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오디세이] 지구의 방생

불교에 ‘방생(放生)’이라는 의식이 있다. 인간에 의해 잡힌 동물을 다시 그들이 살던 자연으로 되돌려주는 것으로 생명 존중과 공생이라는 불교의 가치관을 실천하는 의식이다. 사찰에서는 봄, 가을이나 물고기의 산란기에 맞춰 방생의 법회를 열어 많은 불교인들과 함께 인간만이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라 모든 생명이 공존하고 함께하는 지구라는 가르침을 일깨워 준다. 과거에는 방생에서 물고기나 새 등을 풀어주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이것이 자칫 생태계를 교란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방생문화도 점차 변하고 있다. 최근에는 방생의 의미를 보다 넓게 해석해 생명이 살아가는 것에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활동으로 변해 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강가에 버드나무를 심어 정화작용을 돕거나 겨울철 먹이가 부족한 산짐승이나 철새에게 사료를 제공하는 방생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새로운 방생문화는 생명 존중이라는 불교의 가르침이 보다 지금의 현실에 맞게 실천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몇 해 전부터 방생에 대한 또 다른 생각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바로 지구를 위한 방생이다. 당장 11월 말의 폭설을 떠올려 보면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고 예측조차 못할 정도의 기록적인 눈이 내려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에 대란을 일으켰다. 더불어 장마와 태풍은 매년 그 피해와 규모의 기록을 갈아 치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우리의 지구가 이제는 우리에게 보금자리를 제공하던 곳에서 두려움과 걱정의 대상이 돼 가고 있다. 모든 인류는 지금까지 지구에서 태어났고, 지구에서 살다가 다시 지구의 품으로 돌아갔다. 이 지구는 단지 우리의 터전을 넘어 모든 생명의 토대이고 그 생명들의 세상이다. 그러나 그 세상이 무너지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오직 자신만을 위해 마구잡이로 생산하고, 편리하다는 이유로 일회용품을 사용하며, 흥청망청 자원을 소비한다면 지구가 제공하던 터전은 그리고 세상은 어쩌면 이제 우리를 품어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이 생명을 지키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 이제 지구를 위한 방생을 해야 한다. 지구를 위한 우리의 방생이 어쩌면 다소 늦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 탓을 할 때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실천해야 한다. 그 방법도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으나 오히려 실천하지 않은 것이 문제인 것이다. 사용하는 자원을 조금만 아끼고, 사용한 것은 잘 분리해 버리며, 다시 쓸 수 있는 것은 꼭 다시 쓰면 된다. 그리고 주변에 타인에 의해 버려지거나 훼손된 것을 내가 먼저 줍고 정리한다면 그 작은 실천이 하나둘 모여 거대한 힘이 돼 지구를 살리는 방생이 된다. 누구나 행복하게 잘 살고 싶어 한다. 이 ‘행복하고 잘 사는 것’은 우리의 자리에서 이뤄지는 것이고 그 자리가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다. 오늘 무엇 하나를 줍거나 아낀 그 행동이 훗날 더 아름답고 안락한 지구가 돼 우리에게 행복의 터전을 제공해 줄 것이다.

