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코칭] ‘자기객관화’가 필요한 시점

어느 해보다 입시 변수가 많았던 2025 대입은 의대 증원, 사탐런, 무전공 선발 확대, 상위권 n수생 증가 등의 이유로 예측이 쉽지 않았다고 입시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기본적으로 수시는 상향 지원을 많이 하는 편인데 이번 글을 통해 쓴소리를 해보고자 한다. 얼마 전 고교생 8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서울대, 성균관대, 연세대에 이어 건국대가 학생 선호 4위에 올랐다. 학생들이 높은 점수를 준 이유를 살펴보면 캠퍼스 위치와 지역 상권, 그리고 장학금이나 교육비 혜택을 꼽았다. 실제로 학생들을 만나 보면 자신의 희망 학교가 건국대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신의 성적과 무관하게 말이다. 하지만 건국대를 가기 위해서는 상위권 성적이 필요하다. 많은 학생이 인서울 대학을 원하고 더 좋은 대학에 가길 원하지만 입시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충실한 학습과 더불어 객관적인 전략이다.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조합과 전형을 파악하고 선택 과목을 골라야 하며 탐구 과목의 유불리도 따져야 한다. 또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맞는 생기부 관리 및 비교과 활동도 필요하며 수능 최저라는 조건으로 인해 내신과 수능 준비까지 동시에 해야 한다. 수시에서도 수능 점수를 반영하는 것이 수능 최저라면 정시에서도 내신을 반영하는 대학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여서 이제는 수시와 정시를 명확히 구별하는 것보다는 두 가지를 모두 준비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목표를 높게 잡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과연 실현 가능한 목표인지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한다. 상위 0.1% 최상위권 학생들이 일반 상위권 학생과 다른 점은 자기객관화가 훨씬 더 잘돼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정확하게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예측 점수도 훨씬 정확하다. 모두가 최상위권이 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최상위권의 학습전략과 자기객관화는 따라해 볼 만하다. 자기객관화란 무엇을 의미할까. 바로 학습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의미다. 아는 부분을 또 공부하는 것은 필요 없을 뿐 아니라 효율적이지 못하다. 모르는 부분과 부족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부해야 하는데 중위권 학생들의 공통적인 실수는 아는 부분을 반복적으로 공부한다는 것이다. 자기객관화가 부족한 것이다. ‘나는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고 고민하는 친구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다. 공부시간만 많을 뿐 전혀 효율적이지 못한 공부를 하고 있고 자기객관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또 고교생들이 모의고사를 치르는 이유는 나의 객관적 위치 파악과 함께 부족한 부분이 어디인지 파악하기 위해서다. 모의고사라는 말 자체가 수능을 위한 ‘모의’시험 아닌가. 자신의 객관적 위치를 무시한 무리한 상향 전략은 의미도 없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고교생이 인서울 대학을 원하다 보니 무리수를 둔 상향 전략이 되곤 한다. 자신의 수능 성적표는 내 진짜 성적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가장 잘 나온 점수가 자신의 원래 점수라고 믿는다. 그러고는 재수를 당연하게 결정한다. 코넬대의 사회심리학자인 더닝과 크루거는 ‘실력이 부족한데도 이를 깨닫지 못하는’이란 제목의 논문에서 ‘자신감 효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우리는 일을 잘하면 자신의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고 실수는 우연, 부주의 혹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며 이에 반하는 증거는 무시하려 한다.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판단하는 방법은 실력을 기르는 것이다. 예비 고3들의 2026 수능은 11월13일 치러진다. 아직 2025 대입 정시 발표와 추가 합격이 남아 있지만 이제 고3이 되는 학생들은 2026 대입 준비에 집중해야 한다. 특히 겨울방학 기간 대입전형을 살펴보고 수능 준비를 꼼꼼히 하는 것이 좋은데 학기가 시작되면 학교 내신 준비와 수시 지원 그리고 수행평가 등으로 수능 전형 공부와 나에게 맞는 전략이 무엇인지 고민할 시간이 부족하다. 따라서 2026 수시 지원이 시작되는 9월 전까지 지금 겨울방학 시즌과 여름방학을 철저히 시간 배분한 후 학습과 수능에 대비하는 것이 좋다.

