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령모개

작은 정부를 표방했다. 구조조정을 한다고 했다. 재경부와 통일부 장관의 부총리제를 없앴다. 총리실의 조정기능으로 없앤 부총리 역할을 대신한다고 했다. 2000년 들어 신년 벽두에 한다는 것이 이를 뒤엎는 일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신년사가 많은 희생을 낸 정부 구조조정을 번복하는 것이었다. 그럼 그간의 희생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재경부와 교육부 장관의 부총리제 부활은 한마디로 조령모개다. 여기에 한술 더 떠 대통령직속의 여성특위를 여성부로 신설한다고 했다. 잘은 몰라도 세계 어느나라 정부조직에 여성부가 있다는 말을 들은적이 없다. 여성전담부처가 없어 여성문제의 개선에 장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청와대 비서실도 축소시킨 직제를 슬금슬금 늘리더니 이젠 정부조직을 늘린다. 이같은 몸집 불리기는 국민의 세부담으로 돌아간다. 일언반구의 국민들 눈치는 살피지 않고 속된 말로 ‘누구 맘대로’해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중앙정부부터 이렇게 나오면 각급 자치단체에서 구조조정으로 줄인 기구를 부활하겠다고 나설 경우 무슨 말로 막을 것인가. “나는 바담풍이라고 해도 너희들은 바람풍이라고 해야 한다”고 했던 어느 시골 훈장처럼 말할 것인지. 국민과 한번 약속하고 제도를 고쳤으면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극복해 내는 것이 정권의 참다운 권위다. 조령모개가 되어서는 신용을 잃는다. 재경부와 교육부 장관이 부총리가 아니고 여성부가 없어서 정부가 일을 제대로 못한다고 볼 사람은 별로 있을 것 같지 않다. /白山

장애인 의무고용 지켜야

장애인 의무고용비율을 지키지 않는 사업장은 올해부터 고용부담금을 상향조정키로 했다는 정부의 방침은 진일보한 장애인 복지정책이다. 현행 법령에 따르면 300인 이상 사업장은 상시근로자의 2% 이상을 장애인으로 의무 고용토록 돼있으나 현재 사업장 평균 장애인 고용비율은 0.54%로 너무 낮은 수준이다. 정부가 장애인 고용촉진을 위해 고용비율이 1% 미만인 업체에 고용부담금을 1인당 최저임금의 60%(21만6천원)에서 70%(25만3천원)로 인상한 것이 그래서 이해가 간다. 그러나 사업장이 장애인 의무고용비율을 지키지 않는다고 하여 고용부담금 상향 조정으로만 장애인 고용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기업체들이 상시근로자의 2% 이상을 장애인으로 고용해야하는 의무규정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다. 노동할 자격과 의사가 있는 모든 국민에게 고용기회를 창출해주어야 하는 것은 혼합경제체제 국가가 이행해야 하는 가장 큰 책무 가운데 하나이다. 지난 90년 법제정을 통해 우리나라에서도 장애인고용을 위한 정책기반을 마련하였고 법추진을 위한 기구로서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이 설립됐다. 법제정의 기본취지에 따라 91년에는 300인 이상 고용사업장에 대하여 1%의 장애인고용을 의무화했고, 92년에는 1.6%, 93년에는 2%의 고용률을 규정하여 장애인 고용의무 비중을 점차 확대했다. 그러나 추진실적은 고용의무제도 실시 첫해인 91년의 경우 고용의무인원의 43%인 9천1백명 수준에 머물렀다. 추진실적이 기대에 못 미친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일반적인 문제는 장애인 고용에 대한 기업체와 사회전반의 인식이 크게 부족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사회는 질병, 교통사고, 산업재해 등 위험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어 장애인 문제는 언제 내 문제가 될지 모르는 일이다. 앞으로 장애인 고용문제를 생각할 때 장애인 일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내 문제라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아울러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올 7월부터 시행되는 공무원 신규채용시 장애인 의무채용비율 5%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동안의 의무채용비율 2%는 너무 형식적이었다. 만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장애인 의무고용을 지키지 않는다면 기업체에 고용부담금을 물리게 할 권한이 없다. 소외받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이 착실히 시행될 때 진정한 복지사회는 이룩되는 것이다.