[시베리아·실크로드, 지구 반바퀴] 하바롭스크 2

■ 어머니 품, 아무르강 하바롭스크는 위도가 북위 48도(서울 37도)다. 7월10일 현재 오전 5시 일출, 오후 9시 일몰로 낮시간은 16시간이다. 이곳은 ‘아한대기후’로 온대와 한대기후가 만나는 지역이다. 시내 중심부로 아무르강이 흐른다. 만주어로 아무르강은 ‘큰 강’이라 뜻이다. 중국은 ‘검은 강’ 헤이룽장(黑龍江)이라 부른다. 아침에 아내와 아무르강 강변을 산책한다. 평일인데도 낚시 인파가 많다. 강폭이 매우 넓고 유장하게 시베리아 대평원을 가로질러 흘러간다. 얼음이 얼지 않은 여름철 동안에만 이 강을 통해 태평양으로 화물선이 다닌다. ‘아무르강의 물결’이라는 러시아 민요가 생각나 유튜브에서 듣는다. 노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유유히 아무르는 그 물결을 실어 나르네/시베리아의 바람이 모두에게 노래를 불러 주네/아무르의 타이가숲 앞에 조용히 찰랑이며/취한 듯 물결이 자유롭게 도도하게 흐르네....” 러시아 특유의 쓸쓸함과 민중의 애환이 느껴진다. 시베리아 대평원을 흘러가는 아무르강은 마치 ‘어머니 강’처럼 포근해 보인다. 하바롭스크의 아침 날씨는 흐리고 구름이 낮게 깔려 있다. 아스라이 멀리 보이는 강 건너 땅은 중국 영토다. ‘황허강, 갠지스강’을 중국, 인도 사람들이 ‘어머니 강’이라고 부른다. 우리의 어머니 강, 우리의 젖줄은 아마 서울과 기호지방을 가로지르는 ‘한강’이 아닐지 생각해 본다. ■ 조선, 청나라 연합군과 러시아군의 ‘나선 전쟁’ 아무르강은 러시아와 중국의 국경선이다. 아무르강을 경계로 러시아와 중국 사이 국경분쟁이 근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재 세계의 G2 강대국은 미국과 중국이다. 17세기 유라시아 대륙의 G2 국가는 청나라와 러시아였다. 두 나라가 아무르강에서 많은 국경분쟁을 했다. 17세기 ‘조선, 청 연합군’과 러시아 군대가 전쟁한 지역이 바로 하바롭스크 남쪽에 있다. 조선 효종 때 하바롭스크 남쪽 아무르강에서 두 차례(1차 1654년, 2차 1658년) 전쟁에 참전했다. 효종은 청의 요청으로 260여명의 군대를 두만강 회령을 넘어 출병시켰다. 조청 연합군이 승리를 거뒀고 조선실록은 ‘나선정벌(征伐)’로 기록하고 있다. ‘나선’은 한자어로 러시아를 뜻한다. 조선실록의 과장된 정벌(征伐)이라는 용어 대신 ‘참전’ 또는 ‘파병’이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효종은 병자호란 패전 후 볼모로 청나라에 잡혀 갔던 왕이다. 왕이 된 효종은 청나라 복수를 위해 북벌(北伐)을 위한 군대 양성에 주력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청나라 북벌을 위해 양성한 조선군이 러시아군과 싸우기 위해 파병됐다. 임진왜란을 겪은 광해군, 병자호란은 겪은 효종의 국제적 식견과 외교정책은 정반대다. 광해군은 임란 후 적국인 청나라와 일본에 유연한 실용주의 외교를 했고 효종은 최강대국 청나라에 복수한다는 현실과 동떨어진 북벌정책을 펼쳤다. 효종이 죽은 후 후대 왕들도 세계 최강대국 청나라와 학술·문화 분야의 교류조차 끊고 지낸다. 