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與野 없는 협공, 경기도에 ‘김동연黨’이 없다

경기도의회 국민의힘이 김동연 지사를 공격했다. 김정호 대표의원의 12일 대표의원 연설이다. 김 지사의 잦은 호남 방문을 지적했다. “취임 후 벌써 14번째다. 이쯤 되면 호남지사라고 불려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면서 “호남 민심에 그렇게 목매면서 도민 민심은 왜 그리 외면하나. 무의미한 정치 행보를 멈추고 진정으로 도정을 돌보길 바란다”고 밝혔다. ‘헛된 꿈에 사로잡혀 도정을 파탄시킨다’는 비판도 했다. 경기도의회 야당인 국민의힘이다. 집행부 공격이 새삼스러울 것 없다. 김 지사 견제는 중앙당의 방향이기도 하다. 이날 김 의원은 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함께 공격했다. 29번의 연쇄 탄핵, 23번의 특검법 발의, 38번의 재의요구권 유도 등 중앙당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했다. 이재명 대표를 김 지사와 싸잡기도 했다. “이재명 전 지사의 뻔뻔함에 김동연 현 지사의 무능이 더해졌다”며 “바로 사퇴하라”고 비난했다. 또 다른 연설이 하루 전 있었다. 김 지사가 속한 더불어민주당이다. ‘김동연 집행부’로 엮인 경기도 여당이다. 이런 민주당의 최종현 대표의원의 연설인데 의외다. “도정에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각별히 살펴야 한다”고 했다. “1천410만 경기도민을 챙기고 있는 경기도지사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한다”고도 했다. “호소한다”, “당부한다” 등의 완곡한 표현은 있었다. 하지만 방점은 ‘도정 챙기라’로 모아졌다. 경기도에서 현직 지사의 대권 행보는 늘 있었다. 김문수 지사(민선 4·5기)는 장기 휴가를 내고 당내 경선에 참여했다. 남경필 지사(민선 6기)도 경선으로 자리를 비웠다. 이재명 지사(민선 7기)의 임기 말도 대권에 섞였다. 그때마다 도정 소홀 비난과 도민 피해 우려가 제기됐다. 이런 공격에는 일정한 구획이 있었다. 상대 정당 또는 노선이 다른 시민단체가 선창했다. 그러면 지역언론 사설이 거드는 정도였다. 이번은 특이하다. 비난의 한 축이 민주당이다. 당의 얼굴인 대표의원이, 본회의 대표 연설에서 밝혔다. 사실 이 배경을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김 지사의 대권 행보는 현실적으로 이재명 대표를 겨냥한다. 법카 유용 지적, 기본소득 이견, 재난지원금 반박 등의 전력이 있다. 이번 설을 전후해서는 한층 자극적 발언을 쏟아냈다. 여론조사검증위원회 비판, 선거법 2심 당선 무효형 영향 등 수위가 높았다. SNS 여론에서는 양면이 있다. ‘배신자’, ‘유일 대안’ 논쟁이다. 그러나 도의회로 보면 다르다. 2022년 지방선거의 축은 이재명 대표였다. 민주당 도의원 상당수가 이 대표와 연을 갖고 있다. 민주당 대표의 김 지사 공격이 그런 증명이다. 새삼 김 지사가 느끼고 인정해야 할 현실이다. 경기도의회에는 ‘김동연당’이 없다. 경기도의회가 대권으로 가는 고비일 수 있다. 때로는 전 국회의원보다 현 도의원이 중요할 수도 있다.