대통령과 총재의 차이?

대통령과 집권당 총재의 차이를 한마디로 구분하기는 어렵다. 그렇다해서 같은 것은 아니다. 분명히 다르다. 대통령은 집권당을 위한 대통령이 아니다. 국민의 대통령이다. 이를 혼동할 경우 정치가 혼탁하고 나라가 시끄럽다. 신년사는 대통령으로서 그 해의 시정방침을 국민에게 밝히는 국정백서다. 연두기자회견 같은데서 집권당 총재로서 질문받은 내용에 답변하는 것과는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신년사는 오직 대통령의 입장에서만 국정지표를 피력해야 하는 것이 상궤다. 김대중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신당을 언급한 것은 그같은 상궤를 일탈했다. ‘국정이념을 실현하고자 신당을 창당한다’고 말한 것은 국정지표와 정권목표를 혼동했다. 대통령의 위치에서 집권당 총재의 모습을 보인 것은 불가하다. 신당창당은 정권차원의 작업이지 국정일 수가 없다. 정권목표의 신당을 대통령의 위치에서 운운하는 것은 대통령의 직무를 무기삼아 엄호하는 것으로 보여져 심히 부당하다. 대통령의 직무수행을 위해 신당 의석안정의 정치수단으로 언급할 수 있다는 강변은 어디까지나 강변이다. 그같은 얘기는 총재로서 당의 행사에서나 가능하다. 민주주의의 요체는 정당기능과 국가기능을 능히 식별할 줄 아는데 있다. 이를 혼동하면 민주주의가 위협받는다. 대통령과 집권당 총재의 혼선은 전에도 있었다. 역대 정권의 집권자들이 대개는 그랬다. 재야의 김대중씨가 민주화운동을 벌인 것도 그같은 정권의 부도덕성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만은 전철을 답습하지 않을 것으로 믿었던 것이 그 역시 구태를 못벗은 것은 유감이다. 중임제도 아닌 단임제에서 대통령과 총재 구분의 도덕성이 축적되지 못하는 것은 정치발전의 정체로 불행한 현상이다. 진정, 다가오는 4·13총선이 걱정되면 새로운 면모를 국민에게 보여주는 성찰이 필요하다. 총재가 대통령의 입장에서 신당을 자꾸 들먹이는 것은 공정치 못한 게임으로 국민들이 보기에 썩 보기 좋은 것은 못된다. 신당은 분명히 국민회의 총재가 만드는 정권목표의 작업이다. 국가기관으로써의 대통령과는 어디까지 별개다. 본란이 이를 굳이 언급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정치수준이 그만큼 낙후돼 있음을 말한다.

부천체육공원에 대한 기대

일본의 항구도시 후쿠오카가 자랑하는 후쿠오카돔은 단순한 야구장이 아니라 종합레저타운이다. 지난 93년 7천2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아 만든 이 돔구장은 야구, 모터사이클 등 각종 스포츠와 음악 콘서트, 행위예술 공연 등이 365일 열린다. 후쿠오카시와 프랜차이즈 야구단인 다이에 호크스는 후쿠오카돔을 지을때부터 시호크호텔, 테마파크, 쇼핑센터 등 위락시설을 돔구장 바로 옆에 세우는 획기적인 스포츠 마케팅을 도입, 짭짤한 돈벌이를 계속해오고 있다. 당시에는 모험이었지만 6년 세월이 흐른 뒤 돔구장과 리조트 단지는 후쿠오카돔을 찾는 외국인들과 시민들에게는 가장 인기있는 관광단지이자 나들이코스가 됐다. 우리나라는 돔구장은 커녕 운동경기를 관람하면서 제대로 식사할만한 식당이나 매점을 갖춘 경기장이 없다. 가족·친구들과 오랜만에 찾은 경기장은 관람의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서로 먼저 운동장을 빠져나가려는 차량들로 짜증부터 생겨 오히려 스트레스만 쌓인다. 그러나 이런 문제점이 곧 해소될 전망이다. 부천시가 전국 지자체중 최초로 부천체육관 체육공원안에 국내·외 자본 147억원을 유치, 16개 유희시설 및 음식점 등을 갖춘 놀이공원‘두드리랜드’를 조성키로 했기 때문이다. 이는 기존의 운동경기만 관람하고 맥없이 경기장을 빠져 나가야했던 일차원적인 경기장 개념에서 과감히 탈피, 관중들에게 한차원 높은 질적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향후 경기장 문화에 일대 대변신과 혁신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문화의 사각지대로 여겨졌던 경기장. 21세기는 스포츠와 문화가 어우러진 꿈의 경기장을 기대해본다./부천=조정호기자(제2사회부) jhcho@kgib.co.kr

