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 SOFA 꼭 고쳐야

어제부터 소위 한미행정협정으로 불리는 주한미군지위협정(Status Of Forces Agreement)에 대한 개정 협상이 양측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재개되었다. 이번 협상 재개는 96년 9월10일 제7차 협상이 있은지 4년만에 열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협상은 과거와는 달리 매향리 사격장 폐쇄운동, 미8군 용산기지에서의 포르말린 유출에 대한 비난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개최되고 있으며, 협상내용에 있어서도 양국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때보다도 국민적 관심이 대단하다. 주한미군에 적용되는 SOFA가 일본이나 독일에 비하여 차별적이고 불평등 하다는 것은 이미 공지의 사실이기 때문에 새삼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미국은 특별한 차별 조항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지금까지 개정 협상을 미루었다. 그 동안 SOFA 개정에 대하여 경실련 등 120여개 단체가 전면 개정을 주장하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전국적운동으로 전개하고 있으며, 여야 국회의원 60여명도 국회 차원의 개정촉구 결의안을 제출했을 정도로 개정 여론이 비등한데도 미국은 소극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현행 SOFA에 의하면 주한미군이 살인과 같은 중범죄를 저질러도 피의자가 미군의 수중에 있는 경우에는 한국의 수사권이 제한을 받게 된다. 때문에 92년 동두천에서 발생한 윤금이씨 살해사건에서 한국 수사 당국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며, 심지어 수사권이 미치지 못한 틈을 이용, 미국으로 도망가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때문에 98년의 경우, 행정협정 사건은 660여건이 발생 하였는데, 재판권 행사는 불과 3%에 지나지 않고 있다. 환경파괴 역시 마찬가지이다. 최근 용산기지에서 독극물을 유출시킨 것이 문제가 되어 일반에게 알려지기는 하였지만, 과거에도 미군기지에서 오폐수를 마구 방류하여 문제가 된 사례가 많다. 독일의 경우, 독일 환경법을 준수하도록 되어있으나 현행 SOFA에는 환경조항은 아예 언급도 되어있지 않다. 이번 협상에서 양국은 주한미군 범죄와 관련, 형사재판 관할권과 범죄인 인도 시기에 있어 일본과 독일 수준으로 개정되어야 한다. 또한 문제가 되고 있는 환경, 노무(勞務)에 관한 사항도 이번 개정안에 새로 신설하여 상호 신뢰와 협력의 시대를 열어 나가야 된다.

초등교원 또 땜질식 충원인가

경기 인천지역 초등교원 수급이 계속 난조를 보이고 있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교육부가 국회 교육위원회에 제출한 2000년 2학기 교원 수급계획에 따르면 초등학교의 부족교원수가 2천916명(경기2천176·인천740명)에 이르고 있으나 이중 신규임용은 647명(경기427·인천220명)뿐 나머지는 2천9백여명의 ‘기간제 교사’(경기1천744·인천510명)등으로 채울 계획이어서 교육의 질적 저하가 우려되고 있다. 이처럼 초등교원 수급에 비상이 걸린 것은 교대출신 미임용자 수가 극소수인 상황에서 작년 초중등 교원정년을 종래의 65세에서 62세로 단축하면서 해당교사가 대거 사직한데다 미처 예기치 못했던 명예퇴직자의 대량속출 사태가 겹쳤기 때문이다. 중등교원은 사범대와 교직과목 이수자를 포함해 매년 실제 수요의 4∼5배 가량이나 양산되고 있기 때문에 수급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그러나 초등교원은 평상시 수요인원에 거의 비례해 교육대에서 따로 양성하고 있으므로 작년의 정년단축 때처럼 대량 결원이 생기면 효과적으로 메울 방법이 없다. 따라서 교육정년 단축 이후 제기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초등교원의 결원을 보충하는 문제였다. 그런데도 교육당국이 그동안 소극적으로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었으니 한심한 일이다. ‘기간제 교사’의 부작용은 이미 교육현장에서 드러난 바 있다. 작년 초등교원의 대량 사직으로 다급해진 교육부가 중등교사 자격증 소지자에게 2개월의 단기교육을 실시한 후 ‘기간제 교사’로 채용한 것은 숫자채우기에만 급급한 땜질식 충원에 불과했다. 초등학생들의 발달수준에 맞는 교수-학습방법을 제대로 교육받지 않은 교사들이 배치된 결과 교육의 질이 떨어지고 기존교사들과의 마찰도 생겼다. 이런 실정을 잘 알고 있을 교육당국이 또 ‘기간제 교사’를 대량 채용할 수 밖에 없게된 것은 무계획적 행정의 소치다. 특히 경기도는 초등학생 증가율이 전국 6.5%의 두배가 넘는 15%에 이르러 교원수요도 매년 2천명에 달해 짜깁기식 결원보충은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데도 당국이 수도권집중억제를 이유로 경기교대 설립 불허를 고집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서울에서 넘쳐나는 인구만을 경기도에 수용케 해 그만큼 교육수요를 늘려 놓고도 교대설립을 못하게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계속증가 하는 교원수요에 대비하기 위해선 도내에 교대를 설립하는 것이 급선무다. 교원의 안정적 수급을 위한 당국의 사려깊은 검토를 다시한번 촉구해둔다.