[사설] 재외동포 정착 지원... 우리 사회 활력 충전이다

인천은 한국 근대 이민사의 출발지다. 1902년 전 첫 하와이 이민선이 제물포항을 떠나갔다. 100여년이 흐른 후 그곳 월미도에 ‘한국이민사박물관’이 들어섰다. 120여년이 흐른 후엔 재외동포청이 인천에 문을 열었다. 인천이 750만 재외동포들의 또 다른 고향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자리한 재외동포청이 새해 사업 설계를 내놨다. 올해부터 재외동포 정착 지원 사업을 본격화한다. 어려운 시절, 울면서 조국을 떠난 이들이 다시 돌아오는 시대다. 11억여원의 예산으로 이들의 안정적 정착을 지원하는 사업을 벌인다. 먼저 국내 귀환 동포들에 대한 실태조사를 할 계획이다. 그들의 이주 배경이나 한국어 구사 능력, 한국 생활 만족도, 일자리 현황 등이다. 조사 결과를 토대로 맞춤형 정착 지원에 나선다. 최근 인천 등 국내 지역에는 조선족을 비롯해 재미동포, 고려인 등 재외동포들이 지속적으로 귀환하고 있다. 최근의 국제정세 불안 등도 한 요인이다. 대한민국에 거주 신고를 마친 외국 국적 동포들이 늘고 있다. 2020년 46만4천783명이었다가 2021년 47만5천945명, 2022년 49만9천270명으로 늘었다. 이어 2023년 53만3천295명, 지난해에는 55만3천664명까지 증가했다. 이 중 인천에 살고 있는 동포도 지난해 말 기준 4만3천637명(7.8%)에 이른다. 불법 체류 중인 동포까지 합치면 86만명으로까지 추산한다. 정착 지원은 국내 체류 동포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사회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청소년·성인·고령층 등으로 나눠 맞춤형 적응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나아가 이들 동포 자녀들에 대해서도 정체성을 갖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한국어 교육, 한국 역사 교육, 정체성 함양 및 모국에 대한 자긍심 고취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일상생활의 불편함을 해소해 주기 위한 컨설팅도 마련한다. 임대차 계약이나 금융 교육, 세금 납부, 자격증 취득 및 취업 준비, 노동자 권리 및 산업안전 교육, 노년 인생 설계 분야 등이다. 이를 위해 재외동포청은 올해 동포들이 사는 현장 방문도 할 계획이다. 그들 목소리를 들어 실생활 체감형 지원을 하기 위해서다. 한때는 이민에 대해 ‘디아스포라(이산)’ 등 감상적 의미 부여도 있었다. 배고팠던 시절, 각자도생식 선택이란 의미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저마다의 꿈을 향해 전 세계로 달려가고, 또 다른 꿈을 향해 돌아온다. 재외동포들의 안정적 정착은 우리 사회의 새로운 활력 충전일 수 있다.

[지지대] 정치의 변방 인천? 이젠 중심지로

인천이 또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결과에 따라 조기 대선의 가능성이 생기면서, 인천에서 여야 정치권의 유력 대선 주자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주목받고 있는 인물은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표(인천 계양을)다. 조기 대선이 치러지면 민주당의 대표적인 주자로 꼽히고 있는 탓이다. 이 대표는 지난 2022년 6월 재·보궐선거를 통해 인천에 둥지를 튼 이후 2024년 총선에서 당선, 인천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한때 이 대표가 연고도 없는 인천에 온 것 자체로 논란이 있기도 했지만, 아무튼 이제는 인천의 국회의원임은 부인할 수 없다. 여기에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인천 연수갑)도 주목받는 인물로 꼽힌다. 이 대표와 함께하는 만큼 대선 주자로 분류가 이뤄지진 않지만, 대통령 탄핵 정국을 이끌고 있는 데다 조기 대선에 이 대표가 출마하면 막중한 임무를 맡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반면 여당에서는 유정복 인천시장이 대선 주자의 잠룡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전국 시도지사협의회장을 맡아 지방분권형 개헌 등을 추진하면서 자신의 강점인 ‘정책’을 부각시키고 있다. 재선 인천시장과 행정안전부(안전행정부) 장관 등을 거쳐 안정적인 행정가다운 모습과 함께 국회의원 3선의 정치 경험도 갖춘 점이 강점이다. 5선의 윤상현 국회의원(인천 동·미추홀을)도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행동에 앞장서며 강경 보수층을 결집시켜 당 내부에서의 지지가 급상승하고 있다. 지난해 당 대표 선거 때와 다르게 지지도의 확장성을 이뤄냈다는 평가다. 인천은 2022년 보궐선거에서 이 대표의 등장, 그리고 2024년 이 대표와 원희룡 국토교통부 전 장관의 맞대결 등으로 뜨거워졌던 계양구. 이제는 선거로 인해 인천이 전국에서 가장 뜨거운 핫플레이스로 달아오를 전망이다. 이를 통해 그동안 정치의 변방으로 불리던 인천이 이제는 ‘대한민국 정치의 중심지’로 우뚝 서길 바라본다.

