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경기도 위기 관리가 곧 대한민국 위기 관리다

김동연 경기지사가 긴급 간부 회의를 주재했다. 경기도 경제·안전을 지키기 위한 비상 회의다. 행정 1·2부지사, 경제부지사, 실·국장 등이 모두 참여했다. 김 지사는 이 자리에서 탄핵 정국에도 흔들림 없는 경기도정을 강조했다. 분야별 주요 현안과 예산을 직접 챙기고 결정했다. 도민에게 긴박한 회의 모습이 그대로 전해졌다. 평소엔 자연스러운 모습이지만 지금은 의미가 다르다. 위기에서 묵묵히 지방정부를 지켜가는 책임 행정의 모습이다. 계엄 선포로 촉발된 국가 위기는 이제 탄핵 정국으로 와 있다. 풍전등화와 같은 도민 불안이 벌써 14일째다. 일부 지방정부가 각자 민생 챙기기로 돌아가고 있다. 인천광역시도 일찌감치 유정복 시장이 주관하는 TF를 발족했다. 경상도, 충청도 등 지방에서도 비슷한 노력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경기도의 대처에 좀 더 눈길이 간다. 민생 경제를 살리기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가 마련됐다. 관련 예산 수립 등의 구체적인 방안도 있다. ‘경기 살리기 통 큰 세일’ 확대 실시가 있다. 1월 설을 맞아 지역화폐 인센티브 할인율을 6%에서 10%로 올렸다. 이를 위한 지원 예산 50억원도 책정했다. 통 큰 세일은 지역 축제와 관광을 연계하는 사업이다. 전통시장 상인들이 많이 좋아할 정책이다. 또 있다. ‘힘내GO 카드’에 100억원, ‘부채 상환 연장 특례 보증’에 450억원, 소상공인 대환자금에 35억원을 증액했다. 위기에 빠진 소상공인, 자영업자,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사업이다. 트럼프 리스크에 계엄까지 겹친 외투 기업도 챙겼다. ‘찾아가는 외투기업 현장 간담회’ 운영 계획이다. 이들에게 고마운 건 ‘경기도가 안전한 투자처’라는 메시지를 도가 보증하는 것이다. 외국 기업에 경기도의 보증은 이들에게 더없는 힘이다. 또 하나 짚고 갈 것은 북한 도발에 대비한 점검이다. 경기 북부, 경기 서부는 접경지역이다. 계엄군이 국회를 누빌 때 이 곳 주민들은 북한군을 걱정했다. 대피할 시설 78개를 더 늘리기로 했다. 새로 만든 계획도 있고, 있던 계획을 확인한 것들도 있다. 갈팡질팡 위기에 모두 필요한 조치다. 탄핵 정국은 정치인에는 검증이다. 그 중심에 경제 위기 관리가 있다. 경제부총리 출신 김 지사다. 도민이 거는 기대도 그거다. 어떤 도민은 탄핵 반대를 걱정하고, 어떤 도민은 탄핵 찬성을 걱정하지만 모든 도민은 경제 위기를 걱정한다. 이 모든 도민에게 칭찬받을 일이 경제 위기 극복이다. 전통시장·소상공인·수출기업 지원책을 냈다. 접경지 안보 대책도 냈다. ‘큰 정치’는 멀리 있지 않다. 경기도 관리 능력이 곧 대한민국 관리 능력이다.

