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올려라, 23년째 8만원 소방관 화재진압수당

소방관들이 매월 받는 화재진압수당이 있다. 화마(火魔)에 맞선 대가의 하나다. 1990년 월 4만원으로 신설됐다. 2001년 월 8만원으로 인상됐다. 그 이후 23년째 동결돼 있다. 소방관 수당을 이것만 두고 볼 건 아니다. 위험근무수당(6만원), 특수근무수당(8만원), 시간 외 근무수당, 야간 근무수당 등도 있다. 그럼에도 화재진압수당이 주목되는 건 역사 때문이다. 소방관 처우 개선의 상징처럼 툭하면 등장했다. 대체로 정치가 그랬다. 올해 6월 기준 경기도내 소방공무원은 1만1천445명이다. 이 중 8천800여명이 화재진압수당을 받는다. 경기도에서 발생하는 화재는 매년 8천 건 이상이다. 2019년 9천421건, 2020년 8천920건, 2021년 8천169건, 2022년 8천604건, 2023년 8천202건이다. 소방공무원 1인의 담당 인구도 전국 두 번째다. 도민 1천179명을 도 소방관 1명이 담당한다. 이런 소방관에 주는 수당이 23년째 8만원이다. 툭하면 인상을 말했다. 올 2월 국민의힘도 공개적으로 약속했다. 경북 문경의 소방관 빈소를 찾은 자리였다. 당시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언론 앞에서 밝혔다. “2001년 인상된 이후에 지금까지 23년 가까이 그대로 동결돼 있다. 우리가 화재진압수당을 즉각 인상하겠다.” 하지만 8개월이 넘도록 인상 소식은 없다. 앞서 문재인 정부의 수당 인상 거짓말도 생생하다. 8만원에서 18만원으로 대폭 올린다는 인상안을 요란하게 발표했다. 하지만 흐지부지 사라졌다. 정치권의 인상 약속은 툭하면 튀어나왔다. 소방공무원 처우 개선의 단골 소재로 활용됐다. ‘○○년간 동결된 화재진압수당 인상하겠다’는 발표는 모두 거짓말로 끝났다. 그렇게 지금의 ‘23년째 동결’에 와 있지 않은가. 호소력 있는 화두로 여겨진 모양이다. 쉽게 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어느 경우든 잘못된 판단이고 소방관 우롱이다. 지자체가 줘야 하는데, 소방관 초과근무수당 2천억원도 밀려 있다. 툭 던질 말이 아니다. 소방청이 화재진압수당 인상을 요청한 상태라고 밝혔다. 2019년에는 ‘수당조정요구서’까지 제출됐었다. 인사혁신처와 행정안전부까지 돌아가다가 막혔다. 이번에는 얼마가 됐든 인상됐으면 좋겠다. 취재진에 전한 한 소방관의 말이 가슴에 남는다. “화재진압수당을 받기 위해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것은 아닙니다...그래도 열악한 근무 현실을 보는 것 같습니다.” 23년간 오르지 않은 수당은 주위에 없다. 민간이었다면 난리 났다.