갈등해결은 평화적으로

공공기관은 국가질서와 구성원에 대한 봉사를 상징하는 장소이다. 때문에 공공기관이 사회구성원으로부터 동의를 얻어 권위를 가지고 국가질서를 유지하고 국민에 대한 봉사를 하고 있다. 따라서 공공기관은 여하한 경우에도 권위를 가지고 힘을 발휘하여야 하며 또한 주민과 더욱 친근하게 대면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또한 공공기관은 공권력을 상징한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는 공공기관에 대한 권위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권위를 잃어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공권력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까지 야기되고 있어 이에 대한 조속한 대책이 요망되고 있다. 공공기관이 무시의 대상이 되는 차원을 넘어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면 이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구랍 12월 30일 인천과 성남에서 공공기관의 업무 처리에 불만을 가진 민원인에 의해 시청과 구청 청사 유리창과 컴퓨터 등 기물이 파손되고 공무원을 폭행하는 사태가 발생하였으니, 이는 평화적인 방법에 의한 불만의 표출이 아닌 것이다. 물론 공공기관의 권위가 무시되는 것은 공공기관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 과거 공공기관은 강력한 집행력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권력을 자의적으로 불편부당하게 사용하여 공공기관 자체의 권위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행위를 하였다. 즉 공공기관이 정당하지 못하게 힘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때로는 공공기관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대명사로 국민과는 거리가 있었으며, 접근하기 조차 어려운 상황도 있었다. 때문에 공공기관 스스로 정당한 힘을 정당하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민주사회에서는 여하한 경우에도 폭력을 통한 갈등해결은 안된다. 더구나 국가질서와 구성원 봉사에 바탕을 이루고 있는 공공기관이 폭력의 대상이 된다면 사회 질서는 유지될 수 없다. 더 이상 공공기관의 권위가 무시되는 사회가 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 자성하여야 될 것이다. 폭력은 폭력의 악순환만을 유발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되새길 필요가 있다. 공공기관의 권위가 사회구성원의 합의에 의하여 조속히 회복되기를 기대한다.

자전거 議員

국회의원이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국회의사당에 주차장이 아닌 자전거보관소가 즐비하게 따로 마련돼 있다. 의사당 등원도, 관련 부처방문도, 정당 회합도 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일을 보고는 역시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고는 이튿날 또 자전거로 등원한다. 공부도 한다. 하루 4시간 이상을 자신이 소속된 상임위 업무에 관해 연구하는 것은 하루의 일과로 돼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얘기가 아니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는 말을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다. 자전거가 뭔가. 고급승용차 관용차에 기사 월급이며 기름값같은 유지비까지 국비로 대준다. 공부가 다 뭔가. 국회 도서관은 항상 텅텅 비어 있고 각종 자료도서는 먼지만 쌓여 있다. 일찍이 공부하는 국회의원이 있다는 말을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고급 관용차로 어딜 쏘다니는지 항상 바빠 공부할 틈이 없다는 것이다. 자전거 국회의원, 공부하는 국회의원은 독일 연방의원들 얘기다. 그들은 그같은 모습이 새삼스럽지 않은 당연지사로 인식돼 있다. KBS 1TV 원단기획, ‘새천년을 연다’ 기획물 첫편의 ‘정치도 서비스시대다’란 부제로 독일 국회의원들 얘기가 방영됐었다. 프로그램의 취재, 편집, 연출이 돋보인 수작이다. 독일이 우리나라보다 못사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독일보다 잘 사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독일 국회의원은 자전거를 애용하고 대한민국 국회의원은 고급 관용차를 애용한다. 이러기는 다음 16대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악성루머의 출처

