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당신의 다짐은 무탈하신가

지난해 말 운동을 가기 위해 분주히 준비하던 중 허리에서 ‘뚝’ 하는 소리와 함께 주저앉았다. 처음으로 앰뷸런스를 타고 척추병원에 실려가 입원까지 하게 됐다. 의사의 진단은 한 달간 꾸준한 치료와 금주. 약 복용 중 음주 시 간 수치가 급격히 올라가고 염증이 심화되기 때문이란다. 마침 새해 직전에 발생한 일이라 본의 아니게 금주가 새해 다짐이 돼 버렸다. 처음부터 무리라고 생각하면서 졸속으로 계획한 금주의 다짐은 한 달은커녕 허리가 적당히 회복된 2주일 뒤에 무너져 버렸다. 2025년 을사년(乙巳年)이 20여일 지나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야심차게 세웠던 목표와 다짐들에 슬슬 균열이 가며 공수표로 전락할 위기를 맞고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일부 다짐은 단 하루도 실천하지 못했을 수도. 과거 취업 포털 사이트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공동 조사한 결과 새해 목표를 ‘한 달도 못 지켰다’는 답변이 26%를 차지했다. ‘한 달 이상 다짐을 유지했다’는 답변은 45%, ‘1년 가까이 꾸준히 지켰다’는 답변은 29%가량으로 집계됐다. 매년 반복되는 새해의 야심찬 다짐, 얼마 안 돼 느끼는 좌절과 다음 해를 기약하는 동일한 반복. 중도 포기 후 ‘내년에는 반드시’라는 자기최면을 걸고 다가올 1월1일만을 기다리는 이 지긋지긋한 패턴을 이어갈 필요가 있나. 포기가 잦다면 매순간 의미를 부여해 다짐을 이어가 보면 어떨까. 일일신우일신(日日新又日新)이라는 한자성어가 있다. 날마다 새롭고 또 날마다 새로움. 매일 새로운 마음가짐과 새로운 각오로 새출발을 하라는 의미다. 다가올 매일매일이 우리에게 새로운 날이고 인생에서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최초로 맞이하는 날이다. 다짐은 새해에만 하는 게 아니다. 인생의 순간마다 다양한 목표를 계획하고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굳이 새해에 한해서만 한정시킬 필요는 없다.