수원 깍쟁이

‘깍쟁이’란 물건을 팔기 위해 가게를 차려 놓은 사람, 즉 ‘가게쟁이’에서 변화된 말로서 오늘날의 상인을 말한다. 국어사전에는 ‘인색하고 이기에 밝은 사람’ 또는 ‘몸집이 작고 얄밉게 약빠른 사람’ 등으로 풀이돼 있다. 옛날부터 수원(水原)은 서울로 가는 길목에 있었기 때문에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은 화성군 태안읍 소재지이지만 병점리(餠店里)는 지명 그대로 떡점거리로 유명해 언제나 성시를 이뤘다. 또 현재 수원시 장안구 영화동 장안문 밖에는 1796년 조선조 22대 정조가 양재역(良梓驛)을 폐지하고 신설한 역참(驛站:역마를 갈아서 타던 곳)인 영화역(迎華驛)이 있어 상점들이 많았다. 지금 영화동이 예전에 역촌(驛村), 역말(驛馬), 또는 영말(역마을)로 불려졌던 연유이다. 그런데 수원을 지나가고 오는 사람들 중에는 먼 길을 오고 가느라 노자(路資)가 떨어져 수원 사람들의 신세를 지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병점이나 영화역 일대에서는 숙박비나 식비를 내지 않고 몰래 도망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일이 거듭되다 보니 아무리 인심 좋은 수원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자연히 계산에 밝아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식사를 하거나 하룻밤 유숙한 뒤 계산을 했거나 하지 못해 무안을 당하고 수원을 떠난 외지사람들이 ‘수원에는 가게쟁이만 산다’거나 ‘수원사람은 가게쟁이’라고 푸념 아니면 원망했을 것은 짐작이 간다. 수원사람들을 가리켜 하는 여러가지 말 가운데 ‘수원사람은 깍쟁이’는 그러니까 ‘수원사람은 가게쟁이’라는 뜻인데 ‘수원사람은 계산이 밝다’로 생각하는 게 옳겠다. 그 옛날 수원 가게쟁이들이 수중에 돈이 없는 길손들에게 어느 정도나 야박하게 대하였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한양가는 길에 수원사람을 많이 사귀어라’고 했던 옛 시절이 그리워진다. /淸河

