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열매가 인상적인 죽절초, 줄기가 대나무 마디를 닮아 붙여진 이름으로 고급 실내식물로 개발되고 있다. 추위에 약해 남부에서만 밖에서 월동한다. 남부지역은 정원용 소재로 아주 훌륭하다. 중부에서는 잎과 열매를 보는 실내 관엽식물로 고급 소재다. 줄기가 곧고 열매가 아름다워 꽃꽂이할 때 소재로도 쓰인다. 추위엔 약하지만 음지와 염해에 강해 남부의 그늘진 곳에서 대량생산이 가능하다. 맹아력은 보통이고 생장속도는 느린 편이다. 겨울부터 봄까지 씨앗을 뿌려 번식하며 초여름 장마 때 가지를 잘라 삽목으로 번식한다. 홀아비꽃댓과에 속하는 상록관목이다. 제주도 숲속 반그늘진 곳에 자생한다.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화환이 줄줄이 낯선 길을 안내한다 웃는 사람은 있어도 우는 사람은 없는 장례식장 얼싸 안고 안부 묻기에 바빠 국화 꽃 속 영정은 덩그러니 외롭다 이승과 저승 그 거리가 얼마 길래 검은 레이스 드레스 양복 주머니에 달랑 삼베 코사지 식어버린 체온위로 바람이 운다 무아의 경지에서 풍경이 운다 임종순 시인 ‘문파문학’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원문학아카데미 회원 동남문학상 수상 시집 ‘풍경이 앉은 찻집’
경기도박물관은 경기도민과 세계인의 평생 놀이터다. 달라진 문화복지 환경에 걸맞게 박물관은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공급자 중심에서 수용자 중심으로 사고와 태도를 바뀌기 위해서는 사물을 보는 시각의 변화가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이것은 학예사가 완전히 관객의 입장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패러다임 자체가 바뀐 프로그램의 발명이 요구된다. 새해 1월10일부터 벌어지는 ‘박물관영화제’가 그것이다. 경기도박물관이 ‘전시X영화’의 복합문화공간으로 변화하는 첫걸음이다. 박물관과 영화가 만나는 본격적인 ‘제(祭)’라 할 때는 ‘유물+영화’가 아니라 ‘유물X영화’다. 평소 전시와 영화는 남남이다. 하지만 박물관영화제에서는 서로 다른 장르가 만나 자신들도 몰랐던 이야기를 하면서 ‘박물관영화’라는 제3의 언어를 창출한다. 예컨대 경기도박물관의 독보적인 유물인 초상화(肖像畵)와 영화 ‘관상’과의 매칭이다. 개막작인 ‘관상’의 마지막 지문과 대사는 이렇다. 내경: (하하) 눈이 예리하십니다! 나도, 사공의 관상을 한번 봐드리이까? 사공: 아이고, 제가 관상을 본 건 아닙니다! (…) 그 관상이라는 게 좋으면 자만해지고 나쁘면 근심이 되는 거 아닙니까? 차라리 모르고 사는 게 속 편합니다! 내경: (하하) 그 말이 맞네요. 사공: (미소) 나으리 상은.. 어떻다고 봐야 합니까? 내경: (당황) 내 상 말이오? 글쎄, 내 상판은 한 번도 눈여겨본 적이 없는데…. 시선을 먼 산에 둔 채 삐걱삐걱 말없이 노 젓는 사공. 난간에 기대어 잔잔한 초록색 강물에 얼굴을 비춰보는 내경. 바람에 물결이 일렁이자 내경의 얼굴이 흐르듯 지워져 버린다. 대사 모두가 관상 이야기이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마지막 지문이다. 길흉화복을 점치는 관상의 관점에서 ‘물결’에 눈이 가지만 내면을 그려내는 초상화 입장에서는 물결을 일렁이게 하는 동인으로서 ‘바람’에 방점이 찍힌다. 마음이 얼굴인 이유다. 초상화의 생명인 ‘전신사조(傳神寫照)’, 즉 얼굴 그 자체만이 아니라 얼굴로 정신을 그려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여기서 더 큰 반전은 ‘내경의 얼굴이 흐르듯 지워져 버린다”는 대사다. 이 지점에서는 관상도 초상도 모두 뛰어넘는 사유가 읽힌다. 색즉시공(色卽是空)의 불가의 가르침으로 도약이다. 금강경에는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가 다 허망하다. 만약 모든 형상을 형상이 아닌 것으로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는 법문 그대로다. 이렇게 영화 ‘관상’과 경기도박물관의 초상화를 동시에 오버랩할 때 영화도 초상화도 해석의 폭은 무한대로 넓고 깊어진다. ‘박물관영화’의 새로운 언어 탄생이다. 박물관에서 보는 ‘관상’은 계유정난을 가상의 관상가 내경을 개입시켜 만든 ‘팩션’사극 영화라기보다 결국에는 현상이 아니라 실상을 관하라는 심오한 철학영화로 읽힌다.