학술, 문화의 교류를 주장하는 ‘북학파, 실학파’의 의견은 무시된다. 청나라를 통해 서구 문물과 과학기술을 배울 기회가 차단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 시베리아 대평원 횡단하기 본격적인 시베리아 횡단 대장정의 시작이다. 의욕이 넘치는 원기 왕성한 출발이다. 오늘의 목적지는 작은 도시 벨로고르스크(인구 5만명)이다. 북서쪽으로 670㎞를 달려야 한다. 사고가 없는 행복한 하루를 기대한다. 어제에 이어 강행군 이동이다. 두 시간 운전 후 20분 휴식이고 약 300㎞ 달리고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는다. 소련은 1991년 해체 후 15개 독립국으로 분열됐다. 스탈린이 1922년 소련 설립 후 70년 만에 해체된 것이다. 해체 이후 현재의 러시아 면적은 1천710만㎢다. 남한 면적(10만㎢)과 비교할 때 대단히 넓은 영토다. 대부분 영토는 광대한 시베리아의 대평원이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넓은 캐나다 영토의 1.7배다. 러시아는 250년 동안 징기즈칸 몽골족의 지배를 받았다. 16세기 중반 몽골 지배에서 벗어난 후 시베리아로 동진(東進)정책을 했다. 초기는 우랄산맥 동쪽 산림지대로 모피를 구하기 위해 동진했고 결과적으로 세계 최대 영토 국가가 됐다. 19세기 후반 미국에 알래스카를 팔지 않았다면 어떨지 생각해 본다. 17세기 서유럽의 귀족들의 취향은 모피 옷이다. 러시아의 모피 판매 수입이 한때는 국가 수입의 30%를 차지한 적도 있다고 한다. 초행길 운전에 구글맵, 위성항법장치(GPS)의 도움이 매우 크다. 밤중에 작은 도시 뒷골목에 있는 여관을 찾는 데 구글맵이 없다면 여행은 불가능할 것이다. 구글은 세계화 시대 여행의 가장 훌륭한 동반자다. GPS 애플리케이션(앱) 덕분에 현재 나의 위치를 알려주는 ‘위도, 경도, 해발고도’를 확인하면서 가기 때문에 초행길 불안감이 적다. 시베리아 대평원의 산속 길은 인터넷이 수시로 끊기고 구글맵, 국제전화, GPS가 멈춘다. 인터넷이 멈추면 우리는 문명인(文明人)에서 자연인(自然人)이 된다. 인터넷 연결이 끊기는 것이 처음에는 불안했지만 익숙해지면서 우리를 단순하고 자유롭게 만든다. ■ 싱안링산맥을 넘어 몽골초원으로 들어간다 하바롭스크를 200여㎞로 지나 싱안링산맥을 만난다. 높이는 200m에서 400m로 높지 않지만 산맥을 통과하는 데 한 시간 이상 걸린다. 싱안링산맥을 경계로 동쪽은 여진족의 ‘만주평야’, 서쪽은 ‘몽골초원’의 시작이다. 시베리아 대평원은 동쪽부터 ‘몽골초원, 카자흐초원, 남러시아초원’으로 연결된다. 대초원은 인류 역사를 뒤흔들었던 유목 기마민족 흉노족, 돌궐족, 몽골족 등의 활동 무대다. 싱안링산맥 지나는 도로변에서 현지 주민이 파는 시베리아 야생 꿀 한 병을 샀다. 500㎖ 물병 야생 꿀 한 병이 우리 돈 6천원이다. 봄철 3개월 피는 야생화에서 1년에 한 번만 채취하는 꿀이다. 와일드 베리(wild berry), 야생화꽃으로 만든 꿀이다. 운전 중 뜨거운 물에 타 먹기 위해 한 병을 샀는데 여행 중 감기로 고생할 때 꿀물은 큰 도움이 됐다.