[김종구 칼럼] 중국 간병인, 자격 묻고 책임 지워라

-거칠게 환자의 몸을 뒤집는다. 환자가 고통을 호소하지만 소용없다. 환자가 무거워 다룰 수 없다며 불평한다. 2만원을 쥐여주자 조용해진다. 욕창을 방지하려는 약품이 필요했다. 자기 가방에서 약품을 꺼낸다. 약국에서 7천원인데 2만원이라며 권한다. 살 수밖에 없다. 기저귀를 다 써서 자기가 샀다고 한다. 가족이 옆 병상에서 기저귀를 찾아온다. 항의하자 거센 폭언이 시작된다-. 일인칭 관찰이다. 증명은 생략하겠다. -90대 할머니가 사망했다. 가해자는 딸뻘인 50대 중국 여성이다. 잠 안 잔다며 이불로 덮고 ‘퍽퍽’ 때렸다. 사인이 직장암이라는데, 5년 전 완치됐다. 유족이 합의했다는데 그건 사망 전의 상황이다. CCTV 등이 없다지만 간병인 자백은 있다. 이런데도 경찰은 간병인을 불구속했다. 할머니가 왜 맞았고, 얼마나 맞았는지 알 길이 없다. 부검이라도 해보려 했다. 그런데 이미 화장을 치렀다.- 남은 건 불효에 대한 통한 뿐이다. ‘중국인 한두 명의 문제를 침소봉대 말라’고 할 건가. ‘따뜻한 인류애로 접근해야 한다’고 할 건가. ‘우리 조선족 동포들이다’고 할 건가. 간병 병실을 두세 곳만 살펴도 그런 소리 못한다. 금품 수수, 의약품 판매, 물품 유용.... 널브러진 장면이다. 막말, 학대, 폭행, 성폭행.... 이어지는 사건이다. 그때마다 중국인 간병인이다. 간병인의 80%가 외국인, 그 외국인의 80%가 중국인이다. 문제의 출발은 중국인 취업 대책이다. 간병인은 세계가 다 부족하다. 나라마다 간병인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독일은 의무적 공적 간병보험제도를 도입했다. 일본은 40세 이상이면 노인장기요양보험 의무 가입이다. 싱가포르는 중앙적립기금(CPE)으로 푼다. 미국은 공적 간병의료보장제도를 운영한다. 공통점은 간병제도의 공적(共的) 운영이다. 공적자금을 넣고 그 대신 자격을 관리한다. 명칭과 역할에는 차이는 있지만 ‘자격 있는 간병인 제도’는 대체로 같다. 우리에겐 이게 없다. 조건도 없고 제한도 없다. 건설 현장에 잡역부 공급하듯 하고 있다. 인력사무소와 환자 가족의 직거래 방식이다. 환자 가족이 선택한 셈이 된다. 병원은 ‘단순히 소개하는 역할’이다. 정부·지자체도 보이지 않는다. 책임 질 곳이 없다. 이런 ‘간병인 시장’을 외국인에게 확 열었다. 중국인들이 물 밀듯 들어왔다. 전문지식은 아예 기대할 수 없다. 불법체류자에서 각종 전과자, 수배자들까지 마구 섞여 있다. 충북의 한 정신병원에서 성범죄가 발생했다. 50대 남성 중국인 간병인이 여성 환자를 성폭행했다. 다른 여성 환자를 성추행하기도 했다. 달아났다가 한 달여 만에 잡혔다. 불법 체류하던 중국인이었다. 사기 혐의로 수배까지 내려져 있었다. 그를 알선한 간병인협회, 그를 근무시킨 병원이 똑같은 변명을 했다. “불법체류나 수배 사실을 몰랐다.” 자격 기준이 없으니 추궁할 근거도 없다. 유린당한 여성과 가족만 억울하다. 간병인 자격 제도 좀 만들자는 요구다. 그런데 국회는 엉뚱한 얘기를 내놨다. 지난해 총선에 등장한 ‘간병비 급여화’다. 간병인에게 월 급여제를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유력 정당이 내세웠던 총선 1호 공약이었다. 요양보호사들이 들고일어났다. 240시간 교육과 시험을 거친 사람들이다. ‘무자격 간병비에게 급여 보장이 웬 말이냐’며 반발했다. ‘중국인 간병인에게 혜택 주는 이유가 뭐냐’고 따졌다. 터질 법한 분노 아닌가. 요즘 세계를 떨게 하는 권력은 트럼프다. 범죄자 이민자들을 관타나모 교도소로 보내고 있다. 이민자 2천만명을 추방하겠다고 선언했다. 멕시코 국경에는 군 병력을 증강시켰다. 이 정책에 미국인의 60% 이상이 지지를 보냈다(CBS뉴스 10일 조사). 일자리 지키는 대통령이라고 봐서다. 그런 미국도 간병인 취업은 열어놨다. 그만큼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철저하게 검증한다. 언어, 능력, 자격증, 전과까지 다 따진다. GDP 27조달러의 1등 나라, 그런 미국도 자격 갖춘 외국인만 골라 받는다. GDP 1조6천억달러의 13등 나라, 이런 한국은 자격 안 묻고 막 받는다. 뭔가 잘못된 것 같지 않나. 손봐야 한다. 이 외국인 간병인 현실.

