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후반의 일이다. 서울시민 몇몇이 남한산성 수어장대(守禦將臺)를 찾았다. 그런데 홍콩인으로 보이는 외국인들이 영화 촬영 준비작업을 하고 있었다. 당시는 한국-홍콩 합작영화를 우리나라에서 많이 찍었던 시절이다. 일행이 장대를 둘러보고 있는데 그들이 세트장치를 하느라 누각 기둥에 마구 못질을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즉시 한국 측 제작요원에게 귀한 문화유산이 훼손되지 않도록 요청했다. 그러자 자기들은 문공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촬영 허가를 받았다며 간섭하지 말라며 화까지 냈다. 나오는 길에 관리사무소 직원에게 알렸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유사한 일이 2025년에도 벌어졌다. 상황도 거의 똑 같다. 건축가인 어느 시민이 지난해 12월30일 세계유산인 안동의 병산서원을 찾았다가 KBS 드라마팀이 촬영을 위해 만대루(晩對樓·보물) 기둥에 못을 박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한다. 주변 관람객들과 함께 항의하자 이미 안동시의 허락을 받았다며 적반하장식으로 나왔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언론매체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KBS는 결국 사과하고 서원 촬영분을 모두 폐기하기로 했다. 사실 영화나 드라마 등 영상 프로그램 촬영 중 문화유산 훼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4년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남한산성은 1950년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영상 촬영의 단골 장소였다. 정부 주관으로 제작된 대작 ‘성웅 이순신’(1962년), 한국 최초의 70㎜ 컬러 영화로 알려진 ‘춘향전’(1971년)을 비롯해 셀 수 없이 많은 영화, TV, CF의 촬영이 이뤄졌다. 수원화성도 마찬가지다. 이 두 곳의 촬영 숫자는 국내 타 세계유산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이러한 촬영에는 일반 장비 외에 크레인 등 중장비가 동원되고 스태프도 100명이 넘는 경우가 많아 작은 변화에도 민감한 문화유산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훼손 시 복구도 쉽지 않다. 과거에는 아무 개념 없이 촬영이 이뤄졌다. 동래성 싸움을 재현한 ‘성웅 이순신’의 남한산성 로케이션은 당시 사진으로 봤을 때 상당한 성곽 피해를 발생시켰음을 짐작할 수 있다. 문화유산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시기였다. 그러나 지금은 정부뿐 아니라 국민 모두가 그것이 갖는 가치를 잘 알고 있다. 물론 문화유산을 활용해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은 바람직하며 필요한 일이다. 문제는 ‘영상 산업’이 가진 자본과 시장의 논리다. 이들은 적은 비용으로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문화유산 보호를 후순위로 놓고 있는 듯하다. 이번 병산서원에 못질을 한 KBS측은 향후 문화유산, 사적지, 유적지 등에서 촬영할 경우 전문가에게 자문하는 내용 등의 가이드라인을 새로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지침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문화유산에 대한 업계의 인식이 뿌리부터 달라져야 한다. 법 규정도 손봐야겠지만 근본적인 것은 문화유산을 대하는 영상 산업의 자세다.
동백나무는 모든 부분이 버릴 것 없는 보배로운 식물이다. 1년 내내 표면이 반지르르한 잎이나 이른 봄에 빨갛게 피었다 일순간 떨어지는 꽃도 인상적이고 가을에 열리는 열매는 옛날 우리 어머니들이 머리 손질과 화장품에 이용하기도 했던 동백기름의 원료다. 남부지역에서 가정의 화단용, 사무실 주변 정원용은 물론이고 도로변 조경용에 이르기까지 관상용으로 많이 이용되는 종이다. 바깥에서 겨울나기가 어려운 중부 이북지역에서는 분화 및 관엽용의 실내식물로 중요한 품목 중 하나다. 동백은 추위에는 약하지만 음지나 염해에 견디는 힘이 강하며 생장도 빠른 편으로 땅에 거름기가 있는 곳이면 정원수로 기르는 데 큰 문제가 없다.