[기고] 을사년 새해를 맞이해

2025년 을사년 푸른 뱀의 해가 밝았다. 10개의 천간(天干)은 각각 의미와 색을 지니는데 갑(甲)은 무성하게 솟아오르는 나무의 청색이며 을(乙)은 푸릇하게 대지를 덮고 있는 풀과 같은 청색이다. 색깔 10개 동물 12개 올해의 60간지 중 42번째, 푸른 뱀을 의미한다. 지난해 갑진년(甲辰年) 푸른 용의 해, 2026년은 병오년(丙午年)으로 붉은 말의 해다. 푸른색은 새싹이 돋아나듯 희망을 상징하며 새로운 시작의 변화를 의미한다. 뱀은 발이 없어도 걷는다, 뱀이 천년 묵으면 용이 된다, 구렁이가 담을 넘으면 집안이 잘된다 등 뱀과 관련된 속담이 많다. 민속신앙에서는 뱀을 신성한 존재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뱀이 성장할 때 허물을 벗고 겨울잠에서 다시 살아나는 모습은 죽음에서 재생(再生)해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존재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뱀은 한번에 10개의 알을 낳아 건강한 생명력과 다산(多産)을 상징하기도 했다. 뱀은 예부터 신성하게 여기고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는데 뱀을 보면 술을 바쳐 빌며 쫓아내거나 죽이지 못한 것은 곳간의 쥐를 잡아먹기 때문에 재물의 신(神)으로 문헌에도 남아 있다. 뱀과 관련된 지명(地名)을 보면 전국에 총 208곳으로 이 중 뱀의 모양과 관련된 지명은 87곳이 있다. 뱀의 해를 맞아 뱀이 지닌 문화적 싱징과 의미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도 열리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3월3일까지 특별전을 열어 뱀과 관련된 생활용품, 의례용품, 그림 등 60여점을 한데 모아 보여주고 있다. 빨간 긴 바지에 관복을 입은 뱀 신을 표현한 십이지신도 부적(符籍), 뱀과 관련 있는 전설을 담은 책, 뱀 형상의 탈 등 공예품도 전시하고 있다. 뱀은 움직이는 모양 탓에 친근하지 않으며 치명적인 독 때문에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서양에서는 뱀을 치유의 상징으로 여기기도 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문에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에 뱀 한 마리가 똬리를 틀며 기어오르고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아스클레오피스는 친구 집에서 뱀을 죽이는데 이때 다른 뱀이 약초를 물고 와 죽은 뱀에 붙여 살려냈다고 한다. 이에 뱀을 치료의 상징으로 삼았다. 세계보건기구(WHO)를 비롯한 국제의료기관의 로고가 뱀과 지팡이를 형상화하고 있다. 반면 동양에서는 십이지신 중 하나로 등장해 뛰어난 통찰력과 직관적인 동물로 그려진다. 뱀의 특성처럼 잘 빠져나가듯 변화에 유연하게 내실을 다져가는 더 좋은 세상을 기원한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경기만평] 끄떡없다...