[삶, 오디세이] 이 땅에서 일어나자

연말부터 새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다툼과 분열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일상 속에서 이야기를 나눠도 서로의 의견이나 성향이 다른 것은 아닌지 조심하고, 표현이나 말투도 이전보다 주의를 기울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지금은 많은 생각과 오해가 뒤섞인 나머지 다름을 용서하지 않고 그것을 화로써 표출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탐진치(貪瞋癡)라는 삼독심(三毒心)이 있다. ‘탐’은 탐심과 욕심으로 내가 더 가져야 하고 다른 사람보다 더 뛰어나야 한다는 집착의 마음이다. 그리고 그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진’의 화를 내고 더 나아가 ‘치’의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된다는 가르침이다. 즉, 화와 어리석은 행동의 토대에는 욕심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욕심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더 가지려는 마음과 더불어 다른 사람에 대한 차별심도 포함된다. 즉,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을 따라야 한다거나 자신과 같아야만 인정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우리는 같은 나라에 태어나 같은 한글을 사용하고, 같은 피부색을 가졌지만 그렇다고 그것들로 인해 모두가 똑같다고 정의할 수 없다. 모두가 다른 삶을 사는 세상에서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모든 것에 충돌할 수밖에 없고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오히려 자신이 가장 다른 존재일지도 모른다. ‘화합’이라는 말은 끌어당겨 합치는 것이 아니다. 서로를 받아들이고 안아줘 함께 나아가는 것이다. 다르기에 화합이라는 단어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작은 지구 속의 아주 작은 나라에서 살고 있다. 그렇다 보니 한두 명만 거쳐도 아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까운 관계 속에 있고 지금도 그들 옆에서 내가 함께하고 있다. 지금은 화가 너무나 끓어올라 서로를 밀어내고 분별하고 있지만 우리는 결국 여기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 이미 절반이 잘려진 나라에서 다시 서로를 인정하지 못해 잘라낸다면 이 작디작은 나라에서 결국 자신의 설 곳이 없어질 것이다. 끓어오른 화는 언젠가 식을 것이고 밀어냈던 그들은 언젠가 우리와 함께 이곳에서 살 것이다. 서로에 대한 상처는 고스란히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지눌 스님의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人因地而倒者, 因地而起)’는 가르침이 있다. 지금 비록 이 땅에 분열과 성냄이 있을지라도 우리는 다시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갈 것이다. 서로를 이해하고 그 ‘서로’ 속에 자신도 함께한다는 사실을 깨달아 서로의 상처가 조금이나마 아물도록 화합의 마음을 열어줄 지금이다.