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겨울 아침 햇살이 거실 한 켠 길게 비추고 몽실몽실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발견한다 햇살에 떠오르는 아지랑이 밟으며 앞으로 걷고 뒤로는 생각에 잠긴다 옛날 뒤뜰에 떠오르던 무지개빛 아지랑이 속살거리며 유년 시절을 불러온다 시골 철길 따라 학교 가던 길 온통 덩굴장미 담장 예뻤던 길목 집 야산 산딸기 따 먹던 길 외딴 곳, 흙 덮인 지붕 긴 터널 속의 항아리 굽던 터 겨울 아지랑이 꽃으로 피어 오르면 마음의 문으로 추억이 열린다 김경숙 시인 ‘한국시학’으로 등단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수원문학아카데미 회원 ‘시인마을’ 동인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미국 경제 부흥을 위해 기준금리 인하를 요구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기준금리 동결(4.5%)을 선택했다. 지난해 3회 연속 기준금리를 내린 것과 비교하면 미 연준의 금리 인하 기조가 바뀐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시장에서 싹트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연준의 성명을 살펴보면 “인플레이션이 연준의 목표인 2%를 향해 진전을 이뤘다”는 기존 문구가 삭제되고 “인플레이션이 다소 높게 머물러 있다”고 평가했다. 결국 인플레이션이 다시 오를 위험이 있어 기준 금리 인하는 좀 더 지켜봐야겠다는 ‘wait and see’ 단계로 해석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금리 인하를 요구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이 기준금리 인하의 발목을 잡았다. 트럼프의 핵심 정책인 관세, 감세, 이민자 정책이 물가 상승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기준금리 동결로 가장 곤혹스러운 곳은 1월 금통위 때 기준금리를 동결한 한국은행이다. 미국과 1.5%포인트 불안한 금리 차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은행은 내수경기 침체를 감안하면 2월 금통위에는 기준금리를 내려야 하는데 미국이 금리 인하 속도 조절에 들어가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2월 금통위에서 0.25%포인트 인하를 한 후 당분간 동결하는 ‘wait and see’가 한국은행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일 것 같다. 현재 한미 간 환율과 자금 유출 가능성을 고려하면 미국이 추가 기준금리 인하를 하지 않는 한 한국은행이 미국과 기준금리 차를 2%포인트까지 벌리기에는 매우 부담스러울 것이기 때문이다. 공은 다시 트럼프 대통령에게 넘어갔다. 경제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아는 트럼프가 물가 때문에 기준금리를 내리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관세, 감세, 이민자 정책을 강화하더라도 미국의 물가를 자극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속도 조절을 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 발언에서 힌트를 찾아보자. “고물가 주범이었던 과도한 재정 지출과 치솟은 에너지 가격을 돌려 인플레이션을 극복하고 비용과 물가를 신속히 낮추도록 하겠다.” 시장의 우려와 달리 정책으로 인해 물가가 올라 기준금리를 못 올리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보다는 오히려 물가를 빠르게 안정시켜 기준금리를 먼저 내린 후 협상을 통해 정책의 강약을 조절할 가능성이 더 높다. 당초 세 번 인하에서 두 번 인하로 올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전망이 다소 후퇴하긴 했지만 미국의 상황에 따라 다시 세 번 인하의 불씨를 다시 살릴 수도 있는 만큼 당분간 트럼프 정책을 예의 주시해야 할 것 같다. 우리가 이렇게 기준금리 인하에 관심이 많은 것은 올해 부동산시장의 전망인 상저하고(上低下高·상반기 약세, 하반기 강세)의 전제조건 중 하나가 금리 인하 폭과 시기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불확실성이야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만 금리는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가 아니다. 