[사설] 유산지킴이, 국가는 위촉하고 행정은 쫓아내고

전국에 1만여점의 국가유산이 있다. 그중 7천441개가 경기도에 있다. 17개 시·도 가운데 여섯 번째로 많다. 행정의 관리 능력이 도저히 따를 수 없다. 그래서 만들어진 제도가 국가유산지킴이다. 국가유산청이 2005년 처음 도입했다. 인력·행정의 한계를 지원하는 역할이다. 9시간의 온라인 교육 이수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한번 위촉받으면 4년간 자격이 유지된다. 현재 도에서 활동하는 지킴이는 2천100명이다. 일반인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도 당사자들의 자부심은 어느 직함 못지않다. 유산의 보수, 보전, 관리에 책임의식을 갖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황당한 일이 빈발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수원화성에서 대치 상황이 있었다. 국가유산지킴이 20여명을 관리사업소가 막아선 것이다. 하남시의 한 향교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있었다. 향교 유림들의 반대로 지킴이 40명이 발걸음을 돌렸다. 아주 흔한 모습이다. ‘너무 민망했다’는 한 지킴이의 술회가 이해된다. 국가유산청이 교육까지 시키며 위촉한 요원들이다. 국가·지방 지정 유산, 비지정 유산을 관리하라며 책임까지 줬다. 그들 사비로 청소 도구, 보수 장비, 홍보용 리플릿 등을 마련한다. 이런 지킴이들이 현장에서는 봉변을 당하고 쫓겨난다. 정확히 말하면 행정 기관이 막아서는 것이다. 문제의 출발은 간단하다. 엉성한 제도다. 역할만 부여하고 권한은 주지 않은 제도가 문제다. 국가유산청은 그야말로 위촉만 했다. 이를 구체화할 근거를 마련하지 않았다. 지자체가 알아서 권위를 부여하지도 않았다. 이렇다 보니 이제는 지킴이 지원자도 급감하고 있다. 신규 위촉자가 2021년 531명, 2022년 347명, 2023년 182명, 2024년(10월 현재) 59명이다. 위촉됐던 지킴이들도 떠나고 있다. 재위촉자가 2020년 1천869명에서 2022년 1천256명으로 줄었다. 남아 있는 2천100명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경기도도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다. 2023년 ‘경기도 국가유산지킴이 활동 등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2024년 5월17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조례 제5조에 지원의 근거도 부여하고 있다. ‘도지사는 국가유산지킴이 활동에 필요한 행정·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다.’ 제8조에 포상 근거도 마련해 놨다. ‘공로가 있다고 인정되는 단체, 개인 등에 대하여 포상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구체성을 획정하는 데 모호한 측면이 있었다. 때마침 경기도의회가 이런 문제를 보완할 조례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점은 다행이다. 국가 유산 관련 기관의 업무 보조, 순찰 및 감시 활동, 용역 수행 등 활동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유산지킴이들의 자부심을 고양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사설] ‘속 빈 강정’ 한인비즈니스센터... 전문성 강화가 답이다

2년 전 재외동포청이 인천 송도에서 문을 열었다. 인천시는 ‘1천만 인천 시대’를 장담했다. 750만 재외동포와 함께 가는 ‘글로벌 초일류 도시’를 선언했다. 그러면서 재외동포웰컴센터와 한인비즈니스센터를 개설했다. 정부기관임에도 따로 인천시 지원기구들을 보탠 것이다. 그러나 이들 센터가 1년이 넘도록 뚜렷이 하는 일 없는 상태라고 한다. 인천시는 2023년 10월 재외동포웰컴센터 및 한인비즈니스센터를 열었다. 19억원을 들여 재외동포청이 입주한 빌딩에 같이 자리 잡았다. 재외동포 경제인 및 기업 대상의 투자 상담, 컨설팅을 해주는 창구다. 세계 곳곳 해외 한인 기업과의 교류·협력으로 인천 투자유치를 이끌어 낸다는 목표였다. 그러나 이 센터들은 1년이 넘도록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이곳을 찾은 재외 한인들이 인천시 홍보물 등을 집어 가거나 차를 마시며 교류하는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인천시는 이들 센터 개소에 앞서 투자유치기획위원회나 자문단 등을 운영했다. 투자 유치를 성사시키면 국내외 투자기업 보조금이나 성과급 등을 주기로 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 같은 성과급 관련 예산 집행은 전무하다. 실적이 없어서다. 그간 인천시가 연례적으로 해오던 세계한인비즈니스대회나 수출상담회에서 홍보관 등을 운영하는 데 그쳤다. 투자 유치 관련 전문성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인천시가 센터를 직접 운영하면서 인력도 모두 공무원으로 채워졌다. 인천시 재외동포협력과의 웰컴센터팀 팀장과 3명의 주무관이 전부다. 이들이 시설관리부터 연구 및 사업추진, 프로그램 개발 등을 맡는다. 해외 한인 경제단체 등과의 네트워킹조차 기대하기 어렵다. 더욱이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1~2년 안에 바뀌는 순환보직이다. 전문성을 쌓아 가기도 어렵다. 때마침 인천연구원에서 관련 연구용역 결과물을 내놓았다. ‘한인비즈니스센터 발전 모델에 관한 연구’다. 투자 유치나 비즈니스 지원 등의 업무는 외부 전문기관 위탁이 낫다는 것이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의 글로벌비즈니스센터나 인천상공회의소 등을 예로 들었다. 재외 한인 기업 등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은 대학이나 연구소에 맡기라고 했다. 센터 안에 전문가 자문 풀을 갖추라고도 권했다. 인천을 찾는 재외동포들에 대한 일상 응대 등 웰컴센터의 업무는 기존의 직영체제로도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직영과 외부 위탁 등 투트랙 전략이다. 요는 투자유치나 한상(韓商) 비즈니스 지원 등에 대한 센터의 전문성 강화다. 얘기가 통해야 동포 기업인들도 인천시 한인비즈니스센터를 믿고 찾을 것이다.