道史편찬위원이 행정보조원인가

경기도사편찬위원회가 변칙운영되고 있는 사실이 드러나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도사편찬위원회에 상근하는 상임편찬위원과 연구원이 본연의 임무인 도사편찬 일은 하지 못하고 도 문화정책과의 보조원 정도로 전락된 실정이라는 본보의 취재내용(1일자 7면)을 보면 무책임한 실상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더군다나 도청 공무원이 했다는 말은 어처구니가 없다. 도사편찬위원회는 문화정책과 소관의 산하조직이기 때문에 인력이 모자랄 경우 얼마든지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으며 현재 2명의 인원이면 편찬위의 기존 업무를 잘 수행해 낼 수 있다고 말했는데 이러한 근무상태가 도지사의 방침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경기도의 역사와 문화를 재조명하여 지역문화창달과 도민의 정체성 확립에 기여하기 위해 지난 1993년 10월에 상설된 경기도사편찬위원회는 그동안 많은 역사서를 펴내 타 시·도 편찬위원회에서 벤치마킹을 해올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 그런데 도사편찬위에 근무하는 상임위원 및 연구원 6명 가운데 3명이 지난해 초 새천년 통일기원제 등 행사 지원차 문화정책과로 자리가 옮겨진 뒤 1년이 넘도록 행정 보조역할을 계속하고 있어 편찬위 업무가 마비상태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평소 편찬위 업무에 대해 지나치게 간섭하면서 통제를 일삼아왔다고 하니 실로 딱한 노릇이다. 편찬위 근무자들이 계약직임을 빌미로 시키는 일에 순응하지 않으면 재계약을 않겠다는 등 협박성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는 것엔 공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도사(道史)이건 시·군사(市·郡史)이건 역사서를 편찬하는 작업은 전시행정처럼 단기간에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일이 아니다. 오랜 기간에 걸친 자료·조사 수집과 분석, 집필, 편집 등 그야말로 편찬위원들의 각고의 노력끝에 맺어지는 결실이다. 2명의 인원이면 편찬위 업무가 지장없다고 한 문화정책과는 아마 편찬위원들을 ‘한가한 직책’에 있는 객식구처럼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도사편찬위는 앞으로, 특히 통일시대를 대비하여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다. 편찬위원장이 소집하기 보다는 도에서 회의소집을 해야만 열리는 편찬위의 수동적인 자세도 문제이거니와 그나마 편찬회의가 지금까지 4차례 밖에 열리지 않았다고 하니 개선할 사항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경기도는 문화정책과에서 근무하는 상임위원과 연구원을 본래 자리에 즉시 복귀시키고 차제에 실질적인 도사편찬위를 구성하기 바란다.

의약분업이 이래서야…

이 나라에 진정 국민 보건행정수행능력이 있는 것일까. 의약분업이 전면 시행된 첫날 벌어진 행태들을 보면 당국의 보건행정이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경기 인천 서울 등 수도권의 상당수 병·의원들이 의약분업시행 첫날부터 폐업에 들어갔고, 약국들도 처방약품을 제대로 구비하지 못하는 등 준비 미흡으로 환자들만 애꿎게 큰 골탕을 먹어야 했다. 환자들은 폐업을 하지 않은 병·의원을 찾아 헤매야 했으며, 처방약이 비치되지 않은 약국들이 많아 헛걸음질 치는 이중의 불편을 겪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많은 대형 병원에서는 전공의들의 파업으로 외래진료와 수술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환자들이 큰 고통을 받았고 가족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애태우는 사태가 속출했다. 국민건강을 위한다는 의약분업이 이처럼 국민들에게 혼란과 불편을 가중시키고 있으니 분통 터질 일이다. 정부가 지난 7월 1일부터 시행키로 했던 의약분업을 한달간 계도기간으로 정해 사실상 연기한 것은 그동안 의료계의 참여거부 등으로 의사들뿐 아니라 약사들도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여서 분업이 현실적으로 불가능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그 유예기간 중 미비점을 세심히 살펴 차질이 없도록 준비를 철저히 했어야 옳았다. 그런데도 그동안 착실한 준비는 커녕 의약계의 이해다툼에 당국이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고, 급기야 상당수의 병·의원이 폐업한 가운데 의약분업이 강행됐으니 잘 될리가 만무하다. 그나마 폐업을 철회한 병·의원들 거의가 의약분업 실시를 위한 전자결재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았는가 하면 인근 약국에 처방약품 리스트도 넘겨주지 않아 처방약품을 구비하지 못한 약국을 찾은 환자들은 대형약국에서 처방약을 구해 올 때까지 장시간 기다리든가 되돌아가기 일쑤였다. 특히 영세한 동네약국들은 제약사들의 현금결제요구로 400여 품목에 이르는 기본의약품도 구비하지 못한 상태다. 이러고도 의약분업이 제대로 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억지다. 이같은 의약분업의 파행은 의약계의 첨예한 이해를 조정하고 그동안 모의 테스트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보완하는 등 보건복지부가 해야할 책무를 다하지 못한 탓이다. 이제 의약분업이 시행된 이상 의료계는 대승적 차원에서 일단 분업에 동참해야 할 것이며, 당국 또한 의료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 시행과정에서의 미비점을 보완해야 할 것이다. 보건당국은 의약분업의 파행이 하루속히 수습 정상화되도록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강력하고도 균형잡힌 행정력을 발휘하기 바란다.