[사설] 찬바람 부는 골목 식당... 시민 생업열차 멈춤없이 달려야

지난 2주일여, 모든 이슈가 정치블랙홀로 향했다. 나라 경제와 시민 생업이 걱정이다. 퇴근 길목의 식당가 풍경이 적막하다. 연말 대목인데도 말이다. 가뜩이나 내리막이던 내수 경기 전반이 얼어붙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준비하던 겨울 축제들도 잇따라 취소되고 있다. 인천경제자유구역에도 여파가 닥치고 있다고 한다. 바이오, 반도체 등의 외국 투자 기업들이 몰린 송도국제도시에서다. 송도·청라·영종국제도시 등 인천경제자유구역에는 모두 223곳의 외투기업이 가동 중이다. 여기에도 최근 불확실성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송도의 한 바이오의약 외투기업은 생산라인 확장을 준비해 왔다. 그러나 최근 잠정 재검토에 들어갔다. 미국 본사가 당분간 지켜보자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송도의 한 반도체 패키징 외투기업은 수출 계약에 차질을 빚고 있다. 해외 바이어들과의 1일 단위 반도체 수출 계약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수급 원활화 등을 우려, 제때 계약에 선뜻 나서지 않고 있다. 해외 바이어들이 계엄-탄핵 정국에서 공급이 정상적으로 이뤄질지를 계속 확인해 온다는 것이다. 인천경제청은 이 같은 불확실성이 대외 신인도 하락으로 이어질까 우려한다. 소상공인들은 더 울상이다. 최근 들어 연말 모임 예약 취소가 잇따른다고 한다. 전반적인 소비 위축으로 연말 대목은커녕 극한으로 내몰리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 설문조사가 보여준다. 음식·소매업 등 소상공인 1천630명에게 물었다. 88.4%가 비상계엄 선포 이후 매출이 줄었다고 답했다. 실제 사회 분위기를 의식한 송연회 예약 취소가 심각할 지경이라는 보도도 있다. 공무원 사회에서는 일상적 회식도 꺼려 관가 주변 상권마저 썰렁해졌다. 상권소상공인연합회는 최근 입장문을 내 ‘연말 연시 골목 식당에 많이 와 달라’고 호소했다. 정치권이 여·야·정협의체를 구성해 민생 안정에 나서줄 것도 촉구했다. 연말연시에 맞춰 전국에서 준비해 온 겨울축제들도 올스톱이다. 서울시의 ‘2024 윈터 페스타’, ‘오징어게임2 퍼레이드’ 등이다. 부산 해운대구의 ‘해운대 빛 축제’나 대구의 ‘앞산 크리스마스 축제’ 등도 마찬가지다. 지역 축제는 시민들이 즐기고 지역 상권도 살리는 연례 행사다. 관련 종사자도 적지 않은 만큼 취소·축소가 능사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사회 전반의 가라앉은 분위기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엊그제 정부가 공무원 송년회라도 예정대로 하라고 권고했다. 이대로 가면 서민들에 가장 큰 피해가 간다. 정치보다 더 위중한 시민들 생업 열차만은 멈춤없이 달려야 한다.

[지지대] 삼세번이면 족하다

“삼세번이야.” 국어사전을 살펴보니 삼세번을 ‘더도 덜도 없이 꼭 세 번’으로 정의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삼세번’에 익숙하다. 이는 단판에 결정해 아쉬움을 남기는 대신 세 번의 기회를 더 갖는 삼세번으로 결정하는 것이 좋다고 여긴 이유일 것이다. 생각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꼬마 시절부터 삼세번은 너무 익숙했다. 그 흔한 가위바위보 게임을 할 때도 습관적으로 나오는 말이 “삼세번이야” 할 정도니. 헌정 사상 세 번째로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됐다. 2004년 3월12일 노무현 대통령 선거 중립 의무 위반, 2016년 12월9일 박근혜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한 권한 남용. 8년이 지난 2024년 12월1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이 선포됐다. 탄핵소추안에는 ‘국민주권주의와 권력분립의 원칙 등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비상계엄’이 탄핵 사유로 적시됐다. 이로써 헌정사 세 번째로 현직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됐다. 이후 절차는 자연스럽게 헌법재판소로 넘어갔고 헌재 역시 세 번째로 현직 대통령 탄핵심판사건을 심리하게 됐다. 대한민국도 거대한 격랑 속으로 빠져들며 세 번째 큰 혼돈을 맞게 됐다. 경기 침체, 대외 신용도 하락, 진영 논리로 인해 극단적으로 쪼개진 민심 등 여러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 향방을 가를 헌재 결정만이 남았다. 결론이 어떻게 나든 세 번이면 족하다. 국론의 분열과 혼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더 이상은 안돼”라는 염원을 담은 ‘만세삼창’이라도 외쳐야 하나.