[문화산책] 메멘토 모리, 카르페 디엠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카르페 디엠(현재를 즐겨라), 너희의 인생을 특별하게 만들어라’는 메시지를 전한 키팅 선생님을 만난 후 필자는 새해를 시작할 때, 새로운 다짐이 필요할 때, 예기치 못한 큰 사건을 마주할 때 늘 이 대사를 떠올리곤 한다. ‘카르페 디엠’, 이 말은 자주 ‘메멘토 모리(너의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경구와 짝을 이뤄 함께 사용된다. 우리가 언젠가는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 그렇기에 주어진 시간을 더 최선을 다해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떠올리게 하는 공간을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나라와 달리 서양에서는 죽은 자들의 공간인 묘지를 살아 있는 자들의 일상적인 공간 안에 두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교회나 성당, 공원과 함께 조성된 묘지공원 자체가 여행의 목적지가 된 사례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작년 오스트리아 정부가 단체관광객에게 입장료를 부과한다고 해 논란이 됐던 빈 중앙묘지공원이 대표적인 사례로 1894년 조성된 이 묘지공원은 음악의 도시 빈을 있게 한 베토벤, 슈베르트, 모차르트, 브람스, 요한 슈트라우스 등 위대한 음악가들이 묻혀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화려한 조각상과 저마다 개성 있는 묘비들이 자연과 어우러져 마치 잘 조성된 조각공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곳에 잠들어 있는 음악가 중 상당수가 생전 감당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 낸 스토리를 생각하면 지금 우리가 겪는 삶의 고통도 언젠가, 어떤 식으로든 아름답게 승화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된다. 프랑스에도 빈 중앙묘지공원만큼 유명한 페르 라세즈라 불리는 묘지공원이 있다. 파리 시민과 관광객들이 사랑하는 파리의 명소인 이곳은 오스카 와일드, 발 자크, 짐 모리슨, 에디트 피아트, 쇼팽, 모딜리아니, 마리아 칼라스 등을 추모하는 이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그러나 유명인의 묘지가 아니어도 이곳은 영원을 살 것처럼 아등바등 사는 현대인들이 ‘죽음’을 기억하고 일상의 삶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사색의 공간이자 교육의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곳들이 있다. 서울 마포 양화진에는 개화기 우리나라에 의료, 교육, 복음을 들고 선교를 왔던 이들이 묻힌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이 있어 우리나라 근현대 역사와 함께 낯선 이방의 땅에서 ‘특별한 삶’을 살았던 이들의 삶을 마주할 수 있으며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로 순교한 사제들과 무명 신자들을 기념하는 절두산순교성지, 서소문성지 역사공원 등은 죽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은 신자들의 삶을 통해 ‘죽는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서소문성지 역사공원은 ‘종교’가 없는 이들도 공간이 주는 ‘위로’와 ‘치유’를 경험할 수 있어 더 많은 사람이 방문했으면 하는 곳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 알지만 의외로 가본 사람은 적은 국립서울현충원이나 6·25전쟁에서 전사한 유엔군이 안장된 부산의 유엔기념공원은 얼마나 많은 사람의 희생 위에 우리가 서 있는지를 깨닫게 하는 공간이자 지금 우리가 누리는 ‘안전하고 행복한 일상’을 만들어준 그들의 죽음 앞에 살아있는 자들의 의무와 책임은 무엇인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공간이다. 2025년이 시작된 지 어느새 한 달이 돼 간다. 희망찬 새해를 시작했다고 하기엔 국내외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로 인해 많은 사람이 우울증과 무기력을 토로하고 있는 요즘 주변을 잠시 둘러보면 ‘메멘토 모리, 카르페 디엠’을 기억하게 하는 장소, 혹은 이야기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부디 각자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더 사랑하고 충실히 살아낼 수 있기를 응원한다.

[천자춘추] 국가정원 유치와 지역발전

‘정원’은 자연을 인위적으로 조성한 공간으로 다양한 식물과 자연 요소 등을 심미적 또는 실용적인 목적으로 조화롭게 가꿔 놓은 것을 말한다. 또 정원은 오래전부터 인류와 함께 발전했으며 고대 문명에서 왕실과 신전 가까이 정원을 만들던 것이 시초로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도시화와 기후변화 속에서 더욱 중요한 공간으로 부각되고 있다. 오늘날 도시 또는 외곽에 자연을 즐기거나 보전할 수 있는 공간의 필요성이 커졌다. 이를 계기로 유럽과 미국에서는 국가 차원의 대규모 정원과 공원을 조성하게 됐는데 대표적인 사례로 1759년 개원한 영국의 로열 보타닉 가든과 1872년 설립된 미국의 옐로스톤 국립공원이 있다. 특히 로열 보타닉 가든의 경우 처음에는 식물학 관련 연구와 교육을 위한 공간이었으나 공공에 개방되면서부터 국가정원으로서의 기능을 가지게 됐다. 우리나라 국가정원의 역사는 비교적 짧은 편이다. 2013년 순천만에서 국제정원박람회가 개최됐는데 박람회 종료 후 해당 공간에 대한 사후 운영 방안에 관해 논의했고 이를 계기로 2015년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정원인 ‘순천만 국가정원’이 탄생했다. 2019년에는 한때 공업화로 인해 오염이 심각했던 울산시의 태화강이 주민과 정부의 노력으로 생태계 복원이 이뤄진 점에 힘입어 두 번째 국가정원으로 지정됐다. 국가정원 외에도 ‘수목원정원법’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가 조성하고 운영하는 ‘지방정원’, 법인·단체 및 개인이 조성하는 ‘민간정원’이 있다. 이 외에도 ‘공동체정원’, ‘생활정원’, ‘주제정원’이 있다. 경기도의 경우 2017년 ‘경기도 정원문화산업 진흥 조례’를 제정해 지방정원 조성과 운영을 위한 각종 정책을 수립·추진하고 있으며 매년 ‘경기정원문화 박람회’를 개최하고 있다. 현재 산림청에 등록된 경기도 소재 지방정원은 양평군에 위치한 ‘세미원’이 유일하다. 그런데 최근 세미원의 국가정원 승격 추진이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국가정원으로 승격하기 위해서는 ‘수목원정원법 시행령’에 따라 지방정원으로서 3년 이상의 실적과 일정 기준의 평가 점수 이상을 획득해야 하는데 2019년 등록된 세미원이 승격 기준을 충족했기 때문이다. 양평군이 실시한 승격 타당성 검토 용역에 따르면 승격 시 1조2천207억원의 지역경제 파급효과가 예상된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운영 및 유지 인력 양성과 일자리 창출 등이 따라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외에도 광명·안양·군포·의왕시를 관통해 흐르는 안양천 및 일대가 지방정원 조성 예정지로 지정돼 2028년까지 지방정원으로 꾸며질 예정이고 옛 안산시화쓰레기매립지를 지방정원으로 조성하기 위해 각종 연구용역과 평가, 주민을 대상으로 한 설명회를 추진하고 있다. 세미원의 사례에 비춰 앞으로 지방공원이 조성될 안양천 일대에도 지금부터 승격 기준을 충족시키는 데 초점을 맞춰 경쟁에서 차별화될 수 있는 청사진이 필요해 보인다. 국가정원 승격은 경기도민의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점이 있기에 지방정원 조성 시점부터 국가정원 승격을 염두에 둔 조성 전략 추진과 경기도 차원에서 국가정원 유치를 위한 정책 수립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기고] 새마을금고이사장선거 공명선거로