[기고] 현 정치 상황, 이렇게 생각한다

■ 대한민국의 주권(主權)은 국민의 것인가? “지금은 결단의 시간, 국민의 힘으로 정치판 바꿔야”…대한민국 주권과 민주주의, 국민의 손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 이 문장은 대한민국 헌법 정신의 핵심이다.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며, 정치와 권력은 국민의 뜻에 따라야 한다는 선언이자 약속이다. 하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을 보면, 이 중요한 헌법 정신이 제대로 실현되고 있는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대한민국 경제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안개 속에 갇혀 있다. 세계 경제가 위기 속으로 빠져드는 가운데, 한국 경제의 활로는 보이지 않는다. 내수 경기는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5%에서 2.0%로 하향 조정했다. 특히 2025년에는 더욱 암울한 경제 전망이 예고되고 있다. 그나마 자랑이던 반도체와 배터리 산업마저 흔들리며 대한민국 경제는 성장 동력을 잃은 상태다. 골목 경제는 무너진 지 오래고, 국민들은 희망 없는 경제를 바라보며 긴 한숨만 내쉬고 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정치권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국민의 삶을 챙기기는커녕, 오히려 당리당략(黨利黨略)에 눈이 멀어 민생을 외면하고 있다. 정쟁(政爭)은 일상이 되었고, 여야는 서로를 적으로 간주하며 정권 창출에만 몰두하고 있다. 정치인들은 국민의 ‘머슴’ 역할을 해야 맞지만, 오히려 ‘주인 행세’를 하며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고 있다. 집권당은 ‘비상계엄’이라는 초헌법적 수단을 거론하며 대한민국에 혼란을 가중시켰다. 헌법 제77조에 따르면 계엄은 국가 비상사태 시에만 선포될 수 있지만, 현재 상황을 두고 계엄이 필요하다고 동의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거대 야당 역시 다수당의 힘으로 국정 운영을 방해하며 혼란을 조장했다. 주요 국가 관료 임명을 탄핵으로 무산시키고, 법원과 검찰을 압박해 정치적 입지를 다지며 2025년 국가 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 국가 운영에 치명타를 입혔다. 이 모든 혼란은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중계되고 있다. 한때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대한민국이 이제는 후진국형 정치 갈등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국민의 희생으로 쟁취한 민주주의를 정치인들이 망가뜨리고 있는 현실은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 지금은 국민이 행동에 나서야 할 때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정치인들은 국민의 머슴이지 권력의 주인이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정치인들은 본분을 망각한 채 국민 위에 군림하려 하고 있다. 이제 국민이 이들을 심판해야 할 때다. 단순히 제도 개선이나 정책 변화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총선과 대선을 통해 새로운 리더십을 구성하고, 국민의 진정한 뜻을 반영하는 개헌을 통해 정치 체제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정치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국민의 참여와 결단으로 유지되고 발전하는 것이다. 그들은 민주주의 부르짖을 자격조차 없다. 국민이 나서지 않으면 정치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선언한 헌법 제1조의 의미를 다시 묻고, 주권의 실질적 주인이 누구인지 확인해야 한다. 지금은 대통령 한 사람을 탄핵하는 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정치권 전체가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국민이 모두 촛불을 들어야 한다. 국민의 무서운 힘을 보여줄 때다. 국민이 행동하지 않는다면,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절대로 바로잡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결단의 시간이다. 국민의 힘으로 정치판을 바꾸고, 새로운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어가야 한다. 대한민국의 주권과 민주주의는 국민의 손에 달려 있다. 대한민국의 진정한 주인으로서, 이제 행동을 시작해야 한다. ■ “탄핵, 견제와 균형을 상실한 대한민국호의 침몰” 현재 대한민국은 또다시 대통령 탄핵이라는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참담함으로, 어떤 이들에게는 축제로, 어떤 이들에게는 대통령실이 곧 손에 잡힐 듯하니 저마다의 이유로 모두 탄핵의 가부에 대해 간절함이 하늘에 닿은 것 같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탄핵이 본질이 아니다. 비상계엄은 정상적인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거대 야당이 위법한 탄핵소추를 계속적, 반복적으로 남용하고 예산삭감 횡포를 통하여 사실상 국정의 기능을 마비시켜 온 끝에 공포된 것이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견제와 균형이 깨어지고 거대야당이 국회를 통하여 입법독재를 할 경우 정부의 기능이 얼마나 취약해지며 대통령의 통치권이 얼마나 위기에 처할 수 있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이번 사태의 근본원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대통령을 탄핵함으로써 해결할 수 없고, 제도의 보완과 정치의 쇄신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 비상계엄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불러온 것에 대하여 1차적으로는 대통령에게 책임이 있지만, 거대야당과 여당도 대통령과 함께 국민에게 그 책임을 져야 한다. 국민이 피해자라면 대통령과 여야는 모두 공동가해자인데, 공동가해자가 다른 이에게 책임을 떠넘긴다고 해 자신의 책임을 면할 수 있는가? 대통령의 비상계엄 공포에 대한 적법성과 정당성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법적 책임과 정치적 책임은 분명히 구분돼야 한다. 정치적인 책임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법적 책임을 논함에 있어서는 법과 절차에 따라야 한다. 비상계엄이 법적 절차에 따라 정당하게 행사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법적 심사 대상이라는 주장과 고도의 통치행위로서 사법심사의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을 수 있고, 형사절차에 있어서는 무죄추정의 원칙과 증거재판의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그럼에도 모든 논의와 원칙을 무시하고, 면밀한 조사절차도 없이 한 나라의 대통령을 내란죄로 단죄하는 것이 법치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여론재판으로 국민을 선전선동하고, 사법부의 판단을 흔들어 사법부를 압박하고자 한다면 이는 법치주의를 무시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이것이야말로 내란을 선동하는 행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탄핵을 통한 해결은 일시적인 정치적 해법에 불과하다. 이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다수당의 횡포를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거대 야당이 자신의 권한을 정당하게 사용하는 정치쇄신을 하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은 먼저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고, 국회는 위법한 탄핵소추를 모두 취하하고, 예산을 정상으로 돌려놓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탄핵에만 몰입하지 말고 먼저 민생을 돌보는 것이 국회가 해야 할 일이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경기만평] 갈때 가더라도...?!