[지지대] 위기의 민생경제, 지방정부 역할 중요

“청년 창업자가 실패하면 사회가 다시 기회를 주고 용기를 주면 되지만 소상공인이 무너지면 한 가정이 무너진다.” 침체된 경제 탓에 위기에 내몰리고 있는 소상공인의 절규다.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인 소상공인이 무너지면 가정이 무너지고, 결국 사회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2025년 새해가 밝았고 민족 대명절인 설 연휴가 다가왔지만 소상공인의 곡소리는 여전하다. 높은 물가와 가벼워진 지갑 탓에 명절이라고 소비자들이 무턱대고 돈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소상공인 관련 주요 지표도 절망적이다. 최근 경기도시장상권진흥원이 조사해 발표한 소상공인 관련 통계를 보면 지난해 상반기 기준 경기도내 소상공인의 1년 생존율은 80% 초반대로 10곳 중 두 곳은 1년도 채 버티지 못하고 폐업을 했다. 또 2025년 가계 소비 지출 전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3%가 2025년에는 지출을 줄이겠다고 답했다. 결국 올해 소상공인의 매출은 더욱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상황에서 대혼란에 빠진 중앙정부에 획기적인 대책을 기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멈춰선 중앙정부 대신 지방정부가 소상공인의 희망이 돼야 한다. 최근 적극적으로 민생경제 살리기에 나선 수원시가 대표적인 예다. 수원시는 이달 초 지역화폐의 인센티브를 20%로 확대해 시민의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설 명절을 앞둔 24일 2차 지역화폐 인센티브 20% 지급 이벤트를 실시한다. 지난해에는 관내 모든 공영주차장의 1시간 이용요금 무료화를 추진, 공영주차장 이용객을 크게 늘렸다. 대형마트와 백화점에 가기 위해 공영주차장을 이용하는 이는 없다. 결국 공영주차장 1시간 무료 혜택을 보는 사람은 전통시장 및 소규모 점포를 이용하는 시민이고 이는 소상공인 매출에도 기여한다. 지금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수원시같이 소상공인이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럴 때일수록 지방정부의 존재 이유를 보여줘야 한다.