현재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와 새마을금고(이하 금고)가 오는 3월5일 치르는 제1회 전국동시새마을금고이사장선거(이하 동시이사장선거) 준비로 한창이다. 공직 선거도 아닌 금고 선거를 선관위가 준비하고 있다니 다소 의아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금고이사장선거는 그동안 금고 자체적으로 선거를 관리했으나 이번 제1회 동시이사장선거부터 관할 구·시·군선관위가 의무 위탁받아 새마을금고의 이사장을 동시에 선출하게 됐다. 동시이사장선거에서 선관위와 금고의 역할을 간략히 살펴보면 선관위는 (예비)후보자 등록 및 투·개표 관리 등 선거 관리 전반과 함께 선거 홍보와 위반행위 단속·조사 업무를, 금고는 선거인명부(선거권 확인) 작성, 피선거권 확인·당선인 결정 및 관할 선관위로부터 대행 받은 사무를 각각 담당한다. 어떤 이유로 선관위가 이사장선거를 위탁관리하게 됐는지 그 배경을 살펴보자. 종전 금고이사장선거는 전국 금고의 80%가량이 간선제로 시행됐는데 그 과정에서 소수의 선거인을 대상으로 한 선거부정 등이 빈번하게 발생해 선거관리 전문기관인 선관위 의무위탁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지난 2021년 10월 이사장선거 직선제 시행(일부 소규모 금고 제외)과 선관위 의무위탁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새마을금고법’ 개정이 있었다. 그 후 해당 규정에 따라 실시되는 첫 선거가 이번 제1회 동시이사장선거다. 개정 이유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금고이사장선거를 선관위에 위탁하도록 한 것은 ‘새마을금고 선거관리의 공정성’을 강화하기 위함이며 그 바탕에는 금고이사장선거가 공직선거에 견줄 만큼 국민의 생활과 밀접한 선거로 성장했다는 공감대가 자리잡고 있다. 이제 제1회 동시이사장선거가 40일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특히 21일부터 예비후보자등록도 시작된다. 공교롭게도 21일은 선관위 창설 62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최근 선거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고 우리 사회의 통합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무분별한 부정선거 주장이 끊이지 않는 현실 속에서 선관위는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근거로, 이른바 ‘부정선거론’이 전혀 사실이 아님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적극 대응하고 있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치러지는 이번 제1회 동시이사장선거의 모든 과정이 깨끗하고 투명한 공명선거로 실현돼 세상을 이롭게 만드는 시간이 되기를, 공직선거뿐만 아니라 새마을금고이사장선거처럼 일상과 가까운 생활 주변 선거까지도 유권자의 대의가 온전히 반영되는 민주주의의 축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종구 칼럼] 법관 둘은 왜 논쟁의 핵심에 침묵했나