[사설] ‘예산 떨기식’ 해외출장도 OK... ‘셀프 심사’ 이제 바꿔야

최근 인천시의회 의원들의 잇따른 해외 출장 계획이 도마에 올랐다. 해 넘어가기 전에 예산을 다 쓰기 위한 짜맞추기식 출장 등이다. 수십만원의 남은 출장비까지 털어 쓰려는 출장 계획도 있었다. 게다가 행정사무감사, 예산·결산 심의 등 시의회 본연의 업무가 산적한 시기다. 그런데도 인천시의회의 국외공무출장심사위원회(공심위)는 원안 그대로 승인했다고 한다. ‘끼리끼리’ 심사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달 말 일부 시의원들의 짜맞추기식 미국 출장 얘기가 나왔다. 이런 가운데 또 다른 인천시의원 6명도 중국 출장에 나설 참인 것으로 나타났다. 비용은 이들 의원이 전반기에 출장을 다녀오고 남은 1인당 90만원씩의 예산이다. 의회사무처 직원 2명을 포함한 8명은 오는 28일부터 30일까지 중국 웨이하이를 다녀올 계획이었다. 전반기 건설교통위 소속이었던 이들 의원은 이미 지난 4월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호주 시드니와 멜버른 등이다. 당시 비용은 1인당 410만원이었다. 인천시의원 1인당 연간 국외 출장 예산은 500만원이다. 따라서 남은 90만원을 마저 쓰기 위한 억지 출장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이러다 보니 출장의 전문성도 찾기 어려웠다. 웨이하이 항만 재개발 현장을 둘러보고 백령~ 웨이하이 항로 개설을 협의한다고 했다. 그러나 6명 중 5명의 의원은 항만 업무와 무관한 상임위 소속이다. 매년 수천만원을 받는 시의원들이 고작 90만원의 남은 시민 세금을 마저 쓰기 위해 또 출장에 나서느냐는 얘기도 나왔다. 논란 끝에 결국 이 중국 출장은 취소됐다. 그러나 미국 출장은 계획대로 떠날 모양이다. 시의회 사무국 직원 3명 등 10명은 오는 24일부터 31일까지 6박8일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한다. 뉴욕과 필라델피아 등이다. 1인당 500만원, 총 5천만원의 시민 세금이 쓰인다. 7명의 소속 상임위도 제각각이다. 그러니 출장 목적도 뚜렷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시의회 공심위는 지난주 이 출장 계획을 승인했다. 시의원 출장 심사가 형식적 ‘셀프 심사’임이 다시 드러난 셈이다. 모두 9명의 공심위에는 동료 시의원 3명이 당연직으로 참여한다. 나머지 6명도 시의회 의장이 임명한다. 시의회 공심위는 지난 10년간 66건의 해외 출장을 심사했다. 그러나 단 1건의 부결이나 보류도 없이 무사 통과시켰다. 이런 공심위 대신 전문성과 투명성을 확보한 심사 기구를 다시 꾸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시민들이 참여하는 ‘민주적 통제 장치’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타율적 통제에 앞서 인천시의회가 스스로 나설 차례 아닌가.