[사설] 수출기업인의 날, 경기도지사 없고 표창장만 온다

수출 기업에 힘을 보태는 방법은 많다. 직접적으로는 경영에 도움을 주는 길도 있다. 지방 세제 혜택, 금융 지원 서비스 등이다. 기업 환경을 개선해주는 방식도 있다. 교통 인프라 개선, 기관 협조 체계 등이다.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역할이 있다. 수출 기업에 대한 독려다. 1970년대 이래 이어온 수출의 날이 그런 목적이다. 대통령이 직접 수출 기업을 격려했다. 수출 입국에 대한 정책 의지를 보여주는 자리였다. 경기도에도 그런 행사가 있다. 매년 연말 개최되는 경기도 수출기업인의 날이다. 올해도 수원특례시 한 호텔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다양한 표창이 있었다. 수출 시장에 뛰어든 우수기업 79개사가 ‘수출 프론티어기업’으로 선정됐다.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한 기업 및 유관기관 55곳도 각 부처 표창을 받았다. 무엇보다 도내 수출 기업 14개사가 받은 경기도지사 표창이 박수를 받았다. 해당 기업에는 도의 해외 마케팅 지원 사업 신청에서 가산점 특전도 주어진다. 뒤늦게 참석자들의 아쉬움이 전해졌다. 김동연 경기지사의 불참이다. 계엄, 탄핵 등 최근 정국 상황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김 지사의 경우는 다르다. 행사 불참이 올해만의 얘기가 아니다. 2023년 12월 행사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 전해인 2022년 12월 수출기업인의 날에도 김 지사는 없었다. 두 번 모두 당시 경제부지사가 참석했고 도지사 표창을 대리 수여했다. 도지사 불참은 어느덧 관례가 되는 듯 하다. 올해는 경제부지사도 안 보였다. 사실상 행사 주관을 도청 담당 국장이 전담했다. 행사와는 별도로 12·3 계엄 사태로 인한 현장의 고충을 논의하는 간담회도 이날 있었다. 이 역시 실무 국장이 진행했다. 역대 수출기업인의 날이 이렇지는 않았다. 민선 6기 남경필 지사는 수출기업인의 날 행사에 빠지지 않았다. 그보다 앞선 민선 4·5기 김문수 지사도 늘 행사에 참여해 일일이 표창하고 격려했다. 그래서 기업인들의 아쉬움이 더 크다. 민선 8기 경기도의 역점 사업이 외자 유치다. 100조원을 목표로 제시해 놓고 있다. 올 상반기까지 69조2천억원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마찬가지로 지역의 부를 늘리는 것이 수출이다. 2023년에만 1천298억달러를 벌어들였다. 작은 부품을 팔아 실적을 보태는 기업들도 많다. 우리 경제에 수출이 갖는 중요성은 달라지지 않았다. 산업화 시대나 4만달러 시대나 여전히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다. 격려와 관심이 필요하다. 협회 관계자는 의견 개진조차 조심했다. “경기 북부에 비중이 있으셔서...”라며 말을 아꼈다. 수출밖에 모르는 기업인들의 모습이다. 도지사가 힘을 보태는 모습이 필요하다.

[사설] 이름 짓기에 바쁜 인천교육... 정책의 본질이 먼저다

요즘 인천시교육청의 행보가 겉치레에 치중한다는 지적이다. 뜬금없이 산하기관의 이름을 대거 바꾸는 조례 개정 등이다. 교육감의 역점 시책인 ‘읽·걷·쓰(읽고 걷고 쓰기)’를 남발한다는 푸념도 나온다. 이러다 보니 예산 배정에서도 정작 학교 현장은 외면당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공약 사업에는 새로이 큰돈을 배정하면서 현장의 경상비용은 되레 줄이는 등이다. 인천시교육청의 내년도 세입 예산은 5조2천915억원이다. 올해보다 1천845억원(3.6%) 늘었다. 그러나 일선 학교의 시설개선비는 대폭 줄어들었다. 냉난방비, 화장실 개선 등의 학교 교육여건개선 사업비를 올해 4천억원에서 1천600억원으로 삭감했다. 시립도서관 직원들의 연간 연수 비용도 50만원에 불과하다. 긴축재정을 내세우며 학교 현장 직원들을 위한 예산을 모두 줄인 것이다. 그러나 교육감 공약 사업에는 예산을 아끼지 않았다. 강화도와 영종도의 폐교에 청소년평화교육센터 등을 짓는 사업이다. 신규 사업임에도 이들 2곳 건립에 49억원을 배정했다. 인천시의회 등에서 비판이 나왔다. 교육감 공약 사업 예산은 한껏 올려놓고 학교 현장 예산만 깎았다는 것이다. 정치적 우선 순위의 예산 편성이라고도 했다. 지난주에는 산하기관 이름을 대거 바꾸는 조례안을 인천시의회에 제출했다. 학생교육원을 읽걷쓰교육원으로, 흥왕체험학습장를 읽걷쓰아카데미로 바꾸는 등이다. 해양환경체험학습장을 상상아카데미로, 서사체험학습장을 서사영화아카데미로, 국화리학생야영장을 야생아카데미로 변경하는 등도 있었다. 이름을 바꿔 읽걷쓰 특화 교육을 한다는 취지였다. 현판 교체에만 6천만원이 들어가는 작업이다. 인천시의회에서 비판이 쏟아졌다. “무엇을 하는 곳인지도 모를 맥락 없는 이름 변경”이라는 것이다. 야생아카데미는 야생동물이 있다는 의미인지 이해가 안 된다고도 했다. 과도한 정책홍보, 외래어 남용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인천시교육청의 새로운 이름 짓기는 이전에도 있었다. ‘책날개’는 독서나 출판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인천시교육청의 사이트였다. 지난 4월 이를 읽걷쓰플랫폼으로 바꿨다. 기존 사이트에 둘레길 정보만 추가해 명칭을 바꾼 것이다. 이때도 아무 데나 ‘읽걷쓰’를 갖다 붙인다는 지적이 나왔다. 흔히 교육을 ‘백년지대계’라 한다. 시류에 흔들림 없이 자연과 사회의 본질 탐구에 천착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때 그때 이름을 바꿔 가며 특정 교육 소신에 편중하는 것은 백년지대계가 아니다. 이름 짓기보다는 정책의 본질에 집중하는 노력이 앞서야 할 것이다.