기준금리가 세 번 또는 그 이상 인하되면 투자심리 회복과 구매 능력이 개선되면서 하반기 거래량 증가와 상승 거래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두 번 또는 한 번에 그친다면 하반기 약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만큼 금리가 중요하다. 물론 기준금리가 인하된다고 대출금리가 바로 내려가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기준금리를 두 차례 0.5%포인트 인하했음에도 은행의 대출금리는 오히려 1%포인트가량 더 올랐다. 가계대출 수요 억제라는 명분으로 가산금리를 올리고 우대금리를 내려 대출금리를 높게 유지했기 때문이다. 은행연합회 공시에 따르면 5대 은행의 신규 취급 주택담보대출 평균 금리는 지난해 7월 3.542%에서 11월 4.58%로 1.038%포인트 급등하면서 예대금리차가 0.98~1.33%포인트까지 벌어졌다. 한 푼이 아쉬운 국민들 입장에서는 시중은행의 이자 장사가 곱게 보일 리 없다.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자 금융당국과 정치권이 대출금리 인하 압박을 넣으면서 최근 시중은행의 대출금리가 조금씩 인하되는 분위기다. 지난해 서울 집값이 과열 양상을 보이면서 금융당국이 나서 대출 문턱을 높이도록 압력을 넣었던 것과 비교하면 불과 4~5개월 만에 대출 정책의 뉘앙스가 살짝 바뀌었다. 하지만 대출 정책의 기조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니다. 스트레스DSR 3단계는 계획대로 7월에 수행될 예정이며 대출금리가 투자심리를 자극할 수준까지 내려오지도 않았다. 지난해 6월 스트레스DSR 2단계 시행을 두 달 연기하면서 촉발된 단기 급등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정부가 스트레스DSR 3단계를 어설프게 연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서울 한강벨트 단지들은 지금도 신고가 거래가 나오고 있고 서울과 수도권 핵심 지역은 조금의 틈만 있어도 튀어 오를 가능성이 있는 만큼 대출금리가 3% 아래로 내려오지도 않는다. 정부의 대출금리 인하나 규제 완화의 전제조건은 서울 집값 안정과 가계부채의 안정적 관리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결국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기준금리가 내려도 대출금리가 2%대 저금리로 떨어질 가능성은 작고 대출 규제 기조도 유지되고 있는 만큼 하반기 반등은 가능하겠지만 폭발적인 상승 거래가 발생하지는 않을 것 같다. 내 집 마련을 계획하는 실수요자들은 대출금리가 3% 중반 수준으로 내려오면 무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움직이는 것이 좋겠고 디딤돌 대출 같은 저리의 정책자금 대출을 받을 수 있는 분이라면 굳이 금리 인하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윤석열 대통령의 변호인단은 25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대통령 체포에 대해 “완벽한 내란 행위”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윤 대통령 변호를 맡고 있는 윤갑근 변호사는 이날 서울 서초구 스페이스쉐어 강남역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수사는 조기 대선을 통해 권력을 찬탈하려는 의도”라며 이같이 말했다. 윤 변호사는 이어 “검찰은 공수처가 벌인 위법 수사를 이어받아서는 안 된다”며 “윤 대통령을 즉각 석방하고, 공수처의 위법 수사와 군사기밀 유출, 공문서 위조 등 불법 행위를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검찰이 조만간 윤 대통령을 기소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변호인단은 대통령 기소를 막고 석방을 요구하는 여론전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날 법원이 윤 대통령의 구속 기한 연장 신청을 불허했으며, 검찰이 재신청한 상황에서 법원이 이를 다시 기각할 경우, 검찰은 오는 27일까지 윤 대통령을 기소하거나 석방해야 한다. 윤 변호사는 공수처의 수사 과정이 헌법기관인 대통령에 대해 적법 절차를 무시한 “내란 몰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또한, 헌법재판소를 향해서도 날 선 발언을 이어갔다. 윤 변호사는 “헌재는 최고 헌법기관이 아니라 최대 난타기관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며 “대통령은 방어권이 전혀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참담한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헌재가 주 2회 변론을 진행하는 것 자체가 반헌법적 행위”라고 덧붙였다.