[경기시론] 우리나라 이민정책 방향에 대한 고찰

국가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적정 인구의 수를 유지하고 그 질적 수준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인구의 양은 출생, 사망, 순이민 유입에 의해 결정되고 인구의 질적 수준은 교육과 훈련, 유입된 이민자의 질적 수준 등에 의해 결정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인 0.72명이고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약 5천100만명인 현재 인구는 2072년 약 3천600만명으로 급감할 것으로 추계한다. 또 고령인구(65세 이상)가 생산연령인구(15~64세)보다 많게 돼 노인 부양비의 부담이 급증한다. 202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30년부터 2060년까지 우리나라의 평균 잠재성장률은 약 0.8%로 장기적인 저성장이 예측된다. 인구 감소는 노동 공급의 감소는 물론이고 소비, 투자와 일자리, 세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노인 부양비의 급증은 미래 세대에 큰 부담이 된다. 경제활동을 하는 이민자의 유입이 늘면 노동 공급이 증가함은 물론이고 소비, 투자, 세수 증가와 재정지출 확대로 인한 경제성장과 국민복지 증진에 기여할 수 있다. 경제성장과 국가재정에 기여하는 이민자를 정주시키면 이러한 편익이 더 증가하고 두뇌 유출도 방지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이민자에 대한 국민 인식이 좋아져 사회통합에도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난해 기준 취업활동을 할 수 있는 체류자격을 가진 외국인 근로자 중 약 86%가 단순노무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저임금을 받고 단순한 업무에 종사하는 이민자의 경우 중장기적 산업구조 조정에 따른 실업에 취약하고 자녀에 대한 교육 지원에 대한 여력이 부족해 미래 복지비용의 증가 및 사회 부적응 등에 대한 우려가 높아 정주를 허용하고 있지 않다. 일본은 30년 동안 저물가, 저금리, 저임금 속에서 기업의 수명이 연장되고 부족한 인력은 저임금의 외국 인력으로 메우는 땜질식 처방을 했다. 이는 결국 기업의 산업구조 조정을 지연시켜 국제경쟁력을 떨어뜨렸고 이민을 통한 인구 보충에도 실패해 장기적인 경기 침체를 불러왔다. 반면 미국, 캐나다, 호주, 싱가포르 등은 전문인력과 숙련기능공 위주로 정주를 허용해 인구의 양과 질을 높였다. 따라서 외국 인력의 도입을 통해 기업의 생존을 돕는 동시에 자동화, 기계화, 사업모델 혁신 등을 통한 산업구조 조정을 병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산업구조의 조정에 적응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이민자의 정주를 확대해 인구 급감을 완화함으로써 노동 공급 측면의 편익과 국민총생산의 지출로 인한 편익을 증가시켜야 한다. 인간의 국제 이주가 발생하면 이처럼 다양한 경제적 효과는 물론이고 정치, 문화, 사회 등에 미치는 영향도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노동공급 측면을 볼 때 해외에 있는 외국 인력의 유치에 치중하기보다는 우리나라 대학을 졸업한 유학생과 정주 외국인의 경제활동 기회를 먼저 제공하고 뿌리산업 등과 같이 중요한 산업이지만 국민을 구인하기 힘든 분야에 종사하는 외국인 근로자에 대해 직업훈련의 기회를 제공해 숙련기능공으로 키우려는 노력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정치·사회적 측면에서 볼 때 특정 국가 출신의 이민자가 지나치게 많을 경우 정치적 결정이 편향될 수 있으므로 그 비중을 적절히 조절하고 개인적 신념 등을 이유로 우리 사회와 분리되려는 집단이 커지지 않도록 방지하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민자에 대한 완전한 통합 과정은 이민자 2세에 대한 통합을 통해 이뤄진다. 따라서 이민자 2세가 차별 없이 우리 사회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사회 환경을 조성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국가적 과제다.