[지지대] 시스템을 재설치하시겠습니까?

컴퓨터를 운영하는 운영체제(OS)가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라고 자꾸 권한다. 지금 쓰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더 좋은 게 있다며 유혹한다. 쓸지 말지 고민이라 요청을 묵살하고 있다. 컴퓨터만 운영체제가 필요한 게 아니다. 컴퓨터를 만든 인간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는 더 오래되고 정교한 운영체제, 즉 국가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연결돼 있다. 법과 법이 규정한 국가, 공동체 의식, 도덕규범, 문화 등이 결합됐다. 한국 시스템이 어떤 모습인지 알고 싶다면 밖으로 나가 보면 된다. 공항에서 출국심사를 하면 한국 시스템을 떠나는 것이고, 해외 공항에서 입국심사를 하면 그 나라 시스템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 나라 시스템 안에서 손님으로 머물다 보면 한국 시스템이 보인다. 귀국 비행기는 시스템과 시스템 사이를 비행한다. 입국하면 다시 한국 시스템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2024년 말, 비상계엄에서 시작된 정국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그러는 사이 국가의 운영체제가 우리에게 묻고 있다. “시스템을 재설치하시겠습니까?” 바꾼다면 무엇을 바꿔야 하나. 우리 시스템의 근간인 헌법까지 바꿀 수 있다. 헌법의 최신 버전은 1987년 판이다. 바꾸자는 목소리는 전부터 있었다. 바꿀까, 말까. 고민하다 어쩔 수 없이 바꿔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국가 시스템 재설치는 이미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컴퓨터 재설치는 몇 시간이 걸리지만 우리 사회의 시스템 재설치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컴퓨터는 운영체제를 재설치하고 재부팅하는 동안 아무것도 못 한다. 인간 사회는 그렇지 않다. 변화가 일어나도 개인의 삶은 영위되고 조직은 운영된다. 돈은 흘러가고 경제는 돌아간다. 앞으로 선택은 우리에게 달렸다. 내 컴퓨터의 업그레이드 선택은 내게 달렸고. 옳은 선택이길 빈다.