2025년 을사년(乙巳年)을 앞두고 불확실성의 안개가 부동산시장을 덮쳤다. 집값이 더 올라간다는 상승 요인과 떨어진다는 하락 요인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는 와중에 미국의 트럼프 불확실성과 대통령 탄핵의 국내 정치 불확실성이 더해지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을 마주하고 있다. 2024년 부동산시장의 특징은 서울과 지방, 아파트와 비(非)아파트의 극심한 양극화라 할 수 있다. 지방은 해소되지 않은 미분양 부담과 경기 침체로 2025년에도 어려움이 예상되며 빌라 등 비아파트는 전세사기 여파로 전세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서 역시 쉽게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살아있는 서울 아파트시장은 꽃피는 봄에 거래량이 늘어나기 시작해 7, 8월 여름 큰 폭으로 증가했다가 9월 이후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다시 줄었다. 거래량이 줄었다는 것은 집을 사려는 매수자는 관망으로 돌아섰고 집을 팔려는 매도자는 호가를 떨어뜨리지 않고 있다는 의미로 상승 요인과 하락 요인이 힘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 집값 상승의 요인부터 살펴보면 2026~2027년 입주 물량 부족과 전셋값 상승,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대출금리 하락, 환율 상승으로 인한 분양가 상승, 여전히 꺾이지 않은 서울 아파트 선호 현상 등을 꼽을 수 있다. 집값 하락의 요인은 경기 침체 우려와 2024년 7~8월 단기 급등 피로감, 여전히 높은 집값, 대출 규제 등이며 추가로 미국 트럼프와 국내 정치 불확실성까지 발생했다. 우리가 운전하다 안개가 끼면 일단 멈추고 안개가 제거될 때까지 기다리듯이 부동산시장을 덮친 불확실성이 제거되기 전까지는 시장의 수요자들은 일제히 관망으로 돌아서면서 거래는 사실상 멈출 것이다. 트럼프 불확실성의 실체는 고금리, 강달러에 대한 우려와 걱정이다. 트럼프 2.0 시대가 시작되면 높은 관세 부과로 미국의 수입 물가가 올라가면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기준금리 인하에 제동이 걸리거나 최악의 경우 기준금리를 올릴 수도 있다. 우리나라 역시 환율이 요동을 치면서 수입 물가가 올라가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리는 데 상당한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트럼프 1.0 시절 당선 이후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금리가 급등세를 보이기도 했지만 임기 동안 오히려 금리와 달러 가치는 하락했고 서울 아파트 가격은 올랐다. 사업가 출신은 트럼프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 협상용으로 관세정책을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갑자기 발생한 국내 정치 불확실성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 2016~2017년 탄핵 시절로 잠시 돌아가 보자. 당시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2016년 11월부터 2017년 3월까지 뚝 떨어졌다가 4월부터 다시 빠르게 회복했다. 반면 당시 실거래가격 매매 지수를 보면 살짝 조정을 받다가 불확실성 제거 후 다시 상승 곡선을 그렸다. 불확실성이 덮친 4개월 정도 투자심리 위축으로 거래량은 크게 줄었지만 실제 매매가격은 큰 폭으로 떨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2025년 1분기 탄핵이 결정되고 2분기 조기 대선이 실시돼 상반기 국내 정치 불확실성이 제거되면 더 이상 불확실성의 안개는 사라지고 기준금리의 방향에 따라 상승과 하락 요인의 팽팽한 균형을 깨뜨릴 것이다. 