[천자춘추] 예술혁명

동양의 서화는 서양미술에 비해 변화도 없고 재미도 없다. 검은 필묵만으로 승부하는 서화는 현란한 색과 구상 추상을 질주하는 아크릴 조형의 결정인 유화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호흡을 길게 해서 보면 거대한 예술혁명의 산맥이자 장강이 동양의 서화다. 경기도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명경단청-그림 같은 그림’을 보면 200년이 넘는 명나라 초기 중기 후기의 서화 산맥을 조망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조선의 겸재 정선이나 추사 김정희에까지 연결되면서 더 큰 태산준령으로 전개됐음도 독화(讀畵)해낼 수 있다. 동기창과 김정희가 만들어낸 국경을 초월한 필묵공동체가 그 사례다. 동기창은 이미 17세기 초반에 초예기자지법(草隸奇字之法·초서, 예서, 초예, 전서와 같은 비일상적인 문자를 쓰는 법)으로 나무는 무쇠같이 구불구불하게, 산은 모래사장에 송곳으로 그어 젖힌 듯 입체적으로 써냈다. 요즘 말로 ‘큐비즘’을 한 것이다. 왜? 전적으로 문인의 기운(士氣)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그 당시 철학 없는 직업화가들의 판에 박힌 그림을 전복시키는 방법론을 동기창은 그림이 아니라 이렇게 초예기자라는 글씨에서 제시했다. 글씨로 그림을 쓰면서 장르를 파괴시킨 것이다. 그래서 미국 클리브랜드뮤지엄 소장 동기창의 ‘강산추제도’ 같은 산수도는 엉뚱하게도 사각 삼각의 벽돌이나 원통 원추의 기하도형으로 해체된 세잔의 생빅투아르산이 연상돼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실제 동기창은 1607년 마테오리치가 한역한 유클리드의 ‘기하원본’과 같은 서학(西學)을 적극 수용했고 현장 사생도 열심히 해냈다. 그 결과 당-오-북송·남송-원-명과 같은 대륙의 역대 그림 고전의 방작(倣作) 위에 기운 생동하는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그림을 혁명시켜 냈던 것이다. 하지만 초예기자는 여전히 산과 나무를 여하히 그로테스크하게 형상화해 문인화가들의 문자향서권기(文字香書卷氣)를 표출해낼 것인가에 방점이 찍혀 있다. 말하자면 초예기자 그 자체로 시서화일체가 되는 이상적인 문인화의 실천은 동기창의 과제로 남아 있었다. 이는 이미지와 텍스트가 한 몸인 글씨가 다시 텍스트가 이미지 뒤로 숨으면서 추상표현주의와 같은 이미지 중심의 그림이 되는 것과 비유된다. 이런 동기창의 200년 묵은 난제는 19세기 중반 조선의 김정희가 왕희지 계통의 글씨와 그 이전 한나라 금석문, 즉 첩학(帖學)과 비학(碑學)을 혼융해낸 추사체(秋史體)로 업그레이드된 초예기자지법으로 난초와 시문을 구분 없이 써냄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풀었다. 그것이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다. 글씨와 난초는 그냥 획(劃)일뿐이다. 그림과 글씨의 구분이 무색하게 불이(不二)의 평등관계다. ‘불이선’이 뭔가를 시각화한 결정이다. 요컨대 동기창이 초예기자로 명나라까지 전개돼온 대륙의 그림 역사를 전복시켰다면 김정희는 다시 동에서 서로 현대미술의 문을 열어젖혔다. 이우환 윤형근의 점·선·바람 시리즈나 획면추상의 단색화가 뿌리를 추사체에 박아내고 있는 것보다 더 큰 서화미술의 혁명도 없다. 서(書)가 예술혁명의 불씨다.