[삶, 오디세이] 주례사 비평은 잘못인가

문학평론의 위기를 말하는 것 중 하나가 주례사 비평이다. 문학평론가는 작품을 평할 때 엄격하게 장단점을 말해야 올바른 평론이 된다. 그런데 비평이 마치 결혼식 주례사처럼 듣기 좋은 말만 늘어 놓아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비평의 존재 이유가 없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문학평론을 하는 사람들은 현장 비평가다. 문학평론가는 매일 생산되는 수많은 문학작품을 대상으로 현실적 가치에 질문을 던져보는 사람이다. 비평은 텍스트들이 현실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를 분석하고 새로운 답을 찾아가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문단에서는 평론가들이 이러한 임무를 저버리고 지나치게 칭찬만 해 잘못을 저지른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끊임없이 회자되는 주례사 비평은 과연 잘못인가. 어느 날 몇 명의 문학평론가가 인천의 한 음식점에 마주 앉았다. 젊은 평론가 M이 시집 해설을 쓰고 난 후 일어난 일화를 들려줬다. M평론가는 시집 해설을 의뢰받고 평론가의 자의식으로 솔직하게 해설을 썼다고 한다. 요즘 문제시되는 주례사 비평이 아닌 시의 작품성 위주로 평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시를 분석하니 시집은 혹평이 됐다. 그 후 시집의 저자인 시인에게 전화상으로 M평론가는 상스러운 욕을 먹었다. 이 젊은 평론가는 정말 주례사 비평을 싫어했다. 또 다른 예도 들려줬다. 출판사로부터 의뢰받은 시집 해설을 쓸 때의 일이었다고 한다. 이 역시 문제점 위주로 시를 평가했다. 그리고 시집 출판기념식에서 저자인 시인으로부터 M평론가는 멱살을 잡히고 육두문자를 들어야 했다. M은 평론가로서 자의식이 확실한 자신을 거듭 강조했다. 현재는 폐간을 한 모 권위지에서는 매호 작가 특집 코너가 있었다. 문예지에서 그 호에 특집으로 다룰 작가는 이름이 알려진 소설가였다. 특집 대상의 소설가는 평론가의 평가에 기대를 많이 했다. 당연히 우리 시대를 대표할 만한 소설가였기 때문에 긍정적인 평가를 기대하며 문예지의 발간을 기다렸을 것이다. 하지만 특집의 평론을 맡은 B평론가는 해당 작가의 작품세계를 혹평했다. 특집 대상의 작가는 한 번도 받아보지 않은 혹평을 받고 큰 상처를 받았다. 그는 늦은 밤 만취해 울분에 찬 목소리로 문예지 편집위원에게 전화를 걸어 절필 선언을 하고 말았다. 문예지의 특집이 되는 작가들은 평론가들로부터 빛나는 조명을 받는다. 문학 장 안에서의 문예지와 평론가 그리고 작가의 카르텔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특집의 대상이 되면 작가는 문단에서 지위가 상승한다. 그런데 B평론가의 혹평이 한 작가의 자존감을 처참하게 무너뜨리고 만 것이다. 위에서 예를 든 두 명의 평론가는 자의식을 갖고 해당 작품을 평가했다. 문단에서 문제시되고 있는 주례사 비평을 하지 않았다. 한국 문학의 발전을 위해 작품에 대한 평가는 냉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두 명의 평론가는 칭찬받아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필자는 시집 해설과 문예지 특집의 작품론은 성격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문예지의 특집은 B평론가처럼 자의식을 갖고 작품의 문제점에 대한 분석과 비판을 할 수 있다. 비평은 감시받지 않는 절대 자유 속에서 대상 텍스트를 평가해야 한다. 작품의 문제의식과 인간의 다양한 욕망 그리고 부조리를 실존적 의미와 결부해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비평의 문장은 결기와 파열음이 가득해야 존재 이유가 확실해진다. 필자가 편집인으로 있는 시와 비평 전문지 포엠피플에 ‘문제적 비평’이라는 코너가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집 해설일 경우는 다른 시각이 필요하다. 시인이 시집을 출간하는 것은 매우 큰 축제에 해당한다. 시인은 자신의 시집 출간을 최대한 축복받고 싶어 한다. 문단에서 평론가로부터 평가받는 작가는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가 말한 아비투스 자장 안에서 문단은 작동한다. 따라서 문학 장 안에서의 헤게모니 투쟁의 승자는 소수의 스타급 작가다. 비평의 대상은 이들로 국한돼 있다. 하지만 비권위지 출신의 시인이 평론가로부터 평가받을 수 있는 순간이 있다. 바로 시집을 출간할 때다. 시인들은 기대에 부풀어 섭외한 평론가의 평가를 기다린다. 문단에서는 비권위지 출신이지만 개성이 강하고 작품성이 높은 시를 쓰는 시인이 많다. 이들의 문학에 대한 열망은 매우 높고 자존심도 강하다. 시집 출간이라는 자신의 축제에 M평론가처럼 혹평을 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시집 출간이라는 축제의 측면에서 보면 M평론가는 잘못을 저질렀다. 필자는 시집 출간을 할 때는 시인의 축제에 참여했으므로 문학적 열망과 결과에 대한 답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게 옳다고 본다. 다만 작품론이나 작가론을 쓸 때는 평론가의 자의식으로 냉정하게 평가하는 것이 맞다.