기준금리를 두세 차례 인하를 한다면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 부족과 전세 상승, 분양가 상승 등으로 인한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하반기 거래량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기준금리 인하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국내 정치 불확실성이 하반기로 전이돼 극심한 혼란의 상황이 이어지면 경기 침체 공포가 덮치면서 하반기 추가 하락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25년 서울 아파트 시장은 상저하고(上低下高·상반기 약세 하반기 강세) 가능성이 높다. 불확실성과 금리 흐름에 따라 하반기까지 약세가 이어질 수 있으나 어차피 100% 완벽한 타이밍을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엔비디아, 테슬라 주식을 5년 전에 샀더라면 지금쯤 부자가 됐을 텐데, 이런 말을 하는 분들이 많은데 막상 5년 전에 샀다면 지금까지 보유할 확률은 10%도 되지 않는다. 장기 보유가 그렇게 어렵다는 말인데 부동산은 장기 보유가 가능하다. 실수요자들의 평균 주택 보유 기간은 7년이 넘는다. 최적의 타이밍에 매수를 하지 못했더라도 7년 후에는 집값이 상승했을 가능성이 높다. 2025년 상반기가 내 집 마련의 좋은 타이밍이 될 수 있다. 집값 떨어졌을 때 사야지 말은 쉽지만 막상 집값이 내려가면 투자심리가 위축으로 무서워 못 산다. 필요할 때 내 집 마련을 하신 분들이 언제나 승자였다. 하지만 위험 관리가 되지 못한 내 집 마련은 안 하는 만 못할 수도 있다. 2022년 하반기에서 2023년 상반기 1차 하락 시절 급매로 던진 분들 대다수가 자기자본 비율이 낮아 갑작스러운 금리 인상에 속수무책으로 흔들렸기 때문이다. 언제나 예상치 못한 변수는 생길 수 있다. 당초 계획보다 대출이자가 더 올라가도 3년 정도는 버틸 수 있는 위험 관리는 내 집 마련의 최소한의 기본조건이다.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착륙 중이던 여객기가 29일 추락했다. 태국 방콕발 제주항공 7C2216편으로 활주로에 착륙을 시도 중이었다. 여객기는 화염에 휩싸였고 동체는 두 동강이 났다. 사고기에는 승객 175명과 승무원 6명 등 181명이 타고 있었다. 승무원 2명은 구조됐다. 안타깝게도 나머지 대부분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소방 당국도 이날 오후부터 수습 국면으로 전환했다. 우리 역사에 또 한번 기록될 참사다. 주목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 사고 직후부터 여객기의 문제를 암시하는 증언이 쏟아지고 있다. 이틀 전인 지난 27일, 같은 사고기의 이상을 목격한 전언이 있다. ‘시동이 몇 차례 꺼지는 현상이 있었다’는 탑승객의 제보다.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이 같은 증언을 했다. 항공사 측은 “별 문제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당시 방콕에서 출발하던 비행기는 1시간 지연된 뒤 출발했다. 항공사 측은 출발 지연도 공항 문제로 설명했다. 사고 직후 탑승객이 보낸 것으로 알려진 카카오톡 내용도 있다. 가족이 공개한 카톡에서 탑승객은 새가 날개에 끼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새가 날개에 껴서”, “착륙 못하는 중”이라고 말하고 있다. 기다리던 가족이 “언제부터 그랬는데”라고 묻자 “방금”이라고 대답했다. “유언해야 하나”라는 말로 톡은 끝났다. 여객기 내에 탑승 중인 승객은 새 끼임을 쉽게 알 수 없다. 기내 방송으로 관련 내용을 설명들은 것이 아닌가 싶다. 소방본부가 확인해준 정황도 있다. 전남소방본부는 “랜딩기어 쪽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고 밝혔다. 당시 목격자와 공항 관계자 등 다수가 보내온 신고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29일 오후 들어 가장 유력한 원인 추정은 조류 끼임에 의한 한 쪽 랜딩 기어 고장이다. 하지만 다른 쪽 날개에서도 이상 현상이 목격됐다는 주장이 있다. 향후 조사 과정에서 확인하고 설명해야 할 부분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정부가 오전 9시50분께 정부서울청사에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열었다. 주재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가 했다.