지난해 8월말 고양주재로 발령받은지 1주일이 지났을 무렵, 고양시청내 가깝게 지내는 공무원 2명으로부터 애정어린 충고를 받은 적이 있다. “너무 튀면 반드시 음해를 받게 되니 기사를 적당히 쓰라”는 말이었다. 지난해 고양시금고 선정과 관련해 기자는‘투명한 공개경쟁방식으로 선정해야 시에 이롭다’는 취지의 기사를 잇따라 보도하면서 농협중앙회와 수의계약하려는 시를 비판했다. 시의회에서도 다른 지역 사례를 예로 들며 공개경쟁방식으로 시금고를 선정해야 시에 혜택이 많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결국 시는 다른 금융기관으로부터도 시금고 제안서를 받은뒤 금고운영 능력, 자금공급 능력, 주민이용 편리성, 수익성 등을 비교해 구랍말께 농협을 금고로 결정했다. 이같은 공개경쟁방식으로 시는 농협으로부터 국내 금융기관 가운데 가장 높은 금리를 적용받기로 약속받았으며 꽃박람회에 12억원, 장학금 등으로 153억원의 지원금을 받기로 했다. 앞으로 농협을 비롯한 금융기관들은 2년후 다시 있을 금고계약에 대비해 서비스 개선에 더욱 노력하고 지역사회에 여러 방법으로 기여할 방안을 강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공개경쟁방식을 제안하고 주장했던 기자와 시의회 S의원은 다른 금융기관으로 부터 로비를 받았다는 악성 루머에 시달리고 있다. K의원, 향토사학자 J씨 등 애향심이 남다른 많은 젊은분들도 시기성 모함으로 홍역을 치렀던 일을 생각해 보면 비리는 루머의 생산자 자신에게 있지 않을까. /고양=한상봉기자(제2사회부) sbhan@kgib.co.kr

Y2K

안양 평촌의 한 아파트단지에서 지난 1일 Y2K문제가 발생, 한동안 온수시설이 가동못해 주민들 고생이 막심했다. 만일의 경우, Y2K가 일어나 정전되면 일상 생활에서 촛불신세를 져야하고 모든 가전제품은 쓸모가 없어져 방은 냉구들을 져야 하며 취사도 못하고 빨래도 힘들어 의식주가 당장 곤란해진다. 고층아파트는 승강기가 움직이지 못한다. 상수도 공급마저 어려워져 식수도 식수이지만 수세식화장실은 엉망이 된다. Y2K는 이처럼 생활의 반란을 유발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교통 통신등 사회생활 수치나 기록은 질서가 파괴된다. 국방산업은 명령계통에 오류가 생길 수 있다. 행정관리도 일대 혼란이 일어난다. 병원에서는 수술하지 않으면 숨져가는 환자를 손도 대지 못한채 방관만 해야 한다. 금융권은 장부가 없어지는 것과 다름 없게 된다. 기업은 생산이 마비된다. 2000년 1월 1일 0시를 기해 이런저런 일이 우려됐던 Y2K가 평촌의 한 아파트 단지 온수시설에 문제가 있긴 했으나 큰 탈없이 넘어가는 것 같다. 전력 및 에너지, 국방, 행정, 상하수도 등 분야는 어제 0시를 기해 안정권에 들어갔다. 오늘 0시가 이제 마지막 고비다. 고비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금융 및 기업분야만 잘 넘기면 Y2K공포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21세기 첫해가 엄청난 Y2K혼란으로 시작됐다면 그 불행을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각 분야에서 이에 대비하는 노고가 많았다. 오늘 자정까지 마저 잘 넘겨 새천년의 축복에 걸맞는 새해벽두가 될 것으로 믿는다. /白山