[함께하는 미래] AI 쇄국정책으로 딥시크를 막을 수 없다

지난달 중국의 헤지펀드 회사 환팡퀀트 소속 인공지능 연구기업 딥시크(DeepSeek)가 전 세계 인공지능(AI) 산업에 큰 충격을 줬다. 미국의 반도체 수출 통제 때문에 성능이 낮은 H800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딥시크의 R1 모델이 가장 강력한 성능을 가진 H100 칩을 활용한 오픈AI의 o1 모델과 대등한 기술력을 보여줬다. 더 놀라운 점은 자본금 1천만위안(약 19억9천만원)으로 설립된 딥시크의 R1 개발비가 1천570억달러(약 208조원)의 가치를 가진 오픈AI의 챗GPT 개발비의 5.8%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딥시크 충격에 대한 미국의 대응은 양면적이다. 한편에서는 AI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산업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식 다음 날인 지난달 21일 미국 오픈AI, 오라클, 일본 소프트뱅크가 참여하는 총 5천억달러 규모의 ‘스타게이트(Stargate)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틀 뒤에는 자유로운 기술개발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바이든 행정부의 AI 규제를 철폐하는 ‘AI에서 미국 리더십을 위한 장벽 제거’ 행정명령이 공포됐다. 한편으로는 미국 관공서와 군부대는 딥시크 R1의 사용을 금지했다. 개인정보 수집 및 처리 방식이 불분명해 R1에 보안 침해 가능성과 함께 개인정보 유출이 의심된다는 이유에서다. 기기 정보, IP 주소, 키보드 입력 패턴 등이 불법적으로 수집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미국 의회는 틱톡 금지 법안과 유사한 딥시크 금지 법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산업정책이 논의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AI기본법’을 제정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글로벌 인공지능 3대 강국(G3) 도약, 중소벤처기업부는 AI생태계 활성화를 목표로 올해 대규모 재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반면 행정안전부는 이달 4일 중앙부처와 17개 광역지방자치단체에 생성형 AI 사용에 유의해 달라고 요청하고 이에 외교부, 국방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이 외부망과 연결 가능한 업무용 PC에서 딥시크의 사용을 차단하는 등 보안정책까지 언급되고 있다. 미국처럼 대규모 투자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가성비가 훌륭한 딥시크의 사용을 완전히 금지하면 우리나라가 미국은 물론이고 중국과의 격차를 줄이지 못할 것이다. 올해 우리나라 예산 중 AI 관련 예산은 총 1조8천억원으로 미국의 200억달러(약 29조원), 중국의 1천917억위안(약 39조원)에 비해 턱없이 적으며 민간투자(2023년 기준)에서도 우리나라가 13억9천만달러로 미국(672억2천만 달러)은 물론이고 중국(77억6천만달러)보다도 훨씬 적다. 중국 AI 산업의 저력은 풍부한 연구인력에 있다. 중국 내에만 생성형 AI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이 700개가 넘는다. 미국 폴슨연구소의 ‘글로벌 AI 인재 현황 2.0’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미국 기업과 연구기관에 소속된 최상위 AI 연구자의 47%가 중국 대학 졸업자이며 미국 대학 졸업자는 18%에 불과했다. 미중 격차는 앞으로 더 벌어질 것이다. 2025년 처음으로 네이처 인덱스의 2~11위를 중국 대학이 차지했다. 1위인 하버드를 제외한 스탠퍼드(12위), MIT(13위), 옥스퍼드(14위), 도쿄대(15) 모두 중국 쓰촨대(11위)에도 추월당했다.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중국에서 제2, 제3의 딥시크가 나오는 것은 시간문제다. 생성형 AI에 대한 정책은 기술·산업 육성과 보안 침해 방지 사이의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 제한된 재원과 인력으로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가성비가 좋은 중국 AI 모델을 적절히 참고해야 한다. 중국 AI 모델의 사용을 완전히 금지하는 쇄국정책은 기술 발전을 촉진하기보다 후퇴시킬 가능성이 더 높다. 정부와 업계는 보안을 강화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 딥시크의 장점을 활용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경기만평] 시작인건가...