법조 기자 때였으니까 1990년대다. 아예 도장이 있었던 것 같다. ‘증거인멸 및 도주우려 있음’. 구속영장에 찍히던 발부 사유다. 그 후 영장실질 심사제도가 생겼다. 신병 구속의 신중을 기하자는 제도였다. 도장이 없어진 것도 그 즈음 아닌가 싶다. 판사가 ‘성의 있게’ 친필로 구속 사유를 적었다. 하지만 내용은 달라지지 않았다. ‘증거인멸 및 도주우려 있다’만큼 적절한 문장이 없다는 뜻이다. 현직 대통령 구속에도 그 문장이 적혔다. 신병 구속 심사에 귀천이 따로 있겠나. ‘증거인멸 우려’는 대통령에게도 유효하다. 윤석열 대통령 측은 강하게 부정한다. 내란 관련자들이 모두 구속돼 있다. “구속된 관련자들과 무슨 수로 증거인멸 시도를 한다는 것이냐.” 하지만 법관에는 통하지 않았다. 핸드폰 교체, 인스타그램 탈퇴 등도 사유로 본 듯하다. 판사가 그렇게 판단했다면 따라야 한다. ‘침해받지 않을’ 판사의 영역이다. 문제는 판단 내용을 알 수 없는 ‘다른 주장’이다. 윤 대통령 측의 절차적 정당성 위반 주장이다. 하도 많이 들었을 테니 간단하게 나열하자. 첫째, 공수처에 내란 수사권이 있는가. 둘째, 서부지법의 관할권이 있는가. 셋째, 체포영장으로 형소법 일부 조항 효력 배제가 가능한가. 넷째, 대통령관저 무단 진입이 정당한가. 다섯째, 공수처가 주도한 55경비단 공문 작성이 정당했나. 이들 논쟁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인신 구속에 이르는 절차의 문제다. 본안(本案)인 내란의 전 단계다.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미란다 원칙이다. 이거 고지 안 하면 무죄다. 단순 음주 단속에서도 절차는 이렇게 중요하다. 하물며 현직 대통령 구속이다. 법원 내부망에서 토론이 벌어졌다. 백지예 대법원 재판연구관이 화두를 열었다. ‘공수처에 수사권이 있습니까.’ 성금석 부산지법 부장판사가 썼다. “공수처에 수사 및 기소권이 없다고 봐야 맞다.” 황운서 수원지법 부장판사도 썼다. “직권 남용죄 하다가 내란죄 수사할 수 있다.” 현직 법관들의 토론이다. 인사 때마다 이동한다. ‘윤석열 사건’ 재판부가 될지도 모른다. 그런 법관들의 정반대 주장이다. 하물며 구속을 결정하는 판사다. 당연히 방향을 정리해야 하고 그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그런데도 체포적부심 판사는 “이 사건 청구는 이유 없다”고만 했고, 영장 발부 판사는 “증거인멸 우려 있다”고만 했다. 필자가 꼭 하고 싶은 말을 누가 했다. 31년간 판사 했던 최재형 전 국민의힘 의원. 그의 말 가운데 이 구절이다. “법원이 이유를 밝히지 않은 것이 결정에 대한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독수독과이론(毒樹毒果理論•Fruit of the poisonous tree),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에 의해 발견된 제2차 증거의 증거 능력은 인정할 수 없다. 미국 연방대법원 판례-. 법 좀 안다며 거들먹거릴 때 써먹곤 했다. 그러나 이제 전 국민이 다 안다. 초등생들까지 안다. 그만큼 보편적인 논쟁과 담론이 됐다. 그 해석을 기대했던 체포적부심과 영장심사다. 하지만 판사는 아무 답을 하지 않았다. 수십년째 익숙한 ‘포괄적 언어’로 끝냈다. ‘내란 우두머리를 석방하자는 것이냐’. 혹시 이렇게 욕하는 독자가 있을 거다. 굳이 변명할 생각도 없다. 변명을 받아줄 세상도 아니다. 그럼에도 한 가지 질문은 던져 본다. 내란 재판이 거쳐야 할 절차가 많다. 구속적부심, 각종 보석, 1·2·3심 선고…. 그때마다 ‘피고인 윤석열’에게는 반복할 주장이 있다. ‘시작부터 위법한 수사였다’. 그러면서 ‘기각해 달라’, ‘각하해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 지금 침묵했기 때문이다. 이게 옳은가. 현직 대통령, 공수처 수사, 관저 점거, 경비단 공문…. 앞으로 있을 모든 게 선례이고 판례다. 모든 결정과 판결이 반드시 현시(顯示)돼야 하는 이유다.