교통혼잡비용이 12조라니

최근 교통개발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98년 우리나라의 총 교통혼잡비용은 당시 국민총생산(GDP)의 2.7%인 약 12조2천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약 7조원은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서, 그리고 나머지 5조원은 고속도로와 국도 및 지방도에서 발생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물론 이런 수치는 경기악화의 영향으로 97년의 18조원에 비하여 줄어 든 것이기는 하나, 아직도 다른 선진국가에 비해 대단히 높은 수치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획기적인 개선책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우리 나라의 교통문화는 경제수준에 비해 후진국 수준에 머물고 있다. 교통혼잡 비용도 많을 뿐만 아니라 교통질서를 비롯한 교통문화는 더욱 문제이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의 발표에 의하면 한국의 자동차 생산량은 29개 회원국 중 8위, 인구 1백명당 자동차 보유대수는 하위권인 27위를 기록하고 있음에도, 유독 교통사고 사망률은 2위를 기록하고 있다. 폭증하는 교통사고에 대한 이런 통계는 손해보험협회가 지난 9월말까지 분석한 자료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즉 사고발생건수가 전체보험 가입 건수의 4.6%에 달하며, 이는 사상 최고였던 92년의 4.7%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사고에 의하여 1년에 약 66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다. 66만명이라는 사상자수는 전북 전주시에 해당되는 숫자이니, 1년에 전주시 규모의 인구가 교통사고로 사망 또는 부상을 입고 있다니 참으로 무서운 일 아닐 수 없다.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우리 나라는 또 다시 교통사고 1위의 부끄러운 기록을 다시 가져야 될 것 같다. 외국 관광객들도 한국 관광에서 가장 힘든 것이 무질서와 난폭운전의 교통질서를 지적하고 있을 정도로 우리의 교통문화는 하위수준이다. 교통문화의 선진화는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높은 교통혼잡비용과 각종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지속되어야 하며, 이를 위하여 정부는 물론 시민 개개인의 교통문화 의식 제고가 절실한 과제이다. 특히 차량운행이 폭증하는 연초를 맞아 선진화된 교통문화는 더욱 필요하다.

총재회담의 ‘핵심’

정치개혁은 제도와 의식개혁이 병행돼야 한다. 제도가 아무리 좋아도 이를 운용하는 의식이 개선되지 않으면 정치개혁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제도개혁에 편중된 정치개혁이 그나마 지극히 지지부진하면서 의식개혁은 실종된 가운데 올 벽두에 여·야가 정치복원을 강조하고 나섰다. 이는 정치의식의 개혁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보아 일단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말에 대한 신뢰성을 이미 잃은 정치권이 얼마나 실천에 옮길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우리가 연초벽두, 이번 주중에 가질 것으로 알려진 여·야 총재회담을 새삼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 스스로가 강조한 정치복원의 시금석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더이상 과거잡기의 족쇄로 미래발전을 막는 구세기적 정쟁을 바라지 않는다. 누구인들 과거가 온전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저변의 사회정서다. 그런데도 역대 정권의 발목잡기는 거의 일방적 플레이로 이루어져 말하자면 불공평한 게임이었다. 현 집권층 역시 그같은 공포를 경험하였으면서 여전히 구태를 계속 답습한다면 밀레니엄 화합의 표방에 합당하다 할 수 없다. 여·야총재회담은 정치발전의 틀을 새롭게 짜는 협상의 내실이 담겨야 그 가치가 있다. 정치협상은 제반 현안에 대한 상호 시각의 장단점을 보완하는 작업이다. 무엇이든간에 자신의 생각만이 절대로 옳을 수는 없으며, 누구이든간에 그같은 아집을 갖는다면 민주적 사고방식에 반하는 독선이다. 우리는 이번 여·야총재회담만은 지난 예와는 달리 진정 정치복원의 획기적 전기를 마련하는 성과가 있기를 기대한다. 만일에 그렇지 못하고 또 겉모양새로 끝나면 정치권은 공멸의 국민적 지탄을 면치 못한다. 새천년의 새 시대에 들어섰으면 정치도 이젠 현실 민생문제와 아울러 미래의 청사진을 두고 싸워도 좀 그럴듯한 싸움을 해야 국민이 희망을 갖는다. 이같은 정치품질의 개혁이 이번 여·야총재회담의 핵심이 돼야 한다. 이는 또 정국을 주도할 책임이 있는 집권여당쪽에 더 막중한 사명이 부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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