경의선

白山 경의선은 경부선과 함께 한반도를 종단, 유라시아를 횡단하는 국제간선 철도다. 전장 499.3㎞의 경의선이 1906년(광무10년) 4월 3일 개통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당시 조정은 처음 부설권을 주었던 러시아 상사가 재력이 없어 못하게 된 것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겨 외세배격을 위한 직영에 나섰다. 조병식을 총재로 한 ‘서북철도국’을 내장원에 설치, 서울∼개성간 철도 부지측량에 나섰다. 그러나 노일전쟁이 일어나자 일본 통감부는 서울∼신의주간 군용철도부설이 필요하다며 ‘임시군용철도감부’란 것을 두고 철도부대 병력을 동원해 제멋대로 공사에 나섰다. 조정은 일본의 강요에 못이겨 할수 없이 50년간 임대조건으로 경의선 부설권을 내주고 말았다. 군인과 군수물자 수송을 위해 경의선부설을 서두른 일본은 불과 733일만에 개통시켰다. 전근대적인 공법으로 하루에 730m를 부설한 셈이니, 공사가 얼마나 강행군이었던가를 짐작케 한다. 개통시키고나서 개량·보수공사(터널 신설 19군데 교량증개축 328군데)를 하는데 본공사기간보다 긴 4년이 걸렸다. 경의선이 만주까지 운행된 것은 1911년 11월 압록강철교가 가설되고 나서다. 전 구간이 복선화 된 것은 1943년 5월로 대륙침략과 식민지 수탈을 위해서였다. 1945년 8월말, 38선에 의해 남북이 분단되면서 끊긴 경의선은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일어나 서울∼개성간마저 끊겨 문산간 46㎞만 운행해온지 오래다. 1차 남북장관급회담 합의사항으로 문산∼장단간 12㎞(남측구간), 장단∼봉등간 8㎞(북측구간) 등 허리가 끊긴 20㎞의 경의선 복원공사가 연내 추진을 보게 됐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철도종단점의 소원(표어)이 이루어져 비무장지대를 관통, 개성∼사리원∼평양∼안주∼신의주까지 달릴 날이 그리 멀지 않을것 같다. 여기엔 북측 공사비를 남북경협자금으로 입체하든지, 북측 차관도입에 남측이 보증을 서는 부담이 있긴 하지만.

공직자 보호의 길

장기현기자<제2사회부> 정보통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인터넷을 통한 네티즌들의 정보교환은 말 그대로 홍수시대를 맞고 있다. 이에 중앙정부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들도 홈페이지를 개설해 각종 홍보와 함께 주민들의 불편사항이나 건의사항 등을 받고 이를 회신하는 편리한 행정을 펴고 있다. 그러나 가끔은 비난의 글이 올라 공직자들의 가슴을 철렁이게 하고 이러한 내용들은 소문으로 이어지면서 이를 보기 위한 조회 건수가 급격히 늘고 있다. 지난 7월10일 연천군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공직자들의 무사안일을 지적하는가 하면 무능력한 일부 공직자들을 지목해 쓴소리를 싣고 아무런 답변이 없으면 2탄을 쓰겠다는 글이 올랐었다. 이어 7월27일 ‘연천군 너무하다’는 제목의 글로 또 한 번의 공직자들을 꼬집어 직원들간의 화두가 돼 삽시간에 청내와 지역주민들에까지 알려지고 있다. ‘김노인’이라고만 밝힌 작성자는 일부공직자들을 신랄하게 꼬집었다. ‘누구는 점심 먹고 나면 오침시간(1시∼3시)에 절대로 결재·전화·민원인 사절’이라는 내용이며 심지어 ‘6급만도 못하다는 사무관이 있다’, 또 ‘물러나지 않고 있는 6급이상 4급이하 공무원들의 개인비리를 8월 중순에 공개하겠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참으로 가슴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말 글의 내용대로 공직사회 기강이 이토록 문란해 있다면 군은 진실을 규명하는 자체조사라도 벌여 사실여부를 밝혀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열심히 일하는 공직자는 보호하고, 음해성 투고 내용을 면밀히 확인, 해당 공직자에 대해서는 단호한 조치를 해야 한다. 군은 실명이 아니면 조사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갖고 있겠지만 대부분의 공직자들이 내용을 수긍하는 여론이 높은 점을 감안할 때 그대로 덮어두다가는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리는 무지의 꼴이 됨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연천· 장기현 기자 khjang@kgib.co.k