[인천시론] 프랑스인 에르베와 백령도 1박2일

요즘 프랑스는 필자에게 흥미로운 나라다. 문화 수준에 강약 기준을 두는 게 적절한지 몰라도 문화강국이라는 말에 토를 달기 어려운 여름을 보냈다. 프랑스를 올려다보게 됐다. 파리 올림픽을 통해 보여 준 프랑스문화에서는 격조가 느껴졌다. 도시가 가꿔 온 전통을 거대 스포츠 이벤트에 녹여 낸 솜씨는 발군이었다. 프랑스는 혁명으로 일군 공화국이고 그 정신을 배태하고 있는 문화는 강했다. 개막식 피날레, 셀린 디옹이 에펠탑 중간 특설 무대에 올랐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땅이 꺼진다 해도 그대 날 사랑한다면 두려워할 것 없으리.’ 근육 수축 희귀병을 앓고 있는 가수가 온 힘을 다해 부르는 ‘사랑의 찬가’는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프랑스인이 사랑하는 노래를 우리는 기꺼이 함께 불러왔고 그 밤에 더욱 감동하며 따라 불렀다. 나는 평창 올림픽 무대에 섰던 정선아리랑 예능 보유자 김남기옹을 떠올렸다. ‘눈이 오려나 비가 오려나 억수장마 지려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메밀밭 물결 위를 헤쳐가는 뗏목 위 아이들을 보며 세계인들은 같은 꿈을 꿨다. 사랑은 영원하고 인류는 희망하는 존재들임을 두 가수가 들려줬다. 지난해에는 샹송의 나라에서 우리 소리 공연이 펼쳐졌다. 판소리 창 본 ‘심청가’를 번역 출판한 에르베 페조디에가 큰 역할을 해 이뤄진 자리다. 에르베는 프랑스에서 ‘K-vox(한국 소리)’를 설립해 판소리를 알려온 배우이자 극작가다. 김경아 명창이 무대에서 심청가를 불렀고 에르베가 아니리 광대로 같이 공연했다. 프랑스어로 번역해 프랑스인들에게 들려 준 심청가에 관객들이 열광했다. 우리 관객들도 머뭇대는 추임새가 울려 퍼져 극장을 달궜고 한국의 소리가 세계인들과 호흡할 수 있다는 사실에 공연자들은 들떴다. 에르베는 심청가 중 인당수 대목에 꽂혀 현지 방문을 원했고 지난 9월 초, 백령도 심청각에 공연 마당이 펼쳐졌다. 날이 화창해 가시거리 안에 인당수가 보인다 해도 좋을 야외 무대였다. 관객은 기획과 기록팀 10여명, 백령 주민들과 선생님들, 오가는 관광객들로 조촐했다. 김경아 명창이 심청이 인당수에 빠지는 대목을 불렀고 눈물 바람 끝에 에르베가 등장해 심봉사 눈뜨는 장면을 연기했다. 소경이 ‘번쩍번쩍’ 눈을 떠야 하는데 ‘뽕짝 뽕짝’으로 들리는 에르베의 발음과 몸짓에 좌중은 박장대소했다. KBS, OBS에서 동행 취재했고 이후에 공연과 인터뷰를 방영했다. 적지 않은 나이로 보이는 에르베는 평생소원을 이루게 됐다며 아이처럼 들떠 1박 2일을 보냈다. 나는 프랑스 사람 에르베를 통해 프랑스를 다시 경험했다. 그와 만났던 시기를 전후해 열린 올림픽도 달리 보였다. 내가 좁은 범주에 가둬뒀던 우리 소리가 세계인 모두의 소리가 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한복을 입고 부채를 흔들며 몸짓과 소리로 심청가를 즐기는 그는 유연하지만 강해 보였다. 자유롭게 유머를 구사했고 이틀 내내 온몸으로 행복감을 뿜어냈다. 나는 에르베에게서 프랑스가 꿈꾸는 문화인을 보았다. 셀린 디온이 에펠탑에서 불렀고 에르베가 백령도 심청각에서 불렀던 노래가 ‘다 프랑스’였고 문화의 힘은 그렇게 강했다.

[지지대] 119메모리얼데이

평택시에는 ‘소방관 이병곤길’이라는 명예도로가 있다. 서해대교가 보이는 평택항국제여객터미널∼만호사거리 왕복 750m 구간이다. 고 이병곤 소방령은 2015년 12월 3일 서해대교 목포 방면 송악IC 인근 2번 주탑 중간부 근처 교량 케이블에서 발생한 불을 진화하기 위해 현장에 출동했다가 강풍에 끊어진 케이블에 맞아 순직했다. 1990년 3월 소방에 입문해 25년여간 현장을 지킨 고인은 생전 각종 사고 현장에서 시민의 생명을 구해 여러 차례 언론에 보도되는 등 동료들에게 모범이 된 선배다. 평택시가 이 소방령의 순직 6주기를 맞아 2021년 12월3일 ‘소방관 이병곤길’ 명예도로명을 부여하고 안내판 현판식을 가졌다. 명예도로명은 도로명주소법에 따라 해당 인물의 사회 헌신도 등 공익성을 고려해 기초지자체가 부여한다. 경찰, 소방, 교정 등 제복공무원이 명예도로 이름으로 지정된 것은 전국에서 처음이다. 평택항마린센터 인근 ‘소방관 이병곤길’에서 지난 5일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소방청이 개최한 ‘제1회 119메모리얼데이’다. 순직 소방공무원들의 생애와 헌신을 유가족, 소방 동료뿐 아니라 국민과 함께 기억하기 위한 첫 추모문화제다. 화재진압, 구조구급 등의 과정에서 순직한 전국의 소방공무원은 559명에 이른다. 경기도에서도 이병곤 소방령 외에 용인소방서 신진규 소방교(2021년 5월·성남 동원동 농기계 창고 화재), 광주소방서 김동식 소방령(2021년 6월·이천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 송탄소방서 이형석 소방경·박수동 소방장·조우찬 소방교(2022년 1월·평택 냉동창고 신축공사장 화재) 등이 순직했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한 모든 소방관은 국민 영웅이다. 안타까운 것은 소방관들의 근무환경과 처우가 너무 열악하다는 것이다. 불과 싸우는 목숨값인 화재진압수당이 월 8만원에 불과하다. 다양한 유형의 화재가 매년 수천건 발생해 소방관들이 위험에 노출되는데 화재진압수당은 23년간 오르지 않았다. 경기도에서 발생한 화재는 2022년 8천604건, 2023년 8천202건으로 매년 8천건이 넘는다. 위험을 감수하며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소방관에 대한 수당 현실화 등 처우 개선이 절실하다.