[경기만평] 현타올듯...

[사설] 검찰, 공수처·경찰과 별도의 목소리 내는가

앞선 기소자들은 전부 서울중앙지법으로 갔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조지호 경찰청장,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 모두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에 배당됐다. 구속된 윤석열 대통령도 서울중앙지법에 기소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공수처의 서부지법 집착이 워낙 컸다. 이렇게 보면 또 다른 변수를 배제할 수 없다. 기소 법원 결정 자체가 충돌의 원인될 수 있다. 검찰이 정할 일이다. 곧 검찰의 보강 수사가 있다. 18일 오후 한 방송사가 검찰발로 보도했다. “(검찰) 이첩해도 공수처 수사 자료 안 쓸 것.” 기본 방향이 바뀐다는 의미로 보이진 않는다. 아마 진전 없는 공수처의 수사를 지적한 것 같다. 실제로 공수처의 윤 대통령 수사 진척은 현재까지 없다. 체포 직후 사실상 묵비권을 행사한다고 한다. 구속 이후에도 달라졌다는 얘기는 없다. ‘내란 심문’이 어쩌면 검찰에 가서야 개시된다는 것인가. 경찰과 다른 검찰의 판단이 여러 번 목격됐다. 김성훈 경호차장 구속영장이 19일 반려됐다. 김 차장은 윤 대통령 체포영장 1차 집행을 막았다.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경찰 국수본에 체포됐다. 18일 구속영장이 신청됐다. 이 영장을 검찰이 반려했다. 반려 이유를 경찰이 설명했다. 윤 대통령 이미 체포된 점, 자진 출석해 수사에 협조한 점 등이라고 했다. 검찰이 경찰·공수처 영장을 반려한 첫 사례다. 비슷한 시각에서 보면 다른 예도 있다. 검찰이 정리한 경기남부경찰청의 책임 정도다. 12·3 직후 중앙선관위(과천)와 수원선거연수원(수원)이 계엄군에게 점거됐다. 검찰이 조지호 경찰청장을 구속기소했다. 그 공소장에 등장한 설명이 있다. 경기남부청장, 남부청 경비과장, 과천경찰서장, 수원서부경찰서장 등이 가담했다고 했다. 당사자들은 크게 반발했다. ‘계엄군에게 협조한 적 없다’며 타임라인까지 설명했다. 하지만 검찰은 조 청장 공소 내용을 유지하는 입장이다. 남부청장이 선관위 투입 상황을 반복 지휘했고, 추가 지원 지시도 했다고 적고 있다. 과천서장은 경비과장을 통해 K1 소총 5정과 실탄 300발 등으로 무장한 경력을 출동시켰다고 적고 있다. 경찰 국수본이 앞서 ‘입건 근거 불충분’이라며 정리했었다. 그걸 검찰은 전혀 다른 비중으로 정리하고 있다. 내란 수사에서 이런 검경 이견은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 보강수사와 기소권은 검찰에 있다. 검찰 특수본은 초동수사에서 손을 뗐다. 그 조직이 조만간 수사를 이첩 받는다. 검사에 의한 판단과 첨삭이 시작된다. 기소 법원 이견, 일부 영장 반려, 책임 정도 차이가 그 작은 시작일 수 있다. 걱정인 것은 그때 가서 또 일게 될 국론 분열이다. ‘무도한 검찰’ 또는 ‘봐주기 검찰’이라는 반발이 서초동을 덮을 것이다. 계엄 정국 이후 시작된 우리 사회의 분열은 이미 그 객관성을 잃었다.