[세상읽기] ‘디지털헬스케어법’ 미래를 준비하는 첫걸음

디지털헬스케어는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의료 서비스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꿀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의료 데이터를 분석하고 활용해 맞춤형 치료와 예방 중심의 의료 서비스를 실현하는 디지털 기술 시대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최근 국회에서 의료 데이터 활용을 촉진하기 위한 디지털헬스케어법이 발의됐다. 이 법안은 환자가 동의할 경우 의료정보를 영리 기업에 제공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의료 데이터 활용의 새로운 시대를 열 잠재력을 지닌 이 법안은 국민 건강 증진과 헬스케어 산업의 혁신을 동시에 도모하려는 야심 찬 계획이다. 그러나 계획이라는 기회는 책임 위에서만 완성된다. 의료 데이터라는 민감한 정보를 다루는 이 법안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으려면 신뢰를 바탕으로 한 명확한 기준과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 디지털헬스케어법의 핵심은 의료 데이터를 활용해 개인 맞춤형 의료와 공공 보건의 질을 높이는 데 있다. 의료 데이터의 활용은 예방적 건강관리, 정밀 의료 진료, 신약 개발 등에서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의료 데이터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개인의 민감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활용할 경우 개인의 존엄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료 데이터의 활용은 보안과 신뢰 체계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법안에서 제안된 가명 처리 데이터 활용과 제3자 전송 요구권은 데이터 보호와 활용 간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과제다. 유럽의 일반개인정보호법(GDPR)은 철저한 데이터 보호를, 미국의 건강보험 양도 및 책임에 관한 법(HIPAA)은 민간과 공공 협력을 강조하며 의료 데이터를 활용하고 있다. 일본은 익명 의료 데이터를 공공 데이터로 활용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한국은 전 국민 건강보험 시스템과 높은 정보기술(IT)을 감안할 때 독자적인 디지털헬스케어 모델을 구축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러나 의료법, 개인정보보호법, 생명윤리법 간의 중첩과 모호성을 해결하고 효율적이고 투명한 데이터 활용 구조를 만드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또 법안이 성공적으로 작동하려면 데이터 전송, 보유, 활용 기준을 명확히 하고 이를 투명하게 운영해야 한다. 개인정보보호법(2023년 3월 개정)과 보험업법(2023년 10월 개정)은 의료 데이터 전송을 허용했지만 활용 범위가 불명확하다. 디지털헬스케어법은 이를 보완해야 하며 환자 주권 강화를 통해 환자가 자신의 의료 데이터를 명확히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디지털헬스케어법은 한국 의료 시스템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혁신적 도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혁신은 책임 있는 실행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 이 법이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공공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되고 실행돼야 하는 이유다. 의료 데이터 활용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며 국민의 신뢰와 사회적 합의를 기반으로 데이터를 안전하게 활용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신뢰가 혁신을 이끈다.’ 디지털헬스케어법이 의료 데이터 활용의 모범 사례를 만들고 나아가 글로벌 의료 환경의 선두주자로 도약할 초석이 되길 기대한다. 데이터 활용의 혁신적 잠재력을 국민의 신뢰와 책임감으로 완성해 나가는 것이 우리가 디지털헬스케어법으로 열어야 할 미래다.

[기고] 빅블러 시대, 농업의 첨단화가 열린다

영역 간 경계가 흐려지는 현상을 ‘빅블러’라고 한다. ‘빅(big)’과 ‘블러(blur)’의 결합으로 말 그대로 경계가 흐릿해지는 것을 뜻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이 용어는 새로운 경제 트렌드로 자리 잡으며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디지털 전환과 정보통신기술(ICT)의 급속한 발전이 그 배경이며 특히 온·오프라인의 경계가 희미해지면서 소비자들은 양쪽을 넘나드는 ‘옴니슈머(Omni sumer)’로 변화하고 있다. 이에 맞춘 다양한 마케팅 전략도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전통적인 농업에도 영향을 미친다. 농업은 이제 디지털 산업과 바이오 경제의 영역으로 확대되면서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농업이 연결 경제 속에서 발전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뒷받침돼야 한다. 첫째, 스마트농업의 도입이다.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드론, 빅데이터 등의 디지털 기술을 농업에 적용하면 생산성이 크게 향상되고 관리 효율성도 증대된다. 또 스마트농업은 기후변화와 자원 부족 문제에 대한 효과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둘째, 바이오 경제와의 융합이다. 바이오 기술을 통해 기능성 종자, 친환경 농약, 대체식품 등 고부가가치 제품을 개발함으로써 농업은 단순히 식량을 생산하는 차원을 넘어 환경 보호와 건강 증진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제공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세계시장에서도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갈 전문 인재의 양성이다. 산학연 협력을 통해 이론과 실습이 결합한 교육 시스템을 구축하고 디지털 및 바이오 기술을 활용한 농업 인재를 배출해야 한다. 이는 지속가능한 농업 혁신을 위한 핵심 과제다. 경기도는 이러한 변화를 선도할 충분한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과 바이오 농업을 결합해 경쟁력 있는 농업 모델을 구축한다면 단순한 농업 혁신을 넘어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끄는 지역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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