[문화산책] 한 걸음 한 걸음 대한민국을 발견하라

지난 9월23일, 문화체육관광부가 2009년부터 추진한 ‘코리아둘레길’의 전 구간이 개통됐다. 코리아둘레길은 우리나라 외곽을 잇는 초장거리 걷기여행길로 동해안(해파랑길), 남해안(남파랑길), 서해안(서해랑길), DMZ접경지역(DMZ평화의 길) 4개 구간(294개 코스) 약 4천500㎞에 달한다. 2009년 시작한 동해안 해파랑길이 2016년 개통된 이후 나머지 3개 구간 개통까지 8년의 시간이 더 흘렀다. 필자가 일하는 기관이 문화체육관광부의 의뢰를 받아 동해안 탐방로 조성 타당성조사 연구를 수행했고 2017~2019년엔 필자가 남해안, 서해안, DMZ평화의 길 프로젝트에 참여했기에 코리아둘레길 전 구간 개통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필자가 프로젝트를 시작한 2017년엔 2000년대 초반 제주올레의 선풍적인 인기에 편승해 전국에 경쟁적으로 조성된 ‘걷기여행길’이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않아 자주 언론의 질타를 받았다. 필자 역시 4천500㎞에 달하는 초장거리 걷기여행길이 과연 실효성이 있는 사업일지, 지역연계와 체류관광 증진에 도움이 될지 고민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코리아둘레길은 새로운 길을 만드는 것이 아닌 지역의 길을 연결하고, 새로운 브랜드와 콘텐츠로 기존 길의 매력을 제고하는 사업으로 추진됐다. 그간 이 길이 지역을 더 가깝게 만나고, 치유 경험을 제공하는 관광 콘텐츠가 될 수 있도록 참 많은 사람들이 애를 썼다. 노선 조사에 참여한 열정적인 걷기 동호인들, 코리아둘레길 지킴이들, 좋은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위해 애쓴 단체들까지. 15년간 정권이 몇 번 바뀌는 중에도 변함없이 사업의 취지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애쓴 문체부와 지자체 공무원 및 한국관광공사 관계자들의 수고도 참 많았다. 가끔 출장지나 여행지에서 코리아둘레길임을 알려주는 리본과 스티커 등을 마주치면 지난 15년간 이 길에 뿌려진 많은 수고에 감사하게 된다. 코리아둘레길은 참 많은 매력을 갖고 있다. 지역의 대표 관광자원을 지나고, 종일 바다만 바라보며 걷기도 하며, 소박한 포구 어촌마을을 자주 지난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가파른 산길을 따라 걷다가 숨 막히게 아름다운 경관을 마주하고, 해를 피할 그늘 하나 없는 길을 따라 걷다가 인생 노을을 만나기도 한다. 시끌벅적한 지역 전통시장을 지나기도 하고, 철책을 따라 걸으며 새삼 우리나라가 분단국가임을 실감하기도 한다. 때로는 아주 쾌적하고, 때로는 흙길과 무성한 풀숲을 헤쳐야 하는 길. 그래서 이 길은 인생을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아마 이런 연유로 인생의 여러 고비를 마주하거나 지나고 있는 세대들이 더욱 이 길을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 ‘한 걸음 한 걸음 대한민국을 발견하라’는 2017년 코리아둘레길 브랜드 선포식에서 발표된 캐치프레이즈다. 거창한 타이틀 같지만 한 걸음, 한 걸음에 초점을 맞추면 이 길은 바로 우리 주변에서 시작함을 알 수 있다. 경기도의 경우 평택섶길, 안산대부해솔길, 평화누리길 중 일부가 코리아둘레길에 포함돼 있다. 4천500㎞ 전 구간을 도전적으로 완보하는 이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는 요즘, 전 구간 완보는 아니더라도 내 주변부터 한 걸음을 내디뎌 보는 건 어떨까. 내가 사는 지역을 새롭게 발견하는 기쁨, 걷는 것이 주는 치유의 경험을 더 많은 이들이 경험하길 기대해본다. 참고로 코리아둘레길에 대한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하는 두루누비 서비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천자춘추] 이상 기후에 풀죽은 축구장 잔디