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 장관도 권한대행이고, 치안 유지 책임자인 경찰청장도 직무대행이다. 이런 저런 정치적 견해가 생길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 모든 정치 견해보다 엄중한 이번 여객기 참사다. 179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된 참담한 현장이다. 철저한 조사와 수습 행정만이 필요하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했다. 여야가 합의해 안을 제출할 때까지 ‘보류하겠다’고 밝혔다. 야당은 즉각 탄핵에 나서겠다고 밝히고 관련 절차에 돌입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앞서 마은혁·정계선·조한창 후보자 임명안을 처리했다. 27일 오전까지 한 대행의 임명 여부를 지켜보기로 했었다. 하지만 한 대행이 26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임명 보류를 발표하자 즉각 탄핵으로 선회했다. 민주당의 분노는 즉각적이고 격했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권한 대행’이 아니라 ‘내란 대행’이라며 거칠게 비난했다. 사실 민주당으로서도 한 대행에 대한 탄핵은 부담이 있다. 탄핵 남발이라는 계엄 논리에 정당성을 줄 우려가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 정족수를 둘러싼 논쟁도 있다. 재적 의원 과반(151명)과 3분의 2(200명)로 견해가 갈린다. 그럼에도 탄핵을 꺼내들 정도로 반발이 컸다. 담화의 어떤 부분이 그랬을까. 한 대행은 한국 정치의 ‘진영’을 언급했다. 큰일이 닥쳐도 늘 넘어서 왔고 그것은 ‘정치의 힘’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진영의 유불리를 넘어 나라 전체를 생각하는 정치인이 있었다’고 했다. 현 정치 갈등의 근저에 깔린 이념 갈등을 건드린 것이다. 또 과거 정계 거인들을 언급하며 ‘타협하는’ 역사의 교훈을 말했다. 우원식 의장, 이재명 대표, 권영세 비대위원장 지명자를 거명하며 그런 슬기와 용기를 당부하듯 말했다. 헌법재판관 임명 불가의 근거도 조목조목 적시했다. 대행은 대통령의 고유권한 행사를 자제하고 안정된 국정 운영에만 전념하는 것이 헌정 질서의 기본원칙이라고 밝혔다. 여야 합의 없이 임명된 헌법재판관은 단 한 명도 없었음을 강조했다. 최근의 정치 상황에 대한 의견도 피력했다. 헌법재판관 충원 문제에 대해 “여야가 불과 한 달 전까지 다른 입장을 취했다”며 “이 순간에도 정반대로 대립하고 있다”고 비교 설명했다. 표현의 완곡함 속에 하고 싶은 말은 모두 쏟아낸 듯하다. 특히 눈길이 가는 부분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된 언급이다. “야당은 여야 합의 없이 헌법기관 임명이라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을 행사하라며 대통령 권한대행을 압박하고 있다”며 “개인의 거취나 영역은 하등 중요하지 않다고 진심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야권의 탄핵 추진을 그대로 맞겠다는 노골적인 선언이다. 이 부분이 민주당과 정면으로 충돌한 지점으로 보인다. 결국 탄핵으로 가는 듯하다. 직을 던진 한 대행과 칼을 빼든 민주당. ‘한덕수 탄핵’은 ‘윤석열 탄핵’과 또 다르다. 그래서 이를 평가할 여론의 향배도 앞서 적기 어렵다.
김동연 경기지사가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와 만나 현안을 논의했다. 24일 오후 회동한 두 사람은 최근 한국 정국에 대해 얘기했다. 김 지사는 골드버그 대사에게 한국에 대한 흔들림 없는 신뢰와 지지에 감사를 표했다. 첨단산업 교류 등 경제 협력에 긴밀히 소통해 나갈 것도 약속했다. 또 한반도 평화 안정을 위한 한미 동맹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뜻을 함께했다. 골드버그 대사는 하루 전인 23일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났다. 김 지사는 24일 영국 대사관도 방문해 콜린 크룩스 주한 영국대사를 만났다. 김 지사가 작금의 정치 혼란을 한국이 민주적 방식으로 해결 중임을 설명했다. 크룩스 대사도 한국의 헌법적 절차가 진행되고 있음을 평가했다. 