[기고] 산림청 산지규제 완화... 가평 인구소멸 돌파구

가평군이 가진 울창한 산림자원 면적은 82%에 달하며 이는 수십년간 산주와 지역주민 모두의 헌신과 보이지 않는 희생으로 이뤄낸 값진 결과물이다. 최근 발표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산림이 가진 산림 휴양기능, 수원 함양기능 등 다양한 공익가치 평가액은 총 259조원에 이르며 국민 1인당 연간 499만원의 혜택을 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렇듯 숲이 주는 혜택은 상당한 반면 가평군 산림의 52%는 사유림으로 산주가 2만1천여명에 달하고 농가주택 이외에 일반 주택의 건축이 제한되는 보전산지 면적은 84%로 대부분의 사유림은 재산가치가 저평가돼 방치되고 있다. 또 산주 절반 이상이 관외에 거주하는 등 산림자원을 활용한 관심도 또한 매우 낮은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산림청은 수도권 거주자가 인구감소지역으로 이주 시 보전산지 중 임업용산지 내에 주택건축을 허용하도록 산지규제 완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산지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하고 있다. 지금까지 임업용 산지에서는 농림어업인만이 농가주택을 건축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이 개정되면 수도권 거주자가 인구감소지역인 가평군에 거주 목적으로 이주할 경우 자치조례를 통해 임업용 산지에서도 일반인의 주택건축이 가능해진다. 또 산림청은 인구감소지역에서 산지전용허가를 받을 경우 지방자치단체 여건에 따라 자치조례를 마련해 산지전용허가 기준 중 평균경사도, 표고도, 입목축적도 등 주요 기준 일부를 최대 20%까지 완화할 수 있도록 관계 법령을 개정 중이다. 인구소멸지역인 가평군에 대한 산림청의 산지규제 완화 정책은 관외에 거주 중인 산주들에게 산지를 활용한 경제활동 의지를 높이는 한편 재산 가치도 상승시켜 가평군 지역사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인구소멸지역인 가평군으로 이주할 경우 그동안 보전산지 내 규제됐던 주택 건축이 가능해지면서 수도권 거주자들의 귀농‧귀촌을 통한 인구 유입이 예상된다. 산지전용허가 기준 중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평균경사도와 입목축적 기준 등도 완화돼 산지 개발을 위한 토지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부동산 및 건설업 등 관련 업계는 물론이고 가평군 지역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평군은 직면한 인구소멸위기 극복을 위해 산림청의 산지 규제 완화에 발맞춰 수도권 거주자와 관외 산주가 우리 군에 유입될 수 있도록 자치조례를 제정하는 등 신속히 행정절차를 이행할 계획이다. 또 가평군은 증가하는 유입 인구와 지역주민 모두의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등 생활 편의를 도모해 나가도록 하겠다. 이를 통해 가평에서 살고, 일하고, 쉬면서 가평군이 보유한 풍부한 산림자원을 미래 성장동력인 문화관광산업으로 견인하고 힐링과 행복으로 하나 되는 가평특별군을 건설해 나가겠다. 산지규제 완화는 가평군의 인구감소 위기를 극복하고 산림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가평군은 산림청의 산지규제 완화 정책을 적극 환영한다. 이를 발판으로 가평군으로의 인구 유입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고 숲이 주는 가치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전환하는 데 전력을 다할 것이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경기시론] 계엄군도 공무원도 변하고 있다