잔디는 생물이다. 잔디는 일조량과 통풍이 매우 중요하다. 이와 함께 겉으로 나타나지 않는 그라운드 바닥 배수 관리도 매우 중요하다. 기온과 기후에 따라 잔디의 컨디션이 달라진다. 사람도 더우면 얼음물을 마시며 체온을 낮추고 추우면 점퍼를 입으며 체온을 유지한다. 하지만 생물인 잔디의 경우 적재적소에 어떤 좋은 비료와 영양제를 투입해도 연일 폭염과 열대야, 스콜 등 예측하기 어려운 기후 변화에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기에는 항상 역부족이다. 이러한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천연잔디 대안으로 하이브리드 잔디로 운영하고 있는 사례가 있었다. 몇 년 전 K리그에서 구단별 경기력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며 구장 잔디 관리 문제가 대두돼 당시 큰 투자를 통해 파격적인 하이브리드 잔디를 국내 프로 무대에 처음 도입한 것이다. 인조잔디 파일과 천연잔디를 조합, 외부 충격에 의한 잔디 파임의 방지 효과를 강조했다. 그러나 당시 호평에도 불구하고 디보트 문제에 대한 빠른 원상회복의 어려움과 천연잔디 구장 대비 3배의 관리비용 부담, 복합구장으로 활용하는 사용 목적의 한계에 봉착하다 보니 축구팬들의 불만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이상 기온에 따른 대책은 전무한 상태로 불만의 목소리만 커져 가는 상황에서 최상의 잔디를 만들어 가기 위한 개선과 대안의 길은 멀게만 느껴진다. 변화의 환경에 있어 필자가 근무하는 수원월드컵경기장은 최초 조성 당시 페레니얼라이그라스(20%)와 켄터키블루그라스 종자(80%)를 혼합 파종해 관리 운영해 왔으나 비에 취약하고 고온다습한 혹서기 기후에 맞지 않아 잔디 종별 특성화를 고려, 현재는 켄터키블루그라스 단일종으로 관리해온 결과 그간 여러 차례 그린스타디움상을 수상하며 컨디션을 유지해 왔지만 폭염과 폭우로 인한 기온 및 기후 변화 탓에 기상관리 병해 문제, 답압과 부식물 축적으로 환원층이 생성돼 원활한 배수와 환원층 제거를 위해 그라운드 전면 교체를 결정, 11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게 됐다. 또 재단은 다층 지반구조 공법으로 배수력 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왕사층 비율 증대와 점토 성분이 적은 그린사 모래 포설, 팝업식 헤드 11개소로 확대하는 관수시스템 개선까지 지난 9월부터 공사를 진행 중이다. 경기도, 수원시의 예산 지원 없이 독립채산제로 운영되고 있는 경기수원월드컵재단은 매년 약 4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천연잔디구장을 관리하고 있다. 재단은 관리인력 한계와 관리예산 증액의 적정성 여부 우려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환경에 맞춰 과감히 K리그 잔디 체질 개선을 위해 시간과 비용을 들여 바꿔 나가고 있다. 관리 방식의 고도화를 위해서는 전국 10개 월드컵경기장 잔디 관리에 대한 각자의 매뉴얼만 가지고 갑론을박할 일은 아니다. 구장별 현장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는 잔디 관리자와 잔디 전문기관, 그리고 관리 주체와 구장을 사용하고 있는 구단까지 함께 소통하며 이상 기후에 대비한 체계적이고 진화된 최상의 잔디 관리 솔루션을 공동 연구해 앞으로의 상생 방안 마련을 위한 넓은 시각에서의 접근이 필요할 때다. 사람도 성장 과정과 환경이 중요하고 생물인 잔디도 생육 환경과 여건이 좋아야 하듯 결과만을 가지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말고 과감한 하이브리드 잔디 도입 시기 때처럼 변화와 혁신의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끊임없이 잔디를 연구하는 현장의 노력이 있기에 질타와 쓴소리의 불통에서 벗어나 미래지향적인 상생 소통으로 지속적인 개선 솔루션을 발굴한다면 한 단계씩 성장통을 거쳐 K리그 잔디는 더욱 강해질 것으로 확신한다.