한영 양국 간 글로벌 파트너로서 긴밀히 협조해 나갈 것을 기대한다고도 했다. 두 사람은 특히 기후 변화 대응과 첨단산업에서 지속적인 협력을 유지하자고 합의했다. 계엄 이후 크룩스 대사가 이 대표와 만난 적은 없다. 국민의힘에서는 권성동 원내대표가 23일 골드버그 대사와 만났다. 김 지사는 여야 정당을 대표할 직위를 가지고 있지 않다.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할 위치에 있지도 않다. 그럼에도 핵심 우방이라 할 미국 및 영국대사와 잇따라 회동했다. 중앙정치와 다르고, 광역자치단체장과도 다른 행보다. 국내 정치의 현실에서 차별화하려는 김 지사의 의지가 반영된 듯 보인다. 경제 전문가로서 국익까지 챙기는 국가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 주려는 것 같다. 김 지사의 이런 차별화는 이미 계엄 상황에서도 목격됐다. 계엄 선포 하루 뒤인 4일 2천400명의 외국인에게 서한을 보냈다. 외국 지도자, 각국 대사, 투자 기업 등 김 지사와 ‘친분’ 있는 인사들이다. 환율·주식 시장이 충격에 빠져 있던 상황이었다. 당시 서한에서 김 지사는 ‘안심해도 좋다’고 설명했다. 계엄 선포 직후 가장 큰 우려는 국제 신인도 추락이었다. 모두가 계엄 파국에 빠져 있을 때 그가 보였던 것이 바로 외교 경제인맥 동원이었다.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다고 한다. 서한을 받은 외국 인사들의 답장이 소개됐다. 브루노 얀스 벨기에대사는 “지사님의 신속하고 투명한 상황 대응에 깊이 감사하고 있다”고 했다. 페터르 반 데르 플리트 주한 네덜란드대사도 “연락을 주셔서 감사하다”는 답장을 보냈다. 클라우스 슈바프 세계경제포럼(WEF) 회장은 “사려 깊은 서한과 굳은 헌신에 깊이 감사드린다”는 뜻을 인편에 전했다. 김 지사가 서한으로 보여준 무관(無官) 외교의 한 단면이다. 트럼프 리스크가 기업을 옥죄고 있다. 경제단체 회원들이 미국까지 날아갔다. 환율·주식 시장의 불안이 계속 이어진다. 자본의 탈(脫)한국 현상은 그래도 계속된다. 국민 걱정도 서서히 내수 부진과 수출 위기로 옮아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치는 여전히 내전 중이다. 외교장관까지 국회에 앉혀 놓고 말싸움 중이다. 이제 누구라도 나서 외교를 말하고 챙겨야 하지 않겠나. 김 지사의 외교 행보가 특별하게 보이는 것도 이런 때문일 것이다.
식물과 동물은 처음부터 현재의 형태로 만들어졌을까. 창조론의 얼개다. 종교의 영역이다. 반론도 있다. 환경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해 간다는 이론이다. 진화론이다. 과학의 영역이다. 진화론이 본격화된 시점은 19세기 중반이었다. 그 당시를 소환해 보자. 범선 한 척이 닻을 올렸다. 남미와 태평양이 목적지였다. 지질 조사와 해역 탐사 등을 위해서였다. 영국의 플리머스 항구에서 출항했다. 배의 이름은 비글호였다. 사냥개에서 유래됐다. 길이 27.5m에 무게는 242t이다. 5년간의 항해를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이 범선의 이름이 길이 남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 생물학자 찰스 다윈이 타고 있어서였다. 승선 당시 다윈의 나이는 22세였다. 의학에 싫증을 느껴 박물학과 지질학, 신학을 공부했다. 그는 4년10개월을 남미와 태평양, 호주의 거친 바다와 섬들을 오가며 지질학과 생물학에 푹 빠졌다. 다윈은 귀국 후 3년이 지나자 창조론에 도전하는 저술을 내놨다. 진화론의 본격 출범이었다. 물론 출간과 동시에 논란에 휩싸였다. 그의 나이 50세에 발표된 ‘종의 기원’은 다윈을 뉴턴과 코페르니쿠스에 버금가는 학자 반열에 올려 놓았다. 비글호도 눈길을 끌었다. 진수된 해는 1820년. 영국은 비글호와 동일한 제원인 ‘체로키급’ 범선을 117척이나 건조했다. 척당 건조비로 7천800파운드가 들어간 체로키급은 지구촌 해양을 누비며 조사하고 다녔다. 대영제국의 척후병이었다. 제국의 확장을 목적으로 건조돼 자연과학사에 이름을 남겼다. 그러다 1870년 고물상에게 불하돼 해체됐다. 하지만 배의 이름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비글이란 이름의 영국 해군 함정만 8척이다. 미국과 러시아, 중국의 우주 개발에 맞서 유럽연합이 지난 6월 쏘아 올린 화성 탐사선 이름도 비글호다. 1831년 12월27일 출범한 범선 한 척이 진화론을 대세 이론으로 만들어 냈다. 역사의 엄중한 무게가 느껴진다.