[기고] 공중보건한의사의 방문진료

“집에만 누워 있어 우울했는데 다시 걸을 수 있는 희망이 생겼어요.” 낙상으로 인한 압박골절로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은 후 퇴원해 집에서 혼자 누워만 계시던 어르신이 울먹이며 하시던 말이다. 영광군에서는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65세 이상의 퇴원자들을 대상으로 한의과, 치과 공중보건의, 보건소 간호사, 읍·면사무소 방문복지팀이 협력해 통합 돌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대상자는 주로 고령의 홀몸노인으로 상급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으나 자립 보행에 어려움이 있고 교통 취약지에 거주해서 통원치료를 받기 어렵다. 또 생활 활동 반경의 제한, 사회적 고립으로 인해 정서적 위기에 놓여 있다. 지난해 여름 밭일을 하다 넘어지며 발생한 척추 압박골절 및 고관절 골절 치료 후 퇴원한 어르신을 방문했다. 댁에서 혼자 통증과 보행 기능 저하로 고통받으며 3개월에 한 번 고혈압, 당뇨약을 처방받으러 아들과 읍내 의원에 가는 것 말고는 집에만 계셨다. 방문치료 때마다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 수치를 검사하고 수시로 체위 변경을 지도했다. 5개월간 방문 진료를 주기적으로 진행했으며 그 후 환자가 자립 보행이 가능할 정도로 호전되자 울먹이며 감사의 말씀을 전했다. 공중보건한의사이자 마을 주치의로서 일차 의료 및 필수 의료를 담당하며 이렇게 방문진료를 통해 환자를 치료하며 희망을 주고 있다. 한의 치료는 맞춤형 접근에 장점이 있어 환자들의 개별적인 신체적 및 정서적 상황과 필요를 반영한다. 전통적인 한의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현대의 연구를 통해 입증되고 발전하고 있는 수많은 치료를 환자의 개별적 상황에 맞춰 활용할 수 있다. 홀몸노인들은 만성 질환, 근력 저하, 영양 결핍 등의 신체적 건강 문제, 사회적 고립 및 불편한 거주 환경 등으로 인한 정서적 문제, 치매 및 기억력 저하 등의 인지 문제 등 다양한 문제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상황에서 맞춤 치료에 강점이 있는 한의사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더욱 확대돼야 한다. 한의사로서 초음파 진단기, 혈액 및 소변 검사, 체외 진단 키트 등의 사용 권한이 있으므로 방문진료를 하며 이를 활용하고 환자들에게 예방접종, 공공보건 의약품 등을 활용할 수 있다면 홀몸노인의 건강 증진 및 보건에 큰 도움이 된다. 방문진료를 통해 홀몸노인들에게 제공하는 맞춤형 치료와 지원은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주고 있다. 이러한 방문진료는 단순한 의료 서비스를 넘어 지역사회의 건강한 생활 영위와 복지 실천을 실현하는 중요한 기회다. 한의사는 개별적 상황을 고려한 맞춤형 치료를 통해 더욱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공중보건한의사가 방문진료 때 진단기기 및 의약품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개선된다면 어르신들의 질환 치료 및 보건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천자춘추] 심정지 골든타임 ‘4분’

‘심정지’란 모든 원인과 상관없이 심장박동이 정지돼 발생하는 상태로 심정지 발생률은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이는 심장의 전기적 문제로 인해 심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멈출 때 발생한다. 심장박동이 멈추면 혈류 공급이 중단돼 조직이 손상되고 이 상태가 지속되면 세포가 괴사해 결국 사망에 이른다. 이때 생사의 기로에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시간은 단 4분으로 이 시간을 골든타임이라 일컫는다. 이 골든타임 내에 즉각적인 흉부 압박이나 자동심장충격기(AED)를 사용해 심장을 재활성화하지 않으면 생존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심정지는 오전에 많이 발생하고 다음으로는 저녁 시간대에 많이 발생하는데 특히 심실세동에서 제세동이 1분 지연될 때마다 제세동의 성공 가능성은 7~10%씩 감소한다. 우리나라에서도 2023년 병원 밖에서 급성심정지 발생 건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3만3천500여건으로 상당수가 가정에서 발생한다. 심정지 환자 발생 시 119에 신고하고 구급차가 도착하는 시간까지 평균 5~10분으로 이미 골든타임을 놓친다. 이는 심폐소생술(CPR) 교육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심정지 발생 후 뇌사 상태로 진행되기 전 4분 이내에 CPR이 시행되면 생존율이 크게 높아지지만 4분이 경과하면 생존율은 급격히 낮아진다. 우리나라 성인 심정지 환자의 생존율은 여전히 낮은 편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예방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최근에는 심정지 환자 관련 보도가 빈번하게 등장하고 이태원 참사 이후 자동심장충격기 사용법에 대한 공익광고도 꾸준히 시행하고 있다. 이는 심정지 발생이 우리 일상에서 흔히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심폐소생술과 자동심장충격기 사용법은 물론이고 재난안전교육 등 다양한 기관에서 무상 교육을 제공하고 있으며 체험센터를 통해 직접적인 실습으로 교육 효과 증대와 함께 실전에 더욱 효과적으로 대비할 수 있다. 4분이라는 짧은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매우 귀중한 골든타임이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당황하지 않고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학교나 다양한 직군에서도 안전예방교육의 일환으로 정기적이고 체계적으로 교육해야 하며 개개인이 경각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항시 대비 태세를 갖춰야 한다.