[기고] 진충보국

2년 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지금까지도 전쟁은 끝나지 않은 채 선량한 국민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전쟁은 절대로 일어나선 안 되는 비극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명백한 사실이다. 우크라이나 국민도 그런 재앙을 원하지 않았겠지만 그들의 의사와는 조금도 상관없이 일어나고 말았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보복 공격에 대한 뉴스도 현재 심심치 않게 보도되고 있다. 물론 그것 또한 그곳에 거주하는 대다수 국민의 의사와는 반하는 일일 것이다. 이런 뉴스들을 접하면 자연히 내가 속해 있는 우리나라의 안전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남북으로 분단돼 아직 휴전 중인 국가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나에게 전쟁은 마냥 먼 나라의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는다. 최근 북한에서 소위 ‘오물 풍선’이라는 것을 띄워 보내고 있는 사태가 작게 보이지 않는 것은 나의 불안에 불과한 것일까. 국가 안보의 중요성을 더욱 절실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안보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집단은 군대다. 당연히 군대는 군인들이 소속돼 있다. 우리는 그들에게 안보라는 중요한 책임을 맡겼다. 국가와 국민에 대한 충성심을 요구하면서 말이다. 진충보국(盡忠報國)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충성을 다하여 나라의 은혜에 보답한다’는 뜻으로 과거 몇몇 장수는 등에 그 단어를 새기면서까지 국가에 충성을 다하려 했다. 남송 초기까지 거슬러 올라 가면 충신의 대명사인 악비(岳飛)라는 장수가 그러했다. 공교롭게 그의 시호는 이순신 장군과 같은 충무(忠武)였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의 막하에서 활약했으며 노량해전에서 장군이 전사하자 전장을 이끌었던 유형(柳珩) 장군 또한 등에 그 네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런 충성심이 어디서 나왔냐는 논의보다는 어떻게 하면 현재 군을 이끄는 지휘관들에게 깊은 충정을 새길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 봤다. ‘장수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는 말이 있다. 너무 거창한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진심으로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보면 군인의 존재 이유인 국민이 그들의 헌신에 진심으로 감사와 존경을 표하고 그것이 하나의 문화로 정착이 된다면 자연히 그들의 마음에 진충보국 네 글자가 새겨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것은 현역 군인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청춘을 바쳐 국가에 헌신하고 퇴역한 제대 군인에게 더욱 필요한 표현일 수도 있겠거니와 현역은 언젠가 퇴역하는 것이 이치다. 10월 둘째 주는 국가보훈부에서 지정한 제대 군인 주간이다. 며칠간 여러 가지 행사를 통해 제대 군인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많은 국민이 참여해 그들의 희생과 공헌에 감사하는 마음을 전달하는 날이 됐으면 좋겠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경기만평] 성질머리 하곤...