희귀질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절박한 것은 무엇일까. 지원책을 마련하고 집행하는 데 중요한 선결 화두다. 여기에 정확한 답은 환자와 가족 당사자만이 알고 있다. 그래서 경기일보가 이들을 직접 설문했다.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가 협조해 함께 진행했다. 전국 227명이 대상이었고 이 중에 경기도민은 108명이었다. 신문사가 직접 설문을 진행하고 분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 결과 정책 이면에 있던 현장의 애환이 쏟아졌다.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지원을 못 받는 환자들이다. ‘정부의 어떤 지원을 받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했다. 산정특례제도(97명), 보조기기 구입 등 물품지원(41명), 특수 조제분유 및 저단백즉석밥 구입비 등 식이지원(22명), 간병비 지원(20명) 등이었다. 중복해서 지원받는 환자도 포함된 수치다. 그런데 66명은 ‘아무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사각지대에 놓인 환자가 10명 가운데 3명꼴이다. 중복지원과 비교해 형평에 안 맞는다. 정부 지원에 대한 의견 피력도 다양하게 제시됐다. 아무래도 ‘지원 강화’를 요구하는 답변이 74명으로 제일 많다. 이 부분은 조금 구체적으로 살펴야 한다. 희귀질환자가 공통적으로 겪는 어려움은 비싼 치료비와 치료 기간의 장기화다. 재정의 한계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그렇더라도 희귀질환의 고충을 배려할 필요가 있다. 의견 중에는 당장 개선이 가능한 요구도 있다. 신청·선정 절차가 너무 까다롭다(57명)는 절차적 문제다. 경기일보의 희귀질환자 실태 추적은 지난해 7월 이후 계속되고 있다. 경기도가 전국 광역지자체 최초로 희귀질환자 지원사업 예산을 확보하는 결실을 이뤄내기도 했다. 지자체 차원에서 희귀질환자를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등장시킨 것이다. 정부의 지원 사업은 주로 의료비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자체의 지원은 이를 감안한 맞춤형 선택이 고려돼야 할 것이다. 교통비, 간병비, 생계비 등이 그런 예다.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김재학 회장이 말했다. “희귀질환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의견을 청취하는 자리를 마련해 줬으면 좋겠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관련 조례를 만든 경기도다. 환자들의 애환을 듣는 소통의 창구도 열어 놓길 바란다. 경기일보가 이 문제를 보도하는 목표도 그런 소망의 징검다리를 놓는 것이다. 복지의 기본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고, 그 출발은 돈 없어서 죽어 가는 사람을 없게 하는 것이다.
국회가 22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동행명령장을 발부했다. 국회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국조특위) 명의다. 22일 있었던 1차 청문회에 불참한 윤 대통령에 대한 강제 조치다. 여당 의원들은 ‘현직 대통령 망신 주기’라며 강력히 반대했다. 표결 결과 찬성 11 대 7로 명령장이 발부됐다. 오후 2시가 시한이었지만 윤 대통령은 출석하지 않았다. 특위는 추가 증인 채택과 서울구치소 출장 조사까지 경고하고 있다. 