[사설] 질환 교원 범죄에서 학생·교사 지킬 시스템이 없다

끔찍하고 안타까운 사건이다. 초등학교 1학년 여학생이 흉기에 피살됐다. 범행 장소는 학생 본인이 다니던 학교였다. 범인은 그 학교에 근무하는 현직 교사였다. 둘은 사건 전까지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우울증을 앓고 있던 교사의 묻지마 범죄다. 자해를 시도한 교사는 ‘내가 범행했다’고 자백했다. 끔찍한 범행 현장을 학생의 할머니가 발견했다. 아이를 잃은 가족의 슬픔이 어떻겠나. 모든 국민이 충격에 빠졌다. 대강의 정황은 확인됐다. 교사는 우울증 등 정신적인 문제로 휴직했었다. 지난해 12월 교과 전담 교사로 복직했다. 며칠 전에도 비정상적인 폭력성을 나타냈다. 지난 6일 웅크리고 있는 자신에게 동료 교사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러자 그 교사의 팔을 꺾는 등 난동을 부려 주변에서 말렸다. 학교 측이 시교육청에 대책 마련을 요청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같은 병력을 이유로 또 휴직은 불가능하다는 게 이유였다. 냉철히 보자. 정신질환자 한 명에 의한 예외적 사건인가. 우리 주변에서 발생할 우려는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질환 교원은 늘 상존해 있고, 이들을 제어할 방책은 어디에도 없다. 기억나는 2023년 초등학교 교사 사망이 있다. 학생 지도 과정에서 받은 정신적 고통이 이유가 됐다. 같은 어려움을 호소하는 교사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당시 분출된 사회적 분노의 방향은 교권 붕괴였다. 그 이면에서 불거진 현실이 있었다. 일선 교사들의 정신건강이다. 통계가 있다. 2023년 우울증 진료를 받은 초등학교 직원이 9천468명이었다. 1천명당 37.2명으로 2018년 16.4명에서 급증했다. 그해 들어 유독 환자가 늘어났다고 볼 수 없다. 그동안 소홀히했던 ‘교단 스트레스’가 그제야 확인된 것이다. 대부분은 간단히 치료될 수준으로 보인다. 아주 드물게 병증이 심각한 경우가 문제다. 교육 현장에서 배제할 수 있는 절차와 근거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런 역할을 담당할 시스템이 없다. 휴직과 복직 등의 결정이 모두 본인 판단에 맡겨져 있다. 정확한 병증의 고지 의무조차 유명무실하다. 어설픈 제도가 있긴 했다. 2000년대 초반에 등장한 질환교원 심의위원회다. 질환으로 직무 수행이 불가능한 교원을 직권 휴·면직하는 제도다. 하지만 2010년을 전후해 대부분 폐지 또는 통합됐다.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였다. 2020년 이후 일부 광역 교육청에서 부활했다. 여전히 실효성은 없어 보인다. 환자 본인을 강제할 확실한 근거에 이르지 못해서다. 이런 사각지대에서 빚어진 참변이다. 참으로 어이없는 사건 아닌가. 동료 교사의 팔을 비틀어 모두가 뜯어 말렸다. 그런 상태의 환자가 학교를 계속 돌아다녔다. 끝내 8세 어린 학생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아무 제재 없이 학교를 활보했던 나흘간의 범죄 시간이었다.