독일의 연금술사이자 약사인 헤링 브란트는 1669년경에 ‘인(燐)’을 발견한다. 인은 최초로 발견된 자체발광 물질이다. ‘포스포러스’라 불리는 인의 영문 명칭에도 그런 의미가 담겨 있다. 단어 맨 앞에 자리한 ‘포스(phos)’라는 말이 그리스어로 ‘빛’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늘 사용하는 포토그래프의 ‘포토’도 포스에서 온 말이다. 연금술은 물질 안에 본질적인 에너지가 숨어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숨겨진 에너지는 불완전한 물질을 완전한 상태로 바꿀 때 나온다. 연금술적 관점에서 볼 때 불완전한 소변을 완전한 인으로 바꿀 때 빛이 나는 것은 그래서 당연한 일이다. 이때 불은 그 빛을 해방하는 도구가 된다. 불은 불순물을 제거해 순수한 본질만 남기기 때문이다. 비금속인 인과 달리 금속인 철은 상대적으로 녹이 스는 불완전한 물질이다. 연금술에서 혼돈과 어둠의 상태를 뜻하는 니그레도(부패, 흑화) 단계는 그러한 불완전함의 시작을 나타낸다. 불을 만나기 전의 철은 불완전한 혼돈과 어둠의 상태 그 자체를 의미한다. 녹이 슨 철의 붉은색은 그래서 인간의 세속적이며 불완전한 측면을 더욱 강조하는 은유가 되기도 한다. 전쟁의 신이면서 농업의 신이기도 한 마르스(mars)의 이름이 철을 상징하게 된 이유는 철은 불을 만나면 유용한 농기구가 될 수 있고 치명적인 전쟁도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대인들에게 붉게 빛나는 별로 관찰됐던 행성의 이름을 마르스를 따 ‘마스’라고 한 것은 불완전한 철이 지닌 세속적인 의미와 더 관련이 있어 보인다. 한자식 표기인 화성에 ‘불 화(火)’자가 있는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해 볼 수 있겠다. 결국 인은 발광체의 줄기 물질이 됐다. 이를테면 1966년 닉 홀로냑 주니어는 발광다이오드(LED)를 발명해 특허권을 취득했고 1973년 에드윈 챈드로스는 야광봉을 발명해 특허권을 얻었다. 거기에는 모두 인으로 개발한 새로운 물질이 관여한다. 애초에 군사 및 재난, 조난의 응급 구조를 목적으로 발명된 취지와 달리 야광봉은 1980년대 나타나기 시작한 ‘레이브 신(Rave Scene)’이라는 파티 열풍에 휩쓸려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레이브 신이란 어떤 장소에서 많은 사람이 하우스 음악에 맞춰 소리도 지르고 노래 부르며 춤도 추는 대규모 이벤트 혹은 그 파티 현장을 말한다. 영국에서 레이브 신은 매우 부정적인 의미로 통용되지만 혹자에 따르면 이는 결코 무의미한 쾌락적 현실 도피가 아니라 레이브 경험이 주는 연결성, 의식의 변화된 상태, 유토피아적 사회 모델의 구체화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마치 민주주의에서의 집회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듯한 이 주장은 레이브 현상이란 현대 사회의 새로운 부흥운동임을 증언한다. 2024년 12월, 한국에서 야광봉은 LED를 장착한 응원봉이 돼 민주주의의 빛을 강하게 드러냈다. 그 빛은 전쟁의 신 마르스의 이름에서 파생된 또 다른 말, ‘마셜’(martial)이라는 용어에 ‘로우(law)’라는 말이 붙을 때 변질된, 다시 말해 농업의 신은 죽고 전쟁의 신만이 살아남아 그 위세를 떨치려는 권력의 니그레도 단계를 마주하면서 더 밝아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 빛은 불이 돼 부패한 녹슨 철(mars)을 끓이고 태워 버렸다. 응원봉의 빛이 흑화한 그 불순물(martial law)을 불태우자 완전한 민주주의의 불빛은 그렇게 되살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