1차 남북장관급 회담

제1차 남북장관급(북측은 북남상급)회담이 오는 29일부터 31일까지 2차회담을 평양서 갖기로 하고 2박3일 일정을 폐막됐다. 6·15 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포괄적 회담결과의 공동보도문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 군사문제등의 언급이 없는 것은 기대에 미흡하나 첫 숟갈에 배부르겠는가 싶어 경의선 복원 등을 포함한 (공동)보도문을 그런대로 환영한다. 철도의 단절구간복원을 위해 이른 시일안에 협의키로 한 경의선 소통은 남북화해, 긴장해소에 상징적 의미가 있다. 또 남북교류 및 협력사업에 실익의 효과가 크다. 경의선을 통해 남북 고향방문단, 해내외 관광객과 물자수송 등의 자유로운 왕래가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경의선 복원은 비교적 쉬우면서 사업성이 높은 경협사업의 하나다. 같은 차원에서 임진강수계 수방사업도 조만간 협의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본다. 총련(조총련) 동포들의 모국방문은 전에도 없지 않았으나 북측이 이를 공식으로 인정한데 의의가 있다. 또 75년의 조총련 동포방문은 민간단체 초청형식의 제한적이었던 것에 비해 이번에는 당국차원으로 개방적인 점이 다르다. 그러나 재일동포 모국방문은 조총련 동포의 남측방문 뿐만이 아니라 민단동포들의 북측 고향방문 또한 병행돼야 하는데도 이에대한 언급이 없다. 당국의 분명한 해명이 요구된다. 또다른 합의사항으로 운영이 중단된 판문점 남북연락사무소 업무 재개(8·15를 즈엄해)는 당연한 후속조치다. 이밖에 ‘남과 북은 올해 8·15에 즈엄하여 남과 북 해외에서 각기 지역별로 남북공동선언을 지지 환영하며, 그 실천을 위한 전 민족적 결의를 모으는 행사를 진행한다’는 보도문 내용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확실지 않다. 범민련의 통일축전 행사를 확대한다는 것인지 어쩐지 모호하다. 상호간 공동선언의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행사가 돼야 한다고 보는데 이에 대한 당국의 입장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1차 남북 장관급회담이 대체로 북측에 끌려간 듯한 인상을 부정키 어렵다. 다만 보도문에서 밝힌 것처럼 민족앞에 실질적인 결실을 주는 대화가 되기 위해서는 가능한한 상대를 수용해야 한다고 보아 정부측 고충을 이해하고자 노력은 한다. 그러나 합의문 해석에 견해차이가 있을 수 있는 문맥을 그대로 넘기는 것은 크게 재고돼야 한다. 나중에 해석의 차이로 우려될 수 있는 분쟁요소는 미리 제거, 확실하게 해두는 것이 좋다. 다음 회담에서는 좀더 폭넓은 토의와 분명한 자세로 더 좋은 결실이 있는 노력이 있기를 촉구한다.