[경기시론] 교육의 사법화, 우린 어디쯤인가

얼마 전 학교폭력 사안 처리가 잘못됐다며 가해 학생 학부모가 학교폭력 책임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한 적이 있었다. 피고소인 교사의 변호를 맡아 수사기관 조사에 참여했는데 수사관이 책임교사인 피고소인이 조사한 학교폭력 사안 처리에 상당한 의문을 품고 있었다. 법을 모르는 교사이니 당연히 잘못된 점이 있을 것이라는 불신이 느껴졌다. 학교폭력 사안을 다룸에 있어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교사는 경찰관이 돼야 하는가, 법률전문가가 돼야 하는가. 2021년부터 2023년까지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조치에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이 불복해 제기한 행정심판은 5천100여건이다. 2021년 1천295건에서 2023년 2천223건으로 두 배가량 증가했고 행정소송 역시 2021년 255건에서 2023년 628건으로 늘었다. 대부분 가해 학생이 조치에 불복하는 사례이지만 피해 학생이 가해 학생 조치를 상향해 달라는 취지로 제기하는 행정심판과 행정소송도 점차 늘어나는 것으로 확인된다.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 그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는 학교폭력 사안 처리라니. 2023년 초 정순신 전 검사의 국가수사본부장 임명 이후 느닷없이 학교폭력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며 교육부는 중대한 학교폭력에 대해 엄정하게 대처하겠다며 학교폭력 조치사항 기록과 관리 강화를 포함한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러한 강경책에도 불구하고 학교폭력 발생 건수는 줄지 않고 있고 강화된 생활기록부 기재 및 관리 강화로 학교폭력 신고·조사 단계부터 변호사를 선임해 법적으로 대응하는 건수가 늘어나고 있으며 학교장 자체 해결의 비율이 감소하고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서 받은 가해 학생 조치에 대한 불복 건수는 늘어난다. 모두 부정적인 지표다. 현재 학교폭력은 법적 다툼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다. 교육 현장에 변호사의 진입이 많아지는 데 단초가 된 것이 학교폭력예방법의 제정·개정이다. 물론 학교폭력에 대한 민감성이 높아진 것도, 권리의식이 신장된 것도 이유이겠지만 말이다. 학교폭력 신고와 사안조사 단계에서의 변호사 개입이 갈등·다툼의 조기 해결을 뜻하는 것이라면 두 팔 벌려 환영할 만한 일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의 조치 의결 전에 이뤄지는 즉시분리, 긴급조치로 인한 가해 관련 학생의 억울함, 가해 학생 조치가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되면 대학 입시에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불안감. 언론은 불안감을 자극하고, 변호사들은 이러한 억울함과 불안함을 법적 조력을 통해 모두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처럼 안내한다. 변호사가 개입하면 학교, 교육(지원)청 모두 교육적으로 해당 문제를 풀어 나가려는 노력보다는 문제 없이 사안 처리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리게 된다. 교사들이 학생들의 사소한 다툼까지도 교육적으로 훈계할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인데 이는 ‘학교 공동체의 단절’로 이어진다. 학교 내의 갈등은 필연적이다. 학생들은 그 갈등을 해결하며 화해하는 방법을 배우니 그러한 경험을 쌓을 필요도 있을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기 전 예방주사 같은 것이랄까. 학생들 간 갈등이나 다툼을 모두 학교폭력예방법상 학교폭력으로 봐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이에 대해 법원도 상황에 따라 다른 판단을 하니 학교폭력의 개념도 참 불명확하다. 그러니 학교폭력 문제에 있어 ‘법’이 갖는 한계를 인정하자. 현재와 같은 법률과 정책으로는 학교폭력의 발생을 줄이기 어렵고 학교폭력 사안 처리를 통해 학교폭력예방법상 목적에 부합하는 결과(피해 학생 보호와 가해 학생 선도)를 초래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교육이 갖고 있는 힘과 학교가 마땅히 해야 할 노력이 사라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법률과 정책은 공동체문화를 구축하고 학교 스스로 자치의 힘을 함양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하고 우리는 학교폭력 문제를 학교 내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구조와 문화를 형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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