5·16군사정변 때 서울에 출동한 군인들은 팔에 ‘혁명군’이라고 쓴 완장을 차게 했다. 그것을 찬 군인들은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런데 김종필 전 국무총리 회고록에 의하면 완장을 차지 못한 군인들이 차별감을 느껴 곧바로 금지시켰다고 한다. 그때는 군인들이 완장 차고 정부 청사를 장악하는 것에 우월감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 우리 군의 의식도 변했다. 지난 3일 밤 벌어진 계엄령 파동이 실패로 끝난 데는 출동한 군인들의 태도가 소극적이었고 지휘관급에서 ‘묵시적 반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북한 관련 작전으로 알고 출동했다며 수줍어 하는 병사도 있었다는 보도가 나온다. 이제 우리 군인들도 영화 ‘서울의 봄’에 나오는 정치군인으로 기록되는 것이 싫은 것이다. 이렇듯 45년 동안 경제발전만 아니라 사회 의식, 특히 군인 의식도 달라진 것이다. 공무원 사회도 군 사회처럼 그렇게 변해 가고 있다. ‘직업공무원’으로 자리 잡는 것이다. 5·16군사정변 때 군 장성들이 장차관을 차지했는데 그 무렵 가뭄이 심각했다. 그래서 가뭄 관련 장관이 충남 부여 현지 시찰을 왔다. 물론 군복에 권총을 찬 육군 소장. 충남도청 가뭄 대책 H국장이 현장에서 장관을 맞이해 브리핑을 했는데 도중에 장관과 국장 사이에 의견 충돌이 벌어졌다. H국장이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장관에게 맞서자 장관은 갑자기 권총을 꺼내고는 “당신 죽고 싶어” 하고 언성을 높였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긴장했다. 가까스로 자리는 파했으나 H국장은 “이제 나는 공직생활이 끝났구나” 하고 낙담하며 도청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곧 도지사실에서 호출이 왔다. H국장은 이제 사표 쓰라는 모양이다 생각하고 지사실에 들어서니 자기에게 권총으로 위협하던 장관이 지사와 함께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장관은 뜻밖에도 국장의 손을 잡고는 “당신 같은 소신 있는 공무원은 처음 봤소. 존경합니다” 하며 칭찬을 했다고 한다. H국장은 이후 부지사에 오르는 등 공직생활을 잘 마쳤다. 문재인 정부는 월성 원전 1호기의 가동 중단을 비롯해 탈원전 정책을 강력히 추진했다. 그래서 한번은 월성 원전 1호기에 대한 가동 연장 여부를 보고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담당 과장이 눈치 없이 ‘가동 연장이 가능하다’고 답변했다. 너무 낡아 가동 중단하는 게 경제성이 있다는 답변을 기대한 상관은 그 과장에게 ‘너 죽을래’ 하고 버럭 화를 냈다는 것이다. 5·16 때 권총을 빼들고 ‘당신 죽고 싶어’ 하며 H국장에게 화를 냈던 군인 출신 장관이 생각나는 장면이다.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자 탈원전을 다루던 부서의 공무원들 중에는 상관의 지시로 탈원전 자료를 주말에 삭제하는 듯 불법행위로 검찰의 수사를 받았고 더러는 구속되기도 했다. 청와대만 쳐다보는 정치 공무원 상관들 때문에 직업공무원들이 희생을 당한 것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새 풍속도로 정부의 공약 사업이나 정책에 관련된 업무에서는 손을 떼는가 하면 기왕 손을 댄 공무원들도 열정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과거에는 대통령실 파견 근무를 승진 혜택 등을 고려해 서로 지원했는데 지금은 기회가 주어져도 거절한다고 한다. 심지어 대통령이 유능한 인재를 골라 장관 등 요직에 기용하려 해도 청문회 같은 절차도 피곤하게 하고 훗날 구설수에 오를까 봐 기피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공무원 사회와 군 조직에 새로운 풍속도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번 계엄 사태에서 보여 준 발전적 시그널이다.

[인천시론] 인천에서 ‘제물포’는 어디인가요?