더 이상 의료대란 안된다

오늘부터 의약분업이 실시된다. 지난달 1일부터 실시하기로 했던 의약분업이 의사들의 집단행동과 준비상의 소홀 등등으로 인하여 지난 한달 동안의 계도기간을 거쳐 오늘부터 전국에 걸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의약분업이 실시된다. 그러나 여야간의 합의한 약사법 개정안이 여야간의 정쟁으로 처리가 늦어져 법적 측면에서도 실시에 있어 차질이 생길 수 있는가 하면 더욱 심각한 것은 의사들이 오늘부터 재폐업을 단행하여 제2의 의료대란이 예상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미 대형병원들의 전공의들은 어제부터 사표 제출과 함께 파업에 들어갔으며, 의협도 지난 27일부터 실시된 재폐업 찬반투표 결과 폐업 찬성률이 66.1%에 달해 오늘부터 재폐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 동안 의협 내부에서도 의협 상임이사들과 의쟁투 중앙위원들 사이에 재폐업 여부를 놓고 이견이 있었으나, 결국 강경투쟁을 주장하는 의쟁투의 주장에 밀려 재폐업을 단행키로 했다고 한다. 의사들의 참여를 확대키 위하여 각 시도별로 폐업시기는 자율에 맡기기로 하여 오늘부터 전면적인 의료대란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러나 사태가 수습되지 않으면, 지난 6월말과 같은 의료대란이 다시 발생할 수 있다. 제2의 의료대란이 예상되는 상황을 보는 국민들의 심정은 착잡하다. 이미 지난 번 의료대란때 정치권에서 의사들의 주장을 대폭 수용하여 약사법 개정이 여야간 합의되었으며, 더구나 이는 의사협회에서도 인정된 사항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약사법 개정 내용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다시 파업을 재개한다면 이는 논리적 모순이 있는 것이다. 의사들의 재폐업 결정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들의 건강을 담보로 한다는 측면에서 용인되기 어려운 것이다. 정부 역시 지난 1개월 동안 긴급한 상황에서 주어진 계도기간을 충분히 활용하여 준비했다고 볼 수 없다. 약사법 개정이 늦은 것은 정치권의 책임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정부가 최선을 다하여 의료인들과 대화를 통한 설득을 했는지 묻고 싶다. 정부는 일만 생기면 공권력의 즉각 투입과 사법처리만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결코 옳은 자세는 아니다. 더 이상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자제되고 정부 역시 적극적 자세로 의료대란 대비책을 강구해야 된다. 여하한 경우에도 환자들에게 불편을 주어서는 안된다.

이산가족

남북이산가족 사이의 이혼소송, 재산다툼에 관련한 몇몇 사례의 소송 및 법률문제가 일부 지상에 보도되고 있다. 생사여부조차 몰랐다가 살아있는 소식이 알려진 재회기대의 감격속에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 것은 성급한 흥미위주의 과장보도인지, 아니면 세태가 그런 것인지. 요절한 손창호 감독이 각본을 쓰고 주연한 영화로 ‘동경 아리랑’이 있다. 젊은 여성들이 일본에 가면 많은 돈을 벌수 있다는 허황된 꿈에 부풀어 건너갔다가 호스티스로 전락, 그곳 건달패의 노리개가 되어 돈은 커녕 인생 자체를 망치는 내용이다. 손감독 자신이 일본에서 7년간 영화공부를 하며 직접 보고 들은 얘기를 소재로 했다.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라는 KBS-1TV 특별생방송 프로그램이 있었다. 1983년 6월 30일부터 그해 11월 14일까지 무려 136일동안(453시간 45분)에 걸친 생방송으로 1만189가구의 국내 및 해외 이산가족을 만나게 해주었다. 6·25 전쟁때 가족이 헤어진 경위를 화면을 통해 서로 확인하다가 “맞다! 맞어!”하며 손수건을 적시는 재회의 눈물속에 기쁨을 터뜨리곤 한 감동의 프로그램이었다. UPI는 ‘텔레비전사상 최대의 걸작품’이라고 평했고 AP는 80여개국에 주요기사로 타전하는 등 세계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나중에 방송가에 들린 소식으로는 지극히 일부의 예이긴 하나 그중에선 ‘차라리 안만났던 것보다 못한 일이 벌어졌다’는 말이 들려 뒷맛을 씁쓸하게 한 적이 있다. 돈 탓이다. 다시 만나고보니 복잡한 재산다툼이 벌어져 서로 그리워하며 만나지 못했을때보다 못한 사이가 된 것이다. 돈도 좋지만 정이 앞서야 한다. 사람의 도리가 앞서면 재산문제는 절로 잘 풀릴수가 있다. 사람의 도리를 정이 아닌 법으로 먼저 풀려면 잘 풀리지도 않고 더 어려워진다. 서로 상대의 처지에서 생각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이산가족들의 좋은 만남이 되기를 바라고 싶다. /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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