 조선인이 살았던 동네에 세워진 기념탑이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북쪽 도시라 7월 날씨는 서울과 달리 덥지 않아 걸어가기로 했다. 러시아 키질 문자를 모르기 때문에 도로표지판은 도움이 안 된다. 낯선 외국 도시의 초행길임에도 휴대폰 구글맵을 켜고 걸어가니 큰 불편은 없다. 한 시간 걸어가니 약 90년 전 강제 이주된 조선인 거주지역이다. 태평양이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 마을인데 남아 있는 과거의 흔적은 어느 단독주택 문 앞에 설치한 ‘서울거리’라는 작은 문패뿐이다. 서울거리 근처에 있는 신한촌 기념탑을 찾기 힘들어 지나가는 러시아 여성에게 물어봤더니 친절하게 기념탑으로 안내해 준다. 서민아파트 단지 모퉁이에 설치돼 있다. 그나마 철조망으로 막혀 가까이 접근은 안 된다. 기념탑의 기둥 셋의 의미는 ‘남한인, 북한인, 고려인’을 상징한다고 한다. 일행이 근처 공원에서 야생화를 따와 약식으로 헌화하고 위로의 묵념을 했다. 철문에 누군가 붙여 놓고 간 빛바랜 노란색 리본에 쓰인 문구를 읽으니 숙연해진다. “조국의 후손임이 자랑스럽습니다. 대한민국이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연해주에 이주한 조선인들은 근현대 한민족 수난사의 대표적 사례다. 국가가 멸망하고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는 격동기, 조선 역사상 최대의 변혁기이며 경험해 보지 못했던 혼란기에 살았던 함경도, 평안도 주민들의 애환이다. 19세기 말기 조선시대 두만강 국경지대에 살았던 주민들이 관리의 폭정과 부패, 과도한 세금을 피해 두만강을 넘어 중국의 지린성, 러시아의 연해주지역으로 이주했다. 사람이 안 사는 황무지를 개척해 농사를 지어 생업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연해주지역은 청나라의 영토였는데 1860년 청나라가 서구 국가와의 2차 아편전쟁에서 패배한 후 러시아에 빼앗긴 지역이다. 최초 이주는 1863년 두만강 근처의 13가구가 러시아 영토에 이주한 것으로 러시아 관리가 기록하고 있다. 19세기 말 연해주지역은 인구가 많지 않아 러시아는 조선인의 이주를 관대하게 대했다. 러시아인은 고려인을 ‘카레이스키’라 부른다. 고려 사람이라는 뜻이다. 1937년 가을 스탈린은 연해주지역에 살던 17만여명의 조선인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유대인과 같은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시작이다. 조국이 없는 망국의 국민을 지켜줄 사람은 없었다. 오늘날 약 50만명의 고려인 4세, 5세들이 중앙아시아, 러시아 등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다. 역사는 진행형이다. 강제이주 당시 신한촌에 아마 수만명이 살았을 것이다. 1930년대 블라디보스토크에는 대학, 중등학교, 많은 교회 가 있었다고 한다. 이들이 독립군에도 입대하고 상하이임시정부에 독립자금도 지원했다. ■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 자택 방문 1909년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한일병합의 주역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 일본 경찰은 총기와 자금 지원 등 배후를 캐기 위해 안 의사를 심하게 고문했으나 안 의사는 끝까지 자백하지 않고 이듬해 뤼순감옥에서 총살됐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아는 역사다. 안 의사에게 거사 자금을 지원하고 안 의사 사망 후 유가족을 보살펴준 사람은 최재형 선생이다. 안 의사는 거사 얼마 전 연해주에서 손가락을 절단했고 평소 최 선생 집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고 한다. 최 선생은 19세기 말 어린 시절 함경도 부모님을 따라 연해주로 가서 러시아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러시아어 실력으로 군납사업 등을 해 당시 가장 성공한 기업인이 됐고 교민사회 후원과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최 선생은 1920년 일본군에 의해 러시아 우수리스크에서 체포돼 즉결 처형됐다. 최 선생 기념패는 러시아 정부가 세운 것으로 러시아어, 영어, 중국어 3개 언어로 돼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말 설명은 없다. 특히 영어, 중국어 등 이름 표기가 ‘최재형’이 아니고 ‘최재현’으로 잘못 표기돼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우리 영사관에서 향후 이름 오자도 바로잡고 한국어 설명도 추가해 다시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념패 내용은 “최재형(1858-1920)은 한국의 애국자, 독립운동가, 지도자다. 1962년 한국 정부의 건국훈장을 수상했다. 한국 언어와 한국문화 보급에 힘쓰고, 러시아문화를 한국인에게 소개하는 데 기여했다.” 지난 6월 모 신문에 우즈베키스탄에서 어렵게 사는 최 선생의 외증손녀 주택을 KT와 국가보훈부가 고쳐줬다는 훈훈한 기사를 읽었다. 장장 6시간을 걸었지만 울림이 있는 첫날을 보냈다.

[지지대] 집 없는 직업군인들

참 자주 옮겨 다녔다. 그럴 때마다 트럭에 이삿짐을 잔뜩 실었다. 정들었던 동네를 떠날 때마다 동갑내기들이 달음박질하며 따라오곤 했다. 어렸을 적 추억이다. 필자의 선친은 직업군인이었다. 근무처가 바뀔 때마다 어머니는 전셋방을 구해야 했다. 친구를 사귈 만하면 이사를 가야 했다. 살던 마을이 익숙해지면 이별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부쩍 늘었다. 그 긴 세월이 지났는데도 직업군인들의 이사는 줄지 않고 있다. 잦은 전출도 원인이지만 쥐꼬리만 한 월급에 집을 마련하지 못해서다. 여전히 민간인이나 일반 공무원과는 큰 차이를 보여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황희 의원이 국방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이 자료에 따르면 10년 이상 복무한 직업군인의 지난해 자가 보유율은 42.2%로 나타났다. 직업군인의 자가 보유율은 2016년 31.9%에서 조금씩 상승해 7년 동안 10%포인트가량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이 수치는 2022년 조사된 국민 자가 보유율 57.5%보다 15%포인트 이상 낮았다. 소득 1∼4분위 하위소득 계층 국민 자가 보유율(45.8%)보다도 낮았다. 일반 공무원(63.0%)이나 군인과 같은 제복 공무원인 경찰(64.6%), 소방공무원(58.9%)과도 큰 차이가 나는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직업군인 계급별 자가 보유율은 장성 68.8%, 대령 67.6%, 중령 62.2%, 소령 42.5% 등으로 나타났다. 준사관인 준위 60.2%, 부사관인 원사가 56.2%이고 상사는 39.4%로 분석됐다. 대한민국 국군은 세계 5위권이다. 그런데 최일선에서 국토를 수호하는 직업군인들은 절반 이상이 집도 장만하지 못할 정도로 열악한 게 현실이다. 직업군인의 낮은 자가 보유율 및 군인 가족의 잦은 이사에 따른 주거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정부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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