“나 밀양 사람 김원봉이오.” 영화 ‘암살’에서 조승우가 건넨 대사다. 늘 쫓기는 신세였던 열혈 투사가 밀양이라는 고향 이름을 입에 올리자 사람 냄새가 풍긴다. 김원봉의 삶을 구성해 온 정체성은 의열단 단장이다. 그런 그에게 밀양이라는 장소성이 붙으면서 정감이 생긴다. 철인의 풍모에 따뜻한 피가 돌고 웃음기마저 번진다. 노마드처럼 유랑해 온 그에게 밀양은 닻이자 품이었다. “우리 부모 형제가 있는 조국 땅으로 진격”하자고 무관학교 생도들에게 훈시할 때, 그에게 조국 땅을 대체할 수 있는 구체물은 밀양이다. “나 인천 사람, 누구누구요”는 근대 이후 사라진 인사법이다. ‘인천댁’ 이라고 불리던 호칭도 이제는 듣기 힘들다. 정주 의식이 약해진 탓도 있고 동네마다 지닌 특성을 몰각한 도시 개발이 만들어 낸 풍속도다. 그럼에도 거주지 이름이 삶의 전모를 보여준다고 여기는 세태다. 강남에 살고 분당이나 일산에 살면 어깨를 펴며 동네를 밝힌다. 인천에서도 송도에 산다고 하면 좋은 데 사신다는 반응이 온다. 그렇다고 나 송도 사람이오라는 표현은 없다. 거주는 하지만 인간을 빚어내는 장소성은 미미하다. 때론 아파트 이름으로 사람의 격을 잰다. 주택 상품명이 품위에 등급을 매기면서 장소와 나눌 수 있는 교감이 사라졌다. 사람과 장소 사이 유대감이 없으면 장소성이 안겨주는 고향의 맛도 없다. ‘제물포 르네상스’라는 시장 공약을 들을 때 번뜩 장소성 복원 여부를 묻고 싶었다. 제물포라는 공간에서 문예 부흥을 이루려면 고향 같은 정서를 일궈내야 한다. 사는 동네에 대한 자부심을 살려야 건물만 남기는 개발이나 재생 사업을 탈각할 수 있다. 제물포 르네상스는 먼저 장소와 사람 사이 유대를 숙고해야 한다. 환경미학자 이푸 투안은 장소와 맺는 유대감을 토포필리아(Topophilia)라고 이름 지었다. 신체로 장소를 감각해서 얻게 되는 정서적 안정감은 고향 땅에 대한 사랑을 구체화한다. 동구 배다리에서 진행했던 ‘골목출동수리팀’ 활동과 성과야말로 그런 의미에서 토포필리아를 구현한 제물포 르네상스다. 제물포는 ‘오래된 인천’에 대한 그리움이 밴 지명이다. 하지만 인천시민들에게 제물포라는 구체적인 장소는 막연하다. 인천에 제물포가 있다는 사실을 전국에 알린 공은 제물포고등학교라는 교명에 있다. 제물포고로 가려면 당연히 제물포역에서 내리면 된다고 믿었던 외지인들이 많았나 보다. 전국에서 인재가 몰려들던 입시명문 제고 시절 일화가 있다. 시험 치러 낯선 인천으로 몰려들던 입시생 중에는 더러 제물포역에 내려 제고 가는 길을 물었단다. 요즘도 수능날 아침이면 싸이카 뒤에 탄 채 간신히 시험장에 입장하는 학생이 있다. 제물포역에서 제물포고는 한참이고 마음이 타들어 갔을 그 학생은 애꿎은 제물포역만 원망했겠다. 인천대가 제물포역 부근에 있던 시절에는 인천역은 인천대에서 멀고 제물포역 주변이 인천대 학생들 거점이었다. 역명을 병기하지 않았다면 인천대로 가려는 학생은 동인천역을 지나 인천역까지 내달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제물포구가 출범하면 제물포를 묻는 일이 더 늘겠다. 제물포역은 제물포구 바깥 미추홀구에 있다. 일찍이 윤현위 교수는 중구 제물포고, 미추홀구 제물포여중, 서구 제물포중 등 산재해 있는 제물포 지명 문제를 제기했다. 제물포에서 르네상스를 이루려면 우선 인천에서 제물포는 어디인가부터 정리해 둬야겠다. 지명은 추상이지만 장소는 구상물 일수록 더 깊이 사랑할 수 있다. 제물포구 바깥 인천 사람들이 제물포를 인천이 지닌 정체성에 포함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자기 정체가 분명한 도시 인천을 바라며 제물포는 어디인지 지명부터 고민해 본다.

[천자춘추] “겨울철 낙상사고, 예방이 최우선”

117년 만의 기록적인 폭설이 지난달 말 대한민국을 강타하며 건물 붕괴, 가로수 피해 등 다양한 재난 상황을 초래했다. 행정안전부는 스마트 제설 시스템을 활용한 대책을 발표했지만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 이변은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으로 국가적 차원의 대응뿐만 아니라 개인의 철저한 대비도 필수적이다. 당시의 폭설은 빙판길 낙상사고와 블랙아이스로 인한 차량 추돌 등 심각한 인명 피해를 낳았다. 특히 낙상사고는 겨울철 미끄러운 길에서 주로 발생하지만 일상에서도 빈번히 일어나는 사고다. 젊은층의 부주의로 인한 낙상도 발생하지만 여전히 낙상사고의 주요 대상자는 노인이다. 낙상은 갑작스러운 넘어짐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고를 말한다. 노인의 경우 시력 저하로 도로의 높낮이나 움푹 파인 곳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위험이 크다. 또 노화로 감소한 근육량과 약화된 근력은 균형 유지 능력을 저하시켜 낙상 위험을 배가시킨다. 골다공증이 있는 경우에는 단순한 낙상도 심각한 골절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노인에게 척추와 골반부의 골절은 다른 부위의 골절보다 더욱 치명적이다. 해당 부위의 골절로 움직임에 제한을 받으면서 찾아오는 다양한 합병증은 골절보다 더욱 무서운 존재로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 노인의 낙상사고는 실외뿐 아니라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집 안에서도 흔히 발생한다. 특히 겨울철에는 미끄러운 길을 피하고 보폭을 좁게 유지하며 천천히 걷는 습관이 중요하다. 두꺼운 옷으로 인해 움직임이 둔해지거나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걷는 행동은 낙상 시 부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 또 보행 중 스마트폰 사용, 급작스러운 방향 전환 등의 행동은 삼가야 한다. 낙상사고를 예방하려면 겨울철 안전수칙을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 실내에서는 옷을 입을 때 가급적 앉아서 행동하고 침대에서 천천히 내려오며 화장실 바닥의 미끄럼 사고를 주의하는 등 기본적인 안전수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낙상은 하체 근력 부족으로 인해 균형을 잃으면서 발생한다. 이를 예방하려면 하체 근육을 강화하는 운동과 스트레칭을 꾸준히 실천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사전에 낙상을 유발할 수 있는 환경적 위험 요소를 점검하고 제거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겨울철, 작은 방심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철저한 대비와 예방이 안전한 겨울을 위한 첫걸음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설] ‘맑은 미래 약속’ 조국씨, ‘피고인 세비’ 반납 생각 없나