앞서 공수처가 20, 21, 22일 세 차례 강제 구인을 시도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응하지 않았고 모두 무산됐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 체포 당일 밝힌 입장이 있다. “계엄은 대통령의 정당한 권한이다. 판검사가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수사에 응하지 않는 일련의 행동에 배경이 되는 논리로 보인다. 공수처는 23일 사건을 검찰로 송부했다. 앞선 주장대로라면 검찰에서 진행될 추가 조사에도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여기서 되짚어 볼 윤 대통령의 발언이 있다. 지난해 12월12일 두 번째 담화였다. 계엄 선포의 주된 이유를 국회에 돌렸다. “지금껏 국정 마비와 국헌 문란을 주도한 세력과 범죄자 집단이 국정을 장악했다”고 주장했다. 야당의 탄핵 남발로 인한 국정 마비, 예산 삭감으로 인한 행정 마비 등을 지목한 것이다. 그러면서 헌재에 출석해 입장을 펴겠다고 했다. 본인이 출석하는 헌재 심리를 생중계 해달라는 특별한 주문도 했다. 공수처·검찰과 국회는 다르다. 여야 국회의원들의 조사 절차다. 윤 대통령이 계엄 선포의 책임을 얘기했던 게 국회다. 탄핵 남발, 예산 삭감을 했다는 당사자들이다. 따져 묻고 증명해야 할 게 있지 않겠나. 그가 원했던 ‘생중계’도 보장돼 있다. 여기에 거듭된 소환 불응이 가져올 여론의 피로도 문제도 있다. 공수처 소환 불응은 수사권 논란이라는 명분이 있었다. 하지만 입법 기관 불출석에까지 이런 명분이 통용되기는 어렵다. 윤 대통령에게 주어진 기회가 많지 않다. 헌재 심리에서 주어진 기회도 박하다. 예고된 기일대로면 충분한 설명 없이 끝날 수 있다. 그 경우 윤 대통령에는 지난하고 제한적인 사법 절차만 남는다. 국조특위조차 그에겐 국민 앞에서 소명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일 수 있다. 의석수에서 기울어진 현실적 불공정은 있다. 야당 의원들의 공세가 거칠 것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에게 말문을 틔워 줄 여당 의원들도 있다. 출석이 맞다. 어차피 윤 대통령이나 야당 모두에게 벼랑 끝 승부다. 계엄 정당성 증명 여부에 운명을 걸어야 한다. 증명되면 야당이 추락할 것이고, 증명 안 되면 윤 대통령이 추락할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했다. 시골 외과의사 토마시도 그랬다. 아버지 없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주변 인물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내이자 사진작가인 테레자나 화가이자 토마시의 불륜 상대인 사비나, 사비나의 연인 프란츠 등도 예외가 없었다. 전처와의 이혼 이후에도 변한 건 없었다.” 20여년 전 베스트셀러였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얼개다. 체코슬로바키아 출신 작가 밀란 쿤데라(1929∼2023)가 썼다. 청년 시절 읽었던 서양 소설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은 작품이었다. 제목부터 의미심장했다. 작품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들은 서로를 아꼈다. 그런데도 상대방에게 하나의 지옥을 선사했다. 그들이 사랑한 건 사실이다. 오류가 그들 자신이나 그들의 행동방식 혹은 감정이 아니라, 그들의 공존불가능성에서 기인했다는 게 그 증거다. 그는 강했고 그녀는 약했기 때문이다.” 쿤데라가 별세 1년 반 만에 그의 조국에 묻힌다. 외신에 따르면 그의 유해가 사망 1년6개월 만에 프랑스 파리에서 고향인 브르노로 옮겨졌다. 브르노 시장인 마르케타 반코바는 쿤데라의 유언을 집행하는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로부터 유해를 넘겨 받았다. 그리고 “브르노의 영광이자 의무”라고 말했다. 브르노시 당국은 작가의 유해를 모라비아 국립도서관에 임시 보관하다 중앙묘지에 안치할 예정이다. 작가는 공산주의 체제인 조국에서 프라하예술대학 교수로 활동했다. 그러다 1968년 일어난 민주화운동인 ‘프라하의 봄’으로 탄압받아 프랑스로 망명했다. 1979년 체코슬로바키아 국적을 박탈당했다. 2019년 국적을 찾았다. 민주화 이후 고국을 방문한 적은 있지만 망명 후 줄곧 프랑스 시민으로 살았다. 해마다 노벨 문학상 후보로 언급됐지만 2023년 7월 파리에서 94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작가는 인간관계가 어느 정도까지 참담할 수 있는지를 고발했다. 2025년의 현실은 이 같은 쓰라림에서 과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내란 범죄는 법 앞에, 역사 앞에, 국민 앞에, 민주주의 앞에 용납할 수 없는 광란으로 기록될 것이다. 