[사설] 이재명은 ‘11월 위기’, 문재인·김동연은 ‘10월 회동’

문재인 전 대통령의 의중이 가감 없이 드러난 일정이었다. 전직 대통령이 경기도청을 방문한 것이 처음이다. 부인 김정숙 여사와 함께한 방문이라는 점도 무게감을 더했다. 도지사 집무실에서의 환담도 40여분간 진행됐다. 문 전 대통령 부부와 김동연 경기지사 부부가 함께 산책도 했다. 수원에서 유동 인구가 많은 광교호수공원 주변이었다. ‘행복한 경기도가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듭니다’라고 적은 방명록도 눈길을 끈다. 의중의 공개다. 이런 상황을 보고도 중의적 표현에 숨어야 할까. 그 흔한 ‘정치적 해석 금지’라는 당부도 없었다. 언론과 시민들 앞에 보란 듯이 시연한 이벤트다. 문재인의 김동연 선택이다. 그동안 김 지사는 친문에 대한 구애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 도지사 취임 이후 평산마을을 세 차례나 방문했다. 매번 ‘큰 역할 당부’ 등의 워딩을 스스로 공개하곤 했다. 민선 8기 후반기에는 전해철(도정자문위원장)·강민석(도 대변인) 등 친문을 기용했다. 여기에 답이다. 문 전 대통령 방문의 직접 동기는 ‘10·4 남북정상선언 제17주년 기념식 및 2024년도 한반도 평화 주간 폐막식’ 참석이다. 이 행사에서 최근 남북 관계 경색을 우려하는 축사도 했다. 하지만 이보다 예민하게 보이는 정치적 시기가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11월 위기설’이다.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의 1심 선고가 예정돼 있다. 무죄·유죄, 벌금형·징역형이 갈리게 된다. 무거운 형을 전제로 하는 ‘위기설’이다. 그 코앞 만남이다. 현 민주당은 사실상 이재명 1인 지배 체제다. ‘11월 위기설’을 입에 담는 것조차 조심하는 분위기다. 이런 속에서 김동연 지사의 행보는 상당히 공격적이었다. 대표적인 게 ‘이재명 복지’에 대한 정면 반박이다. 방송에 출연해 “13조가 하늘서 떨어지나”, “25만원법 반대한다”고 말했다. 국민 지원금 13조원에 대한 소신이자 반대다. 정치권에서는 이 발언을 두고 ‘김 지사가 정치 승부수를 던졌다’는 평까지 했다. 추측도 여럿 나돌았다. 그중 이런 얘기도 있다. ‘김 지사 측에서 이재명 대표에게 치명적 판결이 선고될 것이라는 정보를 권력 주변으로부터 접한 것 같다’. 도내 민주당 쪽에서도 흘러나오는 얘기다. 사실 여부를 떠나 그만큼 김 지사 주장이 커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런 때 문 전 대통령이 동부인해서 김 지사를 방문했다. 거침 없는 친분 과시, 함의 가득한 방명록 등을 남겼다. ‘이재명 11월’에 대비되는 ‘문재인·김동연 10월’ 아닌가. 누가 봐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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