[사설]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한국의 대응 과제

트럼프 대통령이 20일(현지 시간) 정오 워싱턴DC에 있는 미국 국회의사당에서 제47대 대통령 취임식을 거행한다. 미국우선주의로 상징되는 ‘MAGA’(Make America Great Again)의 기치 아래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게 된다. 2017년부터 4년 동안 트럼프 1기 행정부를 경험했던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는 초불확실성하에서 긴장상태를 가지고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을 주시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선거에서 당선된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예측불허의 여러 가지 정책을 이미 발표했으며 이로 인해 많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첫날 불법 이민자 추방, 멕시코와 캐나다산 제품에 대한 추가 관세 25% 부과, 파리 기후협정 탈퇴 등과 같은 정책에 대해 행정명령을 발동할 것이라고 예고한 상태이다. 트럼프 1기 사례로부터 알 수 있듯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향은 예측하기 어렵다.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주요 고위직은 충성심이 강한 인사들로 구성돼 있어 대외정책 등에서 관련 당사국들은 많은 우려를 갖고 있다. 때문에 일본 등 많은 국가뿐만 아니라 굴지의 기업들도 앞다퉈 트럼프 대통령과 측근인사들에게 접촉·소통 기회를 마련하려고 다양한 채널을 동원했다. 그러나 한국은 12·3 비상계엄 사태로 윤석열 대통령이 헌정 사상 처음으로 구속되는 상태까지 이를 정도로 정국이 혼란 상황에 있어 사실상 트럼프 2기 출범에 있어 효과적인 대응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측근 인사들이 내놓고 있는 각종 정책 추진에 있어 한국 문제는 패싱되고 있다는 보도가 될 정도로 우려되는 상황이다. 우선 가장 중요한 정책은 한미동맹을 굳건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통적인 동맹관계도 미국 국가이익에 배치되면 파기할 가능성이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방위비 분담금 인상 문제가 트럼프 1기 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등장할 것이다. 주한미군 주둔은 미국도 중국에 대한 방어전략과 동북아 안보에 있어 중요한 요소이므로 이를 지속적으로 설득해야 하며, 이를 앞으로 있을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있어 중요한 지렛대로 사용해야 한다. 이는 관세 부과 등 통상정책 협상에서도 마찬가지다. 비상시국이니 만큼 한미동맹 강화를 위한 초당적 외교가 필요하다. 가용한 외교·안보 라인은 물론이고 재계·종교계 등 민간역량을 동원, 총력외교를 펼쳐야 한다. 이를 위한 정치권의 협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지대] 제2의 조선물산장려운동

엄동설한이었다. 말총모자와 무명 두루마기 등으로 온몸을 덮었다. 이 같은 차림으로 전국을 누비며 음식이나 일용품 등의 토산품 애용을 외쳤다. 조선물산장려회의 태동이었다. 장소는 평양이었다. 좀 더 들여다보자. 조만식·김동원·오윤선·김보애 선생 등 당시의 선각자들이 주축이었다. 70명이 뜻을 모았다. 민족자본을 육성하고 경제 자립을 도모하자는 게 취지였다. 그래야 일제로부터 독립할 수 있다고 설파했다. 남녀노소, 빈부계층을 가리지 않았다. 많은 백성이 호응했고 실천에 나섰다. 1907년 한반도를 뒤덮었던 국채보상운동을 이어가자는 범민족적 경제 살리기 독립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국산품 장려, 소비절약, 금연·금주 등의 운동을 벌여 전국적으로 호응을 얻었다. 이후 유진태·이종린·백관수 선생 등 20여 단체 대표들이 모였다. 이번에는 서울이었다. 조선물산장려회 발기준비위원회를 꾸렸다. 이후 서울 낙원동 협성학교에서 창립총회가 열렸다. 조선물산장려회가 전국적인 조직으로 확산됐다. 1923년 1월20일이었다. 이후 집행기관으로 이사회를 두고 그 아래 경리부·조사부·선전부가 설치됐다. 회의 실무를 계획·집행하는 상무이사와 이사장에는 유성준 선생이 선출됐다. 본부는 서울 견지동에 두고 각 지방에 분회가 설치됐다. 강연회 개최, 가두시위 등을 통해 백성들에게 외래품 배척과 경제적 자립의 필요성을 인식시키는 일대 민족운동을 펼쳤다. 그후 활동 방향을 전환했다. 소비조합 조직, 조선물산진열관 설립, 조선물산품평회 등 새로운 사업을 모색했다. 기관지도 발행됐다. ‘조선물산장려회보’와 ‘실생활’ 등이 대표적이다. 조만식·명제세·김성준 선생이 10여년을 이끌었다. 1934년부터 재정난을 겪으면서 일제의 탄압으로 1940년 강제로 해산됐다. 완결되지 못한 경제 분야 독립운동이었다. 계엄과 탄핵 정국으로 경제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워졌다. 제2의 조선물산장려운동이라도 시작해야 하는 게 아닐까.