아무리 버텨도 탄핵의 시계는 돌아간다. 멈출 수 없고 되돌릴 수 없다. 혼돈과 고통, 절망과 분노의 시간에도 시민은 희망으로 연대한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질기고 강하다. 그것을 쟁취하는 힘, 지속시키는 힘, 회복하는 힘도 질기고 강하다. 겨울이 깊으면 봄이 오는 이치를 생각하는 시간이다. 지금의 고통은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갈 에너지가 돼야 한다. 탄핵은 탄핵대로, 내란 처벌은 처벌대로, 정권교체는 정권교체대로 하고 탄핵 너머의 새로운 질서를 준비해야 한다. 탄핵이 반헌법 반민주를 단죄하는 과거의 시간이라면 대선은 국민의 희망을 회복하는 미래의 공간이 돼야 한다. 내란 세력의 참담한 준동은 탄핵 이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은 서로 다른 탄핵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국민의힘 지지층의 결집 흐름은 윤석열 지키기가 아니라 보수 붕괴 우려 현상이다. 국민의힘은 박근혜 탄핵이 가져온 보수 붕괴의 악몽을 피하고 싶은 보수층의 학습효과를 동력으로 악용하고 있다. 윤석열의 내란을 진영 간 내전으로 바꾸려는 반국민적 행위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새해 언론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층의 86%는 헌재가 탄핵을 기각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심지어 총선 부정선거 의혹에 대해 국민의힘 지지층 65%는 있었다고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가장 극단적인 진영 대결 구도다. 정치의 파탄, 상식의 실종이다. 결은 다르지만 진보층의 탄핵 트라우마 역시 존재한다. 자산 불평등의 구조화와 이로 인한 주거, 의료, 교육, 일자리, 시간 불평등 등 삶의 모든 분야의 양극화에 절망하고 있다. 무엇보다 공교육으로 성공하는 사회라는 믿음이 소멸했다. 기회와 정의에 대한 요구는 박근혜 탄핵 때보다 더 넓게 형성됐다. 결과적으로 2017년 탄핵 이후 세상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실망이 진보층의 트라우마다. 탄핵 이후의 희망을 만드는 것이 국민의 고통을 치유하는 길이다. 내란 세력의 준동을 막고 새 시대를 향한 국민의 열망을 모아 내는 길이다. 탄핵 이후의 대한민국은 기회와 정의, 회복과 성장이 살아 숨 쉬는 더 좋은 나라, 더 나은 세상이라는 믿음을 국민에게 줘야 한다. 진보적 다수 연합정치로 새 비전, 새 가치의 새로운 민주주의를 시작해야 할 때다. 최근 많은 국민은 법원의 폭력 사태와 이를 비호하는 국민의힘을 보면서 정치개혁을 절감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영남권(대구·부산·울산·경남·경북)에선 65석 가운데 60석(92%)을 얻었다. 국민의힘 지역구 국회의원 90명 가운데 영남권 비율이 67%다. 지역 독점 구도가 유지되는 한 내란을 일으킨 대통령을 비판하지 않아도, 탄핵소추안에 반대해도, 내란 수괴의 체포 영장을 막아서도, 검찰개혁을 거부해도, 다음 총선에서 국회의원직을 지킬 수 있다는 계산을 버리지 못할 것이다. 극우 정당이 돼 가는 것에 대한 문제 의식도 외면할 수 있을 것이다. 경쟁 없는 지역 독점 구도를 타파해야 비정상적 정치가 소멸된다. 비례성을 높이는 선거제도의 도입이 정치개혁과 민주주의 발전의 핵심이다. 무엇보다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다.
한탄강의 강물이 휘도는 아름다운 지형에 있는 바위로 강물과 자연 식생이 함께 어우러져 비경을 이루고 있다. 하천이 휘돌아 가며 생겨난 깊은 연못과 수면 위로 거대한 화강암 바위가 13m나 솟아올라 있으며 짙은 색의 현무암 절벽과 밝은 색의 기둥바위, 짙푸른 물빛이 어우러져 있다. 화적연은 지형적 가치도 높은데 대보화강암(중생대 백악기 화강암)을 뒤덮은 현무암층, 현무암 주상절리, 화강암 암반, 상류에서 공급된 풍부한 모래와 자갈 등 다양한 지형 요소를 관찰할 수 있다. 이들 지형 요소는 서로 어우러져 하천을 굽히고 있으며 여름철 많은 물이 흐르며 거대한 바위를 갈아 아름다운 화적연을 만들어 온 것이다. 국가유산청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