징역 2년이 확정된 범죄가 이렇다. ‘부부가 공모해 딸의 인턴 증명서 등을 허위로 만들어 입시에 활용했다.’ 전국의 입시생을 좌절시킨 비리다. ‘유재수 부산 부시장의 비위 감찰을 막았다.’ 비위 척결의 책무를 저버린 독직 범죄다. ‘딸의 부산대 의전원 장학금 수수는 청탁금지법 위반이다.’ 공무원에게 밥 한 끼 접대도 금지한 김영란법 위반이다. 각각 대법원이 최종 확정한 조국 전 의원의 범죄다. 3심 판결은 법치가 허락한 논쟁의 끝이다. 최종 판결 승복에 대한 조 전 의원의 약속이 있다. 2019년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발언이다. “(검찰 수사) 결과에 대해서는 마땅히 승복해야 한다고 본다.” 막상 확정이 됐는데 승복하는 말이 없다. 무려 5년을 끌어온 재판이다. 특별한 논리로 진술을 거부하며 시간을 끌었다. 부분 무죄를 침소봉대하며 진실을 호도하기도 했다. 항소심에서 2년이 선고됐지만 법정 구속 되지도 않았다. 그 덕분에 국회의원도 했고 당 대표도 했다. ‘5년 지연’, ‘실형 유예’, ‘총선 출마’. 이 모든 게 일반인은 생각 못할 특별 대우다. 결국 대법원이 징역 2년의 징역형을 확정했다. 그가 약속했던 ‘승복해야 할 결과’의 순간이다. 그가 많은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런데 ‘승복’도 아니고 ‘사과’도 아니다. ‘희생양’을 전제로 한 정치적 담론과 훈수뿐이다. “내 역할은 일단락됐다. 국민은 계속 승리할 것이다.” 국민이 궐기해 만든 탄핵이다. 이 탄핵에 자신의 ‘징역 2년 범죄’를 엮어 치장하고 있다. 듣기에 불편한 소리는 또 있다. “법원의 사실 판단과 법리 적용에 하고 싶은 말은 있으나 접어 두겠다.” ‘특혜 받은’ 5년을 항변했다. 안 꺼낸 증거라도 남았나. 아니면 누구처럼 ‘양심의 법정’을 말할 작정인가. 원래 정치 언어의 속성은 뻔뻔함에 있다. 그의 주장도 그렇게 보아 넘길 순 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눈앞 ‘징역 2년’에 대한 승복·반성은 하고 가는 게 이 사건에 맞다. 범죄가 피해 준 불특정 수험생·의대생·공무원이 있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가 사과하지 않으니까 그의 당(黨)도 사과하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은 미래 정권의 대결 정국이다. 조 전 대표도 이 판에 비중을 남겨 두려 할 것이다. 현 처지와 맞지 않은 이런저런 발언을 남기는 것도 그런 계산일 것이다. 그래서 권해 보는 제안이 있다. 지난 7월 최수진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있다. 국회의원이 법정 구속이 되면 세비를 반납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오래전부터 많은 국민이 지지했다. 의원직 박탈이 예상됐는데 출마해 의원이 됐다. 이 자격으로 취한 세비가 상당하다. 국민 앞에 내놓을 의향은 없나. 아니면 그의 당에라도 보태줄 생각 없나.