[아침을 열면서] 지도자의 품격과 나라의 품격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구속됐다. 이 사건을 두고 여당에서는 국격이 무너졌다고 했고 대통령은 법이 모두 무너졌다고 했으며 극우파 목사와 유튜버는 순교를 들먹였다. 물론 그보다 다수의 국민은 대통령의 구속으로 오히려 국격과 법질서가 회복됐다고 여기며 극우 집회 참석자들의 소란에 눈살을 찌푸린다. ‘국격’이란 사람마다 사회적인 지위에 따라 그에 걸맞은 품격이 있듯 나라에도 그 나라의 수준에 부합하는 품격이 있다는 생각에서 쓰이는 용어다. 그런데 현대정치의 측면에서 이 국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민주정치의 성숙도일 것이다. 국격을 평가하는 기준이 이와 같은데 대통령의 구속이 곧 국격의 추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대통령은 물론 나라와 국민을 대표한다. 하지만 그 대표성은 그가 대표다운 행위를 할 때에만 인정된다. 정치 지도자가 지도자의 위상에 부합하는 행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군주제 아래에서도 요청되던 윤리였다. 공자는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고 했다. 맹자는 공자의 이 사상을 계승해 임금답지 못한 임금은 더는 임금이 아니니 그 자리에서 끌어내려도 된다는 혁명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유교 사회에서도 폭군을 끌어내렸다고 해서 국격이 훼손된다고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이 점을 생각할 때 대통령 구속을 국격의 추락이라 평하는 여당 정치인의 언사는 전근대 유교 지식인의 그것보다도 훨씬 더 퇴행적이다. 일부 기독교 목사의 행위는 더욱 개탄스럽다. 정치 지도자가 무도한 행위를 일삼고 심지어 군대를 동원해 내란을 일으켰는데도 이를 비판하기는커녕 옹호하고 지지하는 목사가 적지 않다. 이들 목사는 정치적으로 진보적 성향을 띠는 사람을 빨갱이로 몰아 혐오하는 일에 그 누구보다 앞장선다. 그러면서 이들은 자신의 정치적 관점이나 주장을 하나님의 말씀과 슬그머니 뒤섞어 성경적 관점에 근거한 정치적 견해라 주장하고 신도들을 편향된 길로 오도한다. 교계 내부에서조차 교회가 극우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올 정도다. 무릇 종교다운 종교라면 약자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사회적 정의를 잘 분별하며 사회적 갈등과 싸움이 평화롭게 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랑과 정의와 평화를 이 땅에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야 기독교인으로서의 품격을 갖췄다고 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한국 기독교의 일부 목사는 사회적 혐오와 불의와 갈등을 부추기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그밖에 유튜브로 대표되는 개인 미디어 운영자 가운데 극우 유튜버들도 대한민국 언론의 품격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자극적인 언설로 떼돈을 벌겠다는 욕망을 숨긴 채 이들은 극단적인 정치적 편견에 기초해 망상으로 구성한 가짜 뉴스를 매일 쓰레기처럼 쏟아낸다. 이들은 전통 언론매체를 불신하도록 선동하며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려 깊이 숙고하는 데 미숙한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여론을 크게 잘못된 방향으로 이끈다. 요컨대 극우 정치인, 종교인, 언론인이야말로 오늘날 국격을 추락시키는 장본인이다. 보수정치가 극우에 휘말리지 않고 그 보수주의의 건강성을 회복할 때 국격은 회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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