[사설] ‘반쪽짜리’ 행복기숙사... 청년들 박탈감만 보탰다

인하대 새 기숙사 건립 사업이 어정쩡하게 결말났다. 인근 원룸 등 지역주민의 반대로 갈등을 빚었다. 결론은 새 기숙사를 짓되 기존의 기숙사는 폐쇄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반쪽짜리’ 사업이라며 어이없어 한다. 기숙사가 너무 부족해 좀 늘리려던 사업이었다. 결국 이해관계 주민들의 반대를 넘지 못했다. 인하대는 2027년 3월 새 학기까지 새 기숙사를 지으려 했다. 지하 1층~지상 15층짜리 ‘행복기숙사’다. 1천794명 학생들의 새 보금자리다. 기숙사 신축 사업은 낮은 기숙사 수용률 때문이다. 기존 기숙사(웅비재)로는 학생 수용률이 12.6%에 지나지 않는다. 전국 대학들의 기숙사 학생 수용률은 평균 23.5%다. 인하대는 새 기숙사를 지어 수용률을 21.9%까지 끌어올릴 참이었다. 학교 주변 원룸을 중심으로 반대운동이 벌어졌다. ‘기숙사건립반대위원회’다. ‘주민 죽이는 기숙사 건립을 즉각 중단하라’고 했다. 학교 주변 원룸 공실률이 늘어나고 상권이 침체될 것이라 했다. 기숙사 비용이 원룸 임대료와 큰 차이가 없어 혜택도 없다는 걱정도 했다. 기숙사 건립은 재래시장 옆에 대형마트가 들어서는 격이라고도 했다. 용적률 특혜를 줬다며 인천시도 공격했다. 인하대 생활관 학생운영위원회가 학생들 의견을 물었다. 기숙사 학생 340명 중 310명(91%)이 ‘행복기숙사 신축’에 찬성표를 던졌다. 인하대 총동창회도 기숙사 건립 지지 성명을 냈다. 외지에서 입학한 많은 학생들이 주거 문제로 학업에 전념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는다고 지적했다. 인천시까지 중재에 나서자 결국 인하대가 물러났다. 기숙사 확충이 아닌 새 건물 교체다. 기존 기숙사를 문 닫고 새 기숙사를 열어도 학생 수용률은 16.7%에 그친다. 현재 1천18명인 기숙사 수용 인원이 1천794명으로 늘어날 뿐이다. 학생들은 ‘유야무야’식 타협이라 했다. 학생들은 “우리 의견은 뒤로한 채 주변 원룸 입장만 수용했다”며 반발한다. 교수들도 “이해관계에 밀려 이렇게 하면 앞으로 선례가 될 것이 걱정”이라고 했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새로 짓는 기숙사엔 식당도 두지 않는다고 한다. 이 또한 납득하기 어려운 조치다. 걱정인 것은 기숙사 확충을 기다렸던 학생들의 실망감이다. 객지에서 인천으로 공부하러 와 여러 어려움이 많을 우리 청년들이다. 그 소박한 바람조차 어른들 이해 갈등에 밀려나 버렸다. 안 그래도 어두운 미래에 힘겨워하는 그들이다. 그 청년들이 느낄 박탈감이나 피해의식을 어찌할 것인가. 인천이라는 지역사회의 도량이 드러난 해프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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