[사설] 與野政은 국정과 민생 안정에 전력해야 한다

국회는 지난 토요일 오후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의결했다. 지난 7일 국회는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발의, 투표를 했으나 여당인 국민의힘이 표결에 불참해 의결 정족수 미달로 폐기됐다. 이후 야당이 임시국회를 소집, 다시 발의해 국민의힘 의원들의 참여하에 찬성 204표로 통과, 윤 대통령에 대한 직무정지가 행해졌다. 이제 대통령의 탄핵 문제는 최종적으로 헌법재판소 판결에 달려 있다. 헌법재판소는 재판소법 제38조에 따라 180일 이내에 선고해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63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91일 만에 선고를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현재 6명이므로 조속히 재판관 임명절차를 밟아 탄핵 재판을 진행, 탄핵 여부를 결정해야 된다. 문제는 경제 불안으로 인한 민생 문제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경제는 요동치고 있으며 민생은 더욱 어렵다. 최상목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한국은행 총재,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 등이 연일 ‘긴급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일명 F4 회의)를 열며 시장 안정화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개인은 지갑을 닫고 기업 투자는 위축되고 있다. 특히 연말이지만 대기업들이 투자를 미루고 있으며 내년 사업 계획 자체도 확정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여야정은 탄핵 문제는 헌법재판소에 맡기고 민생에 전력해야 된다. 국회는 더 이상 정쟁에 몰두하지 말고 대통령 권한대행인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이 정상적인 행정업무를 집행할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한다. 국회는 민생 안정을 위한 가칭 ‘여야비상시국협의체’라도 가동해 난국을 수습할 수 있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특히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책임은 막중하다. 탄핵 가결 직후 민주당은 “국정 안정과 경제 회복을 위해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의 이런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도 대국민 담화를 발표, 국정 안정과 민생 회복에 전력하겠다고 했으니 여야는 국회 차원에서 적극 협조해야 한다. 민생 안정에 전력을 다할 수 있도록 경제팀만이라도 흔들지 말고 힘을 실어 줘야 한다. 경제에 있어 불확실성은 가장 큰 걸림돌이다. 정치와 경제가 분리될 수 있다는 신호를 미국 등 대내외에 알리는 것이 급선무다. 여야정은 여하한 상황에서도 국정과 민생을 우선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여야정은 속히 탄핵 정국에서 탈피해 경제 회복과 민생 안정에 전력할 것을 간곡히 호소한다.

[지지대] 3명 중 1명 1인 가구

정국이 어수선해 쓰고 싶지 않지만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있다. 국민 3명 가운데 1명이 1인 가구여서다. 통계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1인 가구는 782만9천가구로 집계됐다. 전체 가구의 35.5%다. 2019년 처음 30%를 넘긴 후 매년 역대 최대치를 갈아 치우고 있다. 원인은 뭘까. 청년들의 결혼이 감소하고 기대수명이 늘어난 가운데 배우자를 잃고 홀로 사는 어르신이 증가해서다. 연령대별로는 70세 이상이 19.1%로 가장 많았다. 29세 이하도 18.6%다. 60대 17.3%, 30대 17.3% 등의 순이다. 어르신 5명 중 1명이 홀로 지내고 있는 셈이다. 2022년까지는 29세 이하가 19.2%로 가장 많았지만 지난해부터는 70세 이상이 역전했다. 남성 1인 가구에선 70세 이상이 9.9%를 차지하는 반면 여성에서의 비중은 28.3%에 달한다. 홀로 생활한 기간은 어떨까. 5~10년 미만이 28.3%로 가장 많았다. 이어 10~20년 미만이 24.0%, 1~3년 미만이 16.5% 등으로 집계됐다. 연간소득은 3천223만원으로 전년보다 7.1% 늘었다. 전체 가구소득(7천185만원)의 44.9% 수준이다. 소득구간별로는 55.6%는 연소득이 3천만원 미만으로 나타났다. 1천만~3천만원 미만이 41.5%로 가장 많았고 3천만~5천만원 미만(26.1%), 1천만원 미만(14.1%) 등의 순이었다. 월평균 소비지출은 163만원으로 전체 가구(279만2천원) 대비 58.4% 수준이었다. 주거·수도·광열비(18.2%), 음식·숙박(18.0%) 순으로 지출이 많았다. 중요한 대목은 또 있다. 지난해 주택 소유율은 31.3%로 집계됐다. 연령대가 높을수록 높아져 70세 이상에서 49.4%로 가장 높았고 60대(43.4%), 50대(37.6%) 순이었다. 숫자는 거짓이 없다. 이처럼 우울한 통계의 나열이 2024년 12월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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